- 미국에서는 1965~1980년, 2000년대 초반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년 동안 명목금리는 높았지만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아지면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할 때, 이 기간에 예금자들과 국채 투자자들은 오히 려 손실을 보았다는 결론입니다. 특히 1970년대는 10%를 웃도는 이자 를 받았다고 좋아했겠지만, 물가 상승률이 그보다 훨씬 높았기에 투자 성과는 마이너스였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대에는 10%를 훌쩍 넘는 높은 실질 금리를 경험했지만,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물가 상승률과 명목금리 가 빠르게 하락하고 세금이 올라가면서 실질금리가 2% 수준으로 줄었 습니다. 이후에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실질 이자수익이 마이너스인 경 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실질 이자수익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금리가 물가 상승률을 이기지 못 한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물가 상승률을 넘어설 수 있는 투 자가 필요합니다. 굳이 주식이 아니더라도 국채보다 추가 금리를 더 제공하는 회사채, 중위험 중수익 대체 투자 등이 대안이 될수 있습니다.
- 오랜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통해 끄집어낸 다음의 여덟 가지 속성을 기반으로 향후 인플레이션의 미래를 전망하고자 합니다.
1. 화폐 착각'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또 다른 세금이란 것을 인지하기 어렵다.
2.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불러온 근원적인 문제는 부실한 재정이었다.
3. 화폐는 해당 국가의 신용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지나치게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정부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의미한다.
4. 유사시 중앙은행은 정부의 영향력에서 독립적이기 어렵다.
5. 정치, 경제적 격변기에는 정부의 금융 억압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6.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정치적 현상이다.
7. 198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 통제는 중앙은행의 대담한 대응과 함께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8. 닉슨 독트린 이후 신용 화폐 시대에는 위기 때마다 돈을 풀어서 문제를 해결했지만,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율의 상관관계는 일정하지 않았다.
-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아니라 정부 기관인 재무부가 발행했던 그린백과 현재 사용하는 달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선 시뇨리지를 누가 가져가는지가 달라집니다. 재무부가 발행하면 액면가의 교환 가치에 대한 이득을 정부가 얻게 됩니다. 즉 인쇄비와 유통비를 제외 한 나머지가 정부의 이득이 된다는 거죠. 100달러짜리 지폐를 인쇄한 다고 할 때, 제작 및 유통 원가를 2달러라고 가정하면 98달러가 정부의 수익이 되는 것입니다.
연준을 통해 발행하는 현재 시스템에서는 재무부가 필요한 액수 만큼의 채권을 발행하고, 연준이 그 채권 액수만큼 달러를 발행하여 정부의 채권과 교환합니다. 즉 정부가 연준에 빚을 내는 것이죠. 그리고 연준은 돈을 발행하여 정부에 건네주는 거고요. 즉 정부는 달러를 발행할 때마다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되고 이 채무는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미국 국민이 연준에 빚을 지는 셈이 됩니다.
- 1080년대를 통해 정책 결정자들은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는 것이 높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플레이션율이 하락하면서 발생하는 경기 침체와 대규모 실업이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미 높은 기대로 형성되어 있는 인플레이션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실업률을 상당 기간 자연실업률보다 높게 유지하는 긴축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는 과정을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1980년대 미국이 디스인플레이션을 통해 심각한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데 사용한 비용은 연간 GDP의 약 18%로 엄청난 수준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높은 비용은 디스인플레이션을 통한 인플레이션 의 안정화가 높은 장기적 이익을 가져온다고 확신할 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경제가 디스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손실이 크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폐해가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에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한 선진국들이 1980년대에 결국 긴축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추진 하게 된 배경은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이 줄어들더라도 인플레이션율 을 낮추기 위한 희생을 감당할 만하다고 봤고 여론도 이를 인정하고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됩니다. 또한 정책 담당자들이 인플레이션 율을 낮추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이 디스인플레이션의 비 용을 줄인 측면도 있습니다. 명확하고 신뢰도 높은 디스인플레이션 정책은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알려져 있
습니다.
- 2020년대, 물가가 엄청나게 상승하는 슈퍼 인플레이션 시대가 올까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각국 중앙은행에 의해 엄청나게 풀린 통화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실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8,500억 달러에 불 과했던 본원통화 발행액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4.5조 달러까지 급증하기도 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2019년 3.8조 달러였던 연준의 총자산이 7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연준 총자산이 급증했다는 것은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지급준비금과 현금의 합인 본원통화가 급증했다는 뜻입니다. 통화량 확대와 정부 지출 증가는 일반적으로 시중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을 증가시킵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유통 시장에서 매입하면, 정부는 민간이 아니라 중앙은행을 통해서 자금 조달을 한 것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민간 은행은 지급준비금이 증가하게 되지만 이것이 시중 에서 사용하는 실질적인 통화량의 증가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민간 은행들이 이 지급준비금으로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을 늘리지 않는다면 시중에 돈이 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제 환경이 불투명한 상황 에서는 이러한 자금이 다시 연준에 예치되거나 금융자산 내에서 맴돌 가능성이 큽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통화량이 급증했음에도, 화폐 유통 속도가 하락하면서 높은 물가 상승률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한편에서는 2008년 서브프라임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이런 유동성이 실물 경제에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리라는 주장 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와튼스쿨 교수인 제러미 시걸eremy siegel)은 “2008 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양적완화로 풀린 유동성이 문제가 발생한 은행 들에 집중됐고, 이것이 대부분 은행의 초과 지급준비금으로 흡수되면 서 연준에 다시 예치됐기 때문에 장부상의 거래만 있을 뿐 실제로 풀 린 유동성은 없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2009년 이후 시중은행들이 증가한 초과 지급준비금을 기반으로 실물경제에 대출했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겠지만,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없고 전망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실물경제에 공급된 유동성은 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은행이 아닌 기업과 가계에 직접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변경됐기 때문에 2008 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와는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에서도 이미 2. 2조 달러의 CARES ACT라는 재난 지원금을 통해 재정 지원이 이루어진 데다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책이 예고되어 있습니 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재정정책을 통한 기업과 가계에 대한 지원이 계속되고 있어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규모로 풀린 유동성이 하반기 백신 접종의 확 산에 따른 경기 회복과 함께 물가를 상승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이 확산되면 바로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인플레이션율이 급등할까요? 만일 백신 접종 확산과 치료제 개발 등을 통해 억눌린 수요가 폭발하고 놀라운 성장을 끌어낼 수 있다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2020년 큰 폭의 침체에 대한 기저효과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후 미국의 실질 GDP 추세선을 보면, 금융위기로 경기 침체를 경험한 뒤 U자형 회복을 이끌었지만 기존의 성장 궤도를 이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신 접종으로 팬데믹이 얼마나 빨리 종식되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세계 경제 성장이 팬데믹 이전으로 빠르게 돌아가면서 민간 소비와 대규모 투자 지출이 빠르게 회복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규모로 현금을 확보해놓은 기업들이 경제가 일부 재개된다고 해서 상품 생산에 대한 투자 유인을 바로 확보하긴 어렵습니다. 또한 비상 상황 을 대비한 선차입금이기 때문에 상황이 호전된다면 그중 일부만 사용하고 이후의 차입을 미룰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부채 부담이 높아진 2020년대 세계 경제는 2010년대보다 더 낮은 성장이 예상되기에 인플레이션은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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