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유니버스

과학 2018. 5. 6. 10:11
- 전기가 보급되기 전에 시간이란 국지적이고, 변화가능하며, 개인적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뉴욕과 볼티모어는 경도가 약간 다르므로 몇분 차이가 나도록 각자의 시간체계를 갖고 있었고, 볼티모어의 정오는 뉴욕의 정오보다 몇분 늦었다. 각 도시는 별개의 세계였다. 이곳에서 걷고 있거나 저곳에서 걷고 있는 사람, 이쪽 농장에서 일하거나 전혀 다른 저쪽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별개의 세계에 속했다. 그러나 이제 이 세계들의 시간이 통합됨. 사람은 현재 어디에 있든 간에 엄격하고 공통된 통제된 시간 속에서 어느 부분에 와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세계화의 초기형태였따. 중부와 동부유럽까지 전보가 퍼지면서, 수백만의 농부들은 이름 외에 성을 만들라는 압박을 받음. 새로이 팽창하는 정부관료조직이 그들을 가르치고 세금을 매기고 관리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임 과거에 대규모 군대를 빠르게 동원한다는 것은 나폴레옹 같은 불세출의 천재 아니면 혁명에 나선 시민들의 순간적 열광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1800년대 중반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행군이나 기차이동 시간이 전보를 통해 조정됨에 따라, 수만명의 징집군인들은 불행하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규합된 수천명의 적군들이 때마침 모습을 보이는 때에 맞춰 도착했음을 알고는 어리둥절했다. 신문은 더 이상 느긋한 토론이나 우아한 잡담이 실리는 곳이 아니었다. 대신 주요한 외신에 의존하기 시작. 속보가 시시때때로 날아들어 외무부 사무실의 느긋한 분위기를 깨는 바람에 외교적 위기상황을 진정시킬 시간도 부족해졌다. 대중정치운동이 이전보다 빠르게 솟아났다. 공장의 신기술도 더 빨리 전파되었다. 한가지 결과가 더 있다. 미국에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고 전보의 도움을 받은 세계화가 진행되자 미국으로 건너올 계획을 세우는 유럽인들이 점점 증가. 증기선들은 처음에느 수천명씩 노동자들을 실어나르더니 나중에는 그 수가 수만이 되었다. 유태인도 신교도도, 카톨릭교도도 있었으며, 모두가 생명력이 넘치는 이들이었다. 그 결과 이민자가 많은 역동적 미국이 태어남.
- 전차를 끌려고 거대한 발전소를 건설했던 전차회사들은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오후 7시 이후에는 전기를 쓸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따. 여분의 전력으로 무얼하면 좋을까? 해결책 가운데 하나가 현대적 놀이공원을 만드는 거였다. 곧 미국 전역 및 서부유럽 일부의 도시 근교에는 전기로 운행되는 롤러코스터와 환하게 밝혀진 상점가가 있는 놀이공원들이 등장했따 1901년 즈음 미국의 거의 모든 대도시에는 이처럼 지역 전차회사들이 소유하고 그들의 전기로 운영하는 놀이공원이 있었다.
- 컴퓨터 버그의 어원은 프로그래머인 그레이스 호프에 의해 비롯되었다. 젊은 해군장교였떤 그녀는 자신이 사용하는 하버드대 마크2 컴퓨터로 회로 안에 나방 한마리가 침입한 것을 발견. 이 나방은 컴퓨터 동작을 멈추게 했고, 호퍼는 그의 조수와 함께 핏셋으로 이 나방을 잡아냄. 세계 최초의 디버깅이었다. 이 나방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 버그로 기록되어 현재까지도 미 해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바딘과 브래튼이 제대로 작동하는 트랜지스터를 만들어내자 쇼클리는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자들이 먼저 성공할 수 있는가. 바딘은 뛰어난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만한 역량이 없는 자였다. 오리건 주 방목장 출신의 브래튼이 발견에 기여했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되는 일이다. 쇼클리는 이들의 업적을 가로채려 했다. 1947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마이크를 독차지했다. 한 전자공학 관련 잡지에서 위대한 트랜지스터를 발견자들의 사진을 찍으로 방문하자, 그는 바딘과 브래튼을 밀쳐내고 그들이 사용하던 실험실 책상에 앉았다. 쇼클리가 그들의 초기 아이디어를 상당히 발전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이 모든 일을 전부 자신의 공으로 믿어주길 바랐다. 바딘이 먼저 연구소를 떠났고 다른 사람들도 뒤를 따름. 고함지르며 다스릴 사람들이 다 사라지자, 곧 쇼클리도 나갔다. 이런 연유로 트랜지스터는 즉시 대량생산되지 못했고 튜링의 목숨을 구하기에도 늦어버렸지만, 뜻밖에 이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좋은 현상이 하나 생겨남. 쇼클리는 그야말로 탁월한 거짓말쟁이였기 때문에, 벨 연구소를 떠난 그가 살구나무 과수원과 공장들이 띄엄띄엄 들어선 샌프란시스코 남부 한 계곡 마을에서 사업을 시작하자, 미국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공학자와 물리학자들이 그와 함께 일하려고 몰려들었따. 뭐니뭐니 해도 그는 잡지 '전자공학'의 표지모델로 등장해 벨연구소의 책상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포즈를 취했던 사람 아닌가. 트랜지스터의 탄생을 알리는 기자회견은 그를 위한 기념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곧 노벨상을 받을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더구나 그는 함께 경쟁하던 동료연구자들은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는 말을 잊지 않고 다녔다.
- 쇼클리가 벨연구소에서 쫓아낸 기술자들이 전국으로 흩어졌던 반면, 그가 새 회사에서 쫓아낸 기술자들은 멀리 가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태양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쇼클리는 거대한 원심분리기가 되었으며,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혁신을 퍼뜨리는 기계가 되었다. 그의 명성이 끌렸던 똑똑한 이들은 그가 얼마나 끔찍한 사람인지 깨닫고 나자 서로 뭉치기 시작했고, 그 유대를 바탕으로 쇼클리의 회사를 빠져나와 근처에 자신들의 회사를 세움. 쇼클리가 잃은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의 칩에 수많은 트랜지스터들을 찍어내는 현대적 기술을 탄생시킨 연구자 중 한명인 로버트 노이스, 그리고 이 칩들을 제작하는 업체로서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회사가 된 인텔을 공동창립한 고든 무어 등이 있다. 노이스는 백만장자가, 무어는 모르긴 몰라도 억만장자가 되었는데, 쇼클리는 돈은 조금도 벌지 못한 채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 배은망덕한 직원들을 탓하기만 하면서, 계속해서 야심만만하고 명민한 기술자들을 내쫓아 경쟁사에 인력을 공급해주고 있었다.
- 우리 몸은 전기의 작용으로 움직임. 사람의 뇌에는 구석구석 깊숙이까지 비비꼬인 모양의 살아있는 전선들이 뻗쳐 있다. 강한 전기장과 자기장은 세포들에 침투하여 영양물질을 공급하기도 하고, 신경전달물질이 미세한 세포막의 장벽을 통과하도록 도와주기도 함. DNA조차 전기력의 통제를 받음. 그 결과 과학자들은 새로운 형태이 기술, 즉 액체 기술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조그마한 물웅덩이에 전기적 입자들을 가득 채워 인체의 후미진 곳까지 헤엄쳐 들어가도록 할 수 있다. 마취제는 신경세포를 가동하는 전기 펌프들을 마비시켜 수술받는이의 통증을 덜어줌. 프로작은 뇌의 어떤 전기적 수용체에 가결합함으로써 우울한 기분을 눌러줌. 비아그라 알약에서 나온 대전된 분자들은 특정부위의 신경세포들을 흥분시킴으로써 쾌락을 높임. 이 모든 일들은 현대과학의 최첨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일부라 할 수 있음. 즉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인간 바깥의 물리적 세상에서 인간내부의 몸과 사고과정으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 과학자 자신은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이 몸담은 사회의 유행을 무시할 수 없으며, 바로 그 점 덕분에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다. 1600년대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가장 흥미롭고 빠르게 발전한 기술은 펌프였다. 따라서 혈액의 순화에 대해 연구하던 윌리엄 하비가 심장을 펌프와 비슷한 구조로 생각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뉴턴의 추종자들은 우주의 작동방식을 시계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간주했는데, 17세기 후반의 가장 주목할만한 신기술이 정교한 시계였음을 떠올린다면 이 또한 자연스럽다.
- 알콜과 비슷하게 마취제 분자들은 신경의 지방질 세포막으로 가라앉아 그곳 신경축색돌기의 이온펌프 활동을 둔화시킴 집게가 인정사정없이 어금니를 잡아당기고 바늘이 살아 있는 조직들을 누비며 꿰맬 때 환자가 끔찍한 기분을 느끼려면 신경자극이 뇌로 전달되어야 하는데, 나트륨 추진장치가 꺼져 있기 때문에 자극은 2.5센티밑도 못가 멈춰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취제의 작용방식이 세세히 알려지고 전신 마취제와 국소마취제의 서로 다른 활동양식이 알려지면서 의학은 엄청나게 발달.
- 사람들은 수백년전부터 카페인을 음용해왔다. 1600년대 수도사들이 남긴 주석에도 증거가 있다. 젊은 수도사들이 뒤처진 공부를 만회할 욕심에 카페인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한다는 불평이 씌어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카페인의 작용방식을 잘 알지 못했다. 궁금증은 세포수준에서 뇌의 전기적 연결을 이해하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풀렸다. 뇌세포 사이에 존재하는 흔한 신경전달물질 가운데 아데노신이라는 이름의 덩치 큰 분자가 있다. 아데노신은 목표하는 뇌세포에 가 닿아 세포의 활동빈도를 낮추는 역할을 함. 카페인은 아데노신의 결합부위를 찾아가 들러붙는다. 결합부위가 이미 채워져버렸으므로 아데노신은 세포에 가서 붙을 수없다. 우리가 너무 지쳐 깊은 잠을 갈구할 때라도, 뇌 세포 수용체들 사이에 카페인이 침투해 있는 상황에서는 미친듯이 뿜어져 나오는 아데노신의 결합부위가 하나같이 꽁꽁 묶여버려, 신경세포들을 편히 쉬게 할 수 없다.
-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사람의 기분을 좌우한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러 부수조건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뇌의 세로토닌 수치가 낮은 사람들은 우울증을 느낄 개연성이 높았다. 하지만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토라진 등의 강력한 화학물질을 뇌에 처방하면 조금 나아지긴 하지만, 슬프게도 토라진의 정확도는 화염방사기만큼이나 턱없이 낮아서 뇌 속의 여타 유용한 회로들까지도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토라진만을 사용한 결과 정신병동의 환자들은 구속복을 벗어도 안전한 상태가 되었지만 그것은 그들이 치료과정에서 원래의 인성까지 더불어 잃었기 때문. 환자들은 생각이 나간 듯 멍하게 하루종일 잔디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엘리사의 연구진은 간접적으로 세로토닌 수치를 높일 뿐 다른 것들은 전혀 손대지 않는 독창적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세로토닌이 더 분비되게 할 수는 없었지만 기왕 생겨난 세로토닌이 더 오래 활동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세로토닌 수치에는 뇌의 신경세포들에서 얼마나 많은 세로토닌이 뿜어져 나오는가도 중요하지만, 뇌세포 사이 공간을 떠다니며 세로토닌을 분해하고 해체한 조각들을 끌어다 원래의 세포에 전해 재흡수되게 하는 해체분자들(청소분자들)의 작업효율도 중요. 세로토닌 생산이 충분치 않거나, 혹은 세로토닌 수용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느다면, 세로토닌 해체 및 재흡수 과정을 더디게 해보면 어떻겠는가? 프로작은 전기력을 띠고 있는 작은 분자들을 내보내어 해체과정에 참여하는 몇몇 분자들에 결합시킴으로써 그들의 작업효율을 떨어뜨림. 해체분자들의 기능이 정지되므로, 정상적으로 분출되어 나왔던 세로토닌은 아무리 양이 작더라도 그리 쉽게 사라져 버리지 않음. 세로토닌 수치는 안정되게 유지되거나 조금 상승하기도 한다. 그러면 기분은 한결 나아진다.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욕망하는 식물  (0) 2018.06.08
일렉트릭 빅뱅  (0) 2018.05.09
지능의 탄생  (0) 2018.03.18
인공지능과 딥러닝  (0) 2018.03.14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  (0) 2018.03.14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