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식물

과학 2018. 6. 8. 12:33

- 사과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00년대초에 기독교 여성 금주동맹이 사과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사과생산자들은 사과의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대대적으로 홍보. 그때부터 사과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
- 중국에서 접붙이기 기술을 고안한 뒤에야 진정한 의미의 사과재배가 이루어지기 시작.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 사람들은, 한 품종의 나무에서 잘라낸 가지를 다른 품종의 나무줄기에 붙이면 부모의 우수한 형질만 이어받은 새로운 품종의 나무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냄. 이 기술은 그리스와 로마에 전파되었고, 그곳에서도 최상의 품종을 개발하고 퍼뜨렸다. 플리니에 따르면 로마 사람들은 23가지 품종의 사과를 재배했고 이 가운데 일부를 영국으로 전파.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여전히 사람들이 찾는 작고 동글납장한 레이디애플도 이때 개발된 품종으로 추정됨
- 사과나무와 같은 과실수는 달고 양분이 많은 과육속에 씨앗을 담아두는 기발한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달콤함을 즐기는 포유류의 특성을 활용. 동물은 달콤함을 즐기는 대가로 과일의 씨를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 그 식물이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 도움을 줌. 이처럼 거대한 공진화의 거래를 통해 달콤함을 즐기는 동물과 크고 달콤한 과일을 제공하는 식물이 함께 번성하고 증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물종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 그런데 식물은 동반자의 탐욕으로부터 자기 씨를 보호할 목적으로 몇가지 조치를 취했다. 예를 들어, 식물은 씨앗이 충분히 발유갛기전까지는 과일이 단맛과 아름다운 색을 나타내지 못하도록 함. 그때까지 과일은 맛이 없어 먹을 수 없고, 또 열매는 눈에 잘 띄지 않게 녹색을 유지. 그리고 또 어떤 경우에는 씨의 표면을 단단한 특수물질로 처리해서 과일을 먹는 동물들이 씨는 씹지 않고 뱉어내게 하거나 혹시 씨를 삼키더라도 소화되지 않고 안전하게 몸 밖으로 배출되게 함
- 원래 곡물로 만든 술이 개척지에서 사과주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지만,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사과주에 밀려났다. 사람들은 보다 안전하고 맛있고 또 만들기 쉬운 사과주를 선호한 것. 사람들이 존 채프먼이 씨를 뿌려서 키운 사과나무를 사서 사과 과수원을 만든 유일한 이유는, 압착기와 술을 담을 통만 있으면 누구든 쉽게 사과주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과즙을 2~3주 발효시키면, 포도주에 비해 알콜 도수가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순한 알콜 음료를 만들 수 있다. 좀더 독한 술을 원한다면 사과주를 증류해서 브랜디를 만들거나, 아니면 그냥 얼리기만 하면 되었다. 아무리 얼리려고 해도 얼지 않는 술을 애플잭이라 불렀는데, 사과주를 영하 30도에서 얼리면 알콜도수 66도짜리 애플잭을 만들 수 있다.
- 그레이트 로즈와 같은 장미를 서로 다른 두개의 엘리트 장미를 신중하게 이종교배하여 만든 품종이다. 하지만 사과는 그렇지 않다. 사과의 우수품종은 조상의 혈통에 의존하지 않고, 수없이 많은 평범한 품종 가운데 우뚝 솟아난다. 미국 과수원, 적어도 조니 애플시드의 과수원은, 각기 다른 유전형질을 품고 있는 수많은 사과씨의 입장에서 보면 혈통이나 부모의 유산과 전혀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공간이었다. 종자의 운명이 미리 결정되는 법이 없는 사과의 식물학은 아메리칸 드림과 일맥상통한다.
- 접붙이기를 통해서 키운 사과나무만 있는 과수원에서는 이 공진화 과정이 실종된다. 아무리 세대가 흐른다 해도 접붙이기를 통해서 얻은 사과나무의 유전자는 늘 동일하기 때문.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 교접은 자연에서 새로운 유전자 결합을 만들어내는 수단이지만, 사과나무는 사과씨에서 자랄 때처럼 더는 교접을 통해 재생산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의 핵심. 이에 반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나 해충은 여전히 교접을 통해 재생산됨으로써, 사과의 저항력을 뚫을 수 있는 유전자 결합을 찾아내기 위해서 계속 진화. 그리고 결국 사과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전자 결합을 찾아냄. 그러니 사과와 해충 사이의 싸움은 당연히 해충의 승리로 끝난다. 그래서 인간이 농약이라는 현대적 무기를 들고 나서서 사과나무를 보호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사과가 너무 지나치게 길들여진 나머지, 어쨋거나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자연에 적응하는 능력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 결국 인간의 입맛과 농법에 맞는 유전자 구조를 가진 소수 품종만 살아남고, 교접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다양성과 야생성은 실종되고 마는 심각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 스티븐 핑커는 자연선택은 우리 조상 가운데서 식물학자의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 즉 주변에 어떤 식물들이 있는지 알고 그것들을 분류하며 또 그것을디 어디에서 자라는지 기억하는 사람들 편이었다고 주장. 이런 이유로 자연의 풍경 속에서 욕망의 대상, 즉 어떤 식물이 눈에 띌 때마다 우리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그 순간이 즐거움이 된다. 나아가 그 대상이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 꽃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연선택이든 인위선택이든 아무 차이가 없다. 벌의 욕망이든 터키 사람의 욕망이든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식물이 결국 보다 많은 자손을 퍼뜨리며 번성하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우리는 흔히 길들이기를 인간이 식물에게 하는 일방적 행위로 여김. 하지만 달리 보면 이것은 인간의 욕망과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이용해 식물이 자기 이익을 챙기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야생 생태에서는 곧바로 도태되고 말았을 돌연변이 품종들이 인간의 욕망에 의해 형성된 특정 환경에서는 탁월한 생존능력을 가진 품종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남
- 18세기 터키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튤립의 알뿌리는 한동안 콘스탄티노플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었다. 그 시기는 1703~1730년의 아흐멧 3세 재위기간. 터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튜립의 시대라 부름. 튤립에 대한 아흐멧 3세의 열정은 대단해서, 네덜란드에서 튤립 알뿌리를 수백만개나 수입할 정도였음.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튤립 열풍을 겪었던 터라 튤립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흐멧 3세는 해마다 화려한 튤립 축제를 열었고, 이로 인해 국가의 재정이 심각할 정도로 위협을 받았다. 결국 튤립은 반란의 불씨가 되어 그의 통치는 막을 내렸다.
- 바람의 거래에는 바람 이상의 것이 있다. 튤립을 둘러싼 광기는 네덜란드에 알뿌리 무역이라는 실제 거래를 낳았고, 이 거래는 튤립 열풍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됨. 즉, 투기적 거품 이면에는 새롭고 중요한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슘페터에 따르면 새로운 사업과 시장이 열릴 때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장밋빛 미래에 혹해 자금이 마구 몰려들면서 거품이 생기는 현상은 특별히 이상할 게 없다.
- 해로운 식물과 유익한 식물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맛을 보는 것. 동물에게 먹히고 싶지 않은 식물은 보통 쓴 맛을 내는 알칼로이드라는 물질을 만들어냄. 한편 사과처럼 동물에게 먹히길 원하는 식물은 씨앗을 감싸고 있는 과육에 당분을 듬뿍 담는다. 여기에는 당순한 유추가 가능. 단맛을 내는 식물은 먹어도 되고, 쓴맛을 낼 경우 먹으면 안된다는 것. 그런데 우리 의식의 전반적 상태는 물론이고 의식의 내용까지 송두리째 바꾸고 싶을 만큼 욕망을 자극하는 마력의 식물들 중 상당수가 끔찍할 만큼 쓴 맛을 낸다는 사실이 밝혀짐. 도취(intoxication)라는 단어는 toxic이라는 단어를 포함. 음식과 독약은 명확히 구별할 수 있지만, 독약과 욕망을 명확하기 가를 수 있는 선은 없다.
- 니코틴과 같은 몇몇 식물성 독성 물질은 자기를 갉아먹는 해충의 근육을 마비시키거나 경련을 일으키도록 만듬. 카페인과 같은 물질은 신경체계를 손상시켜 입맛을 잃게 만든다. 독말풀과 사리풀 그리고 그밖의 수많은 식물에 들어 있는 독성물질은 동물을 미치게 만든다. 이 풀을 먹은 동물의 머릿속에는 끔찍하고 산만한 영상들이 마구 펼쳐져서 결국 이 동물은 식욕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플라보노이드라는 물질은 몇몇 동물들이 혀에서 느끼는 맛을 아예 바꾸어 버린다. 달콤한 열매를 신맛이라 느끼고 신 열매를 단맛으로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식물이 의도한 결과다. 야생 파스닙과 같은 종에 함유되어 잇는 감광물질을 섭취한 동물은 햇볕에 새까맣게 탄다. 이 물질에 노출된 염색체가 자외선을 쐴 경우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 그리고 나비의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음으로써 그 나무의 수액에 함유된 물질을 섭취하면, 제대로 성장해 나비가 되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다.
- 재배자들이 알아낸 바로는 대마초는 24시간 연속해서 수십만 루멘을 흡수. 이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양이다. 이렇게 빛을 쪼이다가 갑자기 빛 흡수 시간을 하루 12시간으로 줄이는 방법을 써서 대마초에 충격을 주면 심은지 불과 두달도 되지 않아 꽃을 피움. 장비만 잘 갖추면 그 어떤 자연환경보다도 완벽한 환경을 실내에 구현 가능. 그리고 이 완벽한 공간에서 위대한 잡초인 대마초는 인간의 따뜻한 대우에 기꺼이 보답을 했다. 하지만 수컷 대마초 나무에는 이런 꼼꼼한 배려가 낭비일 뿐이다. 이들은 신세밀랴 생산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 암컷 나무는 가루받이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꽃받침을 끊임없이 만들기 때문에 꽃의 길이가 계속 길어짐. 이처럼 성욕이 억제된 상태가 되면 대마초는 THC가 풍부한 진액을 계속해서 다량 생산한다. 하지만 꽃에 꽃가루 알갱이 몇개만 떨어뜨려도 이 암컷 대마초는 곧바로 다른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씨앗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신세밀랴 생산작업은 끝나고 만다. 실생 재배, 즉 씨앗을 심어 대마초를 재배하는 사람은 암컷과 수컷을 구별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지체없이 수컷을 뽑아버림. 그냥 둘수록 시간과 공간만 낭비되기 때문 수컷 나무에 들이는 헛수고를 덜기 위해 사람들은 씨앗대신 복제나무를 심곤 했다. 다 자란 어미나무에서 가지를 잘라내어 땅에 심는 방식. 암컷 대마초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재배방식은 진화에 있어 커다란 혜택이다. 유성생긱을 할 때는 후대로 이어지는 유전적 특성이 약해지거나 바뀔수도 있는데, 이런 위험 없이 자기 유전자를 그대로 얼마든지 퍼뜨릴 수 있기 때문. 이런 자기복제 방식은 유전자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만드는 것이므로 복제한 대마초 역시 암컷이 된다. 이들은 또한 처음부터 생물학적으로 성숙한 개체로 출발. 키가 15~20센티만 되어도 꽃을 피움. 1987년이 되면, 이 모든 기술적 진보가 한데 어우러져,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복제 대마초 나무들이 강렬한 빛 아래서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최첨단 실내 재배체계인 녹색의 바다가 나타났다. 100개 가까운 복제 대마초 나무가 고작해야 당구대 크기만한 공간에서 2000와트나 되는 전구가 뿜어내는 빛을 받으면서 자라 두 달에 한번씩 1.5킬로에 가까운 신세밀랴를 생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고 적지 않은 동물종들이 그런 욕망을 타고났는가이다. 신경망과 정신을 자극하는 식물들을 가공해서 먹거나 마시거나 흡입함으로써 이들은 진화론적 측면에서 어떤 이득을 얻을까? 어쩌면 이득이 전혀 없을수도 있음. 현존하는 모든 것에 대해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유용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다. 욕망 혹은 그 욕망을 실천하는 행위가 광번하게 존재하거나 보편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진화론적으로 유리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마약을 추구하는 인간의 성향은 전혀 다른 두가지의 적응행위에서 우연하게 생성된 것일수도 있다. 이 이론은 스티븐 핑커가 주장. 그는 인간의 뇌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서로 전혀 관련 없었던 두개의 기능을 획득했다고 설명. 하나는 뛰어난 문제해결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화학적 보상체계다. 화학적 보상체계란, 유용한 행동을 하거나 영웅적 행동을 했을 때 화학물질이 분비되어 기분 좋은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체계. 그런데 첫번째 기능이 두번째 기능을 압박한다고 쳐보자. 이 경우, 인간은 뇌의 보상체계가 작동하도록 노력할 것이고, 결국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식물을 파악하고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늘 우리에게 유리하지는 않다. 동물이 경험 하는 도취현상을 연구해온 로널드 시겔은, 흥분제가 들어있는 식물을 섭취하고 도취상태에 빠진 동물은 사고를 쳐서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될 확률이 높고, 흔히 자기새끼를 잘 돌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냄. 도취상태는 위험하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은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상태를 바꾸려는 욕망, 다시 말해 도취상태에 빠지고 싶은 욕망은 어째서 그토록 강력할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논리에 따르자면, 이런 욕망은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혹은 다윈에 제기한 경쟁개념을 폐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스 사람들은 도취물질에 대한 이런 궁금증의 해답을 간단하게 정리. 천벌인 동시에 축복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도 천벌이자 은혜였다. 식물성 흥분제는 보통 조심스레 그리고 적절하게 쓰면 이익이 된다.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매우 유용. 수많은 식물에게서 얻을 수 잇는 진통효과는 좋은 사례임. 커피와 코카, 카트와 같은 식물의 열매나 잎을 먹으면 집중력이 높아짐. 아마존 유역에 사는 몇몇 부족은 사냥을 나가기 전 지구력과 그리고 완력을 높여주는 특정 식물을 섭취. 또 어떤 식물들은 금기시되는 행동을 하도록 자극하고, 성적인 흥분을 자극하고, 공격성을 촉발하거나 누그러뜨리고, 또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도록 도와줌.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잠이 들게 하거나 잠에서 깨게 하여 비참한 감정이나 지루함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식물들도 있다. 이런 식물들은 모두 최소한 우리가 정신적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식물들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일상생활을 더 잘 수행할 것이다.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등과 같은 고대 그리스의 주요 철학자들은 엘레우시스 밀의에 참석했다. 이 밀의는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를 기리는 일종의 추수감사제. 하지만 사실은 참석자들이 강력한 환각물질을 사용해서 황홀경을 경험하는 자리. 이 자리에서 사용한 환각물질이 어떤 종류인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흔하게 사용했을 물질은 아마도 맥각곰팡이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의 일종인 맥각이 아니었을까하고 과학자들은 추측함. 이 물질은 곡물에 피해를 주는데, LSD와 화학적 구성이나 효과가 비슷함. 고대 문명에 밝은 빛을 드리웠던 인물들은 마약에 취한 상태로 주술적 의식에 동참하면서, 자기 정신의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놓는 그 신비로운 물질에 대해서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고 맹세했을 것이다. 그 쟁쟁한 시인과 사상가들이 신비로운 정신적 여행을 통해 얻은게 있었는지, 그랬다면 무엇을 얻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플라톤이 초자연적 형이상학 개념을 정립하는데, 다시 말해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진정한 혹은 이상적 형식은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감각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하는데 환각물질이 제공한 신비로운 여행이 영감을 주지는 않았을까?
- 60년대 중반 이스라엘의 신경과학자 라파엘 메쿨람이 대마초에서 향정신성 효과를 일으키는 성분을 발견. 그것은 바로 자연계에서는 발견된 적 없는 분자구조를 가진 '델타-9 테트라히드로칸 나비놀 THC'이었다. 메쿨람은 고대에 대마초가 약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확인. 뿐만 아니라 30년대 들어서 금지령이 내려지기까지 대마초가 통증, 경기, 멀미, 녹내장, 신경통, 천식, 경련, 편두통, 불면증, 우울증 등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이었다. 메쿨람은 이런 효능을 발휘하는 성분을 대마초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
- 88년에는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이 의과대학에 재직하던 앨린 하울렛이 뇌에서 THC를 받아들이는 특정한 수용체를 발견. THC는 마치 자물쇠를 푸는 열쇠처럼 신경세포의 일종인 수용체에 결합해 스스로를 활성화시킨다. 이 수용체 세포들은 신경마으이 한 부분을 형성하는데, 신경망에 있는 어떤 세포가 화학물질은 열쇠로 하여 활성화되면 이 세포는 화학적 신호를 여러 다른 세포들에게 전송하고, 유전자의 작동을 켜고 끄며, 자기활동성의 강약을 조절하는 등 다양한 작동으로써 반응함. 이 과정에 어떤 신경망이 관련되느냐에 따라 인식상의 변화. 행동상의 변화, 생리상의 변화가 나타남. 하울렛의 발견은 이전에는 확인하지 못했던 또 다른 신경망이 뇌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 하울렛이 발견한 THC수용체는 면역체계와 생식기 체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뇌 전체에 걸쳐서 다량 존재했다. 특히 대마초가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 여러 정신활동을 관장하는 부분, 즉 복잡한 생각을 담당하는 대뇌피질과 기억과 관련된 해마, 운동을 담당하는 기저핵 그리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핵 등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뇌에서 THC수용체가 전혀 나타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그 부분은 바로 순환 및 호흡작용처럼 인간의 의식과 관계없는 영역을 담당하는 뇌간이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보면, 대마초의 독성이 놀랍도록 낮은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지금껏 대마초를 많이 피워서 죽은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다
- 인간의 뇌가 일부러 대마초에 잘 도취되기 위해 진화해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뇌는 THC와 비슷한 물질을 자체적으로 생성하는게 분명. 이와 관련된 신체의 체계는 엔돌핀 체계이다. 이것은 뇌에서 생성된 엔돌핀 뿐만 아니라 식물에서 추출된 도취물질에 의해서도 활성화됨. THC를 발견한 지 30년이 지난 뒤인 92년, 메쿨람은 동료 윌리엄 디베인과 함께 연구를 하면서 또 하나의 물질을 발견. 뇌가 분비하는 카나비노이드였다. 그는 이것을 내면의 황홀경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아난다마이드라고 명명했다.
- 메쿨람은 카나비노이드 체계가 고통경감, 기억형성, 식욕, 여러 동작의 공조관계, 그리고 가장 흥미롭게도 감정까지 포괄하는 여러가지 생리학적 과정을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고 믿는다. 그는 아직까지 감정에 대한 생화학적 사실이 밝혀진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뇌가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인 다양한 감정들로 바꾸는 과정에 카나비노이드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자 녀석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손자 녀석이 내게 달려온다는 객관적 사실이 나의 주관적 감정변화로 이어지는 이 생화학적 변환과정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뇌 속에 있는 카나비노이드가 바로 이 질문의 자물쇠를 푸는 열쇠일지 모른다
- 대마초에 들어 있는 THC와 인간이 뇌가 만들어내는 카나비노이드, 즉 아난다마이드의 작용방식은 비슷함. 하지만 신경전달물질이 보통 그렇듯이 분비된 뒤 곧바로 분해되도록 설계된 아난다마이드에 비해 THC는 훨씬 강하고 지속적임. 초콜릿이 아난다마이드의 분해과정을 늦추는데, 그래서 초콜렛을 먹으면 약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대마초를 피울 때 뇌 속에 포함되어 잇는 망각의 기능이 과도하게 자극을 받으며, 이로 인해 대마초이 효과가 원래보다 더 과장되게 나타난다고 추정할 수 있음. 이런 사실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비록 약간은 다소 과장한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여러 감각기관이 잡아낸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자마다 곧바로 다시 빠져나가는 망각의 특성 때문에 대마초를 피운 뒤의 의식변화를 사람들이 특별하게 느끼는 건 아닐까. 대마초를 피우면 감각은 보다 선명하고 예리해지며, 통찰력의 깊이가 한층 더 깊어짐. 또, 이게 가장 중요한 현상인데, 시간이 천천히 흐르거나 아예 멈추어 버린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가 시간의 끈을 놓아버리고 현재 이 순간의 경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망각이라는 수단이 있기 때문.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할 때 느끼는 경이로움이랴말로, 마약을 쓰든 혹은 명상이나 단식 등의 다른 방법을 쓰든, 자기 의식상태와 내용을 바꾸려는 인간 욕망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 프리드리히 니체는 1876년에 탁월하면서도 다소 엉뚱한 글 '삶에 대한 역사의 유용함과 불리함'을 발표.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풀을 뜯어먹으며 당신 곁을 지나가는 소들을 생각해보라. 그 소들은 어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돌아다니고, 먹고, 쉬고, 되새김질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렇게 살고, 또 날마다 이렇게 산다. 오로지 현재와 현재의 즐거움과 불편함에 몸을 맡긴다. 이들은 우울해하지도 않고, 지루해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그 소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너는 왜 네가 느끼는 행복을 나에게 이야기하지도 않고, 그저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느냐?' 그렇다면 소는 이런 대답을 하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말하려던 것을 늘 잊어버려서 그렇지.' 하지만 이 말도 곧 잊어버리고는 여전히 아무말도 없을 것이다."
- 니체의 글에서 인용한 이 부분은 망각의 미덕을 감동적이고 유쾌하게 노래한다. 여기서 니체는 망각이 인간을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제조건이라고 말한다. 기억이나 역사의 가치를 외면해버리지 않는다면 인간은 과거의 그늘아래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다시 말해서 관습이나 선례, 전통적인 지혜나 노이로제 따위에 짓눌려서 우리가 갖고 있는 너무도 많은 힘을 쓸데 없이 낭비하게 된다고 주장. 미국의 초월주의자들처럼 니체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유산은 삶을 즐기거나 어떤 독창적인 것을 이룩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믿는다.
- 기억은 경이로움의 적이다. 경이로움은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망각이라는 마이너스 과정을 통하면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마약을 할 때의 경험은 어떤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마약은 정상적인 지각을 왜곡하고 여러 감각이 수집한 정보를 더욱 늘린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예로 드는 것이 환각현상이다. 원래는 없던 환상이 새로운 정보로 추가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반대일수도 있다. 마약은, 우리 자신과 세상 사이에서 정보의 완전한 소통을 가로막는 여과의 거름종이를 제거하는 기능을 하는지도 모른다.
-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둘대 대마초와 같은 식물을 거부할만한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이 두가치관은 사람들에게 미래를 바라보라고 한다. 그리고 둘다 순간의 쾌락과 다가올 만족을 기대하는 감각들을 거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식물 가운데 특히 대마초는 우리를 현재라는 시간에 깊게 몰입시키고 지금 여기의 만족을 줌으로써, 기독교와 자본주의가 의지하고 있는 욕망의 형이상학을 차단한다.
- 유전자 공학은 예컨대, 뉴리프와 같은 농작물이 살충제 없이 병충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처럼, 값은 비싸지만 해롭지 않은 유전자 정보가 값비싼 유독성 농약을 대체할 것이라고 약속함. 뉴리프 감자의 경우, 토양에서 발견되는 바실리우스 투린지엔시스 균 간단히 비티균에서 유전자를 빌려 콜로라도감자잎벌레에 치명적 독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감자세포에 이식한 것. 이때 비티균에서 빌린 유전자가 바로 몬산토사의 지적재산이다. 유전자공학으로 농업은 정보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몬산토사의 목표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우라는 프로그램으로 그랬듯이, 새로운 식물세대에 대한 운영체계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 스미스나 리카도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시장은 노동규모에 맞게 인구를 조절하는 민감한 체계였고, 빵의 가격은 이런 체계의 조정자였다. 즉, 밀의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식욕과 성욕을 억제하고, 따라서 출산율이 줄어든다고 보았던 것. 감자가 중심인 경제체계의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사라지고 이들보다 훨씬 비이성적 존재, 즉 갤러허가 호모 아페티투스(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라고 불렀던 존재만 세상에 남는다는 것. 경제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아폴로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면,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은 세속적이고 도덕관념이 없는 다산의 신 디오니소스의 지시에 따른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자급했으며 또 감자는 밀처럼 저장을 하거나 거래를 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감자는 시장경제 안에서 상품이 될 수 없었고 결국 아일랜드 사람과 마찬가지로 권위가 아니라 자연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논리였다. 정치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자본주의적 교환과정은 자연과 인간의 무질서한 본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시장경제의 교환은 빵을 굽는 것과 매우 흡사했다. 시장경제의 규율이 없으면 인간은 본능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만다. 무제한적인 식량공급과 성욕에 대한 추종은 필연적으로 인구과잉과 불행을 불러온다. 리카도는 바로 이런 퇴보, 자연에 대한 지배력 상실의 원인이자 상징이 바로 감자라고 확신. 인간에게 먹을 게 필요한 한, 인간은 결코 자연의 변화무쌍함으로부터 초연할수가 없다. 리카도는 밀처럼 홍수나 가뭄에 대비해서 저장할 수 있으며, 화폐와 바꾸어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는 주식에 의존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감자는 이런 대비를 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감자는 식품재료라는 원래 본성을 떠나 시장에서 매매되는 상품이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갤러허의 표현을 빌자면 선진적인 경제체제가 변덕스런 자연에서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과정을 지워버릴 수도 있는 위협적 존재가 되었다.
- 라운드업 레디 유전자가 불과 한세대만에 겨자과의 잡초로 옮겨갔고, 그 바람에 이 잡초는 제초제에 강한 내성을 띠게 되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이미 밝혀냄. 유전자를 조작한 사탕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식된 유전자는 다른 일반 유전자보다 종과 종 사이의 이동을 더 쉽게 한다는게 실험을 통해 밝혀짐.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이들 유전자가 떠돌이 기질이 강하며 종과 종 사이의 장벽을 뛰어넘는 점프력이 좋다는 점이다. 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유전자와 슈퍼잡초는 생물학적 오염이라는 새로운 환경문제를 제기함. 일부 환경론자들은, 농업에서의 강조점이 화학적 발전에서 생물학적 발전으로 이동함에 따라 생기는 결과는 불행한 유산으로 후대에 전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 아일랜드는 그때까지 그 누구도 해보지 않았떤 역사상 가장 큰 단일재배 실험장이었던 셈. 그리고 이 실험을 통해 단일재배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가장 설득력 있게 증명됨. 아일랜드의 농업과 식량은 철저히 감자에만 의지. 그것도 럼퍼라는 단일품종에 의존. 감자도 사과처럼 복제가 된다. 아일랜드에서 재배되던 모든 감자가 유전자적으로 동일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감자들은 우연히도 그리고 운이 나쁘게도 대기근을 몰고온 감자 역병에 아무 내성도 없었던 단일한 감자에게서 복제된 것이었다. 잉카 사람들 역시 감자를 기반으로 해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지만 이들은 여러 품종의 감자를 재배했기에 단 한종류의 곰팡이균 때문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을 일은 없었다. 사실, 감자기근이 일어난 뒤 아일랜드에서 그 감자역병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감자를 찾아간 곳도 남이였음. 그리고 마침내 가넷 칠레라는 감자를 찾아냈다.
- 단일재배는 자연의 논리가 경제의 논리와 충돌하는 지점이다. 어떤 논리가 이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영국의 지배를 받언 아일랜드였던지라 경제논리가 감자의 단일재배를 강요했다. 하지만 1845년에 자연의 논리가 거부권을 행사하자, 오로지 감자에만 의지해서 연명하던 사람들 가운데 1백만명이나 굶어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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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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