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배신

심리 2014. 10. 3. 11:52

 


믿음의 배신

저자
마이클 맥과이어 지음
출판사
페퍼민트 | 2014-06-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행동과학 및 정신의학의 권위자 맥과이어 교수가 18년간의 연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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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년 발표된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아는가에서 토머스 길로비치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잘못된 믿음들의 원인을 자세히 설명. 우리는 피상적인 특징이나 겉으로 보이는 유사성에 기반을 두어 사물을 평가하기 때문에 임의적인 데이터를 잘못 인식하고 해석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현상의 특정 부분만을 골라 인식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정보를 받아들임. 또한 자신이 발견한 모호하고 불완전한 사실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무시하면서 편향된 시각을 만들어감. 사실 우리는 믿음을 갖기 전에 어떤 의도를 갖고 자신이 믿을 것을 결정함. 자신의 의도대로 믿는 것에서 만족감이 들기 때문. 또한 자신의 편견대로 어떤 소문이나 근거없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임. 게다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 생각에 동의한다고 추측하면서 자신의 믿음이 사회적 지지를 받는다는 착각을 함. 길로비치 박사의 책이 나온 지 10년 후에 마이클 셔머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발표.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현실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것들을 믿는 25가지 이유를 서술.
* 머릿속의 생각이 사물의 관찰에 영향을 미친다.
*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실패를 합리화해버린다.
* 어떤 일이 일어난 다음에 그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만들어낸다.
*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고 속단을 내린다.
* 권위자에 대해 지나친 의존을 보인다
* 순환논법의 오류에 빠진다.
인간은 확신, 통제, 단순함에 대한 욕구를 갖게 마련임. 셔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이렇게 요약.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자신이 지닌 기존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애초에 별로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로 지니게 된 믿음이라고 해도 말이죠"
- '06년 토마스 키다는 생각의 오류에서 믿음이 지닌 여섯가지 기본적 오류를 소개
(1) 우리는 객관적 통계보다 어떤 이야기를 좋아한다
(2) 우리는 이미 지니고 있는 믿음과 추론이 옳다고 확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3) 우리는 어떤 사건을 해석할 때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4) 우리는 종종 세상을 잘못 인식하고 오해한다
(5) 우리는 사물이나 형상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다
(6) 우리의 기억체계는 불완전하다
- 같은 해에 코델리아 파인은 뇌마음대로를 발표. 이 책에는 뇌가 어떤 식으로 편향적 인식과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음.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 오만한 뇌-뇌는 멋대로 인식을 조작한다.
* 감정적인 뇌-뇌는 어떤 생각이 옳은지 감정적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 비도적적인 뇌-뇌는 도덕적 우월성을 유비하려 한다
* 고집불통의 뇌-뇌는 우리가 지닌 믿음을 충실히 지킨다
* 의지가 약한 뇌-뇌는 좋은 계획들을 떠올려도 막상 실행에는 잘 옮기지 못한다
* 편견이 심한 뇌-뇌는 자신의 편협함을 인식하지 못한다
* 착각하는 뇌-뇌는 사고과정에 온갖 편견을 밀어넣는다
- '11년 셔머는 믿음을 주제로 한 세번째 책인 믿음의 탄생을 발표. 이 책에서 그는 믿음의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 첫번째는 패턴성임. 뇌는 임의의 정보들 속에서도 어떤 패턴을 인식하도록 진화됨. 두번째는 행위자성. 뇌는 어떤 사건을 인식할 때 그것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적 행위가 원인이라고 봄. 세번째는 우리가 일단 어떤 믿음을 형성한 후에 그에 맞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는다는 사실. 유령, 정치, 종교, 도덕성, 외계생명체 등에 대한 믿음에는 셔머의 말이 대체로 맞을수도 있음. 객관적 증거에 앞서 어떤 믿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끔은 믿음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 하지만 셔머가 말한 특징은 일상의 믿음과는 좀 다를 수 있음. 일상에서는 먼저 어떤 증거를 획득한 후에 이를 설명해주는 믿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예를 들어 정원에 어떤 식물을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는다고 치자. 그러면 왜 식물이 자라지 않는지 그 원인을 관찰해보는 것이 보통임. 이런 경우에는 어떤 믿음부터 형성하지 않을 것임. 관찰결과 식물 옆에서 흙더미를 발견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 관찰을 기반으로 믿음을 형성하기 될 것이다. 바로 땅 다람쥐가 식물뿌리를 파먹어서 식물이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 '11년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을 발표. 그는 죄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두가지 시스템으로 분류. 첫번째 시스템은 직관으로 매우 빠르고 자동적인 무의식적 시스템. 이 시스템은 재빠른 판단을 내리며 이는 순간적 믿음과 행동으로 이어짐. 두번째 시스템은 속도가 훨씬 느린 분석적 시스템.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 추론을 하면서 첫번째 시스템에 의한 판단을 교정하는 역할을 함. 카너먼이 이 책에서 제시한 여러 예를 살펴보면 뇌가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결론을 쉽게 도출할 수 있음. 카너먼이 분류한 두가지 시스템은 뇌의 정보 처리 방식에 대해 대략적인 지도를 그려줌. 하지만 몇몇 저자들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꼭 두가지로 한정될 필요는 없다고 지적. 우리는 종종 빈약한 증거 혹은 의심할만한 정보를 기반으로 즉각적 판단을 내리고 믿음을 형성함. 하지만 논리적 생각을 통해 이런 성급한 판단을 수정하기도 함. 그런데 이 두가지 시스템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님. 이 두 시스템은 매우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 얽혀 있음.
- 최후의 심판일 같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믿음, 살아생전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벌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믿음, 사탄 같은 사악한 힘의 존재와 관련된 믿음은 기쁨과 보상의 이유로 선택하기보다는 인간의 뇌에서 발생하는 산물이라는 것. 인류는 세대마다 그만의 믿음을 창조해잼. 그중 일부는 문화속에 자리잡기도 함. 그런데 이러한 믿음들이 어떤 증거도 없이 만들어졌거나 모순적이라면 이미 비논리적으로 자리잡은 믿음을 논리로 반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렇게 모순적인 본성이 오히려 그 믿음이 쉽게 기억되도록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음. 어쨌든 고통, 두려움, 결핍보다는 기쁨과 보상을 선호하는 뇌의 편향성 때문에 이러한 믿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사라질 수 있음. 이 경우 믿음의 간격이 점점 넓어지고 진실에 대한 인식에 이르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수세기이 이를 정도로 길어질 수 있음.
- 믿음의 근원이 무엇이든 뇌는 하앙 믿음의 과정에 관여함. 이말은 믿음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의 산물이 아니라 뇌의 내부적 구조와 기본적으로 타고난 기능을 반영하여 생각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것.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타고난 뇌의 기본적 특성이며 믿음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그 믿음의 수용과 오랜 지속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 서로 다른 추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문화를 꼽을 수 있음.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사건을 해석할 때 하나의 중심적 대상을 정해 처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남. 예를 들어 같은 품종, 크기, 연식을 지닌 두 과일나무가 있는데 과일의 수확량은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면 그 차이를 대상으로 정해서 원인을 추론한다는 것. 반면 동아시아인들은 지각적이고 개념적 분야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음. 또한 통념적인 유사성이 아닌 가족적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집단에 더욱 주의를 기울임. 북미인들은 또 어떨까? 북미인들은 어떤 그룹에 속한 사람의 감정을 파아갛려고 할 때 주로 그 사람에 대해 집중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그 그룹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 종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남. 예를 들어 칼뱅주의자들은 개인의 도덕적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들은 전반적인 사회적 단합을 중시하는 카톨릭이나 유대인에 비해 지역적 특성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남. 이렇게 다양한 요인이 사건에 대한 해것에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이 같은 증거를 보고도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님
-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생각을 뒷받침하고 지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끌어 모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받아들인 생각과 반대되는 중요한 사례들이 더 많이 발견된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경멸을 보내거나, 한쪽으로 치워버리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이미 내린 결론의 권위가 이러한 치명적인 것들로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이 4세기반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 과학적 방법론의 시초는 코페르니쿠스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는 1550년 태양계에서 지구를 비롯한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을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설명. 인간의 유구한 역사에서 현대적 방법론이 왜 이렇게 늦게 등장했는지는 흥미로운 질문임. 바빌론 시대에도 매우 유능한 과학자들이 많았으며 그 훨씬 이전에도 아마 많았을 것임. 하지만 역사상 이렇게 늦게 방법론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1550년 이전에 과학자들이 이용했던 작업방식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음. 당시 과학자들은 자신이 가진 정보를 이용하여 독창적인 방식으로 추론을 했지만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거나 많은 사람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법론을 통해 자신의 설명이나 증거를 체계적으로 평가하지는 못했음. 특히 의사과학을 믿는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많이 보임. 그러다가 16세기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 과학계는 방법론 그리고 연구전략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임. 과거에는 자기생각과 가설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과학적방법을 통해 그것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쪽으로 변화가 시작. 자기 생각을 증명하는 것에서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은 그저 단어 하나의 차이로 하찮은 변화처럼 보일수도 있음. 하지만 이는 중요한 영향력을 지닌 것이었음. 실증적 연구에 대한 방법과 평가는 느리지만 커다란 변화를 겪으려 하고 있었음. 경험과학은 증거 및 표준화된 연구방법에 대한 정밀한 법칙과 절차를 받아들이게 되었음. 또한 과학 및 과학적 설명에 대한 건강한 의구심을 제기살 수 있게 됨. 증거는 정확하게 묘사되고 측정되어야 했음. 증거를 설명하는 해석은 되도록 정확하고 자세해야 했음. 믿음과 증거사이의 간극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복적 실험을 통해 자신이 지닌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얻어야 했음. 이러한 방법론은 과학적 연구의 근본적 한계점을 인식하는 것이었음. 즉 어떤 것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전략을 채택한다는 것은 어떤 것도 확실히 증명될 수 없다는 시각을 갖게 된 것. 그리고 이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짐. 과학 및 과학자들은 대중들 사이에서 새로운 권위를 획득했음. 과학적 증거, 방법론, 해석은 이르르 지지하는 사람들은 물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새로운 평가방법으로 받아들여짐. 하지만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꼭 보편적으로 좋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님. 20세기와 21세기로 넘어오면 과학자, 철학가, 역사학자, 포스트모더니즘을 믿는 사람들이 과학적 방법론과 추론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비판하게 되면서 최적성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됨. 물리학자 겸 역사학자 토머스 쿤은 이에 대해 가장 영향력 있는 시각을 선보임. 그는 틀렸음을 입증하는 방법론이 과장된 이상주의적 방법일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조차 연구과정에서 종종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음. 다른 과학자들도 그와 유사한 시각을 주장했음. 화학과 물리학처럼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분야에는 이 틀린 것을 입증하는 전략이 옳은 방법이자 최적의 방식일 수 있음. 하지만 다른 과학분야를 탐구할 때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음.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정신의학 등의 분야에는 실험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음. 그 이유는 다양함. 예를 들어 환청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환청의 내용, 빈도, 환청과 행동과의 관계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환청이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인가? 또한 인간은 과거를 정확하게 재연할 수 없다는 점도 이유로 작용함. 이 말은 고고학 그리고 역사가 증거만이 아닌 정교한 추론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
- 모호함과 불확실성은 스트레스를 주고, 뇌의 화학적 변화를 가져오며, 신체상태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대신 믿음을 형성하면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고, 더 중요한 뇌의 임무를 위해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는 것임.
- 신경학자 로버트 버턴이 08년 발표한 확신의 요약. 이책의 중심 메시지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느낌, 옳다는 느낌, 신념, 확실하다는 느낌이 어떤 신중한 사고에서 나온 결론이나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점. 이는 그냥 우리에게 일어나는 정신적 느낌일 뿐이다. 효율적이고 강력한 보상심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느낌들, 예를 들어 자신이 알고 있다는 느낌과 신념은 반드시 의식적이고 신중한 사고를 거친 결론이라는 느낌이 나야 한다. 그 결과 뇌는 사고라고 느껴지는 정신적 감각의 집합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사고가 아니다.
-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상상을 하는 것은 감정과 인시상태에 대한 생물학적 차이 때문일수도 있음. 예를 들어 뇌에서 도파민 활동수준이 높은 사람은 상호관계에서 의미를 찾고 인과관계를 유추하는 것이 더 자주 나타나는 것을 밝혀짐. 뇌 화학물질 세로토닌의 수준이 높은 사람은 낙관적인 전망을 하며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실망이나 개인적 차이를 더 잘 참아내는 것으로 밝혀짐. 감각을 추구하고 충동적인 성격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짐. 최근의 연구에서는 개인의 유전자 이상 및 도파민 활동과 이러한 행동들을 연관시키기도 했음. 즉 아주 위험한 행동을 재미있는 것으로 인식하거나 규범에서 벗어난 이상한 시각으로 인과관계 및 세상을 인식하는 등 자신만의 잘못된 상상의 결과로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이런 실험도 있음. 두 사람이 같은 사건을 볼 때 fMRI로 뇌 활동을 살펴보면 둘이 유사하게 나타남.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영화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말할 때는 서로 매우 다른 뇌 활동양상을 보임. 이런 결과는 어떤 경험을 해석하는 공통된 방식이 없다는 것, 각자의 해서이 저마다 다르다는 원칙이 상상에 대해서도 적용된다는 의미
- 초기 인류에게는 지금의 인류보다는 개개인의 정보처리능력에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났을 가능성이 큼. 또한 상상이 믿음으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더 큼. 이는 자신의 상상이 틀렸음을 입증해줄 수 있는 경험이나 간접적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 이런 정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간극을 좁히는 강력한 성햐잉 나타났을 것임
- 먼 과거 초기인류는 오늘날의 인류처럼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선호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됨. 대개 우리는 확실하고 명확하고 예측가능한 것을 선호. 불확실성과 모호함은 특정 뇌 화학물질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음. 또한 fMRI로 뇌를 관찰해본 결과 모호함을 느낄 때 뇌의 20군데가 넘는 영역이 활성화 됨. 예를 들어 뇌에서 감정을 관리하는 영역인 편도체는 결과가 불확실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활성화됨. 그 행동을 해도 될지, 간극이 모호해지는 것임. 그런데 이러한 위험성을 무시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음. 왜일까? 뇌가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음. 뇌는 불쾌한 생리학적 영향을 관리하는 그만의 비법을 갖고 있음. 뇌가 그만의 독립된 계획으로 주인의 의도나 의식과는 상관없는 일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뇌가 좋아하는 비법의 하나가 바로 믿음을 발전시키고 간극을 줄이는 방식을 통해 불쾌한 느낌을 줄이는 것이다. 이 방법은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줄여주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래서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아기에 대한 걱정과 불확실성을 버리고 아이가 건강하고 똑똑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로 자랄 것을 믿어버림. 또한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주치의가 최고이고 그의 치료법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버림.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바람직한 생리학적 변화로 이어짐
- 사람들이 감정과 인식을 부여한 믿음은 변화에 대한 저항을 기본값으로 가짐. 비타협적 믿음이 바로 이러한 특징을 지님. 이런 믿음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매우 확신하게 됨. 모호함과 불확실성은 매우 줄어들고 생리학적, 심리학적으로 유쾌한 상태가 나타남. 일단 이런 믿음이 자리 잡으면 뇌의 에너지 사용량은 최소한으로 줄어듬. 또한 믿음의 간극은 좁다. 이러한 믿음을 품은 사람은 강한 확신으로 이를 주장하며 이를 증명할 증거나 권위가 있다고 말함. 또한 자신의 믿음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믿음 및 증거에 부정적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무시하거나 거부함. 비타협적인 믿음의 특징은 이러한 대안적 믿음과 증거를 반박하는 동시에 이를 제시하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를 믿음보존편향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믿음을 반박하는 확실한 증거나 다른 믿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기존의 믿음을 고수하는 것을 말함. 예를 들어 정치적 이념이 여기에 해당.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 지닌 타당성과 가치를 확신하는 반면 다른 관점은 틀렸다고 믿음. 또한 종교적인 믿음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가짐. 다른 믿음을 지닌 사람은 무지몽매하거나 진실을 외면하는 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 요약
* 우리는 선천적으로 믿음을 지니도록 태어났다
* 뇌는 믿음을 지닐 준비가 되어있다
*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과대평가한다
* 믿음이라는 것은 기쁨과 보상, 자신이 옳다는 생각과 관련있다
* 뇌는 간극을 줄이려는 사상을 지닌다
* 뇌는 믿음의 발전과 영구보존을 용이하게 하는 수많은 시스템으로 구서오디어 있다
* 간극만으로 믿음의 강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 자신이 믿는대로 본다
* 감정에 따라 무엇을 믿을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 믿음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 믿음은 뇌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준다
* 다시말해 우리는 믿음을 생성하고 그 믿음을 어떻게든 지키려 하는 성향을 타고 났으며, 이 성향이 의식보다 한발 앞서는 것이다
- 철학가 니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인은 지식에 대한 갈망없이 지식을 취한다" 이 말은 현대인이 열정, 필요성, 분석없이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의미. 그리고 이는 현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의 특징임. 99년 작가 프레이저는 '시간을 압축한 현재'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이 말은 현재, 즉 지금 이순간이 생각과 감정의 지배적 중심이 된다는 것. 지금 이순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과거로부터의 소중한 교훈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라지고 끝없는 선택에 대한 상상으로 대체됨.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가 인지적 그리고 감정적으로 현재와 분리되는 것임. 결국 과거와 미래에 기초하는 이야기와 모델들은 그 타당성을 잃게 됨. 어제 어떤 일이 일어났어도 그 일이 오늘 혹은 내일 또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뇌 읽기와 속성 부여하기 등을 통해 지금 이순간과 여기를 과도하게 중시함. 이렇게 현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지혜를 거부하고 이제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무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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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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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의 심리학

심리 2014. 10. 3. 11:51

 


의사결정의 심리학

저자
하영원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2-10-1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당신이 내린 결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오류 없이 선택하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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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화 용이성의 극대화 : 사람들은 자기가 내린 의사결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받거나 아니면 스스로 평가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음. 따라서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내린 판단이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 원한다
-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결과에 맞춰서 자신의 판단내용을 사후에 왜곡하는 경향이 있음. 사후판단편향이 사람들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중요한 장애가 되는 이유는 자신의 판단능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고, 그 결과 자신의 판단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학습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데 있음. 따라서 우리의 판단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의 결과를 알기전 자신의 판단을 확률의 형태로 기록해 놓고, 결과를 알게 된 다음 자신이 그 당시로 되돌아갔을 때 어떤 판단을 했을까 음미해보는 습관이 필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판단이 왜, 그리고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우리의 판단능력을 개선할 수 있음.
- 니스벳과 윌슨은 사람들이 (1) 자신의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친 자극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2) 자신의 반응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도 많으며, (3) 자극의 존재와 반응을 인식할 때도 종종 그 자극이 자신의 반응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음. 예컨대 니스벳과 윌슨은 쇼핑몰의 소비자 설문조사를 가장한 실험에서 52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4개의 같은 나일론 스타킹 중에서 가장 품지링 좋은 스타킹 하나를 고르도록 했음. (물론 소비자들은 4개의 스타킹이 같은 스타킹이라는 걸 모름) 그 결과, 소비자들은 가장 오른쪽에 있는 스타킹을 가장 왼쪽에 있는 스타킹보다 약 4배 더 많이 선택. 전형적인 위치효과가 나타난 것. 소비자에게 왜 그 스타킹을 골랐는지 물어보자, 그 이유로 상품의 위치를 언급한 소비자는 없었음. 더구나 직접 소비자에게 상품의 위치가 선택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냐?고 질문했을 때 아무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음. 오히려 많은 응답자는 그런 질문을 하는 조사원을 거의 미친 사람취급을 하면서 걱정스럽다는 눈초리로 바라봄. 이처럼 분명히 상품의 위치가 소비자들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상품이 놓인 위치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음
-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주변의 사물이나 사진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여주어씀. 한걸음 더 나아가 차트랜드, 휴버, 쉬브와 태너는 환경에 의해 특정 개념뿐 아니라 목표 또한 비의식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으며, 이렇게 한번 활성화된 목표는 개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하는 결과가 달성될 때까지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음.
-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자기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같은 일반적 믿음과는 대조적으로 사람들은 판단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직접적인 정신적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가 매우 흔함.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반응을 촉발한 자극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거나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때도 있고, 자신이 어떤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있으며 특정 자극과 자신의 반응이 관련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일도 있음. 더구나 사람들은 의식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자극에 반응하는 때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의식의 영역에 떠오르지 않는 자극 때문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기 행동의 지침이 되는 목표를 설정하기도 함. 이런 모든 것들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어떤 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이르는 심리과정을 알고 싶은 경우,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방법으로는 진실을 파악하는 데 심각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함. 결국, 직접적인 정신적 접근이 가능한 영역을 제외한 비의식적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판단이나 의사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하는 직접적인 자기보고식 설문조사 방법 외에도 비언어적인 방법을 통한 조사나 뇌과학에서 사용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을 같이 사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 또한, 우리가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반응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사람들의 의식세계에 포함되는 자극과 반응의 관계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비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는 심리과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맥락적 자극들을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임
- 레델마이어, 카츠와 카너먼은 내시경 검사를 받는 환자 682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찬물에 손을 집어넣는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고통의 강도를 비교적 약하게 해서 검사시간을 약 1분간 일부러 늘릴 때 그 같은 고통이 없는 경우보다 총체적인 평가가 향상된다는 것을 발견. 이 같은 결과는 소음을 평가하는 실험에서도 똑같이 나타났음. 즉, 강도가 낮은 소음을 추가하는 것은 분명 소음이 없는 것보다는 더 괴로운 경험이다. 따라서 원래 소음을 듣는 시간에 그보다 시간을 좀더 늘려 낮은 강도의 소음을 추가하면 전체적으로는 원래 소음만 듣고 끝날 때에 비해 더 혐오스러운 경험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사람들은 작은 소음을 추가한 조건에서 그들이 들었던 소음을 종합적으로 덜 혐오스럽게 느꼈으며, 기억된 총체적 경험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더 개선됐음. 카너먼과 동료들은 이 같은 현상을 추가적 지속시간 효과(additional duration effect)라고 명명. 이런 결과는 고통스런 경험에 대한 기억을 개선하기 위해서 고통의 지속시간이 늘어나더라도 강도가 약한 고통의 순간을 원래 고통에 일부러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줌. PE법칙과 지속시간의 무시로 요약할 수 있는 현상을 카너먼은 다음과 같이 설명. 즉, 사람들은 과거의 고통스럽거나 즐거운 사건을 머릿속에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표상을 통해 각인하며, 그러한 기억의 내용은 보통 스냅샷 또는 전형적인 순간들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람들은 에피소드의 전형적 순간에 의해 어떤 에피소드를 표상하고 그것의 지속시간에 대한 정보는 분리해서 저장한다고 가정할 수 있음. 또한, 이 연구들은 정점과 마무리 근처에서 경험한 감정이나 효용이 대표적 순간의 감정적 가치로 나타나며, 대체로 이런 대표적 순간에 경험한 감정적 가치가 전체 에피소드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였음
- 사람들의 즐거웠거나 아팠던 기억은 매우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순간에 일어난 일들(특히, 정점과 마무리의 순간에 있었던 감정)에 의해 좌우됨. 아마도 우리가 기억하는 자신의 과거는 우리가 그 당시에 느꼈던 고통이나 즐거움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로 우리 머릿속에 입력된 것으로 보임. 사람들이 과거에 자신에게 고통이나 즐거움을 주었던 대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 기억이 그 대상과 관련된 현재나 미래의 판단과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 많은 사람은 매우 즐거웠던 경험과 고달팠던 경험이 혼재된 유럽여행을 끝낸 뒤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유럽 여행을 가고 싶어 함. 그 여행에서 특히 인상에 남을 정도로 즐거웠던 경험이 있었거나 여행의 마무리에서 즐거운 경험을 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유럽여행을 가고 싶어 할 것임
- 인생에는 두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우리 마음속에 욕망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하나는 그것을 갖게 되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 의사결정 당시에는 매우 중요해 보이지만 실제 경험해보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속성에 연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예를 들면, 결혼 적령기에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많이 조언하는 중의 하나는 막상 결혼생활을 해보면 배우자의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일 것임. 그러나 정작 배우자를 선택하는 당사자는 외모에 많은 가중치를 두고 후보들을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음. 이는 의사결정 당시에는 성격 등의 요소가 미래의 나에게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지 평가하기가 어렵지만, 외모는 비교적 쉽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임. 그렇다면 대부분의 의사결정자가 자신의 미래에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줄 대안을 선택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의사결정 상의 편향성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음
- 이스털린의 역설이란 여러 세대에 걸친 실질소득의 증가가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 이 발견은 종종 쾌락적 적응으로 설명됨. 즉, 사람들은 그들을 둘러싼 외부환경이 바뀔 경우, 처음에는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변화에 둔감해진다는 것. 예를 들면, 사람들은 승용차가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처음으로 승용차를 사면 처음에는 큰 기쁨을 맛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에 적응하게 되어 더는 그것이 기쁨의 원천이 되지는 않음. 마찬가지로 2010년대에 우리나라에 사는 국민 1인당 연평균 소득이 2만 5000불이라고 할 때, 90년대 연평균 소득이 1만불이었던 전 세대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수는 없다는 의미
- 만일 어떤 소비자가 무슨 이유에서건 간에 세탁세제 중에서 비트의 세척력이 가장 좋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비트가 실제로도 만족할만한 세척력을 갖고 있는 제품이라면 그 소비자는 아마도 반복적으로 비트라는 브랜드를 구매할 것이다. 그 소비자에게 혹시 비트말고 다른 브랜드를 사용해도 똑같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한 그는 계속 비트를 구매할 것이도, 구매결과 얻게 되는 만족감으로 역시 비트가 최고라는 자기의 믿음에 점점 자신감이 더해질 가능성이 큼. 특히 소비자들의 소비생활 목표는 시장에서 판매되는 여러 브랜드의 품질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제품의 소비를 통해 만족을 얻으려는 것이 보통임. 따라서 굳이 아직 사용해보지 않은 브랜드를 단순히 자신의 믿음을 검증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매하려 하지는 않을 것임. 따라서 테크나 스파크같은 브랜드가 비트와 같거나 심지어 우월한 품질을 갖고 있을 때에도 그 소비자는 비트를 고집할 것임.
- 사람들이 어떤 가설이나 의견을 갖고 있을 때, 그 가설에 맞는 예를 활용해 그것을 검증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임. 그러나 그 같은 경향이 반드시 자신의 가설을 확인하고자 하는 동기에 기인하는 것은 아님. 그럼에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념이나 가설이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은 다음 두가지 일 것임
(1) 자기성취적 예언처럼 어떤 판단에 근거한 행동이 수반되는 경우, 그 행동 때문에 기존신념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유효하다는 것을 더 강하게 믿음
(2)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모호한 정보를 해석할 때 그 정보를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음
- 시장에 Y라는 제품이 이미 나와 있다고 하자. 어떤 기업이 라면 시장에서 Y와 경쟁하기 위해 X라는 신제품을 출시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만일 X가 Y보다 전체적 효용이 더 우월하다고 판단된다면 X로서는 Y와 정면대결을 통해 X는 Y와 유사하지만, Y가 제공하는 는 효용은 X가 제공하는 효용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이 유리함. 이와는 대조적으로 X의 전체적 효용이 Y의 전체적 효용보다 낮다고 판단된다면 X는 기존 제품 Y와 다른 점을 강조해서 소비자들에게 비교하기 어렵게 만드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유리. 사실 X로 이미 제품 디자인이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의 X에 대한 지각은 상당 부분 광고 등의 촉진 전략에 의해 좌우되므로 X의 독특한 속성을 강조함으로써 소비자들이 X와 Y의 직접 비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효과적인 포지셔닝 전략의 방향일 것임
- 사이먼슨과 트버스키는 여러 실험을 통해 유인효과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입증.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실험에 참가한 답례로 크로스펜과 6달러의 현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는데 참가자의 64%는 6달러를, 36%는 크로스펜을 선택. 그러나 다른 실험 참가자들에게 크로스펜과 크로스펜과 열등한 것을 인식되는 제브라펜, 그리고 6달러의 현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을 때는 크로스펜을 선택한 비유리 46%로 늘어나고, 현금을 선택한 비율은 54%로 줄어듬. 이렇듯 열등한 대안이 추가되었을 때 크로스펜을 선택한 비율이 36%에서 46%로 증가한 것은 열등한 대안이 크로스펜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
-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목표는 단지 꿈일 뿐이다. (밀턴 에릭슨)
- 해석수준 이론에 의하면 시간적 거리가 커짐에 따라 바람직성에 관련된 정보가 중요해지는 반면, 실행가능성에 관련된 정보의 중요성은 감소함. 시간에 따라 바람직성과 실행가능성 사이의 중요성이 변화하기 때문에 시간적 맥락에 따라 사람들의 선호도가 일치하지 않음. 먼 미래를 위해서는 실행 가능성이 높은 대안보다는 바람직성이 높은 대안을 선호하고, 가까운 미래를 위해서는 반대로 실행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바람직한 대안보다 선호
- 프로세스 시뮬레이션이란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각 단계의 프로세스를 사람들에게 상상하게 하는 것. 대조적으로 결과 시물레이션은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얻게 되는 바람직한 결과에 대해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경우. 여러 연구에서 사람들이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춰 시뮬레이션한 경우, 결과에 초점을 맞춰 시뮬레이션하도록 한 사람들보다 일반적으로 성과가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남. 예를 들면, 팜과 테일러는 시험공부를 할 때 시험에서 A학점을 받는 것 자체를 상상해 시각화한 시뮬레이션을 했던 사람들보다 시험에서 A학점 취득방법을 시각화한 프로세스를 시뮬레이션했던 사람들이 중간고사를 위해 공부시간을 더 많이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평균적으로 더 높은 학점을 받았음.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평가할 때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두는 경향을 보임. 부정성 편향은 보통 다음 네가지 형태로 나타남
(1) 부정적 요소는 동등한 가치를 갖는 긍정적 요소보다 강력함
(2) 사람들이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부정적 사건에 접근할 때 부정성이 증가하는 정도는 긍정적 사건에 접근할 때 긍정성이 증가하는 정도보다 크다
(3)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을 때, 단순히 각각 요소의 개벌적 평가를 더한 절댓값보다 부정적인 쪽으로 평가가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4) 부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에 비해 더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고 더 복잡한 개념적 표상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 사람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할 때, 긍정적 정보와 부정적 정보, 그리고 중립적 정보를 접하게 됨. 사람드은 인지적인 한계 때문에 모든 정보를 같은 정도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적 자원을 우선순위가 높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임. 만약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더 강하다면, 나쁜 사건과 관련된 정보는 좋은 사건과 관련된 정보보다 더 정밀하게 처리될 것임. 더 정밀한 정보처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은 부정적 정보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정보를 더 세밀하게 정교화하거나 더 광범위한 인지적 해석을 함.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발생한 사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을 찾는 과정인 귀인과정은 이러한 의미를 찾는 노력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음. 귀인과정에서 사람들은 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는 원인을 찾으려 할 수도 있고, 사건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리거나 사건을 재구성할 수도 있음. 몇몇 연구결과들은 사람들이 긍정적 사건보다 부정적 사건의 의미를 찾을 때 더 많은 탐색을 하며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기울인다는 증거를 제시. 바우마이스터는 다양한 연구의 검토를 통해서 사람들이 즐거운 사건보다 불유쾌한 사건의 의미를 더 많이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결론을 얻음
- 경험하는 자아가 느끼는 순간의 감정과 기억하는 자아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은 상당히 상관관계가 높은 것이 보통. 그러나 두 자아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 기억하는 나는 경험하는 나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안정적이면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음.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서 기억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같은 우리의 삶에 대한 여러가지 판단들은 경험하는 자아가 아닌 기억하는 자아의 시각에서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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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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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본능

사회 2014. 10. 3. 11:51

 


사회학 본능

저자
랜들 콜린스 지음
출판사
알마 | 2014-05-0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계 사회학의 명저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책 사회학적 사고의...
가격비교

- 불화와 갈등의 존재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합리성의 힘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자체로는 대단히 합리적인 여러 정책이 입안자들조차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게 될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증명할 수도 있을 것임. 예를 들어 관료제도는 대단히 합리적인 조직으로 설계되었음. 합리적 계획과 회계야말로 조직을 관료적으로 만드는 요소임. 전문가들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계획을 짜고, 모든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처리되도록 규정과 절차가 만들어짐. 그리고 모든 일을 세심하게 설명하기 위해 기록이 작성됨.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서류작업이 때로 일을 지루하게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규정과 규제가 전적으로 부적절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함. 그래서 최대효율을 위해 설계된 관료제가 오히려 비효율로 악명이 높음. 많은 사회학자들이 바로 이점에 초점을 맞췄음. 관료제도란 기록 작성 전문가들이 합리적 계산을 이용하는 조직이라는 이론을 만든 막스 베버 역시 합리성이 서로 반대되는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음을 깨달았음. 기능합리성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냉정하게 계산하는 절차를 따르는 것을 말함.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합리성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임. 하지만 기능합리성은 오로지 목적을 위한 수단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반면 실질합리성은 목적자체를 고려함. 이 점을 상세히 설명한 사람은 1920년에 베버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몇년 디에 글을 내놓은 카를 만하임이었음. 그는 기능적으로 합리적인 절차가 실질적으로 비합리적인 결가를 낳을 수 있다고 보았음. 관료제도는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은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수단에만 관심을 쏟음. 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걱정해야 할 일임. 관료제를 상대하는 사람들이 때로 심한 분통을 터뜨리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임. 전문가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은 모두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함. 관료제를 향해 불평을 해봤자 통하지 않는 것은 바로 관료들이 너무나 쉽사리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 때문. 그런데 이것은 관료제도에 관여하는 개인의 잘못이 아님. 조지그이 합리성 자체로 인해 관료들이 조직의 전체적인 목적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임.
-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고대와 중세에 경제적 생산성을 높일 자원이 부족했던 것은 아님. 또한 중세 중국이나 이탈리아 또는 고대 그리스의 상인들이 상대에 대한 의심을 조금 풀고 기꺼이 장기적인 계약을 맺으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만큼 합리성이 떨어졌다고 말할수도 없음. 우리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들은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합리적이었음. 그들은 단기적 수지타산뿐 아니라 장기적인 득실도 고려했음. 만약 현대 미국인이 어느날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 위의 내용을 읊어댄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자기들이 상대를 의심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훨씬 더 많은 돈을 잃게 될 것이라고 대답할 것임. 그리고 이것이 당시에는 옳은 생각이었음. 중요한 것은 현대의 계약사회가 도래한 방식이 정확히 뒤르켐의 예언과 일치했다는 점. 현대사회가 가능해지는 데는 신뢰라는 새로운 유대관계가 필요했음. 자본주의의 등장은 확실히 의심이 가득했던 중세의 거래방식으로부터 변화를 의미했음. 사업가들은 많은 거래를 통해 느리지만 꾸준하게 적은 이윤을 거듭 축적하는 방식을 강조하기 시작. 이는 계약조건을 지키겠다는 뜻이었음. 중세상인들은 수상쩍은 흥정과 단발성 거래 때신 장기계약이 등장. 대량생산이 실용성을 띠게 된 것도 바로 이 덕분이었음. 물건을 팔 길이 없다면 기계를 돌려서 대량의 물건을 만들어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산업기술 덕분에 현대경제가 가능해진 것이 아니라 이런 거래방식의 변화덕분에 산업혁명이라는 기술발전이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음.
- 마르크스의 계급갈등이론도 어떤 의미에서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가 가장 관심을 쏟는 문제는 민중, 특히 노동계급이 효과적으로 힘을 쟁취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것. 대개 이 문제는 계급의식을 만들어내는 문제, 즉 각각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인식하게 만드는 문제로 묘사됨. 하지만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음. 사람들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는 두 집단에 맞춰 자동적으로 유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순전히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으로 행동함. 예를 들어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기업들이 결코 동맹이 되지 않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같은 직장이나 승진을 놓고 경쟁할 때는 하나로 힘을 합치지 못함
- 사회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종교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를 좋아하는 태도와 싫어하는 태도가 아님. 이 두가지 외에 세번째 선택지가 존재. 뒤르켐은 종교에 관한 뻔하지 않은 이론을 만들어 냈는데, 거기서 종교의 핵심요소는 믿음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수행하는 사회적 의례임. 종교는 사회적 유대감의 열쇠이며 종교적 믿음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은 아니라 사회집단의 상징으로서 중요함. 따라서 종교는 비합리적인 현상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최고의 사례로서 사회학적 의미를 가짐
-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다음 두가지임. 모든 신도가 공유하는 믿음과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수행하는 의례. 종교는 기본적으로 세상이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두가지로 나뉘어 있다고 믿음. 신성한 것은 정령, 눈에 보이지 않는 신, 특정한 동물이나 나무, 제단, 십자가, 경전, 믿음에 입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등 다양함. 신성한 것의 뚜렷한 특징은 그것이 위험한 동시에 최고로 중요하다는 점. 우리가 그것에 접근할 때는 진지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며 정해진 준비과정을 거쳐야 함. 반면, 세속적인 것은 신성한 것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함. 우리가 기분내키는 대로 자신이 보기에 유용하거나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평범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이 모든 것임. 이처럼 세상을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양분하는 것이 종교의 기본 믿음. 이와 함께 종교의 기본행동, 즉 의례가 이루어진다. 의례는 평범한 행동과는 다름. 거리를 걷거나 일을 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등 평범하고 실용적 행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음. 일단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담녀 그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든 달라질 것이 없음. 반면 의례는 아주 엄격하게 정해진 행동임. 의례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임. 기도, 찬송가, 원시적 희생제, 춤, 행렬, 우상 앞에 무릎 꿇기, 성호 긋기 등은 반드시 올바른 방식으로 행해져야 함. 의례는 실용적인 행동과 달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님. 따라서 목적을 이룰수만 있다면 그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든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음. 의례의 형식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 의례는 올바르게 수행되었을 때만 의미가 있으며 방식이 틀렸을 때는 아무런 가치도 없음. 이처럼 종교를 구성하는 믿음과 의례는 서로 연관되어 있음. 의례는 사람들이 신성하다고 믿는 것 앞에서 반드시 행해야 하는 절차임. 이 두가지와 정반대인 또 다른 두가지도 짝을 이룸. 의례가 아닌 평범한 행동은 세속적 환경에서 이뤄지는 우리의 행위임. 앞으로 보겠지만 뒤르켐은 믿음보다 의례를 우선시. 어떤 의미에서 의례의 올바른 수행이 신성한 것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다는 것.
- 사회는 우리 바깥에도 있고 우리 의식의 핵심에도 있음. 종교의 상징체계가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 종교의 상징은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을 표현함. 그래서 종교적 상징체계에는 사회적 의무뿐 아니라 인간의 정체감에 대한 관념들이 통합되어 있으며,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나 영적인 존재뿐 아니라 영혼이라는 관념도 존재. 종교가 사회의 중요한 현실적 측면들을 상징화하기 때문에 그 상징체계 속에 항상 사회적 갈등의 여지를 마련해둘 수밖에 없었음. 사회는 결코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는 법이 없으므로 종교는 항상 경쟁관계인 다른 신들, 이교도, 악령, 악마 등의 존재를 말할 수 밖에 없음. 종교의 상징체계는 사회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음.
- 정치와 종교는 뿌리가 같음. 특히 종교지도자나 정치웅변가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에서 커다란 개인적 에너지를 얻는 경향이 있음. 군중의 관심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고 청중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지도자는 특별한 에너지를 가득 받아들일 수 있음. 집단이 충분히 흥분하면 지도자도 영감을 얻어 평범한 수준을 뛰어넘음. 그래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유명인사, 영웅은 물로 심지어 신성한 인물까지 될 수 있음. 이런 변화를 일궈내는 에너지의 원천은 지도자가 아님. 집단의 에너지가 군중 속을 돌아다니며 더욱 힘을 얻은 뒤, 군중을 대변하며 군중에게 말을 거는 지도자의 손에 의해 한곳으로 집중되는 것이다. 지도자는 집단에너지가 흐르는 채널이며, 바로 그 점때문에 군중속의 개인들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는 듯함. 하지만 지도자가 지닌 힘의 비결은 바로 집단 그 자체임. 청중이 예언자를 만들고 사회운동이 지도자를 만듬
- 수렵채집부족에서부터 위대한 세계제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사회들을 돌아보면 각각의 사회에서 잉태된 신들의 유형이 사회의 크기나 구조에 상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신은 일반적인 의미뿐 아니라 세부적인 면에서도 사회를 대변함. 각각의 사회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유형의 신이 있음. 그렇다면 역사적 의문이 하나 생김. 종교와 사회 중 어느쪽이 먼저 변하는 걸까? 종교가 사회변화를 야기하는걸까, 아니면 그 반대인걸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모든 사회들의 경우 어느쪽이 답이었는지 증명해보려고 시도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음. 하지만 역사속의 특정한 변화에 대해 주장을 내놓은 사람은 있었음. 뒤르켐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베버는 현대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등장은 종교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음. 초기 저작에서 그는 특히 개신교의 특정종파(칼뱅주의)의 등장을 지적. 그리고 다른 글에서는 현대사회의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이 모두 기독교와 고대 유재교의 특징에서 자라 나왔다고 설명. 다른 사회학자들은 이 가설의 인과관계를 뒤집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종교가 지배계급의 권력과 그 기반이 된 재산권을 강화해주는 사회구조속에서 자라나온 이념이라고 주장.
- 현대의 자아는 때에 따라 아주 복잡해질 수 있음. 고프먼은 층마다 그 안에 다양한 층들, 즉 사람들이 공유하는 다양한 형태의 겉치장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겉치장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노력이 필요. 고프먼은 후기에 이르러 사용한 은유법을 통해 이것을 일련의 사진액자와 같다고 비유. 그의 비유에 따르면 이미 존재하는 액자들 주위에 언제나 또다른 액자를 배치하는 것이 가능. 그렇다면 자연스레 생기는 의문이 있음. 이 모든 층들 뒤에 최종적인 자아가 존재하는가? 만약 모든 종류의 겉치장을 계속 벗겨낸다면 개인의 의식 중에서도 고갱이, 모든 꼭두각시 인형들을 조종하는 인형사에게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임. 하지만 고프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 그가 묘사한 사회적 자아들 중 어느것도 협력적인 사회적 상호작용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음. 사실 우리 각자가 내면에 이 모든 층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한 사회 덕분. 우리의 내면이 이토록 복잡성을 띠게 된 것은 우리가 다양한 집단상황들 속에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자, 각각의 상황들마다 이상적 자라를 제시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기 때문. 간단히 말해 우리는 결코 핵심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내면의 층들을 무한히 늘려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임. 이 층들은 밖에서부터 덧붙여지며 우리 의식의 내면에 반영됨. 사람이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하나씩 늘아날 때마다 자아도 한층 더 생겨남. 전(pre)사회적 자아는 존재하지 않음. 고독한 개인의 자아는 오로지 복잡한 형태의 사회가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이 결론이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종교가 사회에 의해 창조된다는 것, 개인주의는 현저히 현대적인 특징을 지닌 종교의 새로운 형태임을 이미 보았으니까 말이다. 다른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생활이라는 무대 뒤를 우리에게 허락해주고, 타인들과 대화할 때 자신의 행동을 이상화할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현대사회의 구조다. 개인이 내면에 자기만의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관념은 이처럼 현저히 현대적인 특징을 지닌 상호작용 패턴에서 나옴. 사회적 의례를 통해 창조된 성물이 그렇듯이 현대적 자아도 일종의 신화다. 겉으로는 자율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척하지만 실제는 그런것과 거리가 멀다. 이것 역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신화적 상징 밑에 사회라는 똑같은 현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주관적인 자아라는 관념으로 스스로를 상징화하는 것은, 복잡한 분업이 이뤄지는 가운데도 우리가 여전히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 교회처럼 대단히 전통적인 조직은 이제 경제에서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조직이 자기만의 의례를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 예를 들어 장교들은 사관생도 시절의 의례들과 군대의전에서 커다란 의욕을 얻음. 해병대 같은 조직들은 자신들의 영웅적 이미지를 크게 강조하며 해병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구성원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남자다움을 시험하는 다양한 의례를 끊임없이 시행함. 오늘날 높은 지위를 인정받는 직업도 초임자들을 사회화할 때 의례를 많이 이용. 예를 들어 의대생들은 사실 의대에서 실용적 의학을 많이 배우지 않음. 대신에 자신을 평범한 사람과 분리해 생각하고, 의사라는 지위의 특수함과 의사다운 행동을 받아들이게 하는 긴 통과의례를 거침. 이런 자체교육 덕분에 의사들은 일과 자신을 강하게 동일시하며, 의사들에 대한 외적 통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됨
- 평범하 직장에서도 의례는 조직이 계속 작동하도록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 앞에서 보았듯이 사무직 노동자들은 임금체계에 그리 면밀히 통제당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일을 할 때 자신의 능력을 어느정도까지 발휘하는 경향을 보임. 이는 주로 그들이 조직내의 다른 사람들이나 자신이 맡은 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만드는 일련의 작지만 의미심장한 사회적 의례에 참여하기 때문. 고프먼이 증명했듯이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소한 의례들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보이며 사람들이 그 이미지를 수용하게 만듬
-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정도의 문제임. 남보다 더 큰 권력을 손에 넣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위해 그들은 갖가지 미묘하고 명민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함. 가장 효과적인 통제방법은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임. 순전히 힘으로 직접 냉혹하게 통제하는 것이 가장 뻔한 형태의 권력이기는 해도 일을 해내는 데는 가장 효과가 없음. 돈의 힘 또한 실제보다 더 크게 보임. 의례의 힘이 비교적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은 은연중에 작용하기 때문이지만 바로 이런 성질 때문에 이 힘은 조종하기가 어려움. 의례를 이용한다는 것은 대개 조직구성원들에게서 전반적인 복종을 얻어내는 대가로 권력을 나누어준다는 뜻.
- 권력은 때로 모든 도전을 깨부수는 간단한 방법을 통해 작용하기도 함. 정치적 논쟁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음. 반대편의 주장을 탈선시키고 싶다면 그들이 핵심적 주장을 내놓기 전에 말을 끊고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를 내려보라고 하면 됨. 그러면 이야기가 쉽사리 곁가지로 빠져서 핵심적이 주장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게 됨. 어떤 것의 의미를 놓고 벌이는 모든 논쟁은 이렇게 질문의 무한반복으로 빠질 잠재성이 있음. 이와 관련된 전술로 반대편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음. 반대편이 자신의 제안이나 불만사항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면 나는 앞에 나서서 발언하는 사람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면 됨. 상대방이 완전한 발언권을 지닐 자격이 있는지, 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동기가 순수한지 등에 대해 계속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 최소만족과 문제해결이라는 전략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 절대적인 효율성이라는 순저히 허구적인 수준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은 더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덜 합리적인 방법임. 조직의 복잡성은 인간의 정보처리능력을 뛰어넘음. 인간이 지닌 인지능력의 한계 때문에 사회는 기계처럼 움직일 수 없음.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에 순응해서 좀더 방어적 전략을 추구해야 함. 방어적 전략이란 대부분의 일을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대신 많은 것들이 부분적으로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는 전략을 말함
-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에 대해 자기만의 독특한 접근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남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 전문가가 실제로는 불확실성에 잘 대처하는 능력이 없다 해도 그들은 상황에 대한 해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음. 그리고 이처럼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분위기가 그들을 더욱 존중하는 분위기로 이어져 그들이 은영중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임. 전문가들 중에서 특히 많은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 따지고 보면 각자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탈이 난 부분을 고치는 문제에서 의사보다는 자동차정비공이 훨씬 더 믿을 만한 솜씨를 발휘함. 하지만 바로 이 이유때문에 사람들은 정비공의 기술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음. 내일 아침이면 차가 반드시 수리되어 나올 것이라고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 만약 차가 수리되지 않으면 다른 정비공을 찾아가면 그만임. 하지만 의사는 진단과 치료가 훨씬 더 어려운 질병을 다룸. 의사가 특히 정해진 날짜까지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를 탓하지 않고 자신이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임. 의학은 자동차정비보다 더 신비로운 분야라는 것이 의사들에게 더 많은 특권과 힘을 부여하는 중요한 원인임. 권력을 잡는 기술 중 하나는 자신이 하는 일을 최대한 신비하고 인상적으로 보이게 포장하는 것. 의사들은 자신이 무대 뒤에서 하는 일과 자신에게 치료를 받는 대중 사이에 단단한 장막을 친다. 의학지식이 신비롭게 느껴지는 데는 의사들이 대중에게 속 시원히 말해주기를 꺼린다는 점과 전문용어가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
- 처벌의례는 지배구조를 유지해준다는 점에서 사회를 하나로 묶어줌. 처벌의례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의례를 통해 정치인과 경찰이 감정적 지지를 얻는다는 점. 특히 무엇보다도 특권계층의 유대감을 강화해 그들이 자신의 이상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줌. 범죄에 대한 분노는 사회적 위계구조를 정당화해줌. 범죄의 처벌이라는 의례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는 계층화된 사회이다. 이런 의미에서 범죄는 사회구조 속에 내장되어 있다. 지배집단이 통제를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거기에는 상응하는 범죄가 따라온다. 집단들은 지배권을 놓고 계속 투쟁을 벌이는 중이므로 일부 집단이 다른 집단의 기준을 어길 수 밖에 없음. 또한 어떤 집단에서든 가장 통합되지 않은 개인들이 다른 사람들이 믿는 도덕을 신경쓰지 않고 개인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일도 일어난다. 따라서 사회의 많은 집단이 불쾌하게 여기는 행동들이 부족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지배집단도 이런 행동들을 어느정도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범죄를 통해 공동체의 도덕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처벌이라는 예식을 치를 기회를 얻어 자신들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형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에 자기들만의 특별한 범죄가 있음.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왠지 범죄와 처벌이 발생하도록 법이 제정된다는 점. 부족사회에는 금기가 있어서 금기를 어긴 사람들은 지독한 처벌을 받음. 도덕을 무섭게 강조한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마녀의 주술행위라는 범죄가 있다고 믿었음. 자본주의 사회에는 재산과 관련된 범죄행위들이 한없이 규정되어 있음. 사회주의 사회에도 집단의 활동에 전심전력으로 참여하지 않는 개인의 범죄와 국가에 대한 불충이라는 정치적인 범죄 등 나름의 범죄가 있음. 의례를 기준으로 보면 모든 사회가 자기나름의 범죄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음.
- 겨우 몇세대 전의 우리 사회에서 사촌간 결혼은 근친상간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촌수가 더 먼 사람과 결혼해야 했음. 반면 많은 부족사회에서는 기회만 된다면 사촌들의 결혼을 당연히 여김. 이는 가문들 사이에 정기적으로 동맹을 맺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사촌들(특히 고종사촌)간의 지속적인 결혼은 세대가 거듭되어도 가문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함. 참고로 이런 사례들은 사람들이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적 결함을 걱정한 탓에 근친상간 금기가 생겨난 것이 아님을 증명해줌. 사촌간 결혼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사회는 확실히 근친교배를 금하는 방침과 반대로 가고 있기 대문. 게다가 바로 이런 사회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근친상간 금지규칙을 갖고 있음. 우리가 보기에는 생물학적으로 그리 가까운 친척이 아닌데도 순전히 혈통을 문제삼아서 많은 사람들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근친상간 금기가 생겨난 이유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성적 소유권 교환관계 속에 포함되어 있음. 우리 사회에서 가문들 사이의 대대적인 동맹은 이미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근친상간 금기도 최소한의 수준으로 줄어들었음. 하지만 자녀들에게 가정을 떠나 넓은 결혼시장에서 성적 파트너를 구하라고 요구하는 규칙은 아직 남아 있음. 그렇다면 근친상간 금기는 세대적 소유권 체제의 부정적 규칙인 셈. 이 규칙은 자녀들이 서로에게 해서는 안되는 행동뿐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정해놓았음. 세대적 소유권의 긍정적 규칙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음. 우선 부모는 자녀에 대해 어느정도 물리적 소유권을 갖고 있음. 부모는 자녀를 집안에만 있게 할 수도 있고, 학교에 보낼수도 있으며 그 밖에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있음. 부모는 또한 여러 면에서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있음. 부모는 또한 여러 면에서 자녀의 행동에 대한 지시를 내릴 권리도 갖고 있음. 옷차림, 종교적 교육, 사귀어야 할 상대 등 많은 것들을 정해줄 수 있따는 뜻. 요즘은 부모들이 이런 권리를 딱히 강력하게 행사하지는 않음. 아버지가 마음 내키는 대로 자식을 처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죽음까지 내릴 수 있었던 로마시대의 가족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 전체적으로 최근 추세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간섭이 줄어드는 쪽으로 가고 있음. 세대적 소유권의 중요한 측면, 즉 자녀의 결혼상대를 정해줄 권리를 부모가 잃어버린 것이 여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 자녀의 결혼에 대한 통제권은 세대적 소유권을 직계자녀 너머까지 확장시켜서 여러세대에 걸친 후손들의 혈통까지 통제할 수 있게 해주었음. 하지만 혈통의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세대적 소유권도 움츠러들어 지금은 핵가족 내에서 아이들이 어릴때만 적용되는 수준이 되었음. 세대적 소유권에는 경제적 측면도 있음. 법적으로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녀의 소득은 부모의 재산임. 하지만 이것 역시 오늘날에는 그리 강력하지 않음. 오히려 자녀들이 부모의 소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더 많음
- 어떤 대화는 짧고 실무적이어서 업무가 끝나면 함께 끝남. 사교적 분위기를 내려고 애쓰지만 대화가 잘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음. 번갈아가며 이뤄지는 대화 중의 침묵과 재촉이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임. 대화에 참가한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가 어떤 상태인지 보여주기 때문. 어색한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상대에게 할 말을 쉽게 찾아낼 수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화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뭔가가 표면아래 잠복해 있기 때문이기도 함. 발언권을 놓고 자주 싸움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대화 참가자들이 같은 것에 주의를 집중할 수 없어서 주구의 지위가 더 높고 누가 지배자인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음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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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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