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리

2015년 9월, 자동차운반선 엘파로호가 미국 플로리다주의 잭슨빌을 떠나 푸에르토리코로 향했습니다. 항로(航路)에 태풍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는데도 선장은 출항을 강행했고, 선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출항 연기를 건의하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태풍을 만난 배는 침몰했고, 선장을 포함한 탑승자 33명이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7월23일자 A26면 ＜‘리더의 명령’만 기다리는 배는 침몰한다＞ 기사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진상 조사에 나선 해운당국은 “선원들이 자신들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언급했다면 선장이 상황을 더 잘 인식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미 해군 함장 출신으로 리더십 강사인 데이비드 마르케는 다르게 말합니다. “선장의 ‘명령하는 언어’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마르케는 보고서가 ‘질병의 증상’을 언급했을 뿐, 질병 자체는 보지 못했다고 진단합니다. “엘파로호 선장은 평소 선원들이 의견을 제시하면 무시로 일관했다. 출항 당일에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방향을 바꿀 일이 없다’고 말했다.” 선원들이 입을 다물었던 것은 의견을 내봤자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게 선장과 회사의 책무다.”

마르케가 이런 생각을 굳힌 것은 미국 핵잠수함 산타페호 함장으로 복무하면서였습니다. 해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부임한 산타페호는 실적이 꼴찌 수준이었습니다. 실적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명령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고, 급기야 잠수함에 2단 기어가 없는데도 “2단 기어를 넣으라”고 지시하는 실수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때 그를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항해사와 갑판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2단 기어!”라고 복창한 것입니다. “리더의 ‘명령하는 언어’가 명확히 틀린 것도 틀렸다고 말하지 못하는 문화, 명령만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업무 분위기를 낳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명령과 지시를 당장 멈추고 프로젝트 의도만을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직구성원들이 먼저 의욕을 갖고 일을 시작할 것이다.” 리더가 흔히 하는 변명은 “팀원들이 말하지 않으니 나라도 말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회의 시간에 말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팀원들이 말하지 않는 건 문제가 아니다. 팀원 모두가 공평하게 발언할 수 있는 회의체계가 없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다.”

회의를 열기 전에 미리 각자의 생각을 적어내게 하면 구성원들이 상사의 영향을 받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발산할 수 있습니다. 마르케는 이런 방식으로 산타페함을 미 해군 1위 핵잠수함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리더십이란 결국 말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대원들과 대화하는 방식을 바꾸자 우리의 문화도 점차 바뀌어갔고, 문화의 변화는 모든 걸 완전히 바꿔놓았다.”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
이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