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vs 과학

과학 2021. 4. 27. 21:04

- 찰스 다윈이 진화론의 기본적인 구상을 이룬 것은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와 대서양·태평양을 탐험할 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탐험을 떠나면서 다윈이 가지고 간 유일한 책이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였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은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구상할 때 꽤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다윈은 진화가 아주 작은 변이들이 겹쳐지면서 아주 서서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이 지층의 형성은 아주 작은 변화가 꾸준히 중첩되면서 일어남을 적시했듯이, 다윈의 진화론도 작은 그러나 꾸준한 변화가 지금의 다양한 생태계와 생물종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와 드 브로이의 물질파는 20세기 초 서서히 자기 모습을 드러내던 양자역학이 정립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양자역학을 고전 양자역학이라 한다면 전후 새롭게 정비된 양자역학, 즉 현대 양자역학을 표준모형standard Model 이라고 한다. 표준모형이 정립되면서 빛에 대한 인식은 다시 한 번 바뀌게 된다.
- 표준모형에서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를 크게 두 가지 보손과 페르미온으로 나눈다. 페르미온으로는 전자나 양성자와 중성자를 구성하는 쿼크 등이 있고, 보손에는 광자나 글 루온, W 보손, Z보손 등이 있다.
페르미온은 쉽게 말해서 흔히 우리가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 들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이고, 보손은 힘을 매개하는 입자다.(보손 에는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 말고도 다른 입자들도 있다.) 그런데 페르 미온은 하나의 상태를 둘이 공유할 수 없고, 보손은 하나의 상태를 둘 이상이 공유할 수 있다. 즉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인 전자(페르미 온)는 둘이 같은 곳에 있을 수 없지만, 빛의 입자인 광자(보손)는 같은 곳에 둘이 겹쳐질 수 있는 것이다.
빛이 파동이라 여겨졌던 데는 빛이 서로 겹쳐질 수 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무대에서 조명이 하나 둘 켜지면서 주인공을 비추면 주인공이 선 지점이 점점 밝아진다. 조명에서 나온 빛이 겹쳐지면 서 발생하는 일이다. 빛이 입자라면 이런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 런데 이제 어떤 입자는 겹쳐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빛이 입자면서도 겹쳐지는 이유는 그것이 보손 입자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보손이 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글루온과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W보손과 Z보손도 보손입자다. 그 외에도 중간자 등과 같은 다양한 보손들이 있다. 다만 빛 이외의 다른 보손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그 존재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빛만이 서로 겹쳐지는 특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 또한 빛을 특별하게 만든 이유라 할 수 있다.
결국 빛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진 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는 그 이중성을 경험할 수 있는 건 빛 이 유일했던 셈이다. 여기까지가 현대 과학이 밝혀낸 빛의 정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유일한 힘(전자기력)의 매개입자, 우리가 만나는 유일한 보손, 이 자체로도 빛은 특별하다.
- 현재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크게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지지만 논쟁과 새로운 연구 결과를 통해 이 둘의 (학문적) 장점을 통합하는 모습들도 있다. 즉 호모 사피엔스가 탄생한 곳은 아프리카지만 각지로 확산되면서 그 지역에 미리 거주하던 고인류와 교류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유전자 일부가 흡수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인류는 그 초기부터 '잡종'과 '혼혈의 과정을 거쳐온 셈이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아프리카기원설과 다지역기원설이 아직 서로 맞서고 있지만, 다지역기원설이 주장했던 것 중 호모 사피엔스가 단일한 하나의 종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명확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시작된 다양한 인류 집단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호모 사피엔스 은 사실 같은 종의 일원이었으며,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좀 더 커다란 종의 한 아종에 불과하다. 또 지금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 니소바인의 유전자도 우리 안에 살아남아 있다. 인류의 단일 계보를 말하는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일 뿐이다.
- 인간이 특별하다는 전제 아래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가고자 하는 진영과 인간이 정말 특별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진영 사이의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논쟁의 굵은 줄기를 바라보면 하나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처음에는 인간만이 영혼이 있어 의식을 가지며 그 영혼은 물질 적인 것이 아니라는 주장과, 인간의 의식은 육체의 산물이라는 주 장이 대립되었다. 하지만 생물학과 해부학 등의 발전으로 최소한 과학의 영역에서 영혼이 들어설 자리는 사라졌다. 그 대신 인간으로의 진화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지점을 지나면서 여타 동물과 다른, 그리고 다시 육체에 귀속되지 않는 의식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타났고, 이에 대해 과연 인간만 의식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 의식이 어떤 창발을 통해서 탄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영장류에 대한 동물행동연구와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 과정에 서 최소한 침팬지 등의 유인원과 일부 포유류는 자의식을 가진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인간만의 의식을 가진다는 주장은 한발 물러서고, 대신 인간과 비슷한 대뇌가 발달한 영장류로 의식의 존재가 확장되었다. 나아가 이제는 다른 포유류나 문어 및 꿀벌과 같은 동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시 의식을 영장류만이 독점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마치 눈이 척추동물 절지동물 연체동물에서 각 각 독립적으로 진화했듯이, 의식 또한 오직 한 가지 경로 인간으로의 진화 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독립적으로 구현 되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문어는 연체동물의 내부구조에 서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꿀벌은 절지동물의 내부구조에서 가 능한 방법으로, 까치는 조류의 한계 안에서, 그리고 인간과 영장류 는 영장류의 한계 안에서 각기 독립적으로 의식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의식의 발전은 생물들이 자신이 속한 생태계 내에서 행한 여러 적응의 한 종류일 뿐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어떤 동물은 고착 생활을 하면서 일부러 뇌와 신경의 비율을 줄인다.(멍게가 그런 예로 유충일 때는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 해서 뇌가 있지만, 성체가 되어 바닷물 속의 플랑크톤을 걸러먹게 되면 뇌를 없애버린다.) 초식 생활을 하는 동물도 마찬가지로 뇌와 신경의 비율을 줄인다. 반면 사냥을 하고 집단생활을 하면 뇌와 신경의 비율은 늘어난다. 그렇다면 두 방향 모두 진화이지 어느 방향은 퇴화고 어느 방향은 진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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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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