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의 기원

과학 2021. 4. 18. 18:54

- 혁신의 욕구는 유전적 진화의 탁월한 비유라고 볼 수 있다. 문화적 진화는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 우리 종을 적응시킨다. 혁신은 유전체의 돌연변이 에 해당한다. 돌연변이라는 생물학적 사건은 인류 역사 내내, 다른 종들에게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수준으로 일어나 왔다. 돌연변이는 매우 다양하다. 돌연변이는 개체 수준에서 드물게 나타나며, 대다수는 해롭거나(그리하여 색맹, 낭성 섬유증, 혈우병 같은 수백 가지의 불행한 가족성 유전 장애를 일으킨다.) 건강이나 번식에 검출 가능한 효과를 전혀 일으키지 않 는 중립적인 것이다. 결국에는 사라지거나 기껏해야 아주 낮은 빈도로 남는다. 후자는 이로운 우성 유전자와 같은 자 리에서 침묵하는 열성 유전자로서 공존한다. 극소수의 돌연변이만이 개체에 혜택을 줌으로써, 그리고 집단 전체로 퍼짐으로써 성공을 거둔다. 그런 돌연변이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젖당 내성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들의 집 합이 한 예다. DNA 염기쌍에 일어난 작은 무작위 변화로 우유 소화가 가능해졌고, 그 뒤로 낙농업이 거의 전 세계 로 퍼졌다. 낫 모양 적혈구 돌연변이 유전자도 그렇다. 이 돌연변이는 쌍으로 있으면 치명적인 빈혈증을 일으키지만, 하나만 있으면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말라리아로부터 보호해 준다.
- 요약하자면, 인문학은 다음과 같은 약점들에 시달린다. 인과 관계 설명에 근원이 빠져 있고, 제한된 감각 경험이라는 공기 방울 안에 갇혀 있을 뿐이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인문학은 불필요하리만큼 인간 중심주의적이고 따라서 인 간 조건의 궁극 원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아브데라의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 of Abdera, 기원전 485~410년)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선언했다. 그 세계관은 당대에 도전을 받았고, 지금은 더욱더 그래야 한다. 새로운 선언이 필요하다. 그 선언은 이래야 한다. “만물이 인간 이해의 척도다.”
- 아직 문자를 가지지 않은 순수 수렵 채집인 사회와 원 시적인 농경을 하는 수렵 채집인 사회는 선사 시대 문화의 탄생기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들의 삶은 단순해 보 일 수 있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대부분은 그렇다, 아직은!) 인터넷 검색도 안 하며 채소를 사러 슈퍼마켓에 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동시에 가장 상세히 연구된 수렵 채집인 사회에 속하는 칼라하리 사막의 주/호안시 사람들은 자기 세력권의 지형을 도로 지도처럼 잘 알고 수백 제곱킬로미터의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과일나무, 샘, 야영 후보지, 조망하기 좋은 언덕을 잘 안다. 그들의 어휘는 현대 도시인의 어휘에 비하 면 아주 적을지 모르지만, 동식물의 이름과 설명은 분류학 을 전공한 자연사 학자에 맞먹는 수준이다. 모닥불 불가에서 이루어지는, 낮에 한 일들과 낮 시간에 한 일과 상관없는 다른 모든 일들에 관한 그들의 대화와 이야기는 다양하면서 상세하다. 그럴 때 주/호안시 사람들은 숨길의 서로 다른 부위에서 만들어지는 세 종류의 폐쇄음이 섞인 단어 들을 쓰곤 한다.
- 과학자들은 이 모든 진화의 초기 단계들을 밝혀내고 있 다. 인간 수준의 종을 생성하는 데는 세 가지 전제 조건들 이 결합되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첫 번째는 야영지의 형성이다. 그 일은 일찍이 우리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에게서 식성의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가능해졌다. 나는 동물계의 역사 전체를 훑어서 총 20개의 독자적인 계통들로 이루 어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복잡한 사회들의 기원을 모두 검토했다. 각 계통에서 육아를 통해 새끼를 키우는 등 지를 본능적으로 짓는 행위가 앞서 나타났다는 것이 드러 났다. 사회성 벌, 말벌, 개미의 둥지는 지하나 나무 위 등 다양한 곳에 지어지며, 새끼를 기르는 특수한 방이 갖추어져 있다. 사회성 총채벌레와 진드기는 살아 있는 식물 안에 생긴 빈 공간을 육아실로 쓴다. 사회성 바다 새우는 살아 있는 해면동물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든다. 초기 인류의 둥지 는 통제된 불을 통해 온기와 조명을 얻는 야영지였다. 따라 서 널리 퍼져 있지만 흔하지는 않은 적응 형질인, 자식을 키우기 위한 둥지 짓기는 인간가 이룬 희귀한 성취에 이를 수 있는 교두보였다.
20개 진화 계통은 사회 조직 측면에서 볼 때, 이 가장 발전된 형태의 사회적 형질인 '진사회성(eusocial)’ 행동을 보 인다. 동등한 이들 사이의 협력이 아니라 집단 구성원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장기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루어지는 조직적인 협력을 토대로 한 분업이 핵심 이다. 과학적으로 분류할 때 진사회성에 속하려면, 구성원 중 일부가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하도록 역할들이 미리 정 해져 있어야 한다. 단순히 표현하자면, 이타주의는 존재한 다. 집단 구성원 중 일부는 집단 전체의 선(善)을 위해 희생 한다.
인간 사회 기원의 두 번째 전제 조건은 집단 구성원 사 이의 높은 수준의 협력이었다. 각자는 다른 모든 이들과 그 들이 맡은 일, 그들의 능력, 그들의 성격을 잘 알았다. 
분업, 이타주의, 협력이 함께 진화함에 따라서 사회적 지능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특히 그것들이 서로 조합되면서 의사 소통이 풍부해졌다. 최초의 인류가 시청각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구어 능력을 진화시킬 수 있었다. 생성된 단어들과 의미의 결합은 원래 자의적이었지만, 서서히 집단 내에서 보편적인 용법으로 쓰이게 되었다. 소리는 빠르 게 생성되고 사라진다. 하지만 시각 신호와 달리 불투명한 장애물을 지나가고 모퉁이를 돌아간다. 더 나아가 후각 및 시각 신호와 달리, 단어는 빠르게 늘어나면서 정보 전달을 최대화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동물본능의 소리는 인간의 언어로 진화했다. 어휘는 인류 집단 별로 달라졌지만, 이야기할 능력과 원초적 충동은 유전적 으로 프로그램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집단 내에서 더 뛰어난 언어 능력을 지닌 이들은 집단 내의 경쟁자들보다 생존율과 번식률이 더 나았다. 더 중요 한 점은 집단 사이의 경쟁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영토 공격 능력뿐 아니라 동맹을 형성하고 교역을 트고 자연 환경에 있는 원천들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추출하는 능력이 더 뛰어난 이들이 이겼다는 것이다.
- 침팬지와 인간이 갈라진 뒤로 600만 년에 걸친 기간의 대부분에 걸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분류되는 종이 아 마 3종 이상,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공존했다. 그들은 기본 적으로 채식주의자였지만, 아마 기회가 생기면 고기도 조 금 먹었을 것이다. 현생 침팬지들도 그렇게 한다. (섭취 열량 의 약 3퍼센트이다.) 먹는 식생의 종류는 분명히 종마다 달랐다. 더 거칠고 더 섬유질이 많은 식물을 먹는 종은 턱과 이가 더 무거워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진화 생물학자는 그렇 게 분화하는 양상을 전체적으로 적응 방산(adaptive radiation) 이라고 한다. 적응 방산을 통해서 한 계통은 고기를 더 많이 먹는 쪼 으로 나아갔다. 특히 번갯불이 쳐서 초원과 사바나에 난 불 에 구워진 동물을 먹었다. 초기 단계에서 그 집단들은 야영 지를 발명했다. 처음에는 새의 둥지나 다름없이 단순했을 것이다. 여기에 그들은 통제된 불을 추가했다. 불타고 있는 나뭇가지의 깜부기불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초보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기념비적일 변화로부터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했다.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200만 년 전이었다. 그 조상 종은 적어도 10만 년 전까지 존속했다. 그때쯤 그 집단 중 적어도 한 집단은 뇌가 훨씬 더 커지고, 턱과 이는 더 작고 더 가벼 워진 상태였다.
호모 사피엔스로의 마지막 전환은 호모 에렉투스가 존 속하고 있는 동안에 꽤 많이 진행되었지만, 그 종에게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일찍, 호모 에렉투스의 직계 조상인 호 모 하빌리스에게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빌린 인의 화석 증거는 호모 에렉투스의 것보다 훨씬 적으며, 후기의 전이 종 다음에 곧이어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다.
230만~15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았던 호모 하빌리 스에게서 현생 인류로 귀결된 변화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선사 시대의 이 기간에 머리뼈의 용량, 즉 뇌의 크기는 500 시시에서 800시시로 커졌다. 현생 침팬지의 뇌보다 한 참 더 커진다. 호모 에렉투스(1,000시시)에게서는 더욱 커졌고, 호모 사피엔스(평균 1,300시시 이상)에게서 다시금 커졌다. 그 기념비적인 문턱을 건넌 것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였다. 뇌가 클수록 기억 능력도 더 커졌고, 그럼으로써 마음속에 서 이야기를 엮을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생명의 역사에서 최초로 진정한 언어가 출현했다. 그 언어로부터 유례없는 창의성과 문화가 출현했다.
우리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더 큰 뇌와 더 고도의 지능으로 이어지는 지향적인 선택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 세 계에서의 상호 교배를 통해서 발전시켜 온 균질화를 통해 서다. 집단 사이의 평균 유전적 다양성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지만, 인류의 총 유전적 다양성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문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생물학 차원에 서도 우리는 점점 더 통일된 종이 되어 가고 있다.
- 놀라운 사실은 조건화한 혐오와 공포증을 획득하는 예 민한 능력이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우리의 먼 인류와 선행 인류 조상들이 야생에서 겪은 위험들에만 거의 전적으로 한정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양한 동물 적들뿐 아니라, 비좁은 공간, 높은 곳, 급류, 집 바깥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들에 대한 공포도 포함된다. 우리 종에게서 칼, 총, 자동차에 대한 공포증이 진화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현 대인에게 훨씬 더 주된 사망 원인들인데 말이다.
창작 예술의 미학적 핵심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뇌 의 알파파를 측정하면 우리가 구성 요소들 중 약 20퍼센트 가 중복되어 나타나는 추상적 디자인을 볼 때 가장 흥분한 다는 것이 드러난다. 단순한 미로, 로그 나선의 2회 회전, 비대칭적인 십자가에서 발견되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의 복잡성이다. 복잡성이 더 낮으면 매력이 없이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더 복잡하면 '혼잡'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는 프리즈, 격자 세공, 간기(刊記), 로고, 깃발 디자인에서 성공을 거둔 많은 작품에서 비슷한 수준의 복잡성이 나타 난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같은 수준의 복잡성은 원시 미술과 현대 미술 및 디자 인에서 매력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일부분을 이룬다. 이 최적 복잡성 원리(optimum complexity principle)는 흘깃 보고 전 체를 파악하고자 할 때 뇌가 지닌 한계의 한 표현 형태일지 도 모른다. 한 번 흘깃 보고서 셀 수 있는 - 즉 세부 단위로 쪼개어 센 뒤에 합치는 식이 아닌 - 사물의 수가 7인 것도 같은 원리를 따른다.
인문학은 우리 마음과 창의성의 키메라적 특성을 이해 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일부만 겨우 이해하고 있는 선사 시대 사건들이 우리 DNA에 새긴 감정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너무나도 당혹스럽게도, 우리는 조만간 로봇에게 명령을 내리는 일은 잘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인간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고대로부터 지닌 가치들과 감정들에는 잘 대처하지 못할 과학 기술의 시대로 빠르게 진입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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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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