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세계

역사 2022. 2. 5. 20:21

- 1만 2,000년 전, 지구의 인구는 단 200만 명이었다. 지구의 인구는 어떻게 그렇게 단시간에 70억 명에 이르게 되었을까? 게다가 곧 100억 명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중 10억 명은 영양실조, 다른 10억 명은 과체 중이다. 또 어쩌다가 인류의 1퍼센트가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단 하나의 해답, 역대급 멍청이 짓은 바로 신석기 시대의 도래, 달리 말해 정주 농업의 발명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정착생활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의 수는 몇 세대 만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렵채집인이 3~4년마다 평균 1명의 아이를 낳은 반면 전통사회의 농업인은 매년 1명의 아이를 낳았다. 상당수의 아이가 어린 나이에 사망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인구폭발로 인해 수렵채집 사회는 밀려나거나 동 화되었고 심지어 학살까지 당하며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브라 질 아마존 숲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 가. 그러나 농업인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외딴 지역에서는 수렵채집 생활방식이 조금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해양자원과 임산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생물학적 환경에서 성립한 일본의 조몬繩文 문화는 기원전 마지막 세기가 되어서야 농업사회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한 인구폭발이 이번에는 또 다른 세 가지 바보짓을 불러 오고 말았다. 바로 노동, 전쟁, 지배계급이다. 
- 어리석음은 두 가지 면이 있다. 몇몇 사람이 권력욕을 가질 수 있다고 쳐도, 다른 대다수가 그것을 왜 인정해주었는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500년 전, 에티엔 들라보에티Etienne de La Boétie 는 소논문 「자발적 복종 La servitude volontaire」에서 이에 대해 본질적 질 문을 던졌고 제법 설득력 있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 번째 이유로 그는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 는 관습을 꼽았다(관습에 관한 특히 멍청한 명언으로는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가 있다.) 두 번째로는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견고한 피라미드 조직망을 지적했다. 세 번째로 그는 사후에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 다는 미명하에 순종과 인내를 가르치는 종교를 자발적 복종'의 원인으 로 제시했다. 실제로 군주들은 자신이 초월적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의식을 치를 때 성경에 맹세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신격화 했다. 보에티가 왜 우리는 복종하기에 충분히 멍청한가를 설명하려 했다. 고는 하지만,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설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프랑스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 Pierre Clastres는 권력이 과도하게 팽 창되는 것을 막기 위한 메커니즘이 많은 전통사회에 존재했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지배계급에 대한 풍자, 의무적인 부의 재분배, 명성을 떨친 전사에 대한 결투 신청, 명망가가 사망했을 때 재산을 함께 매장하기 등의 메커니즘이 존재했다. 문서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를 살펴보면 상궤를 벗어난 권력은 반란과 혁명을 통해 어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정치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더 민주적인 체제가 간혹 시도되기도 했 다. 이누이트나 그레이트플레인스 아메리카 인디언과 같은 일부 사회에 서는 계절에 따라 강제적 명령을 따라야 하는 시기(특히 사냥 시기)와 그 외의 일상적 '무정부' 시기를 번갈아가며 생활했다.
-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빙하기의 수렵채집인과 비교해보면 농업은 인간을 훨씬 가녀리고 나약하게 만들었고 뇌의 용적도 줄어들게 했다.... 요컨대 문명화된 인간이란 고대 인간의 길들여진 버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일부 고생물학자는 매우 설득력 있는 증거 와 함께 이러한 주장을 제시했다. 그것은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신격화된 왕의 협박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예전의 공격적인 오록스 처럼 가장 먼저 죽임을 당했다. 입을 닫고 있어야 더 오래 살아남아 유 전자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된다는 것을 인간이 깨닫 게 된 순간부터, 진화의 법칙은 자발적 복종으로 인간을 몰아갔다.
이제 요약해보자. 농업의 '발명'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길들여졌고 나약해졌으며 수많은 질병 에 노출되었다(예상치 않은 피해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소, 닭, 돼지들과 공존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균은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옮겨가기 위해 가축을 이용 했다). 그럼에도 진화는 승전보를 울렸다. 지구상에 수렵채집인은 500만명에 이르렀고 서기 1800년경 농부는 10억 명에 이르렀으며 집약적 농업의 등장과 함께 인간은 머지않아 100억 명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대다수는 도심에 모여 있다. 인간들 역시 집약적 축산으로 살아가는 소들만큼 행복할까?
- 예수라는 유대인은 4세기에 들어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사회적 측면에서, 왜 로 마 제국의 지배층과 사회 구성원들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을까? 그것은 교회의 스토리텔링 덕분이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 복음을 강조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쌍봉낙타(사실은 단봉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로마는 극소수의 특권층이 부와 권력을 점유한 극도로 불공평한 사 회였다. 서민으로 하여금 사회조직을 떠받치게 하려면 빵과 서커스가 필요했다. 이러한 관리 방식을 에베르제티즘evergétisme이라 부른다. 사 회를 떠받치는 이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로마의 귀족은 자기 부의 일부 분을 내놓았고 그 덕에 서민들은 넉넉하게 먹을 수가 있었다(지중해에서 가장 비옥한 튀니지와 이집트 지역에서 들여온 수천 톤의 밀이 이탈리아로 공급되었다). 또 좋은 환경에서 노동을 하지는 못해도 후원자들이 자금을 제공해 지은 건축물 덕분에 공중목욕탕(로마에만 800개가 있었다), 극장, 검 투사와 이국의 맹수가 대결하는 서커스 등으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 다. 이렇게 부를 나누는 행위는 19세기까지 다른 역사에서는 정말로 상 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로마 귀족들은 사회적 평화를 돈을 주고 산 셈이었다.
부자는 지옥에서 영원히 불탄다는 기발한 생각을 무조건 믿게 하면서 교회는 로마 시민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 모두를 지원하도록 귀족 을 설득했고 재산을 기부하도록 유도했다. 젊고 부유하며 아름다웠던 귀족 멜라니아(훗날 성녀가 되었다)는 400년 무렵,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데 바치기로 결심하고 노예 8,000명에게 금화를 3닢씩 나누어주며 해방시켜주었다. 그런데 이 배은망덕한 자들이 돈을 각출해서는 다시 노예로 삼아달라며 그를 고소했다! 자유롭게 해방된 후로는 노숙을 하며 힘든 일을 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매춘을 하기도 했으므로, 그보다는 관대한 주인의 회초리가 더 부드럽게 느껴졌던 것 이다. 그들은 패소했고,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 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가.'
- 법률가 조엘 베이칸Joel Bakan은 기업을 사람(법인)으로 본다는 점에 착안해 기업들의 '인격적인 특성을 분석했다. 그는 DSM-II(미 국에서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1980년대 버전)를 이용해 기 업들을 진단했고 그 결과 법인이 완벽하게 사이코패스의 행동방식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타인의 감정, 이익, 안전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주주들의 심리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업은 공감능력이 없으 며 사람 간의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하지만 필요한 경우라면, 예컨대 기업을 광고하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공감하는 척할 수도 있다. 또한 기업은 절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혹독한 처벌을 받지 않는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도덕적 기준을 무시해버리며 특히 조세 납부 면에서 가능한 한 잽싸게 법적 의무에서 벗어나려 한다.
- 다른 토착어와 마찬가지로 중국어의 고대어와 방언에는 멍청이를 일컫는 수식어가 매우 다양하고 많다. 그 뉘앙스도 멍청이를 비롯해 무식쟁이, 우둔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맹추, 등신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이다. 그렇지만 전국시대 문헌을 보면 그런 표현 들은 대개 ‘愚(어리석을 우)’ 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상상을 보태 이 단어의 어원을 찾아 가보자. '愚'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아래에 있는 부수 心, 즉 마음은 대개 무엇인가가 심리적으로 깊 이 자리 잡는 과정을 가리킨다. 위쪽의 萬는 '우'라는 발음 부분으로 원 숭이를 가리킨다. 간혹 서기 100년에 지어진 최초의 중국 자전을 근거 로 긴꼬리원숭이라 하기도 한다. 긴꼬리원숭이는 진화적 관점에서 긴팔원숭이와도 무척 가까운 영장목으로 과거는 알지만 미래는 내다보지 못하는 반인반수라 할 수 있다. 먼저 이 단어의 다의성을 살펴보자. 긴 꼬리원숭이 우의 표기는 중국 고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 의 이름, '우禹'와 매우 흡사하다. 그는 둑과 댐을 쌓는 대신 그저 “물길 을 잘 다스리는 것만으로 대홍수에서 사람들을 구했다고 전해지는 어진 군주이자 가히 통치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로 칭송된다. '어리석을 우’ 자는 이런 군주의 이름을 그릇되게 모방한 글자다. 그러므로 멍청이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고 다른 이들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진부한 아류를 지칭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원숭이에 관련된 근거는 이내 사라져버렸고 문헌에서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 '愚'는 슬기, 지혜, 통찰력과 같은 단어의 반대말로서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 다. 즉, 어리석은 사람이란 지식과 경험을 쌓지 못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지 못하고 다양한 상황에 따라 유연하 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 어리석음과 지혜의 가치 전복은 이 지점에서 완벽해진다. 어리석음이란 자신을 자기 안에 가둬두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식이다. 어리석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수련 의 결과물이다(여기서는 음악을 통해 도에 이르렀고, 후대에 장자에 크게 영향을 받은 선불교 역시 정신적 혼돈을 통한 온갖 정신수련법을 통해 도에 이르려 한다. 이를테면 풀리지 않는 문제나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외침이나 충격 등을 이용한다). 그러면 어리석음은 내가 없어진 상태, 지식을 내려놓은 상태, 육신과 정신 안에서 멍해진 온전한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중국 현대문학이 널리 퍼트린 어리석은 자들의 초상은 이러한 도교 문헌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멍청이란 세상과 그 세상의 비웃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자신의 본질적 이면을 아는 사람이 쓰고 있는 외피일 뿐이다. 당연한 것이란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 며, 지식의 오만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 불리는 위대한 시인 소식蘇武(1037~1101)은 “크게 지혜로운 자는 크게 어리석어 보인다”고 했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무상함과 겸손함을 알고 결코 자기의 재능을 뽐내지 않으며 어리석음으로 슬기롭게 자신을 감출 줄 안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조심해야 한다. 어리석음이란 일시적인 것일뿐,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서양인이 불교를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서양에 불교를 들여 온 사람들이 불교의 교훈적 메시지를 토착화했기 때문이다. 요가나 그 외 여러 정신수련 활동도 마찬가지다. 반면 동양에서는 불교를 종교로 여긴다. 따라서 불교 사원이 있고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종교가 있으며, 선원이 있고, 으레 반복되는 의식이 있다. 장세바스티앙의 친구 루는 서양인 견습 비구로서 짧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네가 기독교 수도회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은 여기 불교 선원에서도 겪을 수 있어. 질투, 비방, 증오, 폭력, 성 학대까지.” 불교가 마음의 학문이라면 명상이 결합되지 않을 수 없다. 불교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명상 수행을 한다(특히 힌두교는 명상 수행을 강조한다. 기독교 역시 묵상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meditation' 이라는 단어부터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불교를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게 하고 적응시키려 하는 상당수의 핵심 관계자가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 주변 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 의사와 승려는 명상이 기억력을 향상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며 수행 중인 승려가 뇌파를 조절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서양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치료적 가치에 중점을 두다 보니 명상이 대다수 불교 선원의 핵심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은 외면 당하고 있다. 실상 불교 선원에서는 의례를 행하고 경전을 연구하는 데 열중한다. 그런데 연구자들을 제외한 서양인은 이러한 경전 연구를 몹시 지루해한다. 그만큼 경전 연구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 원시불교는 인도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서양의 사상과는 다르며 심지어 중국 사상과도 차이가 있다. 중국도 불교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1세기 초반에 중국에 들어온 불교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에 맞닥뜨렸다. 인도 사상('힘겹게 쌓은 선업을 통해 해탈하기 전까지는 끝없이 계속되는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의 맥락에 서만 납득되는 불교 교리를 중국 사상(죽으면 저승에 가서 조상들을 만난 다')에 맞게 토착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몇백 년이 흐른 뒤에야 두 사상이 융화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두 가지 경향이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평생 동안 끊임없이 선업을 쌓아야 삶의 마지막에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인도 불교 사상을 옹호한 돈오점수(점법)와 살아 있는 동안에도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인을 포섭한 돈오돈수(돈법)다. 돈오점수는 동남아시아(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의 남방불교(상좌부불교) 수행법이고 돈오돈수는 극동아시아(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의 북방불교(대승불교) 수행법이다. 대승의 어원은 큰 수레 로, 더 많은 사람을 구제해 태우는 큰 수레라는 의미다. 대승불교의 한 갈래인 금강승불교는 티베트와 몽골의 불교로 금강승이란 금강의 수레 다. 밀교密敎라고도 불리는 금강승불교는 전문적 이론과 승려를 중심으로 한 교파다. 대승불교에는 구제에 이르는 수행법을 더 단순화한 여러 교파가 존재한다. 선불교에서는 문자에서 벗어나 곧바로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서 본성을 보아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 정토 종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염불을 하면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혹시 또 모르니 여러분에게 그 염불을 알려드리겠다. 나무아미타불.'
미국의 일부 종교사회학자와 의견을 같이하는 프랑스 인류학자 마 리옹 다프상스는 20세기에 일종의 제3의 물결, 신新불교가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신불교는 교리를 단순화하고 불교를 세계화하기 위한 일종의 불교 운동으로, 불교도들의 이상을 선택적으로 재해석하며 서양에서 시작되었고 전 세계에 불교를 전파시킨다는 목표를 지향한다. 기존의 불교 신자는 이러한 주장이 자신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한다며 몹시 불쾌해했다. 그러나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종교가 전파되고 변화하는 융합의 시대에 들어섰다. 진정한 불교는 진정한 이슬람교, 진정한 기독교처럼 마음의 성찰로 대변된다. 상좌부불교는 대승불교를 품고 있고, 대승불교는 신불교를 품고 있다. 새로운 신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한 종교가 변모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단 한 번도 철학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페미 니즘 사상 철학가 주느비에브 프레스Geneviève Fraisse는 『남녀의 차이 La difference des sexes』(1996)에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최소한 말할 수 있 는 것은 철학자 대다수가 2,500년 동안 반페미니즘, 나아가 여성혐오를 통해 오히려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성차별적 입장을 드러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필두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용맹함은 사령관의 미덕이요, 순종은 여성의 미덕”이라고 천명했다.
기독교 성직자들에게서도 페미니스트적 면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기독교 교회는 오랫동안 여성을 악마 같은 창조물로 여겼다. 하기야 창세기」에서 뱀(악마)의 말을 듣고 가련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것도 이브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모범적 기독교도 페넬롱Francois Fenelion 신부(전문적 신학 교육을 받은 17세기 프랑스 성직자였다)가 여성의 지성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는 사실 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는 “여성의 지성은 타율적이므로... 마땅히 미덕과 행동규범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계에서 여성혐오로 메달을 수여한다면 평생 동안 여성을 증오 하는 말을 쏟아낸 쇼펜하우어에게 금메달이 돌아가야 한다. 그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라고 말했다. 칸트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교양 있는 여성은 책을 마치 시계처럼 사용한다. 남에 게 보여주려고 시계를 차고 있을 뿐, 평소에는 그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 는지, 시간은 정확히 맞는지 신경도 쓰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은 모두 여성에게 적대적이었단 말인가?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 철학자들 중 일부는 여성의 종속성을 논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콩도르세, 샤를 푸리에, 오귀스트 콩트,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존 듀이가 바로 그런 철학자들이다....
- 나폴레옹은 군사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천재적인 지략가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 점이 그의 잘못이기는 한데, 적어도 자신이 신적인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나폴레옹 이야기를 아실 거예요. 그는 고문관들에게 물었죠. “내가 죽으면 사 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겠나?” 그들이 한 목소리로 말해요. “오, 모든 사람이 슬퍼할 겁니다, 폐하. 그리고는 말하겠죠. 정말 위대한 분이셨다고요!” 그러자 나폴레옹은 이렇게 답했어요. “아냐, 사람들 은 '휴우, 이제 드디어 끝이구나!' 할 걸세.” 그는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았어요. 
- 셔튼) 인간이 악마같이 되거나 밑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을 만들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드릴게요. 
1 우선 누군가를 계속 압 박하고 늘 경계태세를 갖추게 하세요. 그럼 그에게서 점점 공감도, 배려도, 친절도 기대할 수 없게 될 거예요. 
2 잠을 못 자게 하세요. 실제로 많은 경영자들이 무척 적게 자죠. 
3 끊임없이 주변에 나는 이겼고 당신은 졌어' 식의 경쟁을 부추기고 리더의 행동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며 그의 뜻대로만 끌려가는 직원들을 두세요. 진실을 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 높여서 주장해봤자, 연구 결 과들을 보면 어쨌든 기업의 리더는 언제나 아첨을 더 좋아한다는 것 을 알 수 있어요. 그러면 직원 입장에서는 리더에게 나쁜 소식을 전 해줄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리더는 원하든 원하지 않는 비굴한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있죠....
바로 이게 합리적인 사람이 어떻게 고질적인 멍청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이에요. 그렇지만 경제적으로나 유명세로 성공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멍청이로 있을 수는 없어요. 굴복시켜야 할 사 람과 곁에 두어야 할 사람을 식별하는 전략을 세워야 해요. 그래서 주변에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고 나 자신과 남에게서 나를 보호하 는 데 도움을 주는 직원을 가까이에 두는 것이 더 좋겠죠. 
- 셔튼) 심리학 연구를 보면 권력을 더 많이 가질수록 공감능력은 줄어들고 개인적 욕구는 늘어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권력은 자제심을 느슨하게 풀어주기 때문에 진짜 인성이 더 쉽게 드러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요, 멍청이가 권력을 차지할 때도 있지만 멀쩡한 사람도 권력을 갖게 되면 멍청이가 될 수 있어요. 권력은 사람을 타락시키기도 하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던 어리석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나게 해 주기도 하니까요. 저랑 조금 친분이 있는 실리콘밸리의 두 억만장자 를 예로 들어볼게요. 링크드인의 창업자 리드 호프먼은 정말로 호감 가는 사람이에요. 들어오는 부탁을 비서들이 계속해서 걸러내야 할 만큼 친절한 사람이죠. 진정한 인격이 성공을 통해 더 부각된 경우 라 할 수 있어요. 반대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성공한 뒤의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죠. 여러 투자자의 이야기를 들 어보면 그는 아주 탐욕스러워진 것 같더군요. 그에게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굉장히 실망스러웠어요. 페이스북 창업 초창기 에 몸담았던 여러 사람을 아는데, 회사 분위기가 예전과는 많이 달 라진 것 같다고 하더군요.
- 셔튼) 경영자의 능력이 출중하면 때때로 그가 멍청한 행동을 해도 사람들이 참아줄 수 있겠죠. 저는 명석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 게 하는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를 여럿 알고 있어요. 그들은 개방된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해 칸막이를 치고 구석 진 장소에 있으려고 하죠. 문제는 리더가 되려면 더 이상은 혼자서 배를 모는 항해사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거예요. 팀으로 일해야 하 니까요. 그런데 그 리더가 사람들을 지치게 해 번아웃으로 몰고 가거나 그들을 무시한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그 팀은 오래갈 수가 없 어요. 그렇지만 이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예요! 일부 경영자는 냉혹함이라는 특성을 드러내죠. 그들은 자신에게 반기 드는 것을 참지 못하고 직원들을 해고해버려요. 제가 보기에 그런 사람들 을 딱히 야비한 멍청이라 규정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유능한 리더들이라 할 수 있죠! 팀원들과 격렬한 논쟁을 자주 벌였던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는 그 때문에 멍청이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죠. 실 제로 그는 절대 악의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끊임없는 토론은 직원들 간의 경쟁을 유발하는 수단이기도 하니까요. 한편 최고의 기 업들은 기업 내에서의 의견 교환에 대해 기준을 명시한 내부 규정을 마련했어요. 그런 기업에서는 정면으로 하는 지적이 어느 정도 용인 되죠. 구글은 상대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평가 받는데, 그 경우 공격은 더 교묘하게 이루어지겠죠. 킴 스콧은 실리콘밸리의 팀장들 Radical Candor』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잃지 않고 리더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어요. 그는 이스라엘과 일본의 조직 문화를 소개했는데, 이스라엘 회사는 모두가 목청 높여 강력한 피드백을 하는 반면 일본 회사는 무언가 지적하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었죠. 기준은 저마다 다를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 는 것이 정말 싫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예의의 규칙이 10년 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사람들은 이제 거리낌 없이 악의를 드러내요. 놀라울 것도 없는 게, 온라인에서 우 리는 상대의 눈을 마주치지 않죠. 상대를 바라보지 않는 소통은 공 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워요. 트럼프 대통령이 다방면으로 멍청하다는 건 이미 증명되었지만 트위터에서는 한층 더 악독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만 봐도 그렇죠.
-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일찍이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던 '포식'에서 '생산'으로의 경제 변화가 전쟁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의외로 자원이나 새로운 토지를 획득하기 위한 공동 체간 경쟁은 전쟁 확산에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주민 과 토착민, 즉 초기 농업목축인과 최후의 수렵채집인 간 전쟁을 증명할 만한 자료 역시 매우 미미하다). 동물 사육과 식물 재배를 통해 식량을 생산하면 서 야생 자원을 활용할 때와 달리 잉여물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것은 이내 '소유'의 개념을 탄생시키며 불평등을 불러왔다. 축적된 식량은 곧바로 탐욕을 자극해 공동체 내부의 불화를 일으켰 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 노획물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체 간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 신석기 시대에 유럽에서 (동굴벽화와 무덤에서 볼 수 있듯) 지배계급과 전사계급이 등장한 것이 그 증거다. 이러한 변화 역시 농업목축업이 중 심이 된 사회에서 위계질서를 탄생시켰고, 엘리트 계급과 특권계급, 전 사와 전쟁포로(농업은 공동체가 제공하는 노동력보다 더 풍부한 노동력을 필 S로 했다. 그때부터 전쟁포로는 노예가 되었고 노예는 마치 가축처럼 자손을 퍼 트리며 공동체의 확대에 기여했다)를 차례로 출현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자기만의 이익과 경쟁을 추구하는 엘리트 계급의 등 장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내부 반목과 공동체 간 전쟁을 촉발시켰다. 사회의 위계질서는 지배자와 노예를 가르는 사회적 분열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의 형태로 드러나는 성차별을 불러일으켰다. 가부장제가 등장하고 남성우위 사회가 이루어지면서 여성의 역할은 폄하되고 남성의 활동은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전쟁터에 나서는 전 사의 역할은 남자아이를 위한 수많은 통과의례의 원형이 되었다.
공동체 간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 건 기껏해야 기원전 5500년 부터였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청동기 시대가 열리며 전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금속으로 정식 무기를 만들고 귀중품(값비싼 재산이었던 도끼 등 금속제품을 보관하는 저장소)을 소유하게 되면서 이 시기에 전쟁이 하 나의 제도로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전쟁과 폭력은 '문명'과 함께 하나의 몸에 머리가 둘인 샴쌍둥이처럼 동시에 확산되고 발전했다.
- 마셜) 지구온난화가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기후가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 관련되어 있어요. 일례로 강이 말라버리면 국가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고 국민들은 절망에 빠질 것이며 이웃 나라와 전쟁을 일 으킬 수도 있어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특히 중동 지역에서는요. 이것은 단지 제 의견만이 아니라 미 국방성, NATO, 군 전문가들의 의견이기도 해요. 역사적으로도 인간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겁이 많아지고 불안해하다가 결국 미친 짓을 저질렀죠. 인간의 본성 에는 양면성이 있어요. 한편으로 인간은 협동적이고 관대하며 이타적이죠. 태풍과 해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서로를 도울 거예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상황이 악화되면 인간은 서로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죠.
기후변화가 일으킬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희생양을 찾으려 할 것이라는 데 있어요. 홀로코스트가 그렇게 시작되었잖아요. 완벽한 열패감을 맛본 독일인들은 공격할 거리를 찾아야 했죠. 비록 해결책 과는 거리가 멀었어도요. 우리는 이미 극우 정치인들에게서 그런 현 상을 목격하고 있어요.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지는 추세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잖아요. 지구온 난화가 그런 현상을 확대하는 데 일조할까 봐 무척 걱정이 됩니다.
- “사람들은 역사를 만들지만 자기가 뭘 만들었는지 모른다.” 마르크스 에게 영감을 받은 프랑스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Raymond Aron이 한 말이 다. 이 표현은 다른 형태로 되풀이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 학자 에드가 모랭Edgar Morin 은 각각의 결정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으 며 때로는 누구도 원치 않은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킨다는 '행동생태학' 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다. 1914년 6월 28일 벌어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과 그로부 터 한 달 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6,500만의 군사가 동원되었고 2,000 만 명의 시민과 군인이 사망했으며 비슷한 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의 발발 사이에 유럽 주요국의 지도자들은 누구도 그 최종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일련의 선택을 했다. 바로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클라크Christopher Clark가 『몽유병자들 The Sleepwalkers에서 보여준 바다. 이러한 행위들이 불러온 최종 결과에서 드러나는 무분별은 역사의 흐름에(여기서는 무지함으로 간주되는) 어리석음이 개입했다는 가장 명징한 증거들 중 하나다. 나심 니콜라스 탈렙Nassim Nicholas Taleb는 그에 대한 원칙을 『블랙 스완Black swan』에서 다음 과 같이 일반화했다.
그저 단순하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하루 전날,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이 이해하고 있는 세상에서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 1933년 히틀러의 지지자들은 홀로코스트를 상상하지 못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면서 조지 부시와 매파는 그것이 이슬람 무장 단체가 활개를 치는 데 훌륭한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 는가.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가당치 않은 이유로 결국 그 지역에 재앙을 불러 온 전쟁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고 있다.
- 오만, 학술용어로는 휴브리스, 이는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어리석음의 또 다른 형태다. 그것은 거대함에 대한 열망이다. 열망의 근원 은 힘, 권력, 부, 특권을 향한 수컷들끼리의 경쟁이다. 그리고 힘에 대한 열망은 수많은 미친 짓을 감행하게 했다. 군주, 왕, 파라오, 기업가, 은행가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하 늘을 향해 우뚝 세운 기념비, '오만의 탑'들을 보자. 가장 유명한 탑은 쿠푸 의 피라미드다. 쿠푸는 그토록 높은 피라미드를 축조하며 하늘에 더 가까이 닿고 싶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상 선왕들보다 더 높은 피 라미드를 짓고 싶을 뿐이었다. 거대한 기념비를 축조하려는 이 무모한 경쟁은 고대 문명 전체를 관통하며 모든 거대 문명에서 관찰된다. 메소 포타미아, 이집트, 페르시아, 히타이트, 그리스, 로마, 중국, 인도, 앙코 르, 마야, 잉카, 아스테카에 이르기까지 최고 권력자는 권력을 드러낼 궁전, 사원, 피라미드를 건축하며 힘을 과시하는 데 열중했다.
중세시대에 건축에 몰두한 주교들 또한 이웃 교구보다 더 높은 첨탑 이 있는 대성당을 짓고 싶어 했다. 공식적인 명분은 신을 찬양하기 위해 첨탑을 높이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높은 첨탑은 인간의 세속적 욕망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뒤비Georges Duo 는 이렇게 썼다. “대성당의 크기와 장엄함은 건물을 지은 주교나 사제의 오만한 자존심을 드러낸다.” 
프랑스 중북부 우아즈주 보베Beauvais의 주교는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건축하기로 결심했다. “첨탑을 세울 겁니다. 첨탑이 서고 나면 그걸 본 사람들이 우리를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높은 첨탑을 요. 1569년에 세워진 대성당 첨탑의 높이는 153미터에 달했다. 그렇지만 첨탑이 서 있었던 기간은 고작 4년이었다. 예수승천대축일 미사가 끝난 후, 우르르 쾅쾅 요란한 소리가 났고 단 몇 초 만에 첨탑과 종이 무너져내렸다. 이후 첨탑은 절대로 재건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신흥 귀족도 유럽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로 부 르주아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경쟁에 돌입했다. 역사는 반복되었다.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은 언제나 더 높은 탑을 올린 궁전을 짓기 위 해 경쟁했다. 그런 궁전이 토스카나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13세기 피렌체에는 160채의 탑이 세워졌고 그중 일부는 높이가 70미터에 달했다. 건축가의 능력을 시험에 들게 한 여러 건축물이 다 지어지기도 전에 무너져 내렸다. 5세기가 지난 후, 자본주의의 열풍이 아메리카 대륙을 덮쳤고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 마천루가 경쟁적으로 건설되었다. 고대의 멘히르 든 베르사유 궁전이든 건축물을 세우는 주요한 동인은 오만, 야망, 질투, 이웃에 대한 증오 등 매우 저속한 것들이었다. 거대한 건축물의 비범함은 그 목적이 비합리적일 때에야 비로소 드러날 수 있었다.
- 인간사에서 어리석음의 지분은 늘 악의 지분보다 크다. (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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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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