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술은 당분에서 시작합니다. 미생물이 그 당분을 소비해 알코올로 만드는 것이 발효의 과정이기에, 발효를 길게 끌면 도수는 높은 대신 '드라이한 술이 되고 발효를 짧게 하면 도수가 낮으면서도 단맛이 강한 술이 됩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하는 건, 시대의 산물은 시대적 맥락 안에서 이해돼 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술의 뼈대가 만들어진 조선시대만 해도, 단맛은 어지간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고급스러운 맛이었습니다. 지금은 초콜릿을 비롯한 달콤한 디저트가 넘쳐나지만, 조선시대에는 꿀벌집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그 정도로 농축된 단맛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전통적인 술빚기 과정은 옛날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 을 안겨줬을 것이 확실합니다. 곡물이 누룩에 의해 당화되면 꽤 강렬한 단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술 중에는 알코올 도수는 거의 없이 단 맛만을 즐기기 위해 만들었던 '감주류가 존재합니다. 사우나를 마치고 즐 겨 마시는 식혜도 감주류의 일종입니다. 사대부들이 즐겨 마시던 청주는 자연스럽게 은은한 단맛을 띠는 쪽으로 발전했습니다.
- 청주(淸)는 탁주를 여과해 얻는 맑은 술입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술을 걸러진 정도로 구분해 왔습니다. 곡물 재료의 고체 성분이 많이 남아 있으면 탁주, 이것이 걸러져 맑으면 청주인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 며, 우리는 이 이름을 잃어야 했습니다. 일본이 우리의 청주와 한자가 같은 자신들의 술, 세이슈(淸)를 한반도에 도입하면서 둘을 구분하기 위해 조 선의 청주를 약주(美)' 라는 이름으로만 부르도록 법으로 규정했기 때문 입니다. 사케는 일본어로 '술'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술을 다 가리킬 수 있지만, 좁은 의미로는 그중에서도 세이슈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청주와 일본의 세이슈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만드는 방법이 크게 다릅니다. 우리 청주는 복합균의 덩어리인 누룩을 이용해 발효하고, 일본의 세이슈는 단일한 미생물로 이루어진 고우지()'로 발효를 시작해, 별도의 효모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완성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조상들이 전해준 전 통 방법대로 청주를 만들어도 ‘약주'라는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제정된 주세법이 아직까지 개정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탓입니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많은 분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우리술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관심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 탁주는 오늘날 막걸리와 동의어로 쓰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상 둘의 성격은 같다고 보기 힘들다. 모든 막걸리는 탁주이지만, 모든 탁주 가 막걸리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탁주는 우리술 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처음 마신 술은 탁주의 외양을 띠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술 만드는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하고 사 람들이 점차 도수가 더 높고 깔끔한 맛의 술을 원하게 되면서, 탁주를 가 만히 뒀을 때 위에 뜨는 맑은 부분만을 취해서 먹는 방법을 알게 됐을 것 이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술을 뜨는 과정에서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지게미가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한발 더 나아간 방법이 술주머니(주포)나 용수를 이용해 술을 여과하는 것이다. 즉, 필터링(Filtering)이다.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발효가 막 끝난 술덧 을 보면 얼핏 곤죽 같아 보인다. 여기에 대나무로 된 용수를 꽂으면, 그 안 에 맑은 술이 고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떠내는 것이 청주다. 청주를 다 떠 낸 지게미에도 여전히 알코올 성분은 남아 있다. 여기에 물을 타서, 다시 한 번 걸러낸 것이 바로 막걸리다. 여기서 막은 마구(함부로)’ 혹은 '바로'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버리기 아까운 술지게미를 마구 걸러서 바로 마시는 술, 그것이 바로 막걸리라는 이름에 포함된 뜻이다. 청주에 비해 맛도 향도 품격도 조금 떨어지는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값도 쌌을 것이고, 청주를 떠낸 뒤에 물까지 탔으니 알코올 도수도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 백성들이 밭일 나갈 때 허리춤에 한 병 차고 나가, 일하는 틈틈이 갈증을 달래는 용도로 마시기에는 안성맞춤이었을 터다. 귀하고 독한 청주를 노동주로 썼다간 돈도 돈이지만 몸이 먼저 배겨나질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형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는 이렇게 청주를 떠내고 남은 술을 상품화한 것이 아니라, '청주를 떠내고 남은 전통 막걸리와 비슷한 상태의 술을 밀가루나 쌀을 원료로 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밀가루 또는 쌀 고두밥에 일 본식 흩임누룩을 혼합해 당화를 일으키고, 여기에 효모를 첨가해 발효를 일으킨 뒤 감미료를 첨가하고 적당량의 물을 타서 도수를 6도 내외로 맞춘다. 이것이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변형된 막걸리의 제조법이다.
- 조선총독부 는 1916년에 ‘주세령'을 공포하면서 조선 내에서 만들어지는 술을 '양조 주와 증류주'로 나누는 한편 양조주는 청주, 탁주, 약주, 맥주 그리고 증류주는 소주, 고량주, 주정류로 구분해 놓았다. 여기서 청주는 조선식이아닌, 일본식 제조법으로 만든 세이슈(淸酒)만을 의미한다. 전통 누룩을 쓰는 조선식 청주는 약주(藥酒) 카테고리에 포함시켰다.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주세법상 주류 구분의 시초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조선시대에 청주를 부르는 별칭으로 약주가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경의 뜻을 담은 예법상의 표현 혹은 술을 마시는 것이 떳떳하지 못한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은어(隱語)였다. 우리 방식대로 만든 술에 청주라는 이름 자체를 쓰지 못하게 되면서, 청주 하면 으레 '일본식으로 빚은 술'이라고 연상하게끔 돼버린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술의 근간인 청주가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선, 주세법이 개정돼 우리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청주도 더 이상 약주가 아닌 본래의 이름 청주 그대로 불 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 탁주와 청주의 구분이 한반도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역사와 함께해 온 것이라면, 고려시대 이후 우리술의 분류법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 양조주와 증류주의 구분이다. 전통적으로 빚어 마시던 양조주 vs 새로이 도입된 기술로 이를 증류한 증류주'라는 구분법은, 종교적인 이유로 술이 금지된 나라를 제외하면 세계에 곳곳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다. 8세기 이후 중동 지역에서 증류법이 크게 발전하고 이것이 세계 주변 으로 퍼져나가면서, 지역마다 예전부터 존재했던 전통 양조주를 증류하 게 된 결과다. 유럽에선 맥주 vs 위스키, 와인 vs 브랜디가 여기에 해당하 고 멕시코로 가면 풀케(Pulque) vs 메스칼(Mezcal)이 이런 구분법에 맞는다. 아시아 각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황지우(黃酒) vs 바이지우(白酒), 일본의 도부로쿠 vs 사케, 라오스의 라오하이 vs 라오라오, 네팔의 창 vs 럭시 가 모두 이런 관계고, 우리나라의 술에서는 탁주와 청주 vs 소주가 여기에 해당한다. 양조와 증류의 상관관계를 알면 같은 맥락에 있는 다른 나라의 술도 더불어 이해할 수 있으니, 양조주와 증류주의 구분은 지역성과 보편 성이라는 기준에 더해 문화전파의 과정이라는 세계사적 시각으로 지구 상의 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틀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맥주의 원료는 제한적이다. 벨기에에서 만들어지는 몇 가지의 특 수한 맥주를 빼놓으면, 대부분 물, 보리, 홉, 세 가지 재료만 가지고 만든 다. 맥주의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독일 맥주순수령 (Reinheitsgebot, 1516년)의 영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한정된 재료로 만드는 맥주지만, 재료의 디테일에 따라, 조합의 비율에 따라, 양 조 방법에 따라 무수히 많은 변종이 존재한다.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맥주 의 스타일만 해도 100여 가지가 넘을 정도다. 맥주의 주재료 가운데 그 맥주의 개성을 좌우하는 것이 홉(Hop)이다. 처음에는 변질을 방지하고 쌉싸래한 맛을 더하기 위해 넣었던 재료였지만, 점차 사용되는 품종이 다 양해지면서 맥주 자체의 캐릭터성을 좌우하는 존재로 발돋움했다. 감귤 류와 비슷한 향(Citrusy)부터 흙이나 버섯 같은 향(Earthy)에 이르기까지 홉이 이끌어내는 향의 스펙트럼은 무척 넓다. 현재 양조에 쓰이는 홉의 품종은 약 250~300여 가지다. 한편 와인은 포도의 품종이 개성을 좌우한다. 1만여 가지가 넘는 전 세계의 포도 가운데, 양조용으로 널리 쓰는 것 은 50여 종류다. 묵직한 맛을 내는 카베르네 소비뇽, 과일맛이 강한 피노 누아, 부드럽고 매끄러운 메를로, 바닐라 향이 상쾌한 샤르도네처럼, 사람 들은 와인의 재료로 쓰인 포도의 이름에서 그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한 일차적인 정보를 얻는다. 간혹 우리술도 꽃이나 과일 같은 부재료를 쓰기도 하지만, 그에 비해 순수하게 곡식으로만 만드는 술의 가짓수가 압도적이 다. 맥주순수령을 준수하는 독일 맥주가 물, 보리, 홉 세 가지 재료로 만들 어진다면, 우리술의 메인스트림을 이루고 있는 순곡주는 물, 곡물, 누룩 세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중에서 맥주의 홉, 와인의 포도 품종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누룩이다.
- 전분(Starch)은 당 (Sugar)의 한 종류다. 이렇게 말하면 의문을 가질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당'이라면 입에 넣었을 때 달게 느껴져야 하는데 녹말가루(=보통은 감자전분)를 입에 털어 넣어도 단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분 이 다당류(Polysaccharide)'이기 때문이다. 즉, 당 분자가 여러 개의 사슬 처럼 연결돼 있는 형태다. 이런 다당류는 우리의 감각기관에 바로 흡수 될 수 없어 입에 넣어도 단맛을 느끼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효모가 가지고 있는 당-알콜 변환 기계에 넣기에도 덩어리가 너무 크다. 그래서 이 것들을 잘게 잘라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일부를 담당하는 것이 누룩 곰팡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효소라는 이름의 전기톱은 다당류의 사슬를 잘게 자르는 것에 특화해 있다. 이 작업을 통해 전분을 분자 한 개짜리 단당류 (Monogaeharicule, 반도당이 여기에 해당됨)나 분자 두 개자리 이당류 (Disaerharticle, 백아당이나 엿당)로 잘라주면 그제야 효모들이 일을 시작한다. 효모가 가지고 있는 변환기의 입구는 단당과 이당이 들어가기에 딱 맞는 크기다. 간혹 이 기계에 분자 세 개짜리 삼당 (Thisaccharicles)을 욱여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주변의 단당과 이당을 다 작업하고 나서 시간이 좀 남았을 때 하는 여가활동이다. 하여튼 이렇게 둘의 콤비워크가 딱 맞아 떨어지면 누룩곰팡이는 계속 주변의 전분을 썰고 다니고 효모는 그렇게 썰린 당분을 원료 삼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누룩곰팡이가 하는 절단 작업을 있어 보이는 말로 당화(Saccharitication)'라고 하고, 효모가 하는 변환 작업을 발효(Fermentation)'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당화와 발효가 동시에 진행되는 발효 방식을 병행복발효'라고 부른다. 당화와 알코올 발효가 동시에 (병행, 行), 둘 다 일어나는 발효라는 의미다. 이런 조어법에 의해 우리술과 달리, 당화를 모두 끝낸 후 발효를 시작하는 작업 방식은 '단행복발효(軍行複)'라고 부른다. 맥주를 발효시키는 방식이다. 발효의 과정은 술덧 내부에 효모가 작업 대상으로 삼을 당분이 모두 없어지거나 술덧 안의 알콜 농도가 높아져 작업을 해야 하는 효모가 여기에 살균(!)'돼 사라져버릴 때까지 계속된다. 효모 입장에서는 자신이 생산한 알코올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이니, 작업장에서 최종 생산품의 독성에 의 해 일꾼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일종의 산업재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래저래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는 술독 안은 치열하기 이를 데 없는 극한직업의 현장이다.
- 명인안동소주에서 현재 생산하고 있는 것은 45도, 35도, 22도, 19도의 네 개 제품군이다. 밑술은 안동 지역에서 난 멥쌀을 원료로 삼양 주 방식의 '3단 사입(발효)’ 기법으로 빚는다. 이 부분은 과거 제비원 소주의 전통을 명인안동소주가 잇고 있다는 증거다. 이 방법을 통해 밑술의 알코올 도수를 20도 넘게 끌어올려, 한 번의 증류로도 원하는 최종 도수 를 얻어낼 수 있다. 명인안동소주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전자제어가 가능 한 감압증류기를 이용해 45도면 45도, 35도면 35도에 맞게 정확하게 증 류해 낸다는 것이다. 비교적 낮은 도수의 소주라고 해서 증류 원액에 물 을 타는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증류 중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알코올 도수를 전자적으로 측정해, 증류액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과 끊는 시점을 정확히 맞춤으로써 원하는 제품을 얻는다. 세팅된 도 수에 따라 각기 다른 증류 시점에 받은 원액으로 만들기 때문에, 명인안동소주의 45도와 35도, 22도는 알코올의 작열감뿐만 아니라 맛 자체가 미묘하게 다르다. 그것을 느껴보는 것 또한 명인안동소주를 마시는 재미 중 한 부분이다. 명인안동소주는 증류식 소주임에도 불구하고, 증류 원액 의 필터링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자갈, 모래, 활성탄으로 구성된 필 터를 통해 잡스러운 향을 최대한 걸러낸다. 보통의 기압보다 낮은 환경을 조성해 더 낮은 온도에서 알코올이 끓어 나오게 만드는 감압증류의 특성과 이 필터링 공정이 합쳐져, 명인안동소주는 유독 깔끔하고 깨끗한 맛을 지녔다. 식품명인 타이틀을 함께 가지고 있는 故 조옥화 명인의 '민속주 안동소주'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 잘 드러난다. 분명히 쌀이라는 캔 버스 위에 증류식 소주라는 기본적인 색채를 공유하고 있지만, 한쪽은 두텁게 바른 유화, 다른 한쪽은 날렵하게 그린 아크릴화의 느낌이다. 이렇 게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이름으로 생산되는데도 불구하고 다르게 느껴지는 지향점과 철학이야말로 우리술의 다양성을 좀 더 풍성하게 해주는 자산이다.
- 누룩은 다양한 미생물의 복합체다. 누룩을 띄우는 장소에 살고 있는 곰팡이와 효모균을 불러들이는 초대장이자, 그들이 술덧과 만날 수 있도록 운반해 주는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 교감하는 방 식의 전통 누룩을 많이 쓰게 되면 빚을 때마다 일정한 맛을 내기가 힘들어지기도 하고, 워낙 다양한 맛과 향이 나는지라 그런 술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음용성을 강조하며 우리 누룩보다 일제강점기에 전해진 개량 누룩, 입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현재의 문배술은 23도, 25도, 그리고 오리지널 라인업인 40도 이렇게 세 가지의 도수로 출시되고 있다. 23도와 25도를 구분해 제조하는 것은 마트 시장과 주점 시장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상품을 내기 위함이다. 23도는 마트용, 25도는 식당과 주점용이다. 이들 저도수 버전은 희석식 소주의 아성을 허무는 한편, 여기서 문배술의 맛을 알게 된 소비자들을 플래그십 상품인 40도로 유인하기 위한 초청장 역할도 담당한다. 수 수와 조 이외에도 쌀이 첨가돼 좀 더 부드러운 맛을 내지만, 카사바나 고구마 주정을 물로 희석하고 감미료로 맛을 낸 희석식 소주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다채로운 맛의 스펙트럼을 담고 있다. 원주 상태로 6개월간 숙성한 뒤, 도수를 맞추기 위해 물을 혼합하는데 이때 알코올과 물이 따로 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 나흘 동안 기계를 이용해 뒤섞는 공정을 거치는 것이 맛의 핵심이다.
문배술 40도는 5대에 걸친 이씨 가문의 의지와 정성이 깃든 술이 다. 메조에 곰팡이균을 접종시켜, 조 누룩을 만들고 이것으로 찰수수 고 두밥을 발효시킨다. 이 방법은 아마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분의 양이 부족한 조와 수수를 가지고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기 위해 이씨 집안에서 개발한 방법으로 보인다. 쌀알에 곰팡이균을 접종시키는 일본식 입국제조 방법을 전통적인 잡곡술 제조 방법에 접목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 번 덧술하는 삼양주법으로 증류의 밑술을 만들게 되는데, 아쉽게도 이 단계의 술은 양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만 나눠 마신다고 한다. 다음 에 방문하게 되면 떼를 써서라도 맛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조와 수수는 쌀보다도 더 단백질과 향미 성분이 풍부하다. 낱알이 작아 전분의 양이 적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도수를 얻기에 불리하고 미세 한 찌꺼기가 설비에 침전되기 쉬워 공정 관리가 까다로운 측면이 있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매력적인 향을 지녔다. 중국의 바이주를 빚는 대표 곡식 이 수수(고량)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수수 술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을 보면 비단 이 곡식이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맛과 향이 뛰 어나기 때문에 술의 재료로 선택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조한 밑 술에서 20도 내외의 도수가 나오기 때문에, 한 번의 증류로 40도 언저리 에 안착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는 향을 조금 손해보더라도 잡스러운 성분이 올라오지 않는 감압증류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안에 서도 기압을 조절해 어떤 향을 어느 정도로 올라오게 만드는가는 전적으로 마스터 디스틸러(Master Distiller)의 기량에 달린 몫이다.
- 식사 내내 음식과의 어울림을 즐기며 함께 마시는 술로는 와인이 대표적일 것이다. 불어로 '결혼'을 뜻하는 마리아주(Mariage)'는 와인과 음시의 궁합을 뜻하는 용어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나부터도 카베르네 스비뇽을 필두로, 메를로, 피노 누아 같은 붉은 포도와 샤도네이, 소비뇽 블랑, 피노 그리 같은 청포도 품종으로 만든 술이 각각 어떤 음식과 어울리는지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대체로 이런 와인들은 그다지 달지 않다.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와인은 만찬 자리의 주역을 차지하지 못한다. 식사의 끝에 후식과 함께 순서를 기다릴 뿐이다.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첫 모금에 맛있다고 느끼는 아이스와인이 디저트 와인의 대명사인 이유다.
단맛은 우리가 유인원 시절부터 찾아 헤매던 맛이다. 잘 익은 과일 의 맛이고,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에너지의 맛이다. 우리가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없는 대상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식사의 순서에서, 단맛 은 맨 마지막에 몰려 있다. 강한 단맛이 느껴지면, 우리의 뇌는 이제 충분 한 영양을 섭취했다고 해석해 식사를 그만해도 좋을 때라는 신호를 보낸 다. 식욕이 사그라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식사를 마감하는 단계에서 우리 는 집중적으로 단것을 먹어 식욕의 불을 꺼뜨리고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한다. 그런 맥락에서, 단 술의 순서는 식사 맨 끝이 자연스럽다. 그만큼 단 맛은 우리를 단번에 매혹시키는 맛이면서, 우리의 미각을 쉽게 지치게 만드는 맛이기도 하다. 밤이 새도록 긴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술자리의 동반자로 아이스와인을 골랐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자리 일수록 심플하면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술이 환영받는다. 식사 내내 다채 로운 음식들의 맛을 뒷받침해 주면서 길고 은근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는, 단맛을 적절히 억제한 대신 탄탄한 캐릭터를 구축한 술이 제격이다.
- 우리가 마시는 술 속에는 거의 400여 가지의 성분이 들어 있다. 와인을 예로 들면, 알코올 도수가 13도라고 할 때, 그중 86.9퍼센트는 물이고 13퍼센트가 알코올, 그중에서도 에틸알코 올이다. 그 나머지 성분을 다 합한 것이 전체의 0.1퍼센트에서 0.2퍼센트 를 차지한다. 이런 것들을 '미량성분이라고 한다. 에틸알코올과 물, 그리 고 미량성분이 다 합쳐진 것이 바로 술이다. 전체 성분 구성에서는 한없이 작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술에서 느끼는 매력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이 미량성분에 달렸다(미량성분이 전혀 없는 13퍼센트짜리 알코올 희석액을 마신다고 상상해 보라!), 색, 향, 맛, 숙취도가 모두 이 0.1퍼센트에서 결판난다. 이것들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려는 시도는 금방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 잡스러운 성분을 넣지 않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알코올의 무게감과 미량성분이 주는 매력이 잘 조화된, 빛깔마저 아름다운 술. 그런 술을 우리는 명주라고 부른다.
- 과일은 곡물보다 술을 빚기에 더 쉬운 재료다. 단맛이 나는 과일이라면, 이론상 어떤 것이든 와인으로 만들 수가 있다. 껍질 부분에 술을 만드는 미생물인 효모가 붙어 있고, 내부에 알코올의 주원료인 당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환경만 만들어주면 쉽게 발효가 일어난다. 내부의 전분을 '당화'라는 과정을 거쳐 당분으로 만들어야 하고, 외부에서 효모균을 어렵사리 모셔와 투입해야 하는 곡물 양조주에 비하면 몇 단계의 수고를 더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포도는 수분의 함량이나 과실의 단단한 정도가 적당해 으깨기 쉽고, 일단 으깨놓으면 껍질의 효모 때문에 바로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에 과실 중에서도 술을 빚는 데 사용된 역사가 가장 길다.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조지아에서 8천 년 된 와이너리 유적이 발견되는 것은 이런 이유다.
- 사과와인은 유럽에서 포도와인과 경쟁하며, 때로는 서로 보완하며 발전해 온, 오랜 역사가 있는 술이다. 높은 기온과 풍부한 일조량을 필 요로 하는 포도에 비해 사과는 좀 더 높은 위도에서도 잘 자랐기에, 영국 일대와 프랑스 북부에는 이 술이 흔했다. 프랑스에서는 2차세계대전 이 전까지만 해도 시드르가 포도와인보다 더 대중적이었다. 프랑스 시드르는 영국의 사이더와 만드는 방법에서 차이가 난다. 영국에선 원료의 35퍼센트 이상이 사과인 경우 사이더라는 이름을 쓸 수 있지만, 프랑스에선 오로지 사과 100퍼센트로 만들었을 때만 시드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 소곡주를 만드는 과정은 멥쌀을 갈아 백설기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떡을 잘 부순 뒤 누룩즙을 섞어 3~4일 발효시키면 밑술이 되는데, 여기에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덧술을 한다. 이때 메주콩과 말린 구절초(들국화)를 함께 넣어준다. 메주콩은 술이 시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상들이 쓰던 처방이고, 구절초는 특유의 향을 더해주는 것과 함께 발효 과정에서 잡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아준다. 보통은 덧술하는 과정에서 알코올 도수를 조정하기 위해 후수(後水, 물을 더 넣어줌)를 하게 되는데, 소곡주는 밑술 때 한 번 물 양을 잡으면 이후에는 더 이상 물을 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특유의 진득한 질감과 진한 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독하고 진한 술을 꺼리는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 추기 위해 한때 제조법을 바꿔볼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이내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물을 타서 묽게 만든 것을 출시해 본 결과, 소비자들이 오 히려 떠나가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계절이 바뀌어도 한결같이 진한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노력의 방향을 바꾸었다. 현미경으로 누룩 속 효모균의 상태를 파악하고, 혹시라도 젖산균이 섞여 들어가 산미가 올라오는 것을 방지한다. 그리고 겨울에 시작해 봄에 술빚기를 마무리했던 조상들의 방법대로, 저온 창고에서 백 일 이상 장 기저온발효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재료의 향을 조화시키고 감칠맛 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한산소곡주가 조상들이 만들던 방식을 그대 로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또 있다. 발효 준비를 마친 술덧에 부 정을 막는 의미로 붉은 고추를 박아놓는 것이다. 미생물의 작용이 과학적 으로 규명돼 있는 오늘날에는 생략해도 되는 과정일 수 있겠으나, 그만큼 술에 정성을 쏟던 집안 어른들의 뜻까지 이어받으려는 마음이라 하겠다. 술맛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이런 디테일들이 모여 술이 가진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 1960년대 후반 들어 쌀을 막걸리 제조에 쓰지 못하게 되고 밀로 만 만들게 되면서 양조업자들이 해결해야 했던 가장 큰 과제는 밀이 가진 텁텁함, 그리고 짧은 발효 과정에서 생기게 되는 쓴맛을 가리는 일이었다. 원료로 찹쌀을 쓰고, 시간을 충분히 들여 발효를 하면 술맛이 쓰게 될 일이 없건만, 나라에서 법으로 정한 테두리 안에서 술을 만들어야 하는 업자들의 입장에서는 좋던 싫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동 안 우리 막걸리에 필수 성분처럼 들어가던 감미료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 됐고, 초기의 사카린에서 좀 더 천연 물질에 가까운 아스파탐으로, 그리 고 아예 스테비아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자연 물질 스테비오사이드로 변 화해 왔다. 그것을 넣는 함유량은 시대별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계속 변화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것을 넣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쟁은 음식에 MSG를 넣는 것이 맞냐 틀리냐 하는 것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옳고 그름보다는, 어느 정도의 가격대에 맞춰 어떤 제품을 선택할 것인가 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 제주의 토양은 화산암이 풍화돼 만들어졌다. 그래서 빗물이 고이지 못하고 바로 지하로 스며든다. 이런 땅을 제주어로 뜬땅'이라고 한 다. 뜬땅에서는 자랄 때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벼를 키우기 힘들다. 그 보다 생명력이 강해서 비탈지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조와 보 리가 제격이다. 특히 제주어로 ‘오메기'라고 부르는 조는 제주 사람들 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곡식이었다. 제주의 양갓집에서는 좁쌀의 가 루를 내어, 뜨거운 물로 반죽하고 잘 치대서 떡을 빚었다. 낱알의 크기 가 작아 전분이 많지 않으므로, 반죽을 섬세히 다루지 않으면 이 단계에 서 망쳐버리기가 십상이다. 이렇게 만든 떡을 오메기떡이라고 불렀다. (지금 제주의 면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팥고물이 묻어 있는 오메기떡은 이것과는 다른 오메기경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물건이다). 오메기떡은 그대로 손님에게 대접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쓰임이 있었다. 바로 이 떡을 바탕으로 제사와 잔치에 쓸 술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메기떡을 삶아서 절굿공이로 잘 짓이긴 뒤에, 누룩가루를 섞어 술항(술 항아리)에 안치고 물을 부어 온도를 맞춰주면, 며칠 안으로 발효가 시작된다. 여기에 조와 보리를 섞 어 지은 고두밥을 넣어주고 20일가량 기다리면, 노랗고 진하면서 도수가 높은 술이 뜬다. 이를 떠내 거른 것이 제주식 청주인 오메기맑은술이다. 이 오메기맑은술을 옹기로 만든 고소리(제주식 증류기)에 넣고 끓여서 받은 것이 고소리술이다.
- 발효 기술의 발전은 술빚기에서만 빛을 발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장 잘 담그기로 주변 나라에 소문이 자자했다. 고대국가 중에서 발효음식으로 가장 이름을 떨친 곳은 고구려다. 3세기경 중국의 진수가 쓴 《삼국지위서 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을 보면 “고구려가 장 양(襄)을 잘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장양'은 장 담그기와 술빚기를 아우 르는 발효처리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이때 이미 고구려인들은 곡 물의 전분을 누룩 혹은 보리의 싹(Malt=엿기름)을 이용해 당화시키고, 이것 으로부터 술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두만강 일대가 원산지인 대두를 가지고 메주를 빚고 된장을 담았으며, 수수와 쌀로는 술 을 빚었다. 고구려, 그리고 이웃한 부여 사람들은 가을에 이렇게 빚은 술과 음식을 가지고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연일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
- 서양에서 가톨릭 수도원들을 빼놓고는 와인과 맥주의 역사를 이 야기할 수 없다. 샴페인을 처음 만든 것은 베네딕트 수도회의 돔 페리뇽 수사였고, 아직도 유럽 최고의 맥주로 평가받는 것은 벨기에를 중심으로 하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인증을 거친 맥주다. 일본에서도 불교 사원이 절임채소(쓰케모노)와 사케의 발전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같은 이 유로, 고려시대에도 사원에서 빚는 술과 누룩이 민간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됐다. 종국에는 승려들이 수행에 정진하는 것보다 외려 상행위에 집중하 므로 폐단이 크다는 여론이 일어, 현종 원년(1010년)에는 나라에서 법으 로 승려들의 술빚기를 금해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쉽게 상상할 수 있 듯, 그런 법령은 산골 깊은 곳의 사찰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양조장을 없앨 수 없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왕명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에서 역설적 으로 이 명령이 별 효과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사찰에서 술을 빚는 전통 은 조선조를 관통해 근대까지 유구히 이어졌고, 구한말에도 동래의 범어 사, 양산의 통도사 등에서 만드는 누룩이 유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며 불교계의 자정 운동으로 이러한 사찰 양조의 전통이 많이 사라졌는데, 부처님 보시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불가의 술 속에 담긴 화엄의 향기를 통해 열반의 세계를 더듬어라도 보고 싶었던 술꾼의 입장에선 못내 아쉽기만 하다.
- 우리술과 관련된 고려시대의 가장 큰 이벤트라면 원나라로부터 소주가 전래된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술의 종류를 크게 둘로만 나누라 면 양조주와 증류주로 구분할 수 있다. 양조주는 당질 재료를 가지고 알 코올 발효를 일으켜 만든 술로,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알코올 도수가 20도 를 넘기기 힘들다. 그 이상의 고농도 알코올에서는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 물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초의 술이 나타난 이후 8천 년 에 걸쳐, 인류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 수 있을지 궁리 를 거듭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 8세기경이다. 바그다드를 중심으 로 하는 일군의 연금술사들에 의해 다듬어진, 알코올 증류법이라는 첨단 기술은 서쪽으로는 무어인의 다우선(Dhow船)에 실려 유럽과 아프리카, 인 도로 전해졌고, 동으로는 바그다드를 침공했던 몽골 기병의 말안장에 매 달려 중앙아시아와 중국, 만주 일대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가장 동쪽 끝에 고려가 있었다.
- 지금도 멥쌀을 위주로 만든 술은 찹쌀술에 비해 맛이 더 드라이하고 깔끔한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고려시대에 찹쌀은 없고 멤쌀뿐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던 듯하다. 1236년에 간행된 고려의 의약서 《향약구급방(藥救急方)》에는 약재로 나미(棉米)’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찹쌀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유사》에 이미 까마귀에 게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등장한다. 하지만 찹쌀은 한반도의 자연 여건상 멥쌀보다 키우기가 까다롭다. 지금도 전체 쌀 생산량의 10 퍼센트 내외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찹쌀은 멥쌀보다 귀 한 쌀 취급을 받았다. 일상에서 밥으로 먹는 것은 멥쌀, 절기 때 별식으로 먹는 것은 찹쌀이라는 구분이 일찍부터 통용됐다.
- 조선으로 넘어오며 사대부 집안에서는 제사 때 사용되는 가양주 를 직접 빚는 것이 일상이 됐다. 자연스럽게 상류층을 중심으로 좀 더 고급스러운 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됐고, 이것이 찹쌀로 빚는 술이 많아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찹쌀은 멥쌀에 존재하는 아밀로오스(Amylose)라는 녹말 성분이 들어 있지 않고, 오로지 아밀로펙틴 (Amylopectin)이라는 종류의 녹말로만 이루어져 있다. 아밀로펙틴은 아밀로오스에 비해 조직이 느슨해, 열을 가하면 쉽게 찐득해진다. 이런 이유로 찹쌀은 가열했을 때 멥쌀보다 더 쉽게 부드러워지고, 누룩을 섞으면 여기에 포함된 당화 효소 성분이 이완된 분자구조 사이에 쉽게 침투할 수 있어 더 많은 당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이야 단맛에 대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맛 쉽게 질리는 맛' 등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거에는 단맛이 그 자체로 사치스 러움과 고급스러움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개량을 거치지 않은 토종 과일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어렵게 야생의 벌꿀을 구해야 겨우 대등한 단맛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였기에 곡물발효주를 만드는 과 정에서 얻어지는 단맛은 그 자체로 선(善)이었다. 찹쌀로 빚은 술은 멥쌀로 만든 것에 비해 더 진한 단맛과 진득한 바디감을 제공한다. 또한 양조의 과정을 컨트롤하는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단순히 찹쌀로만 빚는 것이 아닌, 멥쌀과 찹쌀을 혼합해 쓰거나 밑술에서는 멥쌀을 쓰고 덧술에서 찹쌀을 쓰는 등의 베리에이션이 가능하게 됐다. 이렇게 만드는 방법의 디테일이 풍부해지면서 술의 종류 역시 더욱 다양해졌음은 물론이다.
- 양조의 형식에서는 여러 번 덧술하는 중양주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곡물로 술을 만들 때, 서양의 경우에는 곡물 안에 들어 있는 전분을 당으로 만드는 작업 (당화)을 마친 후에 발효를 시작한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술빚기에서는 누룩을 사용하기에, 당화와 알코올 발효를 동시에 진행 시킬 수 있다. 누룩이 당화제인 누룩곰팡이와 발효제인 효모의 복합체인 까닭이다. 이런 형태의 발효 과정에서는 당이 생성(=누룩곰팡이의 작용)되는 즉시 알코올로 변환(=효모의 작용)되기에 효율적으로 알코올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술빚기에 투입된 전분질 재료 (쌀, 수수, 조 등)가 당 화를 거쳐 알코올로 변환된 이후에도 미생물의 활동성이 남아 있기 때문 에 여기에 전분질 재료를 더 넣어주면 다시 발효가 일어나며 그 결과 알코올 도수도 더 높아진다. 이 과정은 마치 다단로켓의 발사 과정과도 흡사하다. 로켓을 우주로 쏘아 보낼 땐, 연료를 다 써버려 추진력이 약해지 면 다시 그다음 단 로켓(부스터)에 불을 붙여 추진력을 유지해 주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밑술의 전분질이 당을 거쳐 알코올로 변환돼 미생물이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지게 되면, 다시금 전분질을 보충(덧술)해 줌으로 써 미생물의 활동성을 유지하고 발효를 더 오래 끌고 갈 수 있다. 이 방법 을 쓰면 양조주의 알코올 도수의 한계치라고 할 수 있는 20도 가까이 도 수를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하며, 비교적 적은 양의 효모균으로도 효율적 으로 발효를 진행시킬 수 있어서 누룩을 많이 넣을 필요가 없어진다. 이로써 자칫하면 술의 향을 해치게 되는 누룩 냄새가 과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발효가 오랜 기간을 두고 진행되기 때문에, 술맛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더 풍부한 향이 깃들게 된다.
- 이렇게 단계별로 전분질을 보충해 주는 덧술 과정을 통해 알코올 발효를 진행하는 것을 '중양주법(重讓酒法)이라고 부르며, 중양주법에 의해 만들어진 술을 중양주라고 한다. 중양주는 다시 덧술한 횟수에 따라 이양주, 삼양주, 사양주, 오양주 등으로 나뉘며, 우리 문헌에는 다양한 이 양주, 삼양주에 더해 오양주인 동파주(東坡酒), 칠(七)양주인 분국상락주 (孝烈桑落酒)를 빚는 법이 전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덧술을 하지 않는 단 양주의 경우에는 들어가는 품이 적어 값이 싼 대신 맛과 향이 비교적 덜 하고 알코올 도수도 낮다. 하지만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급히 술이 필요할 때나 발효를 오래 끌기 힘든 여름철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레시피들이 많다. 이양주가 되면 단양주에 비해 도수도 높고, 향도 좋아지며 술의 양도 늘어난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이양주가 조선의 술꾼들 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었던 카테고리였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삼양주 이상이 되면 도수가 높으면서도 술맛이 부드러워지고, 곡물 재료가 가지 고 있는 향이 극한에 이르도록 발현돼 술에서 넣지도 않은 꽃이나 과일의 향기가 나게 된다. 이를 아름다울 방(芳)자를 써서 방향(芳香)이라 일컫는 데, 우리술이 가진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향을 품 고 있는 데다가 색마저 맑고 밝은 황금색을 띠는 고급스러운 술을 만들기 위해, 많은 수고로움과 긴 시간을 감내하고 중양주를 빚게 됐던 것이다
- 일제강점기에 아예 쌀이 한 톨도 들어가지 않은 소주도 선보이기 시작해 점차 규모를 키워나간다. 동남아시아에서 자라는 사탕수수의 즙으로 설탕을 만들고 나면, 부산물로 당밀이 남는다. 이를 미생 물이 분해하기 쉽도록 염산, 유산(流=황산) 등으로 처리하고 효모를 점 가하면 알코올을 함유한 술덧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영국에서 도입한 연속식 증류기에 넣어 증류하면 85퍼센트 이상의 고순도 식용 알코올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주정이다. 주정을 물에 희석하고 부족한 풍미를 보충하기 위해 기존 방식의 소주를 약간 섞은 것을 당시에는 '신식소주' 혹은 '기계소주'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우리가 마시고 있는 희석식 소주의 조상이다. 지금에야 전통 증류식 소주에 비해 풍 미가 떨어지는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처음 등장했을 땐 오히려 과학 기술의 총아로 환영받았다.
- '막걸리=다음 날 머리 아픈 술'이라는 오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도 막걸리 제조에 밀가루가 주원료로 쓰이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부터 다. 밀가루는 쌀과 비교했을 때 단백질 함량이 더 높아 미생물에 의한 발효 과정에서 숙취의 원인 물질이 더 많이 생성되는 특성이 있다. 게다가 생산 마진이 높지 않은 막걸리의 원가를 낮추고 제조 기간을 줄이기 위 해 술에 넣지 말아야 할 첨가물을 넣다가 적발된 업자들도 많았다. 위생 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만들다 보니, 잡균 증식을 억제하기 위해 살균제로 피크르산 같은 화학물질을 넣은 경우도 있고, 밀가루가 발효될 때 생기는 과도한 신맛을 중화하려고 알칼리성을 띠는 양잿물을 타기도 했다. 도수가 낮아 밍밍하고 싱거운 맛을 보완하기 위해 고삼(苦蔘, 쓴맛을 내는 콩과의 풀)을 넣은 사례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적어도 피부는 좋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 술과 관련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데 있어서는 문화의 진흥 보다는 세금 징수의 편의를 더 우선하는 흐름이 계속됐다. 대한민국 정부 가 일제강점기의 주세령 체계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생겨난 당연한 결 과이기도 했다. 1961년에 탁주와 약주의 공급 구역 제한이 생겨나고, 이 듬해에는 막걸리의 경우 양조장 주소지와 동일한 시, 읍, 면 안에서만 팔수 있도록 하는 법이 제정된다. 한 지역에서 생산된 술이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지 못하도록 칸막이를 쳐버린 것이다. 별도의 냉장 보관 시설이 없던 당시에 술을 장거리 운송하다 보면 변질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내 려진 조치였지만, 이는 결국 경쟁을 제한해 양조장으로 하여금 새로운 기 술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또한 1962 년에는 재무부 지시로 '동일 지역구 내 주류제조자 전원이 자율적으로 결속하여 주류를 합동 제조코자 할 경우의 면허 사무 취급 요령이 하달된다. 요약하자면, 한 지역 안의 영세한 양조장들이 통폐합할 수 있도록 행 정적 지원을 하라는 이야기다. 질 낮은 술을 만드는 영세 양조장을 정리 한다는 취지였지만, 이 또한 세금을 편하게 걷을 수 있도록 납세자의 덩 치를 키우고 숫자를 줄인다는 발상에서 나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73 년에는 지방 군소 주류업체를 통폐합하고 소주 제조업체를 1개 도(道)에 한 곳만 허용한다는 방침이 시행된다. 충청권의 예를 들면 충남, 충북의 소주업체 33곳을 합쳐서 금관주조라는 회사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자리 잡은 소주회사가 서울과 경기의 진로(현 하이트진로), 강원도의 경월(이후 두산을 거쳐 롯데주류에 인수), 대구와 경북의 금복주, 부산의 대선, 경남의 무학, 전남과 광주의 보해, 전북의 보배(이후 하이트진로에 합병됨), 충북의 백학(현 충북소주), 충남과 대전의 금관(이후 선양주조로 사명 변경, 현 맥키스컴퍼니) 등이었다. 무지막지한 강제적 통폐합에 업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 왔지만 정부는 당근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1973년부터 주류제조면 허 신규 발급을 중단해 기존 사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조치를 취했 다. 또한 소주는 1976년부터 자도 소주 구입 제도'라는 것을 실시해 소주 판매업자가 영업 소재지에서 생산되는 자도(白道) 소주를 50퍼센트 이상 취급하도록 강제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술 시장은 큰 자본을 가지 고 있는 몇몇 회사들이 과점 형태로 독식하는 무대가 돼버렸다. 굳이 새로 운 양조 기술을 개발하거나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술은 팔렸고 경쟁자의 출현은 2중 3중의 규제에 의해 가로막혔다. 술꾼들 은 앞에 든 술잔에 담긴 술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비교해 볼 기회마저 빼앗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제 발전과 함께 맥주가 주류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맥주는 빠르게 대중주의 위치를 점해 간다. 우리술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막걸리는 1974년 전체 주류 시장의 74.2퍼센트를 차지했던 것이 정점이었다. 그 이후기술개발이 정체되고 밀주와 불량주류 등 안 좋은 이미지가 쌓여 가며 점차 소비자들을 잃고 판매량이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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