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방적의 경우 겨우 몇 년 사이에 놀라운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짐. 공장방적은 수제방적보다 생산성이 300배 이상 높음. 그러나 농업분야의 생산성 향상은 어렵게 얻어진 것임. 성장호르몬과 항생제를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소의 성장을 촉진하고, 초대형 사육장에서 옥수수 사료를 먹여 키우는 일은 동물과 인간, 환경이 건강할 수 있는 한계와 즉각 충돌함. 비슷한 맥락으로 기계 채취를 견딜만큼 단단하면서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토마토를 조작하는 일은 맛과 영양적 가치의 경계에 맞부딪힘
- 자본은 노동계층을 세분화하고, 해체하고, 사기를 꺾음으로써 노동력을 재상품화하려는 싸움을 늘 해왔던 반면, 노동자들은 한정적으로나마 노동력의 비상품화를 달성하기 위해 항상 싸워왔음.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다른 상품 투입물과 다를 바 없이 노동력이 고분고분하고 수동적일 때, 일방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가 가장 쉬움. 자본주의적 농업은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 상품화에 늘 곤란을 겪어 왔는데, 그 이유는 농사에 필요한 계절적 조건과 수확작업이 요구하는 고된 작업같은 특징 때문. 이는 오랫동안 가족농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었던 큰 이유임.
- 자본축적으로 농업생산은 점점 더 자본주의화 되었고, 경우에 따라 작물생산량이 두세배 오르기도 했음. 하지만 이는 많은 전문가가 현행 농업 및 식량체제를 지속불가능한 관행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엄청난 사회비용을 담보로 얻어진 성과였음.
- 수요측면에서 보면 컨슈머리즘의 중요 핵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원하게 하는 것. 의류산업에서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을 위해 트렌드를 규정하는 패션업계가 그러함. 어떤 의미에서 패션은 먹거리와 행보가 비슷. 매년 더 많은 가공을 거친 수많은 신제품이 소개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마케팅과 광고는 어린이를 겨냥. 아이들은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고, 새롭게 매혹적인 방식으로 결합한 설탕과 기름, 소금의 맛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
- 비교적 저렴한 차에서 고급차를 아우르는 범위가 거의 매년 이루어지는 모델교체와 연계하면서 자동차는 현대사회에서 지위를 나타내는 주요 상징 중 하나가 되었고, 따라서 정체감 형성에 도움을 주는 중요수단이 됨. 자동차가 인기를 끌게 된 주요원인은 석유에너지를 소유주가 원하는 대로 배치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 운전자들은 이제 어떤 지점과 지점 사이를 그 어느때보다 빨리 도달할 수 있게 됨. 바로 그들의 발 밑에 가속의 힘이 있음. 자동차는 공간을 가로질러 가는데 필요한 양의 시간을 압축하는, 시간의 완전한 공간정복으로 보임. 그와 같은 행동의 자유와 권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이 되면서, 자동차는 필수품일 뿐만 아니라 커다란 쾌락의 근원이 되었음.
- 복지국가는 대부분 전쟁국가의 모습이었음. 일부 복지는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갔지만, 대체적인 복지(납세자의 돈)은 보조금의 형태로 군산복합체, 대기업, 부농에게 간것이 사실. 대기업이 받는 혜택으로는 보조금, 세금우대, 조건부 국외원조, 국외시장을 개방하는 무역협정, 무역보호, 그리고 정부와의 계약에서 실비정산이 보증된 이익 등이 있음.
- 당분은 많이 섭취할수록 더 많이 원함. 당분에 절은 식품이 자본에는 돈벌이가 되고 인간에게는 위험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욕구, 과도할 지경까지 이른 당분에 대한 욕구 때문. 그 결과 더 많은 가공식품의 단맛이 강해질수록 소비자들은 그 식품을 더 찾게 되고, 더 뚱뚱해져감. 최근 미국 공중위생국장은 곧 비만이 담배처럼 많은 이들을 죽게 할 것이라고 경고.
- 전세계 인구중 절반은 땅을 생계수단으로 삼아 피땀흘려 열심히 일하는데도, 세계 식량체제는 그런 사람들 대부분을 가난에 찌든 상태로 머물게 함. 아이러니하게도 개도국의 식량생산자는 양질의 식단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살 형편이 못됨.
-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캐나다, 멕시코 및 미국의 비준을 받게 되면서 보조금으로 무장한 미국산 옥수수가 보조금 혜택이 없는 멕시코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미국으로부터의 옥수수 수입량은 단기간에 세배나 뜀. 그 결과 단 10년만에 미국이 자국 생산 옥수수의 25%를 멕시코에 공급하게 되면서 170만명에 달하는 멕시코 농부는 농사를 포기. 이 농부 중 다수가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감. 북미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된 이래 멕시코 시골지역 인구 80%가 빈곤층으로 살고 있음. 이전에는 거의 식량자급상태였던 멕시코고 지금은 40%에 해당하는 식량 대부분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음.
- 커피의 탄생지로 여겨지는 에티오피아는 커피가 수출 총수입의 67%를 차지할 정도로 커피 의존성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임. 그토록 극심한 기근에 직면한 나라가 경작지로 가장 좋은 땅을 수출용 커피 재배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불합리하긴하지만 현 국제 채무체제가 긴급하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임. 에티오피아 커피농이 라테 원가중 1%에 해당하는 액수 이상만 받는다면, 원두를 골라내는 노동자가 일당 96센트보다 많이 받는다면, 혹은 부대를 트럭에 싣는 노동자들이 일당 2달러보다 많이 받을 수만 있다면 에티오피아가 이렇게 가난하지는 않을 것임
- 문제의 본질은 개도국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열대작물 덕분에 막대한 이익을 보는 쪽은 음식사슬에서 소비를 좌우하는 초국가 기업이고, 음식사슬의 생산 쪽은 턱없이 적은 돈을 받는다는 사실. 1989~1991년에 커피 생두가격이 50%하락했을 때에도 최종소비자 가격은 1%만 하락했고, 당연히 그 차액을 챙긴 것은 기업들이었음.
- 각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것과 내적인 욕망은 소비자 주권에 의해 극대화됨.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적인 욕구는 자본주의의 추진력을 통해 정당화됨. 이러한 생각은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미숙한 소유적 개인주의를 극도로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과정을 전체적으로 왜곡한다는 점. 이것은 자본주의를 실제모습보다 훨씬 민주주의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허구임.
- 패션과 신분에 관련된 기타 상품의 경우, 특정 상품의 소유와 연관이 있는 사회적 신분 역시 사회와 관계되면서 구성됨. 설탕이나 담배 같은 상품들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고, 이는 욕망을 형성. 소비자들은 특정 상품이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유혹을 받음. 하지만 결국 소비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의 사회 및 환경비용 전부에 관해 권리를 행사할 자원이 있거나 그에 대한 정보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경우는 드뭄. 면 티셔츠를 사는 사람도 그 면의 원산지가 노동자들이 농약중독에 시달리는 니카라과라는 사실을 모를 수 있음. 초콜릿 바를 살때도 그 초콜릿이 아동노예를 고용하는 아이보리코스트의 한 농장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모를 수 있음. 지금 당신이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먹고 있는 햄버거가 한때 우림이었던 변변찮은 초원에서 기른 송아지로 만든 것임을 알아내기란 매우 어려움.
- 가능한 한 많은 책임을 개인 소비자에게 돌리는 것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임. 극도의 개인주의는 책임의 부담감을 개인소비자에게 돌릴 수 있는, 자본이 선호하는 방식 중 하나임. 소비자 주권이라는 통념은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기존의 컨슈머리즘이라는 유해문화, 인류 및 환경의 건강을 저해하는 소비선택을 하게끔 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내모는 전 지구적인 끔찍한 불평등을 살펴보면, 깨우친 개인들만 소비패턴을 바꾸면 지구 온난화가 현저하게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은 현명하지 않음. 왜냐하면 훨씬 효과적인 변화전략은 기업과 시장이 좀더 민주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게 만드는 길을 찾는 것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