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의 유언

경제 2014. 10. 18. 07:32

 


엔데의 유언

저자
카와무라 아츠노리, 그룹 현대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13-05-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현대사회가 ‘돈’이라는 질병에 걸렸다고 지적했던 엔데의 예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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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경제문제는 지폐의 발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지폐는 물적 가치가 없고 단지 가치를 상징하는 것에 불과.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지폐를 내키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금괴는 만들고 싶다고 언제든 만들 수 있는 게 아님 . 금은이 부족한 임금은 금을 지급하지 못해 군대를 유지할 수 없고, 결국 약소국이 되고 맘. 알다시피 로마제국이 멸망한 주된 원인도 그 때문이었음. 금이 모두 페르시아로 흘러들어가 페르시아인은 부자가 된 반면 로마제국은 멸망. 하지만 지폐가 발명되면서 사정은 달라짐.
- 현재 상황에서 큰 이익을 보는 것은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앞서 예로 든 농부처럼 단기적 이윤을 위해 토지를 파괴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얻습니다. 4년에 한번은 밭을 쉬게 하고,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물길을 이용하는 책임감 강한 농부는 경제적으로 불리해집니다. 즉 비양심적 행동이 보상받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면 경제적으로 파멸하는 것이 지금의 경제시스템. 이 경제시스템은 그 자체가 비윤리적임. 제 생각에는 오늘날의 화폐, 즉 맘껏 찍어낼 수 있는 지폐가 여전히 노동이나 물적가치의 등가대상이라 착각하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화폐는 노동이나 물적가치의 등가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화폐는 독자적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빵을 사는 구입대금으로서의 돈과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본으로서의 돈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돈이라는 인식임.
- 이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사태가 뚜렷이 나타나기 전에, 이성과 이해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혁되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즉 역사에서 흔히 보듯이 이성이 사람을 움직이지 않을 경우 사건이 그것을 대신하게 됩니다. 인간이 일으킨 사건이 그것을 대신합니다. 그 사건은 우리의 후손이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고 말 겁니다. 그들은 우리를 저주하겠죠.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이에 관련해서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자손들이 우리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사고하고 관념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 엔데에게 큰 영향을 미친 루돌프 슈타이너, 그는 슈타이너 전집을 곁에 두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읽음. 엔데는 40여년에 걸쳐 슈타이너의 사상을 연구. 사회가 법, 경제, 문화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 평등, 우애, 자유의 정신과 연결된다는 슈타이너의 사상은 엔데에게로 그대로 이어졌으며, 특히 노화하는 화폐에 대한 사상은 게젤의 감가하는 화폐와 더불우 엔데에게 새로운 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
- 오늘날 화폐 경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 우리는 돈이 일종의 연금술과 같다는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음. 돈을 만들어내고 증식시키는 방법면에서 연금술과 너무나 닮아 있음. 연금술은 납에서 금을 만들어내려는 것인데, 흔해빠진 납을 금이라는 가치 있는 것으로 바꿔간다는 사고방식은 현대에도 충분히 통할 것임. 통화를 인쇄하면 이자가 그것을 늘리는 거니까요. 그 돈이 멋대로 활보하면서 자기를 갉아먹듯 자연환경과 정신을 파괴함. 돈을 생각할 때 도덕적 문제를 잊어서는 안됨. 돈에는 분명 윤리적 문제가 존재함. 결국 미래에 발생할 이익을 지금 우리는 가치로 받아들이는데, 미래적 가치 즉 발전도가 낮아지면 현재의 화폐가치, 이른바 주식의 화폐가치는 떨어짐. 물론 그 역동성이 더욱 효과적인 성과를 낳는다는 점, 우리의 월급이 인상되거나 갖고 싶던 것이 모조리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 이보다 매력적일수는 없겠죠. 하지만 부가 존재하는 한편에서는 환경이 착취당하고 파괴되는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걸 외면해서는 안됨. 우리는 미래를 수입하여 지금을 살고 있음. 그러기 위해 환경을 소비하고 자원을 까먹고 있음.
- 사회에서 자본이 짊어져야 할 역할이란 개인의 능력이 사회에 발현해야 할 역할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차례 말했듯이 개인의 재능은 자유로운 정신활동에서만 그 진가를 발휘하고 발달시킬 수 있는데, 그 영역에 정치적 또는 경제적 간섭이 가해지는 사회라고 할지라도 자본활동에서만은 사적활동이 허용되고 있음.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갖는 여러가지 문제점은 자본이 그 모든 것을 사회의 경제영역에 완전히 잠식시켰다는 것에 원인이 있음. 이는 언뜻보면 기묘한 일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자유롭게 정신활동을 해야 자본이 원래의 창조적 기능을 완수할 수 있다는 말임. 미래를 확실하게 전망하고자 한다면 이를 명심해야 할 것임. (루돌프 슈타이너, 사회문제의 핵심)
- 엔데는 과거에 금융시스템을 개혁하려 한 수많은 시도들 중에서 미래를 위한 힌트가 있다고 주장. 그것이 게젤이 주장한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감소하는 화폐 시스템임. 게젤의 사상을 실제로 실천한 독일의 슈바넨키르헨, 오스트리아의 뵈르글 등은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번영을 누림. 케인스는 게젤의 화폐 시스템을 높게 평가하며 미래에는 마르크스보다 게젤의 사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거라며 극찬
- 화폐공급자가 농민에게 돈을 빌려줄 경우에는 이자를 청구함. 싫다고 할 수가 없음. 그렇게 하여 농민은 자금을 빌릴 때 드는 비용인 이자를 자신이 수확한 곡물을 팔 때 그 가격에 붙여야 함. 그 곡물을 빵집이 사들였다면, 곡물가격에 포함돼 있는 이자만큼의 돈은 당연히 빵집에서 파는 빵 가격으로 옮겨감. 결국 화폐공급자가 얻는 이익을 사회가 부담하는 셈. 화폐공급자는 딱히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익을 얻는 것. 하지만 그 어떤 기업도 이자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을 수 없음. 이것이 사회에서 부와 권력이 한 곳으로 계속 집중되는 이유. 왜냐하면 이런 플러스 이자의 구조에서는 사업으로 얻는 이익의 대부분을 사회의 극히 일부 사람들만 소유하기 때문.
- 대공황기에 자유경제운동은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지지자와 실천을 낳음. 게젤이 주장하는 자연적 경제질서란 자유화폐로 인해 경기순환이 멈춰져서 자유롭고 공정한 그리고 번영하는 경제질서를 가리킴. 일반적으로 호황기에는 투자가 증가하고 더불어 이자율이 낮아짐. 그 결과 어느시점이 되면 저축된 화폐는 더 이상 투자되지 않고 보유만 되다 불현듯 불황이 시작됨. 그렇게 되면 적극적으로 확장주의적 통화정책이 도입됨. 하지만 통화의 양은 증가해도 돈은 돌지 않음. 화폐의 유통속도가 저하되기 때문. 이것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 자유화폐임. 게젤은 매주 일정하게 감가되는 비율에 대해 1주당 1퍼센트, 1년당 5%를 제안. 오랜 대출의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4~5퍼센트의 이자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그것은 화폐가 가치의 보장기능과 그 유동성 측면에서 다른 자산에 비해 우수하다는 특권을 갖고 있기 때문. 게젤이 제시한 이 5%는 그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 화폐를 다른 자산과 동일한 지위에 두기 위해서는, 게젤이 기초이자라고 부르는 4~5%의 화폐이자를 상쇄하는 부담을 줄 필요가 있었음. 화폐를 보유한 사람은 액면가의 감가를 피하기 위해 지권에 스탬프를 붙여야 하는데, 이 스탬프 가격이 보유자가 부담해야할 감가액에 해당. 국가가 발행한 본위화폐, 즉 국민화폐와는 별개의 통화를 발행함으로써 이런 생각을 실행하려는 운동이 대공황을 계기로 발생. 공황은 화폐를 축적하려는 경향을 강화시켰고, 이런 경향이 다시 화폐의 축적을 한층 가속화함. 이렇게 화폐가 회전하기 않게 됨으로써 불황은 더 시각해짐. 그러한 화폐의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보완통화 구조가 시작된 것. 그것은 다른 자산에 비해 뛰어난 이점은 없으며, 거래할 때 교환수단으로만 사용됨. 거래에서 유지되는 돈의 가치는 다른 자산처럼 감가되어야 함. 그런 이유로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산골에 있는 슈바넨키르헨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최초로 개시되었던 자유화폐는 자산으로 담보되는 형태를 취했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감가하는 자산의 감가비율을 반영하여 돈의 초과보유비용에 해당하는 스탬프를 붙이는 시스템이 채용됨.
- 돈의 유통이 정체되면서 경제위기와 실업이 발생. 그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게젤은 유통을 방해하지 않는 감가하는 화폐 시스템을 16년 자연적 경제질서를 통해 제기. 이어서 루돌프 슈타이너가 그것을 제창하고 미국에서는 어빙 피셔가 33년 스탬프 대용화폐로 발전시킴. 또 영국에서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36년에 고용, 이자, 화폐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그 시스템을 높이 평가. 하지만 이 이념은 곧 금지 당함. 케인즈는 이렇게 말함. "이런 개혁가들은 화폐에 초과보유비용을 부과하는 데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는데, 이것은 올바른 길이었다. 이 같은 해결책은 법정 지불수단에 정해진 요금을 부담하도록 주기적으로 의무화할 것임. 스탬프화폐의 배후에 있는 이념은 건전하다."
- 불황으로 돈이 없어졌을 때, 사람들은 한때 자신이 사용하였던 모국의 통화와 자기들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투영한 디자인의 긴급통화를 사용하기 시작. 마치 각자의 커뮤니티가 독립된 자치구가 된 것 같았음. 미국에서는 법정통화가 부족하면 지자체나 기업이 약속어음과 유사한 대용화폐를 발행한 역사가 원래부터 있었음.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수집된 이 대체통화는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음. 옛날 스위스의 뵈르글에서 사용되었던 자유화폐의 계보를 이어받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스탬프를 붙여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예컨대 1934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마을에서 발행되었던 지폐의 뒷폄에는 1센트짜리 스탬프가 그것을 사용한 날짜와 함께 붙어 있음. 영락없이 게젤의 자유화폐와 같은 것임. 이것은 그 당시 미국의 긴급통화가 게젤이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임.
- 긴급통화의 확대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이 경제학자 어빙피셔였음. 긴급통화의 특징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수요를 풀뿌리에서부터 창출하고자 하는 것. 피셔는 이에 대해 정부가 한층 더 관여할 것을 요구하고자 당시 재무부 차관인 딘 애치슨과 접촉. 하지만 애치슨은 이런 대책에 전재된 것이 강력한 분권적 의사결정임을 알고 대통령과 협의함. 그리고 루스벨트는 긴급통화 사용을 모두 금지시키기로 결정. 중앙정부는 거액의 중앙집권화된 경제계획을 세우고, 대규모의 건설프로젝트를 실시함으로써 불황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음. 1933년 3월 4일, 풀뿌리 대책은 금지되고 뉴딜정책이 발표됨. 이렇게 미국에서 게젤이론의 실천은 끝남.
- 오스트리아 뵈르글에서 사용된 노동증명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음. "제군, 축적되어 순환하지 않는 화폐는 세계를 크나큰 위기에, 그리고 인류를 빈곤에 빠트린다. 완만하게만 순환하는 돈이 그 노동의 교환을 대부분 방해하고, 몇 백만에 이르는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경제생활 공간을 빼앗아가고 있다. " 감가하는 화폐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은 가치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들에 투자했음. 그러나 현재의 금융시스템 내에서는 단기적으로 이익을 보기 위해 대량생산, 대량폐기를 반복하고 있음. 우리는 후손이 보기에 아깝지 않을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까?
- 애당초 돈은 물물교환의 난점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짐. 그랬던 것이 단순한 교환을 위한 수단에서 사람들의 갈망의 대상으로 바뀐 것. 돈은 누구나 교환을 통해 받는 것이므로 교환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음. 그런데도 그 자체가 목적이나 되는 양 여겨지고 있음. 그렇게 되면 돈을 가진 사람에게 권력이 생김. 그것은 돈의 권력이기도 함. 돈 덕분에 자립적일 수 있지만 사람들은 구체적 신용을 추상화한 돈에 종속되어 버림. 사람들은 돈 때문에 가늘고 좁은 관계밖에 가질 수 없게 됨. 돈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지, 돈 만능주의가 지배적이 되어버림. 천엔짜리를 머리에 올려두면 천엔만큼 똑똑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대신 돈이 자신의 목적이 되고 만다. 또한 돈의 도입은 거래에서 드는 비용을 대폭 절약함. 거래상대가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나 아니냐를 조사할 필요도 없음. 돈 자체가 신용이 되기 때문에, 게다가 물물교환의 번잡함으로 발생하는 거래비용도 피할 수 있음. 즉 돈은 거래를 신속하게 하고 익명성을 유지해주는 경제적 윤활유와 같은 존재가 됨. 그리고 물물교환과 달리 거래를 개개의 소규모 거래로 분할할 수 있게 해줌. 역사를 보면 돈이 도입되면서 사회에 분업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음. 그 이유는 거래할 때 물물교환에 비해 훨씬 적은 정보로 거래하게 되었기 때문. 이 때문에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데, 사회 전체에서 보면 돈을 가진 누군가가 거래를 방해할 수도 있게 됨. 교환의 중개자로서 돈이 회전하는 것은 좋지만 여유 있는 화폐보유자가 출현하여 돈을 저축하게 되면 그 사회에 돈이 부족해짐. 그들은 돈을 대출해주고 대신 이자를 받기 시작. 한차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다보면 화폐보유자는 앞으로 더더욱 돈을 긁어 모으려고 할 것임. 이것은 경제의 기능을 저해하는 일임.
- 은행업은 부정하다는 비판과 죄를 업고 태어났다. 이 세상은 은행가의 것이다. 그들이 소유한 것을 모조리 빼앗아도 그들에게 신용을 창조할 힘을 남겨둔다면, 그들은 펜으로 가볍게 긁적여서 빼앗긴 전부를 되찾기에 충분한 화폐를 만들어내고 말 것이다. 그들에게서 이런 힘을 빼앗는다면 그 어떤 고귀한 재산도 사라지고 그들 자신도 사라지고 말 것임. 그렇게 되면 세상은 인간이 살기에 더 행복하고 더 좋은 곳이 될 것임. 하지만 당신이 은행가의 노예이기를 원하고 당신 자신이 노예제도의 비용을 부담하고 싶다면 은행가에게 화폐와 신용을 통제하게 하라 (조사이어 스탬프, 잉글랜드 은행 총재)
- 이자는 이자가 붙는 대차안에서 확정된 것이자 자본비용이므로 반드시 생산비용안에 포함됨. 자본가는 이런 비용을 감수하고 화폐를 빌려서 투자함. 사업이 추진되고 생산물이 판매됨 사업이 잘 풀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있음. 후자의 경우는 이윤이 나오지 않음. 즉 이윤은 항상 비용과 연관됨. 하지만 이자는 생산액과 아무 상관없는 프리미엄임. 반면 이윤은 시장에 생산물을 판매할 목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때 발생하는 리스크와 기업활동의 생산액과 관련된 프리미엄임. 여기에 바로 크나큰 차이가 있음. 이자의 경우 우리가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할 때 반드시 이자를 내도록 되어 있기 때문. 그것은 이자가 갖는 재분배 효과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빌렸을 때에만 이자를 부담한다고 오해하기 쉬움. 사실 물건 가격에는 거의 25%의 이자가 포함되어 있음. 이는 엄청난 숫자인데, 그렇게 되는 이유는 자금을 빌릴 때의 비용이 소비자가 구입하는 최종생산물뿐만 아니라 그때까지의 모든 중간생산물 가격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 게다가 기업이 생산활동을 할 때 부담하는 토지나 빌딩 등의 임대료가 추가됨녀 이자는 무려 가격의 33%를 차지함. 단지 자금을 소유했다는 것 때문에 이자액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함. 이는 근로나 사업활동에 명확하게 부담을 줌
- 고대 이집트에서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시스템과 다른 시스템을 수천년에 걸쳐 사용. 그것은 감가하는 돈의 시스템이었음. 당시 농민은 곡물을 수확하면 그것을 곡물비축창고로 가지고 가서 그곳에 보관. 그 대신 납입한 곡물의 양과 날짜가 찍힌 사기조각을 받음. 이 사기조각은 곡물을 수령했음을 증명하는데 동시에 돈으로도 사용되었음. 이것은 창고에 저장해둔 곡물을 담보로 하는 돈이었음. 당연히 곡물은 쥐 등에 의해 손실되고 관리비용이 든다. 다라서 담보물의 감가비율은 그 돈에도 반영시켜야만 했고 당연히 마이너스의 돈이 될 수 밖에 없었음. 그렇게 되면 농부들은 이 돈을 저축해봤자 손해이기 때문에 다른 사물의 형태로 자신의 부를 유지하고자 함. 당시의 농민은 자신의 부를 관개시설을 정비하거나 토지를 개량하는 데 쏟아부음. 부를 돈의 형태로 소유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장기적인 이익을 줄 것에 투자한 것. 따라서 나일강 유역은 풍요로운 곡창지대가 될 수 밖에 없었음. 이것은 로마인이 이집트를 지배하고 자신들의 돈의 구조, 플러스 이자가 붙는 화폐시스템을 강요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함. 하지만 원래 시스템이 종식되었을 때 이집트의 번영도 끝나고 말았음.
- 유럽에서는 1150년부터 1350년에 걸쳐 비즈니스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던 시대가 존재했음. 이 시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유럽으로 관광여행을 갈 때 반드시 구경하는 카테드랄(대성당)이 하나둘 건설됨. 오늘날의 관광객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순례자들임. 각 지방들은 앞다투어 대성당을 건설하여 순례자들을 유치하려 했음. 이 시대는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구가했던 시대인 것. 왜 그랬을까? 이 역시 돈의 시스템에 원인이 있었음. 여기에도 감가하는 돈의 구조가 있었는데, 브라크테아트라 불리는 화폐개주 시스템이 그것임. 당시 금과 은이 돈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원격지 무역에 한해서였음. 영주들이 지배하는 각 지역에서는 영주가 돈을 발행. 얇은 은판에 모양을 새긴 화폐가 사용되었고, 영주는 이것을 6개월이나 8개월 등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회수하였음. 그리고 2~3% 감가시킨 후 재발행. 이 구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부의 형태로 소유하기 보다 가치가 영구히 유지될 것이라 생각되는 것에 투자. 지역 사람들은 연대하여 신앙의 대상이면서 경제적 의미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인 대성당을 건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만일 돈이 마이너스 이자 시스템하에 놓인다면, 사회가 이룩해낸 부는 가능한 한 장기적으로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 것에 투자된다는 점. 이와 대조적으로 플러스이자의 경우에는 보다 단기기익을 올릴 수 있는 것에 대한 투자가 우세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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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없다

경제 2014. 10. 18. 07:31

 


대안은 없다

저자
베르트랑 로테,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출판사
함께읽는책 | 2013-07-0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티나의 탄생,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다? (......) 지원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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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노동 덕에 먹고 산다. 가난한 천명이 부자 한명을 먹여 살린다. 우리 민족가운데 많은 이들이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간다. 매일 쥐꼬리만한 돈을 벌기 위해 뼈빠지게 일하지만 정작 그 덕에 호사를 누리는 건 소수의 부자들이다.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중 휴이넘 나라로의 여행)
- 레이건의 경제정책은 말하자면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통화주의 이론과 세금징수에 격렬히 반대하는 공급중시 이론을 맛깔스럽게 버무려 놓은 요리와 같았음. 이 이론들은 레이거노믹스의 탄생에 자양분을 제공. 이 이론들을 토대로 정부지출 축소, 세금감면, 규제완화, 인플레 해소라는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네가지 중대원칙이 탄생
- 대처와 레이건은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는 가운데 경제 엘리트들이 이룩한 물질적 성공을 중산층 역시 선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음. 대처와 레이건은 중산층의 코 앞에 작은 파이조각을 내밀며 유혹의 손길을 뻗어왔음. 부동산이나 동산만 소유한다면 그들도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크림한입, 빵 부스러기 몇조각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면 온갖 화려한 감언이설로 중산층을 꼬드겼음. 부자가 되자라는 외침은 순식간에 빚을 지자라는 구호와 결합. 사실 민중의 저항을 억제하는 데 이처럼 효과가 뛰어난 고전적 수법도 없었음. 만기가 도래한 어음, 박탈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떤 억지책보다 효과가 탁월했음. 몇년뒤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르코지 역시 이 케케묵은 수법을 애용. 그는 "모두가 집주인이 되는 프랑스 사회"를 건설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임. 하지만 그가 꿈꾸는 세상이란 채무자들로 가득찬 프랑스 사회에 지나지 않았음. 그로 인해 국민들은 은행에 두손, 두발이 꽁꽁 묶인 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음.
- 프랑스의 눈부신 경제발전 시기에는 언제나 그 뒤에 국가가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었음. 이런 프랑스적 예외의 기원은 적어도 18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감. 처음으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한 이들은 최초의 근대적 경제학자라 할 수 있는 중상주의자들이었음. 그런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이 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도 다름 아닌 중상주의자였던 바스트빌의 영주 몽크레티앙이었음. 국가는 산업에 개입해 수많은 성공신화를 써내려 갔음. 이를테면 콜베르 왕립 유리제조소를 계승한 생고뱅사는 세계적 건축자재회사로 성장. 반짝이는 크롬도금이 된 BB기관차는 랑드 지역을 시속 331킬로 대로 주파하며 프랑스 고속철도의 탄생을 예고. 프랑스 원자력 발전소도 국가가 15%대로 투자회수율을 제한한 덕에 높은 안정성을 유지했음.
- 저항운동, 더 나아가 민중반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기득세력은 고릿적 수법을 재활용. 이를테면 외국인이라는 내부의 적과 이슬람과 이슬람주의자(과거에는 소련과 공산주의자가 이 자리를 차지)라는 외부의 적을 지목하는 것이었음. 포클랜드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영국과 미국의 서민층을 조국애로 불타오르게 만들었음. 결국 포클랜드 제도 덕에 매기는 지배기간을 몇년 더 연장할 수 있었음. 대서양 너머에서는 레이건이 스타워즈 포스터 상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림. 이 고릿적 방식은 얼마나 효과가 뛰어났는지 그들은 악의 축을 공격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후세인과의 개인적 원한을 해결하는 데 이 구닥다리 방식을 활용. 시사만평에서 언제나 미국의 충실한 푸들로 그려지던 토이 블레어도 미국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았음.
- 명예를 좇는 자가 많아진다면 국가는 행복과 번영을 누릴 수 없다. 부를 좇는 자가 많아진다면 국가는 몰락할 것이다.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 공화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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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모든것

저자
존 스토셀 지음
출판사
글로세움 | 2013-08-0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누구도 말하지 않는 우리 경제의 실체현대인들은 나름대로 경제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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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무엇인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경제학의 별난 임무이다. (하이에크)
- 하이에크는 치명적 자만에서 인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를 논하고 있음. 복잡한 현대경제의 확장된 명령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때, 소규모의 부족사회나 대가족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본능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 바로 여기서 아버지가 최고다라는 가족이나 부족바깥에서는 통하지 않는 접근법이 나옴. 워싱턴 엘리트에 대한 신뢰는 자연스러운 일임. 어쨌등 공익을 고심하는 열정 자체가 그들의 계몽적 가치기준을 드러내기 때문. 이것이 감성코드를 자극하게 됨.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일임. 대가족이 사회의 중심이었던 시절에는 족장의 망를 듣지 않으면 쫓겨난 채 굶주려야 했음. 그 시절의 본능 탓에 우리는 어른의 지휘를 받아야 훨씬 안전하다고 느낌. 이제 우리는 이런 본능에 맞서야 함. 고대사회는 우리 기준으로 볼 때 안전하지 않았음. 끊임없이 굶주림에 직면한 채 살아가야 하는 시절이었음. 수백만명이 복잡한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옳다고 느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음. 따라서 그 옛날 마을의 족장이 추수할 최적의 시기를 결정하듯 정치가가 쉽게 우리 생활을 운영해줄 것이라 생각하게 됨. 정부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직관적인, 그러나 잘못된 판단을 하는 한, 미국인은 곤경에 처할 수 밖에 없음. 정부의 힘이 날로 확장되어 가는 이유는, 그것이 확실한 해결책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 그러나 이 해결책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문제, 역시 정부가 즉각 해결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냄.
-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피라미드를 건설해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음. 그러나 고대 이집트인(특히 노예)이 각자 다른 일에 종사할 자유가 이었다면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들 모두 더 좋은 집, 더 많은 음식, 더 멋진 머리쓰개를 갖게 되었을 것임. 케인즈처럼 똑똑한 사람도 그 사실을 간과하고, 36년 저서 일반이론에서 피라미드 건설, 지진, 심지어 전쟁까지도 부를 확대하는 데 공헌했다고 썼음.
- 아미티 슐라에스는 자신의 책 잊혀진 사람에서 뉴딜정책은 시장의 본연적 재생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실패를 자초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음. 정부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두려워했다는 것. 이 또한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새롭게 부과될 세금이 두려운데 사업을 확장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새로 제정된 법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마찬가지임.
- 29~39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의회는 저 악명높은 스무트-할리 관세법을 제정, 2만가지 상품에 적용함으로써 불황을 대공황으로 악화시키는데 기여.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는 후버의 담화만으로도 증권시장이 곤두박질쳤음. 그 후 후버와 의회는 바이 아메리카법을 승인해 가뜩이나 악화된 관세결정을 최악으로 만들어버림. 이 법에 따라 연방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미국산 물자만을 사용해야 했음. 다른 나라들이 보복에 나섰고 수출이 64%감소하고 실업률은 20%를 돌파. 교역은 전쟁이 아님 정부가 관세나 무역제재, 금수조치 등의 위협을 통해 전쟁으로 만들어버리긴 하지만, 이런 위협을 제거하면, 국가간 교역도 개인간 교역과 마찬가지로 윈-윈할 수 있음. 교역은 모두를 더 잘살게 만듬.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 제일 잘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
- 국가를 건설하려는 사업은 중앙계획경제가 실패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실패함. 위에서 아래로 가는 하향식 계획이기 때문. 유럽국가들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경영하는 동안 인권을 중시하는 정권의 수립이라는 끔찍한 일을 해냈음. 미국은 남미 국가들에 반복적으로 개입했지만, 미국을 높게 평가하는 정권은 좀처럼 세우지 못했음. 오히려 미국의 개입은 피델 카스트로나 휴고 차베스 같은 강력한 지배자가 탄생하는 원인이 됐음. 독재자들은 미국의 간섭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수호자로 여겨졌음. 지역 사람들이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옴. 그들은 비록 계획자는 아니지만 그들 자신의 삶과 동기에 관해 훨씬 더 쓸모 있는 정보를 갖고 있음. 결정이 옳지 않으면 조정함. 반면 왕이든 총독이든 관료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인이든 중앙의 계획자들은 새로운 사회질서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것을 만들려고 애쓰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큼.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가를 건설하려는 중앙계획자들의 시도가 대표적 사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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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2

저자
박정호 지음
출판사
한빛비즈 | 2013-06-0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현대그룹, SK그룹, IBK기업은행 등 기업이 선택한 통섭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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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설탕물들이 초창기 약으로 분류되었듯이 콜라 역시 약이었음. 중세에는 약제사가 설탕물을 약으로 팔았고, 19세기 후반호황기 때의 약사들 또한 설탕물로 만든 음료를 팔았음. 설탕물의 일종인 초기 콜라 역시 소비자들에게 약으로 판매됨. 콜라를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내과의사이자 약사였던 존 스틸스 펨버톤 박사임. 모르핀 중독에 시달렸던 그는 모르핀을 대체할 수 있는 약물개발에 몰두. 그러던 중 1885년 페루의 코카잎에서 추출한 코카와 아프리카의 콜라 너트에서 추출한 카페인이 포함된 최음제 성격의 와인 음료수를 개발. 펨버톤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이 와인 음료수를 과로, 변비, 우울증, 성기능장애, 두통, 히스테리, 아편중독 등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 그리고 제이콥 약국에서 5센트에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콜라의 시초임. 하지만 곧이어 애틀란타에서 알콜이 들어간 모든 식품의 판매를 금지함. 이에 펨버톤은 와인성분을 제거하는 대신 7X로 알려진 일곱개의 비밀성분을 추가하여 오늘날과 같은 맛의 코카콜라를 만들어 냄. 이 비밀스런 성분에 대한 실마리는 거의 100년이 지난 후 93년 알려짐. 당시 공개된 코카콜라의 성분은 라임주스와 오렌지, 레몬, 너트케그, 시나몬, 오렌지꽃 등에서 추출한 오일이었음. 콜라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성분이 중동을 비롯한 동양에서 전해진 재료들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 미국이 원산지인 재료라고는 바닐라뿐이었음. 펨버톤은 알콜 성분 대신에 최음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동양에서 찾았던 것.
-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아프리카 노동자들을 이주시켜 사탕수수를 재배한 것은 단순히 향료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음. 당시 설탕은 향신료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고,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음. 예를 들어 이슬람 지역에서는 설탕을 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하고 있었음. 이는 유럽에 전파되어서도 마찬가지였음. 16~17세기 유럽에서는 설탕이 결핵을 포함한 주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음. 설탕은 권위와 신분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음. 설탕이 아시아에서 수입된 향신료 못지 않은 고급재료였기 때문. 특히 다른 향신료와 달리 신비로운 흰색을 띠고 있어서 때로는 정교하게 제공된 장식품을 만드는 데 이용되기도 했으며, 국왕이나 귀족의 파티와 의례를 화려하게 수놓기도 했음. 유럽국가들이 식민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설탕은 대량으로 생산될 수 있었음. 18세기 무렵부터는 일반 서민들의 아침식사에 등장할 정도로 대중화되었음. 그리고 설탕이 대량으로 생산될수록 그만큼 더 많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해올 수밖에 없었음.
- 쾌적한 기후환경에서 살고 있는 유럽대륙 사람들과는 달리 영국인에게 음식이란 귀한 것이었으며,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원을 인식. 그래서 영국인들이 광활한 식민지를 얻게 되었을 때 식자재를 원활히 생산하기 위해 플랜테이션을 도입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름. 그들에게 식민지의 광활한 영토는 오랫동안 부족했던 식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대상이었을 뿐, 음식문화를 만들어나갈 대상은 아니었던 것. 이처럼 그들은 오랫동안 음식을 자원으로 여겨왔기에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방식으로 음식문화를 이끌어옴. 미국에서 패스트 푸드 문화가 만들어진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음. 영국인의 후예인 미국인에게 식자재란 다양한 요리문화를 만들 수 있는 기초재료가 아니었음.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손실없이 빠른 시간내에 요리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대상이었을 분. 결국 미국인들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공산물을 찍어내듯이 패스트 푸드라는 음식자원을 만들어내기에 이름. 이처럼 영국과 미국이 음식을 문화나 레저가 아니라 자원으로 인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랫동안 음식물에 대한 열악한 제약조건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
- 비옥한 토지와 축복받은 기후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프랑스가 훌륭한 요리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님. 프랑크 왕국 시절인 8세기 경까지만 해도 프랑스 요리는 형편없었음. 당시 문헌들을 보면 많은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기록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음. 그들이 주로 먹었던 빵 또한 말랑말랑하고 먹기 좋은 것이 아니라 돌처럼 딱딱해 스프에 적시지 않고는 먹기 힘들 정도였음. 12세기에 들어서도 프랑스인들은 구운 고기와 데친 야채가 요리의 전부였음. 당시 영국의 요리문화와 비교해도 별반 다를바 없는 수준이었음. 그랬던 프랑스가 16세기에 벌어졌던 백년전쟁의 승리로 절대왕정이 공고해지고 유럽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식문화 또한 발달하기 시작. 특히 당시 이탈리아는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지역과도 교역을 하면서 다양한 농산물을 이용한 조리법을 알고 있었음. 그런데 프랑스 왕가에 이탈리아 부호 메디치 가문의 딸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시집을 오게 되면서 프랑스 음식문화는 큰 변혁을 맞게 됨. 프랑스 요리를 소개하는 서적들을 보면 오늘날의 프랑스 요리법과 음식예절은 카트린이 소개한 식자재와 조리법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식탁예절을 그 원형으로 함. 당시 문헌에 따르면 카트린이 데려온 요리사가 각종 스프와 베샤멜 등의 소스, 브로콜리 요리법, 잼과 케이크, 설탕과자, 아이스크림 등을 프랑스 왕국에 처음 선보임. 그리고 왕실과 많은 귀족들은 그 맛의 황홀경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함. 그 맛을 잊지 못한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카트린이 소개한 요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식자재를 구매하기 시작. 그리고 비옥한 토지와 적합한 기후 덕에 그들의 시도는 풍족한 결실을 맺음. 또한 식사 후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디저트 문화가 퍼지고 난 뒤에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에 배를 보내 얼음을 운송해오기도 했음. 이는 당시 프랑스 지배계층이 얼마나 식문화에 열광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임
- 춘추시대에 풍성한 철학적 담론이 나오고 문화적 성숙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은 생산성 향상에 기인. 춘추시대는 처음으로 철기를 사용한 시대였음. 병기구, 제례용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 철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농기구에 철을 사용함으로써 산림을 개간하거나 넓은 농지를 경작할 수 있게 됨. 특히 땅을 깊이 갈 수 있게 되어 농사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엇음. 철의 사용으로 기초적인 경제문제가 해결되자 많은 사람들이 생산활동 외에 다양한 문화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철학적 담론이 성숙했음.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군주들은 저마다 특색있는 통치철학을 내세울 수 있었으며 다양한 조세제도와 공공재 생산방식을 구현할 수 있었음. 자연히 백성들도 각 지역마다 어떠한 특색이 있는지, 어떠한 방식의 조세제도가 운영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됨.
- 해방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우리경제는 극심한 인플레를 경험. 45년 9월부터 12월 사이 물가가 112.9%나 올랐고, 47년에는 전년말 대비 128.1%나 상승. 49년에는 전년말 대비 486.4%가 상승함. 남한의 농지개혁법은 이런 인플레 상황에서 진행됨. 남한 정부는 5년 연부보상을 조건으로 소유자로부터 유상으로 토지를 취득하여 이를 소작농에서 나누어줌. 이 과정에서 지주의 재산형태는 토지라는 실물자산에서 채권 내지 현금이라는 현물자산으로 바뀜. 반면 소작농은 토지라는 실물자산을 취득하게 됨. 지주는 현물, 소작농은 실물 형태로 재산을 보유하게 된 상황에서 인플레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지주의 몫이었음. 소작농이 갖고 있는 토지의 가치는 상승하지만 토지를 반납하고 취득한 지주들의 채권이나 현금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떨어졌기 때문. 결국 전체 농지의 92%가 자작농에게 돌아갔고 수천년간 이어온 지주계급은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해체됨.
- 순장문화는 절대왕권이 공고히 다져지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국왕들이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낸 위험방지 전략. 고대사회에는 왕권이 확립되지 못한 경우가 많음. 따라서 당시의 국왕들은 주요 귀족 계층이나 지방 유력자 혹은 곁에서 자신을 보필하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자신을 누르고 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임. 즉, 고대 국왕들은 항상 암살이나 독살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생활해야 했음. 그래서 이러한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약 자신이 죽으면 지근에서 자신을 보필한 사람들까지 함께 묻혀야 하는 제도, 즉 순장을 고안해냄. 결국 고대 국왕과 왕을 보필하는 사람들의 유인구조는 동일한 상황으로 바뀌게 됨. 쉽게 말해 왕의 주변 사람들은 왕이 살아야만 자신도 살 수 있음. 설사 자신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왕을 암살하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결국 왕과 함께 묻히는 처지가 된다면 암살에 가담할 확률은 크게 떨어짐
- 2차대전 당시 독일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철광석, 석탄, 석유, 고무 등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했음. 독일 본토와 점령지에서 확보한 자원만으로는 방대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 독일은 이러한 자원들을 전쟁과 관련없는 지역인 제3국으로부터 조달받고자 했음.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결제방법이었음. 대표적인 예로 독일은 석유를 중동지역에서 수입하고 있었음. 그런데 중동 국가들은 독일화폐는 물론이고 당시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미국이나 영국화폐로 결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음. 전쟁에 참여하고 있던 독일, 미국, 영국의 화폐는 전쟁의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휴지조각으로 변할 수 있었기 때문. 즉, 이들 국가가 발행한 화폐는 가치의 저장수단이라는 기능이 위협받고 있었기 때문에 교환의 매개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던 것. 고민끝에 독일이 생각해낸 해결책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영세중립국인 스위스의 화폐로 결제하는 방법이었음. 독일은 스위스에 금괴를 팔고 스위스프랑을 얻어서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결제수단으로 사용. 따라서 독일 입장에선 스위스 프랑의 화폐가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짐.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독일은 스위스를 침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침공하지 못하게 된 것. 결국 스위스가 2차대전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국의 화폐가 전쟁 참여국들의 결제수단으로 이용되면서 기축통화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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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거대한 재균형

저자
마이클 페티스 지음
출판사
에코리브르 | 2013-10-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세계 경제의 거시적 불균형에 대한 이해현재의 위기는 복합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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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금융계에서 예민한 반응이 일어나면, 제도상의 결함이 뚜렷이 드러남. 그리하여 위기가 지나간 다음에는 으레(위기를 촉발한 사건이나 제도의 결함따위를 강조하면서) 여러가지 우연한 사고, 실수 또는 손쉽게 바꿀 수 있었던 결함이 재난을 불러왔다는 식으로 그럴싸한 논증을 구성할 수 있음. 민스키는 나아가 이 그럴싸한 논증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 재정이 불안한 것은 그 바탕을 이루는 통화와 함께 대차대조표의 상황과 관련이 있는데, 이런 조건 아래에서는 어떠한 금융 시스템도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음. 민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상 금융이 안정적인 시기에는 안정에서 벗어나 변화를 꾀하려다 위기를 초래함. 근본적인 통화여건은 어째서 불안정으로 기울게 되는가? 킨들버거는 화폐 충격은 금광의 발견부터 금융혁신이나 자본의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원인에서 발생해 불안정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주장했음.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위기의 원인에 대해 수많은 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지지했던 고전적 견해에 따르면, 통화 불안정을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요 국가들이 경제에서 나타나는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임.
- 이번 위기를 살펴보면 지난 200년 동안 있었던, 세계적이었거나 지역적이었던 위기를 살펴보면 그중 상당수가 지금과 똑같은 종류의 불균형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30년대의 세계공황과 80년대에 일어난 이른바 저개발국가들의 위기가 가장 유명한 사례. 따라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그 어떤 일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음.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어떤 위기가 일어났을 때 최우선적으로 고통을 받는 나라(대부분 무역적자국)에서 정책이 항상 왜곡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심지어는 정책의 왜곡과 상관없이 고통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임. 반면 거대한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나라와 거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나라에서 이러한 불균형은 정책의 왜곡에 그 근원이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 전자의 경우에는 거대한 적자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다 마침내 균형을 되찾는 데 필요한 구조조정 과정을 밟게 됨.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이 세계금융위기의 핵심임
- 독일 정부가 유럽 주변국에 좀더 수월하게 자금을 조달해주어야만 유로화를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결정자들이 너무 많음. 그러나 사실 유로화를 살려내기 위해 독일 정부가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음. 중국을 포함해 외국 여러나라의 중앙은행이 유럽의 국채를 더 많이 사들인다 하더라도 유로화는 큰 혜택을 받지 못할 것. 독일 정부는 가계소비를 희생하면서 자국의 저축을 증대시키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 결과 유럽 주변국의 저축률이 위험한 수준으로 떨어져 유로화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빚고 있음. 유로화의 생존을 위해서는 독일정부가 이런 정책을 반전시켜야 함. 독일의 정책결정자들이 이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조정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 물론 독일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음. 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경우 독일은 부채가 늘고 성장이 둔화될 것이기 때문.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만약 독일이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유로화 위기에 대한 해법은 전혀 기대할 수 없음. 이로 인해 유로화 실험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 뻔하며, 독일은 어쨌든 부채가 늘어나고 성장이 둔화되는 고통을 겪을 것.
- 도덕적 설교를 일삼는 사람들이 독일인의 검소한 습관을 찬양하고 에스파냐인의 낭비적 생활방식을 비난하는 것은 요점을 완전히 벗어난 것. 독일과 에스파냐의 저축률은 이들 나라의 문화적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이든, 에스파냐든 틀림없이 자국내에서의 투자와 저축의 관계를 변경시킨 정부의 정책에 따라 결정됨
- 동아시아 국가들이 급속한 성장과 함께 높은 무역흑자를 달성하는 데 공헌했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 유교문화는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를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빈곤에 허덕이게끔 만든 원인으로 지목을 받았음. 50년대와 60년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부터 2000여년 전 중국의 비평적인 법가들이 주장했듯 유학자들은 말할 수 없을만큼 게으르고 검약을 실천할만한 용기조차 없었음. 기원전 5세기에도 비평가들은 유학자들의 게으름과 소비적 습성을 개탄해 마지 않았음.
- 그리스의 경우 문제는 부채임. 통화를 평가절하 하면 부채규모가 불어나 심각한 금융긴축과 기업의 도산이 뒤따를 테고, 그렇게 되면 평가절하의 효과도 상쇄되고 말 것임. 다시 말해, 그리스 통화의 평가절하가 가져올 긍정적 고용효과는 금융긴축이 빚어낼 부정적 고용효과 때문에 빛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대외채무를 일단 무시하고, 만일 그리스가 통화를 평가절하해 긍정적 순고용효과를 창출한다면 (실업률이 높고 성장이 정체된 많은 나라에서 대부분 그러하듯) 가계수입의 전반적 증대는 손실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으므로 소비는 실제로 증가할 것임. 그렇지만 이러한 소비는 상품과 서비스의 총생사량을 넘어서지는 못함. 그리스처럼 수많은 실업자가 실직수당을 받는 경우에는 특히 그러함. 따라서 소비가 늘더라도 그리스의 저축은 훨씬 더 빨리 증가하고, 무역적자는 거의 틀림없이 감소할 것임.
- 궁극적으로 같은 이야기지만, 통화의 평가절하가 가져오는 효과를 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음. 통화의 평가절하는 순 수입자(주로 가계부문)에게서 주로 교역상품 부문을 구성하고 있는 순수출업자에게로 자원을 이전하는 것과 같은 일임. 그렇게 함으로써 평가절하는 가처분 가계수입을 줄이고 투입비용을 낮춰 생산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동시에 저축률을 끌어올림. 그렇지만 프레도니아의 높은 저축률은 프레도니아 사람들이 더 근검절약하거나 더 부지런하기로 결심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 이것은 다만 평가절하가 자동적으로 가져온 결과일 뿐.
- 중국이나 다른 나라가 자국이 비축해 놓은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외국에서 수입한 물건에 대해 지불을 하거나 대외채무를 상환하는 것 뿐. 당연히 대외지불준비금은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음. 따라서 대외지불준비금의 실질가치는 그 나라가 그 돈으로 해외엣 할 수 있는 일의 가치일 뿐. 중국인민은행이 통화를 절상해 지불준비금의 가치가 위안화로 10% 떨어진다면, 대외지불능력의 가치도 그만큼 내려감. 그러면 자연히 대외지불준비금의 가치도 위안화로 계산할 때 정확히 같은 비율로 내려감. 이는 곧 하나의 경제체로서 중국이 달러로 비축해놓은 지준금에는 아무런 손실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중국은 위안화를 절상한 뒤에도 절상하기 이전과 똑같이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고 그 값을 지불할 수 있음. 물론 돈의 실질가치는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남. 그러므로 지준금의 실질가치는 전혀 달라지지 않음. 다만 위안화의 회계가치만 달라지는데, 이는 어쨌든 단순히 벌써 오래전 무역이 처음 이루어졌을 때 일어난 손실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어서 대체로 타당성 없는 수치일 수 밖에 없음.
- 위안화 절상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부를 이동시킨다는 사실에 있음. 부는 대체로 중국인민은행, 수출업자 그리고 막대한 돈을 외국 은행에 쌓아둔 부유한 중국인에게서 그밖의 다른 사람에게 이전됨. 이런 부의 이동은 대체로 일반가정에 혜택을 주면서 국가와 제조업체에는 손실을 입히기 때문에, 통화절상은 자동적으로 가계의 부와 더불어 가계지출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옴
- 통화절상이 중국의 재균형 전략에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음. 통호절상은 소득수입을 저소비형 국가에서 고소비형 가정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가계지출과 국가지출 모두를 동시에 증가시킴. 그 뿐 아님. 가계지출이 늘어나면 값이 올라간 위안화는 교역상품의 생산을 감소시키기도 함. 고소비와 저생산이 결합할 경우 저축률은 훨씬 더 줄어듬. 만약 투자에 아무런 변화가 없거나 투자감소분이 저축감소분보다 낮을 경우, 중국의 무역흑자는 자동적으로 훨씬 더 줄어들 것임.
- 위안화의 절상은 자동적으로 중국내에서 소득수익을 옮겨놓는 동시에 저축률을 떨어뜨림. 모든 것을 아끼고 쌓아두려는 중국사람들의 유명한 문화적 성향이 쇠퇴했거나 인구가 노령화했거나, 또는 문화대혁명 이후 젊은 층이 과소비 풍조에 물들어서가 아님
- 중국에서 지난 20년 동안 사회안전망이 소멸한 것은 분명 무역정책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자원이 가계에서 기업으로 옮겨가면서 무역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 이런 정책은 거의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작용함. 전형적으로 정책 결정자들은 고용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특정 부류의 고용주에게 사실상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추진함. 물론 모든 보조금은 상환해야 하는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가계부문이 그 상환을 떠맡음.
- 미국의 역사자료를 살펴보면 금리가 낮았던 시기에는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의 경기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축되었고, 저축률은 내려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아졌다는 기록을 많이 발견할 수 잇음. 이는 미국가 유럽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 확실히 사실이었던 것처럼 보임. 요컨대 금리아 부동산 및 자산가격이 한꺼번에 내려갈 때 가계저축률은 내려가기는 커녕 더 올라갔음. 다시 말해, 이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소비규모를 결정하기 위해 소비를 나중으로 미루는 데 대한 보상을 고려하기보다 주로 가계자체가 보유한 재산을 고려했다는 것을 시사함.
- 중국의 저축률은 중앙은행에서 예금금리를 책정하는 데 따라 변화한다는 점. 아무도 중국인에게 근검절약에 대한 태도를 바꾸라고 요구한 일이 없고, 중국인의 저축이 문화적 요인 때문에 영향을 받은 일도 없음. 중국의 가계저축률은 기본정책이 바뀜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정됨. 재차 강조하지만, 이런 정책은 정상적 무역정책으로 간주되지 않지만, 불가피하게 그 나라의 무역과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음. 다시 말해, 정책이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가지 방식이 존재하며 그러한 정책이 모두 처음부터 명백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
- 중국의 발전모델은 특별히 중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음. 기껏해야 60년대에 일본이 적용한 아시아적 발전모델의 수정판에 지나지 않으며, 숱한 시기에 나타난 급속성장 사례들과 기본적 특징을 공유. 예컨대 30년대의 독일, 60년대와 70년대의 기적을 이룩한 브라질, 그리고 50년대와 60년대의 소련을 들 수 있는데, 가장 정통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나라들이 20세기가 지나기 전에 경제적으로 미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했음. 이러한 정책은 빠른 시일 안에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불가피하게 심각한 균형을 초래할 우려도 있었음. 이런 다양한 모델은 급성장을 목적으로 생산과 투자 그리고 인프라와 제조능력의 구축을 위해 지급되는 엄청난 보조금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음. 아울로 이런 보조금은 힘들이지 않고 생산능력, 인프라, 그리고 부동산 부문의 발전을 위한 투자를 증대시켰고, 고용을 대폭적으로 확대해 나갔음. 보조금은 개인이든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 국가든 모든 투자자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음.
- 매우 낮은 금리와 그 밖의 보조금 덕택에 그러한 투자가 실제로 가치를 창출했는지 아니면 축소시켰는지 판단하기 모호한 가운데, 공동의 부라는 문제는 인프라를 위한 추가적 투자를 언제나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게 해줄 것임. 과잉투자 문제는 비단 인프라만의 문제가 아님. 똑같은 문제가 생산부문에서도 쉽게 일어남. 생산자도 이와 같이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의 차입비용을 가계 예금주에게 사실상 떠넘겨 버림. 이들은 투자비용과 같거나 그보다 더 큰 경제적 가치를 반드시 창출해낼 필요도 없음. 심지어는 가치를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공장조차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음. 구체적인 증거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거의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 국영부문이 전반적으로 가치의 대량 파괴자 노릇을 해왔으면서도 가계부문에서 거둬들인 보조금 덕택에 이익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다시 말해 어떤 점에서는 자본 사용자들이 부를 창출하기는 커녕 파괴하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손실의 100퍼센트를 가계에 떠넘기는 수법을 써서 마치 수익을 내는 것처럼 비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특히 매우 저렴한 자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보다도 비용의 상당부분(차입금 총액의 20~40%나 되는)을 저금리 형태로 예금자에게 떠넘긴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사실상 예금자도 모르게 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임
- 성장둔화는 중국에 재앙이 될까? 그리고 그것이 사회의 불안정을 가져올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임. 재균형이 잘 이루어진다면 당연히 가계소득과 소비는 국내총생산보가 빠르게 성장할 것이므로 잃어버린 10년의 성장이 가계부문에 미치는 고통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임. 예컨대 해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3%씩 늘고, 가계소즉이 5%씩, 그리고 소비가 5~6%씩 증가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가정해볼 수 있음. 이럴 경우 중국의 가계는 줄곧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될 테고, 경제전망도 더욱 밝아질 것임. 그러나 자명한 일이지만 만약 가계 소득이 국내총생산보다 빠르게 성장한다면, 국가부문에서 가계부문으로 자원이전이 암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지난 30년 전반에 걸쳐 나타난 것은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었음. 따라서 급속하게 커지는 파이에서 가계의 몫은 줄어든 반면 국가의 몫은 확장되었음. 이것을 역전시켜야 함. 이런 과정을 바람직하게 관리하면서 촉진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방식으로 국가의 자산을 민영화해야 함. 여기에는 국가자산으로 은행자금을 재구성하고 (그렇지 않으면 손실을 메우기 위해 가계에서 보조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방식으로는 국가부문의 자원을 가계부문으로 이전하는 것이 포함됨. 국내총생산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끌어올리는 데 핵심이 되는 일은 국내총생산 가운데에서 가계소득의 몫을 키우는 데 있음.
- 중복이 전혀 없다는 주장-말하자면, 미국은 중국이 수출하는 상품 중 어느것도 직접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무역흑자가 줄어들더라도 미국이 덕을 볼 것은 없다는 주장-은 아둔한 말임. 미국은 중국에서 구입하는 수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더가 생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중국이 미국에 상품을 팔든 말든 상관할 일이 아님. 무역은 쌍무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 실제로 그런 일은 전혀 없음.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중국의 개입이 띠고 있는 총체성임. 만일 인민폐의 가치가 오르거나 미국이 무역관세를 높일 때 중국이 인위적 대응책을 취하면, 순 무역 재균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테고 심지어 중국의 경제에 훨씬 더 위험스러운 왜곡이 일어날지 모름.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정책 결정자들은 무역흑자를 겨냥하는 것이 오직 통화나 금리, 임금 또는 세금이나 보조금, 아니면 그 밖의 몇가지 요소를 건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지 모름. 세번째 결론은 미국 관점에서도 이 모든 것이 중요하다는 점. 중국만을 겨냥해 취하는 조치는 중국의 대응에 따라 작동을 할 수도 안할수도 있음. 아울러 중국이 잘못 대응하면 두 나라 모두 어려운 사정에 직면할 수 있음. (중국의 경우가 더 어려울 것임) 만일 미국이 정말로 자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려 한다면, 공격적으로 움직여서 국내생산과 소비사이의 균형을 좀더 항구적인 방식으로 (어쩌면 소비세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미국이 소비세를 인상했을 때 중국이 통화나 금리 및 여신에 대한 개입을 강화한다면 실업이 높아지겠지만, 이를 무릅쓰고라도) 바꿔놓아야 할 것임. 이렇게 되면 세계 모든 나라는 근린 궁핍화 정책을 추구하고 세계적 실업이 만성화할 것임.
- 시장과 그 밖의 경제행위자들이 볼 때 어떤 개별 국가가 과도하게 부채를 지고 있다고 여겨지면, 이들은 그 부채문제를 더 악화하는 쪽으로 일련의 행위를 하기 시작. 그 과정은 단도직입적으로 진행됨. 정부의 재정적 신용이 기울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거의 모든 경제부문에 여파를 미쳐 이러한 신용추락에 대비해 행위자들의 반응이 변화하고, 이 같은 변화는 다시 정부의 신용이 떨어지는 것을 부채질함. 처음에는 그 과정이 느리게 진행됨. 하지만 이런 고정은 스스로를 강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모든 자기강화적 과정과 마찬가지로 일정한계를 넘어서면 갑자기 속도가 빨라져 걷잡을 수 없게 됨
- 독일의 높은 저축률은 독일 사람들이 윤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추정하는 독일의 문화적 전형과 달리) 원래부터 저축하기를 즐기는 민족이어서가 아님. 그것은 대체로 소비를 억제해 고용을 급속히 확대함으로써 (보통은 유럽과 세계에서 다른 지역의 생산자를 희생시켜) 독일의 제조업을 보조하기 위한 정책의 결과일 뿐임. 이런 정책이 자동적으로 빚어낸 결과 중 하나는 독일이 거대한 무역흑자를 올리면서 국내성장을 가속화하고 높은 고용을 실현하게 되었다는 사실. 이런 일이 에스파냐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에스파냐의 낮은 저축률은 독일의 높은 저축률과 통화동맹 그 자체의 조합에서 빚어진 것. 그것은 기본적으로 에스파냐의 정책이 빚어낸 결과도 아니고, 잘 알려진대로 에스파냐의 느긋한 지중해시기 문화가 빚어낸 결과도 아니었음.
- 유럽의 불균형에 대한 해법은 에스파냐 사람들에게 독일사람처럼 경제적 미덕을 갖추라느니, 근검절약하라느니, 열심히 일하라느니 하는 따위의 설교를 하는 데 있지 않음. 미덕은 여기서 아무런 상관이 없음. 실업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에스파냐 사람들에게 일을 더 하라고 요구하는 건 아무 의미없음. 에스파냐 국민에게 소비를 덜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이 혼란을 벗어날수도 없음. 오히려 그와 반대로 에스파냐의 소비가 줄면 에스파냐의 (그리고 독일의) 실업은 한층 늘어날 것. 그 대신 최적의 해법은 에스파냐에서 국내총생산이 가계소득에 비해 더 빠르게 성자하도록 하는 동시에 독일에서는 가계소득의 성장이 더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정책의 조합에서 찾을 수 있음. 독일의 정책 변화 없이 에스파냐가 취할 수단을 별로 없음. 다시 말해, 독일이 무역적자를 감수하고 에스파냐의 무역흑자가 늘어나지 않는 한 에스파냐가 독일에 부채를 상환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불가능. 이것이 바로 회계정체성에 의한 제약으로 이를 벗어날 수 없음.
- 독일의 은행이 유럽 주변국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독일의 성공적 수출을 약속하고, 적자에 빠진 나라의 부채문제를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음. 만일 적자에 빠진 나라가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그런 처지에 빠졌다면, 독일도 똑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해야함 그런 결과를 얻을 것임. 따라서 이제 두 부류의 나라(말하자면, 흑자를 올리는 나라와 적자에 빠진 나라)는 부채문제를 공동으로 다루어야 함. 독일 사람들은 이 말을 비논리적이라 몰아붙이며, 어떤 식으로든 주변국들은 독일의 은행이 소유하고 있는 대출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침식되는 것을 방지할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할 것임. 이는 주변국들이 높은 실업률을 감수함으로써 독일의 실업을 낮추줄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음. 이런 나라들이 지급을 보류할지, 아니면 자국의 통화가치를 절하할지는 외국에 대한 채권 상환 의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나라의 이익에 따라 결정될 일. 그것은 마치 독일의 대출이 유럽의 형제적 사랑때문에 아니라 국내에서 일자리를 확대할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것과 같은 이치임
- 요컨대 위기란 언제나 불안정하기 마련인 자본주의를 합리화해주는 비합리적 옹호자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위기가 일어난 경우, 이런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 두는 것이 중요함. 우리는 여기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느 방향으로 정당화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함.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위기를 벗어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장래 성격을 정의 해줄 것이기 때문. 위기에 빠졌을 때도 언제나 대안은 있게 마련이다.
- 기축통화의 혜택에 대해 굳이 말하자면, 미국은 50년대와 60년대에 그리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비교적 수월하게 기축통화를 관리할 수 있었음. 하지만 그 후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급성장이 이루어지고 주요 개도국들이 수출주도형 성장을 추구하는 가운데, 특히 브레튼 우즈협정이 파기되어 달러가 금본위에서 풀려나자 기축통화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나기 시작. 대부분의 정치해설가들은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보유함으로써 미국이 두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고 설명함. 첫째, 외국인이 상품을 팔아 미국의 달러를 획들하려 하기 때문에 미국은 실제 갖고 있는 수단과 능력 이상으로 소비를 하거나 돈을 빌려올 수 있다는 점. 둘째, 외국의 정부들은 지불준비금을 비축하기 위해 미국의 정부채권을 사들여야 하기 때문에 미국 재무부의 채권에 대한 부가적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미국은 낮은 금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 위의 두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오류를 범하고 있음. 첫번째 주장은 미국 사람들은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지배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실제로 갖고 있는 수단 이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일지 모름. 또한 외국에서 달러를 비축하려 하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수단 이상으로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더욱 옳을지도 모름. 외국정부는 정말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미국 소비자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며 소비를 하라고 강권할 수는 없다."
- 미국 소비자의 부채가 늘고 저축이 떨어진 부분적인 이유는 적어도 지나치게 많은 외국의 저축이 자동적으로 재균형을 이룬 때문이라는 것이 더 그럴듯한 설명임. 다시 말해, 지나친 특권 덕분에 외국은 지불준비금으로 미국달러를 비축하려 한 것이며, 이에 상응해서 미국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투자를 증대시키고 (돌이켜보면, 불행하게도 그 투자 대부분은 전례없는 부동산 거품으로 소진되었음.) 또 부분적으로는 저축을 떨어뜨린 것이었음. 미국의 저축이 떨어지는 데에는 단 두가지 방식이 있음. 그중 하나는 미국의 교역상품부문이 어쩔수 없이 위축됨에 따라 미국의 실업이 늘어나는 방식임. 또 다른 것은 미국의 채무가 늘어나는 방식인데, 이 경우에는 소비자의 부채가 늘어나는 형식으로 이루어짐. 그러나 실업과 부채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특권이 아님. 이런 막다른 골목을 치닫게 된 전후의 과정은 아주 단도직입적임. 외국 사람들이 달러자산을 적극적으로 사들이면, 자국의 통화는 달러에 비해 가치가 내려가는데, 이럴 경우 미국 소비자는 보조를 받는 셈이 되고, 제조사는 달러가치가 어쩔 수 없이 과대평가되면서 벌금을 받는 셈이 됨. 미국의 제조사는 생산을 줄이고 노동자를 해고할 수 밖에 없음. 왜냐하면 외국에서의 수요에 비해 외국의 교역상품 부문이 확대되면, 그에 상응해서 필연적으로 미국에서 교역상품 부문이 국내의 수요에 비해 위축되기 때문.
- 도쿄 정부와 그 동맹국들은 통화체계가 무역 불균형에 미치는 영향은 기껏해야 미미하고 단기적이라면서, 무역불균형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능력의 기본적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음. 86년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는 메이드인재팬에서 미국은 법률가를 만들어내기에 바쁜 나라인 반면, 우리는 기술자를 만들어내기에 바쁜 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일본 관료들은 엔화의 교환가치가 지닌 타당성과 지불준비금의 지위가 중앙은행에 안겨주는 엄청난 특권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처럼 보임. 이들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통화가치는 실로 그나라의 국제경쟁력에 영향을 미침. 그러므로 중국인민은행 및 다른 외국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일본정부 채권을 확보해 엔화를 끌어올릴 경우, 일본은행은 정기적으로 보복을 하거나 외국의 일본채권 구입에서 비롯되는 해악을 중화시키기 위해 미국정부 채권을 구입해 외국의 일본에 대한 바람직하지 않은 자본수출을 미국으로 떠넘겨 버렸음. 다시 말해 일본 당국은 미국 경제력의 거대하고도 불공평한 근원이라고 생각해온 엄청난 특권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 것.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비단 일본뿐 아님. 인민폐가 세계적으로 지불준비금 지위를 획득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도, 중국은 외국이 중국정부 채권을 구매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음.
- 미국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연방정부로서는 국내통화 정책을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왜냐하면 미국의 금융체계는 미국 자체의 조건뿐 아니라 미국달러를 기축통화로 쓰는데서 비롯된 왜곡을 수용해 다뤄야 하기 때문. 아울러 이런 왜곡은 엄청난 규모일수도 있음. 가장 뚜렷한 사례는 지난 10년 동안 주로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무역흑자를 올릴 목적으로 추구해온 체계적인 산업정책임. 이 나라들이 지불준비금을 비축하기 시작하자 우리가 지금 해소하려고 애쓰는 엄청나고도 심각한 불균형이 조성되었고, 따라서 미국의 경제와 금융 및 통화체계는 여기세 맞춰 조정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음.
- 수요는 부실하고 저축은 남아도는 세계에서, 나라마다 저축을 수출해 글로벌 수요의 더 큰 몫을 얻어내려고 기를 쓰게 될 것임. 이를 가리켜 무역보호니, 통화전쟁이니, 지역별 콘텐츠에 대한 요구니, 관세니, 다른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를 것임.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같은 것을 가리킴. 거기엔 글로벌 수요에서 더 큰 몫을 얻으려는 국가간의 경쟁이 있을 뿐임. 문제는 무역전쟁에서 힘의 균형은 분명 한쪽 나라로 기울 것인데, 일반적으로 그 균형이 다른쪽 나라로 기울고 있다고 인식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로인해 각국은 상대쪽 나라에 정당성을 무시한채 더 큰 압력을 행사하려 할 것임. 무역흑자국은 흔히 자국이 흑자를 올리는데 절대적으로 그럴만한 미덕(근검과 절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움. 또한 이런 나라는 적자에 허덕이는 나라가 그 적자를 메울 수 있도록 자본을 대주기 때문에 여신을 철회하겠다고 위협할 수도 있는 입장. 따라서 보호주의가 고개를 쳐드는 걸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위치에 있다고 느낄 것임. 하지만 이들 나라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음. 여신을 철회하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적자를 겪는 나라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실로 바라마지 않는 일. 사실상 패를 쥐고 있는 나라는 적자에 빠진 나라임. 경제학자들은 이런 식의 말을 하지 않으려 하는데, 무역개입이란 언제나 세계적 성장을 위해서는 차선책에 지나지 않기 때문. 그렇지만 무역전쟁은 거대한 경상계정 적자를 안고 있으면서 다양화한 경제에서는 실제로 고용을 증대시킬 수 있지만,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는 나라에선 고용을 떨어뜨림. 수요의 성장이 미미한 세계에서, 수요는 가장 귀중한 경제적 자산임. 적자를 겪는 나라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수요가 일어나는 반면, 흑자를 올리는 나라에서는 수요가 감소함. 이 때문에 무역분쟁에서는 흑자를 올리는 나라가 결국 가장 큰 고통을 당했음. (30년대의 미국이나 90년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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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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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축의 대이동

경제 2014. 10. 12. 20:52

 


세계 경제 축의 대이동

저자
램 차란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3-11-1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세계 경제의 지각 변동,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전...
가격비교

- 몇몇 형태의 통제, 예를 들면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통화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조작은 일반적으로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간주됨. 그러나 오랫동안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촉구했던 IMF도 2011년 새로운 현실을 인정하며 한 나라가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한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없을 경우에 쓸 수 있는 통제를 정당화하는 가이드라인을 설정. 우리의 정책적 조언이 전 범위의 경제정책드을 배제할 수 있는 것은 명확히 아니다. 일을 바로잡는 것의 편익이 상당하고, 일이 잘못되도록 놓아 두는 것의 경제적 및 금융적 위험이 크켜, 다각적인 고려사항을 내부화하는 것의 잠재적인 전지구적 이득이 상당할 경우에는 더욱 배제할 수 없다고 지금은 전임이 된 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 말함
- 남반구 기업들과 그 소유주들은 북반구 기업들보다 수익에 대한 인내심이 더 큼. 단기적 결과에 과다한 초점을 맞추는 단기주의는 모든 미국 주식지분을 압도적으로 보유한 미국 기관투자자들의 추동력임. 분기별 수익에 집착하는 월스트리트는 사업과 국내경제의 장기적 건강성은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기업에게 호의를 보임. 판단은 많은 역할을 하지 않음. 계량경제모형이 한 부문이나 산업 또는 특정 기업쪽으로 자금을 향하게 하기도 하고 그것들로부터 자금을 유출시키기도 함. 대다수 회사에서 CEO장려금은 주로 단기실적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들에게 보상으로 제공되고, 이른바 자본시장의 춤선생의 신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경영자들은 종종 비난을 받거나 그 자리에서 쫓겨남. 금융 서비스 산업이 북반구의 실물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는 한, 남반구 회사들은 미래를 위해 준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반구 회사들은 비슷한 기회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됨.
- 당신이 브라질에서 자동차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큰 액수의 돈이 브라질로 흘러들어온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통화가 평가절상될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만든 자동차들은 수입품에 비해 비싸질 것임. 이것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고, 당신의 산업을 황폐화시킬 수 있을 것임. 그러면 당신은 손실을 면하기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비용절감만으로는 충분치 않음. 어쩌면 정부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임. 물론 구제금융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정책변화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무엇때문에 정부가 그런일을 하겠는가? 그래서 당신은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그 나라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보여줄 수 있는 업계대표단을 조직할 필요가 있음. 다른 한편, 기회의 측면은 어떤가? 만약 당신이 수입의 절반을 달러로 얻고 부채는 없으며, 똑같은 힘에 직면한 인도의 어느회사 사장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당신이 전 지구적 금융 시스템을 추적하고 있다면 당신은 전진하기 위한 탁월한 전략적 선택지를 갖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음. 이자율이 거의 항상 낮은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당신은 미국 달러의 장기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성하며, 이것을 당신 회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 줄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전략적 인수에 사용할 수도 있을 것.
- 더 깊이 파고들어가 어떤 연쇄반응이 격발될 수 있고, 또 무엇이 그것들을 격발시킬 것인지를 고려해 보라. 외적인 요인들에 대한 폭넓고 장기적인 관점을 형성할 때, 몇몇 산업들(아마도 당신 자신의)에서 중력의 중심도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임. 몇십년 전에 공작기계와 자동차가 일본으로 이전해 갔던 것과 같음. 남반구는 향후 10~20년 안에 당연히 통신부분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고(바르티 에어텔이 아프리카로 확장했고, 차이나텔레콤이 AT&T와 파트너십을 맺은 점에 주목할 것) 심지어 제약같은 연구개발 집약산업조차 지배할 수 있을 것임. 인도의 란박시는 이미 제약업계에서 전지구적 사업체가 되었음. 많은 회사들, 심지어 지배적 회사들도 자신들의 지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임. 그들은 자신들의 전략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과 핵심시장이 그들이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확장계획이 제한된 자원이나 인력이라는 거친 현실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임.
- 수년간의 바싹 마른 성장의 건조지대를 힘겹게 통과한 후 당신은 모래언덕 위에 서서 이 거대한 기회의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음. 이제 당신은 이 기회의 호수에 티스푼을 들고 갈 것인가, 아니면 양동이를 들고 갈 것인가? 이것은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북반구의 많은 기업인들은 작게 생각하도록 조건지어져왔음. 이는 그들이 볼품없는 시장에서 한계적 이득을 두고 다투어왔기 때문. 이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티스푼을 들게 될 것임. 과감하고 야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만이 양동이를 가져가게 될 것임.
- 양동이를 들어라. 그리고 당신의 사업방식을 변화시킬 태세를 갖추라. 전략의 수명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고, 새롭고 창조적인 사업모델이 부상해 낡은 것들을 쓰레기 더미로 보내고 있다. 당신의 사업모델이 어떤 것이든, 일정한 시점이 되면 그것은 낡아 현실성을 잃게 될 것이며, 새로운 경쟁자들과 새로운 기회들에 비해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아무런 사전징후도 없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따. 예를 들면 06년까지 이동전화 업계의 주도적 강자였던 노키아와 리서치인모션의 역전된 운명을 생각해보라
- 낡은 준거틀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서는 안됨. 북반구 지도자들이 남반구가 따라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은 자기만족적 안주에 빠지기 쉬움.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에 불과. 이미 남반구 몇몇 기업은 포춘 50대 기업에 들어가기에 충분히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음. 대다수 산업에서 더 많은 남반구 회사들의 제품과 서비스가 북반구의 가장 강력한 기업들에게 그것도 그들의 본거지에서 도전하기에 충분히 좋아지는 데 5~10년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것임. 중국은 항공기와 자동차 분야에서 승리를 거둘 태세를 갖추었고, 제약분야도 겨냥하고 있음. 브라질은 지역 항공분야에서 강력함. 인도는 백오피스 자동화와 업무처리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데이터 분석 같은 부가가치가 더 높은 제품과 서비스로 계속 이동할 것임. 이것은 부분적으로 인도에 자리잡은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액센추어 같은 회사들을 통해 이루어짐. 인도는 향후 5~10년 안에 제약부문의 몇몇 세분시장에서 승리를 거둘 탄력을 받았고, 복제약 부문에서는 이미 경쟁력을 갖추었음. 거대 제약회사들의 특허신청 건수가 감소해온 가운데, 일부 회사는 그 제조능력과 시장점유율을 보고 인도회사들을 인수해왔음.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하라. 여기서 우리는 노동과 통화차익 거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경영역량과 기술적 정교함으로 북반구를 능가하는 점점 더 많은 기업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고도로 훈련된 기업가적 지도다들을 지니고 있고, 그 지도자들은 기본적 사업역량과 과정을 구축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을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는 알카텔-루슨트와 노키아 지멘스를 추월해 세계 2위 업체가 되었음. 화웨이는 북반구로부터 경험있는 많은 경영진을 고용했는데, 예를 들면 무선마케팅 사업부를 이끌 스웨덴인과 휴대폰 단말기 디자인을 이끌 독일인을 고용했고, IBM과 KPMG출신의 컨설턴트를 보유. 2010년 패스트 컴퍼니는 화웨이를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꼽음
- 경쟁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대다수의 경험법칙이 남반구에서는 완전히 틀릴 것임. 남반구의 경쟁자들은 이윤이 아니라 현금을 위해 경영하고, 매우 박한 마진과 높은 자산회전속도, 매우 적은 간접비를 갖고 일함. 그들은 일반적으로 상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계법인과 내부감사를 고용하지 않고, SEC 유형의 규칙에도 구속받지 않음. 그들을 움직이는 추동력은 시장가치가 아니라 시장점유율임. 결과적으로 그들은 과단성 있고 빠르며 기업가적임
- 몇몇 북반구 기업은 파트너에게 자신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나누어주어야 할 것이라는 점과 언젠가 그 파트너가 이런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해 자신들에 맞서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면서도 파트너십을 맺음. 악마와의 계약처럼 보이는 이것이 사실은 계산된 위험임. 몇몇 경우에 그런 파트너십은 게임에 남아 있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임. 이것은 특히 그 기업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경우 저성장 상태에 빠지거나 그런 파트너십 제안을 받아들일수도 있을 다른 경쟁자들에 대해 취약한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 파트너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자원, 고객들과의 접촉기회를 공유하면 양쪽이 모두 이익을 얻음. 위험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조건이 변할 수 있다거나, 파트너가 전문지식을 다른 사업체에 흘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 파트너십 결정은 언제나 힘든 것인데, 이것은 또한 그 결정이 언제나 개인적 차원을 수반하기 때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태롭다고 느낌. 그리고 북반구의 느린 성장은 전 지구적 성장에 대한 북반구 기업들의 강조와 결부되어 공포와 불안이라는 유독성 화합물을 만들어내고, 많은 지도자들을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만듬. 특정 사업에 대한 옳은 답은 경쟁행위와 그에따른 반작용, 잠재적 이익과 손실, 정부가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가장 정밀한 판단에 달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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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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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걷어차기

경제 2014. 10. 12. 20:46

 


깡통 걷어차기

저자
김동은, 조태진 지음
출판사
쌤앤파커스 | 2014-02-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이대로 가면 망한다! 한국 경제는 지금 몰락으로 가는 경계선에 ...
가격비교

- 돈이 시장에 다량으로 풀려나옴에 따라 발생하는 물가상승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장에 돈이 넘쳐나고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자연스레 물가가 상승하는데,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각종 양적 완화 조치에 따른 경제적 이익, 투기의 열매는 시중은행, 금융기관들이 다 챙기면서 물가상승의 고통은 고스란히 일반 국민들의 몫으로 전가될 것임. 물가상승 수준을 일반 국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정부와 중앙은행은 어쩔 수 없이 기준금리를 다시 원상복귀하고 중앙은행이 보유하던 채권을 시중은행에 되팔아 시장의 통화량을 줄이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때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하는 각종 부작용과 고통은 국민들의 삶을 일순간에 도탄에 빠뜨리고 말 것임.
- 원래 금융은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대리인 역할에 불과했음. 그러다 70~80년대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산업경쟁력 걍화를 금융의 힘으로 메우려 하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지기 시작.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해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지 이는 곧바로 금융, 부동산 자산에 대한 투기와 과소비, 사치, 향락으로 흐름. 그 과정에서 주식, 부동산 등 자산을 보유한 일부 부유층은 혜택을 보았지만, 금융자산이 없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경제성장 없이 물가만 상승한 탓에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음. 결과적으로 거품경제는 자산가들의 배만 불렸을 뿐 대중의 삶은 피폐하게 만들어 양극화와 사회적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음.
- 정부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가계나 기업과는 차원이 다름. 09년, 과거 200년에 걸친 전세계 금융위기 사례를 조사한 카르멘 라인하르트와 케네스 로고프는, 경제위기 이전에는 가계와 기업 등 민간에 몰료 있던 빚이 경제위기 이후 정부부채로 전이되는 현상을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음. 이런 현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는데, 대개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시하는 각종 금융정책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고, 경제위기에 빠진 가계, 기업의 빚을 빚의 종착역이 정부가 최종적으로 떠안아 민간의 빚이 정부의 빚으로 이전된 결과로 이해되고 있음. 민간의 빚을 정부가 대신 책임져준다는 것은 혜택 당사자인 민간(가계, 기업)으로서는 크게 환영할 일인지 몰라도 국가 전체로 보았을 때는 국가경제 전체가 도탄에 빠질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유발. 세계 50여개국의 역사적 경제위기 상황을 분석해온 카르멘 라인하르트와 케네스 로고프, 빈센트 라인하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1800년대 이후 역사적으로 정부부채가 위험수준인 GDP대비 90%를 넘었던 26차례의 경우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발견됨
* 빚의 근본적 해결없이 빚갚기를 미루어온 결과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이 최소 23년 이상 계속됨
* 이 기간중 실질 GDP성장률은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매년 평균 1.2% 이상 감소
* 빚을 모두 갚을 즈음엔 이미 실질 GDP 성장률이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평균 25%가량 하락
* 대개 경제위기가 닥치면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부정적 신호가 사회전반에 퍼지는데, 과거의 사례를 살펴볼 때 그 신호가 사회에 퍼졌을 즈음이면 이미 위기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은 경우가 많았음
- 2013년 3월 10년만기 채권 기준 미국 정부채권 이자율은 2% 내외로, 한국의 3% 내외, 스페인, 이탈리아의 5% 내외 등 다른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 이를 두고 채권시장 채권자들이 미국 정부 재정을 신뢰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미국 정부 재정은 실제로 매우 튼튼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과 다름. 미국 정부 채권 이자율이 미국 정부의 엄청난 빚, 부실한 적자재정 상황에도 불구하고 안정되게 유지되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상당부분 매입하고 있기 때문. 연방준비은행은 08년 당시 전체 미국정부 채권의 10%만 매입했으나, 12년, 13년에는 각각 90% 내외를 매입했고, 14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전량을 매입할 것으로 예견됨. 이런 상황은 매우 우스꽝스럽고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함. 미국 땅 한편에서는 정부가 채무자로서 열심히 채권을 찍어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연방준비은행이 채권자로서 열심히 채권을 사들임. 현재로서는 외형상 미국 재정위기가 채권발행을 통해 모두 해결되고 있는 듯 하지만, 결국 빌린돈을 갚아야할 시기는 찾아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 빚은 또 다른 채권발행을 통해 다음세대, 그 다음세대로 순차적으로 전가될 것임. 그나마 마냥 빚을 늘려갈 수만도 없기에 미래세대조차 그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찾아온다면 미국은 결국 정부부채를 갚지 못해 사상 초유의 부도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임. 이처럼 미국 정부의 부도는 앞으로 반드시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위기상황이지만, 미국은 빚을 밎으로 갚아 간신히 그 시기를 지연시키고 있음. 세계 경제중심에 있는 미국이 어느날 부도 사태를 맞는다면 그 충격은 미국경제를 넘어 세계 경제 전체까지 단숨에 집어삼킬 것임.
-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의 수출은 상당한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수출에만 전력을 다하는 일부 대기업들은 수익이 크게 향상되고 있음. 그러나 그 대가로 정부 재정적자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일본 국내 물가도 미친 듯이 상승하고 있음. 일본인들은 살인적인 물가상승에 고개를 저으며 그나마 반쯤 열었던 지갑을 다시 닫고 있음. 가계 소비는 오히려 줄어들었고, 내수시장을 주도하는 일본 내 기업들의 설비투자와 고용 역시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음. 수출은 잘되는데 내수시장은 죽어가는 나라, 물가 때문에 장보기가 두려운 나라, 과연 그들은 아베노믹스로 행복해졌을까? 아베노믹스는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가 본받아야 할 경제모델인가?
- 2013년 중국의 정치지도자 시진핑이 등장하며 중국경제는 크게 달라지기 시작. 특히 중국 경제의 수장이 된 리커창이 내놓은 일련의 경제정책은 08년 이후 세계 경제의 주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쉽고 달콤한 길 정책과는 전혀 다른, 어렵고 힘든 길 정책에 가까운 것이어서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음. 리커창의 이름을 따 리커노믹스로 이름 붙은 중국의 새 경제정책은 미래 중국을 위한 근본적인 경제개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현재의 경제성장률 둔화는 용인하겠다는 것을 주된 취지로 하고 있음. 리커노믹스는 3가지 원칙을 내세우고 있음.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것 (No stimulation), 중국 정부, 기업, 가계의 부채를 축소하겠다는 것 (Deleverage),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하겠다는 것 (Structural reform)이 바로 그것임. 그 동안의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질적 개선에 초점을 맞춘 리커노믹스는 수출, 제조업,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에서 벗어나 내수, 서비스업,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 이를 위해 중국정부는 월 매출 2만위안 미만 영세 중소기업의 거래세 및 부가세를 일시 면제해주고 개인이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중소기업 성장과 내수진작을 위한 조세정책과 보조금 정책을 유효적절히 사용 중. 또한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후됬던 중국 중서부 지역에 대한 집중적 개발투자, 도농간 빈부격차 해소방안 등을 내놓으며 중국 경제의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극심한 소득불균형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피력하고 있음. 실제 이같은 정책은 시행한지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음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음. 2013년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8월 소매판매는 전년보다 13.4% 늘어 중국 내수시장이 상당히 활성화되었음을 보여줌. 리커창이 근래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기고문을 통해 밝힌 담화에 따르더라도 리커노믹스 출범이후 중국 연간 GPP는 7.6%, 실업률은 5%, 인플레이션은 2.4%로 예상되어 주요 경제지표가 중국 정부가 관리가능한 합리적 범위내에서 순항중임을 알 수 있음. 물론 앞으로 리커노믹스는 여러모로 적쟎은 도전을 받게 될 것임. 우선 예전과 같은 두자리수 경제성장률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음. 우선 예전과 같은 두자리수 경제성장률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과거 제조업 중심의 세계 하청공장의 위상도 크게 흔들릴 것임. 혹독한 구조조정과 근본적인 규제혁신 속에서 이미 과잉투자 상태에 놓은 기업들이 무너지고, 정부의 비호 하에 있던 많은 국영기업들이 개혁의 칼날에 찢겨나갈 것임. 그러나 그와 동시에 중국내 과열되었던 부동산 시장과 물가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내수를 중심으로 한, 고용효과 높은 서비스업이 성숙하면서 가계의 소비, 투자의욕이 왕성해 질 것이며, 가계부채가 줄고 저축이 늘어나 기업대출과 국가재정 문제 또한 한결 숨통이 트일 것임. 무엇보다 그동안 중국사회의 고질과도 같았던 극심한 빈부격차, 사회갈등이 해소되어 중국사회는 그 어느때보다 단합된 힘으로 모두가 더불어 살만한 공동체를 꾸려나갈 것이라 기대됨.
- 고소득자 혹은 대기업을 상대로 한 적극적 증세는 단순한 정부재원 조달 이상의 의미를 가짐. 공정한 조세제도는 우리 사회의 극심한 사회적 위기(빈부격차)를 완화하고 바람직한 자원배분의 계기를 마련하는 가장 효율적 방법. 오늘날 사회적 위기가 발생한 원인 중 하나는 버블시대에 부자들이 자산투기로 얻은 불로소득이 대중의 근로소득 수준을 압도했기 때문. 사람들은 땀흘려 일하기 보다는 각종 금융, 부동산 자산 투기를 통한 일확천금을 노렸고, 건전한 경제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사회적 재원이 투기시장으로 몰렸음. 만약 정부가 이제라도 금융, 부동산 자산거래에 대해 중과세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점차 투기를 통하 불로소득은 줄어들고 건전한 근로소득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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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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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저자
데이비드 스터클러, 산제이 바수 지음
출판사
까치글방 | 2013-11-0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경제 위기와 긴축으로 고통의 긴 터널을 통과한 15여 국가에서 ...
가격비교

- 68년 3월 케네디 상원의원은 성장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자세를 비판했는데, 새겨들을만한 가치가 있음. "지금 미국의 연간 GNP는 8000억 달러가 넘는다. 그러나 미국을 GNP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GNP에는 공해를 일으키거나 담배광고물을 만들거나 고속도로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치우기 위해 앰뷸런스를 출동시키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문을 잠그기 위한 특수 자물쇠를 만들거나 이 자물쇠를 부숴버린 사람을 교도소에 가두는 행위, 삼나무숲을 파괴하거나 무질서한 배열이 주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파괴하는 행위, 네이팜탄 혹은 핵탄두를 생산하거나 경찰의 시위진압용 장비를 생산하는 행위,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GNP는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은 반영하지 않는다. 또한 아름다운 시, 결혼의 장점. 공공토론을 위한 지식, 공무원의 도덕성, 우리의 기지, 용기, 지혜, 학문, 연민, 국가를 위한 헌신도 반영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GNP는 모든 것을 반영하지만, 우리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다. 그리고 GNP는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충격요법의 핵심이라고 할만한 대규모 민영화는 공산당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음.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부가 국가에서 과거 공산당 엘리트, 즉 노멘크랄투라로 대규모로 이전되도록 하여 과두지배 세력의 등장과 불평등의 신화를 낳음. 결과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일반 대중이었음. 빈곤이 만연해지고 (87~88년 빈곤율 2%에서, 95년 40%), 사람들 사이에서 코뮤니즘이 낳은 최악의 결과는 포스트 코뮤니즘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았음. 92년 러시아의 부통령 알렉산드르 루츠코이는 옐친의 프로그램을 경제적 학살이라고 표현하면서 이에 반대. 그러나 모든 국가들이 다 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은 아니었음. 러시아의 이웃나라 벨라루스는 점진주의자의 길을 선택. 그리하여 시장경제로의 이행기에도 빈곤율을 2% 이하로 유지. 실업률이 4%까지 오른적도 있었지만, 이후로는 계속 이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여 오늘날에는 1%미만을 기록하고 있음. 동유럽 지역에서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25개 국가들의 89~02년 거시경제 지표를 살펴보면, 민영화를 급진적으로 추진했던 국가들은 점진적으로 추진했던 국가들에 비해서 남성의 실업률이 56%나 더 많이 증가
- 급진적 대규모 민영화는 소련 공산당의 경제통제를 중단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는데, 서구 사람들은 경제통제를 부패로 인식했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부패는 급진적 민영화 이후에 더욱 만연했음. 떳떳하지 못한 민영화 거래를 통해서 기업을 인수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기업에 투자하지 않고 자산을 몰래 빼내서 팔아치우고는 그 돈을 스위스 은행에 예치. 우리는 기업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기 위해 공산주의를 종식시켰던 24개 국가를 대상으로 3550개에 달하는 기업의 관리자들을 조사. 이를 통해 민영화가 외국인 투자로 실현된 경우에는 기업의 구조조정이 투자와 고용증대와 함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됨. 이는 우리가 살펴보았던 동유럽의 폭스바겐의 사례와 정확히 일치했음. 그러나 대규모 민영화가 러시아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형태로 실현된 경우에는 기대했던 경제호황은 뒤따르지 않음. 대신 뇌물수수, 자산편취가 민영화 이전보다 더 만연해지면서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짐. 결과적으로 대규모 민영화는 총생산을 16%나 하락시키면서 경기침체가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하는 경제적 충격을 미침
- 충격요법론자들도 이런 단기적 고통을 예상. 그러나 그들은 단기적 고통이후에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서 장기적 경제성장이 뒤따를 것으로 생각했음. 따라서 사망률 급증은 밝은 미래로 가는 도중에 치러야 할 부차적 손실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었음. 일반적 경헙법칙은 돈이 많아지면 건강해진다고 말함. 돈이 많은 사람은 건강관리를 위해서 더 많이 지출할 수 있고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고 좋은 음식을 먹고 안전한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더욱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음. 그렇다면 충격요법이 러시아 국민들에게 전해줄 경제적 혜택이 사망률의 단기적 증가를 만회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충격요법론자들의 논리임. 다시 말해 잠깐의 고통을 넘기면 오랫동안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논리. 우리는 실제 데이터를 보면서 안타깝게도 대규모 민영화가 경제를 회복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 회복은 커녕 국민총생산이 16%나 떨어졌고, 기대수명은 2.4년이나 짧아짐. 결국 처음에는 충격요법을 지지했던 사람들조차도 이 정책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됨. 밀턴 프리드먼도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함. "소련 붕괴 이후 즉각적으로 나타났던 후유증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지금 러시아인들이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첫째도 민영화, 둘째도 민영화, 셋째도 민영화라고 대답했다. 내가 틀렸고, 스티글리츠가 옳았다."
-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국제금융사회는 아시아의 기적의 이미지를 보존하기 위해서 아주 열심히 노력. 예를들면,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된 폭로기사에는 세계은행 인도네시아 정부의 요청을 반영하여 인도네시아 경제에 관한 보고서의 논조를 부드럽게 해주었음. 그리하여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가등급을 잘 받도록 하여 자본을 유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음. 150인으로 구성된 세계은행 인도네시아 사무소를 담당하고 있는 경제학자 데니스 드 트레이는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솔직함을 유지하는 것과 사람들을 돕는 것 사이에는 트레이으 오프 관계가 있다고 말함. 본질적으로 세계은행은 아시아의 기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음. 부풀려진 보고서가 모든 사람들을 속이지는 못했음. 일부는 과장을 인식하고 곧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음. 94년 가끔은 선견지명이 있는 폴 크루그먼이 아시아의 기적의 신화를 경고. 그는 아시아의 가파른 성장이 기술개발 혹은 노동 생산성의 증진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해외자본 유치라는 이상한 방식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경제거품의 조짐이 일고 있다고 했음. 부동산 시장에서는 공급과잉이 나타나고 있었고, 96년까지 200억 달러에 달하는 부동산이 팔리지 않고 있었음. 많은 건물이 텅 비어 있었음. 97년이 되면서 투자자들은 부동산 거래가 주택거품을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했음.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 투자가 조지 소로스와 그의 퀀텀 펀드는 동아시아의 통화가치가 지나치게 절상되어 있기 때문에 조만간 평가절하될 것이라는 쪽에 내기를 걸었음. 그의 움직임은 금새 패닉을 일으킴. 동아시아 전역 전체에서 시장과 통화가 붕괴됨. 97년과 98년 사이에 타이의 바트화와 인도네시아의 루피아와 가치는 각각 75%와 80%가 떨어짐. 도미노가 무너지면서, 동아시아 지역 전체가 순식간에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금융 패닉에 빠져들었음. 동아시아로 몰려왔던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 외국인 투자자들이 120억 달러에 달하는 부동산 투자와 제조업 투자를 회수하면서, 통화가치는 더욱 하락. 98년 1월 중순까지 떠올랐던 동남아 시장의 통화가치는 금융위기 이전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짐.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대공황과 비슷한 경제적 재앙을 경험. 이 지역의 통화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식료품 가격은 두배로 올랐고, 그중에서도 쌀을 비롯한 주요 식자재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음. 설상가상으로 97년 10월에는 엘리뇨 현상으로 가뭄까지 겹쳐서, 쌀과 주요 곡물의 부족으로 기초 식자재 가격이 더욱 상승. 인도네시아의 빈곤율은 겨우 1년 사이에 15%에서 33%로 크게 상승.
- 동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IMF는 자신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IMF에 도움을 청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국가들은 호황기에 IMF의 정책조언에 따랐던 국가들이었음. 실제로 IMF의 조언은 호황기를 부추기면서 이후에 다가왔던 금융위기를 재촉. 결국 IMF는 동아시아국가들에는 정책의 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할 수 밖에 없었음. IMF는 90년대 러시아의 위기에 접근했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국가들에도 일률적인 처방으로서 충격요범을 주문.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 단기적 고통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음. IMF의 처방은 워싱턴 컨센서스에 근거한 것이었으나, 동아시아의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후에 나타나게 될 결과를 우려했음. IMF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뉴딜 정책을 모방하기 보다는 광범위한 부문에서, 특히 공중보건 부문에서 예산을 삭감할 것을 요구. 공중보건 부문의 삭감은 불황기에는 정부지출 증가로 인한 적자보다는 흑자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었음. 다시 말해, 흑자 기조를 유지아면 투자자들이 신뢰를 가지도록 해서 궁극적으로 경제를 빨리 회복시키고 국민들에게 미치게 될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유의미한 많은 데이터들이 흑자기조가 필요하거나 타당하다는 IMF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음. 사실상 IMF의 논리는 실제로 나타나는 성공적인 결과라기 보다는 반복되는 주장에 바탕을 둔 것. 러시아 사례에서 알수 있듯이, 그 결과는 경제적 측면에서나 공중보건 측면에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음.
-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축소했던 국가들은 빈곤율이 크게 증가. 98년 한국의 GDP는 30%나 하락했고, 타이, 인도네이사, 말레이시아는 각각, 27%, 56%, 34% 하락. 당시 한국은 사회보장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긴축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임. 결국 금융위기의 충격은 보다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의 굴레를 씌웠고, 한국의 빈곤율은 97년 11%에서 98년 23%로 두배 증가. 인도네시아와 타이도 마찬가지였음. IMF로부터 차관을 들여온 국가들이 무자비한 긴축정책을 추진했던 것에 반해서, 긴축을 피해갈 수 있었던 말레이시아는 빈곤율이 7%에서 8%로 증가하는 데 그쳤음. 불황기간에 긴축이 빈곤율을 증가시키면서, 국민들의 정신건강도 고통을 받음. 한국에서는 IMF라는 단어가 실업이라는 의미로 통함. 지난 10년 동안 감소했던 남성 자살율이 갑자기 45%나 증가. 타이에서는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률이 증가했지만 특히 자살율은 60%가 넘게 증가
- IMF가 했던 모든 일은 동아시의 불황이 더욱 깊게, 더욱 오래가게, 더욱 풀기 어렵게 만든 것이었음. 실제로 IMF의 처방을 가장 열심히 따랐던 타이가 좀더 독립적인 길을 갔던 말레이시아와 한국보다 더 나쁜 상황을 맞이했음. 아이러니하게도, 예를 든 4개국 중에서 IMF의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았던 말레이시아만이 IMF가 궁극적으로 내세웠던 경제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음. 사회보장 지출의 감축을 거부했던 말레이시아만이 유일하게 97년 정부재정 흑자를 기록
- 아이슬란드는 대불황에 맞서 싸우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데가 있었음. 많은 사람들이 미국, 영국, 그리스, 스페인에 관심을 집중하는 동안, 아이슬란드는 불황이 공중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기 위한 작은 실험실이 되었음. 첫째, 비슷한 문화와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드문드문 거주하는 섬 지역을 관찰함으로써, 유럽연합처럼 규모가 큰 지역에서는 측정하기 어려웠던 경제정책의 효과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었음. 아이슬란드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수준의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의 진료, 입원, 사망에 대한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음. 이에 반해서, 유럽은 건강보험 혜택 그 자체와 보장범위가 서로 다르고, 건강보험 체계에서 사각지대도 존재했기 때문에(특히 노숙자처럼 가장 취약한 계층이 여기에 해당되었음), 어떤 사람에게 질병이 발생하게 된 요인을 정확하게 관찰하기가 어려웠음. 둘째, 아이슬란드는 노르딕 스타일의 강력한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음. 이런 프로그램에는 식량보조, 주택보조, 재취업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었음.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최소한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대단했음. 그리고 국민들의 사회참여 수준도 매우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친목단체나 클럽의 회원으로 활동. 이 때문에, 전 세계 사회과학자 네트워크가 실시했던 세계가치조사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나타났음. 따라서 아이슬란드는 엄청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장점(특히 민주적 참여, 사회적 지원, 사회보장체계)이 공중보건상의 재앙을 예방하고 회복력을 준다는 우리의 가설을 검정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가 되었음.
- 연구팀은 금융위기 동안에는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건강에 좋지 않은 흡연, 음주, 패스트푸으 소비를 줄인다는 사실을 알아냈음. 이런 변화는 어느정도는 가격변화와 소득감소가 원인이었음. 대체로 담배나 주류의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그것을 덜 소비함. 그리고 외식보다는 집에서 식사하는 쪽을 선택. 또한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잠을 더 많이 잤는데, 이는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과 관련 있음. 연구팀은 이처럼 불황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변화를 초래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었지만, 공중보건 통계가 불황시기에는 긍정적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증거는 찾을 수 있었음. 식습관을 개선하고 술을 덜 마시면, 건강은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남. 09년 10월 맥도날드는 크로나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토마토와 양파가격이 폭등하자 아이슬란드에서의 특별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아이슬란드에서 철수. 당시 한 프랜차이즈 가맹업주는 독일로부터 수입하는 양파 1킬로를 사려면, 고급 위스키 한병에 해당하는 가격을 지불해야한다고 말함. 맥도날드가 떠나고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나가는 대신 집에서 지역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짐. 결과적으로 패스트푸드의 소비량이 감소하면서 지역에서 잡히는 생선의 소비량이 증가. 실제로 아이슬란드의 경제회복은 어느정도는 전통어업의 부활로 추진력을 얻은 셈. 그리고 이는 당연히 수출 붐으로 이어졌음.
- 또한 아이슬란드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 주류 판매점을 민영화하라는 IMF의 권고를 거부하고 주류에 대해서는 국가가 독점하는 형태를 계속 유지. 80년대와 90년대에 아이슬란드에서는 술을 구매하기가 어려웠음. 이후 아이슬란드는 자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주류 수입가격이 엄청나게 높아지자, 이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엄격하게 통제. 이 정책은 아이슬란드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술을 마시려면 상당히 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했음.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불황시기에 나타나는 주요 현상 중의 일부가 실제로 국민들을 더욱 건강하게 해준다고 말할 수 있음.
- 아이슬란드 정부는 국민들의 건강과 복지를 지켜내기 위해 두가지 중요한 조치를 취함. 첫째, 긴축을 강력하게 추진하라는 IMF의 권고를 무시하고, 뉴딜 정책의 현대판이라고 할 정책을 추진. 아이슬란드는 금융위기가 발생하기도 전에 견실한 사회보장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 아이슬란드 정부는 이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투표를 실시한 이후,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을 훨씬 더 많이 지원. 07년 아이슬란드 정부 지출은 GDP의 42.3%였음. 08년에는 57.7%로 증가했고, 이후로도 금융위기 이전보다 10%가 넘는 수준을 계속 유지. 이런 증가는 인플레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부채가 도저히 상환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도록 하지도 않았고 외환에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만들지도 않았음. 다시 말해 긴축론자들이 경기부양 프로그램에서 발생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재앙은 발생하지 않음. 아이슬란드는 공중보건 체계 예산을 크게 삭감하여 균형재정을 달성하려 하지 않았음. 아이슬란드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국립보건 서비스가 의약품을 수입하기 위한 예산이 부족해짐. 그러나 아이슬란드 정부는 이런 어려움을 07년부터 09년까지 공중보건 예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헤쳐나감. 그 결과 반드시 필요한 치료는 보장되었고, 몸이 아픈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발행하지 않음. 또한 아이슬란드는 국민들에게 음식, 일자리, 주택을 보장하는 사회보장 체계를 계속 유지. 실업자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노동시장 프로그램도 대폭 강화. 중소기업의 부채를 면제해주는 새로운 정책도 도입. 이는 미래에 현금흐름이 양호하리라고 판단되는 중소기업에는 부채의 일부 혹은 전부를 탕감해주는 정책이었음. 결과적으로 고용주는 불황기간에도 기존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새로운 직원을 고용할 수 있었음. 파리에 위치한 경제협력개바릭구는 아이슬란드 정부는 실업자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서 고용증진을 위한 예산을 크게 늘렸다고 보고. OECD는 긴축정책을 권호가는 IMF와 비슷한 입장을 견지하지만, IMF에 사람을 생각하면서(즉 사회보장 체계를 유지하면서) 일을 처리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음.
- 보건 서비스 지출이 지나칠 정도로 크게 늘어난 이유는 미국인들이 고령화되거나 허약해졌기 때문이 아님. 예를 들면, 흡연율은 유럽이 더 높고, 고령 인구비율은 일본이 더 높음. 비만, 기술개발, 의료시설의 높은 가동률도 지출이 이처럼 엄청나게 늘어난 원인이 되지는 않았고, 처방약의 연구와 개발도 마찬가지였음. 오히려 미국은 지출에 대한 본전도 제대로 뽑지 못하고 있었음. 예방을 위한 치료를 중심으로 현명하게 지출하는 체계가 아니라 의료비가 더 많이 더는 환자치료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음. 의료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되는 사람은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음. 그러나 의사들이 반드시 비용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선태갛지는 않음. 대신에 그들은 때로 CT촬영이나 인공관절 치환술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검사나 치료를 처방함. 이런 검사나 치료는 의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높은 수익을 발생시킴. 결과적으로 미국식 보건서비스 체계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보는 쪽은 환자가 아니라 보험회사, 병원, 제약회사와 같은 의료서비스 제공자였음.
- 19세기 이후로 불황과 실업은 자살율의 증가와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음. 데이터 수집기술의 발전으로 공중보건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실업이 우울증, 불면증, 자해행위의 주요 위험요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음. 실업은 특히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우울증에 빠뜨릴 수 있음. 데이터는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일이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자살을 하게 될 가능성이 약 두배라는 사실을 보여줌. 80년대 초반, 영국 경제학자들은 이런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 그들은 실업이 정신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지, 다시 말해 직장을 잃은 사람이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지를 살펴보았음. 이처럼 중요한 문제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을 추적하여 조사하는 대규모 연구를 통해서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음. 그리고 이 연구는 연구자들에게 실업과 우울증 중에서 무엇이 먼저 나타나는지를 알려주었음. 답은 두가지 모두였음.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잃어기 때문에 우울증에 빠짐. 다른 사람은 우울증을 겪고 있기 때문에 직장을 잃고, 우울증은 직장을 잃었기 때문에 더욱 악화됨.
-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동유럽 국가에서 서유럽의 주요 무역파트너인 핀란드는 소련 공장으로 납품하는 물량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경제의 3분의 1을 잃었음. 핀란드도 소련과 비슷한 음주문화를 갖고 있었고, 불황과 실업률이 치솟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에서는 불황이 자살에 미치는 효과가 별로 나타나지 않음. 이에 반해 러시아, 카자흐스탄, 발트해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는 실업의 증가가 사망률 위기로 이어짐. 이와 같은 인상적 차이는 실업자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동유럽 국가들은 1인당 37달러를 투자하지만, 핀란드와 같은 서유럽 국가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150달러를 투자한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음.
- 논리적인 면에서는 실증적인 측면에서 긴축은 실패했다고 보아야 함. 긴축은 경제 이데올로기에 불과. 긴축은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이 국가의 개입보다 항상 더 낫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 사회적 입장에서 나온 신화이며,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사회복지 체계를 민영화하려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영합하는 믿음에 불과. 또한 긴축은 불황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계층에 가장 커다란 피해를 줌
- 공중보건, 교육, 사회보장 부문은 재정승수가 상당히 높음. 특히 공중보건 부문의 경우 정부가 1달러를 지출하면 3달러가 넌계 경제가 성장함. 반면 은행을 위한 구제금융과 국방부문의 재정승수는 때로는 마이너스 값을 보임. 이런 형태의 정부지출 자금은 고용을 창출할만한 생산적 신규사업부문으로 흘러가지 않고, 개인의 은행구좌와 조세피난철 흘러가기 때문에 경제를 위축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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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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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노예 그 반란의 시작

저자
앤드류 니키포룩 지음
출판사
황소자리 | 2013-08-1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지금 우리는 일인당 200명이 넘는 에너지 노예를 부리며산다....
가격비교

- 모든 에너지 혁신이 그러하듯이 로마의 노예제도도 잠정적인 존중으로 시작해서 부주의한 낭비로 끝을 맺었다. 처음 시골의 지주들이 노예를 부릴 때는 가족의 일부로 받아들여 식구나 진배없는 대접을 했음. 하지만 사유지가 늘어나고 노예가격이 싸지면서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달라졌음. 18세기 몽테스키외는 유명한 저서 법의 정신에서 이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 "로마인은 스스로의 지위를 강화시켰다. 이제 그들의 노예는 더 이상 노동을 같이 하는 동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부와 자만심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노예가 도덕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법이 필요했다. 그것도 가장 끔찍한 법이어야 했다." 로마의 법령중에는 하인이 주인을 살해한 경우 그 집안의 모든 노예를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도 있었음
- 로마의 에너지 소비에 관한 가장 재미있는 의견은 노예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음. 자유를 얻은 에픽테토스는 여생동안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음. 그는 로마제국의 에너지 소비가 극에 달해 더이상 노예를 얻기가 어려워진 때 글을 썼음. 에픽테토스에게 진정한 자유는 생각없이 소비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었음. 자유는 원하는 바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욕망을 없애는 것에서 얻을 수 있따.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해본 사람은 이 말이 사실임을 안다. 그러니 이제 부터 욕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라. 나를 자유롭게 해줄 의견을 구하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말라. 부유한 노인의 비위를 맞추는 대신 철학자의 비위를 맞춰라. 그리고 나중에 쓴 다른 글에서 에픽테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음. 물건을 가지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에 관심을 기울이며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마음을 쓰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
- 조지프 테인터를 비롯한 학자들은 로마가 노예 에너지에 의존하면서 약탈경제를 구축하게 되었다고 지적. "전쟁에서 진 사람들이 경제의 기반이 되고 나아가 노동력을 제공했다. 이것은 높은 경제적 수익을 내는 전략이었다." 로마제국에 에너지와 현금이 더 많이 필요해지자 예멘 시골 지역 농부들을 차출해 군인이 되도록 유도한 후 다른 나라를 로마에 복속시키라는 임무를 내렸음. 이런 농부들이 버리고 간 토지는 시골 지주가 냉큼 집어삼켰고, 그렇게 확장된 사유지에 에너지원을 공급하기 위해 노예를 사들임. 승리를 거둔 군대는 수만명의 노예를 데리고 로마로 돌아옴. 드베이어와 들레아쥬, 에머리가 지적했듯이, "모든 군사적 모험은 도시 귀족의 재산을 불리고, 민간경제에서는 노예노동력의 절실함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여기저기서 더 많은 노예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결국 더 많은 전쟁이 벌어졌다" 이런 에너지 체계는 수세기 동안 로마제국을 잘 지탱해왔다. 로마는 가까운데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침략을 통해 입수. 그리고 에너지 수익성을 높이는 대신 아프리카와 지중해 연안으로 국토를 넓혀 잉여에너지를 착취하는 데 집중함. 시장에 노예공급이 늘어나자일반 로마공민들은 내국세를 내지 않아도 되었음. 훔쳐온 금과 노예에게 부과하는 세금만으로도 국가운영이 가능했음. 하지만 곧 손쉬운 영토합병의 기회는 줄어들었고, 켈트족이나 게르칸족과 같이 호전적 부족과 맞부딪치는 일이 빈번해짐. 결국 로마제국의 에너지 수익과 잉여에너지는 점차 줄어들음. 국경선을 수비하고 수많은 군사들을 원조하는 일은 국고를 고갈시켰음. 로마의 지도자들은 이런 혼란에 대해 간단한 처방을 내림. 내전과 외세의 침략이 일어날 때마다 디오크레티아누스 황제는 군대 규모를 더 키우거나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춤. 아니면 관료를 늘려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도록 함. 초기 로마제국 군대 규모는 13만명이었음. 하지만 제국 멸망이 가까워질무렵의 무장군인 수는 65만명에 이름. 그러나 이런 규모로도 야만족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했고, 세금을 올려도 노예 에너지로 창출했던 초기의 잉여에너지를 대신할 수 없었음. 이리하여 로마제국의 지난한 붕괴과정이 시작됨. 테인터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함. "전체적으로 복잡성(조직내 분화의 정도, 여기서 분화란 전체 과업을 더 작은 과업단위로 세분화한 것)이 크게 증가했다. 그에 대한 해법으로 로마제국은 초기 소련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이런 식의 대응은 제국의 붕괴를 2세기 동안 지연시켰다. 하지만 그로 인해 로마제국 붕괴가 불가피해진 측면이 있다. 로마제국은 능력밖의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그로 인해 멸망하고 말았다. 로마가 사라지면서 제국의 주요 에너지 체계였던 노예제도도 함께 사라짐. 로마제국의 국경선이 축소되고 노예수가 줄어들면서 인간가축의 가격은 상승. 노예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증가하고 토양침식으로 인해 시골 대농장에서 얻는 수익은 감소하면서 경제위기가 연이어 닥침. 대규모 사유지는 아예 방치되거나 적은 노동력으로 일부만 경작되곤 했음. 노예와 독립 자영농민이 야만족 침입자를 지지하는 경우도 있었음. 부자들은 도시생활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사유지를 자급자족 공동체로 바꾸어 나감. 로마경제가 붕괴하자 노예를 보유하기보다 자유민을 고용하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힘. 노예는 차츰 농노가 되었다. 로마에서 농노는 자신이 태어난 땅의 노예라 여겨졌다.
-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노예제도는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간헐적으로 명맥을 유지. 노예를 의미하는 슬레이브는 슬라브족을 노예로 삼는 로마시대 이후 풍습에서 나온 말. 하지만 이제 노예제도는 독점적 에너지 체계가 아님. 중세에 들어서면서 물레방아나 풍력과 같은 에너지 혁신이 일어나고 토지 소유 규모가 작아지면서 노예제의 매력은 감소. 하지만 이 추악한 재생에너지 시스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음. 그리고 16세기에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정복하면서 다시 전면에 등장. 천연두와 같은 구세계 질병 때문에 대륙에서 토착민이 사라지게 되자, 정복자들은 새로운 땅을 개간할 인력이 없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음. 에너지 부족 사태에 직면한 유럽인들은 인간의 근력이 풍부하게 비축된 아프리카로 시선을 돌렸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에너지 시스템으로 꼽히는 것을 만들어냄. 바로 대서양 노예 무역. 거의 모든 유럽국가가 여기에 참여했지만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이 사업의 패권을 거머쥠. 1750년대 후반에 풍력을 이용한 노예선 90척이 대서양을 횡단해서 실어나른 노예의 수만 해도 3만 5천명에 달했음. 수백만명의 노예가 수입되자 유럽인들은 금광을 채굴하고 거대한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워서 설탕, 인디고, 쌀, 커피, 담배, 면화를 재배
- 오늘날 식자층에게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절약이 당연한 일이듯, 제국주의 시대를 살던 부유한 권력층에게 공짜 노동력이라는 개념은 당연하고 이치에 맞는 일이었음. 카리브해 연안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가 없다면, 영국인은 어떻게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해결한단 말인가? 영국의 통계학자이자 농업감정사인 아서 영은 1772년에 세계인구 7억 7500만 명중 자유민으로 사는 사람은 3300만명에 불과했다고 전함. 군주제 아래 예속되는 것은 전세계적인 규범이었음. 인간의 근력에 의존하는 에너지 시스템은 중앙집권형 통제와 조직화를 필요로 했음.
- 노예무역은 유럽사회 전반을 지탱하는 에너지 시스템이 됨. 영국인들이 즐기는 홍차의 찻잔 속에 떨어지는 설탕 한덩어리 조차 족쇄를 채운 인간의 근력이 만들어낸 것. 저명한 자유추의 철학자 존 로크는 모든 소유물로 인두에 낙인을 찍었던 왕립 아프리카 회사의 경영에 참여했었음. 볼테르는 노예를 짐승처럼 다루는 걸 경멸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노예선박을 소유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음. 바베이도스의 노예 플랜테이션 농장은 옥스퍼드댁 올소울스 칼리지의 도서관 기읍에 도움을 주었음. 유명한 박애주의자들조차 재산형성 과정을 추적해보면 노예무역과 연관되어 있을 정도였음. 조부가 노예사업을 통해 모은 돈에 힘입어 로마제국 쇠망사를 집필한 기번은 노예들을 불행한 처지의 사람이라고 묘사하면서 사회의 혜택은 공유하지 못한 채 무거운 부담만 감당했다고 기록. 영국 국교회도 플랜테이션 농장을 소유했었고, 유명한 순회목사 조지 화이트필드는 더운 나라의 개간은 니그로 없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음. 사업가들은 당연히 이 에너지 운송을 지구상 모든 교역의 중심축이라고 보았음. 신세계에서 일어난 제1의 에너지 붐이었던 노예는 자유민보다 비용이 훨씬 저렴했음. 로마인과 마찬가지로 노예무역상 및 소유주들은 호화롭고 윤택한 삶을 살았음. 낭트의 노예상인들은 더러워진 빨랫감을 아이티섬까지 보내 산골자기 시냇물에서 비벼빨게 했음. 아이티의 물이 브르타뉴의 물보다 모든 것을 더 희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었음. 특히 카리브 연안 노예 소유주들의 방종과 낭비는 악명 높았음. 샘 도밍그에는 4만명의 유럽인에 50만명의 노예가 살고 있어서, 노예 주인들은 다양한 여흥거리를 끊임없이 즐겼음. 오케스타라와 도박장에다 이동 밀랍 박물관도 있었음. 방문객들의 증언에 의하면 프랑스인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삶은 욕조와 식탁, 화장실 그리고 애인 사이를 오가는 것이 전부였다.
- 프랑스 귀족이자 뛰어난 사회평론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1831년 미국을 방문했다가 노예제도가 사람들의 습관과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음. 제조업을 하는 북부는 석탄과 자유민의 노동에 의존한 반면 남부는 노예의 에너지에서 부를 얻음. 담배와 면화경작은 부단한 근력이 필요했음. 박식한 토크빌은 미국 남북전쟁 이전의 30년간 노예제도는 남부지역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따는 걸 이해했음. 토크빌은 노예나 하인없이 자란 대다수 북부인은 "참을성 많고 생각이 깊고 인내심이 있으며 신중하고 불굴의 의지를 지닌"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급자족이 가능하며 진취적이라고 설명. 그에 반해 노예들은 남부인 대부분에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즉각적으로" 공급해줌. 따라서 "미국 남부사람들은 화려하고 장엄한 것을 선호하고, 평판을 중시했다. 또 여흥과 오락을 즐기고 무엇보다 빈둥거리기를 좋아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할 이유가 없었다." 북부인들이 부와 안위를 추구하는 일을 마음의 즐거움이나 쾌락보다 더 우위에 놓을 때, 남부인은 400만명 가까운 노예들이 제공하는 에너지를 통해 얻은 부를 군사게임, 여흥, 오락에 썼음. 남부인은 충동적으로 행동하곤 했다. 그래서 더 화통하고 더 솔직하며 더 재기발랄했다. 미국 북부인이 중산층의 장단점을 두루 갖추었다면, 남부인은 귀족계층의 편견과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노예제도는 백인들의 진취적 기상을 약화시켜 버린 것
- 벨기에 태생 물리학자 알프레드 르네 우벨로데는 55년, 영국의 증기기관 발명이 노예제도 때문에 1700년 가량 미루어졌다고 주장. 피스톤과 증기의 강력한 힘은 고대인들도 익히 알고 있었음. 하지만 기존 에너지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건전한 수익을 거두는 상황에서 노예 소유주들은 대체기술 개발에 관심을 두지 않았음. 이런 무관심은 세계사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 무생물 에너지 개발의 경제적 인센티브는 고대 생물 에너지(노예)의 손쉬운 이용으로 상쇄되었음.
-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한 평론가 토머스 칼라일은 기계론적 사고가 대변동을 일으켜 파탄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 칼라일은 공장환경과 도시 슬럼가의 상황도 노예제도가 있던 때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보았음. 유명한 소론 시대의 표적들에서 상류층 출신인 이 역사가 겸 평론가는 기계만능시대를 큰 소리로 규탄. "사람들의 손뿐만 아니라 마음과 머리도 기계적으로 변하고 있다. 개인의 노력과 자연의 힘 등 모든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이 바라고 찾아다니는 것은 내면적인 완벽함이 아니라 외적인 조화와 배치, 시설과 규칙 즉 이런저런 기계장치들이다. 모든 노력과 애착, 생각이 기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기계적 특성을 띠게 되었다."
- 1차 대전 직후 1921년, 프랑스 석유부 장관 앙리 베랑제는 석유의 변형능력을 정리하여 보고서를 작성. "석유를 소유한 사람이 세상을 소유할 것이다. 중유로 바다를, 정유로 공기를, 등유와 조명용 석유로 땅을 다스리게 된다. 나아가 금보다 더 가치있고 인기가 높은 물질인 석유에서 얻은 엄청난 부를 이용해 경제적인 면에서 사람들을 지배할 수도 있다." 나중에 쿨리지 대통령은 "세계의 패권은 활용가능한 석유와 그 산물의 소유에 달려 있다"고 단언했음.
- 남부 캘리포니아는 무질서한 교외개발의 전형이었음. 게다가 이런 식의 난개발은 미국 교외지역 대부분으로 펴져나감.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네명중 한명이 자동차를 소유했고, 고속도로 4킬로마다 주유소가 들어섬. 캘리포니아는 민자도로를 건설해서, 석유 소비 증가를 촉진시키는 석유산업의 능력을 몸소 보여주기도 함. 고속도로에 부과하는 세금의 수익률이 좋았기 때문에 정부는 사실상 대중교통 개념을 포기하기에 이르렀음. 40년대까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는 트롤리 전차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 하지만 거대 석유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음. GM과 엑슨, 파이어스톤 타이어가 재원을 대는 자금조달 플랫폼이 샌프란시스코의 송전 시스템을 샀다가 되팔면서 가혹한 조건이 덧붙여짐. 바로 트롤리 전차를, 엑슨 휘발유와 굳이어 타이어를 사용하는 제너럴 모터스 버스로 대체하는 것이었음. 제너럴 모터스와 캘리포니아의 스탠다드 오일, 파이어스톤도 이와 비슷하게 LA의 전차운행을 서서히 폐지시킴. 이에 대해 저널리스트 칼 솔베르그는 76년 석유권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함. "이런 식으로 거대 기업들은 45개 도시에서 100개의 전차 시스템을 없애나갔다. 뉴욕,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세인트루이스, 솔트레이크시티 등이 이에 해당된다. 49년에 이들은 범죄공모로 유죄를 선고받는다. 주모자인 제너럴 모터스의 회계담당자 그로스만은 1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해안지대 시추작업을 반대하는 여론과 임해지역으로 시추작업을 확장하기를 원하는 석유회사들을 동시에 달래기 위해 캘리포니아는 유정사용료로 공공해변과 삼나무 공원을 조성했다. 그런데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석유의 주요 시장을 이루는 자동차를 이용해야만 했다
- 석유와 그 무생물 조력자는 1차대전과 마찬가지로 2차대전 때에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 미국인들은 자국의 석유 매장량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맹신했지만 석유수입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은 합성액체연료를 연구하고 미국에서 수입한 원유를 비축해두었음. 팽창주의를 표방하던 이 두나라는 석유부족이 자국의 정치, 경제적 야망을 제한하게 되리라는 걸 인식했음. 그래서 외국의 에너지를 입수하는 독특한 군사전략에 희망을 걸었음. 독일의 잠수함 유보트는 대서양에서 유조선을 침몰시켰고, 일본은 미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금수조치를 취하자 진주만 공습을 감행. 세계대전을 벌이는 동안 일본과 독일은 석유부족을 엄청난 규모의 인간노예로 메웠음. 일본은 수백만명의 한국, 중국인 노동자를 강제징용했고 나치는 동유럽과 소련에서 수백만명을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미국은 자국의 석유소비를 군사장비에 집중시켰음. 석유자원이 거의 없던 독일은 석탄 액화 공장에 크게 의존. 사실 나치의 주요 군사전략인 전격전은 저렴한 석유를 공급 받지 못한데서 시작되었음. 노르웨이와 프랑스, 폴란드를 속전속결로 점령하면서 독일은 더 많은 석유를 확보. 하지만 이 전략은 러시아 대평원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해서 러시아 최대 석유 생산지역 두곳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감. 석탄으로 만든 저급 합성액체연료를 쓰는 독일의 비행기는 고옥탄 연료를 사용하는 연합군의 비행기에 비해 기동성과 속도면에서 뒤떨어졌음. 결국 전쟁의 주도권 다툼은 얼마나 많은 전투용 기계노예를 동원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됨. 많은 양의 에너지를 잡아먹는 투기적 잠수함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음. 양측은 잠수함대를 이용해서 서로의 석유공급을 차단하려 했음. 성능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20억 달러짜리 독일의 유보트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연합군은 철과 석유, 선박에 총 206얼 달러를 소비. 일본이 태평양에서 벌인 잠수함전에는 1조달러의 비용이 들었음. 종전 후 일본의 군사령부 총장 도요다 소에무는 "일본이 전쟁에 총력을 기울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두가지 요소인 함선과 석유가 부족했다"라고 인정. 46년 미국에서는 비밀리에 독일 최고위급 장교들과 면담을 진행하면서 전쟁의 패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한명도 빠짐없이 연료의 질과 공급량 부족을 거론
- 미합중국은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와 유럽/일본의 인프라 재건에 석유를 이용. 이로 인해 석유 연료 기계가 산산이 부수어버린 석유기반 산업은 다시 부활할 수 있었음. 나아가 석유는 막강한 석탄동맹이라는 고비를 넘기게 됨. 미정부는 납세자들의 돈으로 마련한 13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야심찬 유럽 부흥정책인 마셜플랜을 가동했고, 여기서 유럽과 일본이 석탄대신 석유를 주원료로 사용한다고 약정했기 때문이었음. 마셜플랜 기금은 도로를 만들고 미국자동차를 구매했으며 유럽의 자동차 제조업체를 매수하기도 했음. 마셜플랜 기금중 6분의 1은 미국 석유회사가 중동에서 퍼올린 석유값으로 채워졌음. 마셜플랜의 내용에 의하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세상에서 가장 값싼 석유를 텍사스 원유보다 40%나 더 비싼 가격에 팔았음. 유럽부흥을 기치로 내건 마셜 프로제트가 이뤄낸 또 다른 석유경제의 기적은 일본과 유럽의 경제 르네상스임. 47년 이후 유럽의 GNP는 32.5%나 상승했고 산업생산량은 전쟁이전과 비교해 40% 증가. 농업생산량은 11% 신장. 유럽은 이를 가리켜 고도성장이라 지칭했음. 60년에 이르자 유럽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중 석유 비중은 종전 10%에서 30%로 늘어나 있었음.
- 로마의 노예주인들은 노예를 부리는 데 필요한 칼로리 계산을 위해 그램단위까지 신경씀. 반면 일반적인 현대인들은 기계 하인들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 알지 못함. 그렇지만 정확한 수치를 듣고나면 정신이 번쩍 들 것임. 캐나다 최고의 에너지 분석가라 할 수 있는 데이비드 휴느는 '11년에 석유 1배럴에 약 6기가줄, 즉 1700킬로와트의 에너지가 담겨져 있다고 추정. 신체 건강한 사람이 1시간 동안 자전가나 트레이드 밀을 돌려서 발생시킬 수 있는 전기에너지는 100와트 전구를 밝힐 수 있는 정도로 이를 에너지 단위로 환산하면 약 36만 줄. 휴즈의 추산에 따르면 주말과 공휴일에 쉬고 하루 8시간 동안 상식적인 수준의 노동을 한다는 전제로 석유 1배럴의 에너지와 맞먹는 일을 한 사람이 자전거나 트레이드 밀을 돌려 만들어내려면 7.37년을 일해야 함. 만일 하루 12시간, 휴일없이 일주일 내내 노동한다면 석유 1배럴의 에너지 생산기간은 3.8년이 됨. 평균적인 북미인 1명이 매년 소비하는 석유량을 23.6배럴이라고 보면, 1인당 174명의 가상노예를 거느린 셈. 이를 5인가구 기준으로 환산하면 무려 900명의 노예를 부리는 꼴. 인구 3억명의 국가라면 5000억 명이라는 믿기 힘든 숫자의 석유기반 기계 노동자를 통제하고 있는 셈. 이탈리아 인류학자 알베르토 안젤라는 고대 로마인의 24시라는 책에서 담담한 어조로 50명의 노예가 2시간 동안 피아트 자동차를 끄는데 사용하는 에너지는 석유 한컵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 문명화된 사회에서 물질적 부와 안위를 누리는 자리로 올라가는 방법은 두가지 뿐이다. "하나는 사람들을 종속시켜 자신이 착복할 잉여에너지를 생산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텍사스의 지질학자 얼 쿡이 76년에 출간한 통찰력 넘치는 책의 한구절. 다른 방법은 잉여에너지가 생산되도록 천연에너지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 연료는 더 많은 기계에게 동력을 공급해서 더 많은 잉여를 생산한다. 쿡은 노예제도가 없었따면 산업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예제도는 주요 에너지 흐름을 통제해서 관리자가 잉여물을 보장받는 기반을 조성해 놓았음. 인간노예에서 무생물 노예로 바뀐 것은 그야말로 호쾌한 슬램덩크 슛이었을 뿐임
- 모든 에너지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의 의존적 성향과 예상치 못한 역학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노예의 목에 쇠사슬을 씌우면 그 쇠사슬의 다른 끝이 우리의 목을 조인다." (랄프 왈도 에머슨)
- 미국 작가 리처드 매닝의 설명에 따르면 "농업은 식량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부의 축적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에너지 혁명은 성역할을 바꾸어놓기도 했음. 특히 쟁기를 사용해서 밀, 보리, 호밀 등을 수전농경으로 재배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했음. 육중한 근육과 폭발적 힘을 요구하는 도구는 남성의 체격에 유리했음. 쟁기로 땅을 개간하는 농업지역에서 남자들이 밭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가정을 돌보았음. 반면 순수한 에너지로 생각할때 훨씬 더 우수한 접근방식이라 할 밭 경작지역에서의 성역할은 많이 달랐음. 괭이와 호미로 땅을 일구는 이 지역에서 여성들은 들에 나가 작물을 키우는 일을 훨씬 가치있게 생각했음. 눈여겨볼 사실은 그 지역의 후손들이 오늘날에도 수전농경을 하던 지역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양성평등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 정치나 노동계, 기업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의 비율도 훨씬 더 높음. 쟁기의 사용으로 인해 모계사회는 부계사회로 바뀌어감. 프랑스의 위대한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전능한 모계여신의 치세"가 끝나고 "수메르와 바빌론에서 우세했던 남신과 사제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말함
- 인류학자 제라드 다이아몬드는 농업을 자신의 논평 제목과 같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했음. 시간이 지나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식습관은 단조로워졌고 당뇨병과 관상동맥성 심장질환, 비만과 같은 문명의 질병이 생겨남. 농업은 소수의 왕과 파라오의 손에 부, 즉 잉여에너지를 집중시킴. 나아가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노예로 전락시켜 태양을 받아 자란 식물을 인간의 연료로 바꾸는 일에 종사하도록 했음. 초기 농업으로 윤택해진 식량사정 덕에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는 가축이 옮긴 전염병이 퍼지기도 했음. 질이 떨어지는 밀을 단일재배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얻으려 하다보니 오히려 인간수명을 짧아졌고, 치아는 약해졌으며 골밀도는 낮아짐. 사람들의 키도 작아짐. (대부분의 수렵채집인들은 초기 곡물재배자들에 비해 23~30센티 정도 키가 컸음) "인구를 제한하거나 식량생산을 늘리려는 시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지만 결국 기아와 전쟁, 폭정에 시달리게 되었다." 87년 다이아몬드가 발표한 소론의 한 대목임.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생각은 과장된 것이었음.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음. 중국은 8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독특한 농업 에너지 제국을 구축하고, 자연적인 에너지 흐름을 이용해 1억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먹여살림. 태양에너지를 신중하게 통제해서 북쪽에는 수수와 밀을 집중적으로 기르고 남쪽에는 쌀을 기르는 방식. 인공적으로 땅을 물에 잠기게 하고 다모작을 하는 벼농사의 혁신은 평균적인 농가에서 산출하는 곡물의 양을 3배로 늘려놓음. 세심하게 관리한 1평방마일(약 2.6제곱킬로) 면적의 농지에서 생산한 곡식은 225명의 농부를 먹여살렸음. 농부들은 영양가 높은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훌륭한 정원을 가꾸듯 괭이질을 하고 비료를 주고 물을 끌어대었음. 거름은 사람의 똥을 이용. 프랑스 에너지 역사학자 장 클라우드 드베르와 장폴 드레아주, 다니엘 에머리는 다음과 같은 언급. "중국이 장기적인 에너지 부족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에너지 구조의 성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월등히 성공적이었기 때문. 역사상 유례없이 역동적인 에너지 구조였다." 지속성 있는 태양에너지 기반 농업 덕분에 중국의 농부들은 자급자족하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음.
- 천연가스로 인공비료를 마음껏 만들어내면서 (949입방미터의 메탄가스가 있으면 무수 암모니아 비료 1톤을 만들어낼 수 있음) 작물수확량은 많아지고, 그에 따라 인구폭발이 일어났음. 1900년에 대부분의 밀밭과 옥수수밭은 거름과 조분석, 질산칼륨에 의존해서 질소성분을 강화시켰음. 대기이 80%가 질소지만 식물이 쉽게 사용할 수는 없었음. 어떤 문명이든 토양에 질소가 부족해지면 기근을 겪거나, 산림을 베어낸 뒤 새로운 농경지를 개간해야 했음. 하지만 하버-보슈법 때문에 이런 한계는 사라짐. 2000년에는 밀에서 대두에 이르는 거의 모든 주요 작물 수확량이 3배나 많아졌음. 넉넉한 질소장려금 덕분. 석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초제 사용과 농작물의 과학적 조작이 결합되면서 그 생산성은 더욱 높아짐. 오늘날 하버-보슈법은 전세계 인구의 35%의 식량을 책임지며, 동시에 모든 사람몸속 질소의 절반 정도를 책임짐.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식물생장을 빠르고 활발하게 유도하면서 인간과 지구의 신진대사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남. 지금 우리가 먹는 대다수 채소와 곡물의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함유향은 100년 전보다 적음. 많은 학자들은 식물의 생장 속도를 빠르게 한 것이 양질의 영양분 흡수능력을 약화시킨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음. 비료를 많이 사용한 농작물은 질소 순환과정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함. 매년 콩류 식물과 비료, 트랙터를 비롯한 연소기관에서 방출하는 산화질소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반응성 질소보다 훨씬 더 많은 반응성 질소가 생겨나고 있음. 비료를 주면 그 중 30%만 농작물이 흡수하고 나머지는 씻겨 내려감. 과학자들은 현대 농업방식을 통해 바다와 수로, 대기로 누수되는 질소가 농사로 흡수하는 양보다 3배 더 많다고 추정. 이렇듯 독성 있는 물질이 누출되면서 지하수는 질산염으로 오염되고 바다와 호수, 강에는 죽음의 수역이 생겨남. 고정질소가 배가되면서 온실효과는 심해지고 오존층은 약해졌으며 스모그층은 더 두터워짐. 산성비도 더 많이 내리고, 남중국해에서 멕시코만에 이르는 거대한 수역에 산소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질소를 사랑하는 생물들이 창궐하면서 바다는 오염되고 있음.
- 1906년, 간디는 저에너지 농업의 이상향을 강력하게 지켜나갈 것을 제의. 간디는 영국에서 일하던 시절 경험했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반대하면서 작은 자급자족 마을이 적절한 생계유지에 걸맞은 지속가능 모델이라고 확신. 간디는 마을이 지역경제를 지키고 물질주의를 멀리하며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음. 선조들 역시 기계에 관해 많이 알고 있었지만 인간이 노예가 되고 도덕성을 잃게 될까봐 몇몇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고도 언급. 간디는 인도의 조상들은 진정한 건강과 행복이 손과 발을 적절히 사용하는 데서 온다고 믿었다며 육체노동의 중요성을 강조. 그러므로 인도의 기계화는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 "록펠러 같은 사람이 인도에 생겨날 경우, 그가 미국의 록펠러보다 착할거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가난한 인도는 자유로울 수 있따. 그러나 부도덕한 행위를 통해 부자가 된 인도는 그 자유를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 석유의 또 다른 특징인 표준화는 농사를 고도로 전문화된 사업으로 만들고 취약성이 높아진 단일재배 형식으로 바꾸어 놓음. 예전에 옥수수는 지역에 따라 50가지 품종이 생산되면서 특정 해충에 저항력을 지닐 수 있었음. 하지만 기업식 농업에서는 단 6가지 품종만을 선호했음. 한때 3만개의 품종을 자랑하던 밀도 지금은 에이커당 300파운드의 농약을 견뎌내도록 조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3~4가지 품종에 한정됨. 한때 5000가지 품종의 막강한 다양성을 자랑하던 감자는 대개 버뱅크감자로 수렴. 이 덩이줄기 작물은 프렌치프라이 요리를 만드는 데 적합해서 북미의 식당과 전세계 패스트푸드점 수익을 늘려주고 있음. 7000가지 품종이 있던 사과역시 단일 품종으로 정리됨. 다양한 크기와 형태, 맛을 자랑하던 양상추도 현재는 아이스버그와 로메인, 두종류만 남음.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추정에 따르면 다양성 보존을 위한 열정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식용작물에서 나타났던 유전자 다양성 중 4분의 3이 유실되고나 축소되거나 말소됨. 녹병균과 병충해, 해충들이 단일작물 농경지를 신나게 유린했음. 콘월 대학교 생태학자 데이비드 피멘텔은 매년 농약사용에 따른 경비를 350억 달러나 지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연간 곡물수확량의 절반이 7만종의 해충과 식물병으로 황폐해진다고 추산. 가축의 다양성 역시 균질화를 선호하는 석유 때문에 비슷하게 쇠퇴하고 있음. 젖소의 80%는 홀스타인이고, 육우의 경우 60%가 앵거스 종. 양의 40%는 서퍽종이고,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돼지로는 영국 대백종이 선호됨. 지난 100년 동안 지역 기후를 견뎌내도록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사육된 가축종들은 6개중 하나꼴로 멸종. 07년에만 소, 염소, 말, 돼지 중 60개종이 사라짐. 현재 남아 있는 6500개 가축 종중에서 약 1350종은 시골에서 자신들을 돌봐주던 사람들과 비슷한 운명에 처했음. 질병에 저항성을 지니고 가뭄을 견뎌낼 수 있으며 추위에도 살아남는 동물종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생산성이 높도록 단순화된 공장식 상품임. 이것은 백신과 항생제, 인공사료로 구성된 석유 입력 에너지를 만들어짐. 전세계 닭의 약 70%와 돼지, 소의 절반은 땅과 완전히 분리된 공장식 틀에서 사육됨. 수확량이 많은 곡물이 생겨나 가축의 사료로 이용되면서 소위 말하는 가축혁명이 일어남. 60년 이래 지구상에 존재하는 닭과 오리, 칠면조의 수는 4억 1000만 마리에서 150억 7000만 마리로 네배나 증가. 현재 소와 돼지의 개체수는 각각 10억 마리가 넘음. 이런 식의 산업화된 축산업 시스템은 전세계 지표수의 8%를 차지하고, 온실가스의 18%를 배출하며, 전세계 동물적 생물량의 20%를 담당. 또 항생물질의 50%를 소비. 그리하여 450그램의 소고기를 만들기 위해 약 3리터의 석유가 필요하게 되었음.
- 과거 소련은 설탕과 오렌지 주스, 니켈을 받는 대가로 쿠바에게 석유의 90%와 식량의 60%를 제공해줌. 하지만 91년 소련이 해체되고 곧이어 미국이 쿠바에 대해 통상금지령을 내림. 이 두사건으로 인해 쿠바에는 트랙터를 움직일 석유도 없고 설탕과 담배에 뿌릴 비료와 농약도 없어짐. 쿠바는 경제학자들이 비행기 추락 사태에 비유하는 오일쇼크를 경험. 쿠바인들은 이를 가리켜 특별 기간이라 불렀음. 당시 영세농민들은 토지의 12%만 경작할 수 있었음. 외국에서 식량의 대부분을 얻어오던 쿠바 사람들은 극단적 감식을 해야했음. 평균적인 쿠바인이 섭취하는 하루 열량은 2600칼로리에서 1000칼로리로 줄어듬. 이로 인해 13킬로그램 정도 몸무게가 줄어든 사람도 많았음.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수천명에 이르렀고 임산부들은 빈혈에 시달림. 이에 대응하기 위해 쿠바정부는 영세농민과 기업형 오가노포니코, 즉 소규모 도시 텃밭에 의존해 식량부족분을 메우려 했음. 오늘날 8만 1000에이커에 달하는 이 도시텃밭의 농부는 수천명에 이름. 보통 1.7에이커당 25명의 사람이 전일제로 일함. "쿠바에서 일어난 일은 정말 놀랍다. 쿠바 사람들은 식량안보를 추구했고 그로 인해 영세농업을 우선시 하게 되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라 엔리케즈의 말이다. 석유기반 비료나 농약을 구할 수 없었던 쿠바인들은 170개의 퇴비장을 만들었다. 현재도 이 퇴비장에서는 꿈틀대는 벌레들이 매년 9300톤의 흙을 만들고 있다. 또 버티실리움과 백강균 같은 균으로 배양한 천연 농약 제조시설도 세웠음. 소가 트랙터를 대신했고 사람들은 옥상에 토끼와 닭을 키웠음. 소규모 농경사업은 순식간에 식량위기를 종식시키면서 유기농법으로 키운 시금치와 양파, 쪽파, 마늘, 토마토를 풍부하게 공급. 현재 쿠바 영세농민들은 수도 아바나에서 소비하는 과일과 채소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음. 쿠바정부는 이 위기상황에서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슬로건 대신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는 슬로건을 내걸음. 그리고 북미 지역의 기업형 농업에 맞먹는 대규모 국영농장이나 사회주의자보다 시골에 사는 농민이 훨씬 더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 토지를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영세농민과 단체가 외부의 투입물질이 희귀해진 상황에서도 식량균형이 기여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고 쿠바의 학자 페르난도 푸네스-몬조테는 보고. 쌀과 콩, 돼지고기가 주를 이루었던 쿠바의 식습관은 좀더 다양해졌고 채소섭취도 많아짐. 피터 로세트와 메지아 벤저민이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으로 인습적인 농업방식을 유기농 및 유사유기농법으로 전환한 사건"이라 부른 이 일은 미국에서 폐기된 토머스 제퍼슨의 미국적 이상, 즉 영세토지 소유자야말로 미국의 가장 소중한 구성원이다는 주장의 정수를 이어받은 것. 마지막으로 20년대 소규모 식량생산을 옹호했던 체스터턴은 이렇게 말함. "나무에서 과실을 딴 뒤 가장 신속하고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그 과실을 입에 집어넣는 것이다. 철도여행에 돈을 낭비하지 않는 이가 최고의 경제학자이다. 너무나 효율적이어서 조직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가 절대적 효율성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사람은 이상적인 단순화의 극치라고 볼 수 있지만, 단순화야 말로 사과나무처럼 믿을 만한 방법이다."
- 지난 400만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다가 죽은 인류의 수는 약 800억이라고 함. 이 800억 명 모두가 살았던 시간을 합하면 약 1조 1600만년.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 시간중 28%가 1750년 이후 기간이고, 20%는 1900년 이후, 13%는 1950년 이후라는 점. 20세기는 전체 인류사의 0.00025%에 불과함에도 모든 인간의 생명주기 중 5분의 1을 차지.
- 처음에 인구통계학자들은 인구급증을 프로메테우스적 진보의 한 형태로 칭송. 지구에 사는 모든 이들이 곧 핵가족을 이루고 평균 1~2명의 자녀를 둔채, 신과 같은 기대수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예견. 하지만 급격한 에너지 과잉은 개체군의 안정성을 해쳤고, 저출산과 장수라는 인구통계학적 이상향은 사회적 난제가 됨. 향후 50년 이내에 남아 있는 석유자원을 다 소비하면 세계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할 것임.
- 대부분의 인구모델은 자원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할 경우 2030~70년 사이에 인류의 급격한 자연소멸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 이런 식의 도태를 통해 인간 개체수는 70억에서 10억으로 줄어들 수 있음. 하지만 셀리에의 연구를 보면 사회가 화석연료 사용을 빨리 그만두면 둘수록 이런 결과가 더 빨리 일어난다는 걸 알 수 있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석탄과 석유에 장기간 의존하는 건 필연적으로 2040년경의 엄청난 인구붕괴로 이어진다는 말. (이탈리아 물리학자 우고 바르디는 이를 가리켜 세네카 효과라고 했음. 세나카가 증가시키는 일은 천천히 이루어지지만 파괴의 길은 가파르다고 했기 때문) 화석연료 사용량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을 전제한 또 다른 인구모델은 적응방식에 대해서만 설명할 뿐 급격한 자연소멸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값싼 석유의 시대가 끝나면 기하급수적 성장 패턴이 더이상 유지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하급수적 성장패턴에서 더 빨리 벗어날수로 더 잘살게 된다. 셀리에는 사람들에게 화석연료응 아껴스고 저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할 것을 제언함
- 인류역사 대부분 기간동안 도시는 그 구성상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를 유지했었음. 중세 런던은 정비가 잘된 장터였음. 700에이커의 땅에 6만명을 수용. 두다리로 이동해야 하는 까닭에 도시는 아담하고 절제되어 있었음. 1800년까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3%이만에 불과. 고대 도시중에는 영적 성지로 기능하는 곳도 있었고, 성벽이 잘 정비된 곳은 안보를 보장해주거나 군사력을 제공하기도 했음. 하지만 태양력과 인력으로 세상이 운영되던 시기의 도시는 나름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독립체로서, 세심하게 관리된 잉여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었음. 도시는 권력과 힘을 시골의 지역공동체와 연결했고, 지역 공동체는 도시의 수익이 어디서 오는지를 상기시켜줌. 훌륭한 도시는 시골을 존경하고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며 살았음. 그런데 산업화된 기계는 이런 균형을 깨뜨려 버림. 농업철학자 웬델 베리는 값싼 물건과 값싼 교통수단 그리고 값싼 도덕규범으로 인해 이런 균형이 깨졌다고 말했음. 로마는 노예의 노동력으로, 우리를 값싼 화석연료로 이 균형을 깨뜨렸다.
- 탄화수소를 연료로 삼는 도시와 메가시티는 의외로 생물학 법칙 몇가지를 따름. 루이스 베텐코트와 제프리 웨스트는 1000개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도시의 작동원리를 알아냄. 에너지 문제만 놓고보면 계속 몸집을 불려가는 대도시는 대형 동물과 닮았음. 코끼리는 기니피그보다 몸집이 1만배나 더 크지만 에너지는 1000배 더 사용. 대도시도 일반적으로 비슷한 스케일링 규칙을 따름. 도시의 크기가 두배로 커질 때마다 그에 필요한 거리와 주유소, 가게, 집의 수는 85%만 증가. 15%가 적어진다는 건 그만큼 밀집도가 높아지고 에너지 효율성이 올라간다는 의미. 하지만 웨스트와 베텐코트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이런 방정식에는 어두운 이면이 있음. 범죄와 교통문제, 폐질환 등 일반적인 복잡성은 똑같은 정도로 늘어남. 이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경제성장은 원치 않는 것들까지 똑같은 비중으로 늘려놓음.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메가시티는 안저엉과 반대선상에 있는 지속적인 적응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다. 다른 생물들은 몸집이 커지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계속 몸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열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끼리가 터벅터벅 걷는 것이다. 하지만 대도시에서는 그반대 현상이 벌어짐. 도시가 커지면 모든 것들의 속도가 빨라짐. 자연상태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 쥐보다 더 빠른 코끼리를 본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 11년 캘리포니아 대 경제학자 제임스 해밀턴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겪은 경제불황을 연구하던 중 11차례의 불황 중 10번이 석유가격 상승직후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견. 값싼 석유는 경제성장을 낳지만 값비싼 석유는 작물을 말라죽게 만들었음. 오일쇼크와 경기불황과의 상관관계는 너무 분명해서 절대 우연의 일치라 볼 수 없음. 73년 아랍 석유금수조치가 취해지는 동안 석유의 실제 시장가격은 50억불까지 급등했고 이로인해 미국에서만 38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 경기불황기의 총생산 손실을 달러로 환산한 가치는 그 중요성 면에서 손실 에너지의 달러가치를 훨씬 상회함
- 결국 소련은 석유 때문에 벼랑끝에 몰렸다. 80년대 석유가격이 붕괴된 이후 소련의 주요 재원은 사라졌음. 부진했던 석유생산은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한 88년 정점에 도달. 그리고 3년 후 소련은 빚더미에 휩쓸려 무너짐. 석유 때문에 8000만명의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정치, 사회적 소요에 식량위기까지 더해짐. 이런 긴급상황은 현금이 없는 행정부가 차관을 얻어 기금을 막도로 만들었음. 글라스노스트와 아프간 전쟁, 레이건 독트린이 소련붕괴라는 연극에서 단역을 맡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주연은 소련이라는 기계에 연료가 떨어진 일이었음. 알래스카 대학교의 에너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은 더그 레이놀즈는 소련 붕괴 직전 2년 동안 카자흐스탄에서 지냈음. 레이놀즈는 일련의 사건의 동인은 분명 에너지라 기록하고 있음. 소련은 89년에 첫번째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며 통화가치가 90%가량 하락. 결국 소련경제는 몰락하고, 리투아니아에서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소비에트 공화국 구성원들이 연방에서 탈퇴. 그러는 내내 소비에트와 후기 소비에트 일일 석유생산량은 1200만 배럴에서 약 700만 배럴로 40%나 떨어짐. 그러므로 소련 몰락의 진짜 이유는 석유파동이었음. 73년과 79년의 석유파동이후 20세기에 일어난 세번째 석유파동이 소련붕괴의 원인이었지만 이에 관해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석유자원을 민영화하고 여러 개혁적 제도를 도입. 이런 조치들로 인해 일시적으로 석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로 거두는 매년 2000억 달러가치의 수익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됨
- 과학의 지위가 급상승한 것은 1820년 이후이 일. 노예폐지론이나 대도시 건설과 마찬가지로, 집약적인 탄화수소 소비과정에서 생겨난 존재가 과학이었음. 산업혁명 이전, 자연계의 작동방식에 관한 연구는 몇몇 호기심 많은 학자와 철학자들의 전유물이었음. 태양의 힘과 인간의 힘에서 동력을 얻었던 과학은 진보와 퇴보를 반복했고 종종 침체되는 일도 있었음. 지구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놀라운 계산기가 기원전 80년에 그리스에서 등장했지만 금방 자취를 감추고 마는 식이었음. "햇빛에 의지해 살던 고대인의 지혜"에 의존하던 사회에서는 과학연구에 많은 에너지를 쏟을 여력이 없었음. 잉여가 충분치 않아서 연구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석탄이 발견된 덕에 과학은 증기기관차처럼 힘차게 출발할 수 있었음. 이 무모하고 의기양양한 현상은 앨프리드 월리스와 다윈, 퀴리 등 사회 각층의 우수한 남녀에 이해 더욱 세차게 확산됨. 이들 중 과학자로 정식교육을 받은이는 거의 없었음. 분명한 사실은 19세기 과학을 장악했던 나라가 가장 많은 석탄과 기계노예를 보유한 영국과 독일이었다는 점. 화학의 아버지 바론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문명이란 결국 최소의 동력을 들여 최대효과를 얻는 것이란 말을 했음. 동력의 놀라운 우월성이 존재하던 시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음. 리비히는 과학이 이전에 노예가 했던 일을 기계가 수행하도록 했을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위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주는 일을 해냈다고 적고 있음
- 현재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으로 세입의 30% 이상을 충당하는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30여개에 달함. 이런 국가에서 수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고위층들은 18세기 노예와 플랜테이션 농장 소유주보다 더 부유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로마의 노예보다 못한 음식을 먹고 지냄. 석유가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보여준 몇몇 국가에서도 석유자산은 사회제도와 기본원칙을 잠식해 나갔음. 석유는 하나의 주인만을 섬긴다. 18세기 런던의 귀부인은 차에 설탕 한스푼을 첨가하는 것만으로도 유혈이 낭자하는 끔찍한 노예무역과 연관을 맺게 되었음. 마찬가지로 오늘날 휘발유를 구매하는 행위는 모든 자동차 운전자를 석유왕국과 오염된 상수도, 정치적 부패와 연계되게 만듬. 가공할 석유의 논리는 결국 다음과 같이 귀결됨. 한마디로 국민을 대변하는 유능한 주정부를 세우는 것보다 송유관을 놓는 편이 더 빠르고 쉽다.
-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93년 미국과 사우디 관계를 이렇게 묘사. "나는 원하면 언제든 파란눈의 노예들을 소환한다. 미국인에게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용감한 군인들을 보내라고 명령한다. 내가 손뼉만 치면 미국대사라고 불리는 바보 같은 지니요정이 나타나서 시키는 대로 한다. 나를 섬기다 죽은 미국인들은 미국대사관에서 금속상자에 그 사체를 넣어 얼린 후 미국 비행기에 실어 보낸다. 마치 애초 존재한 적이 없었듯 깨끗하게 처리된다. 정말로 미국은 내가 가장 총애하는 노예이다." 이렇듯 공공연한 노예제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미국을 파산 직전으로 몰고갔음. 지리학자 로저스턴의 추정에 의하면, 76~07년 사이 미국군대는 페르시아만 석유 공급원을 방어하기 위해 연평균 2250억 달러를 사용. 이는 소련과 냉전을 치르던 기간에 사용한 비용보다 더 많은 돈임. 이 지역에 운송용 항공모함을 비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7조달러에 달했음. 이렇게 대폭적으로 군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시장의 실패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지역 안보문제의 핵심은 석유의 시장지배력이다. 미국은 이런 식의 군사력 과시대신 국내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정치적 해방을 공격적으로 추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석유기업의 힘을 생각하면 그런 해방전략은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지질학자 얼 쿡은 30여년 전 집필한 '인간, 지구, 사회'에서 주요 석유 생산자가 결국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음. 넋이 나간 채로 에너지 폭포를 향해 이동하는 우리가 겪게 될 가장 큰 위험은 난파선의 잔해위로 기어올라온 기회주의자 무리가 우리에게서 민주정부를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느끼게 될 충격이다. 이들 무리는 에너지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으로 우리를 통제한다.
- 여러가지 삶의 지표를 관찰한 후 스밀은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 개인의 에너지 소비량이 연 7배럴 수준을 넘어서면, 이후 에너지 소비량이 더 늘어난다 해도 행복감이 늘지 않음. 오히려 17배럴을 넘어선 다음붜는 보답으로 얻는 행복감이 급감하기 시작. 스밀의 말을 빌리면, 지금 북미 사람들이 낭비하는 에너지의 3분의 1만 있어도 낮은 유아사망률이나 건강한 식단, 높은 기대수명, 좋은 집을 얻기에 충분하다. 정치적 자유에 대해 말하자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1.5배럴)을 넘어서면 에너지 소비증가와 정치적 자유는 거의 상관이 없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억압이 심한 사회 중 몇몇은 오히려 에너지 소비가 다소 높거나 아주 높은 편이다.
- 카톨릭 신학자이며 중세학자인 오스트리아 이반 일리치도 74년 똑같은 결론을 내림. 이 이단적 사상가는 에너지 분야의 가장 걸출한 논문으로 꼽히는 에너지와 자본에서 에너지 과소비는 강과 산과 숲을 파괴하듯 인간관계도 약화시킨다고 주장. 일리치는 에너지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는 결국 자유와 회복력과 독립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 반대로 저에너지 사회는 걸을 기회라는 가장 오래된 자유를 보호하며 일상생활에서 선택과 참여의 폭을 넓혀준다고 주장. 저에너지 사회는 사람을 기준으로 건물을 세우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도 보행자의 생활을 고려해 배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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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샤워실의 바보들

경제 2014. 10. 7. 13:29

 


샤워실의 바보들

저자
안근모 지음
출판사
어바웃어북 | 2014-04-1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실업, 부동산 대란, 주가 폭락, 빈부격차 등 우리가 겪는 경제...
가격비교

- 유동성 함정이란 케인스가 대공황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제기한 개념. 중앙은행이 돈을 아무리 풀어도 금리가 하락하지 않는 상황을 말함. 통상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을 늘리면 금리는 하락함. 그러나 은행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짐. 은행은 고객들의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보유채권을 매각해야 하며, 이 때문에 채권가격은 하락(금리상승)하게 됨. 은행이 대출해줄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출금리도 오르게 됨. 이때 중앙은행의 통화공급이 예금인출 규모에 못 미치는 경우에는 돈을 풀어도 금리가 하락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 금리가 제로수준으로 대폭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유동성 함정이 발생. 은행의 예금과 대출금리는 마이너스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화폐발행에도 불구하고 금리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음. 통상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사용하지만 유동성 함정 상태에서는 이런 정책이 작동하지 않음.
- 한 나라의 잠재성장 능력은 크게 세가지 요소로 구성됨. 인구와 자본, 그리고 기술. 인구증가는 노동력을 늘려 경제의 생산능력을 확대함. 생산설비를 의미하는 자본은 노동력과 결합해 역시 경제성장능력을 규정함. 그리고 기술발전에 힘입은 생산성의 향상은 적은 노동력과 자본을 투입하고도 더 많은 산출을 이끌어냄. 이 세가지 가운데 가장 강력한 요소는 인구, 특히 청장년 생산 노동력임. 노동력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생산을 크게 늘릴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높아짐. 수요 측면에서도 인구의 증가는 매우 긴요함. 인구가 급증하는 시기에는 식품과 의류뿐 아니라 주택, 사무실과 공장, 여가시설, 사회간접자본 등 모든 부문에 대한 수요가 팽창하기 때문. 2차대전 이후 나타난 베이비붐 덕분에 미국의 노동가능인구(15~64세)는 한동안 급격한 증가세를 보엿음. 1% 안팎 수준이던 증가율은 해마다 높아져 70년대 초에는 3%에 육박. 이후 인구증가 속도는 다시 둔화되기 시작했지만,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진 덕에 경제활동인구의 급증세는 70년대 말까지 이어짐. 그러나 그게 정점이었음. 이후 미국의 노동력 증가속도는 눈에 띄게 감소. 2000년 무렵 속도가 다시 빨라지느가 싶었지만 잠시 반짝 하고 말았음. 2000년대 중반들어 미국의 경제활동 인구 증가율은 기록적인 속도로 떨어져갔음. 그리고 금융위기가 터짐. 인구가 계속 늘기는 했지만 일자리 얻기가 어려워지면서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 2013년 10월 들어 미국의 경제활동 인구는 1년전에 비해 0.5% 감소. 경기 회복기에 이렇게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은 전례가 없는 일. 경제가 반등하기 시작하면 구직을 포기했던 사람들도 다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노동시장으로 돌아옴. 경기회복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쉬워지기 때문. 그러나 미국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기 내내 추락을 거듭해 왔을 뿐임.
- 금융위기 이후 6년간의 극심한 투자부진은 미국 노동인구 증가세의 급격한 둔화와 마찬가지의 충격을 미국경제에 가함. 현재 미국의 생산설비는 6년전인 07년 말의 투자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기만 했을 때에 비해 4조달러나 덜 축적됐기 때문. CBO는 금융위기 이후 경제활동인구 증가 속도의 둔화와 기업들의 설비투자 부진이 각각 미국 경제 잠재성장능력 저하원인의 3분의 1 이상씩을 차지한다고 진단. 그러나 미국 기업들의 투자부진은 금융위기 이후에만 나타난 특이 현상이 아님. 80년대 초부터 기조적으로 진행됐음. 81년 4분기 국내총생산의 15%를 넘었던 미국 기업들의 투자비중은 이후 꾸준히 하락해 현재 12% 수준으로 떨어졌음. 투자가 부진해지면서 일자리 창출속도도 크게 둔화됐음. 기업들의 투자가 자동화와 효율화에 집중되면서 고용없는 성장은 더욱 심화됨. 기업들은 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일까? 세계화에 따른 해외로의 생산설비 이전이 큰 영향을 미친 가운데, 분배구조 악화 역시 적지 않은 부메랑 효과를 낳음. 생산활동의 결과로 생긴 소득이 노동자에게는 더 적게, 기업에게는 더 많이 분배되는 추세가 지난 30년 동안 지속되면서 미국 가계의 소비능력이 저하됐음. 소비가 부진해진 결과 기업들은 투자를 늘려봐야 과거만큼 큰 이윤을 기대할 수 없게 됨.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80년에만 해도 임금 등 노동자 보상으로 배분된 미국의 국내총소득이 58%에 달했으나, '12년에는 53%밖에 되지 않음. 50년 이후 60여년 동안 노동자들에게 분배된 소득이 이렇게 낮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음. 반면 기업이익으로 배분된 몫은 80년에는 20% 수준이었으나, '12년에는 25%로 높아짐. 미국의 기업들에게 이렇게 많은 이익이 돌아간 것은 60년대 중반이후 약 50년만에 처음임. 이에 따라 지난 20년간 미국 기업의 순자산은 3.8배 불어난 반면, 미국 가계의 순자산은 세배 늘어나는 데 그침.
- 사람들의 수익률 사냥은 더욱 위험한 양상으로 전개됨. 이자를 거의 물지 않는 초단기로 돈을 빌린 뒤 상대적으로 많은 이자를 주는 장기채권을 사들이는 투자가 횡행함. 예를 들어 1주일짜리 자금을 0.2%에 빌려 수익률이 4%인 30년 만기 모기지채권을 사는 식. 자신의 돈은 한푼도 들이지 않은 채 연 3.8%의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음. 캐리 트레이드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투기적 행위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경우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음. 초단기 금리가 뛰어오르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는 반면, 투자한 채권의 가격은 내려가기 때문.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음. 연준은 적어도 2년간은 금리를 인상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포워드 가이던스를 반복해서 약속해 왔기 때문. 이러한 투기 행위는 08년처럼 금융시장이 급격히 경색되는 경우에도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 빌린 투자자금을 일주일마다 돌려막는게 불가능해지기 때문.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투자한 장기채권을 헐값에 팔아치워 만기가 된 자금을 갚아야 함. 투자자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됨.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부도를 낼 수 밖에 없음. 그러나 이 역시도 걱정할 필요가 없음. 연준이 매달 엄청난 양의 통화를 시장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 연준의 양적완화 즉, 장기채권 매입정책은 이런 위험투자 대상의 가격을 보증해주는 역할까지 함
-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 소각에 열을 올리는 것은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임. 발행주식수가 1억주인 회사가 연간 10억달러의 순익을 낸다고 가정. 이 회사가 자사주 매입 소각을 통해 발행주식 수를 4.3% 줄이게 되면 회사의 순이익이 전혀 늘지 않았다 하더라도 주당 순이깅느 10.45달러로 4.5% 증가. 발행주식 수 감소로 분모가 줄었기 때문. 따라서 주식시장이 이 회사에 대해 PER을 20배로 적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주가 역시 4.5% 상승하게 됨.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회사와 최고경영자를 주주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음. '13년 뉴욕 증시가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펼친 데에는 이런 자사주 매입효과도 크게 작용. 초저금리 환경은 자사주 매입 소각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줬음. '13년 4월 애플이 발행한 회사채의 평균이자율은 애플의 배당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 애플이 빚을 내서 자사주를 매입 소각할 경우 이자부담이 새로 발생하는 대신 배당금 지급부담은 그만큼 줄어듬. 대신 자사주 매입 소각을 통해 주가는 상승.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저울질 할 필요가 없음.
- 금융위기 이후 현대 선진국의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정부의 자유로운 채무부담 행위를 의미하고 있음. 민주적 통제와 경제적 규제와 채권시장 야경단의 견제는 무력화됐음. 그러나 이러한 우회에는 반드시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 중앙은행이 강력한 화폐발행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 현재 2조 3421 달러에 달하는 미국은행들의 초과지급준비금은 대출 종잣돈으로 본격 활용될 것임. 미국의 지급준비율이 35라고 가정할 경우 이 초과지급준비금은 반복된 대출과정을 거치면서 총 77조 달러의 예금을 새로 창출할 수 있음. 통화량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팽창한다면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함. 이를 막는 방법으로 연준은 크게 두가지의 출구전략을 제시해왔음. 첫째는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는 것. 양적완화의 정반대인 양적긴축임. 채권을 매각하는 만큼 통화가 흡수돼 초과지급 준비금은 감소. 그러나, 이 경우 양적완화와 정반대로 시장의 채권금리가 급등(채권가격 급락)할 위험이 있음. 경기가 급랭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저금리에(비싼 가격에) 대규모의 채권을 사들였던 연준은 막대한 매각손실을 보게 됨. 다만, 이러한 매각 손실에 따르는 자본잠식 위험은 11년 회계기준 변경을 통해 원천 봉쇄해 놨으니 별 문제는 없을 수 있음. 그러나 본질적 위험은 피할 수 없음. 연준의 양적 긴툭으로 채권가격이 급락하게 되면 연준이 보유한 자산(채권)의 가치가 채무(초과지준)의 가치 아래로 떨어지게 됨. 과거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들이 그러했듯이,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깡통이 됨. 보유한 채권을 다 팔아도 초과지준을 다 거둬들이지 못할 것이기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부풀어 오를 수 있음. 그래서 연준은 향후에도 채권을 가급적 매각하지 않고 만기까지 보유할 계획이란 점을 거듭 밝히고 있음. 하지만 이 경우에도 비용은 불가피함.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초과지급준비금이 대출 종잣돈으로 쓰이지 않기 위해서는 은행에 높은 이자를 줘가며 연준 금고에 유동성을 묶어 둬야 하기 때문. 현재 연준은 초과지급준비금에 연 0.25%의 이자를 지급하고 있는데, 향후 경기회복에 맞춰 이 금리를 인상해 나갈 계획. 두번째 출구전략이며, 둘 중 더 유력한 시나리오임. 하지만 이렇게 해도 연준의 이자비용 지출은 대폭 증가하게 됨. 금리를 일정 수준이상으로 올리게 되면 이자비용은 이자수입을 능가하게 됨. 해마다 700~800억 달러씩 되던 재무부에 대한 이익금 납입도 중단됨. 연준은 앞으로 3~4년쯤 뒤에는 이런 시기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음.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수지가 악화된다는 의미임. 시장이자율도 상승할 것이니, 재정의 부담은 더욱 커짐. 양적 완화때 누렸던 이익을 비용으로 후불해야 하는 셈. 행정부의 이런 부담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연준이 긴축에 소극적 자세를 보인다면 인플레이션 압력은 커질 수 밖에 없음.
-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의 자본이 잠식되면 정부가 이를 메워줘야 함. 그러나 미국의 경우 예외임. 일반회사와 달리 연준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자결산을 기록하지 않음. 11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로운 내부회계 규정 덕분. 따라서 연준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본이 잠식되지 않음. 따라서 미국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연준의 자본을 보충해줄 필요가 없음. 그렇기 때문에 연준의 국채탕감은 이론적으로 가능. 연준이 나중에 보유한 국채를 팔아서 초과유동성을 거둬들일 경우 큰 손실을 입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많음. 채권을 매입할 당시에는 저금리(높은 채권가격)였는데, 팔 때는 고금리(낮은 채권가격)일 것이기 때문. 심지어는 연준이 파산할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음. 그러나 그런 일을 발생하지 않음. 다시 말하지만 연준은 아무리 큰 손실을 봐도 적자결산을 하지 않기 때문. 이렇게 놀라운 회계의 마술이 어떻게 가능할까? 연준 대차대조표의 부채내역을 보면 기타부채 및 미지급 배당금이란 항목이 있음. 14년 1월 1일 기준 80억 3500달러가 잡혀 있음. 이는 대부분 연준이 미국 정부에 진 빚을 의미. 연준은 정부에 빚을 진 것. 연준은 해마다 이익이 발생하면 자체 운영비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에 납입. 이렇게 이익금을 이전하기 전에 회기중에 발생한 이익은 부채로 잡아둠. 결산 뒤에는 정부에 줘야 할 돈이기 때문. 만약 연준이 회기중에 쌓아둔 돈보다 큰 손실을 본 경우에는 이 항목이 마이너스가 됨. 예를 들어 이 항목에 100억달러가 쌓인 상태에서 2조달러의 미국 국채를 탕감해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기타 부채 및 미지급 배당금 항목은 -1조 9900억 달러로 표시됨. 부채가 마이너스란 의미이며 이는 채권임. 즉 연준이 미국정부로부터 1조 9900억 달러의 받을 돈이 새롭게 생겼다는 뜻. 따라서 연준이 보유국채를 탕감해주는 즉시, 정부로부터 받을 돈이 생김. 정부는 연준으로부터 국채상환 채무를 탕감받는 즉시 연준에 갚아야 할 새로운 채무를 안게 됨. 그럼 새롭게 생긴 정부의 부채는 연준에게 어떻게 갚게 될까. 만기는 없음. 매년 넘겨받은 연준 이익금을 차츰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상환함. 연준이 그해 100억달러의 이익이 생기면 해당 부채학목은 마이너스 1조 9800억 달로로 100달러 줄어듬. 빚을 탕감받을 때 좋은 것은 이자부담이 사라진다는 점을 들 수 있음. 그러나 애초부터 미국 정부는 연준이 보유한 국채에 한해서는 이자부담을 지지 않음. 정부가 연준에 지급한 이자가 매년 이익금의 형태로 정부에 반환되기 때문. 따라서 연준으로부터 국채를 탕감받아야 할 이유도 애초부터 없었음. 물론 국채를 탕감받은 뒤에는 부채의 만기가 사라지는 이점이 있기는 함. 그러나 연준이 탕감해 주기 이전에도 그 국채만큼은 만기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만기가 돼서도 연준이 똑같은 양의 미국 국채를 새로 사들일 수 있고 그러면 자동으로 원금상환이 연기되기 때문. 다시 말하자면 연준이 미국 국채를 탕감해 줘봐야 아무런 소용도 효과도 없음. 괜히 중앙은행이 정부의 빚을 탕감해줬다는 오해만 불러 일으켜 중앙은행과 달러화에 대한 신뢰만 허공으로 날릴 뿐임.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자구 연준의 국채탕감이라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를까? 그만큼 미국 정부의 빚이 걱정되어서일 것임.
- 단일통화로 바뀌면서 유로존 내부의 가격경쟁은 더욱 심화됐음. 한 나라의 소비자들은 자기 나라에서 팔리는 물건이 다른 나라에서는 몇 유로에 팔리는지를 쉽게 비교할 수 있었고 가격차이에 따라 무역의 흐름이 급격하게 바뀌었음. 그 사이 주변국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은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었음. 주변국 노동자들의 소득이 급증했다는 것은 그곳 기업들의 비용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 독일보다 15!205나 쌌던 스페인과 이탈리아,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의 단위노동비용이 유로존 창설 뒤 약 10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상승. 부동산을 중심으로 내수경기가 열기를 이어간 결과임. 반면 독일의 노동비용은 오히려 떨어졌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등의 개혁조치를 취한 결과였음. 금리가 대대적으로 수렴했듯이 노동비용의 격차도 급격히 좁혀졌음. 주변국의 비용경쟁력은 완전히 사라져가고 있었음. 주변국의 수출은 대폭 위축되고 수입은 대폭 증가했음. 주변국 정부들의 정책도 한몫했음. 대외 경쟁력 저하로 실업이 증가하는 것을 막기위해 해고를 어렵게 하고 실업수당과 사회보장을 확대. 내수 활성화에 힘입어 재정수지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돈 씀씀이를 늘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음. 그러나 이는 주변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킴. 가뜩이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던 주변국의 산업은 무역시장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었음. 주변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대대적으로 확대됨. 유로존 통합이전에도 이런 현상이 종종 있었음. 그때만 해도 주변국 정부들은 자국 통화 가치를 평가절하함으로써 불균형을 바로잡고는 했음. 예를 들어 비용상승으로 인해 대외수출가격이 50% 이상 상승해 경쟁력을 잃는 경우 자국 통화가치를 10% 절하함으로써 수출 가격은 인하했음. 그러나 이제는 이 수단을 사용할 수 없게 됐음. 스페인은 독일과 같이 유로라고 하는 단일통화, 단일환율에 고정돼 있기 때문.
- 유로존 국가들은 이제 미국이나 일본처럼 화폐발행으로 재정을 지원해주는 중앙은행을 갖게 됨. 따라서 재정위기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됐음. ECB의 OMT 프로그램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온갖 투기적 배팅을 잠재울 수 있었음. 중앙은행의 무제한적인 발권력을 이겨낼 수 있는 투기세력은 없기 때문. 주변국 국채시장은 빠른 속도로 안정됐음. 문제가 생기면 ECB가 나서줄 것이었기에 투자자들은 안심하고 주변국 국채를 사들일 수 있게 됐음. 주변국의 국채는 오히려 다른 어떤 곳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고금리를 제공하는 매력까지 있었음. 수익률에 굶주린 자금들이 전세계에서 몰려들었고 국채가격은 오르고 또 올랐음. 금리는 계속 떨어졌음.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등 구제금융을 받았던 정부들이 국채시장에 속속 복귀. 그렇다고 해서 주변국들이 다시 행복해진 것은 아니었음.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에게는 여전히 혹독한 재정긴축과 경제개혁 과제들이 부과돼 있었음. 은행 구제금융을 받은 스페인이나 잠재위기국가였던 이탈리아 역시 자발적 개혁의 형식으로 똑같은 체질개선 작업을 해야 했음. 만에 하나 ECB의 OMT프로그램 지원을 받게 된다면 더욱 가혹한 긴축과 개혁을 요구받게 될 것이기에 꾀를 부릴 틈이 없었음. OMT는 유로존의 구제금융 실탄문제를 해결해줬을 뿐, 유로존 특유이 위기극복 방식을 바꾼 것은 아니었음. 유로존의 해법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과는 판이했음. 재정지출을 대폭 줄이고 세금을 인상하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요구함. 근로자의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한편, 독과점을 보장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 경쟁을 촉진하는 개혁 프로그램을 부과했음. 부채위기는 너무 적게 벌고 너무 많이 써서 생긴 문제였던 만큼. 과거와 정반대로 사는 내핍의 길을 해법으로 선택했음.
- 유로존의 위기해법은 경쟁력이 저하된 나라의 임금을 삭감하는 형식을 띤다는 측면에서 내부재균형이라 부름. 통화가치의 평가절하를 통해 외부를 상대로 균형을 되찾는 방식과 대비됨. 유로존의 독자노선은 전통적인 외부재균형 방식보다 정치적으로 상당한 위험이 뒤따름. 통화가치를 절하하면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지 않고도 대외경쟁력이 높아짐. 노동자들은 수입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실질구매력이 떨어지지만 일자리와 명목임금이 유지되기에 크게 반발하지는 않음. 반면 실업이 증가하고 명목소득이 하락하는 내부재균형은 강력한 반발에 부딪힘. 주변국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 유로존의 경제이기는 정치위기로 비화될 잠재성을 갖고 있음. 내부재균형의 효과로 경제가 가시적으로 살아나고 실업이 감소하기 시작해야만 정치적 위험은 줄어들 수 있음. 그러나 아직은 기미가 보이지 않음. 유로존의 내부재균형이 조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일 역시 재균형에 나서야 함. 상대적으로 잘사는 독일은 주변국과는 반대로 과거보다 소비를 늘려야 함. 정부가 앞장서서 지출을 확대해야 하며 임금은 상승해야 함. 그래야만 독일의 과도한 경쟁우위가 완화되고 주변국이 살아날 수 있음. 주변국이 경상수지 적자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독일이 주변국의 물건을 더 많이 사주어야 함. 지난 수년간 많은 개선은 있었지만 아직은 턱없이 부족함. 독일은 유로존 창설을 통해 가장 많은 이익을 누린 국가임. 주변국들과 똑같은 통화를 사용함으로써 실질적인 평가절하 효과를 향유. 유로화 환율은 독일같이 경쟁력이 높은 나라뿐 아니라 주변국처럼 기초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나라들의 경제까지 모두 반영한 평균치이기 때문. 자신들의 경제력에 비해 저평가된 환율덕분에 독일은 대외무역에서 경쟁우위를 얻을 수 있었음. 반면, 주변국들은 독일까지 포함된 평균환율을 사용하는 바람에 유로존 바깥경제와의 교역에서 큰 손실을 보았음. 유로화는 독일 마르크화에 비해 절하된 것이었고, 스페인 페소화보다는 절상된 통화였음. 단일통화를 사용한 뒤로 독일에 대한 주변국의 무역적자가 급증하고 주변국에 대한 독일의 무역흑자가 부풀어 오른 것인 이 때문.
- 젊은 경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흑자를 내고 저축을 늘리지만, 늙은 경제는 젊을 때 벌어놓은 저축을 소비하는 적자구조를 갖게 됨. 젊은 경제에선 필수소비재 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음. 그래서 이 시기에 통화가치가 절하되면 수입 수요가 빨리 위축됨. 그러나 재량소비재에 비해 필수소비재 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늙은 경제에서는 통화가치 하락이 수입 수요를 억제하는 탄력성이 떨어짐. 필수 소비재 수입가격 상승에 따르는 고통만 커질 뿐이며, 이는 여타 재량 소비재 소비를 위축시키게 됨. 일본의 경상수지 구성내역은 완숙기를 지나 늙어가는 경제구도를 여실히 보여줌. 상품무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적자를 해외투자(과거의 저축)에서 얻는 소득으로 메워가고 있음. 그러나 소득수지 흑자는 그대로인 반면, 상품수지 적자는 날로 확대되고 있음.
- 일본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재정불균형과 국가부채임. IMF에 따르면, 일본의 국가부채는 97년 GDP의 100%를 넘어서기 시작해 09년에는 200%를 웃돌게 됐으며, '11년에는 GDP의 230%로 불어남. 국가부채가 GDP의 100%를 웃돌게 되면 경제에 부작용을 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본은 이미 그 수준을 두배 이상 능가하고 있음. GDP 대비 일본의 국가부채는 빚 때문에 사회가 붕괴된 그리스보다도 훨씬 더 심각. 일본정부는 '14년 회계연도에 총 95조 8900억 엔의 일반예산을 지출할 계획. 전년에 비해 3조 3000억엔이 늘어난 규모. 이 가운데 세금 또는 여타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는 돈은 54조 6300억 엔에 불과. 나머지 41조 2500억엔은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할 예정. 전체 예산의 43%를 빚을 내서 쓰는 구조. 그나마 소비세가 인상되는데 힘입어 나아진 편임. '13년 회계연도에는 채권의존도가 46.3%에 달했음. 이렇게 해마다 빚을 내서 정부를 운영해온 결과 일본정부의 부채는 천정부지로 증가하고 있음. 이처럼 기형적 예산구조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디플레이션 때문. 성장과 물가가 침체되 이자율이 극도로 낮게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 그러나 만약 일본의 디플레가 종식돼 성장과 물가가 살아난다면, 저금리 시대 역시 끝나게 됨. 이는 일본 재정에 커다란 위협임.
- 선진국 경제가 수시로 덜컹대던 뉴 노멀 당시 이머징 마켓은 평온했음. 내수경기에 불이 붙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몰려들면서 경제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름. 저성장과 디플레로 상징됐던 선진국의 뉴노멀은 이머징 국가에서는 호황과 인플레를 의미. 그러나 선진국의 성장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네오 뉴노멀로의 전환기에는 이머징 국가가 불황과 디플레를 맞을 차례가 됨. 모건 스탠리 호아킴 펠스는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함. 미국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은 이머징 마켓에 나쁜 소식이라는 것. 미국의 성장이 빨라지고 금리가 상승하면 이머징 마켓의 고금리 매력은 사라지게 됨. 선진국 돈을 빌려서 이머징 마켓에 투자하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가 큰 손실을 볼 수 있음.
- 이머징 국가의 위기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음. 뉴 노멀 시대 선진국들이 저성장에 허덕이는 동안 이머징 국가들은 강력한 내수부양 정책을 펼침. 수출로 먹고 살던 경제가 동반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음. 금리를 내리고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하자 이머징 국가의 소비와 투자가 강력하게 살아남. 경제성장률이 다시 솟아오름. 선진국들의 제로금리 양적완화정책은 이머징 마켓에 기름을 부음. 휘발성 강한 자금들이 물밀듯이 밀려왔음. 저성장에 시달리는 선진국보다는 이머징 마켓에서 돈을 굴리는 게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음. 선진국에서 낮은 금리로 빌린 돈들은 이머징 마켓 곳곳에 투입돼씀. 이머징 국가가 선진국을 대신해 고성장한 덕분에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세계경제는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었음.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는 마치 이머징 국가에 넘어간 듯 했음. 중국은 이머징 마켓의 부침을 상징하는 곳.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수출에 의존해 성장. 미국이 저금리와 주택거품에 기대어 흥청망청하는 동안 중국의 수출은 폭발적으로 성장. 반면 내수소비와 투자는 그리 활발하지 않았음. 그 결과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대폭 확대되고 중국의 흑자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났음. 이른바 글로벌 불균형이었음.
- 경제불안정은 투기적 행위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에 의해서도 발생. 그것이 도덕적인 것이든, 쾌락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우리의 적극적인 행동은 많은 부분에서 산술적으로 계산된 기대심리보다는 자발적인 낙관에 의존하게 됨. 우리가 어떠한 적극적인 결정을 내릴 때 그에 따른 모든 결과는 여러 날에 걸쳐서 장기간 나타나게 되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이는 오로지 야성적 충동의 결과라고 간주될 수 있을 것임. 야성적 충동은 그냥 있기 보다는 뭔가 하려는 자발적 열망임. 인간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효익을 수치화된 확률에 곱해서 측정하고 이를 숙고한 뒤에 어떠한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야성적 충동이론은 현대 거시경제정책에서 자신감이란 이름으로도 사용됨. 경제 주체들이 공포에 휩싸이고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의 효과가 제한됨. 따라서 정부는 경제주체들의 자신감, 야성적 충동을 회복시키는 정책도 동시에 수행할 필요가 있음. 로머 교수의 기대심리 변경 정책과 이를 위한 엘런 의장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등은 모두 경제주체들의 야성적 충동을 북돋아 경기부양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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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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