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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4.10.24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8. 2014.10.24 익스트림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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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4.10.23 선악의 경제학

자원음모 하

경제 2014. 10. 29. 22:45

 


자원음모(하)

저자
리우쑤샤 지음
출판사
책속의 책 | 2014-04-1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자원고갈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중동,...
가격비교

- 감자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90리터가 필요.
  보리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1300리터가 필요.
  쌀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3400리터가 필요
  치즈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5000리터가 필요
  볶은 커피 원두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21000리터가 필요
  소고기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15000리터가 필요
  젖소에서 우유 1리터를 짜내려면 물 1000리터가 필요
  맥주 500밀리리터를 만들려면 물 150리터가 필요
- 고기와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이라면 매일 소비하는 수자원은 대체로 자신의 몸무게의 100배가 됨. 한사람이 일년동안 먹을 음식으로 제공될 농작물에는 대략 1500~2000톤의 물이 필요함
- 65년 아랍국가는 요르단 강을 차지할 목적으로 시리아에 차단설비를 세움. 하류에 위치한 국가인 이스라엘은 생활용수 40%를 요르단 강에서 얻고 있어 당연히 중요한 수원지안 요르단 강을 잃을 수 없는 입장이었음. 만약 차단된다면 이스라엘은 원래 부족한 물이 더 줄어들고 농공업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게 분명. 이스라엘은 즉시 폭격기를 보내 시리아의 하천차단설비를 폭격. 이것은 3차 중동전쟁의 도화선이 됨. 전쟁에서 아랍과 이스라엘은 적에게 타격을 입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용수시설을 파괴. 그들은 수원지 확보를 전쟁의 중요 목표로 삼음.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했고, 요르단 강의 수로 전부를 장악. 골란공원은 중동지역에서 물의 탑으로 불리는 곳으로, 요르단 강의 발원지이기도 함. 물이 중동지역에서 갖는 의미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골란고원은 양측이 가장 먼저 확보해야할 전략 요충지였음. 전쟁이 끝난후 골란고원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협상에서 주요의제로 다루어졌음. 물의 분배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이스라엘은 그 전략요충지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음. 또한 이스라엘은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의 지하수층이 이 자역 주민들의 주요 식수원이었음에도 줄곧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새로 우물을 파는 것을 금지. 이스라엘은 지하수 80%를 뽑아 유대인 거주지에 사는 주민들에게 공급했음. 이 지역 일대 이스라엘 주민 5000명은 매일 1만 7000세제곱미터의 물을 쓸수 있었음. 하지만 40만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 고작 7000세제곱미터의 물을 쓸수 있을 뿐이었음. 게다가 이스라엘 사람보다 두배로 비싼 값을 치르고 이스라엘 상수도 회사에서 사와야 했음. 물의 분배가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었고, 요르단강 서안지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됨
- 90년대 말 동남아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해 급성장을 거듭. 동남아 국가들이 이렇게 도약하고 있을 때 주변 여러나라들의 불만이 쌓여 갔음. 경제가 발전하면서 동남아 국가들이 체질변화를 일으켰기 때문. 과거 동남아 국가들은 대부분 자원수출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었음. 하지만 90년대말, 그들은 점점 자원수입형 국가로 탈바꿈했음. 즉, 과거 동남아 국가는 몇몇 나라들에 먹거리를 제공했는데, 90년대말부터는 그 몇몇 나라로부터 먹거리를 가져오기 시작한 것. 동남아의 이런 변화는 즉각 후진국의 자원을 약탈하는 데 길들여진 선진국의 불만을 불러일으킴. 특히 미국은 동남아 국가의 급성장에 마음이 편치 않았음.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력 향상은 미군의 태평양에서의 전략적 배치에 영향을 미침.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동남아 국가의 경제성장으로 말미암하 새로운 자원소비사장인 아시아가 더 커지고 세계최대의 자원 소비시장인 북미의 자리가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했음. 동남아 국가들이 아직 크게 성장하기 전인 90년대초 미국은 아시아에서, 위력은 대단하나 아시아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금융자원전을 일으켰음. 일본 부동산 버블붕괴가 그것임. 일본 부동산 버블위기는 바로 금융자원전이었음. 미정부는 일본 정부에게 엔화절상의 압력을 가하는 등의 일련의 수단을 동원해 부동산 버블을 터뜨렸음. 결국 일본경제는 부동산 버블 붕괴후의 20년 동안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함.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경제가 20여년 동안 경기침체에 머물러 있는 사이 미국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 자리를 공고히 했다는 점. 97년 동남아 국가들은 90년대 초기 몇년 동안의 발전을 거치면서 경제규모가 확대된 상태였음. 그들은 아시아 자원 소비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일본경제가 쇠퇴한 후 아시아 자원 소비시장에 일었던 혼란을 일소했음. 하지만 이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강국은 동남아 경제에 대한 금융자원전을 준비하고 있었음. 이들이 일으킨 금융자원전은 총 3단계로 이루어짐.
(1) 화폐 공매도와 환율이라는 수단으로 대상국에 직접적 타격을 입힘. 97년 7월 2일 태국정부는 그동안 시행해오던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한다고 공포. 태국정부가 환율제도를 개혁한다고 선포한 당일 달러화대비 태국 바트화 환율은 폭등. 그날의 상승폭은 무려 18%에 달함. 외환시장의 동요는 금융시장 전체의 혼란을 야기. 단 며칠 사이에 태국 금융시장은 모두 붕괴됨. 태국 바트하는 대폭 절하되었고 태국 금융자원의 손실은 그야말로 막대했음. 그런데 예상밖의 일이 일어남. 태국의 금융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붕괴하자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금융시스템도 크게 동요하기 시작. 월가 투자은행을 비롯한 국제투기꾼들은 태국 바트화를 마음껏 주무르고 난 다음 동남아 다른 나라들도 공격.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필리핀 페소화, 말레이시아 링깃화 등 동남아 국가의 화폐가 국제 투기꾼들이 공매도대상이 됨. 그래서 동남아 국가들의 화폐는 잇달아 대폭 절하되었고 금융자원은 심각한 타격을 입음. 8월이 되자 동남아 국가의 정부는 궁지에 몰림. 말레이시아 정부가 제일먼저 링깃화에 대한 방어를 포기한다고 선언. 그후 줄곧 잘 버티고 있던 싱가포르 달러화도 큰 충격을 받음. 이때 동남아 국가의 금융시스템은 거의 붕되괸 것이나 다름없었고, 국가금융자원은 국제투기꾼의 배후조종자, 즉 서방선진국으로 빠르게 유입됨
(2) 공매도 후 다시 공매수 하는 수법. 금융자원전의 핵심전략은 금융대란을 이용해 금융자원을 빼오는 것. 98년이 되자 일본 엔화와 한국 원화를 공격해 아시아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국제투기꾼들은 예고도 없이 방향을 틀어 홍콩에 치명적 일격을 가함. 이로써 동남아의 소국은 다시한번 대규모 습격을 당함. 98년 초 인도네시아는 또다시 심각한 금융대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음. 국내경제의 성장 둔화 속도는 사상 최고를 기록. 국내 금융을 안정시키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2월 11일에 루피아하를 달러화환율에 고정하겠다고 선언. 경제 쇠퇴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음. 인도네시아의 이런 조치는 매우 적절하고 효과적인 것이었음. 루피아화의 달러화에 대한 고정환율제 채태으로 국제투기꾼들은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를 마음대로 공매도할 수 없게 됨.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치는 국제은행가들의 불만을 야기. 그들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는 행위였기 때문. 그리하여 국제통화기금과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나라들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를 달러화 환율에 고정하는 것을 반대. 심지어 국제통화기금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원조를 전면 철회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함. 결국 인도네시아는 경제위기에 빠져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위기도 맞음. 2월 11일 달러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환율은 1대 1만이 되었고, 인도네시아 금융질서는 무너짐. 한편 국제투기꾼들은 태국 바트화, 싱가포르 달러화, 필리핀 페소화 등 동남아 국가화폐를 공격.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일본, 타이완 경제는 또다시 무너짐. 엔화, 원화, 뉴타이완달러화는 모두 대대적 공매도 공세를 당함. 이로써 아시아 금융은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고, 아시아 금융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3) 화폐를 공매도하는 것과 동시에 주식시장을 공략하는 것. 협공작전은 금융자원전에서 큰 위력을 발휘. 아시아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국제투기군들은 다시 홍콩에 주목했고, 대대적 물량공세에 나섬. 이번에도 강력한 투기꾼들이 나섬. 조지 소로스가 직접 홍콩 공략에 나선 것. 투입한 자금만 해도 수천억 달러에 달했음. 지난번의 충격은 이번 충격에 비하면 약소한 것에 불과했음. 국제투기꾼들이 맹공을 퍼붓자 홍콩 항셍지수는 1만포인트에서 6600포인트로 급락. 소로스가 이끄는 집단은 지난번의 실패를 교훈삼아 홍콩 달러화의 공매도로 주식시장을 압박해 금융자원을 획득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음. 소로스와 그 집단의 홍콩 주식시장을 집중공략해 우위에 섬. 물론 소로스와 그의 집단은 이번의 금융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뿐만 아니라 홍콩의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려 금융자원 전부를 획득한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 아시아의 금융허브 홍콩은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서 가장 기름진 먹이였던 것. 소로스와 그의 집단의 기세등등하게 압박해오자 홍콩정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결연하게 맞섰음. 홍콩 항셍지수가 6600포인트까지 떨어진 불리한 상황에서 홍콩정부는 앞서 환율안정에 기울였던 노력을 주식시장 방어에 쏟음. 대량의 외환보유고를 주식시장과 선물시장에 투입해 국제투기꾼들이 매도한 주식과 선물물량을 받아냄. 일정기간의 힘겨루기를 거치자 홍콩 항셍지수는 하락세를 멈추고 안정화됨. 이때 실패를 인정하기 싫었던 소로스는 공격목표를 홍콩 달러화로 바꿈.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홍콩정부는 다시 홍콩 달러화를 두고 국제투기꾼들과 각축전을 벌임. 홍콩 정부는 어떠한 대가를 아끼지 않고 국제투기꾼들이 투매한 홍콩 달러화를 사들여 홍콩 달러화와 달러화의 환율을 7.75대 1로 안정시킴. 홍콩 금융자원전은 비로소 홍콩 정부의 승리로 막을 내림. 국제투기꾼들은 홍콩에서 약 700억달러라는 참담한 손실을 기록. 하지만 홍콩 역시 타격을 입음.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서 국제투기꾼을 상대로 방어전을 펼치기 위해 사용한 금액이 98년 한달간 약 1450억 달러에 달했기 때문.
- 세계가 점점 하나가 되는 오늘날, 미국 금융자원손실은 미국채권과 달러화를 보유한 나라로 전가됨.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난 후 미국정부는 즉각 채권을 발행해 월가 금융조직의 부족한 자금을 메워줌. 채권이 발행되자 채권가격은 곧바로 큰 폭의 하락세를 보임. 미국 채권과 달러를 보유한 국가의 금융자원도 동시에 감소. 이밖에 미정부가 금융위기동안 시행한 시장구제계획도 정부의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난 원인으로 작용. 결국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옴. 시장구제계획이 시행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달러화가 다시 평가절하의 길로 들어선 것. 달러화의 평가절하는 다시 국제원유시장을 흔들어 놓았고 동시에 세계 벌크스톡의 가격을 상승시켜 미국채권과 달러를 보유한 국가의 금융자원은 더욱 감소. 미국은 채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외채권을 통해 자신들의 채무를 다른 나라로 전가하는 방법도 사용.
- 역사적으로 세계의 금융자원 강국은 미국처럼 금융대출을 통해 강국의 꿈을 실현했음. 20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에서 빌린 차관 덕분에 독일은 유럽 최대의 금융자원국이 됨. 20세기 중엽 미국에서 차관을 제공받은 일본은 세계2위의 금융자원국이 되었음. 21세기 초, 미국은 신흥시장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빌려 이라크를 침공했고 시장에는 유동성 과잉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세계금융위기가 촉발됨. 일극화 발전모델은 그야말로 부자나라들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준다고 할 수 있음. 그들은 자신들에게 상당히 유리한 금융시스템을 통해 가난한 나라들의 금융자원을 마음껏 가로챌 수 있음. 여러가지 복잡한 원인으로 이런 불균형의 일극화 발전 모델은 당분간 지속될 것임. 그 주요원인은 첫재, 현재 세계의 정치, 경제구조가 완벽하지 않고 개도국의 힘을 한데 모으기가 어려워 미국 등 정상급 선진국에 강력하게 맞서 수 없기 때문. 둘째, 미국 등 정상급 선진국 금융자원과 과학기술의 수준이 여전히 선도적 위치에 있어 단기간에 국면을 전환하기는 어렵고, 셋째, 미국 등 정상급 선진국의 군사패권주의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
- 청나라 왕조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할 당시 돈은 바닥나고 곧 목숨이 끊어질 상황. 그들은 백은이 없었기 때문에 탐욕스런 일본을 만족시킬 수 없었음. 청나라가 돈으로 일본의 환신을 살 수 없자 서구 열강은 흔쾌히 청나라에 배상금으로 쓸 백은을 빌려줌. 서구 열강의 은행단은 청나라에 높은 이자로 차관을 제공했고, 청나라는 상환시에 원금과 이자를 합쳐 백은 6억량을 갚아야 했음. 그 구체적 상황은 다음과 같음. 1895년 7월 청나라는 프랑스, 러시아 두나라 은행단과 4리 차관계약을 체결. 총금액 4억 프랑, 연 이자율 4리, 36년 원리금 분할상환 조건. 1896년 3월 청나라는 영국과 독일 두 나라 은행단과 영독 차관계약을 체결. 차관은 총 1600만 파운드, 연 이자율 5리, 36년 분할상환조건. 1898년 3월 청나라는 다시 영국과 독일 두나라 은행단과 속영독 차관계약을 체결. 총금액은 1600만 파운드, 이자율은 4.5리, 45년 분할상환 조건. 이 계약에 따라 조건은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요구한 배상금인 백은 2억량을 위해 백은 4억량을 더 지불해야 했음. 마지막에는 원금과 이자의 합계가 6억 471량에 이르렀기 대문. 이를 통해 청일전쟁 이후 중국의 부를 가장 많이 약탈해간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서구열강임을 알 수 있음. 사실 표면적으로 백은 2억량을 가져간 일본은 그리 많이 약탈한 것이 아님. 일본이 약탈해간 2억량 대부분이 서구 금융그룹에 외채를 갚고 군수물자를 사들이는 데 쓰였기 때문. 군수물자의 비용은 백은 수천만량에 달했음.
- 쑨원이 1925년 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장제스가 왕징웨이와 함께 국민정부를 이끌어 나감. 하지만 장제스는 미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했음. 왕징웨이도 중국을 침범한 일본 제국주의의 대변인이 됨. 장제스와 왕징웨이의 도움에 힘입어 열강들은 중국 금융화폐자원 약탈에 박차를 가함. 왕징웨이는 특히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동안 일본에 투항해 일본이 점령한 지역에 세운 정권의 수장이 됨. 장제스는 국민정부 최고 권력자가 된 후 북양정권의 방법을 그대로 이어받아 거액을 차관했음. 차관은 열강이 중국 금융화폐자원을 약탈하는 중요한 방식이었음.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은 장제스와 국민정부의 부정한 축재를 도우며 중국의 금융화폐자워을 약탈하기 시작. 열강의 고문들은 장제스 정부가 고금리 이자를 주는 공채를 발행할 수 있게 도움. 이때부터 중국의 공채 시장은 팽창하기 시작. 나아가 중국 금융자본이 급속히 성장. 나중에는 열강들의 이익집단인 장, 쑹, 쿵, 천 사대가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국면이 됨. 결국 사대가문은 중국 금융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농업은행, 우정 저축환업국, 중앙은행, 중앙신탁국, 중국은행, 교통은행을 완전히 통제해 관료가 독점하는 시스템을 구축. 이로써 열강들이 중국 금융화폐자원을 더 쉽게, 더 많이 약탈할 수 있었음. 중일전쟁 기간, 2차대전을 치르던 열강들은 그 와중에도 중국약탈을 멈추지 않음. 열강들은 사대가문을 조종해 채권을 발행하게 했고, 장제스 정부에도 더 많은 차관을 제공. 더욱이 해방전쟁기간에 미국 등이 장제스 정부에 빌려준 자금과 군수물자대금은 1000억 달러가 넘었음. 이로 이해 중국 경제는 심각한 인플레를 겪음. 당시 국민정부가 발행한 지폐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음. 결국 사대가문과 국민정부는 분노한 국민에 의해 무너짐. 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고 공산당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의 인민민주정권이 탄생. 신중국 수립후 금융자원을 약탈하던 세력과 대리인은 사라지고, 열강이 중국 화폐금융자원을 약탈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함.
- 08년 11월 미국을 공황상태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 금융위기가 일어난 것. 그러자 전 세계의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앞다투어 가치보전도가 높은 금을 사들이기 시작. 결국 금값은 폭등했고 달러가치는 폭락. 과거 미정부는 월가 금융거물을 시켜 금값을 잡을 수 있었음. 하지만 금융위기가 일어나 월가 거물들이 연이어 파사하자 미정부는 달러의 하락세를 막을 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 이때 미정부는 어떻게 했을까? 이번에 미정부는 과거처럼 황금을 팔아 달러화 가치를 억누르지 않음. 이때의 시장상황은 천문학적인 양의 황금을 퍼부어도 모두 깨끗이 삼켜버릴 수 있었기 때문. 그래서 미정부는 당시 금융위기로 크게 타격을 입지 않은 월가 거물 골드만삭스에게 홍콩상하이은행과 함께 금시장에 들어갈 것을 지시. 골드만삭스와 HSBC가 금시장에 들어갈 때 많은 투자자들은 직감적으로 골드만삭스와 HSBC가 황금을 매도해 달러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판단. 하지만 투자자들은 골드만삭스와 HSBC가 금시장에 들어온 후 금값을 떨어드리지 않고 오히려 금값을 폭등시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함. 결국 몇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금값은 천달러 관문을 돌파. 이때 월스트리트의 각 기관들은 금값이 얼마 지나지 않아 2천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 이렇게 되자 금시장은 큰 자극을 받아 금값은 연일 신기록을 갱신. 하지만 예전과 달리 금값이 오르자 달러가치도 덩달아 빠르게 상승. 뿐만 아니라 달러는 금세 강력한 위치를 회복함. 그 원인은 무엇일까? 금을 구매하는 유일한 화폐가 달러였기 때문. 금값이 올라 다른 나라 투자자들이 황금을 사려고 할 경우 그들은 본국 화폐를 달러로 바꾸어야 함. 그러고 나서 달러로 황금을 사야 하는 것. 결국 금융위기 기간에 세계 각국의 화폐가치는 떨어졌지만 달러화만은 그 가치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남. 미정부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고 달러화의 강력한 지위를 지켜냄. 그후 미정부는 달러화의 강력한 지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음. 달러화 위기는 달러화의 강력한 지위를 약화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달러화의 가치보존성을 크게 높이는 역할을 함. 이로 인해 세계 투자자들은 달러화가 가치보전도가 가장 높은 화폐라고 인식. 세계 금융위기 동안 달러화만이 절하되지 않았고, 현재 달러화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화폐였기 때문.
- 91년 12월 반세기가 다 되도록 조용히 숨죽이고 인내해 온 유럽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 당시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유엔 안보리를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비난을 샀음. 미국이 걸프전쟁에 집중하고 있는 기회를 이용해 유럽은 배후에서 미국을 공격해 세계 경제와 정치의 중심이라는 전략적 지위를 탈환하려 했음. 미국이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 유럽 각국의 정부 수뇌들은 마스트리히트 정상회담에서 유럽연합조약을 통과시킴. 유럽연합조약의 체결은 유럽국가들이 연합해 하나의 단일한 조직을 만들려는 꿈이 실질적으로 한걸음 내디딘 것. 이후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93년 11월 1일 유럽연합조약이 정식 발효되었고, 유럽연합이 출범. 유럽연합의 탄생은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고, 사람들은 한가지 의구심을 갖게 됨. 이제 막 탄생한 유럽연합이 미국의 수중에 있는 패권을 가져올 수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줌. 유럽연합은 미국이 보유한 패권을 가져올 수 없었음. 유럽연합이 수립된 후 미국은 유럽의 경제발전에 연속적으로 압박을 가함. 관련 통계에 따르면, 유럽연합 출범후 유럽연합이 수출하는 상품에 대해 미국의 반덤핑 제소가 12.7% 늘어남. 게다가 미국은 유럽연합이 화폐맹주인 자신에게 도전하는 조직이 되는 걸 용인할 수 없었음. 겉으로는 무척 사이가 좋은 동맹국 관계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국이 예상치 못한 것이 있음. 세계경영의 바통을 넘겨받으려는 유럽의 열망이 예전보다 훨씬 강렬했던 것. 02년 1월 유로화는 유로존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화폐가 되었고, 정식으로 유통됨. 유로화가 나타난 달러자리를 넘겨 받으려 할 때가 되서야 미국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많은 나라들과 IMF는 유로화가 중요한 비축통화가 될 것이라 생각. 유로화가 시장에서 유통되기 전에 전세계의 국제비축통화는 오직 달러밖에 없었음. 유로화의 등장 자체만으로도 이미 달러의 화폐맹주 지위를 위협했다고 할 수 있음. 그럼 미국은 달러를 위협하는 유로화를 어떻게 제거하려 했을까? 미국은 유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금융자원을 약탈해가는 방법을 채택. 화폐의 강세는 그 배후에 금융자원을 얼마나 비축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 얼마후 미국은 유로화에 타격을 가함. 하지만 유로화는 다른 화폐와는 달랐음. 그 자체가 지역화폐가 통합된 일체화의 산물이었고, 뒤에선 금융자원이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 이것이 바로 유로화가 시장에서 유통될 때 일부 국가와 IMF가 유로화를 국제비축통화로 사들인 이유이기도 했음. 그러나 미국은 결코 유로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음. 당시 유로화가 미국을 위협하기는 했지만 달러화의 강력한 지위에 도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 게다가 미국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음. 공격하기에 가장 유리한 시기를 기다렸던 것. 미국은 당시 유럽연합이 매우 단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럽연합에서 내란이 일어날 때 다시 공격하면 단숨에 유로화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판단. 더 중요한 점은 그때가 되면 금융자원도 대량획득할 수 있다는 것. 사실 단결은 유럽귀족의 피에 가장 필요한 요소였음. 휘황찬란한 로마제국시대든, 게르만의 전차가 유럽을 도살장으로 바꾼 시대든, 단결은 유럽국가의 이슈가 아니었음. 그들의 피에는 교활함, 적의, 서로간의 약탈이란 정서만이 흐를 뿐이었음. 그래서 유럽이 화폐단이로하로 달러에 맞섰을 때 미국은 유럽연합이 다시 내란에 휩싸일때 유로화로 지탱되는 금융자원을 약탈하기로 결정. 미국은 행동에 나서지 않고 노련한 사냥꾼처럼 조용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음. 하지만 유럽연합은 미국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발전을 이루었음. 07년 유럽연합 경제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체가 됨. 날로 커져만 가는 유럽연합의 경제를 지켜보면서 미국은 바짝 긴장. 이 시점이 되자 미국은 더이상 기다릴 수 없었음. 그랬다간 유로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 미국이 유럽연합에 화폐전쟁을 일으키려고 실질적 준비에 돌입했을 때 미국은 자기집에 불이 난 것을 발견. 즉, 부동산 거품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러온 것.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났을 때 미국은 그야말로 어쩔 줄 몰라 허둥댐. 그러나 사태가 점점 세계금융위기로 번져감에 따라 미국은 큰 불에 화상을 입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을 안절부절못하게 했던 적수 유럽연합도 중화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됨. 미국은 한시름을 덜 수 있었음. 자기 몸에 붙은 불을 먼저끄고 다시 생각할 시간을 번 것. 그러나 미국은 자신이 화상치료를 끝내기도 전에 중화상을 입은 유럽이 자신의 불을 끄는 건 물론 빠른 회복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됨. 09년 하반기에 유럽연합은 강력한 회복기에 들어섬. 이때 미국은 다시한번 당황했음. 먼저 불을 끄고 난 다음 유럽을 공격한다는 전략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자신의 불이 다 꺼질 때면 유럽은 이미 세계 최대의 재력가가 되고, 유로화 역시 달러의 강력한 지위를 무너뜨릴 것이 분명. 그래서 미국은 오랫동안 유럽에 묻어두었던 시한폭탄인 그리스 채무위기를 터뜨림. 그리스 채무위기는 달러와 유로화의 화폐전쟁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
- 10년 3월 이후 유로화는 그리스 위기의 영향으로 약세로 돌아섬. 이때 달러화는 유로화와 화폐전쟁을 시작. 전쟁 초기 유럽연합은 자본등록 방식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유로존 경제를 안정화시켜 달러화와 맞서게 함으로써 유로화가 어느정도 우위를 점하게 한다는 계산. 하지만 미국은 유럽에게 숨쉴틈조차 주지 않음. 월가 투자은행들은 과거의 화폐전쟁 때처럼 신속하게 움직임. 유로화를 대량으로 사들인 것. 유로화의 절하는 불가피했고 그때가 유로화를 모두 팔아버리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음. 월가 투자은행들이 유로화를 대거 매도하기 전, 유럽연합 정부는 유로화의 화폐가치를 계속 유지해 유로화 환율을 안정시키기로 결정.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거액이 자금이 필요했음. 그리스 채무위기로 타격을 입은 후 원래부터 단결되지 못했던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 일부국가는 거액의 자금을 투입해 그리스 등의 국가를 구제하고 유로화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 하지만 몇몇 국가들은 그리스 등의 국가를 구제하는 걸 포기하고 미국과 협상해 유로화를 안정시키자고 주장. 결국 두 진영의 국가들이 계속 다투는 사이 월가 투자은행들은 천문학적인 양의 유로화를 팔아치움. 유로화의 매도세는 피할 수 없었음. 유로화는 달러와의 첫 싸움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심. 유로화의 절하로 유럽연합은 약 2000억 유로에 달하는 화폐자원을 상실. 세계경제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내에 유로화는 달러에 다시금 공격을 가할 힘을 갖지 못할 것.
- 일찍이 진시황 때 외국국적 인사인 이사는 진나라 재상이 됨. 이사는 진시황에게 간축객서를 바치고 새로운 인재강국 전략을 세움. 이는 진시황이 여섯나라를 통일하는 데 밑거름이 됨. 당나라 때 태종은 수나라의 과거제도를 계승하고 한편으론 빈공과를 신설. 빈공과란 외국 국적의 유학생과 조공을 바치러 온 사람을 귀빈으로 예우하고 그들에게 당나라 왕조의 과거시험에 응시하도록 허락하는 것을 말함.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는 관직을 하사하기도 함. 당시 유명 인물로는 최언위, 최치원, 최승우가 있었음. 특히 최언위는 한림원 대학사가 되어 당나라 고위관리가 됨. 태자의 스승을 역임하기도 함. 당나라 왕조가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수용하는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많은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였기 때문.
- 세계은행이 제공하는 통계에 따르면, 08년 말까지 졸업 후 다른 나라에서 발전의 기회를 잡은 영국 대학생이 170만명에 이른다고 함. 대학 졸업생 중에서 17.4%를 차지하는 수치. 영국 대학 졸업생이 선호하는 국가는 주로 미국과 캐나다. 이 밖에 호주를 선택한 졸업생도 상당수. 자료에 의하면, 170만명 가운데 약 130만명이 미국과 캐나다로 향함. 그 가운데 캐나다로 간 사람은 60만명에 달해 미국보다 조금 적었음. 그러나 02년 이후로는 매년 영국에서 캐나다로 가는 대학 졸업생의 수가 미국으로 가는 수보다 더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음. 대량의 인적자원이 북미로 향하자 영국인들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움에 쌓임. 영국이 자랑으로 여기던 과학연구와 첨단기술 인재양성이 한층 퇴보했고, 심지어 영국의 현행 교육제도에 대해 의문과 불만이 제기됨. 영국 외에도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강국의 인적자원도 캐나다로 대량 유입되고 있음. 이들 국가의 과학자와 기업가는 인적자원의 외부유출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정부의 각성을 여러차례 촉구했음. 그래서 이들 국가는 캐나다의 인재정책에 맞서 여러가지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 캐나다의 강력한 인재흡수력은 각국 정부의 경계대상이 됨. 하지만 캐나다의 독특한 지리적 우세와 미국이라는 든든한 배경 덕에 많은 인재들이 캐나다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는 쉽지 않음. 게다가 개도국은 문제가 더 심각. 일례로, 인도정부도 인적자원 유실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지만, 경제, 정치 등의 열세한 조건으로 인해 우수한 인재가 캐나다로 가는 걸 막지 못하고 있음.
- 미국은 전략적 광산자원의 통제를 일찌감치 시작. 50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국방생산법은 희귀금속을 군수물자 생산과 비축분야에 포함시켜 관리하도록 규정. 80년대 레이건 정부는 국가물자와 광물방안 정책을 펼침. 그 정책은 정부가 반드시 핵심물질과 광물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규정. 전쟁이 발발해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각종 전투부대를 파견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핵심원료의 부족으로 부대의 전투력이 저하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정책의 골자임
- 희토류를 충분히 비축하고 중국의 경계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은 기존의 구매전략에 변화를 주었음. 공개적으로 집중해서 대량의 희토류를 사들이는 방식에서 분산해서 소량씩 사들이는 방식으로 전환. 일본기업은 중국의 홍콩, 타이완, 동남아 등지에 공장을 세우고 중국과 제3국에서 희토류를 수입해 희토류 구입처를 분산하고 있음. 그들은 광시, 윈난성 등에서 희토류 완성품이나 반제품 밀수를 통해 대량 사들임. 또한 홍통, 태국 등에서 항구무역을 통해 희토류를 수입하기도 함. 이렇게 하면 다른 나라들의 주목을 끌지 않을 수 있고, 구매의 시간차와 1최구매량을 줄임으로써 큰 폭의 가격상승을 피할 수 있음. 결국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희토류 자원을 확보. 관련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희토류 자원의 약 90%를 중국에서 수입했으며, 일본의 현재 희토류 비축량은 앞으로 20년 동안 사용할 수 있음. 하지만 일본이 중국에서 희토류를 수입하는 데 사용한 비용은 매우 작음.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한 희토류 금속은 일본 첨단산업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임. 일본기업은 저렴하게 수입한 희토류 원료를 첨단기술을 통해 부가가치를 크게 높여 첨단제품을 제작. 그리고 이를 중국에 수출해 엄청난 이윤을 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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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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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음모 상

경제 2014. 10. 29. 22:43

 


자원음모 - 상

저자
리우쑤샤 지음
출판사
책속의책 | 2014-04-1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자원고갈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중동,...
가격비교

- 자원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자원가격이 상승하면 달러화 약세로 이어짐. 벌크스톡의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 벌크스톡의 기준가격인 달러의 유동성이 증가하게 되고 이로 인해 화폐가치가 하락하기 때문. 화폐가치가 하락하면 인플레의 압력이 높아짐. 금융위기의 충격때문에 현재 세계 각국은 저금리를 통해 경기를 자극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인플레 압력을 크게 높이는 요인임. 이처럼 세계가 높은 인플레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점점 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음. 자원은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와 달리 진정한 부라 할 수 있음. 자원에 투자하면 화폐의 가치를 보전할 수 있고, 자산이 크게 줄어드는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회피할 수 있음. 자원투자가 가치를 발휘하는 시기는 바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 때임. 앞으로 자원제일주의 시대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 세계시장은 어떤 추세로 바뀔까?
첫째, 자원시장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자원공급국과 자원 소비국의 상호 의존도가 커짐에 따라 경쟁과 협력이 일반화될 것임. 자원시장의 세계화는 자원 공급국과 자원소비국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자원수출국과 자원공급국 사이의 이익관계가 더욱 긴밀해질 것임. 만약 자원류 벌크스톡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 세계경제가 침체하면 국제시장에서 자원류 벌크스톡의 수요가 줄어들어 자원공급국은 자원상품을 팔지 못해 상품의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음. 이렇게 되면 자원공급국은 손실을 보게됨. 그래서 세계 주요 자원수출국은 석유수출국기구 같은 자원통제기구를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지킴
둘째, 세계 자원 소비의 중심이 점차 신흥경제시장으로 옮겨가면서 신경제시장과 구경제시장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것임. 90년대부터 세계자원 소비의 중심은 유럽에서 북미로 이동. 고도성장에 힘입어 미국은 세계경제시장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로써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이 대표하는 유럽의 구경제시장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음.
- 2000년 395톤에 불과했던 중국의 금보유량은 현재 1,054톤으로 급증해 세계 금보유고 순위에서 5위를 차지. 미국이 8133톤으로 가장 만혹, 독일이 3412톤, 국제통화기금이 3217톤, 프랑스 2478톤, 이탈리아 2451톤. 이중 독일은 전체 외환보유고 가운데 71%를 금으로 보유. 선진국들이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하고 실물자산인 자원의 비중을 높이고 있는 것은 개도국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큼. 이것은 이제 화폐제일주의 시대는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의미. 그러므로 화폐위주의 전략에서 자원위주의 전략으로 발전전략을 전환해야 함
- 1918년 11월 1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세계는 표면적으로 평온을 되찾은 듯했고 더이상 무력분쟁도 없었음. 하지만 세계의 산업분야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략자원인 광물은 각국의 주요 목표가 되었음. 당시 영국과 미국은 전세계 석탄의 53%, 철광석의 48%, 석유의 76%, 동의 79%, 알루미늄의 81%, 납의 74%, 그리고 방대한 식민지와 세력권을 보유. 그밖에 프랑스, 구소련 등 유럽강국도 막대한 전략자원을 장악. 이에 대해 급성장세에 있던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의 신흥국가들은 불만이 매우 컸음. 이들 국가들은 자신들의 자원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미국, 영국 등과 대립했고, 갈등이 격화되던 가운데 결국 2차대전이 일어남. 20세기 전반 50년 동안 전화가 끊이지 않았던 근본적 원인은 바로 자원분배의 불균형에 있었음.
- 전통적인 강국들과 비교했을 때 미국은 성장과정에서 전쟁이 가장 적었던 나라임. 또한 자원비축과 경제발전의 기반이 되는 평화의 기간이 가장 길었음. 전통적 강국으로 꼽히는 영국과 비교해보면, 1688년부터 1763년까지 75년동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거의 매일 전쟁을 치름. 자본주의 국가들에 있어서 이 기간은 큰 발전을 이룬 황금기였음. 영국도 이 시기 대외전쟁을 통해 많은 토지와 자원을 약탈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고속성장에 유리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음. 반면 미국은 1776년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문을 공포하여 자립의 발판을 다져씅며 발전을 위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감. 또 한편으로 운도 따라줌. 황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외부세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껏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 다른 한편으로는 불간섭 주의 노선을 택해 전화를 피함. 미국은 독립한 후로 줄곧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고수했기 때문에 유럽 각국이 혼란에 빠지고 혁명의 불길에 휩싸여 있을 때도 자국 경제발전에만 힘을 쏟음. 그 결과 유럽과 미국의 성장속도에 현격한 차이가 발생. 결국 유럽의 지위는 점차 하락하고 미국은 상승세를 타 미국이 유럽을 앞지르게 됨.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내분과 전쟁이 없는 환경은 한 나라의 고속성장을 보장한다는 것을 알수 있음.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하고 자원을 경제발전에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 이에 더해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전쟁으로 한창 바쁜 와중에 마치 강태공이 기회를 기다리며 낚시를 했던 것처럼 한쪽에서 조용히 시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가 기회를 틈타 이익, 즉 자원을 챙기는 데 능했음.
- 히틀러가 독소불가침조약을 깨고 나치군에 구소련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미국은 바다 건너에서 기회를 보고 있었음. 그 당시 미주리 주 상원의원이었던 트루먼은 한 공개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음.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이렇습니다. 히틀러의 나치기가 스탈린의 침실에 꽂히게 되면 어떤 망설임도 없이 스탈린을 지원할 것입니다. 스탈린의 군대가 뮌헨으로 진격하면 우리는 소련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런 전략은 유럽인들이 끊임없이 자기편끼리 서로를 죽이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기회를 틈타 발전을 이루고 더 많은 전략적 자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정치가는 미국이 최대강국이 된 원인을 이렇게 지적. "세계 정치라는 럭비경기에서 초창기 미국은 출전기회를 얻기 힘든 후보선수였음. 미국은 늘 벤치에 앉아 있다가 경기장의 주전선수들이 기진맥진했을 때에야 경기의 마무리를 위해 대신 투입되었다. 미국은 두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모두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에 출전하여 공 한두번 주고 받은 것만으로 가장 많은 전리품을 챙겼고 수상의 영예마저 가져갔다."
- 여러나라가 북극을 노리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자원때문. 미국 지질조사국의 발표에 따르면, 북극권에는 약 900억 배럴의 석유 및 러시아 내 총매장량과 맞먹는 44조 세제곱미터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음. 이 양은 세계 매장량의 25%에 해당. 그래서 전문가들은 제3차 대전이 북극해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며 전쟁의 도화선은 북극이 보유한 풍부한 자원이라고 지적.
- 경제가 점점 활기를 되찾아가던 러시아는 05년 외환보유고가 2257억 달러로 세계 4위를 기록했고, 여러해 동안 침체해 있던 경제는 상승곡선을 그림. 러시아의 경제회복은 즉각 미국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킴. 미국은 러시아의 경제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두려워했음. 예전 전성기를 구가하던 구소련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에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 외환보유고가 2000억 달러를 넘자 러시아 정부는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섬. 석유가 세계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러시아 정부는 석유를 비축하기로 결정. 이 당시 석유를 비축하는 것은 황금을 비축하는 것과 같았음. 러시아 정부가 석유비축을 시행할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70불에 달했음. 석유가 점점 고갈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배럴에 70달러는 싼편이었음. 그래서 러시아는 국제 석유시장에서 석유를 사들임. 러시아의 경제회복에 대해 줄곧 좌불안석이었던 미국은 국제석유시장에서 석유가 러시아로 대량 유입되는 광경을 지켜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음. 마침내 러시아의 외환을 빼앗아올 방법을 찾아낸 것. 방법은 간단했다. 미정부는 그 임무를 자신의 금융킬러 즉 월가 투자은행에 맡김. 모건스탠리, 골드만 삭스, 시티은행 등 월가 거물들이 국제석유시장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이후 거대 투자은행들과 러시아가 국제시장에서 석유를 앞다투어 구매. 그러자 1배럴당 70불이던 유가가 147달러까지 급등. 월가 투자은행들과 러시아가 국제석유시장에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을 때 미정부는 이 기회를 이용해 워싱턴에서 세차례에 걸처 국제 유가 청문회를 열음. 여기에서 러시아와 국제투기꾼이 유가를 끌어올렸다는 결론이 내려짐. 곧이어 세계 여론은 비난의 화살을 러시아와 월가 국제투기꾼들에게 돌렸음. 세계경찰을 자청하던 미정부는 즉각 골드만 삭스, 시티뱅크, 모건스탠리 등 월가 거물들을 한자리에 불러 비난을 퍼부으며 국제유가를 혼란에 빠뜨린 국제투기꾼들에게 일정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힘. 미정부의 월가 거물들에 대한 질타는 아직 러시아를 상대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려는 일종의 연막작전. 러시아는 결국 미국의 작전에 속음. 국제원유시장에서 국제투기꾼이 사라지고 구매자가 혼자만 남았다는 사실에 러시아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음. 그래서 즉각 원유구매량을 늘림. 바로 이때 월가 거물들은 물건을 방출하기 시작. 그들은 보유한 석유를 자신들이 구매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값에 러시아에 판매. 석유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던 그때, 러시아는 수중에 현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음. 그러자 월가 투자은행들도 다급해짐. 러시아의 수중에 현금이 떨어지면 자신들도 비싼 값에 석유를 팔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 그래서 월가 투자은행들은 러시아에 대출을 해주기로 결정. 월가 투자은행들은 러시아에 무척 관대한 태도를 보임. 러시아가 원하기만 하면 액수가 얼마든 대출을 제공했고, 요구하는 담보도 간단했음. 러시아 대기업 주식을 담보로 맡기면 흔쾌히 대출을 해주었던 것. 한마디로 '현금이 없어도 상관없어. 대출을 해줄테니 우리가 보유한 석유를 전부 사가기만 하면돼'라는 식이었음. 러시아는 월가 투자은행들이 그렇게 우호적으로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함. 담보도 순자산 담보가 아니라 거품성격이 농후한 주식을 담보로 요구했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지 않았음. 이에 러시아 기업가들은 국제적인 규모의 투자은행들을 비웃었음. 수익률이 높은 주식이 실은 별 값어치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모른다가 생각해 비웃은 것. 그러나 이후의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사실을 보여줌. 러시아는 미국을 이해하지 못했고, 핵무기보다 강력한 월가 투자은행들의 힘을 알지 못했음. 얼마 지나지 않아 월가 국제투기꾼들은 보유한 고가의 원유를 모두 처분했고 러시아도 석유를 충분히 비축하게 됨. 이후 유가가 돌연 급락. 배럴당 147달러이던 유가가 배럴당 32달러로 폭락. 유가 폭락으로 러시아는 막대한 손실을 입음. 러시아가 힘들여 쌓아 놓은 외환보유고는 유가폭럭에 따라 대축 축소됨. 러시아가 심하게 줄어든 외환보유고에 울상을 짓고 있을 때, 미국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냄. 월가 투자은행들이 채무상환을 요구. 그 순간 러시아는 국제적 규모의 투자은행들이 왜 애초에 수익률이 높은 주식을 담보로 요구했는지 비로소 깨달음.
- 스코틀랜드왕립은행 통계에 따르면 05년부터 07년까지 2년 동안 월가 투자은행은 러시아 기업에 700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대출해줌. 이 천문학적 금액은 러시아 경제를 다시 무너뜨림. 러시아는 구소련 해체이후 꼬박 10여년 동안 모은 2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거의 모두 월가 투자은행들 주머니에 넣어 줌.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탈탈 털어 주었을 뿐 아니라 외채까지 짊어짐. 10여년 동안 고생스럽게 견뎌온 러시아인의 삶이 하룻밤 사이에 구소련 해체전으로 돌아간 것. 이렇게 석유전쟁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본 러시아는 이제 더이상 석유쟁탈전에서 미국에게 많은 주도권을 쥐어주려 하지 않을 것임. 따라서 미국 정부가 석유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한 이란에 대해 전략적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정부는 주저없이 도울 것임. 미국과 러시아가 이란 핵문제에서 견해차를 보이는 것은 사실 자원문제 때문만은 아님. 두나라 사이에는 중요한 두가지 쟁점이 있음. 하나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권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카스피해의 에너지 문제임.
- 59년 12월 1일 미국, 영국, 남아공, 노르웨이, 뉴질랜드, 벨기에, 소련,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칠레, 프랑스 12개국은 남극조약에 서명. 남극조약은 다음과 같이 규정됨. "남극에서 실질적인 과학탐사를 수행하는 세계의 어떤 나라도 본 조약의 가입을 환영한다. 남극은 비군사지역이며, 남극에서는 한 나라로서의 법적 지위는 인정하지 않으며, 새로운 영유권 주장을 금지한다. 이전에 제기된 영유권 주장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남극조약은 20세기 후반에 거둔 가장 위대한 인류의 성취 가운데 하나이며, 그 지위는 87년 미국과 구소련이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받음. 남극조약이 체결된 뒤, 남극 대륙은 수십년 동안 평온을 유지.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안정일뿐 암암리에 일어나는 불협화음은 결코 그친 적이 없음. 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도 남극대륙의 영유권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분쟁임. 남극조약은 큰 의의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유권 분쟁을 잠시 미뤄두도록 하는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해 근본적인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존재. 오늘날까지 남극 영유권을 주장하는 몇몇 나라들은 여전히 보란 듯이 자신들의 영토를 보살피며 영유권을 지키고 있음. 일례로 칠레, 아르헨티나 등 국가는 남극대륙에 우체국, 학교, 병원, 은행 등의 사회기반시설을 적극적으로 짓고 있으며, 국무회의 등 대내외 행사를 진행하기도 함. 심지어 남극대륙에서 전화를 걸면 국내기준을 적용해 요금을 받고 있음. 또한 이들 나라는 여성들이 남극에서 출산하는 것을 장려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남극토착주민임을 대내외에 알림. 이런 자국영토 만들기 사례는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음.
- 현재 중국과 일본은 동중국해의 석유자원 개발을 놓고 끊임없이 분쟁을 벌이고 있음. 동중국해에 250억톤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고 중국의 연간 소비량이 3억톤 내외인 것을 감안한다면, 동중국해의 석유자원은 중국이 8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름. 게다가 동중국해에는 8조 4000억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천연가스도 매장되어 있어, 이곳은 중국의 중요한 에너지기지라 할 수 있음. 이 때문에 천연가스가 부족한 일본은 동중국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음. 일례로 저장성 닝보 동남쪽 춘샤오 가스전은 원래 중국 영해에 있음에도 일본은 춘샤오 가스전이 중국과 일본의 중간선에 가깝다는 이유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중국을 기소. 기소 사유는 중국이 일잔 춘사오 가스전을 개발하면 중간선 너머의 다른 한쪽에 있는 석유도 가져가게 되고, 유엔해양법협약의 규정에 따른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해한다는 것. 동중국해는 겨우 330해리이고, 동중국해 남서부에 위치한 댜오위다오가 일본영토잉므로 동중국해 대부분의 석유를 일본이 차지하는 것이 맞음. 하지만 문제는 중국도 동중국해에 대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 또한 일본의 경제수역은 자신이 직접 정한 것이고 국제법 규정에 따라 정한 것이 아니어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했음.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자 결국 일본은 할 수없이 그 부분을 포기
- 39년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전쟁을 일으켰을 때 독일은 이미 합성석유 공장 14곳을 가동시켜 연료로 쓸 합성석유를 확보하고 있었음. 그 후 합성연료의 생산량은 더욱 늘어나 일일 생산량이 7만 배럴에 달했음. 이것은 전체 공급량의 64%를 차지. 히틀러는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함. 무기를 전력가동하기 위해선 더 많은 석유가 필요했던 것. 독일군은 서유럽을 점령한 뒤 영국을 급습했지만, 영국 왕실공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음. 또한 영국은 레이더를 발명해 독일의 폭격에 맞섰고 해상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어 독일이 단기간에 영국을 점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음. 이때 히틀러는 이제 막 생겨난 구소련으로 목표를 수정하기로 함. 그는 구소련을 신속하게 점령할 수 있기를 바랬음. 구소련을 점령하면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독일의 우방인 일본과도 접촉이 원활해질 수 있기 때문
- 기계화 전쟁에서 연료로서의 석유는 전쟁에 쓰이는 기계를 움직이는 동력원임. 이런 전쟁에서는 석유생산과 연료수송이 승리를 좌우하는 관건. 다시 말해, 상대의 석유생산과 공급을 장악하는 자가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음.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 섬나라 일본은 원료가 풍부하지 못했고, 30년대말 석유의 80%를 미국에서 그리고 10%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들여옴. 일본은 전쟁이 확대되면 미국과의 결전을 피할 수 없으며 미국이 곧바로 자신들의 석유공급로를 차단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고 있었음. 그래서 일본은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해 뒷일을 대비하기로 결정. 41년 7월 일본은 남부 인도차이나 반도를 침략. 미국과 네덜란드는 즉각 일본에 대한 석유수출금지 조치를 내림. 동인도 유전을 점령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실시하기 전에 동부 미 해군의 저지를 피할 목적으로 일본은 미국이 진주만에 세운 해군기지를 기습해 태평양에서 일본해군에 대항할 군사력을 파괴하기로 결정
- 2차대전후, 수에즈 운하는 유럽 석유수송의 중요한 관문이 됨. 유럽 석유의 3분의 2가 수에즈 운하로 운송되었고, 수에즈 운하의 물동량 중 3분의 2도 석유가 차지. 석유가 갖는 전략적 의미는 양차 세계대전에서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에 전후산업화 국가에서 석유는 경제기반이자 최대 산업분야로 발전. 산업화 국가들은 당연히 석유운송라인을 확보해야 했음.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국가에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 당시 영국 수상 이든이 구소련의 서기장 흐루쇼프와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석유문제와 관련된 수에즈 운하에 대해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석유를 놓고 전쟁을 하게 될 겁니다. .... 우리는 석유 없이는 살수 없고 남의 손에 목이 졸려 죽고 싶지도 않습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 두나라는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집트에 군사행동에 나서 2차 중동전쟁이 발발.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선봉을 맡은 것은 아랍과 아프리카 그리고 이슬람권의 통합고 그 세력의 지도자가 되려는 야망을 갖고 있던 나세르와의 갈등도 한 요소가 됨. 나세르는 이스라엘을 아랍세계의 눈엣가시로 여겨 사사건건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음. 이스라엘 선박에 한해 아카바 만의 티란 해협과 수에즈 운하의 통행을 금지하기도 함. 이스라엘은 아랍세계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동적 자세를 버리고 능동적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이스라엘은 적의를 보이는 이집트에 무력을 사용해 가자와 시나이반도 등과 같은 전략 요충지를 더 많이 장악하기로 결심. 56년 10월 24일 영국과 프랑스 고위급 외교관과 군장교가 파리 교외 세브르에서 이스라엘의 고위급 대표단과 비밀 회동.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군대를 보내 시나이 반도를 공격하려면 영국과 프랑스가 운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수에즈 운하를 점령한다는 내용의 합의가 이루어짐. 국제 정세 변화를 느낀 이집트도 전쟁에 대비. 10월 23일 이집트와 시리아는 그들이 통제하는 연합군 지휘부를 설립하여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이집트가 시리아의 부대를 지휘하기로 함. 이튿날 요르단도 이 연합군 지휘부에 가입. 10월 29일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로 진격했고, 이와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에게 운하를 넘기라는 최후통첩을 선포. 10월 30일 영국 비행기가 이집트 공항을 폭격했고 이집트군은 시나이반도에서 철수. 사전협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제때 운하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나세르는 급히 특수부대를 꾸려 돌과 시멘트 등을 대량으로 실은 선박을 수에즈 운하에 가라앉혀 수로를 막음으로써 영국과 프랑스 전함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저지. 한편 나세르는 이집트 기술자에게 이라크에서 지중해로 가는 파이프라인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림. 이 밖에 사우디와 쿠웨이트도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석유수출을 중단. 이에 서유럽 전체 석유 수입량의 4분의 3이 중단됨. 영국과 프랑스는 아랍세계의 봉쇄조치로 석유공급이 차단되면 미국이 부족분을 메워줄 것으로 내심기대하고 있었음. 석유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선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음. 뿐만 아니라 그는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과 상의 한마디 없이 마음대로 군대를 동원한 것에 대해 불쾌한 감정이었음. 때문에 유럽의 기대에 대한 그의 반응은 싸늘했음.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석유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들은 고생을 자처한 것입니다." 서유럽 사회는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 얼마 지나지 않아 석유부족으로 인한 여러가지 곤란에 직면. 서유럽 나라들은 석유판매량 제한, 석유에 세금부과, 자가용 자동차의 주말운행 금지, 발전소의 연료를 석탄으로 대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석유 소비를 통제했으나 한계가 있었음. 석유공급부족은 서유럽에 심각한 경제적 파장을 몰고 옴. 게다가 소련과 미국, 국제여론은 그들에게 침략국의 꼬리표를 붙이며 몰아붙임. 11월말,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에서 철수할 것을 국제사회에 약속. 아이젠하원는 긎야 중동국가에 서유럽에 대한 석유수출봉쇄조치를 철회하도록 촉구함. 이와 동시에 유엔 긴급군을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 인근에 배치해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에서 전면 철수토록 했음. 이때부터 수에즈 운하는 완전히 이집트의 통제하에 놓이게 됨
- 73년은 아랍국가에게 상징적인 한해였음. 4차 중동전쟁 기간에 유가는 아랍국가가 주도하는 OPEC의 조종으로 큰 폭으로 상승. OPEC가 석유의 가격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됨. 70년 유가는 1.8불에 불과했지만, 71년 시장에 대한 개입을 2.18불까지 올랐고, 73년 중반만 해도 2.90불에 머물러 있었음. 그러다가 4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자 유가는 단숨이 5.12불로 올랐고, 73년 말 OPEC은 테헤란아세 열린 회의를 통해 석유회사와의 진통끝에 석유 공급가를 11.65불로 올리는 데 성공. 한해 동안 아랍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장 상황에서 그들이 지닌 석유는 하나의 무기가 되어 놀랄만한 위력을 발휘.
- 중동각국은 모두 산유국이고, 그들 사이에는 국경이 있음. 하지만 지하의 석유자원은 경계를 그을 수 없음. 석유의 유동성은 종종 산유국간의 갈등의 도화선이 됨. 쿠웨이트는 OPEC의 규제를 받지 않고 석유를 생산했기 때문에 석유의 초과생산은 국제유가의 하락을 불러왔음. 이에 이웃 강대국인 이라크가 강한 불만을 갖게 되었던 것. 후세인은 90년 5월 개최된 아랍정상회담에서 쿠웨이트의 아미르 자비르가 마음대로 원유생산량을 늘리고 이라크의 석유를 훔치고 있다고 비탄. 이에 대해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석유를 도둑질하지 않았다고 전면 부인. 사실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석유를 훔쳤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수익증대를 위해 쿼터를 무시하고 석유를 채굴하는 것은 다른 날, 특히 이라크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만은 확실했음. 그뿐만 아니라 이라크를 제외하고 중동반도의 아랍국가들은 모두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 나라들의 왕실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미국의 영향을 받아 증산을 통해 국제유가를 조종했음. 후세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바트당 정권은 그들이 아랍영토의 풍부한 자원을 이용해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 국가에게 봉사한다고 비난을 퍼부었음. 사담 후세인은 다른 아랍군주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고 쿠웨이트의 모든 석유를 독식하고자, 무력을 쓰기로 결심했음. 90년 8월 2일 새벽에 대대적인 군사작전이 개시됨.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부시 역시 파병을 결심하고 국회에서 연설. "세계의 주요 석유가 후세인의 손에 넘어간다면 우리의 생활방식, 취업기회와 민주국가의 자유가 모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이라크 파병은 이른바 민주국가의 자유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음. 미국의 정치, 군사, 경제적 힘을 중동지역까지 확대하려는, 더 좋은 석유공급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더 컸음. 쿠웨이트는 1만 7800제곱필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석유 매장량은 현재 밝혀진 세계 매장량 가운데 9%를 차지하고 있음.
- 사우디는 이슬람교의 발원지로 이슬람 문화가 짙게 배어 있음. 파드 국왕은 이슬람교의 양대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영토로 두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자국을 양대 성지의 수호자임을 자청하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음. 사우디 왕실은 국내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석유로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를 국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함. 하지만 사우디는 출산율 급증으로 20년만에 인구가 두배로 늘어남. 젊은층이 총인구의 65%를 차지하지만 대다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고 석유로 얻는 수입의 무상분배도 급증하는 인구때문에 크게 상쇄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현 정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우디는 국민에게 코란경전을 철저히 교육시켰음. 이에 따라 젊은층에서 근본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음. 사우디 왕실은 민의를 따르기 위해 석유수입으로 팔레스타인을 원조하고, 반이스라엘활동을 벌이는 폭력적 성향의 극단주의 조직에도 자금을 지원함. 사우디는 아프간 탈레반 정권의 지지자이고, 탈레반 정권과 수교한 세 나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함.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하는 동안 사우디는 자국의 군사기지를 미군에게 제공하는 것을 거절. 이란에서 자국으로 알카에다 조직원을 이동시킬 때도 사우디는 이를 비밀리에 진행했으며 그들은 심문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음.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사람들이었기 때문. 사우디는 탈레반, 알카에다 및 테러리즘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미국인들은 사우디를 테러리즘의 온상이라고 생각함. 미국이 석유와 안보의 교환이라는 협상을 통해 사우디로부터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되었지만, 믿을만한 석유 공급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우디내에서 반미정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 이런 사항들은 앞으로 사우디 왕실의 국내외정책을 좌우하게 될 것이고,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에 새로운 충돌이 벌어질 때는 더욱 그러할 것임.
- 9/11 사태 이후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음. 미국은 믿을 수 없는 우방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음. 이라크는 미국에게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체할 최선의 선택이었음. 이라크는 세계에서 석유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중 하나이다.
- 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공격을 당함. 미정부는 탈레반 정권이 이번 테러공격을 감행한 알카에다 지도자 빈 라덴을 지지하고 비호한다며 비난하고 나섬. 그리하여 그해 11월 7일 미 정부는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군사행동을 취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림. 반테러리즘의 기치를 대대적으로 내걸고 아프간 전쟁을 일으켰지만 미국의 속내는 따로 있었음. 그들의 진짜 목적은 아프간의 중요한 전략적 위치와 카스피해의 석유를 차지하는 것이었음.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의 핵심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미국이 아프간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중앙아시아의 핵심에 쐐기를 박는 것이나 다름 없었음. 그렇게 되면 중국, 러시아와 이란을 서로 떨어뜨려 놓을 수 있고, 그들 사이의 군사, 에너지 협력관계도 끊어놓을 수 있음. 동시에 아프간을 발판으로 삼아 중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면 그 세계의 중심이 미국의 세력권으로 들어오게 됨. 그러면 미국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전략의 공백지대를 차지하게 되고, 이로써 러시아와 중국 등 잠재적 경쟁상대를 포위하여 그들을 압박할 수 있음. 지정학자드른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위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고,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분석. 미국이 아프간을 지배하면 곧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 중앙아시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카스피해는 페르시아만 다음으로 많은 석유가 매장됨. 카스피해는 남북 길이는 1200킬로, 동서폭 320킬로의 염수호임. 이곳에 매장된 석유는 대략 1500~2000억 배럴로 세계 총매장량의 18~25%를 차지. 그밖에도 약 8조 세제곱미터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음.
- 투르크메니스탄은 전통적인 중립국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석유, 천연가스의 수송과 판매에서 실리적인 태도를 취했음. 즉, 러시아와 미국을 끌어들이고 두나라와 동시에 협력관계를 취하면서 양국의 경쟁을 통해 이익의 극대화를 실현하고자 했음. 이런 배경하에서 미국은 곧바로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우호관계를 수립했음. 미국은 중앙아시아 진출의 두번째 단계에 접어들었고 큰 진전을 보았음.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의 석유, 천연가스자원 보고를 개척하기 위한 탄탄한 기초를 다진 것. 세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맺게 되자 러시아와 이란의 견제를 벗어나 카스피해 일대의 석유, 천연가스를 확보할 여건이 조성되었음. 러시아와 이란을 우회해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반출하기 위해 미국은 두가지 루트를 설계. 하나는 서향 루트이고, 다른 하나는 남향루트임. 카스피해 서부의 석유는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와 터키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서쪽으로 수송됨. 하지만 동부의 석유, 천연가스자원은 아프간, 파키스탄을 통해 남쪽으로 수동할 수 밖에 없음. 아프간을 통제하고 카스피해 석유의 남향루트를 열면 미국은 한편으로 러시아의 남향 통로를 끊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동향루트 개척에도 영향을 미쳐 중국에 대한 중앙아시아의 석유공급을 줄일 수 있음. 심지어 필요한 경우 아프간을 거점으로 삼아 중국으로 가는 중앙아시아의 석유공급을 차단할 수도 있음.
- 에너지 허브로서 아프간이 이런 전략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미국은 전쟁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기꺼이 치르고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 이때부터 아프간 전쟁은 결실을 맺기 시작해 미국은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손에 넣기 시작. 02년 5월, 미국의 적극적 중재로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과 아프간은 대규모 파이프라인 건설협정을 체결. 카스피해 동부의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목표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 아프간을 경유지로 한 석유 파이프라인은 비교적 짧기 때문에 근처의 석유, 천연가스를 아라비아해로 수송해 빠른 시간 내에 국제 석유시장에 선보일 수 있음. 02년 9월 미국 주도하에 아제르바이잔의 석유생산지 바쿠에서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지중해 도시 제이한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이 착공됨. 카스피해와 지중해를 잇는 석유 대동맥이 완성된 것. 그루지야의 한 경제학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 "이는 거대한 성공이며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파이프라인은 카스피해 주변국에게 또 다른 선택권을 제공해 줄 것이며 러시아의 석유 수송선에 피해를 줄 것입니다." 서향과 남향의 파이프라인 건설은 미국 석유전략의 중요한 승리를 의미. 이것은 서방 세계의 석유에 대한 갈증을 크게 해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방 동맹국에게 풍부한 석유 공급로를 제공해주었음. 이로써 아랍의 무기 가운데 하나인 석유의 위력은 크게 감소했고, 반면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강화됨. 또한 중국, 러시아, 이란의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중국의 석유 공급은 타격을 입음. 카스피해 석유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력은 약화되었고, 석유와 천연가스로 이익을 챙기고 있던 러시아는 큰 손해를 입음
- 철광석을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음에도 중국은 철광석 가격결정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었음. 철광석 가격은 세계3대 철광석 공급회사가 좌우하고 있기 때문.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음. 하나는 국제 철광석 공급시장에서 품질이 우수한 철광석의 대부분을 발레, 리오틴토, BHP빌리턴 3대 광산업체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 다른 하나는 철광석의 구매자가 세계 여러나라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 중국 철강회사는 전국시대나 다름 없음. 중국 내 철강업계의 혼탁한 상황은 철강업 조직구조를 느슨하게 하고 생산력을 집중시키지 못함. 외국투자자와 투자협상에서도 다른 부문과의 공조없이 독단적으로 처리하며 기세가 등등하지만 사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심이 가득하고 가벼운 충격에도 쉽게 약한 모습을 보임. 수요의 우위를 접할 수 있는 탄탄한 자금력과 드넓은 시장이 있는데도 선도기업이 없어 가격주도권을 갖지 못했음. 이는 중국 철강회사가 철광석을 수입할 때 피동적 입장에 서게 하고 결국 손해를 보게 만듬
- 일본이 최대한 많은 자원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지만 해외의 자원채굴권을 얻을 때는 언제나 조용히 진행함. 다른 나라의 유전과 광산을 적대적으로 사들일 경우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을 불어일으킬 수 있기 때문. 일본기업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방식은 지분참여. 그들은 소유지분도 보통 7.5%를 넘지 않도록 함. 수십년간의 노하우로 자원보유국의 반감과 배척을 야기하지 않으면서도, 자원확보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적정선을 도출한 것. 일본기업읜 자원 보유국의 사회간접자본에도 투자함. 자원을 해외로 운반할 때 물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 바로 이런 전략 덕분에 국제시장에서 원자재의 가격이 올라도 일본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음.
- 국제 메이저 광산업체들은 새로 발견된 철광석 산지를 완전히 통제하려고 하고 새로운 철광석 공급자의 출현을 반기지 않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연합이 아닌 독식임. 광산업체들이 새로 발견되는 품질이 우수하고 매장량이 풍부한 철광석 산지마저 통제할 수 있다면 현재의 독점시장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고, 더욱 높은 가격의 철광석 시장이 형성될 것임. 이것이 바로 그들의 기본전략이자 야심임. 높은 각겨의 철광석이 가져다주는 고이윤에 길들여진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협하는 어떤 상황도 원하지 않음. 이런 이유로 세계 3대 광산업체들의 끊임없는 견제와 야욕의 대상으로 떠오른 곳이 서아프리카임. 특히 기니만은 아프리카 대륙의 화수분으로 각종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수산물 자원도 풍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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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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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경제 2014. 10. 24. 20:41

 


무역전쟁

저자
CCTV 경제 30분팀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 | 2011-10-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강대국들은 어떻게 경제 전쟁에서 승리하고 패권을 거머쥐었나? [...
가격비교

- 바스코 다 가마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유럽에서 출발해 아프리카를 돌아 동방에 이르는 항해를 완수. 그는 동방과 서양 사이의 최단 해상항로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해외무역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음. 그가 인도에서 가져온 향신료와 기타 인도산 물품의 가치는 원양항해에 소요된 전체 경비의 무려 60배에 이름. 다 가마의 성공적 항해는 훗날 포르투갈이 해외영토 확장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원동력이 됨. 또 향후 일상적 무역활동이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함
- 스페인 상인들은 식민지의 목화를 자국에 운송한 다음 다른 국가의 방직업자에게 판매. 이어 외국 방직업자들로부터 방직물을 구매해 자국에 운반했다가 다시 식민지 국가에 판매. 따라서 스페인 식민지 수입품 중 90% 이상이 스페인 이외의 국가에서 제조한 물건이었음. 포르투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음. 리스본을 거쳐 브라질에 수출되는 제품 중 대부분이 포르투갈 제품이 아니었음. 이로 인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내산업은 크게 쇠퇴하여 급기야 몰락의 비운에 직면.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처음 10년 동안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지 않음. 투자자들이 돈을 조선, 건축 및 아시아의 무역왕국 건설에 투자했기 때문. 회사는 10년 후부터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기 시작. 이는 필요할 때 수시로 주식거래소를 통해 수중의 주식을 바꿀수 있었기 때문.
- 역사학자들은 네덜란드인들이 현대상품 경제제도의 창시자라는 사실에 공감. 또 은행, 증권거래소, 신용 및 유한책임 회사를 상호연계가 가능한 하나의 유기적 상업금융체제로 통일시켰다는 공로도 인정. 이런 선진적 운영모델로 인해 네덜란드가 스페인 및 포르투갈보다 더 먼 곳으로 무역촉수를 뻗치고 폭발적 자금의 증가를 가져옴. 이렇게 해서 17세기 중엽 네덜란드는 글로벌 무역패권을 확고하게 장악. 이 무렵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1만 5000개의 지부를 두고 전세계 무역액의 절반이상을 차지. 17세기 네덜란드의 인구는 100~200만에 불과 그럼에도 보유한 상선은 1만 6000척을 초과했음.
- 영-스페인 해전(1588)은 17세기 영국 해상 군사력의 부상을 상징하는 획기적 사건. 이때부터 영국은 스페인을 대신해 해상의 패권을 장악하기 시작. 무적함대의 참패이후에도 스페인은 50년 동안 여전히 대국의 위치를 유지. 그러나 그 근간이 뚜렷하게 흔들리기 시작. 이로써 오랜기간 유럽의 주류문명에서 소외됐던 섬나라 영국은 사상 처음으로 강국의 자세로 유럽대륙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됨. 더불어 세계 해양패권과 무역패권 쟁찰의 중심무대에 빠르게 등장.
- 산업혁명이후 영국의 면사 생산력은 빠른 속도로 과잉상태에 직면. 영국의 면직물 생산량은 1785년 4000만 야드에서 1850년에는 무려 50배나 증가한 20억 야드에 이름. 19세기 중엽에는 영국의 면직물 생산량이 다른 모든 국가의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았음. 인구가 2000만명도 되지 않는 영국이 이렇게 많은 천과 의류를 생산해 내는데 도대체 누구에게 판매한단 말인가? 이때 한 영국인이 장장 300년 동안 유럽국가를 지배했던 중상주의 보호무역정책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나섬. 그는 바로 애덤 스미스였음. 그는 영국이 보호무역주의, 영지쟁탈 및 독점적 지위 유지 등 고유의 방식으로 계속 돈을 벌 가능성이 높으나 만약 자유무역을 선택한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역설. 더불어 영국이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다면 그 국가들이 영국산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할 것이라고 강조. 와트의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의 촉매제가 됬다면, 애덤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산업혁명 이후의 새로운 글로벌 무역질서 확립을 위한 기초를 닦음. 그 이전까지 세계무역대국들은 모두 보호무역 정책과 무력을 이용한 독점무역을 통해 부를 얻음.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호혜평등의 기조와 상대적 경쟁에 입각한 자유무역만이 이익극대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음.
-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경제자유화가 영국이 산업분야에서 절대적으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한 이후에 실현되었다는 사실.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 된 다음 비로소 자유무역 시대에 들어섰음.
- 국가를 진흥시키고 강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끊임없는 혁신이라는 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글로벌 무역경로를 장악해 부를 축적. 네덜란드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해 부국을 실현. 이에 반해 영국은 제도혁신을 통해 역사적으로 결정적 시기에 항상 선도적 지위에 설 수 있었음. 영국의 정치변혁과 산업혁명, 중상주의 및 그 이후의 자유무역 등은 모두 그 시대에 세계를 선도했음.
-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이미 서서히 지고 있었음. 한편 1870년대부터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을 통해 독일이 새로운 강국으로 급부상. 1870년을 전후해 세계의 과학기술은 비약적 발전을 이룩. 다양한 신기술과 새로운 발명품이 계속해서 나타나 빠른 속도로 산업분야에 응용되면서 경제발전을 크게 촉진. 이것이 바로 2차 산업혁명임. 당시 과학기술의 발전은 네가지 분야에서 두드러짐. 여기에는 전력의 광범위한 응용, 내연기관관 새로운 교통수단의 발명, 새로운 통신수단의 발명 및 화학산업의 발전 등이 속함
- 영국이 여전히 자유무역을 고집하는 와중에 미국산 저가 밀이 대량으로 영국시장에 밀려들자 영국 농산품 가격은 하락을 거듭. 궁지에 밀린 농민들은 경쟁적으로 농사를 포기. 그 결과 경작지에는 잡초만 무성해짐. 실제로 1872~1895년 영국의 밀파종 면적은 60%가 줄어듬.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자유무역을 포기하고 정부 개입아래 관세장벽을 쌓기 시작. 1930년대 무렵에 영국은 결국 자유무역이라는 경제모델을 완전히 포기. 이처럼 경제발전과 식민지 분배의 불균형이 산업강국간의 갈등을 절정으로 끌어올림. 각종 마찰과 충돌이 잦아지고 강도가 세지면서 급기야 1차대전이 발발.
-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 바로 영국이 힘을 잃었다는 사실을 의미.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국에게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음을 뜻함.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는 이를 상징하는 것과 다름 없음
(2)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는 사실상 수출 촉진을 위한 조치였음. 영국이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관세인상, 파운드화 평가절하 등의 조치를 취하자 똑같이 수출증대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미국도 뒤질세라 달러화를 평가절하함. 이렇게 되자 세계 각국간 화폐전쟁이 불가피해짐
- GATT는 어느국가를 막론하고 멋대로 관세를 인상하거나 비관세 장벽을 설치해서는 안된다고 규정. 이 규정을 어길 경우 다른 국가의 경제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 GATT의 설립 취지는 각국이 상호 이익과 혜택을 전제로 관세 및 기타 무역 장벽을 줄이고 국제무역에서 차별대우를 없애 무역 자유화를 추진하자는 것이었음. 이로써 각국이 공동으로 지켜야 하는 국제적 규칙이 마련됨. 다시 말하면 다른 국가의 시장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국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것. 이는 모든 국가가 상호 위-윈하는 좋은 방법이었음. GATT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다각 무역체제에 관한 조약문으로 무역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창조적 메커니즘을 구축하여 무역마찰로 인한 전쟁유발 가능성을 크게 줄임. GATT는 비록 잠정 적용 의정서의 형태를 취했으나 채택 이후부터 95년에 세계무역기구가 설립될 때까지 47년 동안 꾸준히 적용되었음. 이 기간동안 세계의 평균관세율은 40%에서 4%이하로 크게 낮아졌고 수백개의 회원국을 유치했으며, 여덟차례의 다각무역 협상을 개최하고 100여건의 무역분쟁을 해결. 나아가 상품무역 규칙을 보완, 발전시키고 서비스 무역과 지적재산권 무역을 두루 포함하는 법률 및 제도적 기틀을 성공적으로 마련.
- 방직제품을 둘러싼 미일 무역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렴한 인건비, 혁신적 과학기술의 성과 등 특유의 장점에 힘입은 바 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신비한 조력자가 일본 방직업을 도왔기 때문. 이 신비한 조력자는 고정환율제였음. 달러화와 엔화의 환율이 장장 22년간 1달러=360엔 수준을 유지한 덕분에 일본은 미일간 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점함. 고정환율제 도입이후 일본기업들은 20여년 동안 환위험에 노출되지 않은채, 노동생산성과 신제품개발, 제품수출확대 등의 분야에 총력을 기울이면 되었음. 한마디로 고정환율제는 일본경제성장의 밑받침이 되었음.
- 미국은 단기간 내에 산업경쟁력을 제고하거나 거액의 무역적자를 호전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음.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달러화의 패권적 지위를 이용해 환율이라는 백전백승의 무기를 꺼내듬. 그러나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교수는 미국의 이 조치가 급한 김에 독이 든 술을 마시고 갈증을 푸는 격이라고 지적. "달러화 평가절하 조치의 유일한 수혜자는 생산능률으 낮은 미국 제조업체이다. 달러화를 평가절하하면 미국 제조업체들은 정부의 지원에만 매달리고 발전과 아예 담을 쌓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점차 잃을 수 밖에 없다."
-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일본의 원자재 수입가격도 함께 내려갔음. 따라서 정작 수출품 가격변동은 크지 않았음. 게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의 석유, 목재와 다른 자원을 수입할 수 있어서 일본산 제품의 국제경쟁력은 오히려 강화됨. 당시 일본은 반도체와 전자산업의 핵심기술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일본산 반도체와 전자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았음. 엔화가 상승하면 일본산 가격도 올라가지만 다른 나라들이 일본산 반도체와 전자제품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일본은 엔화가치 상승 이후 한동안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음. 엔하가 평가절상된 후 한동안 일본경제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음. 오히려 국가, 기업 및 국민의 자산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 일본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킴. 대량의 부가 축적되자 일본인들은 해외사장에 눈길을 돌려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기 시작.
- 엔화의 평가절상은 일본의 경제버블과 버블 후의 고통만 초래한 것이 아님. 일본 수출기업들은 엔고로 인해 원가상승, 경쟁력 하락 등 난제에 부딪힘. 일본 자동차 산업의 경우 플라자 합의 이후 10년 동안 수출량이 20% 감소. 일본 기업들은 수출난 해소를 위해 경쟁적으로 공장을 해외로 이전. 일본기업의 해외생산비중은 85년 3%에서 99년 14%로 급등. 이로 말미암아 일본에는 산업공동화 현상이 나타남.
- 서독은 다른 나라에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무역행위를 하지않음. 또한 무역장벽을 설치하거나 무역전쟁을 도발하지도 않음. 서독은 어떻게 윈윈효과를 얻었을까? 우선 가급적 수출품목을 분산시킴. 87년 서독의 수출상품 중 단일 품목이 전체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를 초과하지 않음. 그러나 같은 해 일본은 전기, 기계 제품 수출량이 전체 수출량의 74%를 차지. 서독의 이런 수출방식은 일본보다 무역마찰을 유발할 가능성이 적음. 또한 서독은 무역마찰을 피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국가에 자국제품을 수출. 예컨대 서독기업은 대미수출비중을 10%미만으로 제한했으나 일본기업들은 오랫동안 수출량의 50%이상을 미국시장에 수출. 이밖에 서독은 자국산 제품을 대량으로 수입한 국가의 반감을 사지 않기위해 이 국가들로부터 필요한 제품을 대량으로 수입. 반면 일본은 미국에 대량의 제품을 수출한 다음 필요한 물자를 개도국으로 부터 대거 수입해 미국의 불만을 크게 샀음. 서독은 한마디로 똑똑한 무역전략을 실시해 무역제재를 최대한 피할 수 있었음.
- 개도국의 1차상품 교역조건은 장기적으로 악화되는 추세에 있음. 전통적으로 중심구 국가들은 주변부 국가들의 희생을 대가로 많은 혜택을 누림. 프레비시의 이론에 깊은 영향을 받은 아시아, 아프리카 및 남미의 수많은 개도국들은 앞다퉈 수입대체 정책을 실시. 우선 관세보호, 수입쿼터 등의 조치로 선진국 공산품의 수입을 규제하고 다양한 지원정책으로 자국 민족산업 발전을 추진함으로써 수입대체를 실현. 다음에는 공산품 수입원가를 낮추고 외화부족 압력을 줄이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평가절상.
- 플라자 합의는 일본 수출산업에 큰 타격을 입힘. 다른 의미로는 일본 수출업의 글로벌화를 한발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도 있음.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다국적 기업들은 이로 인해 기업예산이 심각한 영향을 받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해상운임의 증가였음. 이에 일본기업들은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플라자 합의의 영향을 받지 않는 태국, 말레이시아 등 기타 아시아 국가에 공장을 설립하기 시작. 플라자 합의 는 아시아 경제, 더 나아가 세계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침. 엔화가 평가절상된 후 아시아의 네마리 용도 자국 화폐의 평가절상 압력에 직면. 이러한 화폐 가치조정은 아시아의 네마리 용와 일본이 자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을 외국으로 이전하도록 만듬. 전세계적으로 무역의 문턱이 크게 낮아진 다음에는 어떤 상황이 도래했을까? 자본은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세계에서 갖아 저렴한 자원과 노동력을 찾아 배분될 수 밖에 없음. 유엔 통계에 의하면 60년대 후반에 세계에는 276개의 다국적 기업과 2만 7300개의 해외지사가 있었음. 그런데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다국적 기업과 해외지사는 각각 1만여개와 10만여개로 증가했고, 99년에는 그 숫자가 각각 6만 3000개 및 70만개에 이름. 자유무역은 다국적 투자를 촉진하고 국제분업과 산업 이전의 과정을 가속화시킴. 이로써 애덤 스미스의 명제가 분명하게 입증됨.
- 93년 클린턴이 당선되었을 때 미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막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누적되는 쌍둥이 적자상태가 나타남. 클린턴 행정부는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화폐정책에 손을 대고 달러화의 평가절상을 추진.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미국 제조업 수출에는 불리한 영향을 미치지만 국제자본을 대량으로 유치할 수 있어서 금융시장 활성화에는 도움이 됨.
- 달러화가 가파르게 평가절상되자 국제시장의 자금이 순식간에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 국가와 지역들은 위기에 빠짐. 동남아 각국 화폐는 대부분 달러화와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달러화의 갑작스러운 평가절상은 이들 국가의 화폐가치도 급격하게 상승시킴. 이로써 수출경쟁력이 크게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 달러화가 평가절상된 지 얼마 되지 않은 95년 2분기부터 인도네시아, 한국, 태국 등의 수출이 급감하면서 거액의 무역적자가 나타남. 또한 동남아 각국에 투자한 외국자본들이 앞다퉈 철수하면서 고작 몇 달 사이에 이들 국가의 외환보유고는 대폭 감소. 96년 인도네시아의 국제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한국은 5%. 말레이시아는 6%, 태국은 9%에 달함. 이들 국가는 서구 금융투기세력의 공격을 막아낼 힘을 완전히 상실.
- 미국이 거액의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안정적 인플레이션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임. 달러화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결제 및 외환거래, 외환비축 수단임. 따라서 세계 각국의 달러화에 대한 수요는 가히 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미국의 교역 상대국들은 실물상품을 미국에 수출하고 달러화를 받음. 마침 99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생산과잉 현상이 나타나 그 후 몇년 동안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 미국은 이 기회를 틈타 대량의 상품을 수입하면서 국내물가수준을 끊임없이 하락시킴. 한편 미국은 이시기에 고부가가치 공산품 생산과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한 금융서비스업 발전에 총력을 기울임. 이와 같은 이유로 미국은 인플레를 피하면서 고성장을 이룸. 그렇다면 무역흑자국이 벌어들인 달러는 최종적으로 어디로 흘러갔을까? 다름 아닌 미국임. 미국의 몇몇 대표적 무역파트너는 동시에 미국 국채의 최다보유국이기도 했음.
- 전통 산업 강국인 서독의 경우 20년 동안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후 무역마찰과 플라자 합의의 걸림돌에 부딪혀 당시 마르크화의 달러화 대비 가치가 70.5%상흥. 이로 인해 서독의 대외무역은 심각한 타격을 입음. 이때 서독정부는 경기부양책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국가의 경제성장 모델을 재조정. 제조업 위주의 직업교육을 영양, 간호, 금융, 서비스 등 100여개 분야로 확대하고, 아울러 가계소득을 증진시켜 내수규모를 확대. 또 일련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펼쳐 중소기업의 발전을 통해 새로운 경제성장점을 찾고 고용을 증진. 그 결과 3년후부터 서독경제는 안정적 반등을 보이면서 경제성장률이 3.71%에 달함. 9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5%를 초과. 서독경제는 짧은 침체기를 겪은 후 3~5%의 안정적 성장수준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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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계곡

경제 2014. 10. 24. 20:37

 


죽음의 계곡

저자
유병률 지음
출판사
알투스 | 2012-02-1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우리는 왜, 지금 이곳에,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가?" 불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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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포드의 시대 이후로 영웅적 기업가는 차츰 신화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정보산업은 소위 자본주의 낭만이라는 것을 되살려 냈다. 영웅적 사업가가 멋진 신제품을 만들어 마땅히 백만장자가 된다는 신화가 되살아 난 것이다. 19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경제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시 뛰어난 개인들, 즉 더 나은 아이디어를 갖고 이것을 차고나 식탁에서 발전시켜 부를 쌓은 사람들이 되었다. 이로 인해 부가 미덕의 산물이라는, 적어도 창의성의 산물이라는 과거의 개념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폴 크루그먼, 불황의 경제학)
- 2차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도금시대에 보았던 불평등이 다시는 도래하지 않을 전설이 돼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그 불평드으이 재등장에 직면하고 있다. 과거와 지금은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놀랍고 섬뜩할 정도로 그 모습이 닮아 있다.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 부자들의 기부는 '나는 다른 부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과시적 소비로 볼 수도 있음. 부자들의 기부가 세상을 조금 덜 나쁘게 할 수는 있어도, 세상을 바꿀수는 없음.
- 19세기 후반 사회진화론은 당시 부자들을 축재의 죄악감에서 해방시키고, 자신이 우성임을 확인하게 해주었음. 카네기는 스펜서의 사상에 대해 "빛이 모든 곳을 비추기 시작하니 어두운 곳이 없어졌다"고 호응하기도 했음. 사회진화론은 19세기 후반 미국 기업가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이데올로기였음.
- 20세기 중반의 시대를 향한 향수의 이면에는 그리워하기에는 거북한 팩트가 숨겨져 있음. 바로 순종과 길들여짐. 숨막히는 노동규율을 완전히 체화한, 규격화된 심리구조의 새로운 인간형임. 그 시대 사람들은 예측가능한 삶을 얻은 대신, 관료주의의 규율이 지배하는 단조로운 업무에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을 팔았음. 물질적 소비를 얻는 대신 창조하는 본능을 내주고, 그래서 풍요와 영혼을 맞바꾸게 됨.
- 평생의 시간을 회사에 팔아넘기고 그 대신 평생의 고용을 보장받는 그런 형태의 직장문화는 앞으로 점점 사라지게 될 것임. 나는 내가 입으로 가르쳐온 것을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대기업의 보금자리를 떠나 나 혼자 바람찬 들판에서 풍찬노숙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20세기 고용문화의 큰 기둥이었던 대기업, 그 코끼리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벼룩처럼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찰스핸디, 코끼리와 벼룩)
- 미국의 기업은 19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져 20세기 초반을 거치면서 독점화, 거대화됨. 이들 기업은 야만적 방법으로 경쟁을 무너뜨리고, 더 야만적인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축출했음. 그러나 대공황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그 야만은 가히 사회자본주의라고 할만큼 상당부분 사회적 방향으로 순화됨. 정부가 각종 규제를 만들어 산업내 경쟁을 줄이고 생산을 통제했음. 지금 기준으로 보면 기업들의 거센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큼 시장경제에 반하는 것이었음. 그러나 당시 거대기업들은 경쟁기업이 시장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없이 안정적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환영. 대신 거대기업은 산별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노동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연금과 의료혜택 등 노동복지를 적극적으로 도모. 거대기업이 대단한 선심을 쓴듯 하지만 실은 이런 양보가 기업에게도 유리하기 때문이었음. 포드가 촉발한 대량생산의 선결조건이라 할 수 있는 안정적 노동력 공급을 위해서는 산별노조와의 집단협상이 유리했음. 노동복지 역시 대량수요를 안정적으로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음. 제너럴모터스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이 이렇듯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임. 노동자들 입장에서도 제너럴모터스에게 좋은 것은 자신들에게도 좋은 것이었음. 거대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서 높은 수익을 내며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했음. 또 이런 수익이 고르게 분배되면서 노동자들은 생산이 증가하는 상품을 구매하며 예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행복을 누리게 됨. 그래서 파업을 자제하고 협력하게 됨.
- 이 시대의 타협은 이처럼 이해세력간 정치적 타협, 정확히 말하면 노동과 자본의 계급적 타협임. 이런 계급적 타협은 포드의 새로운 노동조직 방식을 국가적으로 완성하는 것이었음. 자본은 컨베이어 벨트가 일군 대량생산 시대에 별 경쟁없이 확실한 수익을 보장받고, 노동은 평생직장에서 혁신 스트레스 같은 큰 불편 없이 5달러짜리 하루에 만족하고 안착하며, 국가는 이런 질서를 물리적으로 이데올로기화하고 유지, 보수하는, 제대로 한 바퀴 도는, 그래서 당시 기준으로 복지국가가 자리를 잡음. 포드 자신은 정작 노조를 극도로 싫어했지만 포드주의는 그렇게 탄생하고 정착함.
- 관료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질서를 따를 경우 받게 될 미래의 보상에 대해 먼저 생각하도록 가르침. 사람들은 미래에 보상 받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당장의 보상이 적더라도 고정된 제도속에 스스로를 속박함.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경력에 비추어 앞으로의 승진경로가 어떻게될지 그려보거나, 한 회사에 계속 근무하는 기간과 앞으로 늘어날 재산규모를 연관짓게됨. 장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략적 삶이 가능해지는 것임.
- 사회가 점점 부유해지면서 욕구는 점점 그것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다시 만들어짐. 그 과정은 수동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음. 즉, 입소문이나 소비자들의 경쟁심리를 통해 욕구를 만들어 내는 것임. 또는 생산자가 광고나 마케팅 전략을 통해 적극적으로 욕구를 만들어낼 수도 있음. 이 경우 욕구는 생산에 의존하게 됨. 광고와 마케팅 기법은 생산과 욕구를 더욱 밀접하게 결합시키고 있음. 광고와 마케팅 기법의 목적은 욕망을 만들어 내는 것,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욕망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구축된 욕망의 개념과는 융화될 수 없음. ... 소비자들은 광고와 판매전략을 접하고서야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됨.(풍요한 사회, 갤브레이스)
- 자신의 시간을 전부 팔아야 하고 자신의 생명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는 상징적으로 이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것이 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음. ... 포드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조립라인은 반복적이고 정신적인 피곤을 안겨주고 존엄성을 앗아가는 노동을 요구했지만, 이렇게 전문성이 낮은 일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임금을 받았음. 그들이 직업적 존엄성의 측면에서 상실했던 것, 그것을 소비의 측면에서 얻는 것으로 여겼음. ... 노동과 자본은 돈벌기가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인 한 서로의 대립을 통해 완벽한 공범이 됨. (앙드레 고르, 에콜로지카) 기업이 물건을 만들어 내는 목적이 물건 자체가 아니라 이윤이고,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는 목적 역시 생산하는 물건 자체가 아니라 소비를 위한 임금인 한, 이 둘은 정확히 이해를 공유하게 된다는 뜻.
- 평생의 시간을 팔아넘겨야 하는 감옥은 필사적으로 기회를 붙잡아야 하는 감옥으로 바뀌었고, 안정되고 예측가능하며 서사가 가능했던 삶으로서의 보금자리는 돈과 명예로 측정되는 성공으로서의 보금자리로 바뀌었다는 것임. 말하자면 기회를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하고, 그 기회를 잡으면 성공이라는 보금자리가 주어지는 질서로 말이다.
- 대공황 이후 양계장의 울타리를 만들고 지켜주던 버팀목은 케인스의 사상이었음. 노조를 기업운영의 주체로 인정하고,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임금을 보장해 기업이 만들어내던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음. 정부 역시 수요의 주체로 나서 사회복지를 위한 지출을 늘림. 그래서 타협의 시대 울타리는 미국식 복지국가 모델로 불리기도 했음. 그러나 60년대 중반 이후 세계경제는 인플레로 몸살을 앓기 시작. 각국의 통화가 풀리면서 물가가 오르고, 물가상승은 임금인상을, 임금인상은 다시 물가상승을 불러옴. 그런가운데 73년과 79년 두차례 오일쇼크가 발생.
- 물가가 오르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지금 시각으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 아직은 튼튼한 울타리가 남아 있어 물가가 오른만큼 임금을 더 받으면 되고, 설령 직장을 관두어도 든든한 실업보험이 있었음. 그러나 이런 현상이 인플레를 더 자극했고, 인플레는 세계경제를 결국 위기로 몰고감. 세계경제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
- 대량생산 체제에 기반한 정치사회적 타협이라는 기존 체제에 대한 주류 전체의 이해는 80년대 들어 급반전 함. 타협의 시대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양과 보조를 맞추어 소득이 불어났고 그래서 대량소비가 가능했고, 그래서 또 기업가의 대량생산이 유지되면서 돌고도는 선순환이 가능했음. 하지만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의 그 지긋지긋한 노동에 반발하기 시작.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을 묵묵한 노동으로 유도하는 문제에서 한계에 봉착. 거기다 임금인상 요구도 거세짐. 기업가들은 서시히 자신들의 몫에서 노조가 너무 많이 가져간다고 분노하기 시작. 안 그래도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돈벌이도 예전 같지 않아짐. 이런 가운데 기술혁신은 기업가들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음. 컴퓨터와 통신, 운송수단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혁신은 타협의 시대의 전제, 즉 대량생산 체제를 약화시킴. 기술혁신은 소비자들에게는 더 세분화된 소비욕구를 증대시켰고, 기업가들에게는 소비자들의 소비욕구를 불어일으키면서 동시에 충족도 시킬 수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줌. 포드의 공장에서처럼 군대조직 같은 일사분란한 노동력에 대한 필요가 줄어듬. 수틀리면 공장을 옮겨 제3세계의 더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임. 노조의 눈치를 보고 협조를 구할 필요성도 줄어듬. 기업가들의 이해와 전략이 근본적으로 선회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순식간에 바꿀 절호의 기회, 즉 경제위기가 찾아옴. 레이건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이 모든 상황과 맞아떨어졌고, 주류의 기대대로 종결자 레이건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뒤집음.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울타리를 다 뜯어냄. 그래서 주류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함.
- 자본주의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을 더 낮은 비용으로 만들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지배층이 되는 최초의 경제체제임.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물건을 만들었고, 사회의 위계는 힘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신분제로 보장되고 세습되었음. 자본주의가 역사의 진보인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물건을 만드는 사회적 분업을 형성하고, 그래서 신분제를 없애버렸기 때문. 자본주의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늘 기술혁신에 신경을 쓰게 됨. 또 더 낮은 비용으로 상품을 만들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술혁신에 몰두하게 됨. 이런 기술혁신은 역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변하시키고 새로 만들기도 함. 욕망과 기술혁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짐. 이처럼 특정한 기술 패러다임은 사회 패러다임의 전제조건이지만, 역으로 사회제도가 기술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도 함.
- 폴라니에 따르면 시장은 자생적 진화를 통해 저절로 출현한 것이 아님.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경제적 자유주의 이념의 강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구빈법 개혁, 곡물법 철폐, 금본위제 같은 국가제도의 변화가 노동과 토지와 화폐를 상품화했고, 이를 통해 자유시장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금전을 지원하는 구빈법을 폐지하고 대신 사람이 도저히 살기 어려운 구빈소를 만듦으로써, 공장에서 짤리면 갈 곳이 없도록 만음. 그래서 공장에서 죽도로 자신의 노동을 팔지 않으면 안되도록 함. 또 수입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물리는 곡물법을 폐지함으로써 식량가격을 낮추고, 그 결과 임금을 탄력적으로 책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 시장을 만들었음. 그래서 폴라니는 자유방임은 계획된 것이었다고 주장. 시장은 자생적 진화의 결과가 아니며, 시장의 자율성 이면에는 폭력적 제도를 통한 강제성이 숨어 있음. 그리고 사회적 통제를 거부하는 시장의 자기조절적 질주는 결국 사회 전체를 집어삼키는 악마의 맷돌이라고 경고함.
- 로버트 라이시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희소성 때문에 그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그래서 계속적으로 더 큰 보상을 받게 되는 혁신가의 모습을 기크(geeks)와 슈링크(shrinks)라는 개념으로 설명. 우선 예술가, 발명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과학자, 작가 등과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기크(한가지 일에 몰두한다는 의미)유형. 기크는 특정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가능성을 찾고 개발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 단순하고 분석적인 사람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적절하게 배치해 결과를 극대화하지만, 기크는 자신의 마음을 쏟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섬. 자신의 발견과 고안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연연하지 않으며, 대신 한 분야에서 기존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희열을 느낌. 두번째는 컨설턴트, 마케팅 전문가, 제작자 등의 특징을 가진 슈링크(정신과 의사를 의미)임. 이런 유형은 한 분야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 기존의 경계선을 뛰어넘기보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잠재의식 속에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데서 자신의 독창성을 발휘. 기크가 기술, 과학, 예술, 문학, 기호체계 같은 분야 나름의 규칙과 상황에 끊임없이 매력을 느끼는 반면, 슈링크는 사람들이 원하고 두려워하는 것, 갈망하고 필요로 하는 것 등에 매력을 느낌. 기크가 특정한 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면, 슈링크는 사람들의 욕구과 필요를 발견. 위대한 기업가는 기크이면서 동시에 슈링크임.
- 유럽경제의 침체가 두드러졌던 90년대 미국 경제가 이룬 성장의 비밀은 다른 어떤 나라도 감행할 수 없었던 경제정책 때문임. 미국 경제 또한 유럽 경제처럼 구매능력이 있는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서 힘든 상황이었음. 하지만 미국은 국민들에게 부채를 지게 함으로써 유일하게 지불능력 문제를 한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음. 지불능력을 갖춘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경제가 후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가구마다 거래은행에서 빚을 내 소비를 하도록 부추김. 바로 중산계급 가정의 부채 증가가 가시적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것.
- 예나 지금이나 성공신화, 성공스토리는 이데올로기임. 내 승산이 실은 더 떨어졌다는 진실이 수많은 성공스토리에 가려 은폐되고 있음.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나의 보잘것 없는 승률조차 은폐되고 있음. 자신의 승산에 대한 과대평가가 심화될수록 승자의 선례를 따르려는 줄은 더 길어지고, 자신의 성공가능성을 더 높이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쏟아붇게 됨.
- 예술작품으로서의 삶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스스로를 감독하며 심지어 스스로를 고용하기까지 하는 노동자, 즉 예술가를 이상으로 삼는 경향을 출현시킴. ... 하지만 예술작품으로서의 삶이라는 이상이 대안이라기보다는 함정임이 드러남. ... 그것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을 지칠줄 모르고 돌아가는 생산의 장이자 가장 판매하기 좋은 자아를 재개발해내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만들어 버렸다. (문화비평가 미키 맥기, 자기계발의 덫)
-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외저거 가치에 순응하면서 동시에 진정성을 지니려는 노력은 공존불가능한 가치들을 화해시켜야 하는 끊임없는 모순적 과제들을 의미. 내면성에 가치를 두면서도 시장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변신시킬 수 밖에 없는 자아가 어떻게 진정성을 지닐 수 있을까?(미키 맥기) 그래서 울타리가 허물어진 각자도생의 시대는 자신의 본질적 소망과 생존자체에 대한 소망을 분리시키는 이중적 인간을 만듬. 나아가 자신의 본질적 소망을 추구하는 노력은 점점 작아지고, 생존 자체에 대한 소망을 탐닉하도록 부추김.
- 원래 자유주의는 봉건제를 타파하기 위한 시민계급의 혁명이념이었음. 하지만 시민계급이 산업자본주의의 주류계급으로 등극하면서 모순이 드러남. 경제적 자유주의(사유재산권)가 평등지향성을 가진 민주주의, 즉 정치적 자유주의(시민권)와 갈등을 빚게 된 것. 타협의 시대에는 국가가 경제적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갈등이 봉합되었지만, 울타리가 해체되면서 갈등이 다시 전면으로 떠오름. 이제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를, 경제권력에 의한 독재가 민주주의를 억누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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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콘서트2

경제 2014. 10. 24. 20:31

 


경제학 콘서트. 2

저자
팀 하포드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08-04-16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왜 부자 동네는 항상 부유하고, 가난한 동네는 항상 가난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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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슈퍼마켓 실험에서는 남자가 한명만 부족해도 모든 여성의 교섭능력이 심각하게 악화됨. 실제세계에서도 마찬가지. 수감되어 있는 남성의 수가 많은 주에서는 그렇지 않은 주에 비해 같은 연령대와 인종에 속한 여성이 결혼으로 얻는 이점이 적음. 결혼 슈퍼마켓에서는 교섭 입지가 약해진 여성들이 결혼하기 위해 남성들을 돈으로 매수해야 했음.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또 다른 방법이 존재. 바로 자신의 매력을 높이는 것. 젊은 흑인 여성들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함. 즉 수감되어 있는 남성의 수가 많을 수록 취업하거나 대학에 진학하는 여성의 수가 늘어남. 대졸자는 대졸자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음. 따라서 교육은 여러분을 똑똑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똑똑한 남편이나 부인도 얻을 수 있게 해줌
- 보수적인 여성들은 불행하다. 개방적인 여성들 때문에 성모 마리아처럼 행동하는 그들의 교섭능력이 약화되기 때문. 게다가 개방적 여성들 때문에 남성들은 결혼하고자 하는 욕구도 덜 느끼게 됨. 어떤 남성들은 바람둥이로 살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결혼하려 하지 않음. 이로인해 결혼 가능한 남성의 수는 줄고 남성의 교섭능력이 강화됨. 이 경우 여성들이 취하는 합리적인 반응은 결혼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하는 것. 이렇게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혼자서도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게 되자 남성들은 육아에 점점 관심을 갖지 않게 됨. 이것은 무임승차의 전형적 사례임.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공급이 크게 늘어나자 남성들은 굳이 멀리서 섹스상대를 찾지 않아도 섹스를 즐길 수 있고, 심지어 똘똘한 자녀까지 둘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 이런 사실은 통계적으로 확인됨. 미국에서 대졸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3대 4. 이것은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님. 선진 17개국 통계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대졸 여성의 숫자가 대졸 남성의 숫자보다 많은 나라가 15개국이나 되었음. 미국 남성들 가운데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세대는 2차대전 직후에 태어나서 60년대중반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음. 남성들의 대학졸업률은 그 뒤 하락하기 시작. 합리적 선택이론에 비추어보면 남성의 대학졸업률이 하락하던 시기가 여성이 피임약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시기와 일치하는 게 우연은 아님.
- 피임약 덕분에 여성들은 굳이 결혼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됨. 서둘러 결혼하지 않고도 섹스를 즐기며 경력을 쌓을 수 있기 때문. 그리고 똑똑한 여성들이 결혼을 미루자 더 많은 똑독한 남성들 역시 결혼을 미룸. 10년 동안 연애만 해도, 선반위의 물건처럼 혼자 남겨질 위험이 급감했음. 이처럼 결혼에 목매는 사람이 점점 줄자 결혼을 서두르는 사람도 감소. 마치 문화적 혁명 같았지만 이 모든 일은 합리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음. 피임약의 또 다른 효과로 고용주의 기대가 바뀐 것을 들 수 있음. 이제 고용주들은 여성이 임신 때문에 경력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품게 됨. 그리하여 여성들은 직장에서 점점 더 남성들과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됨. 이것은 단순히 고용주의 차별적인 시선이 사라졌다는 의미 이상. 즉 고용주들 역시 변화한 세계에 합리적으로 반응한 것임.
- 50년대 분업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불행한 결혼일지라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여성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음.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 그 후 취업한 여성의 수가 늘고, 세탁기와 다리미의 도움으로 가사를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되자 여성들은 불행한 결혼의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 이혼은 여전히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힘들게 했지만 더 이상 경제적 자살 행위는 아니었음. 그리고 피임약의 개발과 더불어 여성들의 교육수준과 직업의식은 높아졌고, 고용주들은 여성에게 더 우호적으로 바뀜
- 사무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동일하다. 회사를 완벽하게 경영하기 위해서는 누가 재능이 있고, 누가 정직하고, 누가 열심히 일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갖고 그에 따라 임금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보는 찾아내기도 어렵고, 설사 찾아냈다고 해도 그에 맞춰서 행동하기 어려움. 따라서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하는 수준만큼 임금을 준다는 건 쉽지 않음. 그런데 회사생활의 수많은 부조리들은 필연적으로 그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됨.
- 열심히 일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근로자들은 동료들보다 열심히 일하면 임금 인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 그러나 운이 큰 역할을 한다면(컨설팅 분야처럼) 승자와 패자의 보수차이가 커야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할 것임. 따라서 성공이 주로 운에 좌우된다면 토너먼트 방식이 도입되었을 때 근로자들은 태만하게 근무하면서 더 큰 보너스만을 요구할 것임. 이처럼 토너먼트 이론은 직장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현상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주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님. 토너먼트 방식이 도입되면 높은 직급일수록 불합리할 적도로 많은 임금을 받게 됨. 최하위 직급에서는 승진이 더 연봉이 높은 상위직으로의 승진가능성을 열어주므로 이 직급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굳이 임금인상을 많이 해줄 필요가 없는지도 모름. 그런데 이렇게 상위직으로 승진을 하면 할수록 미래의 승진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승진만으로는 근로자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없음. 이 경우 거액의 연봉만이 그들의 근로의욕을 자극할 것임.
- 차별은 두가지 방식으로 소수에게 타격을 가함. 하나는 직접적 방식으로 소수에게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간접적 방식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높은 목표를 세우는 데 필요한 인센티브를 점차 줄이는 것임. 간접적 효과는 점증적 피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볼 때 더욱 심각할 수 있음.
- 통신기술은 직접적 회의가 더 늘어나도록 만들었음. 정보통신 기술 덕분에 한때 도시에서만 가능했던 업무가 시골에서도 가능해진 것은 사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공급업자들이 전 세계에 자신들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됨. 뉴욕의 광고업자든, 런던의 금융가든, 밀라노의 디자이너든, 인도 방갈로르의 소프트 엔지니어든 말이다. 정보통신기술은 도시의 다양성이 우정과 사업의 원천임을 드러내고, 도시를 더욱 관리가능한 곳으로 만들어주며, 도시간의 여행을 장려. 서비스 분야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한편 도시가 점점 더 양질의 서비스를 다양하게 제공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다음과 같은 합리적 결론이 불가피함. 바로 도시가 새로운 황금시대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
- 신규진입이 어려운 산업들, 즉 경제학 용어를 빌어 말하면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의 경우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운동을 벌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 합리적 반응임. 그러나 아무리 진입장벽이 높다해도 과련 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다면 신생업체들의 진입을 막지 못함. 월마트 같은 기존의 대형 소매업체들이 로비에 성공하여 정부보조금을 타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봤자 월마트에게는 별로 이득이 되지 않을 것임. 새로운 경쟁업체들이 진입장벽을 뚫고 들어와 보조금을 타내는 동시에 시장에서도 안착할 것이기 때문. 반대로 여러분이 진입장벽이 높고 전망은 어두운 자동차나 강철 산업에 종사한다면 로비를 벌여 보조금을 타내는 것이 합리적임. 이 경우 보조금을 받으려고 엄청난 돈을 들여 대규모 공장을 짓고 사양산업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 일단 공장이 완공되면 관세나 보조금으로 수익성은 맞출 수 있을지 모름. 그러나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 들인 투자금을 건질만큼 충분한 수익은 내기 어려울 것임. 이는 정치적으로도 타당함. 진입장벽은 밀접하게 얽혀 있는 소규모 집단을 보호하고 그 혜택들이 신생 경영자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해주기 때문. 농업도 마찬가지. 즉 농지를 개간한 사람에게 보조금을 줄 경우 이미 대부분의 땅이 개간된 상태이므로 외지인이 보조금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 때문에 농업도 로비스트들에게는 또 다른 매력적인 목표가 됨. 농업보조금은 토지의 가치를 끌어 올릴 것이고, 농업 관련 기업 토지를 그대로 보유한 채 보조금을 받거나 프리미엄을 받고 토지를 매각함으로써 이익을 올릴 수 있음. 농업의 경우 로비로 경제적 이점을 얻을 수 있으므로 부유한 국가들이 농업활동을 보조하는 건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일. 흥미롭게도 미국의 농업관련 기업들은 선거때마다 약 5000만달러를 기부하는 반면, 부동산 중개인들은 한푼도 기부하지 않음.
- 산업혁명 당시 영국 근로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음. 이는 다시 말해 그들이 수입산 면을 대량으로 소비할 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절약해주는 장비가 경제적 혜택을 창출해줄 것임을 의미. 영국에서는 다축 방적기의 가격이 근로자 5개월치 임금에 못미침. 반면 프랑스에서는 다축 방적기 가격이 근로자 1년치 임금을 웃돔. 방적기계가 유럽대륙에 확산되는 속도가 늦었던 것은 뛰어난 과학적 독창성이나 영국의 상업적 통찰력이 아니라 값싼 프랑스의 노동력 때문이었음. 증기엔진은 더욱 직설적 사례임. 산업혁명 때 일반적으로 쓰인 증기엔진은 실제로 과학적 발전의 결과물이었음. 갈릴레오는 대기에도 무게가 있기 때문에 압력을 가할 수 있따는 사실을 발견. 그러나 증기엔진의 실질적 발명은 갈릴레오의 조국 이탈리아가 아니라 영국에서 이루어짐. 그 이유는 방적기와 마찬가지로 천재나 기업가 문화 때문이 아니라 영국의 인건비가 비쌌고, 연료는 놀랄만큼 저렴하다는 사실 때문이었음.
- 식민주의의 상이한 유산 때문에 국가의 부를 결정하는 건 지리가 아니라 역사임.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호주처럼 초기 식민지 이주자들이 만든 나라는 개인의 재산을 존중하고 법을 준수하기 위해 설계한 훌륭한 정치적 제도를 갖추고 독립에 성공. 반면 플랜테이션 국가들은 단기적 소득을 한푼도 빠짐없이 빨아들여 권력자들에게 보내기 위해 설계된 정치적 시스템으로부터 독립. 정치와 경제 시스템은 당장 바꾸기 어려둠. 그 때문에 이러한 과거 식민지들의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은 그들이 독립당시에 갖고 있던 시스템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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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쇼크

경제 2014. 10. 24. 20:30

 


푸드쇼크

저자
로버트 앨브리턴 지음
출판사
SEEDPAPER | 2012-03-2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모두가 배부른 자본주의는 없다! 무심코 먹는 음식 뒤에 숨겨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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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방적의 경우 겨우 몇 년 사이에 놀라운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짐. 공장방적은 수제방적보다 생산성이 300배 이상 높음. 그러나 농업분야의 생산성 향상은 어렵게 얻어진 것임. 성장호르몬과 항생제를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소의 성장을 촉진하고, 초대형 사육장에서 옥수수 사료를 먹여 키우는 일은 동물과 인간, 환경이 건강할 수 있는 한계와 즉각 충돌함. 비슷한 맥락으로 기계 채취를 견딜만큼 단단하면서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토마토를 조작하는 일은 맛과 영양적 가치의 경계에 맞부딪힘
- 자본은 노동계층을 세분화하고, 해체하고, 사기를 꺾음으로써 노동력을 재상품화하려는 싸움을 늘 해왔던 반면, 노동자들은 한정적으로나마 노동력의 비상품화를 달성하기 위해 항상 싸워왔음.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다른 상품 투입물과 다를 바 없이 노동력이 고분고분하고 수동적일 때, 일방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가 가장 쉬움. 자본주의적 농업은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 상품화에 늘 곤란을 겪어 왔는데, 그 이유는 농사에 필요한 계절적 조건과 수확작업이 요구하는 고된 작업같은 특징 때문. 이는 오랫동안 가족농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었던 큰 이유임.
- 자본축적으로 농업생산은 점점 더 자본주의화 되었고, 경우에 따라 작물생산량이 두세배 오르기도 했음. 하지만 이는 많은 전문가가 현행 농업 및 식량체제를 지속불가능한 관행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엄청난 사회비용을 담보로 얻어진 성과였음.
- 수요측면에서 보면 컨슈머리즘의 중요 핵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원하게 하는 것. 의류산업에서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을 위해 트렌드를 규정하는 패션업계가 그러함. 어떤 의미에서 패션은 먹거리와 행보가 비슷. 매년 더 많은 가공을 거친 수많은 신제품이 소개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마케팅과 광고는 어린이를 겨냥. 아이들은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고, 새롭게 매혹적인 방식으로 결합한 설탕과 기름, 소금의 맛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
- 비교적 저렴한 차에서 고급차를 아우르는 범위가 거의 매년 이루어지는 모델교체와 연계하면서 자동차는 현대사회에서 지위를 나타내는 주요 상징 중 하나가 되었고, 따라서 정체감 형성에 도움을 주는 중요수단이 됨. 자동차가 인기를 끌게 된 주요원인은 석유에너지를 소유주가 원하는 대로 배치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 운전자들은 이제 어떤 지점과 지점 사이를 그 어느때보다 빨리 도달할 수 있게 됨. 바로 그들의 발 밑에 가속의 힘이 있음. 자동차는 공간을 가로질러 가는데 필요한 양의 시간을 압축하는, 시간의 완전한 공간정복으로 보임. 그와 같은 행동의 자유와 권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이 되면서, 자동차는 필수품일 뿐만 아니라 커다란 쾌락의 근원이 되었음.
- 복지국가는 대부분 전쟁국가의 모습이었음. 일부 복지는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갔지만, 대체적인 복지(납세자의 돈)은 보조금의 형태로 군산복합체, 대기업, 부농에게 간것이 사실. 대기업이 받는 혜택으로는 보조금, 세금우대, 조건부 국외원조, 국외시장을 개방하는 무역협정, 무역보호, 그리고 정부와의 계약에서 실비정산이 보증된 이익 등이 있음.
- 당분은 많이 섭취할수록 더 많이 원함. 당분에 절은 식품이 자본에는 돈벌이가 되고 인간에게는 위험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욕구, 과도할 지경까지 이른 당분에 대한 욕구 때문. 그 결과 더 많은 가공식품의 단맛이 강해질수록 소비자들은 그 식품을 더 찾게 되고, 더 뚱뚱해져감. 최근 미국 공중위생국장은 곧 비만이 담배처럼 많은 이들을 죽게 할 것이라고 경고.
- 전세계 인구중 절반은 땅을 생계수단으로 삼아 피땀흘려 열심히 일하는데도, 세계 식량체제는 그런 사람들 대부분을 가난에 찌든 상태로 머물게 함. 아이러니하게도 개도국의 식량생산자는 양질의 식단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살 형편이 못됨.
-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캐나다, 멕시코 및 미국의 비준을 받게 되면서 보조금으로 무장한 미국산 옥수수가 보조금 혜택이 없는 멕시코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미국으로부터의 옥수수 수입량은 단기간에 세배나 뜀. 그 결과 단 10년만에 미국이 자국 생산 옥수수의 25%를 멕시코에 공급하게 되면서 170만명에 달하는 멕시코 농부는 농사를 포기. 이 농부 중 다수가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감. 북미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된 이래 멕시코 시골지역 인구 80%가 빈곤층으로 살고 있음. 이전에는 거의 식량자급상태였던 멕시코고 지금은 40%에 해당하는 식량 대부분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음.
- 커피의 탄생지로 여겨지는 에티오피아는 커피가 수출 총수입의 67%를 차지할 정도로 커피 의존성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임. 그토록 극심한 기근에 직면한 나라가 경작지로 가장 좋은 땅을 수출용 커피 재배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불합리하긴하지만 현 국제 채무체제가 긴급하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임. 에티오피아 커피농이 라테 원가중 1%에 해당하는 액수 이상만 받는다면, 원두를 골라내는 노동자가 일당 96센트보다 많이 받는다면, 혹은 부대를 트럭에 싣는 노동자들이 일당 2달러보다 많이 받을 수만 있다면 에티오피아가 이렇게 가난하지는 않을 것임
- 문제의 본질은 개도국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열대작물 덕분에 막대한 이익을 보는 쪽은 음식사슬에서 소비를 좌우하는 초국가 기업이고, 음식사슬의 생산 쪽은 턱없이 적은 돈을 받는다는 사실. 1989~1991년에 커피 생두가격이 50%하락했을 때에도 최종소비자 가격은 1%만 하락했고, 당연히 그 차액을 챙긴 것은 기업들이었음.
- 각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것과 내적인 욕망은 소비자 주권에 의해 극대화됨.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적인 욕구는 자본주의의 추진력을 통해 정당화됨. 이러한 생각은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미숙한 소유적 개인주의를 극도로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과정을 전체적으로 왜곡한다는 점. 이것은 자본주의를 실제모습보다 훨씬 민주주의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허구임.
- 패션과 신분에 관련된 기타 상품의 경우, 특정 상품의 소유와 연관이 있는 사회적 신분 역시 사회와 관계되면서 구성됨. 설탕이나 담배 같은 상품들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고, 이는 욕망을 형성. 소비자들은 특정 상품이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유혹을 받음. 하지만 결국 소비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의 사회 및 환경비용 전부에 관해 권리를 행사할 자원이 있거나 그에 대한 정보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경우는 드뭄. 면 티셔츠를 사는 사람도 그 면의 원산지가 노동자들이 농약중독에 시달리는 니카라과라는 사실을 모를 수 있음. 초콜릿 바를 살때도 그 초콜릿이 아동노예를 고용하는 아이보리코스트의 한 농장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모를 수 있음. 지금 당신이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먹고 있는 햄버거가 한때 우림이었던 변변찮은 초원에서 기른 송아지로 만든 것임을 알아내기란 매우 어려움.
- 가능한 한 많은 책임을 개인 소비자에게 돌리는 것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임. 극도의 개인주의는 책임의 부담감을 개인소비자에게 돌릴 수 있는, 자본이 선호하는 방식 중 하나임. 소비자 주권이라는 통념은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기존의 컨슈머리즘이라는 유해문화, 인류 및 환경의 건강을 저해하는 소비선택을 하게끔 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내모는 전 지구적인 끔찍한 불평등을 살펴보면, 깨우친 개인들만 소비패턴을 바꾸면 지구 온난화가 현저하게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은 현명하지 않음. 왜냐하면 훨씬 효과적인 변화전략은 기업과 시장이 좀더 민주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게 만드는 길을 찾는 것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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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저자
자크 아탈리 지음
출판사
청림출판사 | 2012-04-0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가 밝혀낸 세계 권력의 향방 누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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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이 잘 돌아가려면 국경이 무너지고 규범이 마련되어야 함. 세계주의의 이상향을 꿈꾸는 자들과 해외시장에서 재화가 자유롭게 이동하기를 원하는 기업들의 뜻이 맞아떨어지게 됨.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은 치열한 세력 넓히기 전쟁에 들어갔고 승자는 늘 그렇듯이 경제적 세계정부의 중심에 가장 먼저 견고히 자리잡은 자였음.
- 미국은 기존의 국제기구에 의존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재정적, 제도적, 지적 수단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국제 금융위기의 해결을 사법적 권한이 있는 국제통화기금의 통화위원회에 맡기지 않고 새로운 비공식 조직인 G20에 맡겼음. G20에는 기존의 G8회원국을 비롯해 중국이 참여.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G2를 형성함. 피츠버그, 런던, 워싱턴, 서울, 그리고 파리에서 회의를 가진 G20은 전시효과만 노린 정상들의 빈 수레만 요란한 모임임. 그들이 가진 힘이라고는 최강자의 결정을 공고히 하고 최강자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뿐임. 금융의 절대강자 미국은 금융체계 쇄신을 거부했고, 중국은 국제수지 흑자를 줄이기를 꺼리고 있음. 유럽은 재정부채를 관리하라는 소리에 투덜거리기만 함. 빈곤이나 기아, 인권, 민주주의, 환경, 범죄적 경제활동 등 전 지구적 문제가 된 중요한 사안들을 두고 눈감고 아웅하는 식임.
- 인쇄술로 기존 권력이 강화되리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인터넷은 강자의 가치를 해체시키고 제국의 통일을 무너뜨리며, 세계를 규격화된 시장으로 통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합된 민주주의 사회로 만들고 있음. 음악은 가장 대표적 사례. 인터넷이 음악의 서구화된 이용 및 유통방식을 강요하고 있지만, 동시에 무수한 스타일과 음악을 하는 다양한 방식을 출현시키고 공유하도록 만들었음. 혼합과 공감, 타문화 발견을 돕고,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질적 문화를 교배해서 뜻하지 않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게 만들었음.
- 브라질은 혼합된 서구화의 전형임. 서양의 문물과 가치를 빠른 속도로 받아들인 브라질은 빈곤, 종교의 강한 지배력, 폭력의 난무에도 불구하고 날로 다양해지는 상품과 아이디어, 음악, 페스티벌, 연대감을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음. 반대로 베트남,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는 서구화된 생활방식을 수용하면서도 낯선 것의 존재와 그로 인해 나타날 혼합을 거부함. 이렇듯 세계는 여전히 큰 다양성을 보임. 사람, 언어, 사상, 문화, 기술의 혼합은 그러한 다양성을 더욱 증가시킬 것임.
- 아이폰은 메이드인 차이나가 아니라 메이드인 월드 상품임. 영국 시푸드 그룹의 바다가재는 스코틀랜드에서 잡혀서 태국에서 껍질이 벗겨지고 유럽에서 팔려나감. 진 브랜드 텍스의 청바지 소재 면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재배되고 방직은 인도에서 이루어짐. 청바지 자체는 방글라데시에서 제작되고 싱가포르에서 선적되어 프랑스로 향함. 자동차 장비 생산업체 발레오는 일본 자동차 업체를 위한 전조등 디자인은 프랑스에, 설계는 중국에, 시제품은 미국에 맡겼으며, 세계 곳곳에 있는 공장에서 양산에 들어감
-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은 당시로는 가장 대규모의 통신망을 제어할 수단을 갖추어야 함. 그 수단이 군대든 돈이든 말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미국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최대 강대국의 자리를 지킬 것임. 미국의 군대는 300만명의 병력, 최첨단 무기, 비행기, 전함, 전차,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정보망을 보유한 최강의 힘을 자랑할 것임.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것도 미국, 유능한 인재, 전통파괴론자, 비정통주의자, 주변인, 반항인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미국일 것임. 미국은 여전히 기술혁신, 대학교육과 연구, 예술창작, 미디어의 중심지일 것임. 점점 더 조밀해지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중심자리도 놓지 않을 것임.
- 미국은 카이사르가 죽고 난 뒤에도 500년 이상 명맥을 유지했던 서로마제국처럼 생존할 것임. 서로마제국 몰락 이후 1000년을 생존한 동로마제국처럼, 또 그후 300년 이상 유지되었던 독일제국처럼 살아남을 것임. 어쩌면 미국은 신기술로 새로운 성장의 길로 접어들수도 있음. 그리고 보스턴, 뉴욕, 로스엔젤레스에 이어 네번째로 세계의 중심을 갖게 될 것임. 세계의 열번째 중심을. 방위 분야에서도 미사일 방어체제를 수립하고 대게릴라전을 홍보하며 헤게모니를 유지할 것임.
- 그러나 무엇도 미국의 쇠퇴를 막지는 못할 것. 적어도 미국은 장기적으로 쇠퇴할 것임. 우선 상대적 가치에서 퇴보할 것임. 그것은 다른 나라들이 더 빨리 성장하기 때문.
- 세계는 점점 더 세계화되는 반면 민주주의는 이미 존재하는 곳이든 앞으로 존재하는 곳이든 국지적인 현상으로 머물것임. 국가의 권력은 점점 더 하찮아지고 그것은 최강대국들도 예외가 아님.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업의 자본, 경영, 전략이 점점 더 국가적 기반과는 멀어짐. 기업은 법적 제한을 가장 덜 받는 곳, 세금이 가장 낮은 곳으로 본사를 계속 옮길 것임. 간부들과 연구자들은 늘 경쟁하는 환경속에서 근무하게 될 것임. 노동과 자본의 이동성이 높아지면서 기업은 모두 규칙을 벗어나고 세금을 아예 내지 않는 곳을 생산기지로 선택할 것임. 기술발전은 현실 또는 가상의 노마디즘을 가속화할 것임.
- 장기적으로 강대국들은 인류전체를 위협하는 위험을 제거하는 것보다 자국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경쟁국들을 제압하는 데만 관심을 보일 것. 미국과 중국은 세계에 대한 약간의 영향력을 나누어가질 것이고 각자 이기적으로 들고 있는 패를 이용할 것임. 유럽은 미국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형성하는 G2권력의 강화, 뒤이어 나타날 세계 분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임. 그런 상황이 되면 각국에 일어나는 일이 인류전체에게도 일어나게 됨. 약육강식의 분위기 속에서 가장 힘이 센 자들은 섬이나 벙커 같은 고립된 장소로 도피할 것. 나머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보험회사임. 보험회사는 국민들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을 대신할 것임. 보험도 무용지물이고 도망갈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에 남는 것은 다양한 형식의 유흥임. 보험과 오락에 종사하는 기업은 세계시장의 주인이 될 것.
- 베스트팔렌 강화조약이 16세기와 17세기 종교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교회와 국가를 분리했듯이, 국가와 민족의 분리는 20세기와 21세기 전쟁에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종교와 분리된 국가가 다양한 종교생활을 가능하게 했듯이, 세계주의 국가는 다양한 국가적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줄 것임. 17세기 중반 종교와 분리된 국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음. 그것은 세계종말과도 같았기 때문. 그것은 지금 우리가 민족이 없는 세계국가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울리히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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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머니

경제 2014. 10. 24. 20:28

 


익스트림 머니

저자
사트야지트 다스 지음
출판사
알키 | 2012-06-14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돈을 창조한 인간, 이제 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세계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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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돈을 찍고 돈을 논란의 여지가 없는 주인으로 만들 수 있음. 케인스는 그럴 때 생기는 위험을 인정하면서 "지속적인 인플레 과정에 의해 정부는 비밀리에 아무도 모르게 시민들의 재산에 중요한 일부를 착취할 수 있다" 라고 경고
- 금본위 제도하에서 자유로운 은행시스템은 경제의 안정성과 균형잡힌 성장의 보호요소로서 작용을 했다. ... 금본위 제도의 포기로 인해 복지국가들은 은행 시스템을 무한한 신용팽창 수단으로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금본위 제도가 사라지자 인플레로 인한 약탈로부터 저축한 것을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사라졌다. (그린스펀)
- 경제학에서 돈에 대한 연구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진실을 숨기거나 진실을 피하기 위해 복잡함이 동원되어야 하는 분야다. 은행들이 돈을 창조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단순해 혐오감마저 든다. (갤브레이스)
- 상품통화에서 명목통화와 신용통화로 변화하는 단계마다 돈은 더욱 비현실적으로 변했고, 그만큼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실제 재화와 용역으로부터 멀어져갔음. 돈은 거래를 위한 메커니즘에 불과했지만 점점 그 자체가 추구대상으로 변신했다 현대의 기술(디지털 돈)은 돈의 물질성을 더욱 제거했다. 돈은 내재가치 없으 순수한 정보형태로서만 존재할 뿐임. 돈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의미. 돈을 벌고, 빌려주고, 빌리고,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 인류의 존재와 활동에 핵심이 되었음.
- 러시아 출신 미국작가 요세프 브로드스키는 근대의 삶을 다음과 같이 설명. 당신은 당신의 일, 당신의 배우자, 당신의 연인, 당신의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 당신의 방안에 있는 가구나 벽지, 당신의 생각, 당신 자신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그로부터 탈출할 방법을 고안하려 할 것임. 당신은 자기만족감을 주는 도구들은 빼고 일자리, 거주지, 회사, 국가, 기후를 바꾸는 일에 착수하고, 난잡한 성생활, 음주, 여행, 요리수업, 마약, 심리분석 등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잠시나마 이런 것들을 즐기면서 싫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름. 아마 당신이 아침에 깨어나 여행사와 정신과 의사로부터 날아온 산더미 같은 청구서 더미를 보기전까지는 이런 짓을 계속할 것이다.
- 잭 웰치는 점점 영향력이 커져가는 언론의 힘을 파악하고 이를 이용했음. 그는 분석가와 투자자들에게 보이는 회사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경영 내러티브, 즉 멋진 이야기와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내놓는데 달인이었음. 웰치는 중요한 아이디어를 전달할 때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언어가 갖는 가치를 알고 있었음. 그는 당신이 제시하는 모든 생각은 낯선 사람들과 여는 칵테일 파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음. 그는 의도적으로 세련된 말투나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해 보이는 태도를 피했음.
- 기업 경영진과 이사들은 투자자들로부터 신속히 가시적 결과를 내라는 압력을 받자 금융화에 의존하게 됨. 드러커는 이런 변화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 거래가 일을 이긴다. 거래는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일은 구질구질하다. 무언가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주로 엄청난 양의 구질구질한 세부적인 일들을 해야 한다. 반면에 거래는 낭만적이고 섹시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즉각적인 만족감을 찾는 문화가 팽배해지면서 자제와 소비억제 문화는 뒤로 밀려나고 말았음. 새로운 경제속에서는 세종류의 사람만이 존재. 가진자, 못가진다, 그리고 가진것에 대해 돈을 내지 못한 자들이다.
- 은행들은 마크 트웨인의 신랄한 유머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인간에게는 일생동안 투기를 하지 말아야 할 때가 두번 있다. 첫번째는 경제적으로 그럴 능력이 없을 때고, 두번째는 그럴 능력이 있을 때다"
- 건전한 은행가는 위험을 예견하고 그것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파멸을 맞았을 때 자신을 정말로 비난할 수 없도록 동료들과 함께 지극히 평범한 방법으로 함께 파멸하는 사람이다. (케인즈)
- 금융기관은 혁신을 모색하지 않는다. 현재 거듭 혁신이라고 불리고 칭송되는 것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기존 디자인을 약간 변형한 것뿐이다. 금융세계는 바퀴의 발명을 약간 더 불안정한 형식으로 반복해 칭송하는 식이다.(갤브레이스)
- 로렌스 서머스는 금융이론을 케첩 경제학이라 불렀음. 그는 케첩 시장을 분석할 때 일반 경제학자들은 케첩 가격을 결정하는 토마토, 대체재, 노동비용, 소비자의 소득 등 수요와 공급요인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케첩 경제학자들은 2쿼트 병의 케첩 가격이 1쿼트 병 케첩 가격이 2배일 경우 케첩시장은 효율적이라는 식으로 기계적 논리를 전개한다며 케첩 경제학자들로 지칭되는 재무학자들의 연구방법론을 신랄하게 비판. MIT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듀런드는 새로운 금융은 육지와 사실상 모든 접촉을 끊고, 진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수학적 기량을 과시하는 데 더 관심이 있고, 종종 수학적 게임에 빠진다며 비난했음.
- 소설 바빌론의 복권에서 저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어떤 결정도 최종적이지 않고 모두 다른 결정들로 파생되어 나가는 무한한 세분화로부터 생기는, 무한한 조합들이 생기는 세상에 대해 묘사. 파생상품은 이제 위험입자들로 쪼개진후 파생상품들을 사용해 마음대로 재구성되었음. 복잡한 파생상품들이 위험을 크게 나누가 곱할수록 파생금융은 점점 더 복잡해졌음.
- 많은 금융혁신들은 위험이나 레버리지를 숨기고,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투명성을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음. 투자상품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어렵도록 복잡함이 동원되었고, 트레이더들이 과도한 이윤을 챙기도록 상품가격이 비효율적으로 설정되었음. 워런 버핏은 한때 파생상품 계약은 인간의 상상 혹은 가끔은 미치광이들의 상상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는 것 같다고 꼬집었음.
-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이ㅡ 정체를 숨기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는 나머지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을 속이게 된다. (17세기 프랑스 작가 드 라 로슈푸코)
-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정한 문제는 세계가 실제보다 조금 더 수학적이고 규칙적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세상의 정밀성은 분명히 드러나지만 비정밀성은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세상의 야생성은 숨어서 기다리는 중이다. (영국작가 체스터턴)
- 80년대 중반까지 세계에 존재했던 돈은 주로 중앙은행들이 찍어낸 돈과 은행대출로 이루어져 있었음. 06년에 이런 전통적 돈이 전체 가용가능한 유동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그침 (중앙은행이 창조한 돈 2%, 은행대출 19%). 나머지는 증권화된 부채(38%)와 파생상품(48%)가 차지.
- 인간은 본래 이 세상에서 질서와 위계를 보기 갈망하고, 그것들을 찾지 못하면 직접 창조할 것이다. (만델브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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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조계급

경제 2014. 10. 23. 21:38

 


신창조 계급(Creative Class)

저자
리처드 플로리다 지음
출판사
전자신문사 | 2011-12-1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애플, 구글, 삼성은 왜 그토록 창조형 인재를 원하는가?"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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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적인 사람들은 단지 일자리가 있다해서 그 곳에 모여들지 않음. 그들은 창조성의 중심지역에 그리고 자신들이 살고 싶은 곳에 모임. 고대 아테네와 로마, 메디치가문 시대의 피렌체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런던, 그리니치발리지와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에 이르기까지, 창조성은 항상 특정지역에 몰림. 도시계획 전문가 제인 제이콥스가 지적했듯이 성공한 지역은 다차원적이고 다양함. 그 지역은 한가지 산업이나 하나의 인구집단에 영합하지 않음. 그곳은 자극과 창조적 상호작용으로 충만함
- 떠오르는 창조시대에 가장 위태로운 문제는 창조성과 조직간의 지속적 긴장임. 창조적 과정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따라서 조직의 형태는 필요함. 그러나 조직의 요소는 창조성을 억제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를 흔히 볼 수 잇음. 20세기 초반과 중반, 즉 조직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시기의 생활을 규정하는 특징은 매우 전문화된 대규모 관료조직의 지배였음
- 완전히 몰입을 해야하는 창조적 일의 속성 때문에 과거의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친밀한 유대를 맺지 않은 사람들이었음. 그들은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었지만 친한 친구는 거의 없었고, 배우자나 아이들이 없는 경우가 많았음. 정신과 의사 안토니스토는 "만일 근본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몰입하는 집중적 시기가 필요하다면 가족을 거느린 사람은 불리하다"라고 말함
- 기술창조성이 부상했다가도 사회와 경제제도가 엄격해지고 창조성이 억압될 때 극적으로 퇴보하는 경향이 여러시대 문화에서 나타남. 대표적인 경우가 이슬람 세계오 중국 중세 후반기임. 기술발전은 꺾이기 쉬운 약한 식물과 같음. 잘 자라려면 적절한 환경과 기후가 뒷바딤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생명력 자체가 짧은 경우가 대부분임. 그것은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 매우 민감하며 쉽게 성장이 멈출수 있음.
- 미국의 창조경제는 엄청난 인프라에 의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얻고 널리 퍼짐. 폴 로머는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에 대한 아이디어다'라고 주장. 즉 다른 아이디어의 생산과 전달을 더울 방법에 관한 아이디어임. 창조경제는 이를 위해 등장한 새로운 제도들에 의해 뒷받침되어 있음. 이 제도들은 다 함께 창조적 사회도구를 구성.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구성됨. 첫째 기술창조성과 기업가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 둘째,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한 새롭고 능률적인 방법, 셋째, 모든 종류의 창조성에 이바지하는 광범위한 사회적, 문화적, 지리적 환경
- 공장에서 평사원이 단지 지시와 정해진 일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일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요구받는다. 만일 그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심지어 젊은 사람들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해도 될 것임. 단 이는 공장이 창조시대의 새로운 가치관과 구조를 포용해야 함을, 즉 사람드르이 내적 동기에 따라 운영되고 그들의 창조성을 양성하고 표현하도록 허락해야 한다는 거을 전제로 함. 다시 말해 공장이 미용실과 더욱 흡사해져야 한다는 것임
- 어떤 조직에서건 일이 잘 진행되려면 지식들이 동등하 입장에서 상호작용해야 함. 전통적인 위계체계와 승진경로가 회사간, 혹은 수평적 노동시장에서의 측면이동을 말하는 수평적 분업으로 대체된 것은 이 때문. 방종(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이나 기업압제의 샤로운 전술(자유주의자들의 입장)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 경제세력들의 합리적 진화의 결과임이 드러남
-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남자들은 야구장에 갈 때 정장에 타이를 맸고, 여자들은 소풍 갈 때에 멋들어진 모자를 썼음. 여러가지 이유들로 이러한 규범이 사라져가면서 정장은 사무실 외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는 직업세계의 유니폼으로 변화. 90년대에 이르자 사람들은 교회나 심지어 결혼식이나 초상집에도 가벼운 옷을 입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대부분의 기간에 정장은 직장에서 입기에 적합한 제복으로 여겨짐. 대부분의 업무가 군대의 계급구조와 비슷한 방식을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음. 사람들은 그 부대에 들어가기 위해 제복을 입음. 직위가 올라감에 따라 그 회사의 장교인 그들은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보다 멋지고 화려한 제복을 입음. 간편한 옷차림은 부분적으로는 더 편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해 점차 확산됨. 그러나 그것은 또한 오늘날 경제에서 창조적 업무의 가치가 보다 높게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음. 더 이상 지위는 그저 장교라거나, 훌륭한 병사라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음. 그것은 창조적 엘리트의 일원이 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었음. 그리고 창조적인 사람들은 제복을 입지 않음. 그들은 화가들처럼 그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옷을 입음
- 우리의 아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더욱 많이 가지게 될 것임. 단 한가지를 제외하고, 아이들은 하루에 더 많은 시간을 누리지는 못할 것임. 수입과 급료가 올라감에 따라 시간에 대한 비용도 계속 증가할 것임. 그래서 시간이 부족하고 인생이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는 느낌도 커질 것임
-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창조성은 종합행위이며 창조하고 종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극, 즉 새롭고 생소한 방식으로 종합할 다양한 것고, 분석해서 초월해야 할 현존하는 틀을 필요로 한다. 또한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것과 선택의 기회를 극대화하기를 원하는 것이 창조적 사고방식의 본질임
- 창조계급이 선호하는 많은 야외오락들은 모험지향적. 암벽타기, 등산, 그와 유사한 많은 운동의 본질은 당신이 일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어떤 다른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를 탐험하고 경험하면서 종종 자체적으로 도전적인 일을 이행하는 것임.즉 그 아이디어는 모험을 하는 것. 아규 같은 경기운동은 근본적으로 다름. 야구 또한 직접 경기를 하건, 구경을 하건 다른 세계를 제공함. 그러나 이 경우의 다른 세계는 매우 조직화된 세계임. 4개의 베이스가 27미터 단위로 떨어져 있고, 스트라이크 3개를 범하면 아웃 당함. 암벽타기는 그 나름의 규칙과 한계를 지님. 가령 당신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음. 어떤 암벽을 올라가더라도 기본적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많음. 그것은 프리에이전트의 일과 흡사. 경기운동은 경쟁적임. 그것은 당신을 상대팀과 적대시하게 함. 모험운동은 당신을 일, 자연, 당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와 적대하게 함
- 경험의 상업화는 경험의 독창적인 창조적 내용을 파괴할 수 있음. 바나나리퍼블릭에서 프라다에 이르는 소매업자들은 의류로 경헙의 창조적 내용을 파괴함. 그들은 경험을 중심으로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창조하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경험을 브랜드화해 당신에게 판매함. 아마 단지 그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멋져 보이고 유행에 뒤져보이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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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경제학

경제 2014. 10. 23. 21:37

 


선악의 경제학

저자
토마스 세들라체크 지음
출판사
북하이브 | 2012-07-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유럽을 이끄는 새로운 리더로 주목받는 젊은 경제학자의 도발적 질...
가격비교

- 인간의 마음은 이야기라는 형태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짐. 결국 인간의 동기는 대개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즉 동기의 뼈대를 이루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살아내는 과정에서 나옴. 그러한 이야기가 없다면 삶은 그저 지긋지긋한 일의 연속일 뿐임. 국가와 기업 혹은 조직의 경우도 마찬가지임. 훌륭한 지도자는 가장 뛰어난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임
- 상식적인 개인이 원하는 주된 사항은 그가 가진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더 많고 더 나은 욕구이다. (조지 스티글러)
- 유대인들의 경제습관은 다양한 방면에서 근대경제학의 발전을 앞지름. 이미 중세의 암흑기부터 유대인들은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나가는 경제수단을 일상적으로 사용했으며, 이런 수단들은 훗날 현대경제의 핵심요소가 됨. 그들은 돈놀이를 하고 다양한 자산을 거래. 특히 자본시장의 지분거래에 관여하고 환전을 담당했으며, 종종 금융거래의 중개인 역할을 함. 그들은 은행의 역할을 했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재산양도에 관여. 고대와 중세와는 대조적으로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적, 법적 측면에서 특정형태의 활동이 천부적으로 또한 필연적으로 존재함.
-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천상의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됨. 누구도 재산을 모으려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음. 금욕주의를 주장하거나 가난이 죄를 씻어주고 영적으로 이롭다고 외치지도 않음. 따라서 유대교를 창시한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모두 부자였다는 사실은 유대교와 부합함
- 히브리인들이 진보사항 외에 인류문화에 근본적으로 기여한 또 다른 부분은 영웅과 자연, 지배자에 대한 비신격화임. 유대사상은 인류문화에 영향을 끼친 그 어떤 사상보다도 현세를 기반으로 하는 가장 현실적인 사상임. 유대인들은 추상적 세계는 알지 못했음. 유대교는 지금까지도 하느님과 사람, 동물을 상징이나 그림, 동상으로 묘사하는 행위조차 금지함. 유대인들에게는 현실을 표현하는 상징이나, 현실을 상징하는 표현을 만드는 행위가 허용되지 않았음.
- 플라톤식의 일반적 역사해석에 따르면 이 세상은 이데아의 구름속에 존재하는 더 나은 세상의 그림자일 뿐.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세상이 단지 그림자가 아니라 실재라고 생각. 히브리인들은 후대의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영혼이 육체에 맞서 싸운다거나 육체가 영혼의 감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 그와 반대로 육체와 물질세계, 그러므로 경제적 세계도 선한 하느님의 창조물이라고 믿음. 유대인들에게 땅과 세상, 육체와 물질적 현실은 하느님의 역사와 창조의 정점을 이루기 위한 최고의 환경임. 이런 생각은 경제학의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그 자체로는 영척 자원이 없고 전적으로 세속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는데 이바지함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세속적 발상에 따라 정당화됨.
- 인류학에 따르면 영웅의 원형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음. 가장 오래된 원형은 사기꾼이며, 그 다음으로는 문화의 전수자인 토끼가 나타남. 세번째 단계는 초인적 위력을 지닌 영웅으로 붉은 뿔이라 불림. 마지막으로 가장 발전된 단계는 쌍둥이임
- 히브리의 영웅들은 대부분 사기꾼과 문화의 전수자, 쌍둥이와 상응. 우리가 영웅이라고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신격화된 근육질의 영웅은 히브리에는 존재하지 않음. 이는 민주적 자본주의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데, 유대인의 영웅적 원형은 후대에 나타난 영웅의 양상에 훨씬 든든한 토대가 되었기 때문. 그러한 영웅은 오늘날의 삶과 한결 부합됨. 영웅들은 무기를 버리고 부자가 되기 이해 장사를 시작함. 알다시피 장사에는 근육이 필요없으며, 아름답거나 영웅적일 필요도 없음. 인류의 문명을 현재의 위치로 이끈 영웅이라고 한다면, 교활한 사기꾼과 문화의 전수자, 수난자라는 영웅적 원형이 한결 어울릴 것임.
- 현대경제사상에서는 도덕적 차원이 이미 오래전에 완전히 자취를 감춤. 이는 특히 개인의 악덕이 반대로 공익을 이끌어 낸다는 맨더빌의 개념이 보편화된데 기인. 이런 체제하에서는 개인의 도덕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훗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신비스럽게 표현될 무언가가 개인의 악덕을 공익으로 바꿔 놓을 것이기 때문. 최근에 와서야 일부 경제학 조류는 조직의 역량과 공평성의 수준, 기업윤리, 부패 등을 측정하고, 이런 것들이 경제 성장 뿐 아니라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는 데 있어 도덕과 신뢰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됨.
- 지폐와 동전은 시간을 거슬러 여행할 수 없지만, 이것들은 돈이 가진 에너지의 상징이자 물질로 구체화된 존재에 불과. 이런 특징 때문에 우리는 현재에 이익이 되도록 미래의 에너지를 당겨올 수 있음. 빚은 미래로부터 현재로 에너지를 옮겨 올 수 있음. 반면 저축은 과거로부터 에너지를 축적해 현재로 보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이 에너지의 운용임. 현재로 넘어온다면 에너지로서의 돈의 특징은 GDP통계 따위에서도 나타남. GSP성장에 대한 논쟁은 종종 무의미함. 미래의 불확정성 때문. GDP성장은 단순히 채무에 따라(또는 적자나 흑자예산 형태의 재정정책을 통해) 좌우됨. 이면에 몇배나 더 큰 적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GDP성장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만일 재산을 쌓기 위해 돈을 빌렸다면, 재산을 헤아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안식일은 인간이 일하기 위해 창조되지 않았으며, 인생에는 생산성을 극대화해서는 안되는 성스러운 장소와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움. 히브리사상에서 인간은 창조의 완성이자 에덴동산의 수호자이지만, 하느님이 정한 한계내에서 일해야 함. 인간은 구체적 의미에서 뿐 아니라 한층 추상적 존재론적 의미에서도 창조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았음
- 고대인들은 신화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음. 그들에게 신화는 유용한 허구였으며, 추상적 관념이나 결토 실제로 일어난 적 없는 이야기임. 그러나 동시에 사물을 설명하고 현세에서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밝히는 데 유용했으며, 종종 실용적 목적으로도 활용됨
- 현대에는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유롭다고 생각. 스토아학파는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었음. 의존할 대상이 적은 사람일수록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것. 따라서 스토아학파는 육체의 욕구(수요)에서 자유로워질 것을 요구함. 세상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난 가장 대표적 사례는 디오게네스임. 그는 자신의 욕구를 최소화하고 자신에게 필요없는 물건은 모조리 버림. 그는 마지막으로 남겨둔 물병마저도 버렸는데, 물은 손바닥으로 마실 수 있기 때문. 그러므로 스토아학파의 구상은 명확했음. "소유에 대한 욕구를 없애자. 그러면 공급측면, 즉 노동도 감소하게 될 것이다." 얼마되지 않는 물건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살아감. 필요한 것이 적은 사람은 그만큼 애써 일할 필요가 없음.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행복한 삶을 위한 스토아학파의 처방은 에피쿠로스학파처럼 공급(또는 생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를 줄이는 것임
- 스토아학파는 선이 쾌락 혹은 효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행위에 앞서 계산을 하는 것은 금지되었음. 어떤 선행은 쾌락(효용의 증가)으로 돌아오며, 어떤 선행은 전혀 대가가 따르지 않음. 그러나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은 행위의 결과나 영향을 전혀 의식해서는 안됨. 개인의 도덕성은 특정 행위의 결과와 무관하게 규칙의 준수여부에 따라 판단됨. 다시 말해 각 행위의 도덕성은 그 행위의 결과나 영향에 따라서가 아니라, 규칙을 준수했는지의 관점에서만 판단됨. 결과는 오직 운명에 맡겨야 함
- 에피쿠로스 학파로 대표되는 쾌락주의 학파는 선이나 규칙 어느것도 위에서 외생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음. 행위의 선은 행위 자체의 결과, 그 행위가 가져오는 효용에 있음. 그리고 그 효용은 행위자의 개인적 관점에 따라 판단됨. 에피크로스 윤리학의 원천은 계산과 신중의 수단으로서의 이기주의였음. 에피쿠로스는 그보다 상위에 있거나 이타적 원칙은 고려하지 않음. 그는 우정의 경우에만 예외를 둠. 이렇게 해서 효용은 훌륭한 삶을 위한 핵심전제이자 모든 행위를 결정하는 기준점이 됨. 스토아학파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계산을 금지한 반면, 반대로 에피쿠로스 학파에게는 그 계산이 도덕의 필수요소였음. "육체적 쾌락과 고통은 자연스러운 욕구와 혐오의 유일하고 궁극적인 대상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선과 효용이 동등하다고 보았음. 행위의 도덕성은 전적으로 그 행위가 개인의 이익을 어떻게 감소시켰는지 혹은 증가시켰는지에만 달려 있음.
- 상호간의 선물교환은 가격이 확실히 정해진 매매보다 훨씬 심오하고도 유서깊은 거래방식임. 오랜 인류의 역사 동안 사물에는 아예 값이 없었으며, 사람들은 값을 매기지 않고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았음. 옛날 사람들은 상호간에 물건을 주거나 물물교환이 가능한 공동체에서 살았으며, 이 중 전자가 더욱 일반적이었음. 최초의 비화폐적 사회체제는 선물경제였음. 물물교환은 대개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잠재적인 적하고만 이루어짐. 현대에도 돈은 보통 넓은 사회관계를 위한 수단이며, 좀더 오래되고 소규모의 사회에서는 돈이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음.
- 선은 보답을 받는가? 유대사상에서는 왜 선을 행하는지의 문제가 제기되었음. 그리고 신약은 이원적 방식으로 이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 기독교는 유대교에는 상당히 낯선 하느님의 나라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문자그대로 도덕적 행위가 보답을 받는 새로운 공간을 펼쳐 놓음. 현세는 반드시 의로울 필요가 없으나,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정의 앞에서 심판을 받음. 유대교는 정당한 보상의 문제를 오직 현세에서 다뤄야만 했지만, 기독교는 정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옮겨 놓음. 그러므로 선과 악은 보상과 경제의 논리를 갖지만, 이는 천국에서 이루어짐. 따라서 선을 행하고 악에 시달리는 것에는 보답이 따르는데, 의인은 천국에서 보상받기 때문.
-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생각, 즉 개인의 무질서하고 종종 악하기까지 한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낳는다는 생각은 고대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음. 이 원칙을 처음으로 표현한 것은 애덤 스미스나 버나드 맨더빌이 아니며, 토마스 아퀴나스도 아님. 고대 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런 시를 남김
옛날의 전설이 말하기를
우리의 모든 어리석은 계획과 헛된 자만심은
거꾸로 공익을 위해 작용한다
- 우리가 보기에 감각의 편견과 오류는 모든 부분에서 나타남. 그리고 이러한 편견과 오류를 이성으로 바로잡으로 한다면 서서히 무지막지한 역설과 난관과 모순에 빠져들 것이며, 생각이 진전될수록 증폭되어 마침내 우리는 수많은 복잡한 미로를 헤매던 끝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거나, 더 나쁘게는 허망한 회의에 빠져 주저앉게 될 것임. 그리고 갈릴레오는 이보다도 더욱 직설적으로 표현. "데카르트의 새로운 과학은 우리의 감각을 유린했다."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은 모순의 역설에 대한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음. 데카르트의 과학적 방법은 그 기반에 존재하는 오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류 경제학 사상의 주요 행동양식이 되었음
- 내부적으로 모순점을 안고 있는 체계는 현실과 일부 충돌하며, 의도적으로 철저히 비현실적 가정에 기초하고, 극단적인 경우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르기도 함. 그럼에도 그러한 체계는 성공적으로 활용됨. 체계의 수명은 무오류성이나 논리적 일관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체계의 존재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보임. 그러므로 경제모델은 얼마나 사실적인지가 아니라, 신뢰성, 적합성, 설득력이나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에 대한 내면화된 믿음과의 정합성에 기초하여 받아들여짐. 과학모델과 경제모델은 하나의 체계(신화)가 다른 것을 대체하거나 파괴할 때 신화와 비슷하게 작용. 이는 과학의 신화가 신화를 대체했을 때 일어난 일이기도 함. 우리는 데카르트를 읽흐면서 그가 얼마나 은밀하고도 조심스럽게 신학의 신화를 과학의 신화로 대체했으며, 이를 어떻게 진행시켰는지에 주목해야 함.
- 데카르트가 인간의 의미를 축소한 것은 경제학자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를 낳음. 데카르트에 이래 인간은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논리적 추론에 의해 규정됨. 지각으로 인식되는 개성은 모두에게 동일한 객관적 이성의 보편성에 의해 실추됨. 계산될 수 없거나 최소한 숫자로 대리될 수 없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 환상처럼 취급됨.
- 현대 경제학자들은 다시금 윤리학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규범의 내면화는 매력적 주제로 부각되고 있음. 행위자들이 게임의 규칙에 따르는 윤리적 환경에서 경제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기 시작. 다양한 표제(기업환경의 질,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비공식제도 조사 등)하에 권위있는 세계 기관들은 경제가 윤리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 그 관심은 윤리적일수록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초창기 히브리인들의 관념으로 거슬러 올라감. 애덤 스미스도 이런 생각에 동의했을 것임. 그리고 그 시초에는 도발적인 시인 버나드 맨더빌이 등장함
- 맨더빌은 탐욕의 필요성에 대한 철학을 주창한 핵심인물이었음. 이런 점에서 탐욕은 사회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임. 탐욕없이는 발전이 아예 없거나 거의 없을 것임. 그는 탐욕과 악덕 없이 우리가 어디를 향하게 될 것인지를 물음. 그 사회는 매우 기초적인 발달수준에만 도달할 것이며, 국가간 경쟁에서 버텨낼 수 없을 것임. 그는 쾌락주의 사상의 명백한 지지자였음. 우리가 원하는 것과 이미 가진 것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목표는 수요에 다다를 때까지 소유를 늘리는 것이 되어야 함. 그리고 그는 쾌락주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감. 그의 관점에서 발전의 유일한 길은 수요의 증가이므로 그는 수요를 계속해서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 이런 의미에서 근대경제학은 맨더빌 사상의 후예임.
- 그러나 이성이 의심의 여지 없이 도덕성에 관한 일반원칙의 원천이고, 우리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도덕적 판단의 원천이라고는 해도, 옳고 그림에 대한 최초의 지각이 이성에서 유래한다는 가정은 전적으로 부조리하고 이해할 수 없음. ... 이런 최초의 지각은 이성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직접적 감각과 느낌의 대상임. ... 그러나 이성은 어느 특정한 대상을 유쾌하거나 불쾌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음. ... 이성은 이 대상이 본래부터 유쾌하거나 불쾌한 성질을 가진 다른 대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임을 보여줄 수는 있으며, 이런 식으로 그 대상을 다른 어떤 대상을 위해 유쾌하거나 불쾌한 것으로 만들 수는 있음. 그러나 직접적 감각과 느낌이 아니고서는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유쾌하거나 불쾌할 수는 없음.
- 스미스에 대한 일반적인 독법은 경제학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듬. 따라서 경제학의 현재상태를 이해하려면 두 스미스 모두를 읽을 필요가 있음. 왜냐하면 도덕감정론의 한층 폭넓은 맥라을 고려하지 않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국부론에만 집중할 경우 실제 스미스의 의도와는 다른 결론에 빠지기 쉽기 때문. 스미스가 남긴 유산은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는 윤리학의 결정적 중요성을 분명히 이해했으며, 사회에서 윤리의 역할을 매우 높게 평가했음.
- "모든 인간 본성에서 가장 하찮은 본성도 고통 없이는 변하지 않는다" 칼 구스타프 융
- 이 모든 옛이야기들과 바빌로니아 신화와 신약의 비유들이 어디에 도움이 되는가? 탈근대시대, 특히 경제학은 이 고대의 상징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더구나 이미 충분한 걱정을 떠안고 있는 금융위기 시대에 이런 사상들이 우리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가? 심리학자 융은 인간의 사고와 세계관이 1000년이 넘도록 힘을 발휘하는 원형속에 존재한다고 믿음. 이런 원형들을 연구하고 아는 것이 가치 있는 이유도 그 때문. 그리고 이런 원형들을 연구하는 가장 간단하고도 최선의 방법은 우리 문명이 갓 태어났을 무렵, 처음의 벌거벗은 모습을 살펴본 뒤 역사적 발전의 맥락에서 문명의 변화과정을 따라가보는 것. 우리의 무의식 어딘가에 간직된 것은 위기의 시대에 가장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음. 융은 이렇게 말함. "가장 예상을 벗어나는, 가장 무시무시하고 혼란스러운 것 속에서 보다 깊은 의미가 드러난다." 그에게 파괴점은 대개 자신이 쌓아올린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경제가 스스로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드러내는 때는 총력을 발휘할 때가 아니라 약점을 표줄하는 순간이다. 경제를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대는 경제가 자만에 빠져 다른 모든 것을 경멸하는 때가 아니라 벌거벗고 초라한 순간임. 약점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반면 강점은 종종 사물의 본질을 감춘다.
- 중세의 관면에서는 대개 에덴동산에서 저질러진 최초의 죄가 성적인 것이었다는 주장, 즉 원죄의 형태가 성적차원이었다는 주장이 우세함.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설득력 있는 논거가 없음. 원죄의 특징이 과소비라고 하는 편이 훨씬 그럴듯함. 결국 에덴동산의 이야기에서 이브와 아담은 열매를 문자그대로 소비함. 역자학자 노먼 데이비스에 따르면 스미스는 "인간이 가진 탐욕의 의미를 자문함으로써 경제학의 세계에 발을 들였음. 스미스가 왜 국부의 원천에 대한 연구를 저술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이 상당히 합리적인 해석에 따르면, 탐욕은 사실상 원죄라는 바로 그 개념과 함께 이론경제학의 시초뿐 아미라 역사의 기원에도 자리하고 있음.
- 끊임없이 불만족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경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우리 문명과 인간존재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음. 불만족은 심지어 진보와 시장 자본주의의 동력원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음. 20세기 시카고학파 경제학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인 프랭크 나이트는 다음과 같이 지적. "더 부유해질수록 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나이트의 제자인 조지 스티글러는 심지어 이렇게 말함. "상식적인 개인의 주된 욕구는 그가 가진 욕구의 만족이 아니라 더 많고 더 나은 욕구이다." 점점 더 많은 것을 갖기 원하는 끝없는 욕망 속에서 우리는 노동의 즐거움을 희생.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일함. 우리의 문명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문명보다도 풍요롭지만 지금과 뚜렷이 구별되는 원시적인 과거 어느때에 비해서도 충분내지 만족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면 멀었지 결코 가까워지지 못했음. 한문장으로 요약하며, 우리가 어떤 희생도 무릅쓰고 끝없이 GDP와 생산성을 늘릴 필요가 없다면, 얼굴에 땀을 흘려가며 끝없이 과로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임.
- 우리는 행복에 가까워질수록 행복에 대한 욕망도 커짐. 가장 치열한 욕망은 완전히 동떨어지고 이룰 수 없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없지만 손만 뻗으면 가질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에서 나옴. 그리고 이런 환상은 우리 사회의 금전주의 경향으로 더욱 강화됨. 이는 마치 무지개 끝에 있는 신비한 보물과도 같음. 무지개를 향해 더 멀리 나아갈수록 무지개와 보물은 더 멀어짐. "충족은 언제나 수평선 너머에 있으며, 우리가 접근할수록 수평선 뒤로 물러난다."
- 길가메시 서사시와 초기 고대 그리스에서는 진보라는 개념은 애당초 거의 존재하지 않았음. 당시에는 시간에 대한 순환관념이 지배적이었으며, 발전도 없었음. 모든 것은 계절과도 같이 원을 그리며 순환. 계절의 역할은 변화와 회귀에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음.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대개 특정한 의식을 치름으로써 계절의 회귀가 가능해진다고 믿음. 그리고 이야기는 일종의 순환고리 안에서 불특정한 시간에 일어남. 셋째로 여러 문명들은 인류의 황금기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갔다고 믿음. 최초의 인간은 지금보다 더 뛰어나게 창조되었으며 그 기원에서 멀어질수록 인류는 더 나빠지고 퇴보했음. 반면 현대인들은 진보덕분에 예전의 원시 시대에서 해방되었다며 감사해함
- "여러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기본조건을 더 나은 쪽으로 현저히 향상시키는 존재로서 진보를 믿으며, 그 믿음은 종교에 가깝다." 로버트 넬슨
- 모든 시대는 자신만의 환상을 가진다. 우리의 환상은 번영의 힘에 대한 열렬한 믿음이다. (로버트 새뮤얼슨)
- 케인스는 경제학에 대한 최초의 인식처럼 경제학이 도덕과학으로 돌아가여 한다고 요구했으며, 정밀한 자연과학을 모방하고자했던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전형적 과학적 접근방식을 비판. 주류 경재학을 비판하는 여러 사람들의 요지는 사회학자 에치오니의 표현대로, 주류 경제학이 인간을 그릇되게 환원했다는 것임. 주류 경제학은 인간을 주어진 예산제약하에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이성적 행위자로 환원함으로써 경제학을 수학의 미로에 가둬 놓음. 오늘날 최첨단 주료 경제학 이면에 자리하는 기본철학은 사람들이 흔히 믿고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공리주의도 아님. 현대의 지배적 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자신의 효용함수에 반해 움직일 수 없음. 이 이론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쾌락주의임. 그러나 쾌락주의가 도덕에 중요하고도 긴밀한 관련성을 부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쾌락주의로 보기 어려울 때도 많음.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음. 에피쿠로스 학파는 모든 것이 자기애의 원칙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우정과 같은 영역은 예외라고 인정.
- 윤리와의 관련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작금의 상황은 애덤 스미스에 대한 잘못된 해것에 기인. 실제로 경제학은 스미스가 거부한 버나드 맨더빌의 사상체계에 따라 전개됨. 경제학 연구는 도덕과학에서 단순히 수학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과학으로 전환됨
- 뭔가로 가리려는 욕망, 소유에 대한 욕망과 자시을 보호하고 쉽게 상처받지 않으려는 욕망 때문에 우리는 자유를 잃었으며, 우리는 뭔가를 필요로 하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에 의존하게 됨. 루소의 글은 이 점을 탁월하게 포착.
미개인은 그저 안식과 자유를 누리며, 생존과 안식마을 바란다. 스토아 학파의 아타락시아(정신적 평정)도 그 밖의 모든 대상에 무관심안 미개인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함. 이와 반대로 시민은 언제나 땀을 흘리며 바삐 움직이고 수고한 대가로 그보다도 힘든 일자리를 찾음. 시민은 죽을 때까지 일하며, 심지어 살아남기 위하여 죽음을 재촉하고 불멸의 명성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함. 실제로 이 모든 차이의 참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미개인은 그 자신만으로 살아간다. 사회인은 언제나 자신을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서만 살 수 있으며, 타인의 판단에 따라서만 자기존재의 감정을 끌어낸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고,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 애쓴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조지 버나드 쇼)
- 우리가 세계를 둘로 보게 된 까닭은 현실을 모델화하려 애썼기 때문. 이 중 하나의 세계는 추상화된 세계 혹은 비현실적 모델 개념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 세계를 지각. 또 다른 세계는 즉자적 세계, 실제 세계, 경험적 세계로서 모델화가 불가능한 세계임. 왜냐하면 이 세계는 우리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생각이 그러하듯이, 살아있고 실제이며 임의로 옮겨 놓을 수 없기 때문. 그런 생각들은 마음대로 움직이고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바로 그 목적에서 생겨나는 듯 보임. 경제학에서도 똑같은 충돌을 볼 수 있음. 한편에는 개인의 행위나 전체사회를 설명하고자하는 경제모델이 있으며, 여기에서 모든 것은 그 자체와 아름답게 부합함. 그러나 이런 모델은 종종 비현실적인 토대에 놓여 있거나, 현실에 거의 적용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됨. 안타깝게도 우리 세계에서는 두 경우 모두 빈번하게 벌어짐.
- 때때로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라고 일컬어짐. 우리는 최근 몇년간 세계경제의 성장에 지나치게 매혹되어 위기시에 경제학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완전히 잊음. 위기가 닥치면 모델은 작동하지 않음. 모델은 작동할 때는 제대로 작동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임.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변화가 지나치게 급격하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기시에는 표준적인 수학모델은 사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임. 모델을 수립할 때 우리는 충분히 긴 시간을 들여야 함.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영감을 얻기 위해 역사와 직관에도 의지해야 함. 우리는 분석가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수없이 들어왔음. "모델에 따르면 이러이러하지만 우리 생각에는....", 모델은 직관으로 보완되어야 함.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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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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