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 깡패들

경제 2014. 10. 23. 21:34

 


미국의 경제 깡패들

저자
테드 네이스 지음
출판사
예지 | 2008-11-1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대한민국 최우선 과제, 미국 자본주의 ‘게임의 룰’을 이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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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가 시작되고 처음 10년간 기업법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신중함은 대중문학에서 가장 강력하고, 반복되고, 과장된 주제 중 하나였음. 이러한 반기업 정서를 반사업 정서와 혼동하지 않아야 함. 대중들이 보기에 기업법인이라는 형태를 이용한다는 것은 모종의 특권을 독점하는 것을 연상케 했음.
- 전형적 침해 사례로 1801년 뉴욕의 부유한 상인들 몇몇이 자영업자 제빵사들을 고용해 부리면서 도시 전체에 빵을 공급하는 독점권을 부여하는 기업법인 설립허가를 취득하려고 했던 일을 들 수 있음. 제빵사들은 자신들을 업계에서 몰아내려는 이 대담한 시도를 알아차리고 제퍼슨의 수사를 총동원해 만약 의회가 그와 같은 설립허가를 내준다면 현재 미국의 장인들에게서 두드러지고 공화국에 참으로 유용한 자영업자들의 정신이 완전히 궤멸될 것이라고 주장.
- 스콧은 개인적 권력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규제로부터 기업을 해방시켜 기업을 실제로 훨씬 더 역동적 존재로 재발명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됨. 남북전쟁 이전의 기업은 기업법인 설립허가를 발급하고 정기적으로 갱신하는 주의회의 확고한 통제를 받는 특정지역에 뿌리박고 있었음. 주 의회 설립허가에 어떤 규제조항을 써 넣든 간에 기업은 받아들여야 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설립허가는 종결되었음. 그러나 톰 스콧이 탈출로를 고안해냄. 그가 펜실베니아 주의회를 설득해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오래된 금지조치를 깨뜨림으로써 그 씨앗이 뿌려진 셈. 스콧은 지주회사를 발명함으로써 기업에 대한 국가통제의 아킬레스 건을 찾아낸 것. 미주리 주의 어느 회사가 설립허가에 포함된 규제조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치자. 미주리 회사는 변호사들을 시켜 뉴저지에 새 기업법인을 세워 회사주식을 뉴저지 회사로 팔아넘김으로써 물리적으로 이전하지 않고도 미주리 주의 사법권에서 사실상 빠져나갈 수 있음. 이런 변화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 영향은 심대했음. 일단 기업이 가장 우호적인 법률적 관할지를 물색하게 되면 여타 규제들을 완화하기 위해 주 의회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
- 스콧은 1881년 사망했기 때문에 주외 지주회사라는 자신의 혁신이 의회에서 기업법의 일상적 특징으로 자리잡는 것을 보진 못함. 1889년 뉴저지주는 기업법령을 수정하기가 무섭게 다른 주의 심한 규제를 탈출하고 싶어하는 기업들의 대안이 됨. 1901년이 되자 자산규모가 2천5백만 달러 이상인 미국기업 71%가 뉴저지주를 근거지로 삼고 있었음. 기업변호사 찰스 보스트윅에 따르면 너무나 많은 트러스트들과 대기업들이 뉴저지에 세금을 내는 바람에 관계기관은 잉여수익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 크게 당황하는 수준이었음. 다른 주들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남아있음. 바닥까지 낮추기 경주에서 뉴저지주와 경쟁하든지 아니면 지역기업이 뉴저지 주로 법적 근거지를 옮기는 것을 지켜봐야 했음. 1899년 델라웨어는 뉴저지의 뒤를 따름. 1913년 뉴저지 주지사 우드로 윌슨이 뉴저지 법을 강화하자, 델라웨어주는 기업들의 대안지로 앞서 나갔고 오늘날까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
- 영구존립은 기업들이 범죄와 잔혹행위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정치적, 법적 문제에서는 매우 실용적 이익을 주기도 함. 예를 들어 클린턴 정부하에서 미국 법무부가 시작한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반트러스트 소송을 생각해보라. 그런 소송은 대개 최소 10년 혹은 그 이상 지속되기 일쑤여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다시 빠져나갈 기회를 엿볼 수 있음.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에는 부시 행정부가 제때에 들어서서 그 소송에 대한 관대한 방침을 적용했기 때문에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음.
- 현대산업들이 특히 섬유업이 큰 건물에서 운영될 경우 교도소, 소년원, 그리고 고아원과 연계되지 않은 지역은 거의 없었음. 사람들은 이 관계를 대체로 과소평가하고 있는데, 특히 새 공장들이 자유노동만을 고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역사가들이 그러함. 그것은 공장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일찍이 성립되었던 영국의 방식이었는데, 19세기 초 미국에서 최초의 공장이 출현했을 당시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을 착취하는 비슷한 방식이 적용되었음. 영국 이민자였던 새뮤얼 슬레이터는 미국에서 최초로 기계화된 섬유공장을 세웠고, 그가 고용한 최초의 피고용인들은 7~11세의 어린아이 아홉명이었음. 역사가 잭 비티에 따르면, 미국 최초의 공장들의 최초의 노동자들로서, 여성과 어린이들은 미국 산업혁명의 개척자였다.
- 72년 GE의 프레드릭 보치와 알코아의 존 하퍼가 선봉에 서서 금융, 공업, 서비스업의 상위 200대 기업 CEO들로만 구성된 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만듬.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그 회원들의 구성때문에 독특한 특권과 영향력을 지니게 됨. 이 단체는 기업 엘리트들을 위한 일종의 상원의회 역할을 하면서 대기업 전체가 그 이전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원을 배치할 수 있도록 했음.
-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만들어짐녀서 70년대에는 재단, 씽크탱크, 소송센터, 출판물, 그리고 점점 더 세련되어지는 홍보 및 로비기구 등 기업들의 의제를 지지하는 한 무리의 기관들이 생겨남
- 대부분 부유층이었던 한 무리의 신사들이 밀실에 모여 작성한 미합중국 헌법으 원래 틀을 잡을 때부터 나머지 전체 인구에 대항하여 소수 부유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 것이었음. 심지어 권리장전의 보장들 역시 두가지 상반되는 정치적 목표를 구현한 별개의 두 조로 나누어 볼 수 있음. 한편에서는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와 같은 권리로 강력한 국가기구의 잠재적 권력 남용으로부터 일반시민을 보호함. 다른 한편에서는 수정헌법 5조로 정당한 보상없이 재산을 박탈하는 것을 금하여 다수결을 이용해 엘리트 층의 부를 앗아갈 수 없다는 보장을 해줌. 헌법 내부의 이런 긴장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대법원이 주와 연방의회로부터 기업을 감싸기 위해 만든 일련의 권리들이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헌법조항을 대체로 연장한 것이었음이 이해가 됨.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표현=돈' 관례들에서 놀라운 점은 바야흐로 수정헌법 1조가 부유층, 재산, 기업권력의 방패막이로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러한 결과는 오직 용의주도하게 논리들을 구획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음. 결국 신중하게 법을 따르는 척했던-한편으로 기업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패예방을 위한 법률을 허용하던-대법원 판결들은 사실상 표현의 자유의 속성과 부패의 속성을 둘 다 사용하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음. 표현을 통해서 대법원은 정치선거운동에서 거대기업이 쓰는 비용이 인간의 발언과 동등한 보호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개념을 수용. 부패에 대해서는 돈의 특정한 이동이 특정한 정치행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경우를 뜻하는 보상부패 개념에만 국한시킴.
- 개인에 양심의 자유에 관한 판결들을 기업까지 확장하는 것은 그 판결들의 논리적 한계를 넘어 지나치게 곡해하는 것임. 양심의 자유를 목적으로 그러한 인공적인 존재들에게 지성이나 영혼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은유를 현실과 혼동하는 것임
- 50년대와 60년대에는 CEO도 경영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았음. 안정성이 중요했기 때문에 기업가적 기풍보다는 관료적 기풍이 강했음. 현재의 기준으로보면 급여가 놀랄만큼 적었음. 예를 들어 50년에 미국에서 쵝 보수를 받언 GM의 찰스 윌슨의 세전수입은 62만 6300달러(03년 기준 480만 달러)였는데, 이는 오늘날 기준으로 본다면 많지 않은 급여임. 더욱이 고소득자들에게 적용되는 세율은 매우 높았음. 윌슨이 보수전체에 대한 연방세를 냈다면 세후수입은 16만 4300달러 였을것임.
- 이전세대에서는 급여가 회사의 성장률이 아닌 규모와 연관되어 있었고, 보수의 상대적 평등을 모범으로 강요한 뉴딜정책 시기 사회풍조의 영향이 남아 급여가 상대적으로 억제되어 있었음. 80년대 들어 CEO의 자제하는 팀플레이어 이미지는 폐기되고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남. 돌격대장형임. 아이아코가 같은 유명 CEO들은 경영자의 전통적 역할에 슈퍼 세일즈맨, 공식 대변인,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르는 부가적 역할들을 추가시킴. 아이아코카 같은 CEO들에게는 분명히 어마어마한 연봉을 줄만한 가치가 있음. 스타 CEO의 또 다른 형태는 빌 게이츠로 대변되는 활동적인 20대 공부벌레 기업가라는 실존하지 않을 법한 인물형에서 등장. 비록 아이아코카 같은 판매능력이나 빌게이츠 같은 천재성을 지닌 CEO는 별로 없지만 그러한 유명 기업지도자들은 파월 비망록에 묘사된 것처럼 관료적이고 사회적 왕따 같은 이미지를 떨쳐버리려고 무척 애씀. 정말이지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록스타와 같은 존재로 변해가고 있었음.
- 6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사이 전세계적으로 본국 밖에서 사업을 하는 회사수는 세배이상 증가. 90년대에는 모든 민간부문 자본의 3분의 1가량을 초국적 자본이 차지. 미국회사들은 가장 공격적으로 해외제조업 자산을 사들여 미국내 제조시설을 해외로 이전. 90년대 후반 미국 기업들이 해외생산량은 유럽과 일본의 다국적 기업을 합친 것이 두배가 됨. 그러나 소유권의 국제화는 미국 국내에도 영향을 끼쳐 미국 제조업 자산 중 외국인 소유지분은 70년 3%에서 90년 19%로 증가. 기업들은 여러나라에 다리를 걸쳐놓은 상태였으므로 복수의 규제체계와 맞부딪침. 어떻게 해야할까? 미국은 이미 1세기 전에 상업조항을 창조적으로 해결하고 기업권리에 대한 새로운 원칙을 개발함으로써 유사한 문제를 해결한 바 있음. 같은 일을 세계적 규모로 시도해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달갑지 않은 규제를 쫓아버릴 새로운 카드패였음. 전체적 목표에 따라 두가지 채널이 개발됨, 하나는 GATT과정으로 110개국 이상이 참가해 일련의 다자간 협상을 계속하는 것이었음. 그러나 GATT참가국이 워낙 많다보니 진행이 지지부진해짐. 1987년 미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을 필두로 한 역내조약이 더 빠른 채널로 판명됨. 94년 멕시코가 역내조약에 참가하면서부터 FTA는 북미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됨.
- 기업의 비상한 재주는 단순성, 유연성, 그리고 그 설계의 모듈성임. 그것은 어떤 규모에도 맞추어 변할 수 있고, 사실상 모든 기능을 하며, 어떤 문화에나 적응할 수 있으며, 그리고 강건함.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영원히 작동할 수 있음. 그것은 살아남고, 구조 및 기능적 완결성을 유지하고, 성장하고, 위험을 피하고, 피해를 복구하며, 적응하고, 외부세계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음. 기업이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에는 어떤 악의도 심지어 자각도 없음. 그것은 느리고 점증하는 과정임. 세계가 조금씩 걸음을 옮기는 것임.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처럼 작은 행위들이 결국 대대적 사회변화를 일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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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의 종말

경제 2014. 10. 22. 21:54

 


테크놀로지의 종말

저자
마티아스 호르크스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09-08-2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인간은 혁명적 미래가 아닌 편안한 미래를 원한다! 유럽의 권위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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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운전의 정신적 형이상학
(1) 자동차는 신체적 힘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을 직접 체험케 하는 수단이자 물건임. 발만 살짝 올려도 신체적 힘을 훨씬 능가하는 굉장한 힘이 발산됨. 그렇기 때문에 운전은 능력을 과시하는 것을 의미하며 에로틱하고 매력적인데다가 섹시함. 우리는 운전을 통해 힘과 지배력을 느낌. 운전은 또한 분노와 공격성, 굴욕감에 대한 보상심리, 짜릿함에 대한 욕구를 해소시킴'
(2) 자동차는 특히 남성들에게 적용되는 상하지위 체계의 상징. 자동차는 서로 부대끼는 사회적 관계에서 효과적으로 벗어나는 탈출수단임
(3) 자동차는 가벼운 감상적 기분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자 아지트임. 운전은 지적 능력을 크게 요구하지 않기 땜누에 편안한 기분을 주는 여러 행동을 운전중에 할 수 있음.
-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1) 어떤 경우든 한 매체가 다른 매체를 완전히 흡수하는 사례는 매우 드뭄. 물론 오늘날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찾아보기는 힘듬. 그러나 이것은 책의 멸종이 아니라 단지 책의 소재가 바뀐 것. 특이할 만한 것은 미디어 분야의 복고풍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 CD의 승리 행진 끝에 엘피판의 복고 바람이 불었음. 영상 시대의 시작으로 책에 사형선고가 내려진 바로 그 때 대량화와 차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됨.
(2) 선진국 교육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있음. 개도국 문맹비율로 계속 줄어들고 있음. 결국 뇌와 만나는 책의 글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음.
(3) 책은 단순히 일개 매체가 아님. 촉각, 청각, 시각, 그리고 그밖의 다양한 감각체계와 연결된 문화상품임. 책은 생각을 대변함.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의 물리적 차원은 버릴 수 없는 필수 요소임
- 인류는 뭔가 부르설거려야만 진지하게 반응한다. 인간의 뇌는 수백만년에 걸쳐 손으로 만지고 쥐는 행위를 통해 발전해옴.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학습이 좋은 학습임. 가장 생산적 학습은 연극이며 가장 훌륭한 학습방식은 폭발, 연기, 악취가 있는 실험방식임
- 학습은 뇌로만 하지 않음. 학습은 인간이 온몸으로 주변환경과 벌이는 감각적이고 유기적 대결과정임. 인간에게는 호기심이나 지루함, 불안이나 흥미, 열정이나 매료 등의 감정이 있음. 학습의 성패는 학습의지에 달람. 그러므로 학습의지에 대한 학습이 학습의 고갱이로 자리잡고 있는 셈. 그래서인지 요즘 학교들은 전통적 강의방식과 주입식 암기교육을 버림. 이들은 자연스러운 호기심 자극과 칭찬으로 학습을 시작. 스스로 학습이 이들의 목표임. 학습은 어느순간 갑자기 열정이 되고 더 나아가 중독이 될 수도 있음. 호기심을 맘껏 펼칠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이야말로 변함없이 성공적인 학습을 추구하는 학습기계가 될 수 있음
- 가족구성원은 기묘하게도 개성을 좇음. 가정에서 쓰이는 효율이나 적합이란 말은 사무실에서 쓰이는 의미와 전혀 다를 수 있음. 가족간 의사소통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경청과 흘려듣기, 세심함과 무심함 사이의 미세한 균형을 요구함. 말하자면 똑똑한 냉장고는 사무실 세계에서 가정세계로 옮겨간 실패사례임. 양쪽 영역의 지배법칙은 전혀 다르기 때문
- 인조인간, 즉 인공지능 로봇은 아마 영원이 인류의 이상향으로 머물 공산이 큼
(1) 우리는 3억년 진화를 이길 수 없음. 인간이 손으로 물건을 쥐는 기술은 끝없이 긴 세월을 들여 개발하고 다듬은 결과. 걷는 동작하나에 필요한 계산능력만도 상상을 초월함
(2) 지능은 살에서 나옴. 인간의 뇌는 주변환경의 위험에 유기적으로 반응. 우리가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멸종위협, 기후재난, 종의 급격한 감소, 질병에 의한 몰살, 고난, 전쟁, 상실과 같은 수많은 위협을 수백만년에 거쳐 극복해낸 결과임. 인간의 복잡한 정신구조는 예민한 감각기관에 대항애 필사적으로 피워낸 꽃망울임. 인간의 감정은 고통의 검열기관이며, 감정의 의미는 고통의 맥락에서만 나옴. 인공지능을 정말 실현하고 싶다면 로봇에게 죽음과 살을 부여해야 함
(3) 인조인간 로봇에게는 피할수 없는 경쟁자가 있는데, 바로 인간임
- 인공지능의 발명은 자동차에서 바퀴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발을 달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행위와 같다. (알란 튜링)
- 테크놀로지와 권력은 늘 반대의 결과를 낳음. 테크놀로지는 권력을 방해함.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문맹수를 대폭 줄여주었음. 이제 누구나 성경을 읽게 되었으니 교회의 권위가 강화됨이 마땅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교회 영향에서 영영 벗어나 버림. 인쇄기술의 향상은 프랑스 혁명동안 봉건시대의 압력을 더는 받지 않겠다는 아래로부터의 공통된 세계관을 형성. 텔레비전은 베트남전의 미라이 학살과 미군의 분노한 어머니들의 항의를 전세계에 중개함으로써 베트남전을 종결시킴. 매체는 세계관과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을 바꾸어 놓음. 이것은 또한 반권력의 의미에서 권력과 관계가 있음. 통치자들은 테크놀로지의 이런 반권력요소를 정확히 알고 있음.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트 요세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산업화에 적극 반대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왕국이 20세기 초에 멸망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보는 역사가들이 많음. 간디는 인도의 산업화를 강력히 반대. 간디는 베틀과 재봉틀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 단위의 가내수공업을 권장. 이런 역사의 사회문화적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기에 인도는 산업화를 건너뛰고 곧장 정보화 단계로 진입
- 석유먹는 자동차에 투자한 금액이 워낙 대단해 불쌍한 영세 압축공기 자동차는 테크노 서식지에서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함. 오히려 기존 자동착 대안 연료를 연소하는 쪽으로 발전. 냉각 테크놀러지도 마찬가지. 틀림없이 실내온도 조절기 업체의 탄탄한 방어진 앞에 무릎을 굻어야 했을 것임. 그리고 하늘을 나는 물고기는 수십억, 아니 수천억에 달하는 투자를 받으며 일단 성공하는 듯했지만 날개달린 비행기가 가만두지 않을 터이니 죽음을 면할 길이 없어 보임. 세 테크놀러지 모두 언제나 결승점에 먼저 도착해서 자신이 이겼다고 외치는 거대하고 버거운 상대가 버티고 있음.
- 지각은 사회권력의 표시. 늦게 오는 사람은 자신이 칼자루를 쥐었음을 과시하는 셈. 그러니까 늦겠다고 휴대폰으로 알리는 행위는 실제로 의사소통이 아니라 신분의 계층화인 셈. 자칭 민주적이라는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구제도와 결합하는 순간임.
- 인터넷 같은 복잡한 테크놀러지에는 언제나 복잡한 예비 테크놀로지 역사가 있음. 1893년에 이미 빈과 부다페스트에는 뉴스 서비스가 정기적으로 제공되었는데 말하자면 오늘날의 포드캐스팅인 셈. 부다페스트의 타바다르 푸스카스가 발명한 이 전화신문은 신청자에게 전화를 걸어 뉴스, 일기예보, 쇼핑정보를 전해주었음. 서비스는 날로 인기를 얻어 신청자가 15000명에 달했는데 그중에는 프란츠 요세프 황제도 끼어 있었음.
- 모든 생활영역이 디지털로 바뀌는 가운데에서도 고급 만년필의 판매율이 급증. 마찬가지로 고급종이도 호황을 맞이함. CD의 성공과 더불어 엘피판과 전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무리가 생김. 그리고 최근에는 엘피판이 다시 비싸지기도 함. 어린 시절에 보았던 물건들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 자동차만해도 폭스바겐의 비틀, 피아트500, 미니, 심지어 트라반트까지 있음. 우리 안에 깊이 자리한 형태에 대한 기억이 이런 부활을 낳고 있음. 죽었다고 믿었던 테크놀러지가 적응기를 거쳐 살아남았음. 80년대에 이미 메인프레임 컴퓨터, 특히 대형컴퓨터는 사형선고를 받음. 20년이 지난 지금 IBM에서는 15억 달러나 들여 개발한 z10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현재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음. 복고풍 기술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이용하지만 마먕 그 자라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이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일상과 유토피아 사이의 공생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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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없다

저자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출판사
동녘사이언스 | 2011-09-1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가격에 속지 마라! 가격은 집단적인 착각이며 위험한 조작 장치다...
가격비교

- 오늘날 가격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과 마케팅 전문가들, 그리고 가격을 컨설팅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공생관계가 형성되어 있음. 트버스키, 카너먼, 리처드 세일러 그리고 댄 애리얼리와 같은 많은 유명한 이론가들이 마케팅 저널에 논문을 싣고 있음. 가격 컨설턴트인 SKP는 3개 대륙에서 건너온 학자들로 구성된 학술 자문기관임. 오늘날 마케터들도 앵커링과 일관된 자의성에 대해, 그리고 그 강력한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함. 행동주의적 의사결정 이론가 에릭 존슨은 이런 말을 했음. "저처럼 마케팅을 강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는 고객을 조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객들의 필요를 알아내고 그것을 충족시키려 할 뿐입니다.'란 말로 강의를 시작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분야에서 어느정도 지내본다면 '그래, 우리는 소비자를 조종할 수 있어'라고 때닫게 될 것입니다"
- 대비 앵커링은 당신이 두가지 자극을 비교할 때 발생. 거리의 밝은 불빛은 밤하늘의 별을 흐릿하게 보이게 하고, 다른 코미디언들보다 40% 정도 덜 웃긴 코미디언은 야유를 받음 동화 앵커링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답변을 들은 상태에서 당신의 답을 내야 하는 경우에 발생함. 이 앵커링은 사람들이 어떤 범죄보다 절반 정도 덜 잔인한 범죄를 생각해내거나, 검사가 요구하는 배상금의 액수를 들은 배심원들이 배상금을 결정해야 할 때 발생, 두 종류의 앵커링은 반대의 효과를 갖고 있음. 대비 앵커링은 주관적 인지를 앵커와 반대방향으로 일어나게 하고, 동화 앵커링은 앵커에 가깝게 일어나도록 함
- 우리 문화가 돈에 점점 더 열광할수록 우리는 돈에 덜 예민해짐. 그러나 자극자체보다는 감각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경우도 많음. 느끼고 있는 무게를 두배 더 무겁게 만들기 위해서는 1.6배만 더 무거운 것을 들면 됨. 전기충격을 두배로 만들고 싶으면 전기자극을 1.2배만 높이면 됨. 이것하고는 다르게 돈으로 얻는 흥분을 두배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배 이상의 돈이 필요함.
- 음식값을 나누어낼 때나 무인 주차요금 징수기 앞에서 몊시간이나 주차할 것인지를 계산할 때 우리는 대략 끝자리를 반올림해서 계산함. 이런 상황에는 걸려 있는 돈의 액수가 크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차이를 계산해내는 데 우리의 시간과노력을 쓰는 것을 아까워 함. 또 다른 이유는 기억의 한계 때문임. 단기기억은 일곱개의 요소만 기억. 당신이 엄청난 장기기억능력을 갖고 있고, 혹은 당신의 노트북에 몇 기가짜리 금융 모델이 들어 있더라도 이것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임. 결정적 순간이 닥치면 우리는 머릿속으로 일곱개의 숫자나 개념만을 사용함
- 서로 다른 종류의 정보들을 전체 의사결정 과정에 통합하면서 생기는 압박감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체계에 비추어볼 때 적절치 못한 판단전략에 의존하게 됨
- "난 내가 본대로 심판해" 첫번째 심판이 말했다. "나는 그들이 행동한 대로 심판해" 두번째 심판이 말했다. 세번째 심판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심판할 때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한게 아니야" 이와 같이 우리는 가치의 본질에 대해 세가지 서로 다른 시각을 묘사할 수 있음. 첫째, 가치란 마치 사람의 체온처럼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그것을 인지하고 표현한다고 생각할 수 있음. 물론 그 과정에 바이어스(편견)가 개입될 수도 있음. (난 내가 본대로 심판해). 둘째, 사람들은 마치 구구단표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가치와 선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음. (나는 그들이 행동한대로 심판해). 셋째, 가치와 선호는 일반적으로 그것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볼 수도 있음. (내가 심판할 때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한게 아니야) 이렇게 볼 때 세번째 시각과 잘 맞아떨어짐. 즉 선호란 과정속에서 구현되는 것이고 맥락의존적 과정의 산물임
- 여기서 얻은 것이 있다면 가격의 상대성임.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얼마나 지불하기를 원하는지는 그들에게 질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던지느냐에 좌우됨
- 우리는 포커에서 500달러를 잃고는 마치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것처럼 행동함. 캐머러는 손실회피라는 것은 펜트하우스의 창문으로 내다볼 때 느끼는 고소공포 같은 비합리적인 두려움이라고 했음. 그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손실은 대부분 삶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님. 그러나 사람들이 손실을 극도로 회피하는 것이 감정체계가 두려움의 신호에 과잉적응한 결과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했음. 손실회피를 두려움으로 생각한다면 감정이 구매가격과 판매가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인정하게 됨
- 60년 안호이저 부시사에서 수퍼 프리미엄 맥주인 미캘롭을 내세워 공격적 판촉을 시작했을 때, 같은 회사 제품 버드와이저는 이미 전국가적 베스트 셀러 프리미엄 맥주였음. 만일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를 지불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면, 미캘롭은 버드와이저 시장에서 제 살을 깎는 꼴이었을 것임. 그러나 미캘롭과 버드와이저 총 판매량은 모두 증가. 미캘롭은 버드와이저를 훨씬 덜 극단적이고, 덜 비싸고, 덜 특수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음. 일부 버드와이저 애호가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고급화해 미캘롭을 사기 시작했지만, 이로 인해 감소한 버드와이저의 수요는 다른 값싼 맥주를 먹다가 버드와이저로 바꾼 사람들에 의해서 상쇄되었음. 다시 말해 이전에 밀러를 마시던 사람들이 미캘롭 광고를 보고는 버드와이저를 마시기 시작한 것. 결국 앤호이저 부시는 맥주시장에서 선두로 치고 나올 수 있었음.
- 유인효과의 다른 사례. 61년 프록터앤갬블은 일회용 기저귀 팸퍼스를 출시. 애초에 팸퍼스의 경쟁제품은 면기저귀였음. 일회용 기저귀는 면 기저귀보다 편리했지만 훨씬 비쌌음. 78년 프록터앤갬블은 팸퍼스보다 훨씬 더 비싼 일회용 기저귀 러브스를 출시. 러브스는 미끼로 작용하여 면 기저귀 사용자들에게 팸퍼스가 더 이상 비싸지 않다고 느끼게 해줌. 90년대 중반, 시대는 다시 바뀜. 환경에 민감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게 된 것. 프록터앤갬블은 이번에는 러브스가 시장을 고급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화하는 미끼로 사용될 수 있겠다고 생각. 94년부터 러브스는 할인제품으로 자리매김함.
- 성공적인 명품매장은 고가의 상품을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분노와 행복을 한꺼번에 느끼게 함. 중상류 소비자들은 그런 고가의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안되고, 결국에는 유명인들이 그것을 차지할 게 뻔하기 때문에 이 높은 가격에 분노를 느낌. 대신 다른 상품을 사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며 행복해함
- 레스토랑의 입장에서는 가격을 기준으로 음식을 고르는 손님은 반가운 손임이 아님. 가격에 대한 민감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애틀 컨설턴트 그레그 라프는 메유판위에 있는 음식과 그 가격사이를 연결하는 점선, 달러기호와 소수점, 센트단위까지 지워버리라고 제안함. 유니온 베이 스퀘어 카페의 메뉴판에는 이 모든 것이 잘 적용되어 있음. 메뉴에 대한 설명이 중간에 들어와 있고 가격은 그 옆에 깔끔하게 적혀 있음. 이렇게 한다고 해서 소비자가 가격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에게 아주 사소하고 미묘한 신호를 따르게 만듬. 여기 메뉴판에 있는 신호는 이러함. "가격말고 음식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본다면 가격구조는 소비자에게 관대해 보임. "만약 당신이휴대전화의 분당 통화요금을 너무 많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제한 통화요금을 사용해보세요." 선택대안이 늘어나면 선택의 자유도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처럼 보임.그러나 실제로 소비자는 망치이면서 모루이기도 함. 대안들이 제시되는 방식에 따라 선호가 구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추가적 선택옵션은 우리의 선호를 조작해내는 도구임을 알 수 있음. 추가 옵션을 포함한 요금제를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에게 그 옵션이 없었을 때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거나 더 많은 것을 구매할 욕구가 생기게끔 만듬
- 항공요금에 대한 민감도 때문에 요금의 개별화 관행이 생김. 수화물을 맡길 것인지, 베개가 필요한지, 식사를 할 것인지, 커피를 마실 것인지, 전화예약을 했는지, 전자티켓을 받을 것인지 종이티켓을 받을 것인지, 어느좌석을 원하는지 등 예전에는 무료로 제공되던 서비스에 대해 모두 요금을 부과하기 시작. "3~4년 전부터 항공사들은 상품 거래소에서 밀 한포대에 가격을 매기듯 운임을 매기는 것에 염증을 내기 시작. 거기서부터 어떻게 하면 가격을 덜 투명하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전략의 핵심이 되기 시작했다." (페어컴페어 닷컴 CEO 릭 시니)
- 소비자들은 항목별 요금제를 사소한 몇푼 정도의 문제로 치부하고 이런 추가요금들이 하나하나 이윤을 올리는 요소일 것이라고 생각. 하지만 적어도 여러 항공사들이 몰리는 경쟁적 항로에서 이 생각은 사실이 아님. 항목별로 부과하는 요금제의 진짜 목적은 묶어팔기와 똑같음. 즉 가격비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목적임. 개별 서비스에 부과되는 추가요금은 항공사마다 천차만별임. 수하물에 부과하는 요금이 가장 저렴한 항공사도 있을 수 있고, 베개와 음료가격이 저렴한 항공사도 있고, 또 전화예약이 무료인 항공사도 있을 수 있음. 진정한 항공요금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편의 서비스가 너무 많아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이 필요할 정도.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항공사가 의도한 대로 행동함. 그들은 추가요금이 얼마나 되는지 등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가장 낮은 가격이 아닌 다른 요인들에 근거해 선택함
- 최초의 제안에 수정제안으로 응답하는 것은 애초에 어느정도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최초의 제안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면 여기에 동의하는 것보다 차라리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더 낫다
- 우리는 어떤 것을 파악할 때 아주 제한적인 것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알콜은 그 경향을 더 심화시킴. 이 현상을 알콜 근시안 효과라고 부름
- 노조 지도자들이 일반 조합원들에게 어떤 계약을 설득시키고자 할 때 경영진이 노조에게 어떤 제안을 하려 할 때, 이들은 문구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 여기서 트릭은 가능한 한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서술하는 것임. 계약의 내용이 실제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가능한 이야기임
- 만일 임금계약에서 시간당 20달러로 인상해달라는 요구안이 제시된다면, 이런 계약에서는 시간당 20달러를 보장한다는 것을 강조해야 함. 만일 임금을 인플레이션에 따라 조정되도록 한다면, 시간당 20달러보다 못받거나 더 나아가 기존 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게 될 위험이 수반됨
- 만일 임금계약에서 매년 3%인상안이 요구된다면, 계약서에 매년 3%임금 인상은 무조건 보장한다고 써주면 됨. 물가연동방식의 계약을 해버리면 디플레이션이 생길 때 임금이 하락할수도 있지만, 이렇게 계약하면 임금은 반드시 오르게 된다고 강조
- 임금을 생계비에 연동시키는 계약을 맺고자 할 때를 보자. 피셔는 합리적 계약은 항상 생계비와 연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바 있음. 이런 경우라면 정말로 중요한 것, 즉 구매력만은 반드시 보장해준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함. 역설적이게도 흥미로운 점은 생계비 연동계약에서는 바로 이점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임.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 부분을 강조하지 않으면 이런식으로 프레임되지 않음
- 사회적 지배는 상대적인 것임. 우두머리 수컷은 그 주위 다른 수컷들보다 뭔가를 더 갖고 있는 것임. 얼마나 더 많이 갖고 있는지 그 절대치는 그리 중요치 않음. 두 숫사슴이 한마리의 암컷을 놓고 싸울 때, 목표는 둘다 이길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님. 다른 수컷보다 나으면 됨. 최후통첩 게임과 연관해서 말하면 상대방이 95센트를 가졌을 때 5센트를 얻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음. 내가 5센트, 상대가 95센트를 갖는 것보다는 둘다 아무것도 못 갖는 상태가 더 나은 것임. 이것이 테스토스테론이 추구하는 바임
- 약지가 검지에 비해 얼마나 긴지는 태아에 있을 때 성을 결정하는 안드로겐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에 의해 결정됨. 최근의 많은 연구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긴 약지를 가진 남성들은 경쟁적 스포츠나 협상에 뛰어나고 최후통첩 게임에서 낮은 제안을 거부하는 빈도도 높다고 함. 금융 중개인들 사이에서 약지의 길이와 금융거래의 성공간에 양의 상관관계가 발견되었다고 함. 그리고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금융거래 성공간에도 양의 상관관계가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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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부채 그 첫 5000년

경제 2014. 10. 22. 21:53

 


부채 그 첫 5000년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출판사
부글북스 | 2011-11-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세상에 돈이 있기 전에 거기에 부채가 있었다모든 경제학 교과서들...
가격비교

- 갱단원이 당신에게 총을 들이대며 보호금으로 1천 달러를 요구하는 행위와, 똑같은 갱단원이 총을 들이대며 1천 달러의 융자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행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경우 다른 점이 전혀 없음.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차이가 있음.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에 진 부채의 경우처럼, 세력균형이 어느 시점에 이동하거나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상실하게 되면, 융자는 아주 다르게 취급될 것임. 진짜로 갚아야 할 부담으로 바뀔 것임. 그러나 결정적 요소는 여전히 권총인 것처럼 보일 것임
- 역사적으로 볼 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오명을 떨치려고 노력하는 효과적 방법은 두가지 뿐이었음. 책임을 제3자에게 떠넘기든지 아니면 돈을 꾸는 사람이 더 사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음. 예를 들어 중세 유럽에서는 지주들이 첫번째 방법을 택하며 유태인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웠음
- 지주들은 자신의 영역안에서 유태인들이 고리대금업 외에 다른 활동으로는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고는 정기적으로 유태인들을 나쁜 인간이라고 공격해 그들의 돈을 챙기곤 했음. 당연히 두번째 방법이 더 보편적이었음. 그러나 그 방법은 대체로 융자 당사자 모두가 똑같이 죄인이라는 결론을 낳음. 돈을 빌려주는 행위 자체가 비열한 거래이기 때문. 따라서 양 당사자 모두가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아주 큼.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은 이와 다른 입장을 취함. 중세 힌두교 법전을 보면, 이자를 부과하는 대출이 용납가능한 것일 뿐만 아니라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는 채권자 집안의 노예로 다시 태어난다고, 더 훗날의 법전에는 말이나 소로 다시 태어난다고 되어 있음
- 19세기 중반 루이스 헨리 모건이 북아메리카 이쿼로이 인디언 6개 종족을 묘사했는데, 이들의 주요 경제시설은 공동주택이었음. 그곳에 대부분의 재화를 비축해두고 여자들의 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재화를 할당했으며, 화살과 고기를 교환하는 행위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음. 경제학자들은 이런 정보를 그냥 무시함
- 국부론이 등장하고 몇년 동안 학자들은 그 책에 거론된 예들의 대부분을 면밀히 조사한 결고 거의 모든 예에 등장한 사람들이 돈의 사용에 상당히 익숙해 있었고 실제로 회계단위로 돈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돈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되는 말린 대구의 예를 들어보자. 영국 외교관 앨프리드 미첼-인스는 거의 1세기 전에 스미스가 묘사한 내용은 하나의 착각이며 단순한 신용거래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음
- 뉴펀들랜드 어업이 시작된 초창기엔 거기에 상주하는 유럽인들이 한 사람도 없었음. 어부들은 고기잡이 철에만 그곳에 머뭄. 어부가 아닌 사람은 말린 어류를 구입하고 어부들에게 일용품을 팔았던 무역업자들이었음. 어부들은 잡은 어류를 파운드와 실링과 펜스로 계산한 시장가격으로 무역업자에게 넘기고 그 대금은 장부에 외상으로 남겨둠. 그 외상으로 어부들은 일용품을 구매. 남은 외상은 나중에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어음으로 지급됨
- 메소포타미아 도시에 나타난 시장에선 가격을 은으로 계산했으며, 신전과 궁전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물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 그러나 이곳에서조차도 대부분의 거래는 신용을 근거로 이루어짐. 상인들은 실제 거래에서 은을 사용하기도 했던 극소수의 사람들에 속했음. 그러나 그런 상인들까지도 대부분의 거래를 신용으로 했음. 양조장에서 맥주를 사는 보통사람들은 평소에 외상으로 했다가 나중에 추수기가 되면 그 빚을 보리나 다른 것으로 상환. 이쯤되면 돈의 기원에 관한 전통적 이야기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산산조각 부서지게 됨
- 미첼-인스는 1913년과 1914년에 뉴욕의 뱅킹 로 저널에 두편의 에세이를 발표. 이 에세이들에서 인스는 기존의 경제사가 세워진 그 바탕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부채의 역사라는 것을 강조. 상업과 관련한 오류들 중 하나는 신용이라 불리는, 돈을 저축하는 방법이 근대에 등장했으며, 이 방법이 알려지기 전까지 모든 구입에 대한 대금지급이 현금으로, 다시 말해 주화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세심하게 조사해보면 그와 정반대가 진실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옛날에는 주화가 오늘날에 비해 상업에서 훨씬 작은 역할을 맡았다. 정말로 주화의 양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중세 영국 왕실과 왕실소유지의 수요도 충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국 왕실과 왕실소유지들은 작은 액수를 지급할 목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토큰을 사용했다. 주조 화폐의 양이 얼마나 하찮았던지 왕들이 수시로 다시 주조하거나 발행하기 위해 화폐들을 회수했다. 그래도 상업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 국부론은 새로 발견한 경제학이라는 학과를 하나의 과학으로 정착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옴. 이는 곧 경제학이 그 자체로 독특한 연구영역을,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가 경제라고 부르는 영역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경제도 뉴턴이 그 직전에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확인한 것과 똑같은 법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 스미스의 시대만 해도 경제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는 사상은 매우 새로운 것이었음. 당시 뉴턴은 신을 우주의 시계공으로, 우주의 물리적 장치들이 종국적으로 인간에게 이로운 쪽으로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든 시계공같은 존재로 보았음. 스미스도 뉴턴과 비슷한 주장을 펴려고 노력하고 있었음. 신 혹은 신의 섭리가 세상사에 작용하기 대문에 인간이 자기이익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자유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보편적 복지를 증진하게 되어 있다는 주장이었음. 스미스가 말한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은 그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하듯이, 신의 섭리의 대리인이었음. 다시 말해 그것은 신의 손이었음
- 미첼-인스는 신용화폐론으로 알려지게 된 이론의 대표자였음. 19세기에 그의 고국인 영국에서만 아니라 당시 경쟁을 벌이던 강대국인 미국과 독일에도 열렬한 옹호자를 두었던 입장이었음. 신용이론가들은 화폐는 물건이 아니고 회계도구라고 주장. 달리 말하면 화폐는 절대로 실물이 아니라는 것. 달러나 도이치 마르크를 만질수 없는 것은 시간이나 센티미터를 만질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임. 통화의 단위는 단지 추상적 측정의 단위에 지나지 않음. 신용이론가들이 정확히 지적하듯이,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추상적 회계시스템이 특정한 교환도구보다 훨씬 앞서 등장
- 여기에 당연히 따를 질문은 이것임. 만약 돈이란 것이 단순히 잣대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측정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 대답은 간단함. 부채임. 하나의 주화는 사실상 하나의 차용증서임. 통념적으로 보면 은행권은 일정금액의 진짜 화폐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이고 약속이어야 함. 신용이론가들은 지폐는 금 1온스의 가치와 똑같은 무엇인가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일 뿐이라고 주장했음
- 시장들은 고대 군대 주변에 형성된 것이 거의 확실함. 인도의 사상가 카우틸리아의 실리론과 중국의 염철론만을 슬쩍 보아도 고대 통치자들 대부분이 광산과 군인, 세금, 식량의 관계를 놓고 오랫동안 부심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음. 대부분의 통치자들은 이런 식으로 시장들을 창조하는 것이 병사들을 먹이고 입히는 데도 편리할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결론을 내림. 이는 관리들이 필요한 것을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징발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왕실 소유지나 공방에서 그런 것들을 생산할 방도를 짜느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 달리 표현하면 국가와 시장의 존재는 다소 반대된다는, 애덤스미스의 유산에서 비롯된 자유주의자의 끈덕진 가설에도 불구하고, 역사기록은 정확히 그 반대가 진실이라는 점을 보여줌. 국가가 없는 사회들은 또한 시장을 갖지 않는 경향을 보임
- 모든 인도유럽어를 보면 부채를 뜻하는 단어는 죄와 죄의식을 뜻하는 단어와 동의어임. 이는 종교와 지불, 그리고 신성하고 세속적인 영역들이 돈에 의해 서로 연결되고 있음을 잘 보여줌. 예를 들어 독일어의 돈(geld), 배상 또는 희생(옛 영어 geild), 세금(고트어 gild), 그리고 guilt사이에는 어떤 연결이 있음
- 원초적 부채라는 사상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갖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 신화라고 말할 수도 있음. 한때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창조한 신들에게 빚졌고, 그 빚에 대한 이자로 동물을 제물로 바쳤고, 최종적으로 우리의 목숨으로 원금을 갚았음. 오늘날엔 우리는 생명을 자연에 빚지고 있으며, 그 빚에 대한 이자를 세금의 형식으로 내고 있으며, 적들에 맞서 국가를 지켜야 할 때가 되면 목숨을 내놓는 것으로 원금을 상환함
- 이것이 20세기의 위험한 함정이다. 한쪽에 시장의 논리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은 개인으로 출발한다고 상상하길 즐긴다. 다른 한쪽에는 국가의 논리가 있다. 그 논리 때문에 우리 모두는 상환이 절대로 불가능한 빚을 안은 채 시작함. 우리는 시장과 국가는 정반대이며, 시장과 국가 사이 어딘가에 진정으로 인간적인 가능성들이 있다는 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있음.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이분법임. 국가가 시장을 창조했다. 시장은 국가를 필요로 한다. 둘 중 어느것도 다른 하나가 없는 가운데서는 지속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적어도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형태로는 존재가 불가능함
- 감자와 여분의 구두를 교환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는 측은할만큼 순진한 구석이 있음. 고대인들이 돈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을 때, 그들의 머리속에 처름 떠오른 것이 우호적 물물교환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음. 정말로 일부 고대인들은 선술집에 비치해두고 있던 외상쪽지를 떠올렸을 수도 있음. 아니면 그 고대인들이 상인이거나 행정관이었다면, 창고나 회계장부, 외국산 물품에 대해 생각했을 수도 있음. 그래도 대부분의 고대인들의 마음에 떠올랐던 것은 노예를 파는 행위, 포로들의 몸값 책정, 부패한 세리, 정복군의 약탈, 저당과 이자, 절도와 강탈, 복수와 처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질 신부를 얻는데 필요한 돈이 가족을 파괴하는 힘을 지니는 그 모순이었을 것임.
- 인간의 삶이 매우 복잡한 이유 하나는 이 원칙들 중 많은 것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 도덕적 원칙들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끊임없이 끌어당기고 있음. 교환의 도덕적 논리, 교환에 따른 부채의 도덕적 논리는 많고 많은 원칙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음. 어떠한 상황에서든 거기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원칙들이 작용하고 있음. 이런 점에서 보면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한 도덕적 혼동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님. 어떤 면에서 보면 도덕적 사고는 바로 이런 긴장 위에 구축되고 있음
-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당사자들이 그 관계의 틀로 우월이나 열등을 받아들이고 또 그 관계가 부드럽게 진행중이어서 거기에 독단적인 힘을 더 이상 가할 필요가 없을 때, 그 관계는 습관 또는 관습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보면 됨. 그런 상황이 간혹 정복 같은 국가 창설과 관련있는 행위에서 기원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함. 아니면 설명의 필요가 전혀 없는 조상의 관습으로 여겨질수도 있음. 그러나 이는 왕 또는 우월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바치는 행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임. 거기엔 선물이 전례로 받아들여지고, 또 관습에 보태져 그 후론 의무가 될 위험이 상존함
- 선물이 노예를 만들고 채찍이 개를 만든다. 여기서 선물은 공짜로 주어지는 뭔가를 뜻하지는 않음. 인간존재들이 서로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상호부조가 아님. 누군가에세 감사를 표시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뜻. 그렇기 때문에 그 말엔 그런식으로 행동하기로 한 선택이 어떤 의무를, 부채감을, 그리하여 열등감을 조장했다는 암시가 담겨 있음
- 로스파베에 따르면, 티브족들은 세계 곳곳의 현상인 신부값의 바탕에 깔린 논리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음. 신부값을 전하는 구혼자는 결코 그 여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아님. 심지어 그녀의 아이에 대한 권한을 갖는 대가도 아님. 만일 신부에 대한 대가라면, 그것은 놋쇠막대들이나 고래이빨, 별보배고둥껍질, 심지어 소까지도 어느정도는 인간 존재의 등가물이라는 것을 암시함. 이는 인간경제의 논리에 비춰보면 터무니 없는 말임. 한 인간은 오직 다른 인간의 등가물로만 여겨질 수 있을 뿐임. 결혼의 경우엔 한 인간의 삶보다 더 소중한 무엇인가가 걸렸기 때문에 그만큼 더 터무니없는 말임.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임
- 인류학계에서는 신부값이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고 땅은 특별히 귀하지 않은 곳에서, 그러니까 노동력 관리가 정치의 전부인 곳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이 상식임. 인구가 많고 땅이 귀한 곳에선 그 대신 결혼지참금이 발견됨. 가족에 여자하나를 더하는 것은 먹여야 할 입을 하나 더하는 것임. 그렇기 때문에 신부의 아버지는 돈을 받기는 커녕 딸이 새로운 가정에서 사는 것을 돕기 위해 뭔가를 기여해야 했음. 수메르시대엔 결혼할 때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것은 신랑의 아버지가 신부의 아버지에게 건네는 풍성한 음식선물이었음. 결혼식 잔치에 쓸 음식이었음.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것이 두가지 지출로 갈라진 것 같음. 하나는 결혼을 위한 것이었고 하나는 은으로 계산해 여자의 아버지에게 지급된 것이었음.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지출이 단순히 구매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띠고 처녀의 가격으로 불리게도 됨
- 영웅이 중요시되던 사회체제에선 일대일 교환의 바탕에는 오직 명예의 부채만 있음. 선물에 보답하고, 보복을 하고, 포로로 잡힌 친구나 친족을 구조할 필요성이 강조되었다는 뜻. 명예는 신용과 같은 것이었음. 명예는 약속을 지키는 능력임과 동시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 능력이었음. 그런데 점진적으로 미묘하게, 또 아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도덕적 관계의 핵심을 이루었던 것들이 온갖 종류의 불성실한 술책의 수단으로 바뀌어 버림
- 우리는 권리를 갖는다는 관념에, 말하자면 권리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무엇이라는 관념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음. 사실, 중세의 법학자들이 잘 알고 있었듯이, 한 사람의 권리는 곧 다른 사람의 의무임.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사람의 권리는 다른 사람들에겐 그런 말을 했다고 나를 처벌하지 않을 의무가 됨
- 인간경제 안에서 사람들이 그들이 살아오던 환경에서 송두리째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났을 때, 대부분의 경우 그것 자체가 목적이었음. 중요한 남자들은 간혹 먼 곳에서 전쟁포로를 잡곤 했음. 그러나 그것의 거의 언제나 장례식의 제물로 바쳐짐. 한 인간의 인격을 짓밟는 것은 곧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 본인의 평판과 사회적 존재감을 다소 높이는 것으로 여겨짐. 영웅의 사회들이라고 부른 곳에선 이런 식으로 명예와 망신을 더하고 빼는 것이 정치의 핵심을 이룸. 무수히 많은 서사시와 무용담이 증언하듯이, 영웅들은 다른 사람을 작게 만듦으로써 영웅이 되었음
- 노예제도는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음. 그러나 당신이 자신의 자유(오전9시~오후5시)를 양도할 수 있다는 사상은 적어도 현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 실제로 보면 통상적으로 주말을 제외하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사상이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결정하고 있음. 폭력은 많이 사라졌음. 그러나 폭력의 감소도 우리가 테이저총(사람을 일시마비시키는 전기화살을 발사하는 총)과 감시카메라의 지속적 위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적 협상에 기초한 세상이 어떤 모습일 것인지를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게 된 까닭에 나타난 현상일 뿐
- 인류 역사의 상당기간 동안 금괴나 은괴가 정부의 보증여부와 관계없이 오늘날의 마약딜러의 돈가방과 같은 역할을 맡아왔음. 금괴와 은괴가 소중한 이유는 아무데나 가서 어떠한 물건과 교환해도 사람들이 그걸 받아주기 때문. 그 결과 신용시스템은 상대적으로 평화를 누리는 시기나 신뢰의 네트워크 사이에 통용되는 경향을 보임. 반면 전쟁과 약탈이 특징인 시기에는 신용시스템이 귀금속으로 대체됨. 게다가 시대를 불문하고 약탈적 대출이 지속되다 보면 부채위기가 나타나게 됨. 부채위기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안겨준 때는 바로 돈을 아주 쉽게 현급으로 바꿀 수 있는 때인 것 같음.
- 바빌론의 금융서판을 깨끗이 지우기 위해 마련된 행사는 봄에 여는 신년축제였음. 바빌론의 통치자들은 서판을 깨뜨리는 의식을, 즉 부채기록을 지우는 의식을 지켜보았음. 자연에 맞춰 사회를 소생시키려는 노력의 하나로 경제적 균형을 회복시키는 행사였음. 함무라비와 그의 동료 통치자들은 현명하고 공정한 통치자들의 길잡이로 여겨지던 정의의 태양신 사미쉬를 상징하는 횃불을 높이 들어 올려 행사의 시작을 알림. 그러면 부채의 담보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풀려나 가족의 품에 안김. 다른 채무자들은 땅을 담보로 빌린 돈이 아무리 많이 쌓여 있더라도 그 땅에 대한 경작권을 공짜로 돌려 받았음
- 최전성기의 로마제국은 귀금속을 갈취하여 그것을 주화로 만들어 병사들에게 분배한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이해될 수 있음. 거기에 피정복민들의 일상의 거래에서 주화를 사용하도록 하는 세금정책이 결합되어 있음. 그렇다 하더라도 로마제국의 역사 대부분 동안 주화의 이용은 두 지역에 주로 집중됨. 이탈리아와 몇개의 주요 도시들, 그리고 군단이 실제로 주둔하던 국경지역에서 주화의 이용이 두드러졌던 것임. 광산이나 군사작전이 없던 지역에서 여전히 옛날의 신용시스템이 우세했음.
- 불교가 귀금속을 멀리하는 태도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용거래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대한 입장을 보였음. 불교는 세계 종교들 중에서 고리대금을 공식저긍로 비난하지 않는 극소수 종교중 하나임. 그러나 당시 상황에 비춰보면, 거기에는 특별히 미스터리한 구석이 없음. 폭력과 군대를 거부했지만 상업에는 결코 반대하지 않은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고리대금도 이치에 벗어나지 않음. 아소카의 제국이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더 약하고 더 작은 국가들로 대체되는 사이에 불교는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림. 위대한 군대들의 쇠퇴는 주화가 거의 사라지는 결과를 낳은 한편으로 점점 더 세련된 형태의 신용의 융성을 부름
- 시장의 성장이 자유로운 사람들로 하여금 신분의 족쇄나 공동체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또 투입과 산출을 합리적으로 계산하게 하고, 수단과 목표를 고려하는 습관을 키우게 했던 것은 사실임. 또 이 습관들 모두는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 나타나기 시작한 합리적 탐구라는 새로운 정신에도 불가피하게 반영됨. 합리적이라는 단어도 많은 것을 시사함. 그 단어는 ratio에서 나옴. a가 b의 몇 배인지를 따진다는 뜻인 비율에서 합리적이란 단어가 비롯된 것. 과거 건축가들과 엔지니어들이 주로 이용하던 수학적 계산이 시장의 등장으로 이젠 시장에서 속고 싶지 않은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야 할 것이 됨
- 시장과 국가, 전쟁, 종교 등이 지속적으로 분리되고 결합된 과정
(1) 시장은 근동에서 처음 등장. 정부통치제도의 부산물이었음.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시장의 논리가 군사문제에 개입됨. 여기서 시장의 논리는 축의 시대 전전쟁에서 용병의 논리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하게 됨. 마지막에는 시장의 논리가 정부자체를 정복하고, 정부의 목적을 규정하기에 이름
(2) 그 결과 군사-주화-노예 복합체가 보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물질주의 철학이 탄생. 그 철학은 사실 두가지 측면에서 물질주의임. 신성한 힘보다는 물질의 힘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계획하고 있고, 또 인간 존재의 종국적 목표를 물질적 부의 축적으로 상상한다는 점에서 그러함. 도덕과 정의 같은 이상들은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여겨지게 됨
(3) 또 모든 곳에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성과 영혼을 탐구하는 철학자들이 나옴. 이들은 윤리와 도덕의 새로운 바탕을 발견하려고 노력
(4) 모든 곳에서 이 철학자들 중 일부는 새롭고 예외적일 만큼 폭력적이며 냉소적인 엘리트들에 맞서던 사회운동들과 공동전선을 폈음. 그 결과 인류역사에 새로운 무엇인가가 나타남. 지적 운동이기도한 대중운동이었음. 그것이 지적운동인 이유는 기존의 권력구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현실의 본질에 관한 어떤 이론의 이름으로 그런 노력을 편다고 주장했기 때문
(5) 모든 곳에어 이 운동들은 처음에 평화운동이었음. 그 운동들이 정치를 바탕으로 폭력과 특히 새로운 개념의 공격전쟁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보면 그러함
(6) 어딜가나 도덕의 새로운 바탕을 찾아내기 위해 비인간적인 시장들이 제공한 새로운 도구들을 이용하려는 충동이 있었던 것 같고 또 예외없이 그런 노력이 실패했던 것 같다. 묵가가 사회적 이익이라는 관념을 내세우며 짧게 번창했지만 금방 붕괴하고 말았음. 그런 사상들을 노골적으로 부정한 유가가 그 자리를 대신함. 그리스와 인도에서 도덕적 책임을 부채로 다시 상상하는 작업이 일관되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은 것 같.음 도덕적 책임을 부채로 다시 상상하려는 충동보다 부채가, 그리하여 세속적 연결 모두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려는 충동이 훨씬 더 강했음
(7) 세월이 흐르면서 통치자들의 태도가 변화. 우선 대부분의 통치자들이 개인적으로는 냉소적인 현실정치를 끌어안는 동시에 새로운 철학 및 종교운동들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보인 것 같음. 그러나 전쟁을 벌이던 국가들과 공국들이 큰 제국으로 대체되고 특히 그 제국들이 확장에 한계를 보이며 군사-주화-노예 복합체를 위기에 빠뜨리자, 모든 것이 갑자기 변했음. 인도에선 아소카가 불교를 바탕으로 왕국을 재건하려고 노력했음. 로마에선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인들에게 의지했으며, 중국에선 한나라의 무제가 비슷한 군사 및 재정위기를 맞아 유교를 국가의 철학으로 채택. 그 3명 중에서 무제만이 최종적으로 성공을 거둠. 중국제국은 그 후 이름을 달리하며 2000년 동안 이어짐. 거의 언제나 유교가 공식 이념이었음. 콘스탄티누스의 경우엔 서쪽 제국은 몰락했으나 로마교회는 계속 살아남음. 아소카의 계획이 가장 형편없는 결과를 낳았음. 제국도 붕괴되어 약한 작은 왕국들로 대체되었을 뿐 아니라 불교 자체가 그의 영역에서 밀려남. 그 후 불교는 중국, 네팔, 티벳, 스리랑카, 한국, 일본, 동남아의 여러 지역에서 뿌리를 더 깊이 내림
(8) 최종적 결과는 인간활동 영역들을 놓고 일종의 이상적 구분이 이뤄지게 되었다는 점. 그 구분이 오늘까지도 내려옴. 한쪽에 시장이 있고, 다른 한쪽에 종교가 있음. 이를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이런 식이 됨. 만일 누군가가 어떤 사회적 공간을 물질적인 것들을 이기적으로 구매하는 곳이라고 강조하면, 곧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다른 공간을 차지하고 나서며 거기서는 종국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물질적인 것들은 중요하지 않으며 이기심은 망상이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다고 설교함. 적어도 축의 시대의 모든 종교들이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함. 그 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었음. 절대적 탐욕과 절대적 관용은 서로 보완적 개념임. 어느 한쪽도 반대쪽 없이는 상상이 불가능함. 둘다 단순하고 단호한 행동을 요구하는 제도적 환경에서만 생겨날 수 있음. 그리고 둘 다 비인간적이고 물질적인 현금화폐가 등장하는 곳에 함께 나타난 것 같음
- 축의 시대가 서로 보완적인 상품시장과 보편적인 세계 종교의 출현을 목격했다면 중세는 이 두가지 제도들이 융합한 시기였음. 모든 곳에서 중세는 제국의 붕괴로 시작. 새로운 국가들이 나타났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전쟁과 금은 통화주의, 노예제도 사이의 연합이 깨짐. 정복과 병합도 더 이상 정치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칭송받지 못함. 동시에 국제무역에서 국내시장들의 조직화까지, 경제생활도 점점 더 종교 권력의 규제를 받게 됨. 그 결과 약탈적인 대출을 규제하거나 아예 금지시키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나타남. 또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신용화폐로 회귀하는 현상이 나타남.
- 페르낭 부로젤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와 시장은 정반대로 인식될 수도 있음. 시장은 돈이라는 매개를 통해 재화를 교환하는 방법들임. 역사적으로 보면 잉여곡식을 가진 사람이 초를 구하거나 그 반대로 잉여의 초를 가진 사람이 곡식을 구하는 방법이었음. 반면 자본주의는 무엇보다도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돈을 이용하는 기술임.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돈으로 돈을 버는 손쉬운 방법은 일종의 공식적 독점이나 사실상의 독점을 구축하는 것임. 자본가들이 상인이든 금융가든 아니면 산업가를 불문하고 시장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정치권력과 가까워지려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역사 대부분 동안 반 자본주의 시장국가였음. 그 후의 유럽군주들과 달리, 중국 통치자들은 자칭 중국 자본가들과 결합되는 것을 체계적으로 피했음. 중국의 관리자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통치자들도 자본가들은 파괴적인 기생충으로 보았음.
- 즉시적인 현금이동이 이뤄지지 않은 교환은 부채를 창조. 부채는 시간을 두고 남기 마련. 만일 모든 인간관계들을 교환으로 상상한다면 사람들이 서로 지속적인 관계를 갖는 한, 그들의 관계에는 부채와 죄의식이 걸리게 되어 있음. 거기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부채를 무효로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면 사회적 관계들 역시 사라져버림. 이것이 불교와 상당히 조화를 이룸. 불교의 최종목적은 공, 즉 절대적 해탈을 이루는 것. 말하자면 모든 인간적 및 물질적 애착의 끈을 끊는 것이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런 애착의 끈들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
- 중세의 한 특징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추상적 관념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점. 진짜 금과 은은 대부분 교회와 수도원, 사원 등에 보관되었고, 화폐는 다시 신용화폐가 됨. 동시에 그 과정을 규제할 도덕적 제도를 세우고, 특히 채무자들을 보호할 장치들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모든 지역에서 일어남
- 현대인이 떠올리는 중세의 이미지의 핵심에도 용감한 기사, 탐구여행, 마상 창시합, 로맨스와 모헙이 자리잡고 있음. 신기한 것은 그 이미지가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점. 떠돌이 기사와 비슷한 것조차도 존재한 적이 없었음. 떠돌이 기사라는 표현은 원래 급이 낮은 귀족의 젊은 자녀나 서자들 중에서 선발된 프리랜스 전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음. 이 전사들은 물려받을 게 없었던 터라 큰 부를 노려 서로 무리지을 수 밖에 없었음. 그러다 보니 많은 기사들은 떠돌이 자격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약탈을 노리고 있었음. 상인들의 생명을 아주 위험하게 만든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었음. 이 떠돌이 자객들이 12세기에 들어 극성을 부리자, 위험한 그들을 민간 권위의 통제아래 두려는 노력이 체계적으로 전개됨. 기사도 규범 뿐만 아니라 마상 창시합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나온 것. 거기엔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게 만드는 그 이상의 의도가 숨어 있음. 기사들을 서로 반목하게 만들고, 또 그들의 존재를 일종의 의례로 바꿔놓기 위한 것.
- 부절에 관한 것 중에서 놀라운 점 하나는 비록 그것이 우정과 유대의 증표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거의 모든 예들에서 양 당사자가 실제로 창조하기로 동의한 것은 불평등의 관계라는 점. 부절을 통해 부채나 의무, 또는 또 다른 존재의 명령에 대한 복종의 관계가 형성된 것.
- 고대 로마 이래로 유럽은 금과 은을 동양으로 수출해 왔음. 문제는 유럽이 아시아인들을 사로잡을 물건들을 많이 생산해내지 못했다는 점. 그랬기 때문에 유럽으로서는 비단과 향료, 강철 등 수입품에 대한 대금으로 경화를 지급하지 않을 수 없었음. 초기 유럽의 팽창정책은 주로 동양의 사치품을 구입할 대가로 지급할 금과 은의 새로운 출처를 찾으려는 노력이었음. 초반에는 대서양의 유럽이 이슬람 경쟁자들보다 중요한 이점을 한가지 누릴 수 있었음. 지중해에서 수세기 동안 투쟁을 벌이며 갈고 닦아온 해상전투의 전통이었음.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인도양에 들어서는 순간, 인도양은 평화의 무역지대여야 한다는 원칙이 깨어짐. 포르투갈 함대는 항구도시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고 약탈하기 시작. 이어 전략적 요충지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했으며 인도양의 비무장 상인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사업할 권리를 주는 대가로 돈을 뜯어냄. 거의 같은 시기에 중국까지 가는 지름길을 찾아나선 제노바의 지도제작자 콜럼버스가 신세계에 도착. 그 결과 스페인과 포르투갈 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횡재를 누릴 수 있었음.
- 자본주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전통적 공동체가 시장의 비인간적 힘에 의해 점진적으로 파괴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 그보다는 신용경제가 이자의 경제로 바뀌는 것에 관한 이야기임. 말하자면 도더거 네트워크가 국가의 비인간적인 힘의 침추로 인해 변절되어 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됨. 엘리자베스 여왕시대는 스튜어트 왕가시대의 영국의 마을 사람들은 사법제도에 호소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음. 법이 자신에게 유리할 때 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았음. 부분적인 이유는 이웃들은 서로 도와가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지만 주된 이유는 법이 지나치게 가혹했기 때문.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여왕시절에 방랑(실업)에 대한 처벌은 초범일 경우 그 사람의 귀를 형틀에 박는 것이었고, 재범일 경우 사형이었음.
-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을 쓰던 시점에는 영국 가게 대부분은 여전히 사업의 큰 부분을 신용으로 처리하고 있었으며, 이는 곧 고객들이 언제나 가게주인의 선행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임. 스미스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리는 없음. 그보다는 그는 유토피아적 그림을 그리고 있었음. 그는 모든 사람이 현금을 사용하는 사회를 상상하길 원했음. 부분적 이유는 그가 모든 사람이 현금을 사용하면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당시 중산층의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 그런 사회에선 사람들이 모두 돈을 정확히 계산한뒤 please와 thank you라고 말하며 가게를 떠나야 할 것임. 그는 이 유토피아적 이미지를 더욱 확대.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 좇더라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 허영심과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지닌 부자들의 타고난 이기주의와 탐욕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고 함.
-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이미. 반면 대부분의 근로자들에게 있어서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노동을 의미.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임금노동이 어떤 의미로든 종국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음. 자기 몸밖에 팔 것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도 순수하게 자유로운 행위자로 여겨질 수 없기 때문. 그런데도 자유로운 임금노동이 여전히 자본주의의 바탕으로 여겨지고 있음
- 근대의 돈은 정부부채에서 비롯되었고, 정부는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돈을 빌림. 이것은 펠리페 2세 스페인 국왕시대 못지 않게 지금도 진실임. 중앙은행의 창설은 전사들의 이해와 금융가들의 이해의 결합을 영구히 제도화한 것이었으며, 이 제도화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 등장해 마침내 금융자본주의의 바탕이 됨. 닉승느 70년에서72년 사이에만 인도차이나 반도의 도시들과 마을들에 400만톤의 폭탄과 소이탄을 쏟아부은 전쟁의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달러를 변동환율제로 만듬.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공습을 비난하며 미국의 어느 상원의원은 닉슨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폭격기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함. 부채위기는 폭탄대금의 직접적 결과였음. 더 구체적으로 좁히면, 폭타을 떨어뜨리기 까지 필요한 거대한 군사적 인프라에 대한 지출의 직접적 결과였음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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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

저자
피트 런 지음
출판사
흐름출판 | 2009-10-2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지금까지 우리는 경제학에 감쪽같이 속아왔다!” 불안한 현실에서...
가격비교

- 경제학자는 판매와 구매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계산하고 사람들이 그 방식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단정함.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은 그러한 기준과는 무관. 동네 가게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일과 같은 간단한 경제행위와 길을 가르쳐주는 행위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음. 둘다 서로의 공통된 이해, 의사소통, 신뢰, 즉 인간관계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 레너드 모퉁이 지역 주민들과 개개 점포사이의 강한 관계는 부분적으로 역사, 사회적 복합구성, 민족적 다양성에서 나옴. 종종 이 관계는 시장의 힘보다 더 강한 것으로 드러남. 따라서 경제행위를 결정하는 요소는 가격이 아닌 바로 이 관계임
- 질레트는 이윤추구를 위해 소비자가 원하는 면도기를 경쟁적인 가격에 공급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님. 오히려 사람들에게 이러이러한 면도기를 원하도록 설득하는 일에 엄청난 돈을 지출함으로써 면도기와 면도날을 지속적으로 공금. 아마도 질레트의 성공에서 무엇보다도 일관되고 중요하게 부각되는 점은 독창적 마케팅에 대한 투자임
- 전통경제학은 모든 물건은 가격을 갖는다고 전제함으로써 모든 자원을 사실상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음. 즉 인간에게 가치를 갖는 모든 대상을 자원으로 생각하는 것임. 둘째, 전통경제학은 집에서 기른 농작물을 물물교환하는 아프리카 농부부터 맨해튼 빌딩 숲 꼭대기 층에서 일하는 마케팅 회사의 최고경영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공통된 특성을 지닌다고 전제함. 간단한 두 전제에서 무엇은 결국 가격이라는 하나의 요소로, 누구는 한 명의 대표적 인간으로 귀결됨. 사실 무엇에 대한 전제는 누구에 대한 또 다른 전제나 마찬가지임. 모든 자원이 가격을 갖는 것은 대표적인 인간의 특성대로 모든 자원에 기꺼이 가격을 매길 때만 가능하기 때문임
- 모든 부분의 이름을 기억하든, 역사를 줄줄이 꿰든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체계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작용하는가이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그 체계를 이해한 것이다.
- 사람들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직장에 대한 정보도 완벽하지 않으며, 수입의 극대화를 동기로 삼지도 않음. 흥정실험, 수입과 행복의 연관성, 차별 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임금은 생산성 이외의 요소에서 강한 영향을 받음. 임금은 사회적 네트워크와 집단, 제도에 대한 접근권, 가족배경, 타인을 돕기 위해 수입을 희생하려는 의지, 운의 영향을 받음. 임금을 결정하는 요소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공정한 임금체계, 공정한 세제, 차별철퇴를 위한 노력, 다른 관련문제들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킬 것임. 새로운 사상과 지식은 새로운 논쟁을 낳기 마련임
- 집단 소속감은 사람들의 구매행위를 변화시킴. 풋볼 셔츠의 가격은 엔디안 본능의 위력을 여실히 증명함. 마케팅 담당자들은 항상 이 본능을 이용. 광고는 특정한 차를 운전하거나 특정한 브랜드의 옷을 입거나 특정한 술을 마시면 엘리트 대열에 낄 수 있다고 암시. 어떤 광고는 국내산 쇠고기를 먹는 것이 진정한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암시. 모두 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효과가 있음
- 감성 마케팅이 논리에 호소하는 비감성 마케팅보다 더 효과적임. 따라서 자사제품이 경쟁사 제품보다 우수한 이유를 설명하는 광고보다 한 가정을 배경으로 건강해 보이는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제품을 보여주는 광고가 더 효과적임. 텔레비전 광고에 드라마 기법을 사용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줌.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물과 줄거리를 사용한 광고는 제품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설명식 광고보다 품질에 대한 논쟁이 더 적음. 가장 효과적인 감성 또는 드라마식 광고는 브랜드에 대해 단순하면서도 일관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보여줌
- 가장 빠르거나 좋거나 강한 결과를 낳는 옵션은 평균적으로 완전히 실패할 가능성이 높음. 사업적 결정의 경우 가장 높은 이윤이 기대대는 옵션이 리스크까지 높다면 이윤 극대화 목표는 부적절한 전략일 수 있음. 이런 결정은 기업계에서 일반적 현상임. 경영자의 태도에 대한 조사결과는 많은 경영인이 이윤을 최고 우선순위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보여줌. 그들은 회사의 장기적 생존을 최고 우선순위로 꼽음. 이윤보다 혁신을 더 우선순위에 두는 경영자도 있음. 혁신은 생존에 연결됨. 한편, 이윤보다 시장점유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경영자도 많음. 기업이 클수록 생존가능성도 더 큼
- 불확실한 경제환경에서 상호이익이 되는 거래는 마법처럼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 의사소통,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함. 심지어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열렬한 시장 옹호자라 하더라도 시장은 실패할 수 있고, 그럴 때 어느 정도의 정부개입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인정함. 정보의 비대칭성과 독점은 전통경제학에서도 인정하는 두개의 잠재적 시장실패의 원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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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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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이데올로기

경제 2014. 10. 22. 20:58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저자
마조리 켈리 지음
출판사
북돋움 | 2013-03-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일하지 않는 주주 몫은 ‘이익’인데, 왜 직원 몫은 ‘비용’인가...
가격비교

- 경제 귀족주의의 6가지 원칙
(1) 세계관 : 기업 재무제표 이면의 세계관은 주식 소유주의 몫을 최대한 많게, 직원의 몫을 최대한 적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2) 특권 : 주식 소유주는 부의 창출에 별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부에 대한 권리를 가짐. 과거 귀족들이 무위로 특권을 누리던 것과 마찬가지임
(3) 재산 : 주식회사는 봉건영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재산으로 여겨지므로 재산가가 소유하며 사고팔 수 있음
(4) 통치 : 주식회사는 재산가 계급만이 투표권을 가지는 귀족주의적 통치구조에 따라 운영함
(5) 자유 : 기업자본주의는 주식 소유주만을 위한 전 민주주의적 자유개념을 따름. 이 개념은 직원과 지역 공동체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제대로 작동함
(6) 주권 : 주식회사는 자신이 민간주체이며 자유시장은 자기조정적이라고 주장함. 봉건영주들이 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주권을 주장했던 것과 닮을 꼴임
- 경제민주주의의 6가지 원칙
(1) 계몽 :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으므로 기업의 직원과 기업이 속한 공동체도 자본의 소유주와 같은 경제적 권리를 누림
(2) 평등 : 시장 원칙에 따르면 주식 소유주에게만 귀속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음. 주식회사의 부는 그 부를 창출한 이에게 속하며, 공동체의 부는 모두에게 귀속됨
(3) 공공선 : 상장 주식회사는 반 공적 정부로서 사적재산이나 사적 계약 이상의 존재임. 따라서 공공선에 대한 책임을 짐
(4) 민주주의 : 주식회사는 사람으로 이뤄진 공동체이며, 기업이 속한 더 큰 공동체가 그러하듯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것이 가장 좋음
(5) 정의 :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듯이 부유한 이가 다른 이들보다 더 큰 권리를 행사해서는 안되며, 주식회사가 인간의 권리를 누려서도 안됨
(6) 혁명적 진화 :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주식회사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 역시 시민에게 있음
- 내부자인가 외부자인가 정하는 문제가 핵심임. 문화사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외부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제국주의자들의 근원적 도구라고 말함. 그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원주민에게 식민지 예속의 역사는 지역성을 외부자에게 빼앗기면서 시작되었고 그 외부자들의 현존 때문에 처음에는 상상을 통해서만 그들의 토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했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핵심에는 이야기가 있음. 사이드는 이야기하는 힘, 혹은 다른 방식의 이야기가 형성되는 것을 막는 힘이 문화를 규정한다고 말함. 존재의 거대한 사슬은 구세계의 이야기였고, 그 안에는 누구든 자신의 자리를, 그 자리가 아무리 낮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함축적으로 담겨 이씀. 재무제표는 기업의 이야기임. 그 안에는 직원의 수입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한마디로 가능한 한 적은 액수여야 한다는 생각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음
- 주식시장은 더 이상 투자의 장이 아님. 생산적 산업과 기업이 의존하는 자본수집 및 조달 시스템과 그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주식 매입자는 저축자금을 기업에 제공하지 않음. 그저 주식의 가치가 오를 가능성을 추정하는 일을 할뿐. 주식 매입이 매입자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하는 공헌이 있다면 자신의 보유주식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길 원하는 다른 주주를 위해 유동성을 유지해주는 것뿐임
- 주식거래의 주된 목적은 유동성, 즉 투자자산을 유동화해 현금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것. 물론 주식을 팔 수 없다면 주식은 별 가치가 없어질테니 분명 필요한 기능임. 하지만 유동성은 투자가 아니라 추출을 위한 기능임. 귀족사회에 비유하자면 고생없이 수수료와 사용료를 거두어 들이는 것과 비슷함
- 적대적 인수라는 가혹한 현실, 거기에 마찬가지로 이익극대화를 원하는 새로운 초대형 기관 투자자들의 요구탓에 이사회는 드디어 잠에서 깨어남. 깜짝 놀란 곸은 몸을 움직여 CEO를 덮쳤음. 더 무자비했어야 한다면서. 91년부터 93년은 전설적 시기로 기록됨. 이 기간중 행동에 나선 이사회들은 제너럴 모터스, IBM,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닥, 웨스팅하우스, 보든 등 24개에 이르는 거대기업의 CEO들을 해고. 살아남은 CEO들은 주가가 오른다면 수백만 달러에 달할 스톡옵션을 받음. CEO들은 명백한 갈림길에 있었음. 주주에게 충성해 엄청난 부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쫓겨날 것인가. 이런 압박아래 주식회사의 세상은 경영자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투자자 자본주의 시대로 재빠른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을 발걸음을 옮김
- 영국의 경우 명예혁명은 민주주의로 가는 중요한 발걸음이었음. 하지만 모든 이를 대변하는 주권이 아니라 부유한 계층만을 대변하는 주권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고작 한걸음을 내디딘데 불과. 오랜 시간에 걸쳐 투표권을 갖는 계층이 확대되었고, 이런 구도에도 변화가 일어남.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로부터 30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기업통치에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 주식회사는 여전히 재산가 계급의 이름으로만 통치됨. 그 뿌리를 보면 실제로 주식회사를 통치하는 것은 존재의 거대한 사슬이라는 정신적 유산, 바로 부를 소유한 이들만이 중요하다는 사상이 있음. 여기에는 이들만을 기업사회이 진짜 일원으로 여기는, 따라서 이들만이 유일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더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담겨 있음. 이런 사고에는 귀족만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17세기 영국 사회의 편견이 그대로 남아 있음. 당시의 영국사회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가 구현하는 사상들이 사실상 통치하는 사회였음. 그 사상이란 귀족의 이해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며, 귀족만이 통치의 권한을 지닌다는 생각임. 오늘날 상장 주식회사도 이와 다를 바 없는 관념이 존재. 주주의 이해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며, 주주만이 통치의 권한을 가짐
-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닫힌 사회의 원형이 부족적 귀족사회라고 지적. 이러한 고대문명에서는 사회의 운명을 지배계급의 운명과 동일시함. 오늘날 주식회사의 운명을 주주의 운명과 동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닫힌사회에서는 기본전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음. 태양이 뜨는 일처럼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는 법과 관습, 변치 않는 금기가 있고, 그런 것들로 이뤄진 주술적 구조 안에서 부족들이 살아가기 때문. 포퍼는 금기에 의한 통치, 다시 말해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규범에 의한 통치가 닫힌 사회의 특징이라고 말함. 이런 문화에서는 자연법칙과 규범법칙을 구분하지 않음. 예컨대 중력의 법칙과 왕권신수설이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임. 이런 사회는 관습이 자연법칙과 같은 힘을 지닌다고 믿으며, 그런 관습이 영영 변하지 않을수도 있음.
- 포퍼에 따르면 이런 사회에서 통치의 기술은 일종의 목축기술로 인간무리를 관리하고 억압하는 기술과 다름 없음. 인간무리란 노동자와 하인들을 일컫는데, 그들의 유일한 기능은 지배계급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해주는 것일 뿐임. 포퍼는 모두가 자신의 자리가 적절한 것이라고, 세계를 다스리는 법칙이 정해준 자연스러운 자리라고 느끼기 때문에 아무도 이 같은 사회질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말함. 이런 사회에서는 심지어 노예조차 사회적 긴장을 일으키지 못함. 노예는 사회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가축무리의 일부이기 때문. 그들의 열망, 그들의 문제에서 지배층이 사회문제라고 느낄만한 무언가가 반드시 생겨나는 것은 아님. 고대의 닫힌 사회가 부족적 귀족사회라면 포퍼는 그 현대식 변형을 전체주의 국가에서 보았음.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출간한 것은 1943년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이 세계 무대를 활보하던 시대였음. 그는 이 책으로 전체주의를 비판. 포퍼는 전체주의적 도덕론에서는 내가 속한 집단, 내가 속한 부족, 내가 속한 국가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함. 따라서 지배족속에게 유리하다면 다른 국가를 공격하는 것이나 자국의 시민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것고 허용됨. 닫힌사회는 명백히 비도적적임
- 오늘날 주주들이 기업통치를 장악하는 것은 자연법칙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규범법칙에 불과. 규범의 표현이요, 누가 중요한지에 대한 믿음일 뿐. 한마디로 말하면 편견에 불과.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주주 중심주의를 자유시장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봄. 고전적 닫힌 사회의 사고로는 자연법칙과 규범법칙을 구분하지 못함. 우리는 액튼이 권력이 토지와 함께 간다는 옛 교의라고 표현한 사상, 즉 소유에서 통치의 권리가 나온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임. 그리고 이런 사상은 다시 주식회사가 일종의 재산이며, 주주가 주식회사를 소유한다는 가정을 바탕에 둠. 재산을 통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
- 계약의 자유가 자유개념의 법적 변형태라면 경제적 변형태는 자유시장임. 여기서 자기조정적 자유시장의 교의,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을 이끌어 모두의 이익을 끌어낸다는 개념이 등장. 보이지 않는 손은 애덤 스미스에게서 왔다고 흔히 알려졌지만 사실은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세상에 내놓은 예정조화설과 연결되어 18세기 초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개념이었음. 예정조화설이란 신이 세계의 조화로운 질서를 미리 정해놓았으며, 그 덕분에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 최고의 세계가 실현된다는 생각.
- 18세기 끝 무렵 철학자들은 숨어있는 손과 기본적 조화라는 개념을 거의 버림. 프랑스 혁명에서의 폭력에서 조화가 시대정신이 아님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 하지만 경제학 강의실에는 이 개념이 여전히 남아 있고, 경제학 교수들은 철학이 아니라 과학으로 이 개념을 가르침. 이 개념이 귀족시대에 탄생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님. 귀족들에게 그 시대는 실제로 가능한 최고의 세계였을지 모름. 하지만 다른 모든 이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음.
- 재산과 주권이 얽혀 있는 관습은 토지자산에서 비롯되었지만 다른 형태의 부가 생겨나면서 그리로 확대됨. 기업이 바로 그런 새로운 부의 형태중 하나였음. 경제사가 페르낭 브로델은 상업의 수레바퀴: 문명과 자본주의 15~18세기에서 최초의 주식합명회사는 자본만의 연합체로 그 안에서 자본 혹은 주식이 회사자체와 동일시되는 하나의 덩어리를 형성했다고 말함. 따라서 회사는 주식을 보유한 이들이 통치했음. 학자들은 오늘날 주주가 잔여 청구권자라는 지위로 주주 통치권을 정당화할지 모르지만 잔여 청구권자로서의 지위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함. 주식소유와 주권을 연결짓는 것은 최소한 7세기 동안 이어진 전통임. 멀리는 13세기, 브로델이 시에나 부근 은광이나 프랑스 구리광산의 지분을 사들일 수 있던 때라고 표현했던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감. 이 지분을 보유한 이들이 곧 회사였음
- 사유재산을 소유한 자들은 투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부터 이어져오는 편견에 따라 경제권 주권을 양도받음. 우리는 이런 선택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선택을 바꿀 힘이 없다고 느낌. 사람들은 경제 시스템이 부를 지닌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음. 그 믿음 때문에 부의 권력이 커지고 견제받지 않으며 부자연스러울 만큼 강력해지는 것임. 부의 권력은 글로벌 자유무역을 통해 국가경계를 넘나들면서 모든 사회적 경계에서 벗어남. 그 과정에서 따라다니는 유일한 규칙은 재산권 보호의 규칙이다.
- 주주가 곧 주식회사라는 개념은 말할 것도 법적 허구임.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허구가 있음. 주주는 끊임업시 재산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 주주들이 개인으로서는 아무리 관대하고 생산적 사람들이라 해도, 시스템 안에서는 부를 추출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수동적이고 대체로 비생산적이며 기업안에 자리잡지 않는,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투기꾼의 집합체일 뿐임. 이에 반해 주식회사는 물건을 만들고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교적 안정적 공동체임. 따라서 주주를 주식회사와 동일시하는 것은 명백한 허구, 너무도 대담해서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허구임
- 주식회사는 아주 이상한 종류의 사람이다. 너나 나보다 크고, 국경을 넘나며 거주하고, 곳곳에 존재함. 진짜 사람은 그가 사는 곳이 거주지이지만, 기업이라는 사람은 맘에 드는 법 체제를 골라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거주지로 삼을 수 있음. 또한 기업이라는 사람은 불사의 존재로 항구적 수명을 누림. 왕처럼 기업에게는 두개의 신체가 있음. 하나는 기업자체의 건물과 직원들(자연적 신체)이며, 나머지 하나는 주주들로 이뤄진 신체(정치적 신체)임 주식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 다니므로 정치적 신체는 빈번하게 영혼의 이동을 겪음. 정치적 신체로서 주주들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불가능함. 따라서 주주들은 유한책임의 교조아래, 주식회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당연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음. 주주들이 요구하는 행동이 아무리 냉혹할지라도 그 행동은 모두 옳은 것임. 주주의 정치적 신체는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생각조차 할 수 없음. 왕에 대한 허구와 마찬가지로 주시고히사에 대한 허구도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함. 바로 현재의 권력구조를 보호하는 것임.
- 우리가 비난을 보내는 대상은 부자들이 아니라 빈부 차별이 가치체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함. 부를 얻을 권리에 대한 존중은 미국의 정신에 없어서는 안될 일부임. 많은 사람이 언젠가는 부를 누리고 싶어하며, 그럴 가능성은 열려 있어야 함. 하지만 그 가능성은 기업가에게뿐 아니라 종업원에게도, 주주에게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원들에게도 활짝 열려 있어야 함. 그리고 부를 얻을 가능성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에서 부의 편중을 가져오는 주된 요인을 바꾸어야 함. 그 요인은 바로 상속의 메커니즘임
-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적 광고에 항의했던 것처럼 우리는 주식시장이 부를 창출한다는 금융기고가들의 주장에 항의해야 함. 페미니스트들이 mankind라는 단어를 거부했던 것처럼 주주가 주식회사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거부해야 함. 마찬가지로 주주를 소유주라 부르며 통치권을 주장하는 데 이의를 제기해야 함. 대신 우리는 주주를 투자자라고, 아니 더 정확히 하자면 투기꾼이라고 불러야 함. 봉건영지의 권리를 연상하게 하는 재산권이라는 말대신 부유권이라고 불러야 함
- 도처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손 개념 옆에 스미스의 다른, 더 혁명적 사상을 불러냄으로써 애덤 스미스를 되찾아야 함. 애덤 스미스는 기업의 커다란 이익이 다른 시민들의 어깨에 가해지는 터무니 없는 부담(absurd tax)이라고 보았음. 여기서 스미스 역시 제한없는 자본가의 전유의 변호자로 이용되었지만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를 주장했음. 스미스는 이윤은 낮은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었음. 그러나 이 사실은 종종 간과됨. 그는 가장 빠르게 파멸로 치닫는 국가를 보면 언제나 이윤이 가장 높다고 지적. 그런 상태는 오직 소수의 배만을 불릴 뿐임. 스미스는 덧붙여 자연스러운 수준 이상으로 이윤을 올림으로써 부자들은 사실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동료시민들에게 터무니 없는 부담을 지우는 셈이라고 말함
- 오늘날 사용되는 재무제표는 주주의 대리인이 주주에게 주주의 투자가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보고하려고 처음 만들었던 간단한 시스템으로 시작. 주식회사 전체의 성과를 보여주려고 의도한 것이 전혀 아니었음. 하지만 이 보고서는 결국 기업성과의 표준지표가 되고 말았음
- 조르주 뒤비는 사생활의 역사에서 봉건화는 권력의 사유화를 가리킨다고 말함. 10~11세기에 벌어진 그 사유화 과정을 고전적 사례로 꼽을 수 있음. 이 기간 로마제국이 무어진 이후 공적 권력이 사그라지고 사적권력이 성장. 뒤비는 이에 대해 각 거대가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사적 국가가 되었다고 설명함. 거대귀족이 왕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대였음. 19세기 들어 주식회사가 새롭게 규정되면서 미국 역시 비슷한 봉건화 과정을 거쳤음. 이 시대가 새로운 귀족제의 시대, 철도왕들과 록펠러, 모건, 카네기, 밴더빌트, 굴드 등과 같은 자본영주의 시대였던 것은 우연이 아님. 역시가 매튜 조셉슨은 1934년 저작 약탈귀족에서 신흥귀족들의 봉건혁명을 이렇게 기술함. '이 신흥지배계급은 대개, 아주 적절하게도, 귀족, 왕, 제국설립자 심지어 황제라고 불림. 이들은 최초의 봉건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격적이다. 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국은 상농 민주주의였다. 그들이 떠날 때...미국은 다른 모습이었다. 단일화된 산업사회로 지배층 일부의 손에 효과적 경제통제권이 쥐어져 있었다. 신흥귀족은 국가의 천연자원과 거래망을 장악하고 정치기관들을 정복하고, 사회의 철학을 금전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 90년대에는 주식시장이 연 15%의 속도로 끊임없이 커질 것이라 믿게 된 사람이 많았음. 하지만 GDP가 연 3%로 성장하는 세상에서 이런 믿음은 위험한 환상임. 경제의 한 부문이 전체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는 일은 경제의 다른 부문으로부터 구조적으로 이익을 빼앗아 오든지 (임금수준을 압박하거나 탈세를 저지르는 행위를 통해), 혹은 지속불가능한 방법으로 가치를 인공적으로 부풀려(부정회계를 저지르거나 실물경제를 부풀렸다가 꺼뜨리는 거품을 만드는 짓으로) 가짜 돈을 만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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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기원과 서양의 발흥

저자
에릭 밀란츠 지음
출판사
글항아리 | 2012-12-3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계적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근대 세계의 기원에 대한 전 세...
가격비교

- 우리는 기술진보와 역동성, 창의성과 관련해서 중세의 노동형태들을 마치 근대세계와 근대이전을 나누는 중요한 차이인 것처럼 무시하지 말아야 함. 중세의 노동형태들이 지닌 역동성과 혁신은 그것들이 결코 보수적이고 정체된 비생산적 경제적 실체들의 화신이 아니었음을 보여줌. 사실상 산업혁명 이전(19세기 이전)의 시장은 보통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했음. 중세 도시사회가 정치기구들의 중심에 동업조합이 있었음. 따라서 우리는 근대화/발전 이론이 찬미하고 개념화한 산업혁명의 개념뿐 아니라 농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음. 불행하게도 근대화 이론은 동업조합의 하부구조를 간과할 뿐만 아니라 이따금 중세전반을 산업혁명 이전의 음울하고 무기력한 망각의 구렁으로 밀어넣으면서 자유방임주의가 경제의 모든 것을 휩쓸고 가버리기만을 기다리는 시기로 단순하게 처리하고 끝을 맺음. 또 근대화 이론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단계적 관점에서 강조하는 마르크스 주의의 이론처럼 중세와 마찬가지로 16세기 근대 이전 시기에 대해서도 시큰둥하게 생각함. 따라서 근대화 이론은 근세에 형성된 도시들 사이의 연결망과 거기서 그들이 자립성장한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함.
- 오직 영국만이 국내에서 토종기술로 산업혁명을 통해서 근대산업세계를 열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 그것은 체계적 관점이 아니라 일국적 관점이기 때문. 우리는 근대라는 결과를 개별국가나 정부차원이 아니라 유럽또는 서구전체라는 커다란 하나의 차원에서 보아야 함.
- 서유럽의 도시국가들은 14세기 중반 봉건제의 위기를 가장 먼저 겪었지만 또한 거기서 가장 먼저 벗어났음. 그들은 유럽 중앙과 동유럽에서 새로운 시장 뿐 아니라 철광석 생산지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 엘베가 동쪽에 위치한 지역들은 서유럽이 회복하는 동안 오래도록 그 대가를 지불해야 했음. 유럽내에서 분업의 출현은 부를 구축하는 과정의 일환이었음. 이것은 거꾸로 자본주의의 등장을 설명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음. 즉, 단일국가 내에서 내적 변환을 통해 자본주의가 나타났다는 주장은 매우 어리석고 주제넘은 말임.
- 중세의 법률가와 그들을 찾는 고객들은 이자지불을 은폐함으로써 교회법을 피해가는데 대단히 능숙해짐. 교회자체가 돈을 빌리기도, 빌려주기도 함. 또 교회는 이자를 주지 않는 척 하면서 이자를 주기 위해 개발된 교묘한 속임수도 사용. 요약하면,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은 매우 널리 퍼져서 경제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가 됨. 따라서 아무리 신학적으로 반대를 해도 대부행위를 막을 수 없었음. 신학자들이 계속해서 고리대금업의 도덕적 문제점을 상세하게 지적했지만 14세기 경에 이르면 교회가 실제로 고리대금업을 처벌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듬. 심지어 이자율을 낮추는 것을 허용하기 위해 교회법을 바꾸기까지 함
- 14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서 자본주의의 발생과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발전은 서유럽에 있는 교회와 시청사에 기계식 시계가 등장한 것. 실제로 서구의 상인과 금융업자들에게 나타나는 합리적인 태도는 기계식 시계가 설치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 자본주의적 심성으로 충만한 그들은 시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김. 따라서 시간을 측정하는 역사적 혁명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지식과 상거래, 산업에 미치는 영햑력은 멀리까지 퍼져나감. 시간은 이제 잘게 쪼개지고 합리화된 상품이 되었으며, 시계는 점점 더 노동을 통제하는 도구가 됨. 모든 곳에서 노동자들은 시간을 측정하는 새로운 기계, 즉 휴대용 회중시계와 교회나 시청의 종탑에 달리 괘종시계에 종속되어야 했음. 그때부터 시계는 사람들이 언제 얼마만큼 일하고 쉴지를 정밀하게 결정함
- 봉건제는 쇠퇴기를 고통스럽게 겪으면서 서서히 몰락했고, 마침내 자본주의의 논리가 봉건제를 대체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이렇게 볼때 역사적 연속성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짐. 14세기에 이미 합법적인 화폐시장이 있었음. 그 안에서 금융업과 무역업을 하는 기업들은 지점을 두고 지폐 통화를 주고받았으며 모든 시장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계절이나 일정한 주기별로 경기변동을 거듭했음. 경제사가 존 데이는 다음과 같이 지적. "14세기 중반 상업 자본주의는 이미 경제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상거래 조직을 완성했는데 그것들은 외환, 예금은행, 위험보험, 국가재정, 국제무역회사, 상업부기처럼 이후 400년 동안 시장에서 작동될 요소들이었다."
- 직물산업의 엄격한 임금통제 정책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음. 당시 국내와 해외시장은 모두 경쟁이 심했기 때문에 상인들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을 늘리면서 동시에 임금을 낮추는 것이었음. 이것은 결국 천을 바래고 다듬는 축융공들과 천을 짜는 직조공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이어짐. 그들은 호경기에도 빚을 내지 않고는 먹고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음. 일반적으로 말해 중세의 노동계급은 착취하기 좋아 볼일때면 언제라도 데려다 쓸 수 있는 (대개는 계절적)잉여노동집단이었음. 게다가 아이들까지 일을 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수는 계속 늘어났음
- 인류가 정식으로 역사교육을 시작한 이래로 교육적 전통으로 굳어진 중세와 근대의 구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 하지만 우리는 이제 중세를 아무런 편견없이 바라보려고 애써야 함. 자본주의가 싹트는 초기 형태와 특징들이 어떻게, 왜, 얼마만큼 생겨나고 성장해서 16세기에 스스로 모습을 바꿀 수 있었는지 알아야 함. 이러한 이행과정을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당시의 정치와 경제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라는 한정된 분석단위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 송나라 시대 중국 부의 원천은 상공업이었음. 송나라 초기에 국가수입은 대개 농업에서 거둬들인 세금에서 나왔지만 북송시대 중반부터는 무역에서 나오는 수입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 12세기 말, 중국정부 전체 수입가운데 약 70%가 차, 소금, 포도주에 대한 간접세에서 나왔다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음. 송나라는 북방 유목민 세력의 침입이 점증하는 데도 불구하고 농민들을 강압으로 수탈하여 그것으로 연명하는 정부가 아니었음. 그것보다는 오히려 교역을 증진시켜 국가를 유지하려 애썼음. 상업을 중시하는 활동은 송나라 시대에 급격히 늘어났는데 당시 교역의 확대는 도시개발을 늘리고 광산, 도자기, 소금과 같은 산업에서 분업을 촉진시킴. 이러한 도시개발과 분업의 확대는 유럽의 직물과 광산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동일한,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본주의적 특성으로 발전. 이것은 저장, 광동, 푸젠에서의 상업활동이 유럽 여러나라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로 일어났다는 사실로 확인됨. 따라서 이 기간의 생활수준은 중국이 유럽보다 훨씬 더 높았을 것임. 이와 같은 국제교역의 급성장은 유목민족의 점증하느 위협과 관련이 있었음. 유목민의 위협은 송나라가 교역 확대를 통해서 국부를 증진시키기 위해 중상주의 정책을 써야함 하는 조건을 만들었음.
- 중국은 북방의 변경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떠오른 거대한 제국 때문에 북쪽과 북서쪽으로 더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자, 바다로 눈을 돌리고 무게중심을 동남아 해양지역으로 이동시킴. 여진족과 몽골족의 침략위협이 점점 거세지자 남송정부는 북방의 군사위협에 대응하면서 국가재정을 늘리기 우해 교역을 활성화하지 않을 수 없었음. 대규모 기병대 양성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남송이 북방의 위협에 맞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강성해군을 키우는 길밖에 남은 게 없었음. 중국 정부가 교역을 중시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국가가 운하를 건설하고 그곳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상인을 보호하고 상거래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음. 그것은 이후 국내시장 형성에 기여했고 중국은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음.
- 몽골의 송나라 정복이 중국이 자본주의로 이행하지 못한 유일한 원인일수는 없지만 중요한 변수인 것은 부인할 수 없음. 그러나 1250년부터 1350년까지 몽골제국이 세계-체제에서 중심역할을 했다고 보는 아부-루고드 같은 일부 학자는 그러한 해석에 이의를 제기함. 그렇다면 누가 몽골제국의 세계 지배로 이익을 봤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할 것임. 단기적으로 몽골의 지배자들은 군사정복으로 많은 이익을 얻은 것은 틀림없고 상인들도 몽골의 확고한 지배덕분에 보호와 거래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음.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유럽인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니었을까? 서양상인들은 몽골의 평화시대 덕분에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봤음. 몽골의 평화시대는 서양의 경제발전에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마련해 줌. 몽골의 칸 제국 통합은 유럽의 라틴계 민족들에게 흑해 지역의 비잔틴 문명이 물려준 경제적 유산을 전달해주는 계기가 되었음. 처음에 몽골제국을 위해 세금을 걷는 청부인으로 고용되어 다른 어떤 집단보다 많은 이익을 본 사람들은 터키의 이슬람 상인과 위그루족 상인들이었음. 또한 일부 서유럽 상인들은 몽골지배 아래서 관직을 얻어 수혜를 입음.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서유럽 상인들은 아시아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큰 이익을 봄. 몽골의 평화시대 덕분에 중앙아시아는 보기드문 정치통합의 시대가 유지되었고, 그 결과 유럽의 무역상들이 물밀듯이 그 지역으로 유입됨. 그들은 대개 이탈리아 상인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마르코 폴로였음. 그밖에 유럽의 국가사절단과 직인, 선교사들도 걷잡을 수 없이 몰려왔음.
- 중상주의 사회체제는 중국문명에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음. 중국 황실의 고위관료들이 갖고 있는 기본생각은 부유한 상인들의 가치체계와 정반대였기 때문. 실제로 자본축적은 있었을 수 있지만 항구적으로 생산산업 부문에 속한 기업에서 자본을 축적하는 일은 유교관료들이 지속적으로 금지. 그와 같은 사회적 행위들이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위협할수도 있었기 때문. 따라서 중국에서 상인 동업조하븐 유럽문명의 도시국가에서 볼 수 있는 상인 동업조합의 지위와 영향력에 결코 이를 수 없었음.
- 상인계급은 도시를 건설하고 제도를 확립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음. 하지만 중국에서는 국가권력이 도시를 세움. 따라서 중국은 도시국가의 역사를 갖지 못함. 중국이 독자적인 부르주아 계급을 만들어내지 못한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임.
- 중국의 대도시들은 대개 황실을 대변하는 관리들이 지배했는데, 특히 사법과 재정문제와 관련해서 더욱 그러했음. 그리고 유럽의 도시들과 달리 중국의 도시들은 해방과 자유라는 개념이 전혀 구현되지 않음. 송나라때부터 중국제국에서 부와 정치권력, 사회적 지위는 실제로 지주귀족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음. 하지만 유럽에서는 기생 지주계급이 무척 강력해져 위협세력이 되면 상인계급이 군주와 동맹을 맺고 지주계급에 대항할 수 있었음.
- 이제 서유럽이 동아시아보다 훨씬 더 상업화 되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임. 중요한 것은 중국제국이 자본주의 없이 상업화를 이루었다는 사실. 그런 결과가 초래된 것은 전쟁을 일삼던 유럽국가체제가 대규모 금융과 생산, 해외무역과 같은 활동을 민간이 지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요구함으로써 마침내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반면 중국은 그러한 활동은 모두 국가가 통제했기 때문. 강력한 상인집단과 같은 민간인 이익단체가 국사나 대외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중국의 국가경영개념과는 전혀 맞지 않았음. 오히려 중국상인들은 국가를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에서의 성가신 경쟁자로 맞서야 했음. 더 나아가 중국제국이 정치적, 군사적 확장을 꾀할 때마다 정부는 새롭게 편입되는 국경선을 따라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자원을 빼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자원을 이동시켰음. 대개 유럽의 중상주의 역사와는 반대되는 일이 일어났음.
- 13세기와 14세기 대부부의 기간동안 유럽 도시 내부와 농촌은 분업을 계속해서 확대. 동업조합 안에서의 전문화도 마찬가지로 확대됨. 이런 현상이 몽골의 평화시대(1250~1350)에 발생한 것은 우연의 일치였음. 거래비용과 보호비용의 급격한 감소는 서유럽 도시국가들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 그 결과 유럽 도시의 산업 대부분은 분업을 확대했음.
- 13세기와 14세기에 들어 유럽상인들은 아시아와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점점 더 많아지면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생각들이 바뀜. 그들은 13세기 이전의 동아시아를 포함한 비기독교 세게를 극도의 혼란에 빠진 곳으로 여기고 상징화했지만 몽골이 점점 영토를 확장하면서 그곳이 온갖 부와 경이가 가득한 보고... 욕망의 세계라고 생각하기 시작. 몽골제국이 다소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1250~1340년 동아시아는 상인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함. 14세기 전반기는 유럽상인들이 몽골아시아로 침투하는 황금시대로 볼 수 있음. 따라서 몽골의 평화시대로 촉진된 동양의 사치품에 대한 욕망증대는 유럽의 도시 상인 엘리트들이 식민지 착취와 부등가 교환, 임금노동자 착취, 그리고 이어진 개발되지 않은 영토에 대한 상업화와 예속, 수탈을 기반으로 한 지속적 성장전략을 쓰도록 자극했음.
- 국가의 지원은 유럽 상인들이 아시아와 장기교역하고 장기적으로 그곳을 식민화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요소였음. 유럽 상인들이 이런 국가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주요 교역 거점들에 있는 아시아 상인들과 관계를 맺었을 테고 그들이 구축한 교역망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임. 그러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마침내 영국 상인에 이르기까지 유럽상인들은 모두 국가의 지원에 힘입어 그것과 다른 길을 택할 수 있었음. 포르투갈 정부는 중국과 달리 해외교역을 장려해 교역에 참여하는 국민들에게 혜택을 제공. 네덜란드도 17세기 초 네덜란드 정부는 상인들이 교역하는 곳이 어디든지 그들의 부를 늘리는 데 크게 관여함. 근세 포르투갈 정부는 인도국을 세워 국제교역과 정치무대에서 입지를 높이고자 하는 일종의 거대한 기업체로 불림
- 그동안 주류 사회학계에서는 막스베버가 주장한 것처럼 카스트 제도의 문화적 가치가 남아시아 아대륙의 근대화를 막았다고 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해왔음. 전통적으로 계층에 따라 직업을 차별화하고 대대로 세습되는 인도 사회의 카스트 제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개인주의를 경험한 유럽과 달리) 시민 도시공동체의 출현을 저해했음. 기존의 계급구조를 수용하는 종교가 역동적 사회변화를 방해했다는 베버의 주장 이후로, 카스트 제고의 수용과 관련된 문화적 가치의 특수성은 남아시아 반도에서 기술변화가 억제되고 자본주의와 근대성이 출현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주요 변수가 됨. 남아시아의 고유한 종교, 문화적 가치가 카스트 제도를 뒷받침하고 그 제도가 사회경제적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음. 남아시아 사람들을 유럽의 경제적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인류학적 인간(특히 남아시아에서는 위계적 인간)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이런 식의 추론이 낳은 또 하나의 어처구니 없는 결과임
- 종교와 문화적 가치를 서양과 비서양을 구분하는 주요한 특징으로 강조하는 것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남아시아 사회가 본질적으로 정체되어 이으며 통치체제가 허약하고 미개발된 상태라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전략을 수행할 수 없다고 예단하는 것임.
- 서유럽 전역에 걸쳐 모든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대개가 무장하고 전투훈련을 받았음. 이런 상황은 다른 도시국가들에 맞서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인근의 귀족층과 지역군주들이 경제적 요구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특권(독점권)과 도시의 자치권을 지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 그러한 도시 민병대는 군주에 대해서는 자본의 힘을 상징적으로 과시하고 귀족층에 대해서는 제도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구실했음
- 유럽이 외부세계를 체계적으로 주변부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부르주아 계급이 제도화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특정한 정책을 채택한 덕분. 그러나 남아시아의 상인계급은 그런 중상주의 전략을 택하고 실행할 수 없었음. 말라카 같은 동남아 국가들을 빼고는 장기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 남아시아는 중세유럽과 비교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도시운동이 확산되지 못했고 기존의 도시와 농촌의 봉건권력을 직접 대적하고 무너뜨릴 시민계급이 나타나지도 않았음. 그렇다고 남아시아 상인들이 수동적이었다는 것은 아님. 비교적 규모가 큰 상인조직들은 당시 사회에서 여러 중요한 구실을 했음. 국왕과 왕실관료들의 신임을 얻어 세금, 통행료같은 각종 과징금을 징수하기도 했고, 기존 종교체제의 보호를 등에 업고 매우 특수한 경우의 소송을 중재하기도 했음.
- 남아시아 국가들이 해군력 방위강화와 다양한 국가기구 정비, 지정학적 선택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유목민의 방랑생활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바닥에 깔고 이해해야 함. 유목민족의 습격은 중국제곡에 끊임없는 위협이었음. 그것은 15세기 초에 마침내 중국제곡이 주요한 해상원정을 포기하게 된 중요한 요소였음. 유목민의 침입이 남아시아 북서쪽 변경에서도 마찬가지로 가공할 위협이었음
- 경제가 성장하면 당연히 기술혁신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새로운 발명은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이익이 될 때 비로소 발생함. 노예제가 근본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정치경제체제는 본디 중요한 기술혁신을 장려하지 않음. 기술혁신은 자본주의 체제의 등장과 관련된 권력의 축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 비록 다양한 세계제국들이 개별적으로 이룩한 기술 혁신들이 매우 인상적일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그러한 기술혁신은 새로운 기술을 가장 잘 전파할 수 있는 경제체제에서 가장 잘 돌아가기 마련임. 임금노동자가 많이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임금비용을 상쇄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기업가들이 지배하는 사적자본이 기술장치와 혁신에 투자됨. 노예제 경제에서는 노예를 감시하고 강제하는 데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혁신을 추진할 동기가 없음. 피라미드의 건설은 당시 이집트가 상시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그 성과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경제의 구조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예제 국가가 창출할 수 있는 강제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 어쨌든 강제로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을 얻고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에 주목해서 볼 때 북서아프리카의 지속적인 인적손실은 더 고도로 발전된 정치조직체로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았음.
- 상인개인도 이슬람 국가도 상인들의 항해를 발전시키고 보호하는 데 자신들의 자원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음. 통치자나 국가가 교역활동을 위해 제공하는 정치적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지중해 교역에 얼마나 많은 자원과 정치력을 발휘했는지 비교해볼 필요가 있음. 이슬람 정치권력이 교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은 것이 역량과 수단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의지가 부족해서인지를 불문하고 어쨌든 지중해 해안지역에 있는 이슬람 국가들이 왕성하고 정교한 해상교역체계를 쉽게 발전시킬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11세기부터 이탈리아 도시들의 지배와 개입에 손을 들게 된 이유인 것은 분명함.
- 이슬람 세계에서는 도시와 농촌간의 경계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음.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는 정책을 지향하는 독립된 도시제도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음. 대다수 이슬람 도시에서 서유럽 도시들과 비슷한 체계적인 식민지 전략을 시행하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음. 세우타처럼 유럽의 형태에 가장 근접한 도시도 유럽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음. 대개 부유한 북아프리카 상인들은 정치권력과 군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음. 그러나 그러한 노력을 제도화하하지는 못했음. 몇몇 북아프리카 국가가 서유럽보다 더 교역에 의존했고 거대한 대상교역은 자본주의적 영역으로 구분될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일어나지 않았음.
- 부의 축적은 상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불문하고 특별히 다르지 않음. 그러나 중심부가 주변주를 식민지로 만들고 지속적으로 착취, 지배하는 과정을 통한 체계적 자본축적 정책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유럽상인들이 추진한 예외적 과정이었음. 처음에 이과정은 유럽도시들의 인근 농촌지역과 지중해 유역, 동유럽 지역에서 일어났지만 나중에는 유럽 이외의 지역, 예컨대 대서양 제도,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일부 수정을 거쳐 반복되더니 마침내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지역까지 확대되었음
- 군사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자본축적의 근대적 형태들, 즉 불법적 합법적 독점이나 신식민주의, 노동자 착취는 서유럽에서 최초로 발생한 자본주의적 착취의 장기적 과정에서 나온 것임. 그러한 축적은 선대제라는 경제전략에서 뿐 아니라 도시국가의 가장 두드러진 정치적 특성이었음. 상인계급은 도시국가에서 권력을 축적하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시민권 개념)를 확립했음. 그리고 그것은 상인계급에게 이익을 주는 식민지화 및 주변부 구축과 병행해서 일어났음.
- 마르크스는 산업생산과 근대 공장체계의 영향력에 주목하는 바람에 근대 산업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국제분업체계가 근대 공장체계처럼 최근에 생겨났다고 결론지음. 그러나 국제분업이 발생한 것은 19세기보다 더 오래전임.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몰두하지 않았던 것은 중세와 근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
- 13세기 농촌에서 직접 과세의 부담은 도시의 간접과세보다 훨씬 더 무거웠음. 1280년대 이탈리아 중부 농촌지역 피스토이아는 도시가 내는 것보다 6배나 더 많은 세금을 냄. 농촌은 도시에 항상 채무를 진 상태였음. 농촌은 도시로부터 끊임없이 돈을 빌리고 지주가 아닌 도시 주민들이 농촌에서 지대를 받아 챙기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됨. 도시국가의 배후지 콘타도는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작물보다 환금작물 재배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었고 오늘날 제3세계 지역과 다르지 않게 착취가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기 시작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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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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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종말

경제 2014. 10. 21. 20:43

 


세계화의 종말

저자
자크 사피르 지음
출판사
올벼 | 2012-10-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세계화의 종말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 자크 사피르 교수(파리고등...
가격비교

- 우리가 40여 년간 경험한 세계화는 무역의 세계화와 금융의 세계화가 결합한 것. 금융의 세계화는 브레턴 우즈 협정에 의해 확립된 국제통화체제가 73년 와해되면서 그 기반이 조성되었으며, 무역의 세계화는 자유무역의 확대과정을 통해 구현됨.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가 진행되어 온 각각의 단계에서 폭력과 전쟁의 씨앗이 만들어짐. 오늘날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음. 바로 경제와 사회의 전면적 퇴행임. 이 퇴행은 부유한 나라들을 먼저 강타했음. 그렇다고 신흥 개도국들을 관대하게 다룬 것도 아님. 더욱이 역사적 퇴보는 자원자원의 무분별한 개발을 초래하여, 무려 15억명이 넘는 지구촌 사람들이 환경재난 속에서 나날이 피폐해져 가고 있음. 사회적 유대마저 파괴되는 나라가 속출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현란한 불빛 아래 광적인 개인주의가 주는 충격에 시달리고 있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실들이 또 다른 퇴행, 최악의 퇴락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
- 7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세계 GDP는 크게 증가했더라도, 그 시기는 경제활동의 상품화가 빠르게 진행된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회계적 관행에 따라 무시할 수 업을 정도의 통계적 가공물이 GDP와 GNP에 포함되었을 것임. 그러므로 최근 30여년 간 세계무역의 상승과 GDP증가의 상당부분은 실제적인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함. 이 변화는 국민소득의 산정규범에 의해, 예전에는 고려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이뤄져 온 생산등이 단지 통계에 반영된 것일 뿐임. IMF, 세계은행 등과 같은 세계경제기구들은 개도국들이 수출상품의 생산을 늘릴 것을 권고해 왔는데, 그 근거가 되는 국제무역통계에는 상품화의 진전에 의해 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함. 특히 70년대 초부터 90년대 말까지 무역량을 비교할 때 통계적 착오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데, 오차가 대략 전체 무역량의 30~5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됨. 따라서 무역의 세계화가 짧았던 20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신화임. 세계화는 1차대전의 발발로 중단되고 오랜 쇠퇴기를 거쳐 70년대부터 부활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하지만, 사실상 세계화의 황금기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음
- 러시아는 세계경제에 통합되어 있으면서도 WTO가 규정하고 있는 세계화 규칙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움.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의 입장은 명확함. 러시아는 주요 국제기구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WTO에 가입하기를 원하지만, WTO가 먼저 보장해야 하는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음. 러시아는 자국 성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WTO의 규칙들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이 기구의 외부에 머물기를 원함. 또한 최근 러시아는 WTO의 규정에 비춰볼때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벨라루스 및 카자흐스탄과 하나의 블록을 형성해서 WTO에 참가하겠다는 것. 러시아가 자신의 조건을 끝내 관철시킨다면 WTO의 일관된 원칙을 흐트리는 데 성공하는 것. 사실 러시아의 경제성장 과정은 무역 세계화의 제도들과 일정정도 단절하는 것이 아주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좋은 사례임. 러시아는 98년 예기치 않은 충격적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그후 9년 연속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음.
- 프랑스 자동차회사 시트로엥사는 DS-19/21/23모델을 20여년 동안 약 150만대를 생산했음. 그런데 오늘날 이 모델의 경우 연간 생산량 150만대가 최소 손익분기점임. 이와 같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려면 판매시장이 넓고 많아야 함. 다국적 기업들은 국제무역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해 옴. 무역자유화의 초기에 주요 생산거점들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생산공정의 한 부문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간 경우는 아주 많았음. 생산공장의 해외이전은 국제무역의 확장 초기에 큰 기여를 함. 그런데 국제무역이 대폭 발전한 것은 분명하지만, 리카르도가 19세기 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모직물과 포르투갈 와인 경우와 같이 공업과 농업부문간 교역이 아니라, 같은 산업부문 내의 교역이 증가한 것임. 하나의 생산공정을 구성하는 여러 단계간에 이뤄지는 무역형태는 국제무역이 비교우위에 따른 전문화가 아니라 공장들 간의 기술적 특화에 의해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줌. 따라서 무역의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기업의 세계화임. 하지만 세계화가 초국가적인 글로벌한 기업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님. 여러 사람들이 동일한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각 개인이 속한 민족적 특성은 작업의 구상 과정에서도 뚜렷이 나타남. 한 부품을 설계할 때 프랑스 기술자는 열역학적 관점에서 모델을 개념화하는 데 반해, 일본 기술자는 부품을 시각화하고 형태변화를 꾀하는 방식을 택함. 미국과 러시아, 영국의 기술자는 또 다르게 작업할 것임.
- 지난 40년간 진행된 세계화가 알려준 교훈 중 하나는 나라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고유한 기술문화가 있기 때문에 동일한 기술이라도 나라마다 적용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나며, 이에 따라 경영문화도 국가별로 고유한 특성을 띤다는 점. 그리고 이런 차이점은 19세기 말 이후 기업의 역사적 발전과정이나 국가의 전통적 경제개입 방식에도 반영되어 있음. 그 외 다른 차이점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 예를 들면 알파벳과 표의문자의 차이나, 열린 국경을 가진 나라들(브라질, 러시아, 미국 등)과 이른바 자연적 국경으로 둘러싸인 나라들(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처럼 대조적인 생활공간에 따른 차이점을 들 수 있음.
- 유럽연합의 확대과정이 유럽의 전통적 핵심국가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동유럽 국가들의 국민에게도 유익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음. 따라서 해외직접투자를 이타적 선택이라고 정당화할 수 없음. 결국 유럽연합의 확대가 갖는 의미는 서유럽 국가를 동유럽 신규가입 국가들과의 경쟁으로 몰아넣어 서유럽의 사회모델을 와해시키겠다는 엘리트들의 의지가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뿐임. 게다가 몇몇 산업영역에서 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되기도 했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님. 유럽 차원에서 세계화는 사실상 전통적 핵심국가의 노동자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었음. 이런 까닭에 유럽연합과 유럽연합의 각종 제도들이 세계화 과정에서 야기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할 수 있음. 유럽연합은 서유럽 국가의 노동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했으며, 신규가입 국가의 사회적 수준을 서유럽 수준으로 빠르게 수렴시킨 것도 아님. 오히려 산업부문의 사회적 환경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한편, 대기업에게는 막대한 이윤을 보장해줌.
- 무역의 세계화는 개도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심각한 사회적 퇴행을 낳고 있음.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화는 부국의 빈곤층을 더욱 가난하게 하고 빈국의 뷰유층을 더 부유하게 하는 정책일 뿐임. 실제로 세계화는 지배층들이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노동계층에 양보했던 것을 모두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로 활용되었음. 그러나 세계화는 또한 정치적 한계에 직면했음. 도하 어젠다의 협상실패가 그 증거임. 우리는 분명 패러다임의 전환과 마주치고 있음. 아직 그 전환이 언제 어떻게 구체화될지 알 수 없지만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함.
- 대공황이란 비극적 시기는 국제적 통화, 무역체제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케인즈의 성찰이 무르익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 케인즈가 이 시기로부터 이끌어낸 교훈은 세가지 방향으로 정리됨. 먼저 30년대 초반의 경험으로부터 국제통화체제에서 유동성 공급능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교훈을 이끌어냄. 케인즈는 모든 형태의 금본위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더욱 확고히 했음. 그 다음으로 자유무역에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애초의 입장을 버리고 기본적 체제로서 보호주의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위급한 시기에는 자급자족에 가까운 보호정책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 케인즈가 도출한 두번째 교훈은 자유무역이 20세기에 긍정적 내용을 모두 소진했다는 점. 가장 중요한 세번째 교훈은, 국가간 조율이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국가정책들의 운용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점. 모든 협력의 체제는 행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임.
- 금융자유화는 지지자들이 약속했던 혜택을 가져다 주지 않았음. 개도국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연구작업들은 자본계정의 개방이 성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줌. 이보다 앞서 이루어진 연구들은 외국자본에 대한 개방이 실제로는 내수의 변동성을 높였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는데, 이 문제는 확실히 단기자본의 경기자극적 성격에 기인. 또 다른 연구는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국가들이 바로 이러한 단기자본에 가장 덜 의존했던 나라들임을 입증했음. 자본 자유화를 옹호하는 논리적 추론은 다음과 같음.
* 개도국들은 투자를 위해 자본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사실임)
* 투자자본은 외부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 (이 문제는 나라의 사정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음)
* 따라서 필요한 자본을 유치하고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자본이동에 대해 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은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오류임)
- 한국 등 동아시아와 러시아 등을 파국으로 몰아넣엇던 97~99년의 금융위기는 73년 이래 미국과 IMF의 정책이 함께 만들어낸 통화의 무질서가 낳은 결과이며 세계금융질서의 중대한 파열을 의미. 사실 이 위기를 계기로 금융의 세계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음. 금융자유화에서 비롯된 위기는 그 영향력이 실로 파괴적이었으며, 특히 미국과 IMF는 위기의 통제에 있어서 완전한 무능력을 드러냈음. 이 사실은 세가지 중대한 결과를 초래. 첫째, 세계경제의 금융화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음. 세계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금융위기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인 전제가 되었음. 이미 98년부터 미국이 이제껏 강요해온 세계 금융, 통화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기 시작. 두번째는 위기를 경험한 국가들이 새로운 대외경제전략을 수립하게 만들었다는 점. 사실 이렇게 수립된 전략은 현재의 위기를 초래하는 데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음. 97~99년 위기가 낳은 긴박감은 세계겨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도록 하기에는 부족했음. 대부분의 나라들은 세계겨제를 구조적으롤 개혁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보다는 자국경제의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비축하는 데 주력했음. 케인즈가 제안했던 국제통화체제가 정착되어 있다면 하등 필요없을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제무역에서 공격적 수출전략을 전개. 이 전략들은 선진국의 임금정체를 야기함으로써 선진국들의 불균형을 심화시켰음. 현 금융위기의 출발점인 미국, 영국, 스페인 등의 가계부채의 위기는 다른 나라들이 외환보유고의 축적을 위해 추진한 공격적 수출전략에 기인하는 바 큼. 여기서 국제통화 무질서에서 비롯된 악순환의 전체상을 확인할 수 있음. 이 악순환 속에서 보호주의 정책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이 등장하게 됨. 이 나라들은 무역적자와 가계부채의 증가로 인해 경제적 불안정이 위험수위에 있기 때문. 하지만 보호주의 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무질서를 더욱 심화시키고 수출국들의 안정성이 위협받게 됨. 이 상황은 정확히 케인즈가 피하고자 했던 유형의 악순환임. 케인즈가 통화동맹의 원칙들과 조정가능한 고정환율제, 방코르의 역할, 무역규칙과 자본통제를 결합한 체계를 제안한 이유는 모든 나라들이 이웃나라의 안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제정책의 진정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음. 세번째 결과는 러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외환통제정책을 부활시킨 것임. 중국이 위안의 태환성을 확대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거부한 것은 확실히 현명한 선택이었으며, 러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정책에서 시사바든 바 큼. 이처럼 케인즈의 생각은 유효성을 인정받고 있음. 자본과 환율에 대한 통제는 대내적으로 자유로운 경제정책을 추진할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자국 경제의 안정적 발전경로를 찾아가는 데 필수적임. 하지만 환율과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를 확립하는 것은 미국과 직접적 갈등을 낳는 민감한 사안임. 현재로서는 미국의 정책목표는 다른 나라들의 경제적 주권의 수호와 양립할 수 없음. 아시아 국가들의 산업화 전략에서 대한 최고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인 로버트 웨이드는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문제의 본질은 미국과 정치경제적 주권을 수호하기를 원하는 다른 나라들 간의 갈등에 있다고 규정함.
- 건전성 규제가 위험을 예방하지 못하고, 다가올 미래에서도 무기력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무질서가 초래할 결과로부터 자국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전략들이 강구되어야 함. 여러 신흥경제국가들은 외환보유고를 대규모로 축적하는 전략을 선택했음.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전략은 세계적 차원의 금융조절이 현재로는 불가능하다는 자각의 직접적 결과임. 특히 앞서 일어난 위기에서 IMF의 실패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에 상당한 활력을 다시 불어넣었음. 01년 IMF는 위기관리에 대한 무능력을 자인하면서 신흥국의 전략을 지지하기로 결정했음. 하지만 이 정책에 수반되는 비용은 막대했음. 이것은 금융비용이기도 하고 예산비용이기도 함. 왜냐하면 축적된 경상수지 흑자는 투자를 위해 사용될 수 있기 때문. 이 관점에서 보면 금융자원의 기회비용과 투자에 할애할 수 있었던 재정자원의 불태화로 인해 초래된 성장지연은 바로 금융개방과 세계화에 의해 초래된 것임. 하지만 개도국에게는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음. 개도국은 내수를 강력하게 억제하면서 공격적 수출전략을 추진해야만 했음. 중국은 이 전략을 추진한 대표적 나라임. 우리는 중국인의 전략을 약탈적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는 97년고 99년 사이 국제 금융환경의 불안정성에 의해 야기된 혼란에 대한 중국의 선택으로 이해해야 함.
- 화폐는 거울 또는 확대경과 같은 역할을 함. 실물세계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하고 더욱 증폭시키기도 함. 이 결과는 경직적 정보모델의 결론과 완벽하게 일치. 사회경제체제의 개별성 자체는 사회경제체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국가의 역사적 산물이며, 이 개별성은 모든 통화정책의 연구에서 핵심적인 분석대상임. 각 국민경제에는 생산적, 금융적, 사회적 구조에 조응하는 인플레이션율이 존재. 이보다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경제와 사회는 지속적으로 손상을 입을 수 밖에 없음. 따라서 국민경제 간에는 인플레이션율이 차별화되는 현상이 계속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함. 그런데 단일 통화는 상이한 속성을 갖는 국가경제들에게 공통의 틀을 부여하며, 이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국가들 간의 경쟁력격차가 커졌음. 물론 국가간 재정이전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면 부조화와 이질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유로존이 당장 재정통합에 성공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음. 유로는 오랜 준비끝에 출범했지만 이론적으롤 고루한 것이었음.
- 유로는 달러가 누리는 것과 같은 정치적 힘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음. 유로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들이 유럽대국의 건설이라는 해법을 수용하지 않는한, 그리고 유로가 유로존 회원국 간의 경제논리의 차이로 인해 내부적인 침식이 진행되는 한, 결코 미국과 같은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없음. 위기가 시작된 이후 유로존의 이질화 현상은 계속 진행되었음. 유로존 차원에서 소득을 균등화하는 기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 몇 년 안에 이질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임. 하나의 통화가 국제적인 대외준비금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경제라는 조건 외에 다른 조건들이 필요함. 달러의힘은 사실상 미국이 지리, 전략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특별한 위상에서 비롯된 것임. 이 부분에서 유로와 유로존은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지 않음. 미국을 대체하려는 계획을 추진한다손 치더라도 그에 필요한 수단이 없음. 또한 유로존이 현재의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명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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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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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5가지 유령들

저자
존 퀴긴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2-06-1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죽어야 마땅한 경제 이론이 왜 계속 살아나는가? 우리를 가난하게...
가격비교

- 세계 금융위기 발생에 한몫을 한 아이디어들
(1) 대안정기 : 85년 이후는 유례없는 거시경제 안정기였다는 생각
(2) 효율적 시장가설 : 어떤 투자든 금융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이 그 가치의 최 근사치라는 생각
(3) 동태확률일반균형 : 거시경제 분석은 무역수지나 부채 수준 같은 경제지표가 아닌, 미시경제적 개인행동 모델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
(4) 트리클다운 경제학 : 부자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이 결국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5) 민영화 : 현재 정부에서 담당하는 기능은 그것이 무엇이든 사기업에서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
- 위 아이디어들은 한데 뭉쳐서 하나의 패키지를 형성. 이를 두고 영국에서는 대처주의, 미국에서는 레이건주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경제적 합리주의, 개도국에서는 워싱턴 콘센서스, 학계에서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름. 대개 이 용어들은 비판적 뉘앙스를 풍기는데, 이런 패키지를 분석하는 이들이 대부분 이념적 틀을 비판하는 비평가들이기 때문. 정치적으로 지배적 위치에 있는 엘리트들은 스스로 어떤 이념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식에게 어떤 이념적 꼬리표가 붙기라도 하면 강한 반감을 드러냄. 그들에게 이념은 그저 상식일 뿐임
- 90년대 이후 장기간 계속된 경제성장과 구소련 붕괴 같은 정치적 사건들이 맞물려 미국은 새로운 낙관주의와 승리주의의 시대를 맞이함.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는 당시 대중의 정서에 부응하는 방식을 보여줌. 후쿠야마는 역사를 시간의 흐름 이상으로 만든 거대한 갈등이 끝났으며, 냉전의 종결은 "인류의 사상적 진화가 끝나고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의 최종 통치체제로 보편화될" 전조라고 주장. 여기서 그는 서구식이 곧 자본주의를 뜻한다고 전제했음. 그러나 자본주의의 의미에 대해서느 몇가지 모순을 보임. 그가 말한 자본주의는 최종승리를 거머쥔 시장 자유주의를 뜻함. 그러나 보편화된 사회질서라는 주장을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그의 자본주의에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서부터 뒤늦게 미국에서 생겨난 승자독식 사회에 이르기까지 서구사회에서 관찰되는 온갖 정치경제체제들이 모두 포함되어 버림. 프리드먼은 이 같은 미묘한 차이들을 생략. 그의책에는 재미 있는 표현과 인상적 비유로 가득한데 그중에서도 황금구속복은 단연 눈에 띔. 이는 세계화된 경제시스템에서는 시장자유쥬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황금빛 번영에 이르는 길임을 암시. 만일 시장자유주의 원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금융시장의 디지털 들소떼가 질주를 멈춘다는 것. 후쿠야마는 신체제 예찬론 덕분에 일약 슈퍼스타가 되었음. 그의 책은 널리 읽히지는 않았지만 다방면에 인용됨. 반면 프리드먼의 가볍고 경쾌한 찬사는 지식층의 인정은 별로 얻지 못했지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름. 그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렉서스를 소유하는 신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음. 이 대열에 경제학자들이 동참한 것은 나중의 일로, 경제학자들은 90년대까지 줄곧 생산성 증가 약세와 물가상승 가능성, 전후 호황기를 기준으로 한 높은 실업률을 걱정했음. 그러나 2000년대 초 미국의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황금기와는 정반대의 패턴이 포착되었음. 자료는 생산량과 고용의 변동성이 오히려 줄어들었음을 보여주었음.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이런 변동성 하락을 80년대 중반에 있었던 일회성 하락과 같은 맥락으로 보았음. 80년대 초 미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는 제한적 물가상승 억제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 때문에 이른바 볼커 침체가 일어났고 이후 일회성 하락이 발생했었음.
- 21세기 초, 미국에서는 해마다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파산을 선언. 사실 이 기간 동안 미국에서는 이혼보다 파산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음. 파산의 가장 흔하고 직접적 원인은 실직과 예기치 않은 의료비였음. 그러나 그 저변에는 부채문화가 자리하고 있음. 즉 기존에 부채가 있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금 압박이라는 문제에 봉착했다는 뜻
- 70년대 이후 시장자유주의로의 이동이 (그 과정에 어떤 불공정과 비효율이 포함되어 있든지 상관없이) 일단은 번영을 가져왔다는 주장은 이제 실질적 타당성을 잃었음. 현재처럼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뭔가 지킬만한 게 있다면 최근 실시된 정책들의 결과가 아니라 그런 정책들이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그 무엇일 것임
- 중국과 인도의 강한 성장세는 시장자유주의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도 잇음. 그도 그럴 것이 두 나라 모두 자유시장경제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 중국은 여전히 국영기업이 경제활동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금융제도와 환율 역시 정부의 철저한 통제 아래 있음. 이런 요인들 덕분에 중국정부는 금융위기에 대응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쓸 수 있었고 빠른 경제회복을 누릴 수 있었음. 한편 인도는 시장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부터 급격한 성장이 시작되었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국영부문을 유지하고 있음. 한국, 일본, 타이완, 싱가폴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과 인도도 정부주도 아래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 중국과 인도의 경제발전 스토리, 그리고 일본과 아시아의 경제발전 스토리는 아직도 빈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국가들에게 유용한 가르침일 수 있음. 그러나 시장자유쥬의와 사회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
- 성공은 자만을 낳고, 자만은 과거의 교훈(자원은 늘 부족하고, 예산은 기본적으로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임금과 기타소득은 장기적으로 생산된 가치를 초과할 수 없다는 것)을 무시함. 60~70년대에는 이런 자만이 지속불가능한 재정적자와 임금-물가 악순환으로 나타났음. 90~2000년대에는 자칭 금융의 신이 등장해 투기광란을 초래하기도 했음. 그러나 가능한 해석이 이 한가지만은 아님. 어쩌면 70년대의 실패는 경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강력한 사회제도를 구축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름. 만일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과거의 오류를 반영한 성공적인 케인스 식 정책으로 회귀하기 위한 전조일지도 모름. 대안정기의 종말을 통해 정책 입안자들은 다시금 케인스 경제학의 기본을 배우고 있음. 현재의 경제는 대규모 통화팽창과 재정적 경기부양이 아니면 회복시킬 수 없는 수준까지 붕괴될 수 있음. 그러나 케인스식 정책으로 경제가 회복된다고 해도 선천적으로 위기에 취약한 시스템이 완전고용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거시경제학에 보다 근본적이고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즉 죽거나 한물간 아이디어들을 더 많이 폐기하는 데서 출발함.
- 2차대전 이후 케인스 식 호황이 지속된 수십년 간은 금융시장이 철저히 규제되었음. 그 결과 선진국에서는 금융위기의 경험과 기억들이 사라짐. 미국에서도 금융기관의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규제기관들이 설립됨. 글래스-스티걸 법은 연방예금보험공사를 설립했고, 은행지주회사의 다른 금융회사 소유를 금지. 그리고 주택담보시장을 뒷받침할 목적으로 연방저당금고, 즉 패니메이가 세워짐. 비록 규제의 세부사항은 나라별로 달랐지만 그 효과는 어디서나 같았음. 50~60년대까지 은행업은 침체되어 있었지만 안전한 사업으로 여겨졌음. 당시 은행은 여러 측면에서 공기업과 유사했음. 대공황에 놀란 부모들은 자식들이 은행에서 안전하고 좋은 일자리를 찾길 원했음. 그러나 효율적 시장가설로 이 모든 것이 바뀜
- 당시 수익면에서 볼 때 많은 이익을 얻으려면 전체 시스템의 안전성 유지는 정부에 맡긴 채 규제를 피해 일할 방법을 찾아야 했음. 그래서 금융시장을 보대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이론적 근거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음
- 효율적 시장가설은 정부가 어떻게 해도 정보에 밝은 금융시장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없다고 말함. 유일한 예외라면, 정부정책이 잘못되었거나 재산권을 적절히 정의하는 데 실패하여 왜곡된 시장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뿐임. 이 경우, 최선의 대응책은 금융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아닌 정책을 바로잡는 것임. 만일 정부가 민간시장에 참여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면 정부는 이 정보를 공공정책에 대입해 민간의 선택을 가로채지 말고 대중에게 정보를 알려 그들이 선택하도록 해야 함. 요약하면 효율적 시장가설은 민간기업이 항상 정부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내기 때문에,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거나 소득재분배를 통해 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정도로 정부의 활동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
- 효율적 시장가설은 시장이 완전히 효율적이라면 어떤 비효율성에서 비롯된 잠재수익은 그 비효율성을 발견하는 데 들인 기술과 노력의 값과 같다는 시각을 만들어냈음. 헤지펀드는 바로 이런 생각을 중심으로 운용됨. 헤지펀드 투자자들은 위험을 감수하여 평균수익을 상회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전략을 발견하고자 함. 이런 생각은 98년 극적인 인기를 끌다가 헤지펀드 LTCM 사건으로 무너짐
- 효율적 시장가설이라는 일종의 독단적 교리를 폐기하면 금융시장의 역할에 대한 보다 합리적 평가가 가능. 금융시장은 대출기관과 대출자, 소비자와 투자자 사이에 꼭 필요한 중개소임. 혼합경제에서 이런 기능은 보통 민간은행이 수행하고, 이런 상황이 중단기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음. 앞으로 일부 정부소유 금융기관이 설립될수도 있지만, 이런 추세가 금융위기 동안 일부 국유화되거나 완전히 국유화된 기관들의 민영화 추세를 상쇄하기는 힘들 것임. 그러나 금융시장의 필요성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금융시장에서 내놓은 가격이 적정가격이며 그보다 더 나은 평가는 있을 수 없다는 효율적 시장가설의 주장을 묵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님. 오히려 정부는 다음 2가지 대표적 방식을 이용해 금융시장이 내놓은 가격을 무시하거나 묵살할 수 있음. 첫째, 지난 10년간의 경험에 따르면 민간 금융시장이 거품을 발생시킬 수 이쓰며, 경제정책으로 거품발생을 억제시켜야 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 그러나 이는 중앙은행의 유일한 정책수단인 이자율을 움직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님. 그보다는 거시경제 정책과 규제조치를 결합할 필요가 있음. 예를 들어 부동산 거품이 진행중이라면 중앙은행은 생산적 투자를 불필요하게 규제하지 않고도 과열된 부문에서 금융대출을 철수시킬 힘과 의지가 있어야 함. 둘째, 공공투자를 평가할 때 정부는 금융시장이나 신용평가기관, 그외 유사한 판단에 의지하기보다는 금전외적 수익을 고려할 수 있는 편익비용 분석도구를 이용해야 함. 이 경우 투자가 꼭 정부주도로 이뤄져야 하느냐는 질문이 남음. 일단 효율적 시장가설을 버리고나면, 투자를 계획할 때 어떤 경우(예를 들어 실수요가 중요한 경우)는 시장이 정부보다 낫고 또 어떤 경우(장기계획이 필요한 경우)는 정부가 시장보다 나은 것처럼 보임. 논리적인 면에서 혼합경제는 계획경제와 자유경제를 모두 능가한다는 의미. 이는 실제로 20세기의 경험과도 일치함
- 전후 시기에 완전고용과 번영으로 불평등이 급격히 줄었고, 그 결과 생활수준 면에서 중산층이 압도적으로 많아진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회가 생겨남. 당시에도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구세대 유물처럼 여겨졌음. 80년대에 불평등이 다시 고개를 들자 불평등을 옹호하는 지식층도 다시 돌아옴. 부자들의 감세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런 정책이 도입되면 경제번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몫 챙기는 듯 보였고, 한동안은 약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이를 지지하던 이론들도 대부분 폐기되었음. 하지만 이 책에서 논의된 아이디어들이 그렇듯 트리클다운 경제학 역시 좀비의 모습으로 우리곁을 서성이고 있음.
- 경제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기본적 가정하에서 추가투자로 인한 수익은 전부 그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댄 사람에게로 감. 즉 부자들에 대한 감세는 부자들이 더 많이 저축하고 투자하도록 해서 결과적으로 더 부자가 되게 해줌.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이 여기서 어떤 수익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음.
- 보다 유리한 조세제도에서 추가로 발생한 투자는 장기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분배되어야 함
- 트리클다운 가설은 형평성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자연히 해결되기 때문에 정책의 목표는 형평성이 아닌 효율성을 촉진하는 쪽으로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 보다 쉽게 비유하자면, 파이를 똑같이 나눠 가지는 것보다 파이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음. 조세 및 그 밖의 정책들은 경제의 모든 부문에 중립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음. 예를 들어 모든 형태의 소득에 낮고 일정한 세율을 부과하는 비례세제도는 효율성 기준에 부합해 보이지만, 트리클 다운 지지자들은 자본소득에는 세금을 전혀 부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함. 심지어 시장자유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이 정부가 제공하는 다수의 서비스에서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가장 효율적이고 공평한 조세 형태는 인두세라고 주장해왔음. 실제로 인두세는 영국에서 대처 정부시절 지방정부 서비스의 재원 마련을 위해 도입되었으나,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와 폭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폐기되었음.
- 트리클 다운 가설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주장에 의존. 이 주장에 따르면, 높은 세율과 정교한 사회보장제도같이 노동의지를 꺾는 장치들을 제거하여 몸시 불평등한 결과를 용인하는 경제시스템이야 말로 소득분포상 하위권의 사람들에게 중산층 이상으로 올라갈 기회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것. 미국이 기회의 땅이자 세계에서 가장 사회이동성이 높은 사회라는 생각은 미국이 갖고 있는 핵심 자아상임. 그리고 이처럼 높은 사회이동성은 자유시장에서 온다는 믿음이 드넓은 대륙에 퍼져 있음. 사회이동성에 관한 경험적 연구들은 이 같은 믿음을 뒷받침하지 않음.
- 19세기 후반 미국은 유럽의 계급사회에 비해 기회의 땅이었고, 많은 이들이 지금도 그렇다고 믿고 있음. 그러나 국제비교연구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함. 선진국 중 미국은 가장 낮은 사회이동성을 보였으며,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높은 사회이동성을 보였음.
- 시장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금융부문의 영향력은 양대정당에까지 확대되었음. 미 상원의원 딕 더빈은 여전히 은행은 미 의회에서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임. 그리고 솔직히 미 의회를 쥐락펴락한다고 말한 바 있음. 마찬가지로 영국정가도 영국 금융가가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다른 선진국도 매한가지임. 예를 들어 호주에서는 정치인이 소속정당에 관계없이 은퇴후 금융부문에서 편한 직책을 역임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음. 물론 그들이 정가에 있을 때 적절한 정책을 따랐다면 말이다. 이는 일종의 출셋길이 되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음. 일반적으로 이 출셋길은 다음과 같음. 젊었을 때 한동안 기성정치인의 참모로 활동함. 이후 약 10년 정도 선거판에 뛰어듬. 그리고 금융부문으로 자리를 옮김. 공직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닌, 보다 큰돈을 버는 목표를 향한 징검다리에 불과. 따라서 정가에 있는 동안 금융부문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집중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임
- 수입이 발생하는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정부가 공공 서비스에 쓸 추가 재원을 마련하게 된다는 주장은 수입과 자본을 혼동한데서 나온 것임. 이는 가계가 주택을 담보로 빌린 돈을 가지고 소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이치임. 처음에는 이로써 확실한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결국 자산매각으로 당기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얻는 것은 재정적 몰락으로 가는 길임
- 가장 치명적인 민영화 형태는 아마도 민간경찰, 민간교도서, 그리고 용병의 출현임. 공권력 행사의 민영화가 비용을 절감해줄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음. 오히려 이런 종류의 민영화는 이를 실시하는 정부에게 상당한 정치적 혜택을 안겨줄 것임. 첫째, 이런 민영화로 인해 정부는 부적절한, 심지어 범죄에 가까운 공권력 사용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있음. 이민자구금센터가 대표적 사례이며, 그보다 더 심각한 예는 블랙워터 같은 기업의 활동임. 이런 기업의 용병들은 군사재판이나 민사재판의 대상이 아니라서 처벌을 받을 위험 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음. 민영화가 전부 실패한 것은 아님. 일례로, 사회기반시설 전체가 강한 자연 독점적 특성을 띤다고 해도 종종 그안에서 경쟁적 요소 혹은 잠재적으로 경쟁성이 있는 요소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민영화를 실시할 수 있음. 예를 들어 전력공급의 경우 전력발전은 송전이나 배전에 비해 훨씬 더 경제성이 있음. 소매기능(청구서 발행, 연결처리 등)은 이보다 더 경쟁성이 있음. 민영화는 경쟁이 지속가능한 곳에서 훨씬 더 이익일 가능성이 높음. 가장 성공적인 민영화는 실질적으로 공공부문에 맞지 않는 기업, 특히 사회적, 정치적 이유로 기사회생한 기업을 대상으로 했을 때였음. 영국의 롤스로이스, 미국의 GM이 대표적 사례. 민영화는 주로 경쟁시장이 지속가능한 곳, 그리고 폐쇄규정에 특별한 요건이 없는 곳에서 성공을 거둠. 민영화는 실력 있고 효율적이며 책임을 지는 정부가 실시할 때 최고의 성공을 거두는 경향이 있지만 바로 이때 민영화로 인해 잠재수익이 가장 낮다는 사실은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듬.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는 공기업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지만, 공기업을 파는 일은 더 제대로 하지 못함. 러시아가 좋은 사례임
- 21세기의 경제학은
* 현실을 더 많이 보고 논리적 정확성에는 덜 집중해야 함
* 형평성을 더 많이 생각하고 효율성은 덜 중시해야 함
* 더 많이 겸손하고 덜 자만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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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낯선사람 효과

경제 2014. 10. 21. 20:38

 


낯선 사람 효과

저자
리처드 코치, 그렉 록우드 지음
출판사
흐름출판 | 2012-11-16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전 세계 31개국에 출간된 밀리언셀러 [80/20 법칙]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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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욕망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있음. 그러나 이런 욕망은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만 의미가 있음. 일반적으로 네트워크라는 존재는 고독한 개인의 정반대편에 서 있음. 비록 자발적으로 발생했거나 무정부적인 형태로 굴러갈때 조차도 네트워크라는 존재는 원래 집중화를 선호하고, 어떠한 개인이라도 그 체제를 장악하거나 통제하도록 허락하지 않음. 예를 들어 인터넷은 가장 대표적인 민주적, 개방적 네트워크임. 그러나 트래픽을 기준으로 볼 때 일부 웹사이트들은 아주 특별한 지위를 누리며, 그 과정에서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상공간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경제적 보상의 대부분을 가져감. 처음 인터넷이 생겼을 때 아무도 이런 상황을 원치 안았을 테지만, 지금은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흐름이 되어버림. 그러나 이런 흐름도 인간의 두뇌로 이해하기 힘든 네트워크의 고유한 작동방식의 한 사례일 뿐임. 따라서 완전한 개인주의란 환상에 불과. 물론 어떤 차원에서 보면 개인주의의 물결은 우리의 삶을 더 가치있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바꾸어 놓았음.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반드시 나아졌다고만은 할 수 없음. 개인주의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거시적 차원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함. 세상을 이해하려면 개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함
- 돈이나 명예, 혹은 이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얻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네트워크에 더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성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네트워크에 접근했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네트워크의 특성을 잘 이해한 것임. 이런 사람들도 특정한 패턴을 따라 움직이는데, 바로 그 패턴속에 네트워크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 결론적으로 네트워크가 움직이는 독특한 패턴을 몸으로 이해한 사람들이 그 힘을 통해 성공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었던 것임
- 우리주변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사회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음. 우리는 이들을 슈퍼커넥터라고 부름. 그들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림. 슈퍼커넥터들은 풍부한 사회적 연결을 기반으로 잠재적으로 가치 있는 유용한 정보에 쉽고 빠르게 접근. 옷가게 주인의 뜻밖의 역할에 주식중개인이 충격을 받은 것처럼 그들의 사회적 중요성을 알고 나면 모두들 놀랄 것임. 이들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진정한 엘리트임. 그들은 작은 세상의 중심을 차지. 오늘날 우리사회는 많은 연결을 보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음. 누구라도 쉽게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슈퍼커넥터들은 엄청나게 넓은 인맥과 정보, 기회에서 많은 혜택을 누림. 그러나 많은 연결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연결임. 올바른 연결, 다시 말해 약한 연결은 사회적 영향력을 점차 얻어가면서 우리를 놀랍고 풍요로운 작은 세상으로 데려감.
- 대학 친구나 예전 직장동료와 같이 오랜 세월이 흐른 인맥들은 개인의 네트워크에서 가장자리를 차지. 이러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아주 가끔씩, 우연히 일어남. 사실 이러한 형태의 약한 연결들은 한동안은 거의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함. 업무상 만단 지인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 대부분 앞으로 그들을 업무외 환경에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음.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약한 연결은 우연한 만남이나 지속적 연락을 통해 장기적으로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 이처럼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지인들에게 중요한 정보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놀라운 경험일 것임.
- 강한 연결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개인의 인식과 통제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외적인 요소들이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기본적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함. 그리고 강한 연결은 복잡한 외부세상에서 개인들이 차지하는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음. 강한 연결속에는 나약함이 자리잡고 있음. 반면 약한관계를 폭넓게 유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더 뚜렷하게 드러내는 경향이 있음. 코저는 완전히 다른 세상과 조화롭게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상대방의 역할과 입장을 고려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음. 이런 관점에서 약한 연결은 개인적 자율성의 온실로서 기능을 할 수 있음. 즉 공감의 능력은 지적 유연성과 자기방향성을 동시에 창조. 그리고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다양한 태도들 중 적절한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줌
- 인간의 두뇌는 지리적으로 좁은 공간, 제한된 친족범위, 자녀와 손자로 한정된 혈연까지만 헌신하도록 진화했음. 반면 멀리 떨어져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시하려는 성향이 강함. 이런 본능은 구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뿌리내렸음. 그 이유는 수십만년의 세월동안 친족과 친구의 작은 원안에서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에만 집중한 사람들이 더 오래 살아남고 더 성공적으로 자손을 번식시켰기 때문. 그러나 오랜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변화한 지금 이 세상에서도 인간은 멀리 떨어진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인 차원으로 외면함 예를 들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적절한 사람을 찾으려하기 보다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자신과 가깝고 기꺼이 호의를 베풀려는 사람을 선택하고 마는 것임. 그러나 생소한 분야에서 도움을 얻으려면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는 지인드에게 부탁해야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음.
- 선택의 범위가 압도적으로 넓어서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때 사람들은 가장 안전한 길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음. 즉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을 그대로 따라가려는 것임.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규모가 큰 몇몇 사이트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임. 만약 특정 카테고리 속에 확고한 승자가 존재한다면 그러한 성향이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임.
-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사람들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면 이는 분명 인생의 축복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이 근본적인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매개체가 될 수는 없음. 인터넷은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소통을 하기에 편리하고 강력하고 유쾌한 도구임에는 틀림없으나, 우리가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결코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수 없음. 더구나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인간적 만남을 대체할 수도 없음.
- 사람들은 대부분 비즈니스가 수익과 같은 숫자, 시장의 힘과 같은 요소, 직원과 같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즈니스를 이루는 것은 아이디어, 특히 언어로 표현된 아이디어이다. (제임스 챔피)
- 순전히 개인적인 노력, 놀라우리만치 독창적인 메시지, 열정을 불어일으키는 연설과 글, 로마 네트워크 자원의 적극적 활용이라는 차원에서 바울은 다른 추종자들과 확연히 구분됨. 바울의 노력으로 로마와 아테네라는 브랜드가 붙은 친근한 이미지의 기독교는 세력을 빠르게 확장. 바울이 등장하기 전 추종자 그룹은 수백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바울의 사후 그 규모는 수천명으로 늘어나다가 200년 경에는 약 20만명에 이름. 다시 100년 후에는 로마인구의 10%에 해당하는 600만명에 육박. 결국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 오늘날 기독교는 약 20억명의 사람들이 믿는 세계 최대의 종교로 자리잡음. 바울은 유대인의 전통적 신학에 그리스 철학을 접목하고, 여기에 그리스도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추가하고, 목표시장을 확대하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수많은 종교적 허브들을 구축하고, 로마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는 데 성공했음.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유대인이라는 한계를 최초로 뛰어넘은 기독교 교회를 설립했고, 교회들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파. 이 모든 노력을 통해 바울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슈퍼커넥터의 한사람으로 남았음
- 대기업을 대상으로 경쟁우위에 집중함으로써 더 높은 수익을 올리는 방법을 조언하는 전략컨설팅이라는 서비스 분야는 63년 처음으로 등장. 이를 시작한 장본인은 브루스 헨더슨임. 브루스는 전략적 조언과, 경험보다는 이론을 바탕으로전 세계 수많은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 그가 컨설팅 비즈니스를 키워나가는 동안 함께 일한 동료들은 전략 컨설팅 서비스라는 것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됨. 그동안 그들이 한일은 완전히 따로 떨어져 있는 분야들, 즉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마케팅과 재무분야를 하나로 묶는 것이었음. 융합반응의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이들은 마치 지적인 불꽃졸이를 하듯 화려한 성과들을 일구어낼 수 있었음.
- 강한 연결에 비해 약한 연결이 지배적 지위를 누리면서 무엇보다 다양성이 확보된 지역에서 혁신은 활발하게 일어남. 글레이저 연구팀은 또한 많은 기업들이 치열하고 경쟁을 벌이는 도시에서 산업이 빨리 성장하고,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 많은 혁신 사례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음. LA나 뉴욕처럼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공존하는 도시가 더 빠르게 성장하며, 이런 지역에서는 피부색이나 출신지역과는 상관없이 임금상승과 같은 경제적인 이익이 비교적 평등하게 분배된다는 사실을 확임. 결론적으로 다양서이 혁신과 더불어 엄청난 부를 창출함. 글레이저의 연구는 개별기업보다 여러 기업들이 함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환경에서 혁신이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줌. 이러한 점에서 혁신의 실질적 주체는 개별기업이나 경쟁환겨, 관련업체끼리의 협력이라기보다 그 연결이 연속적으로 중복된 네트워크 전체라고 할 수 있음. 혁신의 가장 핵심적인 단위는 특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형성된 비즈니스 네트워크임. 그렇다면 디트로이트처럼 몇몇 대기업으로 구성된 도시는 새롭고 다양한 정보와 신선한 약한 연결의 결핍으로 점차 위축되어 가리라고 전망할 수 있음. 반면 거대하면서도 다양함을 유지하고 외부 영향에 개방적이면서 약한 연결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깔의 도시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것임. 네트워크상의 이종교배는 개인과 기업들은 물론 그 지역 전체에 이익을 골고루 나누어줄 것임
- 하버드대 헨리 체스브로 교수는 20세기에 걸쳐 미국사회가 어떻게 혁신을 일구었는지를 주제로 연구를 추진. 여기서 체스브로는 오랫동안 기술과 연구개발이 세상을 이끌어 왔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산업에서 혁신이 나타나는 방식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지적. 기술과 연구개발의 황금기에 해당하는 40~85년 동안 기업들의 전체적인 연구개발 투자규모는 40년 30억 달러에서 85년 1,020억 달러로 성장. 그러나 그 45년 동안 대부분의 기업들은 폐쇄적 혁신을 추구. 즉 기업들은 철저한 보안아래 새로운 기술을 비밀스럽게 개발했고, 노동유동성은 지극히 낮아졌으며, 벤처캐피털은 대단히 드물었고, 대학의 역할은 계속해서 떨어졌으며, 시장에 강한 충격을 주는 신생기업들의 등장은 찾아보기 힘들었음. 체스브로의 설명에 따르면 80년대 이후 이런 폐쇄적 모델이 급속하게 위축됨. 미국사회는 제대군인원호법을 통해 고용 유동성을 상실한 퇴역군인들에게 대학 및 직업교육을 지원했고, 대학교육의 활성화는 한 기업에서 다른 기업으로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는 노동유동성을 확보한 수많은 기술자들을 배출. 그 결과로 벤처기업들은 기초적인 연구활동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도 채용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끌어 올릴 수 있었음. 80년만 하더라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 벤처자본가들의 규모는 01년에 이르러 51배나 성장했으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자본이 부족해서 비즈니스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음. 또한 기업들은 외부의 연구성과 및 협려업체의 도움을 더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소규모 기업들도 얼마든지 신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길이 열림. 70년에 특허권 시장에서 개인이나 중소기업들이 차지한 비중이 겨우 5%에 불과했지만, 92년에 이르러서는 20%로 급증. 직원 규모가 2만5천명이 넘는 대형기업들이 사회 전체의 연구지출비에서 차지하던 비율이 81년 71%에서 99년 41%로 뚝 떨어짐.
- 밀도 있는 네트워크상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인간적 측면, 예측 불가능성, 특정 소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사회적 편향과 같은 현상의 중심에는 약한 연결이 있음. 약한 연결은 강력한 허브와 강한 연결이 만들어내는 확고하고, 질서있고, 때로는 위압적 세상과 긴장관계를 이룸. 그리고 우리가 그다지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과 색깔이 다른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게 만듬. 또한 자유의지와 혁신이 승리하도록 만듬. 약한 연결을 억압할 때 세상은 재미없고, 비인간적이고, 빈곤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맘
- 마크 그라노베터는 이렇게 말했음. "하위계층일수록 강한 연결의 빈도는 더 잦다" 이 말은 가난할수록, 불안감이 높을수록 사람들은 가족이나 이웃, 또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의 강한 연결에 더 집착한다는 의미. 필라델피아의 한 연구팀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못한 흑인 젊은이들이 동일한 지역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약한 연결보다 강한 연결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그라노베터의 주장을 뒷받침. 소외된 노동계층 젊은이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벗어나기 힘들다고 느끼고 있음. 이들 중 일부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약한 연결을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갱스터가 되거나 과격한 종교집단에 들어감. 이런 세계는 그들에게 제한된 환경내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대안으로 보임
- 마크 그라노베터는 강한 연결에 대한 의존은 일종의 덫이라고 말함. 그는 또 다른 연구에서 강한 연결을 통해 일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약한 연결을 통해 잡은 사람들에 비해 실직기간이 훨씬 더 길다는 사실을 보여줌. 강한 연결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에너지의 강력한 집중화 현상은 가난한 공동체를 연결상태가 대단히 열악하고 캡슐화된 단위로 나누어버림. 이는 가난이 끝까지 사라지지 않을 또 다른 이유임
- 독재자는 네트워크상에서 자유로운 흐름을 차단해 버림. 나치 독재시절 독일 사회에서는 수많은 허브들이 사라지거나, 국가가 관리하는 거대 허브로 통합됨. 자발적으로 탄생한 약한 연결들은 파괴되거나 억압됨. 이런 점에서는 스탈린, 마오쩌뚱, 폴 포트 모두 똑같은 일을 했음. 세상의 모든 독재자는 사회 내분의 분리단계를 높이고 무작위롤 발생하는 연결의 가능성을 억제하고 구성원을 소수의 국가기관이나 최소한 국가가 승인한 단계 속으롤 모두 몰아넣어버림.
- 약한 연결은 사적인 관계의 형태로 아주쉽게 형성되고, 지속적으로 변함. 대부분 공식적인 계약과는 거리가 멈. 일상적 친근감이나 공감, 서로 주고받는 수만가지의 미묘한 감정으로 이루어짐. 바로 이런 약한 연결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창조적이면서 운까지 따랐던 소수의 개인들은 전례없이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음. 그러나 그들이 창조한 부는 결코 조직에서 나온 것이 아님. 그 부의 실질적 원칙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서 거대하게 확장된 고유한 지식과 통찰력의 연결, 막연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자신의 모든 노력이 보상받을 것이라는 희망이 만들어내는 낙관적인 전망임. 새로운 비즈니스 세상에서도 경쟁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임. 다만 협력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부를 창조하고 자율성을 높이는 가운데 우리 사회와 경제를 전진시키는 근본적인 원동력으로서 경쟁력이라는 요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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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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