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저자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윌리엄 밀버그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0-12-2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시장 경제의 출현에서부터 신자유주의까지 한권으로 읽는 자본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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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적 충동과 제도들에서 역사의 모든 원동력이 나오는 것은 아님.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이는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였음. 자본주의가 앞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이는 그 경제적 여러 힘들을 길들이 정치적 의지와 정치적 수단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임. 경제적 힘들만으로는 사회적 변화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경제적 변화를 이해하려면 경제가 묻어 있는 사회적 도덕적 맥락을 의식할 필요가 있음.

- 역사에서 자본주의가 차지하는 독특함은 그것이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를 발생시켰다는 점이지만, 이러한 역동성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으뜸가는 적이다.

- 관습적 경제학의 수사라는 베일을 벗겨보고 나면, 우리는 그 아래에 신뢰, 신앙, 정직성 등등과 같은 전통적 행태의 하부구조가 버티고 있음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이것은 저 사회의 은폐된 권력구조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시장 체제 작동에 필수적인 도덕적 기초가 되는 것이다.

1. 경제문제

- 지금까지의 역사를 볼때 생산과 분배의 두가지 경제문제에 대한 세가지 유형의 해결책이 진화해 왔음. 이는 전통, 명령, 시장 체제임. 전통이라는 방식은 친족체제등 여러 사회제도를 통해 사람들의 신분과 보상을 영구화시킴으로써 생산과 분배의 문제를 해결함. 전통이라는 방식으로 주어지는 경제적 해결책은 정태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 특징. 여기에서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거의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음. 명령이라는 방식은 통치력을 가진 권위를 빌려 노력과 보상의 배분을 강제함으로써 경제문제를 해결. 명령 방식은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경제적 변화를 달성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 이는 또 극단적인 전체주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온건한 민주적 형태를 띨 수도 있음. 시장체제는 겉으로는 통제가 없어 보이는 사회에서 질서와 효율성이 자발적으로 생겨나도록 사회는 조직하는 복합적인 양식임.

2. 시장 이전의 경제

- 어떤 사회이건 축적된 부가 어떤 사회적 형태를 취하는가를 살펴보게 되면 그 사회에 대해 실로 많은 것이 드러나게 됨. 누가 잉여를 가져가는가야말로 그 사회 내부의 권력구조를 어김없이 밝혀내는 등불이 되는 질문임

- 길드는 현대기업과 달리 돈을 버는 것이 최고 목적이 아니었음. 길드의 목적은 일정하게 질서잡혀 있는 생활방식을 보존하는 것. 물론 이 생활방식에서는 장인기술자들이 괜찮은 소득을 얻는 것을 상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 중 누군가가 대사업가나 독점기업가가 되는 것을 추호도 허용하지 않음. 오히려 길드는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렇게 막가는 투쟁이 벌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었음. 경쟁은 엄격하게 제한되고, 이윤도 미리 정해진 수준으로 묶여 있었음. 광고행위는 금지였고 심지어 동료길드 구성원들보다 더 나은 기술적 진보를 이루는 것조차 불충스러운 짓으로 간주됨.

- 고대사회에서 재산을 축적하던 이들은 모두 한점 부끄럼 없이 맘껏 온갖 재화를 게겔스레 축적했지만, 중세의 이윤 축적자들은 이득을 거두어들이면서도 항상 그로 인해 자신의 영혼이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림. 이런한 돈벌이에 대한 나쁜 사회적 평판은 고리대 즉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에 대해 카톨릭 교회가 보여준 경악에 가까운 혐오에서 잘 드러남. 고대에도 고리대금업은 평이 좋지 않은 활동이었지만 그 비판은 논리가 모호했음. 하지만 중세에 들어서 일단 이것이 교회의 깐깐한 감시하에 들어가자 이제는 심히 사악한 활동으로 낙인찍힘. 교황은 이제 고리대가 죽음에 이르는 대죄라는 칙령까지 내림. 이렇게 험악한 교회의 감정은 단지 신학적 양심 때문에만 생겨난 것은 아니었음. 고리대와 이윤추구에 대한 교회의 반대는 대부분 가장 세속적 현실에 그 뿌리를 둔 것. 기근은 중세 위기 전체를 휩쓴 재앙이었던 바, 이로 인해 가장 파렴치한 경제적 갈취가 나타나고 말았음.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이들에게 빵을 살 돈을 꾸어주고서 거기에 40~60%에 달하는 이자를 매긴 것. 이러한 인정머리 없는 관행이 중세기에는 넘쳐났으니 이윤추구와 이자수거에 대한 혐오는 대부분 그것을 이러한 파렴치한 관행과 똑같은 짓으로 본 것에서 기인. 이윤과 이윤이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또 있었음. 이는 경제적 생활의 조직 자체가 본질적으로 정태적이었다는 사실.

- 중세의 정태적 사회를 진정한 시장경제로 전환시키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했을까?

(1) 경제생활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함 :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득을 추구해야 함. 그러려면 이윤, 변화, 사회적 이동성 등에 대한 의구심과 불편함 감정이 그런 태도와 행동을 고무하고 찬양하는 생각으로 전환되어야 함. 신분사회가 사라지고 대신 계약사회가 나타나야 함. 즉 사람들이 타고난 지위에 따라 제약받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의 지위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누리는 세상이 되어야 함.

(2) 경제생활의 화폐화가 진행되어 완성되어야 함 : 사회에서 수행되는 거의 모든 일이 화폐로 보상되어야 함. 노동의 대가를 화폐로 지불하는 관행이 널리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곧 생산자를 위한 시장 또한 널리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 오늘날 우리의 생산활동을 지배하고 또 방향을 지휘하는 것은 구매력의 흐름이기에 화폐소득이 일반적 규칙이 아니라 예외적인 현상이던 사회에서는 구매력 비슷한 것조차 나올 수 없었음.

(3) 사회의 여러 경제 활동에 대한 규제와 조정이 사라지고 자유롭게 작동하는 시장 수요의 압력이 들어서야 함 : 고대와 중세를 통틀어서 경제문제를 해결한 것은 전통방식이거나 명령방식이었음. 사회적 보상의 배분을 규제했던 힘 또한 전통과 명령이었음. 하지만 시장사회가 되려면 또 다른 통제 수단이 나타나서 전통과 명령을 대체해야 함. 모든 것을 아우르는 화폐 수요의 흐름이 사회를 추동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이 되어야 하며, 이는 모든 경제적 활동이 화폐화됨에 따라 생겨나는 현상이기도 함

3. 시장 사회의 출현

* 시장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온 여러 세력들

- 유랑상인 덕분에 생겨난 아누 중요한 부산물 하나가 바로 새로운 도시와 촌락의 창출이었음. 도시가 봉건사회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과정 자체가 새로운 사회경제적 질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됨. 그 이전에는 도시란 어느 문명에서나 중앙정부의 전초기지였음. 이제 처음으로 도시는 사회적 권력의 중심틀에서 빠져나와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게 됨. 그 결과 이들은 자신들의 법전과 사회적 행위규범 그리고 일련의 자치기구들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고 또 그래야 했음. 이런 것들이 나중에 가면 결국 봉건적 농촌의 법과 규범들을 대체하게 됨.

- 유랑상인의 출현과 도시의 발흥은 중세의 경제생활에 있어서 서서히 진화해나오는 양대 요인이었음. 그리고 세번째 요인은 십자군 전쟁이었음. 십자군 전쟁은 유럽을 엄청 비옥하게 만드는 경험이었음. 토지에 기초한 예전형태의 부는 이제 새로운 화폐적 기초와 맞닿게 되고, 이 새로운 부의 기초가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이 입증됨. 더 부유할 뿐만 아니라 더 명랑하고 활기넘치는 문명의 존재를 흘끗 보는 것만으로도 예전의 삶의 관념 자체가 완전히 바뀌지 않을 수 없었음. 십자군 전쟁은 타성에 빠져 정체되어 있는 사회를 흔들어놓음으로써 유럽의 경제적 전환 속도를 올리는 데 엄청난 역할을 했음.

- 경제생활이 서서히 상업화하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조각조각 나쥐어 있던 유럽의 경제적 정치적 단위들이 조금씩 큰 덩어리로 합쳐지게 되었다는 것. 중세의 중기와 후기동안 내부적으로 통일된 시장을 가질 수 있었던 나라는 오직 영국 뿐이었음. 이는 영국이 최초의 거대한 유럽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는 데 크게 기여. 군주와 부르주아들은 함께 힘을 합쳐 중앙집권정부를 서서히 키워나감. 정부가 중앙집권화되면서 법률과 통화가 통일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업과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직접적 자극도 마찬가지로 주어짐. 다른 영역에서도 국가권력이 증대됨에 따라 새로운 자극이 주어졌으니, 해군도 창설되고, 군대는 새로운 장비를 갖추어야 했고, 이 새로운 국가의 군대에 봉급을 주어야 했음. 이 모두가 화폐 유통의 펌프를 더욱 힘차게 눌러댐

- 정치권력이 서서히 공고해짐에 따라 생겨난 또 하나의 경제적 동력은 미지의 땅에 대한 탐험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장려한 것이었음.

- 종교적 분위기의 변화. 그 사람의 일과 그 사람의 가치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태도가 나오게 되면 곧이어 어떤 사림이 큰 성공을 거둘수록 그 사람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라나게 됨. 칼뱅주의는 카톨릭과는 반대로 부의 추구와 영리적 세계의 기질을 적극 장려하는 종교적 분위기를 깔아줌.

- 프로테스탄트 윤리. 칼뱅주의는 경제생활의 한 특정 측면을 크게 장려했는데, 그 측면은 지금까지 누구도 듣도보도 못했던, 검약이라는 것이었음. 소득을 마음껏 써버리고 즐기지 않고 이를 의식적으로 삼가는 미덕이 바로 저축. 또 투자라는 것도 있었음. 저축을 생산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투자야 말로 이윤의 도구일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건함을 실천하는 도구라는 것이었음. 비록 다양한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심지어 이자지불까지도 너그러이 보아줌. 사실상 칼뱅주의는 경제생활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낳음. 예전에는 분수를 알고 지킴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안정성을 갖는 것이 이상이었지만 칼뱅주의는 경제적 성장, 물질적 개선 및 이를 위한 투쟁 등의 이상을 존경할만한 것으로 만듬.

- 장원체제의 붕괴. 예전에 현물로 지불되던 중세적 공납이 이제 서서히 화폐조세와 화폐지대로 바뀌어감. 그 이유는 첫째, 도시인구가 불어나면서 그 식량수요가 늘었기 때문. 예전 봉건제에서 영주가 거두어들이던 여러 봉납은 이제 고정된 액수의 화폐지불로 전환되는 것이 다반사가 됨. 이는 일시적으로 영주들의 현금사정을 좋게 해주었지만 곧 인플레가 닥치면서 영주들을 지독히 쩔쩔매게 만듬. 물가가 오르고 화폐화된 생활방식이 더욱더 확장되어감에 따라 영주의 현금지불능력도 바닥남. 게다가 귀족들은 자기들 토지의 경영자들로서는 영 실격인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경제적 쇠퇴의 과정은 훨씬 가속화됨.

 

- 경제학적으로보면 울타리치기 운동은 환영할만한 것임에 틀림없음. 그전에는 아주 조금밖에 소출이 나오지 않던 땅을 이제 생산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니까. 사실 특히 18세기와 19세기에 울타리치기야말로 영국이 농업을 합리화하여 마침내 전통적 장원의 지조체제의 비효율성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수단이었음. 하지만 잔혹한 측면도 있었음. 공유지에 울타리가 쳐지면서 소작인들이 살아가기가 훨씬 힘들어짐. 울타리치기 과정은 봉건적 유대가 해체되고 시장사회라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강력한 동력을 제공. 농민들을 알거지로 만들어버림으로서 새로운 종류의 노동력이 창출됨.

- 시장경제 이전에는 노동, 토지, 자본은 모두 노예와 농노 혹은 영주와 길드 장인이라는 존재 속에 서로 불가분하게 뒤엉켜 있었으며 일정한 가격에 제공되는 특정한 경제적 기능의 체현물 따위로서 제각각 생산과정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음. 노예는 노동자가 아니었고, 길드장인은 자본가가 아니었으며, 영주는 지주가 아니었음. 노동이 판매되고 토지가 임대되고 자본이 자유로이 투자되는 세상으로 사회체제가 진화한 뒤에야 비로소 경제학의 여러 범주들이 나타나게 됨.

4. 산업혁명

- 산업혁명은 본래 유럽대륙이 아니라 영국에서 벌어졌을까? 어째서 핀 공장이 스미스의 관심을 끌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18세기 영국이 당시 대부분의 유럽나라들과 확연이 구분되는 요인을 살펴보아야 함

(1) 영국이 더 부유했음. 한세기에 걸쳐 해외탐험, 노예무역, 해적질, 전쟁, 상업 등에 성공을 거두면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됨. 더욱 중요한 것은 영국의 부가 소수의 귀족들에게만 돌아간 것이 아니라 상업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대규모의 중상류층에게도 돌아갔다는 점.

(2) 봉건사회가 가장 철저하고 가장 성공적으로 상업사회로 전환됨. 영국에서는 귀족계급이 일찍이 상업과 좋은 관계를 맺은 바 있음. 비록 옛날의 토지권력과 새로운 화폐권력 사이에 날카로운 이해상충도 남아 있었지만, 1700년경이 되면 영국의 지배질서는 시장경제의 여러 요구에 저항이 아닌 적응의 길을 돌이킬 수 없도록 선택하게 됨.

(3) 유독 과학과 공학에 대해 열광.

- 산업의 혁신기업가는 영국에서 그 이전부터 벌어졌던 독특한 경제적 준비 운동의 산물이었음. 물론 이들은 당대에 벌어졌던 수요의 팽창과 기술에 대한 갈증에서 혜택을 본 이들이었음.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이들을 볼 필요가 있음. 이 소규모 제조업자들 중 다수가 원래는 소토지 소유자였다가 울타리치기의 후반기 동안 땅뙈기를 팔아서 그 얼마되지 않는 자본을 제조업이라는 전망좋은 영역에 사용하기로 결심한 이들이었음.

- 초기자본주의 시대가 어마어마한 사회적 고통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음. 하지만 산업자본주의의 탄생기를 회고할적에 명심해야할 몇가지 사실들이 있음

(1) 산업혁명의 빈곤상이 대중의 삶이 전반적으로 악화되었음을 말하는 것인지는 의문

(2) 초기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당대의 가혹한 비판은 경제학보다는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서 도출된 것임. 자본주의의 발흥과 동시에 정치비판의 관점에도 근본적 변화가 생겼고 또 이것이 자본주의의 탄생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음. 민주주의, 사회정의, 개인의 권리와 같은 새로운 사상이 태어나면서 당시는 비판적 사고가 충만한 때였고 따라서 그 어떤 경제체제도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음.

(3)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장기적으로 경제적 안녕을 증진시켰다는 점.

- 영국에서는 또한 기존 경제체제의 인간적 노력의 일부를 자본축적의 용도로 돌리기 위해 노동자 계급의 소비수준을 아래로 묶어 놓아야 했음. 역사적 사실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아래로 묶어두기는 주로 시장의 압력을 통해 성취되었음. 물론 이러한 시장의 압력은 자유주의의 공세로 지원되었고, 이는 자본가들로부터 나왔거나, 또 상층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요구를 잽싸게 가로막고 나온 정부로부터 나왔던 것이 사실임. 하지만 사회적 불공평의 쟁점을 잠깐만 제쳐두자. 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아주 크게 올랐다면 소비재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면서 결국 영국경제의 자원이 자본형성이 아니라 그러한 소비재 수요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돌려졌을 거라는 점은 엄연한 사실임. 이렇게 되었더라면 분명 영국 노동자들의 당장의 복지는 개선되었을 것. 하지만 사회전체의 생산력이 아주 큰 규모의 총산출을 낳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지체되었을 것임.

- 개도국은 어던 시점에서는 저축을 시작해야 함. 그 나라가 아직 가난하더라도 어쩔 수 없음.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빅토리아 시절의 영국에서 만났던 성장 초기 단계의 힘든 순간인데, 불행하게도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음. 어떤 경제에서이건 이는 어려운 국면이며,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는 천재지면과 같은 비상한 힘을 빌려서 겨우 이 단계를 통과하게 됨. 맨체스터로 이주한 영국 노동자들에게 그 누구도 저축하기를 원하느냐고 묻지 않았음.....원시 스텝지역을 떠나 스베르들로프스크나 마그니토고르스크로 온 소련의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노동조건이나 임금에 대해 아무 발언권이 없었음. 오늘날 중국의 향진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임. (바버라 워드, 인도과 서구)

- 18세기 후반에 시작하여 처음에는 영국 그다음엔 미국을 산업발전의 장거리 비행으로 들어올렸던 자본축적의 광대한 과정을 돌아볼 때, 그것을 추동했던 힘은 자연의 새로운 측면들에 대한 인간의 통제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열어준 일련의 발명품들과 혁신들이었음. 산업과학의 대약진이 이루어져 증기기관, 저렴하고도 효율적인 방직/방적기계, 철, 나중에는 강철등의 대량생산이 최초로 가능해졌고 이런 것들이 엄청난 자본축적의 길을 열어주었음. 이 위대한 발명들이 일단 진보의 앞길을 먼저 뚫어놓으면 2차적 개선과 보조적 발명들이 그 뒤를 따라 벌어지면서 또 중요한 지지의 역할을 맡았음. 비용절감을 가져올 혁신을 이룬 기업가에게는 시자엥서의 비용우위 그리고 그에 따른 높은 이윤이라는 상이 돌아갔음.

5. 산업기술이 가져온 충격

- 엄청난 규모의 자본구조를 가진 대기업들이 출현한면서 목줄끊기 경쟁이 벌어졌고 이는 관련된 기업들에게 위험한 것이었음. 따라서 기업합동, 트러스트, 지주회사, 합병 등의 수단을 통해 경쟁적 투쟁을 안정화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벌어짐. 거대 트러스트들과 기업 합동체들이 권력을 잡게 되자 정치적으로는 반트러스트 입법이라는 댛아의 노력이 벌어졌고, 이는 셔면 반트러스트법(1890년) 그리고 나중에 클레이튼 반트러스트법(1914)과 합병을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몇가지 후속 수정조치들에서 절정을 이룸. 하지만 이러한 법들중 어떤 것도 대기업의 내적 성장을 가로막거나 금지할 수는 없었음. 그 결과 대기업들은 계속하여 팽창. 1933년 벌리와 민스의 유명한 연구는 만약 상위 200대 비금융 주식회사들의 성장률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전체 미국 경제가 그들의 소유아래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

- 19세기 후반동안 미국에서 변화를 추동한 행위자들은 그보다 1세기전 산업세계에 나타났던 선조들의 직계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음. 타우시그와 같은 경제사가들은 19세기 후반 선도적 기업가들의 경력을 조사하여, 평균적으로 당시의 혁신 기업가들은 가난하지만 근면성실한 이민 2세 따위가 아니라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이들이고 때로는 성공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이들임을 밝힘.

6. 대공황

- 대공황이 도래하면서 장기적 성장추세가 재난에 가까운 중지를 맞게 되었고, 이는 거의 10년간 지속됨. 대공황의 원인은 여러가지임

(1) 신용구조가 투기적이고 또 기반이 취약하였고, 여기에 29년 주식시장 폭락과 부적절한 통화정책이 겹치면서 붕괴

(2) 농촌의 구매력이 계속 악화되었고 농업생산물에 대한 수요가 비탄력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심각해짐

(3) 기술적 실업의 역류가 상당하였음

(4) 소득분배가 좋지 못했고 갈수록 악화됨

- 이러한 원인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엄청난 규모의 자본형성 붕괴가 나타남

7. 공공부문의 성장

8. 유럽에 현대 자본주의가 출현하다

- 미국의 자본주의는 새롭고도 강력한 기반위에 세워졌고 시작부터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체제였음. 그런데 유럽의 자본주의는 봉건적 기초위에 세워졌으며 뼛속까지 계급갈등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었음. 미국 자본주의는 하층 신분들의 충성스런 지지를 얻어내는 데 아무런 노력도 들일 필요가 없었음. 하지만 유럽의 하층 신분들은 1848년 혁명이 벌어질 당시 이미 자본주의가 자신들의 희망과 신념을 실현해 줄 것이라는 희망에 등을 돌려버림.

- 유럽의 경제적 후진성을 극복하려는 많은 시도들 중 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것은 관세장벽이 없는 공동시장의 창출로서, 이는 유럽을 현대화하고 통일시키는 돌파구가 됨. 이러한 조치들이 합쳐지면서 유럽의 경제성장과 복지가 괄목할만큼 다시 살아나게 됨. 유럽자본주의는 소련몰락 이후로 코포라티즘적인 방향으로 움직임. 경영-노동협정(사회적 협약)을 맺을 뿐 아니라 에어버스 및 여타 공공-민간 사업체들에서 보듯이 정부와 재계가 민관 공동투자에 나서는 것을 장려. 이러한 조치들은 처음에는 아주 성공적이었지만 지금은 일정한 의문에 처해있음.

9. 자본주의의 황금시대

- 전후 호황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이는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결합된 것임. 부분적으로는, 국제적 차원에서 전후 호황에 유리한 여러 발전이 있었음. 그 첫번째는 여러 나라들의 경제정책을 서로 조율하기 위한 노력이 역사상 처음으로 확립되었다는 거. 여기에 IMF, 세계은행, 브레턴우즈 협정 등이 확립된 의의를 발견할 수 있음. IMF는 전쟁으로 무너진 유럽 각국을 원조하는 것이었고, 세계은행은 개도국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고, 브레턴우즈 협정은 안정된 환율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음. 여기에 GATT와 마샬 플랜이 합쳐지게 되면서,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떠받치는 강력한 군사적-정치적 원동력을 제공.

- 자본주의 황금시대가 이렇게 냉전이라는 국제적 환경에서 강력한 추동력을 얻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핵심을 보자면 역시 각국 국내경제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또 유지되었던 호황이라고 보아야 함. 첫째는 미국 경제가 방대한 수요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이것이 시장의 재화를 흡수할 수 있었다는 것. 미국인들은 전쟁기간 동안 높은 소득을 벌어들인 바 있었고, 또 전쟁이 끝나자 자동차, 주택, 새로 발명된 텔레비전 같은 소비재들에 굶주려 있는 상태였음. 둘째, 2차대전 기간 중 새로이 발명된 기술과 신제품들이 또한 추동력을 제공하였으니, 새로운 대중 교통수단이자 관광업이라는 신규산업을 창출한 항공기술이 그 예임. 그밖에 임금을 생산성 향상과 연계시킨 새로운 단체협상이나 정부 역할의 확장 등을 들 수 있음.

10. 황금시대, 종말을 고하다

- 70년대가 되면 근본적 제도에 변화가 있었음. 그래서 사람들이 인플레로 인해 굳이 허리띠를 졸래매기 위한 몸부림을 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들이 존재했음. 새로운 소득 부양 체제(사회보장제도, 실업보험, 은행 예금자 보험, 임금계약에 내재되어 있는 생활비 산정체제 등)가 있었기에 예전처럼 갑자기 물가가 상승한다고 해서 소비자 지출도 확 줄어들지 않았던 것. 이렇게 30년대처럼 공황에 취약했던 자본주의가 이제 경기침체에 저항력을 갖는 황금시대의 자본주의로 넘어가면서 인플레에 대한 취약성도 함께 증가한다는 예기치 못한 효과가 생겨난 것.

- 불평등 문제의 아홉가지 용의자들(배리 블루스톤)

(1) 기술변화로 인해 숙련된 노동자들이 프리미엄을 얻게 된 반면 숙련도가 덜한 노동에 대한 수요 감소

(2) 고용은 상업용 비행기 생산과 같은 고임금 부문보다는 맥도널드 햄버거와 같은 저임금 서비스 산업에 집중

(3) 트럭화물 등과 같은 많은 산업들에서 규제가 완화되면서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유입됨

(4) 노조 조직률 자체가 크게 떨어져 한때 35%에 달하던 노조 조직률이 그 3분의 1이하로 감소

(5) 기업의 인사정책 또한 장기적 고용에서 단기간의 시간제 노동자로 중심 이동

(6) 현대적 미디어의 발전으로 대중적 명성을 누리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승자독식 시장이 생겨남

(7) 그전에는 국내 노동자들이 비교적 좋은 임금을 받으며 생산하던 재화들의 시장을 이제는 외국 생산자들이 점령

(8) 지구화 현상의 여러 모순의 결절점이라 할 국제적 자본 이동 또한 거의 똑같은 결과를 낳음

(9)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저임금 직종을 놓고 경쟁하는 노동공급이 늘어남

- 여기에 가난한 이들의 소득을 부양하는 데 적극적 원천이던 정부가 후퇴함

- 황금시대는 70년대 종언을 고했으며, 이는 어느하나가 아니라 여러 변화들 때문에 빚어진 결과. 이러한 파괴적 사태발전의 시작은 인플레였음. 67년 생계비의 상승률은 2.9%였는데, 7년이 지나자 11%로 뛰어오름. 최초에 점차 인플레가 나타났던 원인은 아마도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기간 동안 군비지출이 늘어났던 압력이었을 것임. 하지만 그후 인플레가 폭발하게 된 것은 오펙 카르텔이 두번에 걸쳐 석유수출 봉쇄를 단행했던 오일쇼크에 기인하는 것이었으니, 이로 인해 73년에는 가솔린 가격이 3배로 뛰었고 79년에도 같은 일이 벌어짐. 물가의 상승과 경제약화가 결합되면서 강력한 경제성장이 사라지고 스태그플레이션이 등장.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케인즈적 경제 체제의 적실성이 의문에 처하게 되고 인플레와 싸울 주된 무기로서 통화권력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 미국에서 통화권력을 행사했던 것은 연준이었는데, 이는 그 산하의 은행들에 대한 금리를 인상함. 그 결과 호황은 침체로 바뀌었지만 통제를 벗어나던 인플레는 종식됨. 비록 연준의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경제가 언제 인플레로 빠져들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 이후로 유령처럼 떠돌게 됨.

11. 사회주의의 발흥과 몰락

- 영국에서 성인남성들의 보편선거권이 1860년대 말과 1870년대까지 주어지지 않았음. 한 역사가는 이렇게 말함. "만약 참정권이 모든 이들에게 주어졌다면 산업혁명이라는 과업이 가능했을지가 심히 의심스럽다. 우리가 오늘날 향유하고 있는 거대한 양의 자본 총량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노동자들의 형편없는 저임금을 감수한 결과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더 의심스럽다."

12. 경제생활의 지구화

-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는 미국내의 여러 이유에서 벌어진 일이며 무슨 외부충격의 결과 따위로 벌어진 것이 아님. 이 체제의 규칙들은 대개 미국이 기획한 것이었는데, 미국 스스로가 그 규칙들(특히 스스로의 대외적자를 통제하고 달러 저하로 인한 금 유출 사태를 막겠다는)을 준수할 능력도 의사도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붕괴한 것임.

13. 어째서 어떤 나라들은 여전히 가난한가

14. 정보기반 시장사회의 형성

- 디지털 기술이 새로운 것이며 지구화와 새로운 생산물과 새로운 생산과정을 촉발시킨 것은 사실임. 또 그것이 생활방식에 가져온 결과들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옛날 세대의 기술변화보다 더 큰 것도 사실임. 하지만 그 경제적 결과들을 보면 과거의 기술변화에 미치지 못함. 생산성 증가가 어느정도 나타났지만, 소득 불평등 또한 증가. 생산이 이루어지는 방법과 장소라는 점에서는 경제적 생산에 변화가 벌어졌지만, 그러한 생산의 지구화는 그 이전부터 이미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었음. 그리고 이 새로운 기술이 나타났다고 해서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는 자본주의 경기순환의 경향성이 해결된 것은 분명히 아님.

15. 우리가 처한 문제들, 우리에게 놓여 있는 가능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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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숏

경제 2014. 11. 9. 19:24

 


빅숏

저자
마이클 루이스 지음
출판사
비즈니스맵 | 2010-07-1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부동산 몰락의 도미노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빚내서 집 산...
가격비교

 

- 초창기 서브프라임 분석가들은 장부에 기록한 소량의 대출때문에 파멸. 이 사태로 시장은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말라는 간단한 교훈을 얻을 수도 있었음. 그런데 간단한 교훈을 제쳐두고 복잡한 교훈을 터득하는 방법을 선택. 계속 대출을 확대하되 장부에 기록하지 말라는 것이었음. 대출을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의 고정수익부서에 팔아넘기면 거기서 채권으로 포장되어 투자자들에게 판매됨.

- 채무가자 아니라 대출업자들을 주시해야 함. 채무자들은 언제나 일을 크게 벌이려고 함. 자제하는 것은 대출업자들의 몫임. 그러니 대출업자들이 자제력을 잃을때 조심해야 함

- 월가의 대형회사들이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그밖에 다른 회사들은 제조업체와 동일한 목적을 추구. 최대한 값싼 원자재(주택대출)로 최대한 비싼 상품(모기지채권)을 내놓는 것이었음. 이때 최종상품의 가격은 무디스와 S&P의 모델로 선정된 등급에 좌우되었음. 그와 같은 모델의 내적 운용은 공식적으로 비밀리에 부쳐짐

- 일곱자리수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로 꽉찬 월가의 트레이딩 부서들은 다섯자리수 연봉을 받는 멍청이들을 속여서 최악의 대출에 최고등급을 받아내기 시장. 그들은 아이비리그 출신 답게 치밀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 예컨대 무디스와 S&P사람들이 주택대출을 개별적으로 평가하지 않거나 자신들만큼 자세히 분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림. 그들은 대출 풀의 일반적 성격만 살펴보고 있었음.

- 시장은 종종 극단적인 가격변동 가능성을 과소평가. 옵션시장은 또한 먼 미래가 실제보다 현재와 더 유사하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었음. 이와 더불어 옵션가격은 기초주식이나 화폐, 혹은 상품의 변동성을 표시하는 기능이었고, 옵션시장은 가까운 과거를 바탕으로 한 불안정한 주식이나 화폐, 혹은 상품이 어떻게 될지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음. 주당 34달러에 거래되는 IBM 주식의 가격이 전년 한해 동안 크게 변동했다면, 근시일내에 언제든지 주당 35달러에 IBM을 구매할 수 있는 옵션의 가격은 좀처럼 낮게 책정되지 않음. 반면 금이 지난 2년 동안 1온스등 650달러에 거래됬을 때 향후 10년동안 아무때나 1온스당 2천달러에 금을 구매할 수 있는 옵션의 가격은 상당히 낮게 책정됨. 옵션기간이 길어질수록 블랙-숄즈 옵션 가격결정 모형은 점점 더 어리석은 결과를 산출하고 그 모형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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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주인

경제 2014. 11. 9. 19:24

 


보이지 않는 주인

저자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1-03-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보이지 않는 주인≫은 미국의 사회 평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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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법칙의 등장 : 기업이 탄생하다

- 귀족과 부르주아지는 서로 의존했고, 이 의존은 그들 모두의 성격을 바꿈. 영국의 머스코비(1553), 동인도회사(1600), 그리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1602) 등 최초의 무역독점 기업들이 생겨나자, 군주들에게는 굳이 돈을 들여 군사적 원정을 벌이거나 그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부를 쌓는 길이 열림. 상인들은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됨. 왕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면책조상을 부여했기 때문. 독점 특허기업은 지배권을 가진 군주와 부를 가진 상인들 사이에 벌어졌던 숨막히는 싸움과 교착상태를 멈추게 함. 군주와 상인의 계약은 그들의 권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음. 그들이 확립한 코포라티즘 국가의 지배력은 오늘날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음. 중앙 집중은 필수적 요소였으며 왕의 권력이 클수록 기업은 강한 지배력을 누림

- 미국 독립 혁명은 영국에 맞서 식민지 주민이 일으킨 반란이라기보다, 제멋대로 법을 만드는 다국적 독점특허기업에 저항해 소상인이 일으킨 반란. 이런 경험 때문에 미국 건국시조들은 기업 권력에 제한을 두고자 햇음. 기업활동은 연방 정부가 아니라 각 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음. 이는 기업의 영향을 받는 지역의 사람들이 기업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서였음. 또 건국시조들은 기업에 공익적인 일, 가령 다리를 놓거나 수로를 만들 것을 요구. 그들은 동인도회사라는 거대한 기업과 싸웠던 경험때문에, 중앙집권적 경제를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음. 애덤스미스처럼 그들은 큰 정부와 큰 기업을 꺼려했음.

- 모두에게 열린 경쟁이라는 신화에도 불구하고 코포라티즘은 중앙화폐가 지역화폐를 내쫓아버린 르네상스에 최초로 싹틈. 집중화된 가치창조라는 생각은 닉슨정부에서 정점에 이르렀으며, 연준은 뻔뻔스럽게도 돈을 만들어낼 자격까지 얻어냄. 이런 권력구조를 해체하고 싶었던 기술자들은 컴퓨터 네트워킹이라는 기술을 개발. 하지만 이 기술도 장기 호황이 이루어지면서 시장 수익성을 노린 사람들에 의해 상품화 되어버림. 결국 이 기술은 나스닥의 의붓자식으로 들어앉음. 신경제의 지배하에 돈만 빼고 모든 자원은 개방되었음.

2. 터전을 잃다 : 식민주의의 공포

- 새로운 지역을 직접 개척하는 것은 상인이었고,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은 군주였음. 이러한 분리는 지금 우리가 사계와 맺고 있는 관계로 이어짐. 토지는 재산이 되어버림. 이런 추상화는 부동산 소유의 개념이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의미. 땅을 직접 일구는 농부들에게는 이 변화는 대단한 것이었음. 봉건사회에서 토지는 거래되지 않고 그저 앞 세대에서 뒷 세데로 상속되었음. 농부들은 한 곳에 터를 잡고 살며 대대로 일군 땅을 자기것을오 여김. 반면 상인과 은행가들은 토지를 자본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여김. 귀족들은 자기 소유의 토지를 시장에서 팔아치웠고 상인들은 그 토지를 사들임.

- 오늘날 핼리버턴이 이라크에서 벌이는 일이 17~18세기에는 빈번하게 발생했음. 국부론은 애덤 스미스가 이런 상황을 보고 쓴 책임. 오늘날 시장주의자들은 이 책을 자유무역 정책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했다고 찬양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책이 독점의 문제점을 공격했다고 이해했음. 스미스는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국제무역에 반대하고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선호할 것이라고 가정. 그의 독자들은 아마 거기에 동의했을 것임. 미국 건국시조들도 이 가정에 동의함. 스미스는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이는, 작고 제한된 규모의 지역경제를 경제학이 다루는 대상으로 생각. 개인의 계몽된 사익이 전제되어 있었음.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기업권력을 규제하자는 급진파들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당시 기업들이 저지르고 있던 부당한 행동에 반대. 그 기업들은 실제 인간사회를 완전히 도외시했음.

- 개도국은 자신의 노동력과 자원과 토지를 겨우 반세기 전에 그 지배에서 벗어난 기업들에 다시 제공해야 했음. 대출금은 개발에 도움이 안됨. 대출금 때문에 수출산업에 대한 의존이 높아졌고, 사람들은 토지에서 쫓겨 났으며, 토지가 오염되어 생계형 농업조차 불가능해짐. 그러나 기업들은 자기들의 웹사이트와 보고소에 이 이야기를 올리면서 이것이 그들이 제공한 경제적 번영의 증거라고 말함. 그러나 GDP가 올라간다고 진짜 세상이 꼭 좋아지는 것은 아님.

- 리카도의 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가지 전제조건이 있음. 두나라의 무역은 그 두나라가 완전고용 상태에 있을 때만 가능. 만약 실업이 증가한다면 비교우위 이론은 더 이상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효과적 이론이 아님. 리카도 자신도 자기 이론은 두 나라의 무역이 균형을 맞출 때만 작동한다고 했음. 기업이 국경을 넘나드는 오늘날의 세계시장에서 리카도의 이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임. 그가 든 사례들도 비교우위를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것들임. 비교우위 이론은 서로 환율이 다른 열개 나라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문제에 이르면 더 이상 적절치 않음. 비교우위는 경제적으로 균형잡힌 나라들이 서로 무역을 할 때 적용됨.

- 자유무역의 세계는 기업 식민주의의 이익을 향해 기울어져 있음. 바닥을 향한 경주라고 말한 그 상황으로 가고 있음. 각국 정부는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자 경쟁적으로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하고 기업활동의 장애물을 치우고 있음. 즉 노동조합 결성을 막고, 환경기준을 완화하며, 공장을 지을 때 보조금을 줌. 나라들이 최소한의 기준에 대해 합의하거나 또는 국제 사회가 확실하게 규제하지 않는다면, 가장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나라가 기업을 유치함. 결국 개도국은 자신들을 위한 상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서구인들은 신용거래로 맘껏 소비를 즐김. 개도국에서는 소비자들이 같은 상품에 대해 훨씬 더 부유한 나라의 소비자들과 경쟁하게 되면서 식량이나 의류같은 생필품의 가격이 치솟음. 부국과 빈국의 사이에서 삶의 수준과 부의 불균형은 좋아지기는 커녕 더욱 심해짐.

3. 소유, 최고의 덕목 : 공간이 사유화되다

- 1800년대 노예 또는 해방노예들은 주인의 주택 주변에 있는 오솔길 같은 곳에 거주. 그러나 부자들이 그들이 자신의 집 근처에 사는 것을 싫어하자 도시 바깥으로 밀려남. 노예들은 도시 외곽에 오두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고, 부자들은 집근처 오솔길이나 샛길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복원함. 덕분에 도시는 걷기 좋은 곳이 됨. 이런 상황은 1800년대 후반에 바뀜. 산업혁명은 상업지역과 부유층의 거주지를 분리시킴. 증기선, 케이블카, 통근열차를 통해 집에서 먼 거리에 있는 직장에 오가는 것이 가능해짐. 도시와 그 주변의 역할은 완전히 바뀌어, 끔찍한 풍요로운 도심이 끔찍한 도심과 풍요로운 교외가 됨. 예전에는 회사의 경영자가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환경에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음. 왜냐하면 경영자 자신의 집도 그곳에 함께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제 그는 저녁이 되면 전차에 뛰어올라 모든 골칫거리를 남겨두고 자신의 집에 갈 수 있었음. 이제 부유한 자본가들은 노동의 현장과 분리되었음. 그들에게는 피난처이자 요새인 집이 생김.

- 2차대전후 사람들은 자동차를 구매할만큼 충분한 돈이 있었지만, 도로건설의 속도가 자동차 생산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음. GM은 연방정부가 예산을 들여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국회의원들에게 로비. 고속도로의 건설이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것이 GM이 내세운 이유였음. 가장 사적인 탈것에 공적 편의를 내주는 일에 공공예산이 사용됨. 한편 도심전차를 비롯한 대중교통에는 국가 보조금이 할당되지 않음. 대중교통은 직접 이익을 창출해 생존해야 했음. 전차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함. 이런 광경을 목격한 미국인들은 앞다투어 자동차를 구매. 그리고 그 결과 대중교통은 더 빠르게 몰락함. 예전에는 노동자와 관리자가 같은 통근열차를 타고 출근했지만 이제는 각자 다른 수단을 통해 일터로 향함. 교외의 중심부는 보행자가 사라지면서 쇠락했음. 그래서 사람들은 이웃과 만나기가 힘들어졌고 결국 지역경제는 몰락했음.

- 투기시장의 조류에 몸을 내맡기면서 집은 자산으로 바뀜. 한걸음씩 장소는 부동산이 되고, 부동산은 모기지가 되고, 모기지는 파생상품이 됨. 정부는 우리의 집과 우리 동네에 새로운 사회질서를 불어넣어 달라고 기업에게 위탁했음.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서 덩는 것은 시민적 덕성이나 생생한 삶의 경험이 아니라 자기 가족과 부동산에 대한 자긍심이었음. 우리가 집과 가정생활을 점점 더 실물보다는 추상으로 대하면서, 행복이나 사회적 지위도 자기가 소유한 부동산 가치 같은 것으로 평가하게 됨.

4. 인간이 외톨이가 되다 : 훌륭한 소비자가 되는 방법

- 현대적인 브랜딩은 루이 14세의 유명한 재무장관 콜베르부터 시작. 그 당시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은 함대를 건설하고 무역항로를 방어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음. 그러나 프랑스는 여전히 육군에 의존했고 해상전투의 경험도 별로 없어, 해적에게 재물을 털리고 라이벌 식민제국들에게 땅을 빼앗겼음. 프랑스는 신대륙에서 벌어지는 자원경쟁에도 참여할 수 없었음. 콜베르는 프랑스의 대안은 오직 국내산업을 키우고 자국 상품을 다른 나라에 파는 것임을 깨달음. "프랑스의 패션이 에스파냐의 페루금광에 대한 답이다." 콜베르는 영토나 자원이 아니라 일종의 스타일을 만들어 다른 나라와 겨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음.

- 프랑스 군주들은 프랑스 선단이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게 하는 대신, 화려한 병에 담긴 향수를 수출하게 함. 프랑스 장관이나 루이 14세의 도장이 찍힌 캐비아, 비단, 와인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감

- 콜베르가 사치문화를 발명한 후 4세기 동안 브랜딩의 방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음. 브랜딩은 중앙정부나 중앙기업, 혹은 그 둘의 조합을 신격화하는 과정임. 그리고 브랜딩은 개인의 지위나 스타일 혹은 위상을 더 낫게 바궈준다고 속이면서 실제로는 사람들을 추상적인 이상과 제도에 더 매달리게 만들고 중앙에서 내보내는 이야기와 이미지에 아무 생각없이 다가서도록 만듬. 그래서 사람들을 서로에게 더욱 분리되도록 만듬. 브랜딩은 권력이미지와 신화에 힘입어 그 어느것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음. 그리고 동시에 개인은 신민으로, 시민으로, 노동자로, 그리고 최후에는 주주로 정의되었음.

- 대량생산이 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기계부품으로 만든 것처럼 대중 마케팅은 소비자를 외롭게 만듬. 서로와 어울리고 싶은 충동이, 소비를 통해 다른 사람을 이기고 싶은 충동으로 바뀌었음. 목표 대상이 고립되어 있을수록 광고는 효과적으로 전달됨. 처음에는 온 가족이 함께 라디오나 텔레비전 앞에 모이지만, 그 매체들은 원래 고립을 좋아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음. 텔레비전이 가족 구성원 모두의 방에 각각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님. 그래야 사람들은 각자의 방에서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고, 광고는 정확하게 타겟을 향해 갈 수 있게 됨.

- 기업은 사람들이 자신을 최고의 친구로 보게끔 만들었음. 기업은 소비로써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그들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 기업이 전하는 메시지였음. 즉 협동주의와 공동체는 집단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반면, 코포라티즘은 개인성을 되찾아 준다고 기업들은 말했음. 포코라티즘은 당신을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음.

5. 자아를 믿어라 : 광고가 세상을 지배하다

- 우리는 청교도들에게서 고된 노동, 현명한 투자, 그리고 자비심을 연상하는데 이처럼 영혼을 돌보려는 노력은 지상에서의 만족 역시 가져다 주었음. 그들의 금욕과 절제는 물질적 보상으로 이어졌고, 현세의 번영은 내세의 구원을 가리키는 표지였음. 당연하게도 미국에서 발전해 온 프로테스탄티즘의 브랜드는 19세기 중반에 기업들이 그 브랜드를 장악했을 때 이미 무한한 성장과 물질적 부의 추구라는 자본주의적 요구와 일치해 있었음.

6. 우리는 누구에게 빚을 졌을까 : 화폐의 음모

- 오늘날 사용하는 화폐 시스템은 중앙의 권력과 부자들이 자산을 더 증대시키려는 아주 구체적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 동시에 그보다 작은 인간집단과 지역이 스스로를 위해 가치를 창출할 능력은 위축됨. 역사책은 군주들이 특정한 화폐를 만들면서 다른 화폐들을 추방해버린 과정을 통째로 생략하거나 적당히 미화해 놓았음.

- 중앙화폐 시스템은 애초부터 돈을 빌린 사람들이 그 돈을 갚을 수 없게 만들어진 것. 중앙에서 만들어진, 이자를 낳는 돈은 경쟁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음. 갚아야 할 돈보다 적은 돈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누군가는 팟한하여 돈을 잃게 됨. 중앙화폐의 목적은 경쟁을 촉발하고 경제팽창을 요구하며 중앙은행에 대한 전체 빚을 증가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피할수는 없음. 중앙에 있는 것들이 성장하는 동안 주변에 잇는 것들은 빚을 지게 됨. 이는 진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부를 빼앗아 돈을 빌려주는 계급들에게 재분배하도록 함.

- 중세사람들은 은행계좌가 아니라 생산적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더 건전한 경제를 일으켰고 노동자에게 적절히 보상했으며, 장비를 관리, 보존햇음. 그들은 토질을 개선했으며, 발전된 풍차, 수차, 오븐, 와인 압착기의 연구와 개발에도 투자. 온실이 만들어진 것도, 석탄이 연료로 사용된 것도, 안경이 대중화 된 것도, 런던교가 세워진 것도 이때였음. 유럽 역상에서 처음으로 고기가 부족하지 않게 되었음. 번 돈은 중앙 권력이 공동체의 고혈을 빨아내는 일에 사용되지 않고 미래 생산성을 목표로 지역에 다시 투자됨.

- 지역화폐의 사용이 절정이 이르렀던 서기 1000~1300녕 사이에 유럽의 인구는 놀라운 속도로 증가. 영국에서는 300년 동안 인구가 2배로 성장. 그러나 1290년대 영국의 중앙권력이 단일하고 희소한 동전을 발행하고 그 돈에 유리하도록 지역 화폐를 추방하면서 화폐 시스템에 일대 변화가 일어남. 모든 나라의 군주들은 지속적 가치저하를 통해 부와 가치를 만들어냄. 10년 동안 삶의 질이 떨어지면서 인구가 다시 줄어들기 시작. 다시 30년 뒤 1347년 페스트가 발생함. 역사가들은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고 번영하던 문화가 파괴되었다고 말함. 그러나 빈곤과 역병이 아니라 그 직전에 일어난 화폐정책의 변화를 비난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것. 역병이 시작된 그 때에는 이미 삶의 질과 인구가 극적으로 쇠퇴하고 있었음. 농장이나 마을에서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은 더럽고 위험한 공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이라도 구하려고 도시로 몰려듬. 소도시들은 돈이 별로 없었으므로 기본 위생에 투자할 수 없엇음. 가부장적이고 기독교적인 중앙 권위에 대한 충성이 강요되었고, 이것은 이교도적 행위나 민간 의학, 여성의 직업 등을 위협. 그 결과 보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줄어듬. 미신이 증가했고, 마녀나 악마로 의심받은 이들이 화형에 처해졌으며, 공동체들은 서로를 적대했음.

7. 왜 옆자리의 동료와 경쟁하는가 :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

- GDP에는 연료를 덜 태우고, 집에서 밥을 먹고, 이웃과 즐기고, 카드놀이를 하고, 걸어서 직장에 가는 행동들이 모두 빠져 있음. 도리어 암, 이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비만 등은 소비를 촉진하는 이유로 모두 GDP에 기여함. 성공을 이런 식으로 측정하는 기준으로 인해 시장은 인간의 이익에 적대적으로 작동하게 됨. 사람들은 이 측정기군으로 화폐를 추적하려 하지만 그 화폐가 희소성과 저장성으로 기울어 있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음.

8.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까 : 실패한 반란의 역사

맺는 말 : 빼앗긴 세계를 되찾는 방법

- 코포라티즘은 그 자신을 인간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해답인 양 제시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복잡한 요구를 오로지 개인적 이기심으로 국한시킨 것에 불과. 사회와 사회의 복구에 대해 이처럼 무턱대고 접근하는 것은 정신적 측면에서 반사회적이고 효과 측면에서도 반인간적임. 다시 말해 그것은 인간정신에 대한 파시즘적 접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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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리츠 보고서

경제 2014. 11. 9. 19:23

 


스티글리츠 보고서

저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출판사
동녘 | 2010-10-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G20은 세계 경제를 대표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달러,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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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 세계경제에는 커다란 불평등이 존재하고, 그 기본틀에는 거대한 비대칭성이 존재. 이번 위기의 대응책은 이런 불평등과 비대칭성을 줄이는 것이 목표. 예를 들어, 위기때면 선진국에서는 경기역행적 정책들이 추진되는 반면, 개도국에서는 경기순응적 정책들이 추진됨. 그 이유는 개도국의 경우 경기역행적 정책을 취하는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 또 다른 이유는 개도국이 국제기구에 지원을 요청할 때 부과되는 조건 때문에 정책공간이 매우 제약되기 때문. (경기역행적 정책은 경기가 후퇴할 때 이자율을 낮추고 재정지출을 늘려 소비와 생산의 위축을 완화시키려는 경제정책. 경기순응정책은 경기가 안좋아지는데 이자율을 높이고 재정지출을 줄여 시중의 자금압박을 가중시키는 정책)

2. 거시경제의 이슈들

- 대공황에서 얻은 중요한 교훈중 하나는 시장이 자율조정능력이 없다는 것과 함께, 경제를 회복하고 완전고용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적 차원에서 정부간섭이 요구된다는 사실. 대공황 이후 여러 국가들은 총수요를 자동적으로 안정시키는 기제를 제공했고, 경제적 불안정을 완화시키기 위해 국가의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틀을 시행했음. 하지만 대공황은 물론 그 이전에 있었던 공황과 위기에 대한 기억들은 서서히 우리 머리속에서 사라졌고, 시장이 본질적으로 자동안정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맹신으로 회귀. 세계경제가 97~98년 동아시아 위기와 이어 발생한 98년 국제유동성 위기에서 신속하기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시장기제의 자율조정능력에 대한 그릇된 확산을 강화시킨 계기가 됨. 이때의 회복은 사실 공공정책 때문이었는데도, 그 공은 시장기제가 가져가 버림. 전반적으로 경기회복과 안정에서 정부의 간섭이 차지하는 역할은 아예 잊고 말았음.

- 이라크 전쟁과 여타 석유가격을 올리는데 기여한 사건들로 미국을 포함한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 나라들은 경기침체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금융부문의 투기로 더욱 악화됨. 정부가 이것에 대응해 바이오 연료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자,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식량가격의 상승으로 번져나감. 결과적으로 에너지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여러나라에서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직간접적으로 저하시켜 버린 것임. 저소득 가계의 예산 대부분은 에너지와 식료품을 위해 쓰이기 때문에 이 둘의 가격상승은 소득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음.

- 국제 금융은 자원배분을 잘못해 위기가 발생하도록 만든 거대금융기관에 대해 징벌하지 않고 돈만 공급해주는 결과를 초래. 더구나 구제금융기관들의 통합을 부추겨, 앞으로 체제적 위기 가능성을 높였음. 이런 방식의 병합은 시장구조에 도덕적 해이를 만연하게 하고 과도한 위험감수를 통한 한탕주의를 키움. 금융위기의 파급효과로 인해 실물경제가 취약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감수주체들의 기대를 말해주고 있음.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은 레버리지가 매우 높은 거대 금융기관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뛰어난 CEO들 사이에서 더욱 큼.

-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는 인플레의 근원을 세밀하게 따져야 함. 개방경제에서 교역되고 있는 재화의 가격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자율을 높이는 정책은 인플레에 대해 직접적 효과를 내기 힘듬. 정부가 물가통제에 대한 직접 개입을 늘려도 마찬가지임. 일부 개도국의 경우를 보면 이런 종류의 물가상승 요인들, 즉 교역이 GDP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함.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인플레를 잡겠다고 이자율을 올리는 시도는 물가안정이라는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매우 높은 비용을 초래할 것임. 특히 이자율에 민감한 비교역 부문에는 문제가 커질 것임.

3. 세계경제를 위한 규제개혁

- 정보가 항상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이라는 것이 인정되고 있고, 그로 인해 시장에는 비효율성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고 있는데도 이것을 모른척 했음.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은 금융시장의 본성이기도 함. 계량경제학적 증거와 함께 그동안 수없이 겪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들이 이와 관련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음. 시장은 일반적으로 스스로 고쳐지지 않고, 그중에서도 특히 금융시장은 흔히 말하는 시장실패의 특성이 강하며, 금융시장의 실패는 경제전체의 체제적 위기를 야기할 수 있음.
- 규제가 혁신의 속도를 늦춘다는 주장은 더 엄격한 규제의 비용형태 중 하나로 종종 야기되는 것임. 글내 몇년간 금융부문에서의 혁신이 경제의 전반적 실적을 증진시켰다는 증거는 거의 없음. 물론 혁신이 금융부문의 이익을 늘린 것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금융부문에서 행한 혁신적인 노력의 대부분은 규제와 세금, 회계기준을 교묘히 피해가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음.

4. 국제기구와 글로벌 규제에 맞는 경제철학

5. 국제금융혁신

6. 세계경제의 대안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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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저자
로버트 라이시 지음
출판사
김영사 | 2011-02-14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전세계를 쇠망치로 강타한 대불황 이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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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원적 문제가 부상한 것은 사실 미국 중산층들이 글로벌 경쟁과 노동대체 기술로 인해 이중고를 겪기 시작한 80년 경이었음. 이때부터 미국은 자국의 노동인력이 급격히 달라진 환경에 더 잘 적응하도록 사회안전망(최저생활보장제도)을 확충하고 노조에 권한을 부여하고 교육 및 직업훈련을 개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했는데, 그러기는 커녕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음. 중산층이 번성할 수 있는 일련의 새로운 정책들을 시행하는 대신, 정치 리더들은 전지전능한 자유시장에 대한 우세한 신념을 바탕으로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수용했고, 노조를 탄압하여 축소시켰으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었고, 사회안전망을 분쇄했음. 70년대 말 미국인 총소득에서 최상위 부유층 1퍼센트가 가져가는 비율은 9퍼센트에 못 미쳤음. 그러나 이후 소득은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되었으며, 07년경 상위 1퍼센트가 가져가는 비율은 23.5퍼센트에 달했음. 소득이 이 정도로 소수에게 집중되었던 마지막 시기가 28년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님

- 대량생산이 대량소비와 동행해야 할 때, 대량 소비는 다시 부의 분배를 필연적으로 수반함. 기존의 부가 아닌 현재 생산되고 있는 부의 분배 말이다. 그래야 국가의 경제조직이 공급하는 재화와 용역의 양에 상응하는 구매력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음. 29~30년의 미국에서는 그런 종류의 분배가 달성되기는 커녕, 거대한 흡입 펌크가 작동해 당시 생산되던 부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소수의 손에 안겨주었으며, 이는 그들의 자본축적을 도왔음. 대량 소비자들의 손에서 구매력을 앗아감으로써 자본가들은 그들의 축적자본을 새로운 생산설비에 재투자할 근거를 세워주는 조건, 즉 다신들의 생산품에 대한 효과적인 수요까지 없애버린 셈이 되었음. 결과적으로 마치 포커게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의 플레이어에게 칩이 집중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 다른 플레이어들, 즉 여타의 국민들은 돈을 빌려야만 게임에 계속 참여할 수 있었음. 대다수 국민들의 신용이 바닥나자 게임은 중단되었음.

- 케인즈는 메리너 에클스가 경기침체제 정부에서 취해야 할 것으로 권고한 사항들에 대해 이론적 설명 및 실용적 타당성을 제공. 경제체제의 생산능력이 보통 사람들의 구매능력을 웃돌지 않도록 총수요를 유지하라. 그러면 기업체들의 투자 인센티브도 적절히 조정될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근로자들에게 경제성장의 결실을 비례적으로 분배하는 기본합의를 강제하는 것임.

- 에클스와 케인즈가 주목한 것은 부자들이 나머지 사람들에 비해 너무 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너무 적게 소비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 적어도 그들이 소비할 수 있는 수준에 비하면 말이다.

- 정부관리들은 08년 금융붕괴가 일어난 원인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지만 대안은 없는 수많은 국민들이 대출을 이용하는 바람에 그 수준이 최고점을 찍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이 리스크가 과도하게 높은 대출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 금융경제가 과도한 탐욕과 투자로 휘청거린 것은 사실임. 수십년간 이어진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더 큰 수익에 대한 기대를 품고 더 큰 리스크를 떠 안도록 유혹했음.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금융경제가 아니라 바로 실물경제에 이었음.

- 만약 대부분의 미국인이 경제성장의 보상을 꾸준히 공유했다면,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살 수 있었을 것. 어려운 때를 대비해서 더 저축했을 것이고, 수입지출의 균형을 맞추며 생활했을 것임. 설령 실직하고 임금이 깎였을지라도 말이다. 그랬다면 많은 돈을 대출받을 필요도 없었을 것임. 사람들이 수입 이상으로 지출하고 소비한 것이 문제가 아님. 그들의 수입이, 경제성장에 따라 그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합리적 기대치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

- 30년대에 성인이 된(그리고 그 교훈을 마음속에 새기고 40년대와 5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머리속에느 대공황의 끔찍한 기억이 남아 있었지만, 그 자녀들이 성인되 되었을 때는 미국에는 번영의 시기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들은 그런 번영과 풍요를 당연한 것을 받아들임.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대번영 시기에 출생했고, 이들은 오류투성이의 불안한 시장이 강력한 정부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헌함 할아버지 세대의 경험을 피부와 와 닿는 실제적 기억으로 갖고 있지 않았음. 이 마지막 세대가 성인이 되었을 때(70년대 말부터) 그들이 기억하는 것이라곤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성공 뿐이었음. 그런 그들은 경제실패의 원인을 정부에게로 돌리고 싶어하는 자유시장경제 옹호자들의 매혹적 논리를 쉽게 수용할 수 밖에 없었음. 게다가 이들 마지막 세대는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한배를 탔다는 공동체적 의식을 지닌 시대에 관한 기억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음. 대신 그들은 구성원들 각자가 스스로 살아나갈 기를 모색할 수 밖에 없는 경제사회를 목격했음.

- 미국인들은 이제 미국 경제가 생산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을 더는 마음껏 구매할 능력이 없음. 그 이유는 국민총소득에서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상위 부유층에만 집중되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기 때문. 급료와 생산을 연결해주는 기본 합의가 깨졌기 때문. 그렇다면 그 합의를 다시 확립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임. 오바마는 미국경제를 벼랑에서 돌려세웠음. 그가 제시한 은행구제와 경기부양 패키지는 연준의 저이자정책과 결합하여 대불황이 또 하나의 대공황으로 전환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음. 그러나 미국은 기본합의에 다시 전념하지는 않았음.

- 미국문화가 발산하는 메시지는 참으로 혼란스러움. 미친듯이 일하되 바보처럼 즐겨라. 이 두가지를 한꺼번에 실천하기란 불가능함.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이미 수년전에 문화적 모순이 발견되었지만 대불황에 접어들면서 더욱 심해졌다고 주장. 근면한 노동과 지연된 만족 이라는 청교도적 미덕은 하루빨리 꿈을 실현하고 욕구에 탐닉하라 는 시장의 가르침과 완전히 상반됨. 나이와 상대적 지위, 개인적 매력이 뒤쳐질까봐 두려운 마음에 욕구는 꾸준히 상승해만 가고,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일하게 됨. 근면한 노동을 둘러싼 논의는 언제나 거짓말을 전제로 하고 있음. 사람들은 언젠가는 만족한 삶을 영위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감.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열심히 일함으로써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음. 애덤 스미스조차 이런 기만과 속임수의 요지를 알고 있었음. 그는 도덕 감정론에서 이렇게 말했음. "전형적인 노동자란 평생동안 ... 그가 결코 도달하지 못할 허구의 고상한 휴식이라는 생각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진정한 안온함을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만이야말로 인류의 산업을 끊임없이 탄생시키고 또 움직여온 장본인이다."

- 51년부터 80년까지 호황을 누리던 30년 동안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70퍼센트에서 90퍼센트까지 달했으며, 경제 평균 성장율은 3.7퍼센트였음. 그에 반해 83년 대불황이 시작되었을 때 최고세율은 35퍼센트에서 29퍼센트, 평균성장율은 3퍼센트였음. 공급중심주의 학파들은 레이건이 실시한 감세정책이 80년대의 경제부흥을 촉발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질적 증거는 없음. 실제로 그런 경제폭발이 일어난 원인은 82년 레이건의 세금인상 때문이었음. 90년대의 경제성장 또한 감세정책의 영향이 아니라 클린턴이 93년 세금을 인상하면서 발생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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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악의 미덕, 탐욕

저자
스테파노 자마니 지음
출판사
북돋움 | 2014-06-1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탐욕’은 어쩌다가 인간 존엄까지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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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세기에서 14세기 사이 유럽인구는 무려 3배 이상 증가. 막대한 농촌인구가 도시로 흘러간 것도 그 원인이었음. 특히 주목할 것은 7세기부터 지중해 지역에 이슬람의 침입이 빈번해지면서, 여러세기 동안 동과 서를 이어주던 가교역할을 하던 지중해가 두 세계를 사실상 차단하는 장애물로 변했다는 점. 이런 상황은 상업활동의 급격한 쇠락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상인이라는 존재를 사라지게 함. 농업이 다시 주요경제활동으로 떠오르면서 일차적인 부의 원천이 됨. 그리하여 새로운 사회모델로 봉건제도가 형성됨. 봉건제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두가지 흥미로운 특징이 있음. 하나는 부동산에 대한 선호 때문에 동산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가 교역의 전략적 거점이 되지 못하면서 쇠퇴했다는 점. 본질적으로 폐쇄적인 영주 체제의 경제에서는 그 지역을 위한 물자만이 생산됨. 물물교환이 자연스러워 화폐유통은 무의미할 정도였음. 상업은 임시방편적 수단이었고, 상업활동을 통해서는 겨우 궁핍을 면할 수 있을 정도. 그 견고한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때가 11세기였음. 지중해 지역의 교역이 재개되고 대륙을 횡단하는 대상인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음. 또한 봉건영토가 확장되면서 새로 장인-상인 계층을 흡수하게 되었음.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던 이 계층은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야 했음. 이와 더불어 사회질서의 중심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 점도 주요한 변화였음. 사실상 도시는 인구증가와 함께 점점 늘어난 새로운 시민이 정착하기에 좋은 조건을 제공했음. 도시에 살게 된 새로운 시민들은 자기가 꿈꾸는 삶을 이루기 위해 이동이나 계획이 자유로워야 했음. 도시가 제공하는 기회와 상업으로 집중된 부를 손에 넣은 몇몇 인구집단은 동산 형태의 부를 축적하는 데 유리했음. 부를 축적할 기회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음. 사실 자연의 복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능력과 역량을 안겨주지 않음. 하지만 그런 최고의 행운을 완전히 거머쥔 이들이 있었으니,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며 봉건경제의 메커니즘과 달리,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부를 쌓는 기술을 익힌 대상인들이었음. 이들에게는 혁신적 기술이 있었고, 큰 위험을 감수할 만한 열정도 있었음. 대상인이 태어날 때부터 대상인인 것은 아니었음. 그들은 처음 자기 사업을 시작하고 확장하기 위해 금융자본이 필요했음. 이런 점에서 중요한 자금줄이 되는 신용 대부업이 자율적으로 번성하게 됨. 처음에는 친척이나 친구, 또는 다른 상인들에게 도움을 얻었으나, 그러한 자금줄은 한계가 있었음. 그러자 조합형태의 대부업이 출현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아직도 그 최초의 형태가 유지되고 있음. 베네치아의 투자회사, 제노바의 상단, 토스카나의 합자회사 같은 것이 그런 기원을 갖고 있음.
- 11세기 이후 상업혁명이 가져온 사회적 결과는 무엇일까?
(1) 사람이 거주하는 공동체 규모가 점차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 수백명 단위였던 이주민이 수천명 단위로 바뀌었고,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직접 얼굴을 맞대던 관계가 낯선 관계로 변하기 시작. 애초에 봉건영주와 그에 예속된 사람들의 관계는 인격적이었고, 농민과 지주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음. 하지만 이제는 금전관계로 인해 인격적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 영주에게 이행할 의무를 세금이나 돈으로 지불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직접 해야할 의무를 돈이 대신함. 상업분야에서 시작된 이러한 탈인격화는 시작부터 신뢰문제로 이어짐. "어떻게 잘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믿을 것이며, 심지어 어떻게 그런 사람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어찌 됐든 신뢰 없이는 계약서에 서명할 수도 없고, 계약 없이는 사업도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2) 화폐 유통은 한편으로는 시장의 발전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롭게 정비된 경제구조 안에서 농민과 장인들이 농노의 신분에서 해방될 기회를 얻었음을 의미하기도 했음. 이러한 초기 시장경제의 측면은 이제껏 논의된 적이 없었음. 화폐경제는 자본을 축적하게 해주고, 결국 노예제도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데도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음. 이 점에 관해서는 세계최초로 노예제도를 추방한 볼로냐 지방정부의 낙원의 책(1257)이라는 문서에 잘 정리돼 있음. 상업 거래에서 화폐사용이 늘어났다는 것은, 다시 말해 부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낯선 사람들의 역할을 인정했다는 의미. 화폐는 사실상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교역수단이 되었음. 동산은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부동산과 달리 축적하는 데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인구의 도시집중이 심화될 수 있었음. 그러나 여전히 봉건 사회질서에 대한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사회로서는 근본적으로 비인격적 화폐에 대해 쉽게 의심을 거두지 못했음. 더 큰 어려움은, 종교적 처벌보다 법적 처벌이 우세한 사회에서 돈에 대한 범죄를 다룰 만한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점에 있었음. 사실 상업시대 이전에는 이미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약과 같은 규약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음. 윤리적 제재가 법적인 처벌보다 더 강했고, 윤리적 제재만으로 책임과 의무를 존중하는 데 무리가 없었음. 당시 도덕률은 명백히 반상업적이었으며 상행위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보였음. 심지어 교황 레오 1세는 매매행위에서 죄를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글을 남김. 그리고 그 근거로 "상업에 종사하는 삶은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 새롭게 바뀐 현실과 옛 윤리규범 사이에 골이 깊어가는 동안 신자들은 깊은 혼란에 빠짐. 특히 그중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더욱 당혹스러웠다. 그들은 분명 매우 곤란하고 난처했을 것이다. 신자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양심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런 불안감은 12세기 말가지 계속되었다.
- 욕망에는 끝이 없다. 재물의 사용은 정당한 기준 속에서 향유되어야 한다. 즉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그것을 사용할 만한 합당한 조건을 갖추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 기준을 넘어서는 것은 죄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추구하거나 지키려고 하면 그것은 곧 죄다. (신학대전)
- 1008년 볼로냐에 대학이 탄생한 것은 삶의 문화가 무르익어 피어난 상징적 사건으로 꼽을 수 있음. 이는 한편으로는 상업혁명의 눈부신 결과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에 집중된 사회질서의 모델로도 볼 수 있음. 이때 도시는 로마나 콘스탄티노플 같은 제국의 주요 대도시처럼 중앙집중된 권력의 집결지나 여러 민족의 교차로가 아니었음. 이 도시는 자유시민들의 공동체였고, 새롭게 만들어진 제도 및 기구들과 더불어 자치적으로 운영되었음. 또한 새로운 도시민들은 같은 도시민이 아닌, 그래서 공식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치적으로 도시 성벽을 방어했음. 도시공간 역시 발전된 사회 모습을 부각할 수 있도록 설계됨. 고대 그리스 광장을 염두에 둔 중앙광장, 대성당, 총독관저, 상인들과 상회를 위한 건물, 계약과 교역의 장소인 시장, 부유한 유산 계급의 저택, 평신도가 묵을 수 있는 교회들이 만들어짐. 이런 장소 가운데, 무엇보다 전형적인 시민사회를 규정하는 덕이 계발되기도 함. 상호신뢰, 보조성, 형제애, 이타성에 대한 존중, 협동형태의 경쟁 등의 덕이 계발됨. 이렇게 생겨난 도시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됨. 거주지 군락에 불과한 농촌마을이나 봉건영주의 성에 연결된 촌락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이런 도시 공동체는 그리 큰 차원은 아니었으나, 정치, 경제적으로 자율성을 표방했고, 사회적 결속을 현실화하는 역량도 대단히 컸음. 14세기 이탈리아 중북부는 도시문화가 좀더 쉽게 퍼질 수 있는 전형적 환경이었음. 이 지역에는 오천명 이상의 주민이 사는 도시가 96개에 이르렀고, 그 가운데 53개 도시는 주민이 만명 이상이었음. 이는 이탈리아 중북구 전체 거주 인구 26.4%에 이르는 수치였고, 유럽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9.5%에 달했음. 이런 이탈리아 모델을 빠르게 습득한 곳은 네덜란드뿐이었음. 이에 비해 영국은 16세기에도 도시인구의 비율이 4.6%에 불과했음.
- 도시의 확산과 확대는 도시문명을 꽃피우는 모티브가 되었다. 그 결과 전혀 뜻하지 않은 부작용도 낳음. 그것은 바로 당파심. 당파심은 사회의 응집력가 조화를 위협할정도로 매우 위험한 요소였음. 이를 간파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가 13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 단테라는 주장이 있음. 단테는 향연 4권에서 당파심의 기원이 탐욕에 있다고 단호하게 주장. 또한 이 같은 악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제안. 단테의 그 제안은 세계 제국에 관한 것으로, 오직 황제에게만 온 세계의 지배권을 부여하자는 것. 다시 말해 최고의 통치자에게 세상을 지혜와 정의로 다스리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것. 화가 암브로조 로렌체티는 선한 통치자의 비유라는 작품에서, 도시의 조화로운 발전을 침해하는 모든 것의 원인으로 탐욕을 꼽음. 더 나아가 선한 통치는 선한 상업과 동의어인 만큼 상인의 탐욕은 당파성을 더욱 크게 하고 결국 악한 통치로 이어진다고 했음.
- 유대인의 고리대금 사업은 특히 14세기 말 이탈리아 중북부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공동체의 부를 착취하는 주범으로 지목. 결국 고리대금업자는 반시민적인 방향으로 부와 돈에 집착하고 신학적으로는 사악한 자였음. 프란치스코회의 설교자들이 유대인 공동체에 적대감을 갖게 된 것도 이들 집단이 경제적 채산성을 떨어뜨리고 반사회적인 결과를 낳는 주범이라 여겨졌기 때문. 1462년 페루자에 처음 설립된 자비의 산이라는 경제기구에 특히 프란치스크회 회원들이 헌신했던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음. 이 기구의 목적은 고금리 대부업을 봉쇄하고 고리대금업이 파괴해 버린 공동체의 관계망을 복구하는 것이었음. 또한 이 기구는 사설담보 대출기관을 없애고 다양한 시민층의 이해를 전달하는 중개자 역할을 했음. 이에 따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 신용보증을 해주고, 상인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예금자들에게 투자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음. 처음에는 예금이자가 없었다. 그러다 예금이자는 4%, 대출이자는 6%가 되었다. 예대차이는 기구의 운영 및 유지비로 쓰였다. 자비의 산 활동의 경제적 의미를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펠트레의 베르나르디노였음. 그는 이탈리아 중북부의 주요 도시에서 무려 3600회 설교하는 동안 자비의 산을 홍보. 이 기구는 특히 빈곤문제나 재정면에서 늘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는다면 그 우수성을 높이 평가. 베르나르디노의 설교의 핵심은 첫번째로 기구의 장점에 있었음. 개인이 주도적으로 하는 것보다 기구가 운영하는 것이 더욱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말. 두번째는 다수성에 관한 입장. 자비의 산은 여느 자선과 달리 많은 이들의 다양한 요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음. 세번째는 거룩함에 관한 것으로, 특히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에게 친숙한 개념. 자비의 산에 기부하는 것은 결국 자비를 베푸는 행위인 만큼, 교회를 꾸미는 일보다는 좀더 학실한 천국행 티켓이 될 것임. 결국 자비의 산은 부유한 상인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기구로 부각되면서 그들의 반대와 강경한 공격에 맞서야 했지만, 공동선을 돕는 기구로 확실히 자리매김. 이러한 프란치스코회의 운동으로 상업과 교권은 각각 근거를 찾고 균형을 이룸
- 15세기 이후의 교역 기회가 눈에 띄게 확대될 뿐만 아니라 도시-국가간 전쟁으로 인해 신용거래의 필요성도 크게 증가. 따라서 보험계약, 신용거래, 은행간 거래가 새로운 재정적 수단으로 등장. 15세기 말까지 유럽재정과 산업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의 하나였던 피렌체의 경우는 좋은 예가 될 것임. 피렌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유일한 국제화폐(플로린 금화)를 발행했고, 공공부채를 운영하는 정책에 힘입어 정교한 관리제도를 갖추었음. 국채를 발행하는 2차시장이 개발되었고, 이 때문에 투기바람이 불기도 함. 그리고 이런 현상은 투기수익의 윤리적 정당성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야기. 교회법학자와 설교자들은 대부분 고리대급업에 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을 발전시켜 투기적 사업을 맹렬히 비난.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회 수도자 엠폴리의 프란치스코는 통찰력 깊은 반론을 펼침. 국채 투기자를 고리대금업자로 간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밝혔다. 우선, 채권시장에서의 거래는 담보가 아닌 매매계약으로 이루어진다. 전통적 해석으로 볼 때, 담보계약만이 고리대금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 둘째, 이때 구매대상은 상품이 아니라 권리다. 다시 말해, 채권을 사는 것은 지방정부가 약속한 수익 혹은 자본을 받을 권리를 사는 것이다. 셋째, 이런 권리의 가치는 불확실하다. 투기자는 다른 이에게 채권을 팔아 다시 자본화할 수 있지만, 투자가치가 계속 변하므로 가격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더우이 지방정부는 액면가의 고정비율(15%까지)로 이자를 지불하지만, 국채의 시장가격이 변화무쌍하므로 실질적인 이자율은 불투명하다. 다시 말해 국채구입은 위험성 있는 구매이므로, 이때 발생한 수익은 고리대금업자의 이자로 볼 수 없고, 일종의 위험수당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언젠가부터 교회가 보험료를 합법적으로 인정한 것처럼 국채 역시 합법적으로 보아야 한다.
- 17세기 중반무렴 두 노선의 사상이 생겨남. 이 두가지 사상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모아짐. 그것은 우선, 앞에서도 봤지만 과거의 중심 개념이던 공동선이 공동이익으로 나눠 가졌다는 의미는 아님. 다만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바가 있고, 어떤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른 이가 원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판단할 근거 또한 없어졌다는 의미다. 바로 여기서 공공성과 개인의 대립점이 나타나게 됨. 다시 말해, 공공성의 공통분모와 개인의 더 좋은 것이 충돌하게 된다. 두번째, 경제적 관계의 변화로 인해 사상에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리적 탐험의 결과로 상업이 놀랍도록 확산되었고, 지역과 국가간의 가격차가 줄어들면서 전반적으로 수익이 하락. 다른 한편으로 수익이 감소하면서 시장이나 농촌이 아닌 공장출신의 자본가 계층이 성장하기 시작. 이렇게 성장한 새로운 자본가 계층의 관심사는 하루빨리 상인-생산자층과 부딪혀, 이윤이 어디어 창출되는지 그 근원을 따지는 것이었다. 그들의 논리로, 이윤은 생산부문에서 창출되는 것이지, 유통부문에서 창출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통부문에는 단지 잉여가 놓이기만 할 뿐이었다. 따라서 신흥 자본주의자 계급은 낡은 관료기구를 청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윤리적, 신학적 속박도 없애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 시민사회의 전통을 철저히 공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맨더빌이었음. 개인의 악덕은 사회의 이익이라는 부제가 달린 꿀벌의 우화(1714)라는 그의 책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킴. 이 우화는 이기적 꿀벌들이 모여사는 벌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꿀벌들이 탐심 덕분에 풍족하게 산다는 내용. 그런데 어느날 욕심많은 꿀벌들이 마음을 바꿔 이타적이고 선하게 변해버림.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벌집은 황폐해짐.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에 앞서 윙윙거리는 벌집(1705)이라는 시를 익명으로 발표. 이 시는 벌들의 행태를 이야기하지만, 실은 인간사회의 기능을 빗대고 있음. 벌들의 사회는 탐욕이라는 악덕에 깊이 파묻혀 있으나, 그것이 곧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 메시지. 그러나 그 탐욕 때문에 벌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피터 신이 벌집에서 악덕을 없애고 대신 미덕을 채우기 시작. 그런데 그것이 곧 쇠퇴의 시작이었다. 꿀벌의 우화가 출판되기 150년 전에 독일에서 이기심을 찬양함(1564)이라는 책이 출판됨. 이책에서 농민, 상인, 장인은 오직 자기 이익을 추구할 때만 행동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런 행동이 모두를 위한 질서와 번영을 만들어낸다고 저자는 주장.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당시는 그런 주장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논의할 만큼 성숙한 사회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이런 현상에 주목한 저자는 기원전 450년 경 그리스 얌블리쿠스라는 소피스트로 추정됨. 그는 상인들의 이기주의가 번영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펴냄. 그는 이 책에서 황금이 많지 않지만 부자인 그리스 도시국가와, 왕에게 엄청난 황금이 있지만 가난한 페르시아를 비교하면서, 그리스에 부를 가져다준 것은 상인들의 활동이라고 결론 맺음. 그가 볼 때, 그리스 상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그리스어권의 공용어인 코이네를 사용하는 도시국가들 사이에 그물망처럼 촘촘히 얽혀 있던 신뢰관계 덕분이었음.
- 맨더빌의 우화는 또 다른 가치를 말해줌. 즉 개인에게 악덕(탐욕)을 충족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할때 더 쉽게 공적인 번영이 이루어질 수 있고, 더욱이 근검절약 같은 미덕은 사회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점. 풍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라는 말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이렇게 말함. "사기와 사치, 그리고 교만은 우리에게 득이되는 한 살아남아야 한다. ... 단순히 미덕만으로는 국가의 번영을 이뤄내지 못한다. 황금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정직하게 도토리나 먹어야 할 것이다." 홉스의 이런 생각을 맨더빌이 부연한다. 미덕이란 가족이나 촌락처럼 작은 공동체에서나 유익하고 장려할만 하다고 말이다. 만일 큰 기업을 미덕으로 운영하려 한다면 비참함과 궁핍함을 면할 수 없고, 정직과 도토리만을 맛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맨더빌은 죽기 전, 관심주제를 번영에서 행복으로 바꿈. 영광의 근원에 대한 연구(1732)의 머리말에서 다음 대목을 살펴보자.
'나는 무한한 욕망에 내맡기는 것보다 이성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훨씬 낫다고 확신한다. 결국 사회의 평화와 참된 행복을 위해서도, 미래가 어찌 되든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도 미덕이 악덕보다 훨씬 유익하다.'
몇년 지나지 않아, 안토니오 제노베시(이탈리아 철학자)도 맨더빌의 이런 변화된 태도에 동의하며, "악덕은 어쩌면 시민사회에 유익하지 않은 것이 수 있다."라는 입장을 지지. 그렇다면 맨더빌은 탐욕을 옹호했다고 볼 수 있을까? 맨더빌은 탐욕이라는 악덕이 공공의 이익을 창출하며, 거의 미덕에 가깝다는 관점을 지지하는가? 그렇지 않음. 흥청망청 사치품 소비에 탐닉하는 것이 근검절약하는 태도보다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는 것은 사실. 그런데 탐욕가는 소비하기는커녕, 오히려 재산을 쌓기만 하는 사람이다. 탐욕가에게 돈이라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고, 돈이 목적이 되면 시장은 발전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 화폐 유통의 속도가 확연히 감소하기 때문.
- 경제에 관한 스미스의 성찰이 18세기 중반의 스코틀랜드 문화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님. 당시 스코틀랜드 문화는 "고칠것은 고친다"는 15세기 피렌체 문화와 매우 흡사했음. 그 위대한 도시문명이 위대한 시민의 가치를 만들어냈는데, 그런 시민의 가치가 스코틀랜드의 상공업 중심지 글래스고의 문화 및 경제를 꽃피우는데 초석이 됨. 유럽 정치 사상가 존 포콕이 "스미스가 사용한 어휘들이 상당부분 시민인본주의의 용어와 겹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도 그런 배경. 결국 탐욕은 나름대로 이로운 점이 인정되면서 더는 끔찍한 악덕으로도 부조화와 가난을 낳는 화근으로도 취급되지 않았음. 오히려 탐욕은 시민의 덕이 됨.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머리말에 다음가 같은 말이 있다. "인간은 본성상 이기주의자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만큼, 우리는 분명 타인의 행운에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하고, 그것이 타인의 행복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다른 대목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인간은 본성상 사랑받고 싶어하지만,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려고도 한다. ... 사랑받는 사람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중 어느쪽이 더 행복할까?" 중세 말이나 근대 초기의 인간학에서 이런 식의 가설을 생각한 사람은 없었음. 이 가설에 따르면 탐욕가도 당연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 인지심리학자들은 탐욕은 이성을 눈멀게 하는 욕망의 표현이라기 보다, 진화론의 논리에 충실한 태도라고 한다. 탐욕스러운 태도가 사회적 교환을 조장해서 환경적응을 수월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감정가 정서가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다윈의 입장과 일맥상통함. 이런 의미에서 탐욕은 사치의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음. 신경과학자들이 증명한 사실이지만, 사치하는 태도는 일반적으로 음식과 성에 반응할 때 활성화하는 대뇌부분을 자극함. 다시 말해, 순수하고 극단적인 이타주의가 대뇌에 내재해 있는 것처럼, 대뇌의 다른 편에는 쾌락의 근원이 있어서, 탐욕가의 태도가 쾌락의 근원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이런 논리라면, 도덕의 근원은 생물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더불어 사치 같은 탐욕도 악덕이 아니라, 대뇌 피질의 특성의 결과라 할 수 있음. 이 문제는 아주 흥미롭지만 여기서 더 깊이 논할수는 없다. 다만 도덕이 인간 뇌에 내재한다고 볼 때, 도덕성의 하락을 단지 뇌의 화학작용으로만 설명하는 것을 문화로 보기는 어려움. 그렇게 보는 관점은 우선 죄의식을 없애고 다음으로 자유의 여지와 개인의 책임간을 없애며, 궁극적으로는 악을 의학적인 현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 탐욕을 악덕으로 여긴다면 탐욕가의 죄의식을 강조하게 되고, 탐욕을 병이나 생물학적 기질로 본다면 탐욕가의 수치심을 강조하게 됨. 다시 말해, 탐욕가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이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때 탐욕은 수치심을 준다는 의미. 수치심은 타인에게서 부정적 평가를 들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 느끼는 고통이라고 함. 반면 죄의식은 자기가 믿고 있는 도덕규범을 위반했다는 자각에서 나옴. 수치심이 들면,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서 사라지려고 함. 반면, 죄의식이 들면, 깊이 후회하며 건설적인 태도로 타인을 향해 나아가려는 경향이 강함
- 5세기초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의 본인 자신의 불순종이 본인 자신을 거슬러서 발생한다면 인간에게 다른 불행은 없을 것이다. 자기가 할 수 있던 것을 바라지 않았던 탓에 이제는 할수 없는 것을 바라는 처지가 되었다. (신국론)" 탐욕가는 자기가 얻을 수 없는 것을 미친듯이 바란다. 그렇기에 탐욕가가 깊은 우울감에 빠지는 것이다. 경험과 기대사이, 이미 얻은것과 바라는 것 사이에 골이 점점 깊어지면서 생기는 우울감, 그것이 바로 탐욕이다.
- 탐욕가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
(1) 탐욕가는 자기자신에게 인색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음. 탐욕가는 스스로 호혜주의 원칙의 의무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올 가치마저 박탈해버림. 사실, 사람이 세상에서 환영받으며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인정할 때 뿐임. 애덤 스미스는 이런 존재감을 도덕감정론에서 자기존중, 자존감이라고 설명
(2) 그는 자신의 무수한 욕구를 오직 소유욕이라는 하나의 욕구로 축소해버리기 때문. 우리가 아는 바대로, 인간의 욕구는 구조화되었을 뿐 아니라 단계별로 서열화되어 있음. 욕구가 서열화되어 있다는 말은 욕구가 서로 이질적이란 의미. 그런데 탐욕가는 욕구의 이질성을 동질성으로 바꾸고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하나의 욕구로 환원함으로써 토마스 아퀴나스가 언급했던 다양성의 혜택을 스스로 누리지 못하도록 차단함. 로마 시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의 다음 문장이 이를 잘 비유하고 있다.
'가난한 이에게는 많은 것이 부족하다. 하지만 탐욕가에게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
- 부의 축적이 사라질 때, 사회적으로 다른 중요한 의미가 생기고 도덕법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 우리는 돈의 정당한 가치를 찾는 일에 힘써야 한다. 돈을 소유의 대상으로 사랑하는 것과 돈을 삶의 기쁨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이들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병적이고 약간은 혐오스러운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반은 죄수같고 반은 환자같은 이 소름끼치는 이들을, 우리는 정신과 전문의에게 보내야 할 것이다.  (케인즈,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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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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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저자
에드워드 스타인펠드 지음
출판사
에쎄 | 2011-01-1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오늘날 왜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게 고마워하고 있는가? 왜 중국...
가격비교

 

- 세계를 무역이 아니라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달라짐. 생산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상호작용은 별다른 조율없이 적당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는 교환이 아니라 엄역하고 정교하게 조율된 공동생산체제임. 이 체제는 수평성이 강조된 자유로운 시장보다는 여러 기업으로 구성된 생산사슬, 즉 기업 회부의 계층구조가 중시되는 세계임. 이러한 종류의 시스템에 깊숙이 통합되렴녀 개도국 내의 경제제도가 공급사슬을 선도하는 주체들에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함. 물론 생산 시스템 전체에 걸쳐 제도적 조화를 모색하거나 반드시 공식적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생산과 관련된 핵심영역에서는 어느정도 제도의 일치가 이루어져야 함. 이러한 핵심영역들의 대부분은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경제 및 정치제도하에서 운영됨. 이것이 바로 세계화가 만들어낸 진정한 모습임. 만약 중국이 정치 및 경제의 변화를 겪지 않았다면 그토롵 국제경제에서의 핵심적인 주체, 즉 글로벌 생산의 중심지가 되지 못했을 것임. 결국 생산이라는 관점에서보면 정치와 경제의 괴리라는 가정 전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음.

- 18세기말부터 19세기 말까지 중국의 제정은 기근, 내부의 반란, 경기침체, 외세지배, 점차 부유해지는 해안지역, 공공연한 외국의 지배 등 거의 끊임없는 위기를 맞았음. 그래도 체제는 자체적으로 강화한 유교적 정통성을 굳게 지키며 변화에 꿋꿋하게 저항했음. 이 정통성은 단순히 특정한 사회적 질서나 지배적 권력구조만이 아니라 사회저변에 뿌리내린 윤리적 원칙을 의미하기도 했음. 이러한 유교적 윤리원칙에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며, 풍요로움보다는 검소함을 찬미하고, 공업이나 상업보다는 농업을 숭상하는 자세 등이 포함됨. 변화에 대한 압력이 거세었지만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회지도층조차 정통적 핵심가치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해결책, 즉 새로운 기술, 도구, 무기만을 도입. 1980년대에 사회주의의 개혁을 추진한 사람들의 노력과 마찬가지로 1880년대에 노후한 체제를 개혁하고자 했던 사회 지도층도 기존의 신념을 유지한다는 의지만은 분명했음. 이들은 사실상 유교의 핵심가치를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유교적 가치를 다시 살릴 해결책만을 모색했음. 그러나 중국이 청일전쟁(1894~1895)에서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모든것이 바뀜. 이는 서구제국주의의 위대한 힘에 당한 패배가 아니라 겉보기에 열등한 아류이자 문화적으로 아시아 지역을 지배했던 중국의 양자에 불과한 일본으로부터 당한 패배였음.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패한 결과 중국은 대만을 할양하고 조선의 지배권을 일본에게 양도하여 실제 영토의 일부분을 잃음. 중국의 지도층은 안절부절 못했음. 중국의 체제는 오랫동안 중병을 앓고 있었지만 이제 문제점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게 된 셈. 100년후와 마찬가지로 18세기 후반에도 논쟁의 주제가 갑자기 바뀌었음. 더이상 관심의 초점은 핵심 이데올로기를 보존하면서도 추진할 수 잇는 실용적 대응책을 찾는 것이 아니었음. 이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핵심윤리가 희생되더라도 어떻게든 부와 국력을 쌓는 것으로 바뀜.

- 중국이 과거에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과 크게 다른 점

(1) 중국의 산업중에서도 특히 수출지향적 분야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외국인 투자와 소유비율이 높음. 08년 외국인 투자기업은 중국 전체수출의 55%, 전체 수입 중 54%를 차지

(2) 오늘날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첨단기술분야의 생산활동은 대부분 수출가공임

(3) 중국에서 제조하는 소위 첨단 기술제품은 제조업체에 상관없이 시장에서 고급품보다는 일용품과 같은 대접을 받음

(4) 첨단산업에서 엄청난 속도로 혁신과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혁신의 주인공은 실제 제조를 담당하는 기업이 아님

- 모듈화된 생산의 효과

(1) 진입장벽이 무너짐 : 디지털화로 복잡한 정보를 모두 코드로 옮길 수 있게 되어 축적된 경험이나 암묵적 지식의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자 첨단기술 산업의 문이 새로운 경제주체들에게 활짝 열림.

(2) 중국내 외자 제조업체즐의 기술발전 :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듈화된 생산에 참여하는 기업이 미소곡선의 양쪽 끝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을 요인은 아무것도 없음. 사실 중국내에서도 제조활동을 중심으로 기술개발이 진행되는 주목할만한 사례를 여럿 찾아볼 수 있음. 그러나 이 기술개발은 주로 외국인들, 특히 대만사람들이 소유한 기업에서 일어나고 있음.(폭스콘, 델타, 아수스 등) 모듈화생산의 세계에서 개선이란 반드시 하나의 미소곡선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미소곡선에서 동시에 활동하되, 그 모든 미소곡선이 해당 기업의 전문분야와 겹치는 것을 의미.

(3) 중국 생산업체들의 상향보편화

(4) 선진국의 모듈화 혁신 : 모듈화로 소규모 벤처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쉬워짐. 이제 새로운 기업들이 고각의 기계 장비 하나 갖추지 않고도 전자제품, 통신, 자동차를 비롯하여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됨. 생산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활동은 대부분 물리적 실제 생산활동과 분리됨.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미국기업들은 모듈화를 추구하고 자본집약적 생산활동에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의 소비재에 묶이지 않음. 따라서 동시에 여러 업계를 넘나드는 경우도 흔함.

- 중국의 통화관리제도는 사실상 글로벌 생산체제로의 통합과 더불어 진화한 것.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외환 통제제도를, 공개시장 개입을 통한 가격안정에 집중하는 외환관리제도로 대체함으로써 중국 정부는 중국이 대규모의 수출가공, 즉 글로벌 공급사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음. 이러한 개혁으로 외국인 소유의 기업이든 중국 기업이든 상관없이 기업 측에서 봄녀 비교적 원활하게 위안화를 외화로 또는 반대로 교환할 수 있게 되었음. 뿐만 아니라 기업들은 안정적 환율을 기대할 수 있었는데, 이는 해외시장에서 달러화를 기준으로 원재료를 사고 완제품을 파는 모듈화 생산업체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음.

- 미국 정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통화가치를 조작하고 미국이 그 대가를 치른다는 미국대 중국의 대립구도로 중국의 통화정책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음. 그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 08년 세계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 호황을 누렸던 몇 년간, 중국에 있는 수출가공업체들이 중국의 외호나정책으로 이익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외국인 소유임. 따라서 이익의 일부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 투자자에게 돌아감. 한편 주로 중국에 있는 조립업체에게 부품을 수출하는 아시아 전역의 부품제조업체도 혜택을 입음. 그리고 미국에서 비교적 쉽게 소비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유지되고 미국내 매출이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완제품에 브랜드를 붙이고 마케팅을 하는 미국기업도 혜택을 봄. 물론 저렴한 이자율로 돈을 빌려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값싼 소비재를 마음껏 사들일 수 있었던 미국 소비자도 혜택을 본 것이나 다름 없음.

- 다국적 기업의 연구개발센터가 중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으며 중국의 몇몇 연구개발 시설이 외국으로 진출하고 있는 현상은 지식 전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 이러한 연구개발 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지식전달이 일어나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이 외국 경쟁사에 핵심기술을 넘겨주고 있는 증거라는 주장도 터무니 없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연구개발 센터가 단순히 현지 정부에게 잘 보이려고 세운 시설이라거나, 실제로는 제대로 된 연구활동이 거의 추진되지 않는 단순 홍보용 시설에 불과하다는 뜻은 아님. 이런 연구개발 시설에서는 어느정도 제품 현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현지화 활동이 업무의 상당부분을 차지. 이런 시설은 실제로 중요한 지식을 주고 받지는 않더라도 매출을 촉진하는 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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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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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자본주의 VS 야수 자본주의

저자
하워드 블룸 지음
출판사
타임북스 | 2011-03-2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누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말하는가?" 생물학, 역사학, 경제학,...
가격비교

 

1. 춤추는 경제의 미스터리

- 경제붕괴는 일부 악당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신용제도나 모기지 같은 것이 잘못되어서 유발되는 것이 아님. 우리가 타고난 생물학적 유전자에 경제붕괴를 유발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 실제로 경제붕괴를 몰고오는 겻은 군중의 인식변화를 촉발시키는 장치인 군중인식엔진 때문. 경제붕괴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끝없이 찾아 헤매는 우리 유전자 속 탐색엔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도 함.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고 그 문제의 돌파구가 필요할 때, 그 문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초월엔진이라는 것이 작동하는데, 바로 그 초월엔진에 의해 경제는 붐이 일어나기도 하고 붕괴되기도 함. 초월엔진이란 순식간에 못보고 지나갈수도 있는 무엇인가를 그 존재 차원을 뛰어넘어 확실하고 구체적 현실 차원으로 옮겨놓는 장치라고 할 수 있음. 한마디로 초월엔진은 사람들이 흔히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믿는 일들이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도록 만드는 세속적 창조장치임

- 크레디크안슈탈트에서 시작된 세계적 금융위기에서 아무 탈없이 살아남은 유럽국가는 이탈리아였음.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은행들에게 절대 떨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경고. 동물행동 전문가들이 지배성 단서라고 부르는 방법임. 이탈리아 금융제도는 매우 탄탄하며,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도 굳세게 잘 버틸 수 있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려 함. 다시 말해 군중들의 감정과 인식변화가 일어날 것을 미리 예측하여, 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함. 감정과 인식은 실제로 붐과 붕괴를 유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함. 감정, 인식, 그리고 감정과 인식을 형성하는 힘들이 바로 붐과 붕괴를 유발.

- 20년대 말 이루어졌던 대출금리 인상, 그리고 그 이후에 발생한 사건들은 훨씬 더 큰 규모의 변화, 다시 말해 진화생물학자들이 하나의 표현형에서 다른 표현형으로의 변화라고 부르는 생물학적 대변화 과정에 나타나는 일부 증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름. 다시 말해 인간의 두뇌, 우리의 신체와 두뇌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상의 대변화의 일부일수도 있고, 탐색에서 소화흡수, 불안에서 시작하여 공포감에 도달하는 생물학적 사이클 변화의 일부일수도 있음. 다시 설명하면, 세계경제 대공황은 불안의 플라이휠이 앞으로 한바퀴 전진하는 현상, 그리고 용도변경 진자가 뒤에서 앞으로 한번 이동을 하는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 수 있음.

2. 생태계와 우주의 붐과 붕괴

- 카울로 박터는 먹이 공급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부자로 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고, 새로운 무리와 합체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시도를 함. 다시 말해 카울로박터 박테리아 세계에서는 경제의 기반이 여전히 매우 튼튼한 때에도 경기 사이클에 변화가 발생. 카울로박터 크레센투스가 붐에서 붕괴로 그리고 붕괴에서 다시 붐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두개의 타임스위치가 박테리아로 하여금 변화주기를 타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마음에 의하여 움직이는 내부스위치와 외부자극에 의하여 움직이는 외부스위치가 있는데, 어느때에는 내부스위치가 작동되어 위험성이 큰 탐험에서 현실정착으로, 분산에서 합체로, 비이성적 과열에서 공포로 옮겨가도록 만듬. 그리고 또 어느때에는 장려금이나 자원희소성 같은 외부적 자극에 의하여 외부타임스위치가 작동. 이 두개의 타임스위치가 붐에서 붕괴로, 그리고 붕괴에서 붐으로 박테리아가 이동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 같음.

- 붐과 붕괴는 자본주의 경제, 산업화된 사회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 붐과 붕괴의 사이클은 가장 원시적인 수준에 생명체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공통현상임. 개체증가 붐과 급감 현상은 원생동물, 연체동물, 양서류, 파충류, 곤충, 어류, 그리고 포유류에서 다 나타남.

- 우리를 형성하게된 세포들도 한때 원래의 영역을 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도록 운명을 타고 났음. 이 세포들은 특히 높은 위험을 즐기는 도박꾼과 투기꾼 기질을 타고 났음. 그리하여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 이처럼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간 세포들은 탐험가에서 정착자로 운명을 바꾸어 영양가가 많은 곳에 정착하고, 자신들이 발견한 화학성분들을 가공함. 물론 이러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은 바로 용도변경 진자임. 이것은 확장과 통합 사이클 그리고 탐색과 조직창조 사이클 혹은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실현시킨 후 그 열망을 가라앉히는 주기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함. 마치 수레바퀴가 돌듯이 진화탐색엔진이 순환하면서 진화가 계속되는 것임.

3. 열정, 진화탐색 엔진에 불을 붙이다

- 불안의 사이클 중에서 정상에 있을때를 우리는 붐이라고 부르는데, 그 지점은 우리 마음속 눈에 오로지 행복한 모습만 보이는, 사이클의 최고정상지점임. 붐을 타고 있을 때에 우리는 전체사회, 무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가능한 한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지켜봄. 그리고 낙오되지 않고 새로운 경험 대열에 동참하려고 노력함. 새로운 투기, 새로운 주식, 새로운 약속, 새로운 투자, 새로운 사회적 상징물 등 다른 사람들이 새롭게 손대는 모든 것들에 자신도 손을 대기를 원함. 그러다 붕괴현상이 유발되고 우리는 불안의 사이클의 정상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침. 한마디로 말해서 오셀로 효과를 경험하게 됨. 우리는 장밋빛 시나리오는 다 잊고, 오로지 위험성, 대재앙만 마음속으로 상상하게 됨. 불안의 사이클의 폭풍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개미, 침팬지, 인간 아기들과 마찬가지로 불안의 사이클의 폭풍에 휘말린 인간 기분의 변화는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회적 주요 관심사로 부상함.

- 인간 세계의 경우 특정 기술이 쇠락할 때에 경기침체, 경제불황이 오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분열에서 융합으로, 분산에서 집합으로, 탐색에서 현실로의 동화로 극적인 방향전환을 할 때에 경기침체와 불황이 유발됨. 다시말해 경기호황과 불황은 용도변경 진자의 움직임에 의해 유발됨.

- 환희-우울 사이클의 관점에서 보면 1819년 미국사회는 광적인 믿음에서 의심, 공포, 그리고 비난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었음. 다시 말해 미국 사회가 오셀로 효과속으로 침잠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것이 신기하게도 미국 사회에 창의력이 꽃피우게 하는 역할음 함.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미국인들은 새로운 중앙집중적 제도들을 창조. 저축은행을 설립하여 돈이 한푼도 없는 빈곤층에게 돈을 빌려주어 그 다음 패닉이 올 때까지 버티도록 만듬. 그리고 제조업 협회들을 창설하여 공장이 가능하면 많이 설립되도록 지원. 1819년 패닉은 미국이 탐색과 팽창에서 통합과 구조창조로 극적인 전환을 하도록 만듬. 이것은 사냥후 다 같이 모여 사냥한 것을 먹는 것, 밖에서 사온 음식을 집에 모여 먹는 것과 같은 전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음.

- 우리 스스로 운명을 잘 컨트롤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우리의 인식, 에너지, 자신감, 면역시스템, 심지어 우리의 신체에조차 긍정적 변화가 일어남. 반대로 컨트롤을 잘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글로코코르티코이드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우리 몸속에서 분비됨. 이 스트레스 호르몬은 짧은 시간 동안 대량 분비되는 경우, 그것은 원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 즉 에너지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함. 그러나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기력 상태로 인하여 글로코코르티코이드 홍수가 발생하는 경우, 다량 분비되는 상태가 오래 지속됨. 그러한 형태로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은 독약이 됨. 그것이 세포 스스로 자살을 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세포가 자연사하는 아포코시스를 유발하기 때문. 글루코코르티코이드는 우리 두뇌의 핵심세포가 자살을 선택하도록 만듬.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면, 그리고 우울증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인간은 더 심각한 상태인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져들게 됨. 신체가 움츠러들게 될 뿐만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됨.

4. 역사상 가장 위대한 히트상품의 탄생

- 우리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고 그것을 스스로 잘 컨트롤하는 능력은 우리 자신의 몸속 호르몬 변화를 유발하고, 그 결과 우리 두뇌 활동도 변화시킴. 그러한 변화로 면역체계가 강화되고, 그 결과 건강상태가 향상되며, 따라서 평균수명도 길어짐. 또한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능력이 강화되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더 가슴을 펴게 됨. 인간이 손으로 만든 도구 중 석기는 인간에게 가장 큰 자부심을 주는 도구, 다시 말해 인간세계 최초의 호르몬 강화제 역할을 했을 것임. 우리 인간은 세속적 초월엔진의 피스톤 역할을 하는 존재임. 그런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들은 우리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더 넓혀가는데 크게 공헌함.

- 많은 고생물학자들은 대부분의 네안데르탈인이 개인적 장신구를 전혀 착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음. 물론 장신구 그 자체가 인간이 혹독한 환경을 견뎌내는 데 있어 어떤 실질적 역할을 했다고 학자들이 믿은 것은 아님. 그러나 장신구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음. 크로마뇽인들과는 달리 네안데르탈인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들이었음. 한마디로 말해서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음. 우리가 역사의 모든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의 생존과 발전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함.

- 인간은 왜 식량확보에 필요한 낚시바늘보다 24만년이나 빨리 화장기술을 개발했을까? 자신의 정체성, 사회적 지위를 알리려는 욕구가 식용보다 더 컸기 때문. 인간은 경박해 보일 수 있는 것에 이상하게 큰 애착을 보이고, 그것을 발전시켰음. 그러한 것이 인간에게 자부심을 안겨주기 때문.

5. 환상의 인프라

- 우리 뇌에 있는 새로운 것을 늘 갈구하는 감정센터인 측좌핵과 해마의 이끼섬유가 존재하는 한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새로운 것을 갈구할 수 밖에 없고, 바로 이러한 욕구 때문에 우리는 생산성을 대폭 향상시키고, 팀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음.

6. 상징더미의 확장

7. 초월엔진

- 서구시스템은 다음 네 집단에 속한 사람들 간의 균형에 크게 좌우됨. 바로 사업가들, 항의산업, 정부, 그리고 탐험가들임. 이 네종류의 집단 중에서 가장 특이한 집단은 바로 탐험가 집단임. 사실 동양문화를 보면 탐험분위기를 크게 조성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음. 반면 서양에서는 탐험을 크게 장려했음. 바로 그 이유때문에 1600년에서 2000년까지 서구 시스템, 즉 서양은 동양보다 훨씬 더 많은 자연의 원리들을 터득하여 그것들을 활용하고, 한발 더 나아가 그것들을 재창조하게 됨. 그러면서 진화탐색엔진과 세속적 창조장치에도 큰 진전이 이루어지는데, 이 기간동안 서양 문명은 그 어떤 문명보다 큰 발전을 이룩.

- 경제학은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학문임. 그러한 점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자본은 바로 인간의 열망임. 이 열망은 꿈에서 시작. 마르코 폴로의 책은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인생을 제시했음. 그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모험기를 읽은 헨리왕자는 동방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항로개척을 꿈꾸었음.

8. 감성의 힘

- 로빈슨 크루소가 400여년 동안이나 계속 대히트를 치고 있는 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음. 현실과 다른 새로운 환상의 세계가 인간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 화장품 산업이나 다른 사치품 산업을 탄생, 발전시킨 욕구들처럼 로빈슨 크루소가 성공한 이면에는 그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중요한 인간의 욕구사 숨겨져 있음.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천국과 지옥의 길을 찾는 것 만큼 중요함. 이 세상을 진화시키고, 세속적 삶에 큰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바로 그 욕구이기 때문. 그것은 바로 새롭고 신기한 것을 찾고자 하는 욕구임.

- 커피하우스는 세가지 욕구, 즉 커피를 마시고 머리를 맑게 하고자 하는 욕구, 몸을 따스하게 덥히고 싶은 욕구,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켰음. 커피하우스에서는 유대감, 동료애, 우정을 느낄 수 있었음. 그렇게 남자들이 모이는 커피하우스에서는 각종 발명품에 대한 소식, 사회적 지위와 타인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등을 담은 잡지, 회사 뉴스레터, 신문과 더불어 기업, 주식시장, 보험시장 정보들도 따라서 들어왔음. 그리고 이렇게 도입된 정보와 기술은 다시 넓은 영국 식민지를 따라서 퍼져나감. 그리하여 런던을 중심으로 브리스톨, 뱅갈로, 버뮤다, 그리고 보스톤에 이르는 넓은 정보교환망이 형성됨. 이처럼 소비주의와 물질주의는 인간의 정신이 새롭게 발전하는 데에 크게 기여. 정신이 발전하고 인간의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다시 물질적 발전이 이룩됨. 커피와 차는 인간의 집단지능 상승에 결정적 기여를 함. 그리고 이 집단지능은 서구 시스템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함.

9. 자본이 선물해준 20년

- 마르크스가 성공한 비결은 감정에 있었음. 마르크스는 자신의 감정을 팔았음. 그는 자신의 감정코드를 전체 대중이 아닌 중산층 자녀들에게 정확하게 맞추어 팔았음. 그러나 스탈린, 폴폿, 모택동 등의 잔혹한 학살로 마르크시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감을 사라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시즘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는 마르크시즘이 정체성의 상징, 마음이 따뜻해지고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느낌, 동지의식을 부여해주기 때문. 원래 마르크스는 무엇인가 부모와는 다르게 잘해보려는 마음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마음을 얻는데에 목표를 두었음. 그런데 실제로 마르크시즘은 사람들, 특히 빈곤층의 마음을 얻기 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조종하려는 시도를 함. 자본주의의 논리에 반대한다는 마르크시즘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대표하는 매스프로모션, 매스미디어, 그리고 다른 도구들을 활용하여 빈곤층의 마음을 사려한 것임. 마르크시즘은 항의산업 중에서도 틈새를 잘 파고 들었음. 마르크시즘은 정체성, 유대감, 공동체 의식, 심오한 의미감을 제공함. 한마디로 마르크시즘은 인간열망을 대표하는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결정적 상품이라고 할 수 있음.

10. 기업의 진정한 모럴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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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격

경제 2014. 11. 6. 22:11

 


모든 것의 가격

저자
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출판사
김영사(주) | 2011-05-1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시장과 기업, 소비자를 움직이는 가격의 미스터리가 드디어 풀린다...
가격비교

 

- 일부다처제는 우리 유전자 속에 존재하는 속성. 유전학자들은 중국, 프랑스, 아프리카, 남태평양 지역의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유전적 변형을 조사해 남성보다는 여성이 자손에게 더 많은 유전적 다양성을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 이는 남성보다는 여성의 숫자가 많을수록 유전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암시. 이는 일부다처제의 전형적 특징과도 일치함. 즉 부유한 남자는 다수의 여성들과 짝을 짓는 반면 가난한 남성은 거의 자손을 보지 못하거나 전혀 볼 수 없음.

- 일부다처제는 불평등의 자손임 그것은 최저 생계의 공동체, 자원이 희귀한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음. 왜냐하면 남성이 다수의 여성을 부양할 수 없기 때문. 게다가 모든 남성이 똑같이 가난하다면, 여성이 한 남자의 첫번째 부인이 되기보다 다른 남자의 두번째 부인이 되는 선택을 할 이유가 없음. 일부다처제가 우세하게 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남성이 자신의 성공을 번식시장으로 확장하여 여러명의 배우자에게 자신의 씨를 심을 수 있기 때문. 또한 그것을 통해 한명 이상의 여성이 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남성과 짝을 맺음으로써 그의 성공적 유전자를 공유하게 됨. 이같은 인센티브의 결합으로 남성이 입찰을 하고 여성은 출산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이 탄생. 자원이 많은 남자는 더 많은 출산 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음. 이런 시장체계는 종종 남자가 돈을 주고 신부를 사는 관습으로 이어지기도 함.

- 많은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딸들은 단지 부담에 불과한 경우가 많음. 그런 사회에서 신부는 거의 가치를 지니지 못함. 오히려 여기서는 신부 지참금이 특색을 이루는데, 신부의 가족시 신랑에게 지불하는 돈을 의미하는 지참금은 일부다처제 사회에서는 사실상 상상도 할 수 없음. 전통적으로 일부일처제였던 많은 사회에서 여아를 살해하거나 낙태하는 경향이 보이는 이유가 아마 거기에 있을지도 모름.

- 주로 상속을 통해 부를 얻게 되는 저개발 사회에서는 자식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일은 아님. 이런 사회에서 남자가 결혼하는 목적은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아 자신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까지 잘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데 있음. 이것은 여성의 자질에 관계없이 부인의 숫자를 최대로 늘리는 전략을 구사. 경제가 발전하고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 직업을 갖는 것으로 변하면서 아이들의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현명한 전략으로 부각되기 시작. 이런 부유한 세계에서는 더 많은 아이들이 생존하여 성인이 되기 때문에 남성에게는 가능한 한 아이를 많이 낳기 위해 부인을 많이 거느릴 필요가 줄어듬. 대신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현명한 아내를 얻는 것이 중요해짐. 이런 변화는 여성의 교육을 부추겼음.

- 경제가 발전한 대규모 사회는 사회적 응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부다처제가 그 요구에 굴복했다는 가설이 있음. 사회는 응집력이 강할수록 그보다 조직적이지 못한 이웃보다 경쟁에 유리. 일부다처제는 부자가 모든 여성을 매점하고 가난한 사람을 유전자 풀에서 탈락 시키기 때문에 불균형을 고착시킴. 그럴 경우 조화로운 사회적 관계는 기대하기 어려움.

- 오늘날 금융은 총명한 대졸자들에게 가장 벌이가 좋은 산업에 속함. 그러나 은행업이 늘 이렇게 임금이 높았던 것이 아님. 금융가들은 20세기 초반 좋은 시기를 누렸음. 1909년부터 1930년 중반까지 그들은 다른 업계 근로자들보다 약 50~60% 높았음. 그러나 29년 주식시장 붕괴와 대공황이 모든 것을 바꿈. 34년 금융 부문의 기업이익은 5년전의 8분의 1수준인 2억 3600만 달러로 떨어짐. 그에 따라 임금도 줄어듬. 50년부터 약 80년까지 은행가들과 보험업 종사자들의 소득은 금융이외의 부문 근로자들보다 겨우 10%높았음. 전반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금융부문을 통제하는 규제들의 성쇠를 반영. 한세기 전에는 은행들의 창조성과 투기적 충동을 제한하는 규제가 사실상 없었음. 은행들은 원하는 부문에 투자하고 예금자들의 돈을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었음.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 대통령은 29년의 금융거품 파열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과도한 규제들을 정함. 은행들의 주간 사업은 27년 이래로 제한됨. 33년 글래스 스티걸법이 상업은행들과 투자은행들의 업무를 엄격히 분리시킴. 예금수탁 및 대부업무와 증권업무를 분리한 것. 이자율 상한선도 같은 해에 정해짐. 은행가들을 규제하는 조치는 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력 시절에도 계속됨.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은행들과 보험회사들의 업무를 분리시킴. 자신의 지력을 총동원하여 소득을 극대화하는 일이 금지되자 은행업에서 돈을 벌려고 몰려들었던 미국 최고인재들 다수가 다른 업계로 떠남. 그러다 80년대에 들어 레이건 행정부 이후 30년 동안 계속된 끊임없는 규제철폐의 물꼬를 텄음. 99년 글라스 스티걸법이 폐지됨. 은행들은 보험회사들과 마음껏 제휴할 수 있게 됨. 이자율 상한선도 사라짐. 은행들은 어디에든 지점을 열 수 있게 됨.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 다시 돈을 벌기 위해 금융계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음. 05년에 이르자 금융업계의 대졸자 비율은 다른 업계 대졸자 비율을 약 20%초과. 이들 똑똑한 금융가들은 다시 창조력을 발휘하여 80년대에 정크본드에 투자하고 계속해서 최근 몇년 사이에는 주택저당 증권과 CDS에 투자함. 06년에 이르자 금융부문의 임금은 다시 여타 민간부문의 임금보다 70% 높아짐.

- 정보혁명은 정보를 공짜로 만들어주지 않음. 그저 돈의 흐름을 정보공급자들로부터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기술보유자들에게로 옮겨줌. 세계 최대 파일공유사이트인 파이럿베이는 광고를 통해 돈을 범. 애플은 음반사들에게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에서 판매되는 노래 한 곡당 99센트에 만족하라고 강요하는 한편, 음악 청취자달의 소비를 음악구매에서 애플 아이포드의 구매쪽으로 옮겨가게 만듬. 그리고 구글은 신문이나 잡지로 흘러들어가던 광고비용의 상당부분을 집어삼킴. 09년 미국 신문산업계의 총 광고수입은 276억 달러였는데, 이는 지난 23년을 통틀어 가장 낮은 금액이자 최고기록을 세운 05년에 비해 44%나 하락한 수치였음. 반면 구글의 광고수입은 지난 4년 동안 거의 네배나 증가하여 09년 229억달러를 기록.

-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사회를 구성해 자기중심적 본성을 극복할 수 있었음. 공동체의 경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가격체계를 규정하여 문화는 사회친화적인 행동이 등장, 진화하는데 기여했으며, 이를 통해 집단이 다른 집단과 자원을 두고 경쟁해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킴. 아마도 공정성과 호혜개념은 문명 약 300만년전, 계약을 강요할만한 법적 기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수렵-채집인들로 구성된 최초 집단의 생존에 핵심적 역할을 했을 것임. 이들 초기의 인간들은 다른 사람이 가진 식량을 얻기 위해 단순히 상대를 살해하는 방법을 택할수도 있었음. 대신 그들은 집단으로서 사냥하고 거래했음.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에 집단은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문화라는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살해할 수 있었음. 울타리 안에서는 한가지 가격체계가 존재했기에 불명예라는 것은 비용을 초래하게 되며, 이타적 행위에 대해서는 보상이 따랐음. 공정한 가격에 호의를 주고받는 호혜가 세상을 지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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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환율전쟁

경제 2014. 11. 6. 22:09

 


환율전쟁

저자
최용식 지음
출판사
새빛에듀넷 | 2010-01-1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한 나라의 성장잠재력과 국가경쟁력을 반영하는 환율정책,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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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환율제도의 장점

(1) 고정환율제도하에서는 환율이 변동해도 부가 감소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음. 고정환율제도가 없다면 무역과 해외투자를 결정할 때 투자대상국의 정책변화를 항상 주시해야 함. 재정, 화폐, 무역정책 가운데 어느것이라도 조금만 변해도 화폐가치는 따라서 크게 오르거나 내려 심할 경우 막대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 그러나 고정환율제도하에서는 이 문제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어 무역과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

(2) 자본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짐. 자본은 수익이 높은 곳으로 이동

-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려면 정부는 환율안정,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독립적 화폐정책, 이 세가지 중 어떤 두가지를 취하고 어떤 한가지를 버릴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려해야 함. 만약 독립적 화폐정책을 포기하고 환율안정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원한다면 고정환율제도가 정확한 선택

- 독립된 화폐정책을 포기한 것은 평상시에는 큰 문제가 안되는데, 경기가 침체되거나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치명적 장애물로 돌변함.

- 대다수 국가들이 환율을 달러와 연계하는 이유

(1)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가운데 하나이므로 달러에 연계한뒤 미국과 거래를 한다면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큼

(2) 달러는 글로벌 기축통화로 달러와 연계함으로써 세계 각국의 자본이 자유로이 본국에 유입될 수 있음

(3)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안정적 통화로 인식되고 있으므로 달러와 연계됨으로서 자국 경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고 외국인의 자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음

- 그런데 자국 화폐와 다른 나라의 화폐를 연계할 때는 반드시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확보하고 있어야 함.

- 연계환율제도는 양국의 기업과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음. 환율변동에 따른 손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양국 사이에 자금이 자유로이 이동 가능. 그러나 연계환율제도를 채택하는 나라들이 달러와 연계하는 목적은 미국과의 합병, 달러권 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국 경제의 번영을 위해서임. 다시 말해, 각국이 단일통화제도가 아닌 연계환율제도를 채택하는 이유는 화폐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자주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 자주권이란 만약 기존의 연계범위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각국 정부에서 연계범위를 다시 설정할 수 있는 것을 말함.

- 연계환율제도에서 미국이 화폐공급량을 늘리면 중국도 화폐공급량을 확대할 수 밖에 없음. 그 결과 중국에서는 과잉유동성이 발생하고 인플레가 유발됨. 미국이 양적완화를 지속할수록 중국은 환율변동범위를 확대하거나 아니면 인플레를 용납해야 하는 처지에 놓임. 09~10년 중국경제가 직면했던 상황이 이와 비슷.

-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자신의 모든 자원과 부를 이용해 상대의 경제체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 여기서 환율붕괴는 경제체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이 밖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임. 경제와 환율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신뢰 때문임

- 침체돼 있었던 명나라와는 달리 유럽국가들의 상업시스템은 빠르게 진보를 거듭하여 현대금융업의 개화를 위해 튼튼한 기틀을 다지고 있었음. 그렇지만 화폐와 환율에 대해 유럽인들은 크게 잘못 인식하고 있었는데, 어떤 점에서는 심지어 고대중국인보다 뒤떨어졌음. 당시 유럽은 많은 국가에서 중상주의가 유행했는데, 중상주의는 금은을 화폐가 아닌 귀금속의 가치로 재단했음. 서구인은 금은을 부의 상징으로 여겼는데, 이것은 그들이 화폐와 부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줌. 이런 오류로 많은 유럽국가들이 귀급속의 수출을 금지. 이것은 국제무역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환율체계가 형성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작용을 함. 유럽의 이와 같은 오류는 1776년까지 계속됨. 애덤스미스에 의해 환율과 화폐는 금과 은으로부터 해방됨.

- 근대유럽은 금융과 경제 영역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화폐에 대한 인식은 파산을 주기적으로 겪었던 스페인과 별 차이가 없었음. 당시 유럽인은 금은을 화폐와 거래수단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부라고 생각. 그래서 유럽의 상업모델은 모두 더 많은 금은을 확보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짐. 이런 경제모델을 중상주의라고 함. 중상주의에서는 금은이 곧 부이기 때문에 국가는 반드시 금은을 통제해야 하고, 국가는 적극적으로 무역에 개입하고 무역을 통해 더 많은 부(금은)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 하지만 진정한 부는 귀금속이 아니라 화폐의 구매력임. 중상주의 이론은 기초부터 오류가 있어 그 전체 이론체계도 점차 삐걱거리기 시작.

- 금본위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금보유고가 있을 때만 지폐발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상 화폐정책 결정권을 포기한 것과 같았음. 하지만 화폐정책 결정권을 포기한 대가로 이들 국가는 환율안정, 낮은 인플레, 거래비용 감소와 같은 이점을 누림. 사람들은 이해득실을 따져본 결과 금본위제가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고, 이러한 결정으로 금이 지폐대신 진정한 화폐로 발돋움. 금본위제로 해외무역과 투자가 그 어떤 시기보다 한층 편리하고 안전해졌으며, 돈이 금본위제 국가들 사이에서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어 상인과 투자자들은 최고의 수익을 올림.

- 1차대전으로 금본위제가 붕괴됨. 금본위제가 시행된 이후 줄곧 존재해왔던 최대의 결함. 즉 각국 자신들의 수요에 따라 화폐 정책을 조정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드러남. 금의 수량이 한정적이어서 각국이 발행할 수 있는 화폐수량은 항상 제한받음. 금본위제는 지폐남발을 막아 인플레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었지만,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음. 국가가 생사존망의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는 화폐발행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적 역할을 함. 금본위제 국가는 화폐정책을 바꿔야 할 결정적 순간이 닥치면 반드시 두개의 물잔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함. 다만 큰 잔(금본위제 유지, 국가멸망)을 들 것인지 아니면 작은 잔(금본위제 포기, 경제위기)을 들 것인지의 선택만 남음 전쟁 상태에 있는 국가라면 모두 작은 잔을 선택하여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인플레 시대로 접어듬.

- 인플레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으로 국채보유자는 막대한 부를 그 자리에서 잃게 됨. 말하자면, 정부가 국채매입자의 부를 강탈하는 셈.

- 마침내 1차대전이 끝나자 각국 정부는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할 필요성을 느낌. 즉 국채를 매입할 존재가 필요해짐. 대다수 국가들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환율안정 등의 장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또 다시 금본위제로 회귀.

- 밀턴 프리드먼은 미국화폐사에서 대공황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 "일반적 경제위기가 대공황으로 번진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정부가 금본위제를 고수함으로써 화폐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후 사람들은 금본위제를 고수한 채 불황이 물러날 때가지 기다리는 방법이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됬으며, 그제야 각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또 다시 화폐와 금의 태환을 서둘러 금지함. 33년 4월5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특별법을 내려 달러와 금의 직접태환 및 개인의 금보유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모든 시민은 금을 은행에서 달러와 바꿀 것을 요구.

- 미국은 48년부터 54년 사이 서유럽 국가에 170억 달러를 제공. 동시에 미국은 의도적으로 무역적자를 실현해 각국이 더 많이 달러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함. 마셜플랜의 지원에 힘입어 달러의 유통이 충분하게 이루어졌고, 달러는 글로벌 기축통화가 됨. 유럽은 경제 재건에 성공했고, 미국과의 무역거래를 확대해 나감. 이로써 미국과 유럽의 윈-윈이 이루어짐. 이때 이르러 브레턴우즈 체제의 틀이 갖추어짐. 그것은 일종의 삼각관계였음. 미국은 제3세계와의 무역에서 원재료를 획득한 뒤 이를 이용해 완제품을 만듬. 그 후 미국은 유럽에 달러를 제공하거나 유럽이 무역에서 이익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함. 유럽이 이익금을 가지고 재건에 성공해 미국 상품을 매입하면 그 돈은 자연히 미국으로 되돌아오게 됨. 그리고 유럽 각국이 자금을 보유하게 되면 제3세계에서 상품을 매입할 것임. 이런 시스템하에서 제3세계와 유럽 모두 최종적으로 미국에 상품을 판매하고 달러를 받게 됨. 미국은 경제와 국력을 바탕으로 삼각관계의 중심에 섬. 미국은 재력으로 삼각무역을 움직이고, 군사력으로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각국을 보호하는 역할을 함

- 미국은 40년대말부터 지속적으로 무역적자를 기록. 처음에는 다들 이런 사실을 반김. 만약 미국이 무역적자를 실현하지 않았다면, 달러는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지지 않았을 것이고, 세계는 화폐부족으로 경기쇠퇴에 직면했을 것이기 때문. 그러나 훗날 미국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곳곳에서 우려이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

- 68년에 이르러 런던 골드풀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해산을 선언. 이시기에 이르러 인플레와 적자로 인해 달러 절하의 징조가 갈수록 뚜렷해짐. 달러가치의 하락은 브레턴우즈 환율체제의 종말을 의미했기 때문에 이들이 쓸데 없는 희망을 품고 버티기에 들어섬. 사실 이런 대책은 시기적으로 적합하지 않았음. 왜냐하면 이미 58년 유럽 각국은 충분한 금 보유고를 확보해 잇달아 자유태환을 회복했으며, 각국 화폐로 자유롭게 금과의 태환이 가능하도록 허락. 그 밖에 일본도 64년 엔화와 금의 자유태환제를 실시. 심지어 60년대 중반에 와서 일본과 유럽의 금 보유고는 미국을 초과. 이것은 이들 국가가 더 이상 달러를 보유고로 삼을 필요없이 그들 스스로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 그럼에도 60년대 말까지 달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 하나는 냉전시기에 유럽과 일본의 방위를 미국이 전적으로 책임졌다는 것. 이 국가들은 소련을 두려워한 나머지 달러가 고평가된 것을 알고도 이를 묵인. 그래서 유럽과 일본은 달러가치 하락으로 손실을 입더라도 그 부분을 미국에게 바치는 보호비 정도로 생각. 다른 한가지 원인은 미국이 계속해서 쇠퇴하는 상황에서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면 약세를 보이는 미 달러가 고평가된 가격을 유지할 수 있고, 독일과 일본 같은 수출대국의 화폐는 오히려 저평가된 가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음. 사실 이것은 쌍방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음. 독일과 일본은 화폐절상 이후 수출이 감소하는 국면을 원하지 않았고, 미국은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지배권 약화를 두려워했음.

- 달러는 이시기에 이미 몰락직전의 단계에 이르렀으며, 각국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을 따름. 이때 달러의 숨통을 끊어버린 세력이 출현. 바로 대형은행들과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금융세력이었음. 이들은 브레턴우즈 체제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내부에 잠재한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 이득을 취하기 시작.

- 브레턴우즈 체제의 설계는 완벽했지만 결국 붕괴의 운면을 피할 수 없었음. 그 안에는 트리핀의 딜레마와 같은 치명적 약점과 미국의 무책임함 외에 또 다른 문제가 잠복해 있었음. 브레턴우즈 체제는 고정환율 시스템을 택하여 각국에 환율안정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국이 독립적인 화폐정책을 취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모든 국가들이 미국에 순종해야만 했음. 각국은 전후엣 피폐한 상태여서 억지로 이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재건에 성공하자 자연히 독자적으로 움직이길 원함. 그러므로 브레턴우즈 체제의 해체는 예정된 결과일 뿐이었음. 브레턴우즈 체제는 결국 고정환율제도의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것임.

-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 모두 그 취지는 미국 국내경기 조절을 돕는 것이었음. 그렇다면 두 합의는 어떻게 일본을 번영에서 쇠락의 길로 몰고간 것일까?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가 비록 일본의 지속적인 대미 흑자를 막지는 못했지만, 달러 금리가 조절됨으로써 세계 자금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침. 달러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달러로 표기된 자산의 가치도 하락. 그 결과 대량의 핫머니가 달러를 이탈했고, 엔화는 그들의 도피처가 됨. 이에 따라 모두들 엔화가 절상될 것으로 예측하고 대량의 자금들의 일본시장에 유입됨. 한편 엔화절상은 일본경제에 영향을 미침. 달러 하락으로 수출업체가 벌어들인 돈의 가치는 떨어졌고,엔화가치가 갈수록 상승함에 따라 일본제품은 가격이 올라 수출이 점점 더 어려워짐. 그래서 일본인들은 자금을 국내로 돌려 소비하길 원함. 일본인의 소비와 핫머니의 유입으로 일본 국내에서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 등에서 투기열기가 달아오름.

- 금융세력의 홍콩달러 공격시 그들의 속셈은 다음과 같음. 만일 홍콩정부가 홍콩달러의 환율을 보호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이로 인해 유동성이 축소되고 주식이 폭락할 것이니 공매도한 주식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고, 반대로 홍콩정부가 홍콩달러 방어를 포기하면 홍콩달러는 큰 폭으로 절하될 것이고 그러면 공매도한 홍콩달러를 통해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이에 홍콩 정부는 자신의 금융관리제도를 신속히 바꾸어 홍콩달러와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외환기금을 유용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서 대규모로 주식과 홍콩달러를 매입함으로써 환율안정을 꾀함. 금융세력은 홍콩달러와 주식을 계속해서 매도하지 못해 홍콩 금융시장은 곧 안정되었음. 심지어 홍콩정부는 이런 과정에서 약간의 이익을 실현했지만 금융세력은 손실만 입고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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