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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박원의 시사콩트-35] 인주 씨는 소개팅 날짜를 받은 다음날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연예인 같이 날씬한 몸매는 아닐지라도 뚱뚱하다는 인상을 주기는 싫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에 대비해 식사량을 줄이고 열심히 운동했지만 몸무게 감량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오늘 아침에 저울에 올라갔을 때도 그랬다. 어제 5㎞ 이상 걸었고 저녁도 낱개 포장된 건과류 한 봉지와 우유 한 잔으로 때웠는데 겨우 1㎏ 줄었을 뿐이었다. 밥 한 끼 먹으면 다시 늘어날 무게였다. 이제 딱 15일 남았다. 밥을 먹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루 종일 운동한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한 끼라도 굶으면 비실거리는 인주 씨가 아닌가.

     출근 전에 저울에 올라가 크게 실망한 인주 씨는 오늘은 일찌감치 퇴근했다. 회사 선배가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집에 와서 견과류 한 봉지를 뜯어 절반만 먹었다. 음료도 우유 대신 물을 마셨다. 이렇게 허기를 면할 만큼만 먹고 TV를 켰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 한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었다. 건강 관련 토크쇼였는데 화면에는 '밥상, 상식을 뒤집다. 지방의 누명'이라고 쓴 글이 보였다. 전문의들의 도움으로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으로 다이어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밥과 빵 같은 탄수화물 대신 육류와 생선류에 있는 지방을 주식으로 하면 단기간에 살을 뺄 수 있다는 게 프로그램의 요지였다. 인주 씨는 귀가 솔깃했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보려고 했다가 여기에 채널을 고정했다. 프로그램은 저탄수화물·고지방 식이요법에 참여한 사람들이 몇 주 후 실제로 몸무게가 줄고 건강 상태가 좋아졌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영양 섭취의 70% 이상을 지방으로 하고 단백질과 탄수화물 순으로 식단을 짜라는 권고도 있었다.

     인주 씨는 지방을 많이 먹으면서 살을 빼라는 프로그램 내용이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었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태블릿PC 검색 사이트를 열어 '고지방·저탄수화물 다이어트'라고 쳤다. 효과가 있다는 내용도 있고 부작용이 심하다고 비난하는 글도 많았다. 식욕이 떨어지고 변비와 두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경고도 눈에 띄었다. 채소와 물을 충분히 섭취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처방도 있었다. 어느 조언을 믿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고기류를 좋아하는 인주 씨에게는 솔깃한 다이어트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래, 소개팅할 때까지만 해 보자. 지금처럼 밥을 덜 먹는 방법으로는 버티기도 힘들고 효과도 없지 않나." 이렇게 결심한 인주 씨는 내일부터 당장 고지방·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실천하기로 마음먹고 옷을 챙겨 입었다. 충분한 지방 섭취를 위해서는 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무조건 적게 먹는 다이어트보다는 훨씬 쉬웠다. 좋아하는 삽겹살도 실컷 먹고 수육과 연어도 충분히 먹었다. 원래 밥이나 빵을 많이 먹지 않아서 그랬는지 탄수화물 섭취를 줄였는데도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가급적 물과 채소도 많이 섭취하려고 했다. 맛있게 먹기 위해 각종 야채와 버섯을 넣은 메뉴를 곁들였다. 평소에 즐겨 먹었던 견과류도 빼놓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정말 효과가 나타났다.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보다 3㎏이 빠졌다. 식사량에 따라 1㎏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감안해도 2㎏ 이상 체중이 준 셈이다. 소개팅하는 날까지 최소한 5㎏를 감량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좋았다. 물론 다소 부작용이 따랐다. 일할 때 머리가 띵하고 잘 돌아가지 않았다. 약간 어지럽기도 했고 배변에도 이상이 이었다. 그러나 참을 만했다. 30대 중반을 넘기지 않고 결혼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 정도 역경은 극복해야 한다고 인주 씨는 거듭 다짐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토요일이라 출근하지 않았던 인주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울 앞으로 달려갔다. 저울에 나타난 숫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곧바로 문쪽에 붙어 있는 전신거울 쪽으로 향했다. 세수를 하지 않아 얼굴은 부스스했지만 몸매는 봐 줄 만했다. "몸에서 6㎏이 빠져 나갔을 뿐인데 이렇게 날씬해 보이다니!" 인주 씨는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짧은 기간에 이 정도로 체중을 줄일 수 있었다는 사실에 탄복했다. "이제 노처녀 생활은 끝이다."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오른 인주 씨는 비장한 결심까지 하며 소개팅을 준비했다. 만남은 대성공이었다.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것 말고는 흠 잡을 곳이 없었다. 키도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에 직장도 괜찮았다. 굴지의 자동차그룹 과장이니 연봉도 높을 것이다. 좋은 신랑감인 것 같은데 아직 결혼하지 못한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물었더니 이에 대한 대답도 명쾌했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화를 나눌수록 마음에 드는 남자였다. 하지만 인주 씨를 가장 기쁘게 했던 대목은 헤어지면서 던진 말이었다. "인주 씨, 정말 날씬하네요."

     기분이 너무 좋아 날아갈 것 같았다. 입에서는 흥얼흥얼 노래가 절로 나왔다. 달콤한 사랑을 나눌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설렘도 있었다. "이게 모두 고지방·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힘이다." 인주 씨는 이렇게 확신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밤에 문제가 생겼다. 더부룩했던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2~3일이 지난 뒤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는데 정도가 심해진 것이다. 화장실에 가서 여러 번 배변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아랫배에서 시작된 통증은 윗배를 거쳐 가슴과 얼굴, 머리로 확산됐다. 두통이 몰려왔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주말 밤이라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간호사에게 안내를 받아 간단한 검사를 끝내고 침대에 누웠지만 고통은 가시지 않았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배와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숨도 쉬기 힘들었다. 한참 만에 나타난 의사가 말했다. "몸속에 수분과 염분이 많이 부족하시네요.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혹시 고지방·저탄수화물 다이어트하셨나요? 요즘 그게 유행이라 비슷한 증상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모르겠어요. 그런 것 한 적이 없는데…." 극심한 고통 중에도 인주 씨는 고지방·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유죄를 인정하기 싫었다.

     대한내분비학회와 대한당뇨병학회, 대한비만학회, 한국영양학회,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등 5개 의학회는 극단적인 형태의 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가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성인병을 예방하고 비만을 막으려면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의 균형이 잘 잡힌 식사를 할 것을 권고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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