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우리는 수백년 동안 유지되어 온 개인과 사회의 역할, 우리의 권리, 특권, 권력, 책임, 염려, 전망 등에 대한 가정에 의문을 품게 됨. 리처드 세넷은 공인의 몰락에서 고대의 공적인 경험이란 사회질서의 형성, 즉 무정부 상태의 종언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함. 그런데 최근 수백년 동안 공적인 경험은 인격의 형성, 즉 개인의 개성, 자유와 관련되었음. 고대시대 독재정권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 지 가르쳐 주었다는 것임. 현대 사회는 대중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혼자, 또는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권한을 부여함. 공공화는 더 큰 자유를 향한 진전임. 우리는 그 자유를 이용해 자기자신을 표현하고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서 새 사회를 형성함.
- 독일인들에게는 지식을 나누는 문화가 없음. 독일인들은 모든 지식을 자신만 간직해야 할 경쟁우위라고 생각하는 반사회적 태도를 갖고 있음. 또한 우리는 지식을 공짜로 줘버리는 바보들도 신뢰하지 않음. 나는 이렇게 길들어 자랐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내색하지 마라. 그것을 누군가 너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까. 성공하면 조용히 있어라. 그렇지 않으면 질투할 테니까.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다. 실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겠다고? 맙소사 안돼! 결과적으로 우리는 실수를 저지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같은 실수까지도 반복하게 된다.
- 디지털 세상도 실제 세상과 같음. 만약 당신이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으면 아무도 만나지 못할 것임. 당신이 놓쳐버린 사람들이 누군지조차 알지 못할 것임. 팅커벨의 경우와는 반대로 공유하지 않을 때마다 관계는 날개를 잃는다.
- 결함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공개운영하면 우리는 더 이상 완벽이라는 이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됨. 완벽을 약속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을 개선해갈 수 있음. 공개적으로 일하면 어느정도에서 만족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좀더 개선할 방법을 찾게 됨. 볼테르는 최고는 양호의 적이라고 말했음. 하지만 최고는 더 좋은 것의 적이기도 함.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창조과정이 복잡해지고 시간이 많이 걸림. 기술분야에서는 이렇게 계획에 없던 것이 불필요하게 추가되는 것을 피처 크리프라고 부름. 이는 이상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겠다고 겉만 번지르르한 기능이나 디자인을 하나씩 추가하느라 출시가 늦어지는 것을 의미.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베타를 발표해야 함. 일단 발표해놓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살펴보아야 함
- 사생활은 근대의 산물이다. 중세 사람들에게는 사생활이란 개념이 없었음. 이들에게는 실질적인 사생활이 없었기 때문. 아무도 혼자 살지 않았음. 보통 사람들에게는 사적인 공간이 없었음. 집은 좁고 사람들롤 붐볐음. 또한 모든 사람들이 얼굴을 하는 지역사회에 속해 있었음. 사생활은 개념과 현실 면에서 현대 부르주아 사회의 창조물임
- 우리에게 신기술의 최종결과를 예측할 방법이 없는한, 신기술의 부정적 가능성에 연연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 르네상스는 드물게 일어나는 일임.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르네상스가 일어난다면 그것을 누려야 함
- 프라이버시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입수한 사람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윤리. 공공화는 자체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윤리임. 더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음. "프라이버시는 알고 있는 것과 관련된 윤리이고, 공공화는 공유하는 것과 관련된 윤리이다."
- 공개에 따른 보상은 친구를 사위고, 공통의 관심사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뭔가를 성취하고 웃는 것에 있음. 즉 관계 측면에서 가장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 더 많은 사람과 접촉하다보면 멍청한 사람과 마추칠 확률도 높아짐. 인터넷은 멍청이들을 만드는 것은 아님. 단지 인터넷은 멍청이들을 눈에 더 잘 띄게 만들고 이들에게 확성기를 쥐어줄 뿐임. 공격자를 만나면 대응하지 말것. 이들은 단지 도발하기 위해 온라인 대화에 참가한 것임. 반응을 보이면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것, 즉 관심과 그런 짓을 계속할 기회를 주는 셈이 될 뿐.
- 에반 윌리엄스는 지금까지 세상을 두번 바꿈. 먼저 그는 블로거를 공동 개발. 이 서비스는 누구나 쉽고 빠르게 온라인에 글을 올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한 블로그 형식을 대중화시킴. 블로그는 미디어와 저널리즘의 구조를 파괴했음. 또한 정치, 상거래, 사회권력의 구조를 무너뜨림. 다음으로 그는 트위터를 공동개발. 트위터의 영향이 나타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파악되지는 않았음. 하지만 혁명을 지원한 점과, 미디어와 마케팅의 구조조정에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다는 공은 인정받고 있음. 윌리엄스는 공유산업의 창시자임.
- 사실 블로거가 최초의 블로깅 도구는 아님. 많은 사람들은 1994년 저스틴 홀이 최초의 블로그 활동을 했다고 인정. 데이브 와이너는 초창기 블로그 중 하나인 스크립팅 뉴스와 초기 블로깅 도구 일부를 개발. 존 바거는 97년 웹로그란 단어를 만듬. 99년 피터 머홀츠는 이 단어를 블로그로 축약. 에반 윌리엄스는 99년 8월 자신의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블로거란 단어를 만들었음. 따라서 빌 게이츠가 PC를 발명한 것이 아니듯, 에반 윌리엄스도 블로그를 발명한 장본인은 아님. 그러나 윌리엄스는 블로그를 간단하고 멋지고 자유롭고 대중적 형태로 만듬. 여러번 자금이 바닥났고 동업자와 직원들이 떠나가는 일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비전을 고수했음.
- 블로깅은 새로운 유형의 글쓰기로 향한 문을 열어줌. 이것은 인쇄기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글쓰기 형태, 즉 에세이가 생겼던 것과 같음.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 미셀 몽테뉴는 옛 현인들의 말씀을 담은 필사본을 숭배하던 당시 풍조를 무시하고 글쓰기를 동시대적이고 개인적 행위롤 만듬. 몽테뉴는 1572년부터 몽테뉴 성의 서재에서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 사라 베이크웰은 몽테뉴에 대해 쓴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몽테뉴는 추상적인 대답재신, 자신이 무엇을 해쓴ㄴ지, 그렇게 하는 동안 느낌이 어떠했는지 기술하는 경우가 많았음.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일은 멜론이며, 서서하는 섹스보다 누웟서 하는 섹스를 더 좋아하며,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고 말함. 이렇게 말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음.
- 구글은 개방형 회사인가, 폐쇄형 회사인가? 사실은 둘 다임. 구글 사무실에 들어가서 친구와 점심식사라도 같이 하려면 기밀유지 동의서에 서명해야 하는데 이는 지나친 정책임. 하지만 구글은 새 서비스가 어떻게 완성되어야하는지 의견을 듣기 위해, 제품을 베타버전으로 발표하고 협업을 요청하기도 함. 구글은 서버가 몇대인지, 모니터하는 웹페이지는 얼마인지 등 규모에 대한 기본적 통계치는 공개하지 않음. 또 몇 년 동안 구글이 판매하는 광고를 유통시키는 미디어 협력업체들에게 매출배분율을 알려주지 않음. 그러나 더 큰 콘텐츠 발행업체들이 압력을 넞하 마지못해 전체 매출 중 얼마를 구글이 가져가는 지 밝혔음. 구글은 기반시설의 많은 부분에서 전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음. 그러나 크롬 브라우저와 운영체제, 그리고 휴대전화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오픈소스로 발표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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