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자기애라고 표현되는 나르시시즘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연관지어,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가 1899년에 만든 말이다. 이 말이 널리 알려진 것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용어로 도입한 뒤부터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자기의 육체, 자아, 자기의 정신적 특징이 리비도의 대상이 되는 것, 즉 자기 자신에게 리비도가 쏠려 있는 상태이다. 보다 쉽게 말하면 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중국의 심리학자 우즈훙이 나르시시즘과 외로움에 관해 다룬 책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 긍정의 힘으로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관계를 만드는 방법, 이런 관계의 완성인 사랑으로 나아가는 깨달음을 설명하고 있다.
인생은 나르시시즘에서 출발한다. 유아기에는 자아와 만물을 구별하지 않고 만물과 혼연일체라 인식하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세계가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유아기에는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하게된다. 하지만 이후에는 나르시시즘을 깨는 과정이 필요하다.
높은 수준의 나르시시즘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 훌륭하다는 생각에 늘 열정이 넘친다. 낮은 수준의 나르시시즘에 놓인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없고 더한 경우 수치심까지 느낀다. 사람들은 당연히 높은 나르시시즘의 상태를 지향하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나르시시즘을 추구하되, 높고 낮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나르시시즘이 너무 강할 경우 남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 그 결과 사람과의 관계는 나빠질 수 있다. 따라서 나르시시즘의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차원으로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충실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여러가지 해법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예컨대 '관계에서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기', '관계에서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기',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그 공간을 지키기'와 같은 것들이다. 결국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가족, 동료, 연인, 친구들과의 충실한 관계에서 나온다.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을 통해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갖는 것이다. (칸트)
-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실러)
- 희망과 근심, 공포와 불안 가운데 그대 앞에 빛나고 있는 하루하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은 그대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것이다. (호레스)
-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4단계로 나뉜다. 첫째, 건강한 자기애로 '자신감'이다. 활력을 얻고 스스로 성장할 에너지를 가지고 있 다. 둘째는 '오만함'이다. 자신감을 넘어선 단계로 독선과 아집을 부른다. 셋째는 자기 유약함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의심병’ 이다. 항상 자기 몸과 마음이 약하며 병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는 주관적인 신념이 강해지는 망상' 이다. 현실적인 근거를 무시 하고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며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여긴다. 정신과에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전능감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활력의 원시적 표현이다. 우리의 유아 때는 전능한 에너지밖에 없지만 자라고 성장하면서 공격성, 성, 애착 등 다양한 활력 표현으로 진화한다. 이성과 결합된 상태에 따라 삶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따라서 성인이 이성적으로 전능감을 실현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우리가 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적절한 범위의 전능감을 가진 다면 이보다 더 완성도 높은 삶은 없을 것이다. 전능한 나르시시즘과 이성이 조화롭게 결합된 자신의 인간성을 디자인하라.
-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정無情이 필요하다. 상대가 전적으로 의지하고자 하는 욕구를 무시할 수 있고, 자신의 법칙에 맞지 않는 방식을 시도할 수도 있다.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자신의 의 지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일 자체의 법칙을 따른다. 개인의 의지와 일의 특성과 성질을 고려하고 융합해 나가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 이기적이지 않다고 자처해온 사람이 오히려 이기적일 수 있다. 가끔은 스스로 이기심을 허락하고 상황에 따라 강하게 발휘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큰 성장이다. 자기 내면에 이기심이 존재하고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한다면 자신과 주변 사람의 관계가 훨씬 편해질 수 있다.
'도덕적 나르시시즘'은 관계를 거절하고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 그 결 과 도덕적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은 항상 외로움에 묶여 있고 다채로운 생활을 즐기기 어렵다. 자신의 도덕 수준이 높다고 인 식하는 사람일수록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덕 수준은 낮다고 평가하여 사람 간 어울림에서 멀어진다.
도덕적 자기애를 가진 자는 너무 외로워서 외로움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에서 그들은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폐해를 주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모든 일과 판단, 문제 상황을 혼 자 해결하고 견디면서 고독함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 사랑, 보살핌을 청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도덕적 나르시시즘에 손상을 주는 일이다. 그래서 도덕적 나르시시즘을 지닌 사람과 함께 있으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도덕적 나르시시즘을 지닌 사람의 에너지는 내향적이다. 적의 도 없고 열정도 없다. 이들이 젊다면 그나마 열정과 인간미를 띠 지만, 중년이 되면 점차 빈껍데기가 되어 행동만 남을 뿐 에너지 의 흐름이 약해진다. 노년에 이르면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자 신의 고독한 세계에 빠져든다. 사교에 소극적이며 심지어 집안일 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내적 안정을 얻었다고 하지만 사 실은 활기를 잃은 고요함일 뿐이다.
- 도덕적 나르시시즘을 추구하지 마라. 도덕적 위대함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을 괴롭게 만들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올바른 위치에 두기 위해 주변 사람을 나쁜 놈의 위치로 밀어붙이게 된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나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적 당히 나빠지는 법을 배워라. 타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기감 정이 해소되어야 한다.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지 않고 내부에서도 소화되지 않으면 분 노의 화살은 자신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한다.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잘 알기에 어디를 공격해야 타격을 크게 입는지도 안다. 회복 불가능의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때로는 공격의 위험성을 아 는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해 자신을 억누르기도 한다. 자기 통제는 사고와 행동이 느려지고 불편해진다. 따라서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자기 억압이 사라지고 자유로움과 여유가 생긴다. 도덕성이 높은 사람은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화를 내면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이 무너지기에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방이 절대적으로 틀리다'는 위치에 놓여야 반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대립감은 그들의 도덕적 주장을 더욱 강화시켜 파괴적인 공격성을 드러내게 만든다. 이때의 반격에는 관계의 파괴가 수반된다.
- '좋은 사람'은 도덕적 자기애가 관건이다. 좋은 사람도 감정의 통제력을 잃고 격한 분노를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분노의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표출할 때 상대방과 상호작용도 상대적으로 단순해진다.
- 억눌린 사람은 단 한 가지 실수에도 반성하고 자아도취형은 자신이 한 가지만 맞고 남은 아홉 가지가 틀려도 그 한 가지 맞는 점을 확대해 해석한다. 이로써 우려되는 점은 억눌린 사람은 매 사를 따질 필요가 없으므로 잘못 인정을 하나의 전략으로 이용하 지만, 반복되다 보면 진심으로 자신이 정말 잘못된 사람으로 생 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네가 이치에 맞다' 라는 생각을 자아도취 형에게 심어주지만 정작 양보하고 맞춰준 자신은 나르시시즘이 손상되는 결과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 습관성 미룸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신뢰를 충족시킬 만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면 당장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다. 억지로 하게 된 일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는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 반항심이 생기고 미루게 된다. 따라서 미룸은 외로운 영혼의 필연적인 행위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미룸, 지각, 꾸물거림이 생기는 원인은 되고 싶은 나와 '될 수 없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일을 미룸으로써 스스로가 원하는 일을 할 때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또는 '나의 의지가 살아 있다.' 라는 증명이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가 제한되고 금지되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또한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외면하게 된다.
- '내가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비범한 성과를 거둔다는 생각은 오히려 노력할 수 없게 만든다. 노력하지 않고 몰입하지 않으면 이 가설의 영향력이 그나마 살아남기 때문이다. 자신은 비범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데, 다만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회피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두고 싶은 것이다. 진짜로 몰입하고 노력 해서 이 가설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 나르시시즘을 갖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자신감을 갖기는 매우 어렵다. 나르시시즘은 천성이고 진정한 자신감은 어떠한 조건과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자만하는 사람은 내면에 허약하고 버림받은 자아 가 존재한다. 거만함과 자신감은 다르다. 자신감은 진실한 관계 에서 나타난다. 이 관계는 자신과 자신,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모 두 아우른다. 자신의 우세한 조건을 내세우면 거만이 되지만 좋 은 조건임에도 진실함이 동반되면 자신감이 되고 응원받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좋은 조건만을 보고 우러러본다면 겉으로 즐거울 수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외롭다.
- 관계의 본질은 누군가에게 불안을 투사하는 것이거나 누군가의 초조함을 대신 견뎌주는 것이다. 영국 정신분석가 비앙은 “자기 기능이 좋은 사람은 상대방의 불안을 받아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의사와 환자,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환자나 자녀는 불안을 투사하고 의사와 부모는 불안을 받아 대신 해소해준다. 그러나 적지 않은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불안감을 이 전하지만, 아이들은 그 불안감을 소화하지 못하므로 참아내며 나름대로 이겨낼 힘을 모색한다.
- 증오가 없는 사람처럼 위장하지 마라. 미움과 증오는 사랑만큼 중요하다. 증오를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깨닫지 못한다. 증오 표현은 너로 인해 내가 상처받았음을 알려준다. 만약 관계에서 사랑의 표현만 존재한다면 어떤 발언이나 행동이 용납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결과는 파국이다.
- 다른 사람이 자유자재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자신의 공간을 지켜라.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여 진정한 '나'를 드러내라. 개인 공간을 지키지 못하고 선택지도 없으면 심리적 방어체제가 발전되게 마련이다. 이런 방어체제는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공간 확보를 위한 노력이기에 매우 귀중하다.
- 무조건적 사랑은 없다. 자기 소멸적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 다. 사랑하면서 외로움을 선물처럼 껴안는다면 사랑이 유지되고 있더 라도 행복은 사라진다. 상대에게 맞추기만 하는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 다. 사랑하기 이전에 사랑에 관한 자기 관점을 먼저 정리해보자.
- “거절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적의 없이 단호하게!"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유혹 없이 애정이 넘치게!”
심리학자 코후트는 관계에 필수적인 두 개념을 강조한다. 전자는 내가 너를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적의는 없으며 네가 잘못되었다고 하지도 않겠다는 의미이다. 후자는 너를 사랑한다면 무조건적 사랑을 할 것이며, 나를 필요하도록 유혹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 마틴 부버가 말했듯 “너와 나의 관계에는 한 가지 전제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지 않다는 것이다.” 라는 점을 각인하자. 심리 법칙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상대의 특별한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리려 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감정에 대한 모독이다.
- 사랑에 너무 애쓰면 오히려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두 사람 모두 불편을 느끼고, 그중 한 명은 자신의 감정이 억압된다고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억누르며 상대에게 애쓰는 노력은 사랑에 인위 적인 느낌만 줄 뿐이다.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자기감정이 아니기에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나쁜 점을 감추고 좋은 것만 보여주며 이루어내는 사랑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