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날씨다

인문 2023. 1. 5. 19:25

-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욕조에 빠져 죽었다면 기독교가 널리 퍼질 수 있었을까? 안네 프랑크가 책장 뒤에 숨은 아름다운 소녀가 아니라 냉장고 뒤에 숨은 중년 남자였다 해도 일기가 널리 읽혔을까? 링컨의 실크해트, 간 디의 허리에 두른 천, 히틀러의 콧수염, 반 고흐의 귀, 마틴 루서 킹의 목소리, 그리고 쌍둥이 빌딩이 지구상에서 가장 쉽게 무너진 건물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진로에 얼마나 많 은 영향을 미쳤을까?
파크스의 이야기는 역사에서 길어 낸 진짜 에피소드이자 역사를 만들기 위해 창조한 우화이다. 이오지마에 깃발 을 올리는 군인들, 로베르 두아노가 파리 시청 앞에서 찍은 「키스」, 폭격당한 런던의 잔해 속을 지나가는 우유 배달부의 상징적인 사진처럼, "버스를 탄 파크스의 사진은 연출 된 것이었다. 그녀 뒤에 앉아 있던 사람은 악질적인 분리주의자가 아니라 동정심 많은 기자였다. 그녀가 나중에 인정 했듯이 실제로 일어난 일은 지친 여자가 버스 앞좌석에 서 뒤쪽으로 옮기라는 요구를 받은 단순한, 그래서 기억하기 쉬운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파크스는 서사의 힘을 이 해했기 때문에 가장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영감을 주는 식으로 사건을 구현했다. 파크스는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만큼 용감하면서도 이야기의 지은이들 중 한 명이 될 자 격이 있는 영웅적인 인물이었다.
돌이켜 보면 역사는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 더불어 좋 은 이야기들이 역사가 된다. 우리 행성의 운명은 또한 우리 종의 운명이며, 이는 심오한 문제이다. 해양 생물학자이자 영화감독인 랜디 올슨이 말했듯이, “기후는 과학계가 일반 대중에게 제시해야 했던 문제 중에서 가장 지루할 확률
이 아주 높다." 위기에 서사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대개 과학 소설이거나, 과학 소설로 치부된다. 유치원생들도 재창조할 수 있는 '기후변화 이야기' 버전은 없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감동해서 눈물 흘리게 할 버전도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저기 멀리서 일어난 일로만 생각할 파국을 바로 여기, 우리 가슴 속으로 끌어올 수는 없을 것 같다. 작가 아미타브 고시가 『위대한 혼란』에서 말했듯이, "기후 위기는 또한 문화의 위기이며, 그래서 상상력의 위기이다." 나는 이것을 믿음의 위기라 부르겠다.
- 전 지구적 위기의 진짜 문제는 무수히 많은 고정된 '무관심 편향'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기후, 홍 수와 산불, 이주와 자원 부족 등 기후변화에 따르는 재난들 중 상당수는 생생하고 개인적이며 상황이 악화되어 가고 있음을 암시하지만, 이들을 다 합쳐 놓으면 영 다르게 느껴 진다. 점점 강력해지는 서사라기보다는 추상적이고, 멀고" 고립된 현상으로 보인다. 이는 기후변화가 투표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기자인 올리버 버크먼이 <가디언>지에서 말했듯이" "사악한 심리학자 무리가 비밀리에 해저 기지에 모여서 인류가 감당하기에는 턱도 없을 위기를 만들어 낸다면, 기후변화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소위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기후 과학자들의 97퍼 센트가 동의하는, 지구가 인간 활동 탓에 더워지고 있다는 결론을 거부한다. 그러나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현실 을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떨까? 우리는 과학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믿을 수 있는가? 이런 믿음은 당연히 우리를 깨워 당장 기후변화와 관련된 긴급한 윤리 원칙에 눈 뜨게 하고 양심을 뒤흔들어 미래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 현재의 작은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사람들은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추수감사절을 축하 하고, 종교적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종교 축제에 참여하 고,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포옹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의 동기가 계속 강하게 유지될 필요는 없다. 아예 없어도 된다. 동기가 행동을 낳을 수도 있지만, 행동이 동기를 낳을 수 도 있다. 꼭 영적인 감정이 일어나 별을 보려고 사막으로 트레킹을 하러 가지는 않는다. 사막에서 별을 보고 있기 때문에 영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11월 셋째 주면 유난히 가 족들과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추수감사절 만찬에 가려고 공항에서 긴 줄을 서고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과 식사 때문에 특별한 친밀함을 느끼는 것이다.
- 기후변화는 당뇨병처럼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 아 니다. 세포가 치명적으로 퍼지기 전에 제거해야 하 는 악성종양 같은 사건이다. 긍정적인 되먹임 회로 가 '통제 불능의 기후변화'를 초래하면 지구는 온 난화를 감당할 수 없다.
- 가장 강력한 되먹임 회로중 하나는 알베도 효과 이다. 하얀 얼음판은 햇빛을 대기 중으로 반사한다. 검은 바다는 햇빛을 흡수한다. 지구가 더워지 면서 햇빛을 반사하는 얼음은 적어지고, 이를 흡수 하는 검은 바다와 육지는 늘어난다. 바다는 점점 더 더워지고 얼음은 더 빨리 녹게 된다.
- 2차 대전 당시 국내 전선의 노력만으로 전쟁에서 이기기는 충분치 않았겠지만, 국내 전선의 노력 없 이는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식습관을 변 화시키는 것만으로는 지구를 구하기에 충분치 않 겠지만, 식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지구를 구할 수 없다.
- 증조부모님은 실내 배관 시설이 없는 목조주택에서 살았고 추운 밤이면 난로 옆 부엌 바닥에서 주무셨다. 그분들은 내가 가진 것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하다기보다 그냥 편리해서 몰고 다니는 차, 전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음 식들이 가득 채워진 식료품실, 매일 쓰지도 않는 방들이 있는 집. 내 증손주들도 이유는 다르겠지만 믿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잘 살았으면서 우리한테는 도저히 갚지 못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빚을 남겨 줄 수가 있었을까?
감세로 인한 빚은 협상할 수 있다. 낡은 공공기반시설 은 수리하거나 새로 지으면 된다. 해양 오염이나 수질 오염, 생물다양성 감소, 삼림 파괴 같은 환경에 입힌 피해조차 상 당수는 되돌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에 관해서는 저당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 아무도, 어떤 단체도, 어떤 신도 우리가 미친 듯이 써 대는 만큼 대출을 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번성한 인류가 망하지 는 않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무도 우리를 구해 주 지 않을 것이다.
- 문제는, 지구와 우리의 관계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행성이 위험 에 처했다는 사실을 믿으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0억 명의 사람들이 조망 효과를 경험한다면 지구인들이 지구를 생각하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시나리오는 우리가 새로운 집으로 옮겨 갈 때일 것이다. 상상해 보라. 모든 종이 우주선 한쪽으로 몰려가 창밖을 내다보고 두꺼운 보호 유리 너머를 보면서 우리의 집이 걸작이었음을 새삼 깨닫는 모습을.
금문교에서 뛰어내리면 98퍼센트는 죽는다. 1만 6000 명이 넘는 사람이 뛰어내렸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이들 가운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뛰어내 리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우리 종도 비슷한 경 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케빈 하인스는 열여덟 살 때 자살을 기도했다. 우리가 우리의 행성을 잃게 된다면, 하인스 가 떨어지면서 멀어지는 다리를 보며 그랬듯이 다들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 기후변화를 진지하게 생각하건 안하건, 떠나보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상실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일 탄소배출을 영(0)으로 줄인다 해도 과거의 행동들이 초래할 죽음을 계속해서 목격하고 경험할 것이다. 행성은 우리는 물 론이고 아이들에게도 더는 살기 좋고 아름답고 쾌적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겨우 경험하기 시작한 상실을 받아들이 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로이 스크랜턴이 《뉴욕 타 임스》에 쓴 에세이 「인류세에 죽는 법을 배우기의 요지이 다. 스크랜턴은 끝부분에 이렇게 썼다
기후변화가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국방부가 자원 전쟁을 위한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혹은 맨해튼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방파제를 건설해야 하는가, 호보켄을 언제 소개해야 하는 가 따위가 아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를 사거나 협정에 서명하거나 에어컨을 끄는 정도로는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 다.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철학적인 것이다. 이 문명이 이 미 죽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더 빨리 직시할수록, 우 리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더 빨리 깨달을수 록, 죽어야 할 운명의 굴욕을 짊어지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힘겨운 일을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전 세계적으로 8억 명이 굶주리고 있고, 6억 5000만 명은 비만이야. 1억 5000만 명이 넘는 5세 이하 어린이들이 영 양 부족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어. 그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수치이지. 영국과 프랑스에 사는 사람이 전부 다 5세 이하의 어린이고 제대로 먹지 못해서 잘 크지 않는다고 상상해 봐. 매년 300만 명의 5세 이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있어. 홀로코스트로 150만 명의 어린 이가 사망했고,
굶주린 인구가 먹을 식량을 재배할 땅19을 과식하는 인구 가 먹을 가축을 키우는 용도로 쓰고 있음을 알아야 해. 음식 물 쓰레기를 생각할 때는 먹다 남긴 음식 말고 접시에 음식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생기는 쓰레기에 초점을 맞춰야 해. 고기 단 1칼로리를 생산하려고 동물에게 26 칼로리를 먹여야 한다고.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을 지낸 장 지글러는 10억에 가까운 인구가 굶주리는 마당에 바이오 연료에 1억 톤의 곡물을 쏟아 붓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썼어. 사실 살인 범죄라고 해도 좋을 거야. 해마다 축산업자들이 부유 한 사람들이 먹을 동물들한테 전 세계의 굶주린 사람들을 모두 먹일 수 있는 양의 일곱 배가 넘는 곡물을 먹이고 있다 는 얘기는 아직 하지도 않았어. 이건 학살이라 불러야 한다고. 그러니까 공장식 축산이 '전 세계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야. 공장식 축산은 세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굶주리게 만 들고 있어.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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