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리모컨으로 편성표를 확인하다 '지방의 누명'인가 하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타이틀만 보고 무조건 예약 버튼을 눌러뒀다. 반가운 마음으로 시청하자마자 스스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지방(地方)이나 비수도권 또는 지역경제를 다룰 거라는 '기자스러운'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깼다. 단백질, 탄수화물과 함께 3대 영양소인 지방(脂肪)을 다룬 것이었다.

실수로 본 다큐멘터리는 그런대로 유익했다. 시청하는 내내 머릿속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교차하며 지나갔다. 소개된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밥상의 상식을 뒤집는 지방의 반란 이상이었다. 추어탕에 치즈를 넣고 말아먹다니, 그건 충격이었다. 누명(?)을 벗기듯 지방이 비만과 콜테스테롤의 주범에서 건강 다이어트의 주역으로 띄워지고 있었다. 그 덕인지 고지방 제품 매출이 평균 두 배 가깝게 뛰었다. 버터와 치즈, 삼겹살과 오겹살, 올리브오일이 귀하신 몸이 되어 비정상 체중을 노린다. 이전에도 포화지방이 각종 성인병과 직접 연관성이 없다는 '지방의 역설'(니나 타이숄스) 같은 연구 결과가 나왔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듯했다.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반론도 많고 반향도 엄청났다. 그럴 만도 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결과로는 남성의 30%, 여성의 46.3%만 정상 체중이다. 비만율은 또 지역 편차를 보인다. 서울 강남구가 과체중 인구 비율이 가장 적고 서울 서초, 경기 성남 분당, 경기 과천 등도 대체로 낮다. 소득별로는 상위 54.9%, 중위 55.5%, 하위 61.3%가 과체중 이상이다. 이건 확률이라 치고, 국민 10명중 6명이 과체중 이상이었다. 건강검진을 받은 국민 1402만명 중 정상체중은 526만명뿐.

이러니 유행처럼 다이어트가 번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성인 셋에 한 명, 청소년 여섯에 한 명이 비만이다. 방법도 쓱 바르면 빠진다는 것부터 섹스 다이어트까지 다양하다. 누구든 방심하면 정상 체중권또밖으로 밀려난다. 며칠 전 우연히 만난 Y씨 역시 이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내 비키니 몸매 1위 이력의 몸짱녀가 살집이 올라 있었다. “운동을 안 해서”라고만 짧게 이유를 댄 그녀는 살 빼려는 여성들을 지도하고 있다 한다. 아이러니했다.

실패는 수요의 어머니다. 지금도 몸짱으로 불리는 그녀 역시 운동을 포함해 남모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까 한다. 필자도 키와 몸무게를 이용한 신체질량지수(BMI)로는 과체중(23 이상 25 미만)을 넘나든다. 근육량이 더 늘어 30 미만이 되면 경도 비만으로 분류될 판이다. 나를 과체중으로 지목한 사례는 건강검진 결과표가 유일하다. 저체중, 정상, 과체중, 경도 비만, 고도비만 등의 세분화가 다이어트 시장을 키운다는 지적에 격하게 공감한 이유다.

이래저래 시장은 확장성이 커졌다. 다이어트 식품 및 기타(서적, 비디오) 3조2000억원, 다이어트 의료(체중 감량 수술, 치료약) 1조9000억원, 헬스클럽 2조5000억원이라는 추산도 있다. 여기에는 건강 염려증도 가세한다. 주변에 피트니스 센터가 생겼는데 그곳 광고 전단<사진>이 재미있다. '외계인 침공 시 살찐 사람이 먼저 잡아먹힌다', '어쩜! 나일 수도 있잖아'라는 재치 문구가 누군가엔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런 압박이 또 끊임없이 '방법'을 만들어낸다. 육류 위주의 식단 역시 TV 다큐로 지방의 누명이 완전히 벗겨진 건 아니다. 뭐든 무리하면 우리 몸은 언제 어디서 역습을 가할지 모른다. 지방의 반란이 '지방의 논란'이 되기 전에 곧 새로운 다이어트가 등장한다.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는 세상 2만6000가지 다이어트 방법 중 하나다. 다이어트에 실패할수록 관련 산업은 의료계의 블루오션임을 뽐내며 성장한다. 다이어트 산업의 역설이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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