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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09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저자
로버트 라이시 지음
출판사
김영사 | 2011-02-14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전세계를 쇠망치로 강타한 대불황 이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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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원적 문제가 부상한 것은 사실 미국 중산층들이 글로벌 경쟁과 노동대체 기술로 인해 이중고를 겪기 시작한 80년 경이었음. 이때부터 미국은 자국의 노동인력이 급격히 달라진 환경에 더 잘 적응하도록 사회안전망(최저생활보장제도)을 확충하고 노조에 권한을 부여하고 교육 및 직업훈련을 개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했는데, 그러기는 커녕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음. 중산층이 번성할 수 있는 일련의 새로운 정책들을 시행하는 대신, 정치 리더들은 전지전능한 자유시장에 대한 우세한 신념을 바탕으로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수용했고, 노조를 탄압하여 축소시켰으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었고, 사회안전망을 분쇄했음. 70년대 말 미국인 총소득에서 최상위 부유층 1퍼센트가 가져가는 비율은 9퍼센트에 못 미쳤음. 그러나 이후 소득은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되었으며, 07년경 상위 1퍼센트가 가져가는 비율은 23.5퍼센트에 달했음. 소득이 이 정도로 소수에게 집중되었던 마지막 시기가 28년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님

- 대량생산이 대량소비와 동행해야 할 때, 대량 소비는 다시 부의 분배를 필연적으로 수반함. 기존의 부가 아닌 현재 생산되고 있는 부의 분배 말이다. 그래야 국가의 경제조직이 공급하는 재화와 용역의 양에 상응하는 구매력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음. 29~30년의 미국에서는 그런 종류의 분배가 달성되기는 커녕, 거대한 흡입 펌크가 작동해 당시 생산되던 부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소수의 손에 안겨주었으며, 이는 그들의 자본축적을 도왔음. 대량 소비자들의 손에서 구매력을 앗아감으로써 자본가들은 그들의 축적자본을 새로운 생산설비에 재투자할 근거를 세워주는 조건, 즉 다신들의 생산품에 대한 효과적인 수요까지 없애버린 셈이 되었음. 결과적으로 마치 포커게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의 플레이어에게 칩이 집중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 다른 플레이어들, 즉 여타의 국민들은 돈을 빌려야만 게임에 계속 참여할 수 있었음. 대다수 국민들의 신용이 바닥나자 게임은 중단되었음.

- 케인즈는 메리너 에클스가 경기침체제 정부에서 취해야 할 것으로 권고한 사항들에 대해 이론적 설명 및 실용적 타당성을 제공. 경제체제의 생산능력이 보통 사람들의 구매능력을 웃돌지 않도록 총수요를 유지하라. 그러면 기업체들의 투자 인센티브도 적절히 조정될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근로자들에게 경제성장의 결실을 비례적으로 분배하는 기본합의를 강제하는 것임.

- 에클스와 케인즈가 주목한 것은 부자들이 나머지 사람들에 비해 너무 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너무 적게 소비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 적어도 그들이 소비할 수 있는 수준에 비하면 말이다.

- 정부관리들은 08년 금융붕괴가 일어난 원인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지만 대안은 없는 수많은 국민들이 대출을 이용하는 바람에 그 수준이 최고점을 찍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이 리스크가 과도하게 높은 대출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 금융경제가 과도한 탐욕과 투자로 휘청거린 것은 사실임. 수십년간 이어진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더 큰 수익에 대한 기대를 품고 더 큰 리스크를 떠 안도록 유혹했음.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금융경제가 아니라 바로 실물경제에 이었음.

- 만약 대부분의 미국인이 경제성장의 보상을 꾸준히 공유했다면,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살 수 있었을 것. 어려운 때를 대비해서 더 저축했을 것이고, 수입지출의 균형을 맞추며 생활했을 것임. 설령 실직하고 임금이 깎였을지라도 말이다. 그랬다면 많은 돈을 대출받을 필요도 없었을 것임. 사람들이 수입 이상으로 지출하고 소비한 것이 문제가 아님. 그들의 수입이, 경제성장에 따라 그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합리적 기대치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

- 30년대에 성인이 된(그리고 그 교훈을 마음속에 새기고 40년대와 5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머리속에느 대공황의 끔찍한 기억이 남아 있었지만, 그 자녀들이 성인되 되었을 때는 미국에는 번영의 시기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들은 그런 번영과 풍요를 당연한 것을 받아들임.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대번영 시기에 출생했고, 이들은 오류투성이의 불안한 시장이 강력한 정부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헌함 할아버지 세대의 경험을 피부와 와 닿는 실제적 기억으로 갖고 있지 않았음. 이 마지막 세대가 성인이 되었을 때(70년대 말부터) 그들이 기억하는 것이라곤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성공 뿐이었음. 그런 그들은 경제실패의 원인을 정부에게로 돌리고 싶어하는 자유시장경제 옹호자들의 매혹적 논리를 쉽게 수용할 수 밖에 없었음. 게다가 이들 마지막 세대는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한배를 탔다는 공동체적 의식을 지닌 시대에 관한 기억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음. 대신 그들은 구성원들 각자가 스스로 살아나갈 기를 모색할 수 밖에 없는 경제사회를 목격했음.

- 미국인들은 이제 미국 경제가 생산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을 더는 마음껏 구매할 능력이 없음. 그 이유는 국민총소득에서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상위 부유층에만 집중되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기 때문. 급료와 생산을 연결해주는 기본 합의가 깨졌기 때문. 그렇다면 그 합의를 다시 확립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임. 오바마는 미국경제를 벼랑에서 돌려세웠음. 그가 제시한 은행구제와 경기부양 패키지는 연준의 저이자정책과 결합하여 대불황이 또 하나의 대공황으로 전환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음. 그러나 미국은 기본합의에 다시 전념하지는 않았음.

- 미국문화가 발산하는 메시지는 참으로 혼란스러움. 미친듯이 일하되 바보처럼 즐겨라. 이 두가지를 한꺼번에 실천하기란 불가능함.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이미 수년전에 문화적 모순이 발견되었지만 대불황에 접어들면서 더욱 심해졌다고 주장. 근면한 노동과 지연된 만족 이라는 청교도적 미덕은 하루빨리 꿈을 실현하고 욕구에 탐닉하라 는 시장의 가르침과 완전히 상반됨. 나이와 상대적 지위, 개인적 매력이 뒤쳐질까봐 두려운 마음에 욕구는 꾸준히 상승해만 가고,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일하게 됨. 근면한 노동을 둘러싼 논의는 언제나 거짓말을 전제로 하고 있음. 사람들은 언젠가는 만족한 삶을 영위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감.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열심히 일함으로써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음. 애덤 스미스조차 이런 기만과 속임수의 요지를 알고 있었음. 그는 도덕 감정론에서 이렇게 말했음. "전형적인 노동자란 평생동안 ... 그가 결코 도달하지 못할 허구의 고상한 휴식이라는 생각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진정한 안온함을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만이야말로 인류의 산업을 끊임없이 탄생시키고 또 움직여온 장본인이다."

- 51년부터 80년까지 호황을 누리던 30년 동안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70퍼센트에서 90퍼센트까지 달했으며, 경제 평균 성장율은 3.7퍼센트였음. 그에 반해 83년 대불황이 시작되었을 때 최고세율은 35퍼센트에서 29퍼센트, 평균성장율은 3퍼센트였음. 공급중심주의 학파들은 레이건이 실시한 감세정책이 80년대의 경제부흥을 촉발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질적 증거는 없음. 실제로 그런 경제폭발이 일어난 원인은 82년 레이건의 세금인상 때문이었음. 90년대의 경제성장 또한 감세정책의 영향이 아니라 클린턴이 93년 세금을 인상하면서 발생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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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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