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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의 인문학

역사 2025. 1. 18. 06:38

- 돼지고기 사육이 늘어난 것은 일제 강점기 들어서임. 소를 키우는 것보다는 돼지를 키우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됨. 소는 분만간격이 14개월이고 임신기간이 280-287일에 이르는데다 한 번에 새끼 한마리만 낳는다. 반면 되재는 분만간격이 5.5개월이고, 임신기간도 114일에 불과하며 한번에 10마리 정도를 출산.
그러니까, 과거 조선시대 쇠고기 선호에서 돼지고기를 주로 먹기 시작한 것으로의 전환에는 아무래도 일제강점기의 축산정책이 미친 영향이 컸다. 일제강점기에 버크셔 및 요크셔종을 도입하여 재래돼지와 교잡시켜 보급하였기에 1910년에 55만 두였던 돼지가 35년에는 160만두에 이름. 결국 공급이 한국인의 육류소비패턴 변화에 일조한 것.

- 돼지고기 기피이유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돼지고기는 기피되는 식품. 돼지고기 기피의 중심지는 중동지역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 모두 돼지고기를 금한ㄷ. 구약과 코란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지만, 돼지고기 식용을 금지하는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유럽은 중동지역의 생태학적 조건과 환경이 돼지사육에 부적합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보임.
고대 중동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중요 동물이 소, 양, 염소 세종류였음. 마빈 해리스는 섬유질을 소화시키는 반추동물이 중동지경의 인간과 가축 사이의 관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았음. 즉, 이 반추동물은 인간이 먹어야 할 곡물을 나눠 먹지 않고, 인간이 먹기에 부적절한 풀이나 짚, 건초, 잎사귀 등을 먹고 살면서 고기와 젖을 제공. 반면 인간과 비슷한 먹이를 두고 경쟁관계에 있는 돼지고기는 기피되었다고 설명.

- 한국인에게 돼지고기 하면 삼겹살이다. 삼겹살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 것은 80년대 이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삼겹살이 '돼지의 갈비에 붙어 있는 살로 비계와 살이 세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기이다. 비슷한 말로 세겹살이라 한다'라고 설명됨. 국어사전에 삽겹살이 오른 것은 94년이다. 50년대 사전을 살펴보면, 쇠고기의 부위는 등심, 안심, 채끝, 제비추리 같은 단어가 수록되어 있지만 돼지고기 부위는 살코기, 비계, 족발, 순대만 수록되어 있어 부위별 세밀한 소비는 없었던 것으로 보임. 살코기와 비계, 내장과 족발 정도의 구분, 아니면 찌개거리와 구이용같은 조리방식에 의한 구분만 존재
삼겹살구이 식당은 70년대 후반부터 생겨남. 우리민족의 돼지고기 요리 역사에 소금구이가 없었던 이유는 잔반을 먹이고 거세하여 사육하지 않으면 고기에서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 마늘, 생강 등으로 특유의 누린내를 제거해야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70년대 중반 이전에도 삼겹살을 먹었지만 양념한 두루치기 형식의 요리가 많았다. 쇠고기 중심의 로스구이가 돼지 삼겸살 로스구이로 변화한 것, 정확히 말하면 지금과 같은 삼겹살구이 식당이 70년대 후반부터 많이 생겨난 것은 그 당시 기업양돈의 확대로 냄새가 안나는 돼지고기가 생산되어 삼겹살을 로스구이 방식으로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
또한 한우 가격 인상도 큰 원인이 되었을 것.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회식메뉴가 쇠고기 등심이나 갈비에서 돼지삼겹살로 이동하면서 대중문화로 자리잡음. 과거 돼지고기는 쇠고기에 비해 선호도가 낮았다. 70년대 정부가 쇠고기 가격폭등을 막기 위해 돼지고기 소비 육성책을 쓰면서 돼지고기 수요가 증가. 그 이전에 편육은 쇠고기였지만 80년대가 되면서 돼지보쌈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냉장고가 대중화되면서 가정에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돼지고기 보관이 쉬워짐

- 삼겹살 구이는 한국인만의 고기문화. 지극히 한국적이고 독보적이다. 서양인들은 삼겹살을 염지와 훈연가공을 통해 얇게 썬 베이컨으로 만들어 조금씩 잘라먹음. 한국인은 비계가 타면서 내는 고소한 냄새를 맛있게 느끼고, 지방이 입안에서 씹힐 때의 촉감을 즐긴다. 여기에 상추와 된장, 마늘, 풋고추 등을 더해 쌈으로 싸먹는 습관도 삼겹살구이 인기에 일조. 채소를 곁들이면 고기에 부족한 섬유소 섭취도 증가하고 맛과 건강에도 당연히 좋다.
삼겹살은 비타민 B1과, 단백질, 아연, 엽산, 인, 철분, 칼륨 등 각종 영양성분이 풍부. 

- 과거 돼지고기는 주로 삶거나 구워 먹음. 그러나 지금 대표적 돼지고기 음식 중 하나는 돈가스. 돈가스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인 30-40년대로 추정됨. 그러나 당시에는 돈가스가 대중적 음식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임.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경양식집이 널리 생기기 시작한 6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는 일본에 의해 돈가스가 들어왔지만, 원래 돈가스는 서양인이 일본에 전해준 음식. 돈가스는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서양의 커틀릿을 일본인의 입맛에 바꾼 절충음식이다.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그것을 일본에 맞게 바꾼, 일본의 문화적 특성이 잘 반영된 음식의 상징이다.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을 근대화시킨 정치적 혁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1200년의 육식금기를 깨뜨린 요리유신이기도 했음. 이 육식혁명이 오늘날 일본 음식문화를 풍부하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는데, 그 대표적 음식이 바로 돈가스다.

- 우리나라에서 양계산업이 발달하면서, 60년대 전기구이 통닭에 이어 70년대부터 닭도리탕이 음식점에 등장했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 식성에 맞아 빠르게 인기메뉴가 되었다. 이렇게 대중화된 닭도리탕은 일본말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게 됨. 사람들이 닭도리탕의 도리는 새 혹은 닭을 뜻하는 일본말이라고 주장하게 되었고,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97년에는 국립국어원 고시로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으로 순화하여 사용할 것을 권장.
이렇게 닭도리탕이 닭볶음탕으로 바뀌었지만, 현재도 닭도리탕에 대한 논란은 여전함. 닭을 뼈째로 여러 조각으로 토막내 감자, 당근, 양파 등 채소와 고주창 고춧가루 등 매운 양념장을 넣고 끓여 만드는 이 음식은, 조립법 어디에도 기름을 넣어 볶는 과정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말에서 유래했다는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
닭도리탕은 일제강점기 이후 갑자기 생겨난 음식이나 말이 아니며, 그 이전부터 먹어온 음식이고 써왔던 말이다. 실제로 문헌을 찾아보니 24년 출간된 이용기의 한식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송도에서는 도리탕이라고 하여 양념으로 파와 후춧가루, 기름과 깨소금, 마늘 등을 넣고 만든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닭복금을 도리탕이라고 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25년 최영년의 해동죽지에는 도리탕이 나오는데 도리탕의 한자는 소리나는 대로 쓴 듯하다. '이것은 닭고깃국으로 평안 성안 일대에서 생산된다. 뼈마디를 잘라 표고버섯과 훈채와 함께 종일토록 고아 고기를 익히면 살이 매우 연해져 세상 사람들이 패강(대동강)상의 명산물이라고 칭한다' 라고 나와 있다. 즉 도리탕이 평양의 특산물이며 개성 북쪽인 관서지역 음식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닭도리탕과는 조리법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그 당시 개성과 평양에서 명물음식으로 이름난 것으로 미루어보다 이미 오랫동안 먹어온 음식으로 봐야 함
이런 기록들로 볼 때 닭도리탕은 아마도 닭을 도리쳐서 만든 탕이라는 의미가 더 맞는 것 같다. 일보어 도리가 음식명에 들어가서 닭도리탕이 만들어졌다는 최근 주장은 시대적으로 잘 맞지 않으며, 따라서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으로 바꾼 것도 성급한 판단으로 생각된다.
과거 닭의 전통 조리법은 닭을 한 마리 통째로 넣고 끓이는 것이지만, 지금은 닭을 토막내 파, 마늘 등 양념과 채소를 넣어 만드는 닭도리탕이 더 인기다. 이런 변화는 고춧가루나 고추장 등 좀 더 자극적인 양념장을 사용하게 된 미각의 변화로 인해 조립법도 변화한 탓이라 추정됨. 최근에는 이런 조리법이나 유래, 용어 등의 반론들을 종합해 닭매운찜으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도 있음.

- 너비아니와 불고기 조립법은 각각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1800년대 말 시의전서에서는 정육을 잘게 저며 양념한 다음 불에 직접 굽는 것을 너비아니라 했고, 조선요리제법 39년판에 나오는 우육구이(너비아니) 만드는 법은 '고기를 얇게 저며 그릇에 담고 간장과 파 이긴 것, 깨소금, 후추, 설탕을 넣고 잘 섞어서 굽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불고기는 쇠고기를 얇게 썰고 양념해서 육수를 부어 철판에 올려 굽는 음식. 불에 굽는 불고기가 아니라 국물에 잠겨 익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불고기라는 이름의 고기구이가 언제 이 땅에서 시작되엇는지는 확실하지 않음. 그러나 우리 고기 요리의 맥이 상고시대의 맥적에서 시작해 고려시대 설야멱적으로, 그리고 조선시대 설야적, 설리적 등으로 이어졌다가 일제강점기에 너비아니로 발전했으며, 오늘날 불고기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매력적인 고기요리는 역시 불고기다. 그것이 맥적에서 왔든 달짝지근하게 먹던 일본음식의 영향을 받았든 간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의 고기 요리인 것은 틀림없다.

- 조선시대에는 고기를 주로 삶아서 먹었는데, 질긴 고기를 맛있게 삶기 위한 비법도 중요했다. 그를 위해 고안된 방법들이 고조리서에 많이 나오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닥나무 열매. 닥나무 열매와 함께 고기를 삶으면 연하고 향기롭다는 것. 냉장보관할 수 없는 사정에서, 상한 고기도 버리기 아까웠다. 따라서 약간 상한 듯한 고기를 삶을 때 볏짚이나 호두껍데기를 넣으라고 했고, 여름에는 식초를 넣어 삶으면 10일이나 상하지 않고 견딘다고 했다. 우리 선조들은 맛있는 고기조리를 위해 부단이 연구했던 듯하다.

- 하몽은 발효생햄으로 스페인에서는 하몽, 이탈리아에서는 프로슈토라 불림. 하몽은 돼지뒷다리의 넓적다리 부분을 통째로 잘라 소금에 절여 건조, 숙성시켜 만든 스페인의 대표적 고기 가공품. 비싼 값에 수입을 많이 하는 식품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발효생햄을 직접 만드는 축산농가가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조리법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겨울이면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서 창고에 걸어두고 말리고 숙성시켜두었다가 필요할 때 잘라 먹는 방식으로, 추운 지방에서는 잘 해먹던 고기조리법이었다. 
1680년경에 쓰여진 작자 미상의 국한문 혼용의 요록이라는 조리서는 '겨울에 고기 맛 내는 법"을 소개. 이에 따르면 '소나 노루나 사슴고기의 뼈를 발라내거나 뼈를 그대로 두기도 한다. 또는 길게 자르거나 편육으로 얇게 썰어 항아리에 담고 소금물을 부어 10일쯤 두었다가, 소금기가 고기에 배면 꺼내 물기를 제거하고 바람이 통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매달라 말린다. 얼었다 녹았다 하기를 반복하면서 마르면 감탕나무(싸리) 바구니에 넣어 보관하는데 여름을 지나고 먹어도 좋다. 거위나 오리나 닭이나 꿩도 털을 제거하고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한다.'고 하여 지금의 발효생햄 만든 법과 비슷하다.
그리고 1670년의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도 고기 말리고 오래 두는 법이 나온다. 그 방법은 다음고 같다. '말리려는 고기의 뼈를 발라버리고 매우 씻어 냄새와 피가 없도록 하여 베어서 편을 만들어 두 판자 사이에 넣어 돌로 눌러두어라. 물기가 없어지거든 소금을 섞어 다시 눌러두어라. 햇볕에 말리되 반쯤 마르거든 다시 두 판자 사이에 끼우 밟아 편편하게 하여 매우 말려라. 볕이 없으면 시렁을 매고 발을 깔아 그 위에 고기를 널고 그 아래 불을 피워 말려라. 연기를 쐬면 고기에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직접 음식을 조리한 여성 저자의 조리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도 정말 세련된 고기요리를 즐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감칠맛은 구아노ㅗ신1인산, 이노신1인산과 같은 5'-리보뉴클레오타이드와 아미노산인 L-글루타메이트의 맛. 감칠맛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혀를 덮는 듯한 수프 또는 고기맛으로, 군침이 돌게 함. 감칠맛은 인간과 동물의 혀에 있는 특수 수용체 세포에서 글루타메이트의 카복실레이트 음이온을 감지할 때 느껴지는 미각임. 이것은 기본적으로 맛의 균형을 유지하고 요리의 전체 맛을 완성함. 우리는 잘 구운 고기를 입에 넣었을 때 대부분 정말 맛있다고 느낌. 이 맛이 바로 감칠맛으로, 고기의 단백질이 분해되어 나오는 아미노산들에 의해서 만들어짐. 인간은 모유를 통해 감칠맛을 처음으로 접한다고 하니 감칠맛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얼마나 클지 짐작 가능.
이런 아미노산에는 물론 글루탐산이 영향을 미침. 그러나 글루탐산은 채소나 다른 식물성 식품에도 들어 있어, 고기 특유의 맛을 결정한다고 보기는 어려움. 고기에는 채소와 같은 식물성 식품에는 없는 감칠맛 성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노신산이다. 이노신산은 동물 몸의 에너지원이 되는 중요 물질인데 아데노신3인산이 분해되며 생김. 식물들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노신산을 만들지 못함. 하지만 동물의 근육에는 아데노신3인산이 다량 함유되어 이노신산이 만들어짐.
이노신산은 글루탐산과 함께 핵산 조미료의 핵심원료. 채소나 콩 같은 식물성 식품에 글루탐산이 있음에도 고기에 비해 감칠맛이 떨어지는 이유는 고기에 있는 이노신산이 글루탐산과 함께 맛을 최대로 올리기 때문. 즉, 이노신산이야말로 고기의 감칠맛 성분의 핵심이다. 우리가 채식을 하다가도 고기가 먹고 싶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이노신산의 감칠맛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맛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 고기에 대한 맹렬한 욕구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이는 또한 식욕을 증가시키는 역할도 하고 의욕도 생기게 한다. 이렇게 감칠맛 나는 고기가 있다는 것은 먹을 거리를 찾고 즐기는 풍요로운 삶을 위한 축복이 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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