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전작이자 기초인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는 "알 수 없는 수백가지 화합물로 만들어진 천연향마저 안전한데, 검증된 30종이하의 원료로 만들어진 합성향은 얼마나 더 안전하다는 말인가? 이것이 합리적인 생각이다", 라는 한 줄을 말하기 위해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성바나나향이나 천연바나나나 실제 맛(향)을 내는 성분은 동일. 분자구조나 기능은 같고 단지 그 출처만 조금 다른 거이다. 오히려 천연향에는 비록 그 양은 매우 적지만 식품에 허용할 수 없는 성분까지 들어 있는데, 합성향은 사용하는 모든 원료가 안정성을 평가하여 허가된 원료만 사용하므로 안전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양이 극히 적으므로 신경쓰지 않는다. 결국 향은 천연이든 합성이든 굳이 그 안전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
- 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이 5가지 뿐이라면 현재 우리가 즐기는 수만가지 요리의 다양한 맛은 대체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단지 향일 뿐이다. 음식을 먹을 때 입 뒤로 코와 연결된 작은 통로를 통해 향기물질이 휘발하며 느껴지는 극소량의 향이 수만가지 맛의 실체. 이처럼 작은 통로로 휘발되는 백만분의 1 이하의 향기물질이 음식맛을 좌우하고 식품의 운명을 바꾼다. 풍미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맛에 있어서 미각의 역할은 5-20%, 후각의 역할은 95-80%라고 말하기도 함. 식품 성패가 맛에 달려 있다면, 맛의 성패는 향에 달려 있다.
- 식물은 포식자를 피해 도망가지 못한다. 초식곤충과 초식동물에 대한 유일한 방어체계는 여러가지 화학물질을 만드는 방법뿐이다.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 함유량으로 측정하는데, 희석하여 매운 맛을 감지하지 못하는 수준을 0으로 하여 순수한 캡사이신 농도까지를 스코빌 단위로 표현. 순수 캡사이신은 1500만, 즉 캡사이신을 1500만분의 1로 희석해야 매운맛이 없어진다. 캡사이신은 원래 고추가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화학무기. 그래서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은 거의 탐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새는 이 수용체의 형태가 약간 달라 캡사이신이 결합하지 않으므로 전혀 매운맛을 느끼지 않는다. 새를 통해 멀리 번식하고자 한 고추의 책략이다.
식물은 좀 더 지능적인 방어도 한다. 겨자와 같은 식물은 말벌을 고용해 청부살해를 한다. 네덜란드 파토로우 박사팀의 연구에 의해 흑겨자는 나비 애벌레가 자신을 갉아먹으면 두가지 방식으로 방어. 첫째로 나비가 잎에 알을 낳으면 세포조직을 괴사시켜 알이 제대로 부화하지 못하게 막는다. 배추흰나비의 알이 잎에서 분비된 특정 화학물질과 반응하고, 하루 정도 지나면 잎이 마르는 등 조직이 망가져 결국 알이 제대로 부화하지 못하게 되는 것. 그런데 양배추나방처럼 무더기로 알을 낳는 경우에는 두번째 방법을쓴다. 바로 기생일벌을 부르는 것. 양배추 나방이 흑겨자 잎에 알을 많이 낳으면 흑겨자는 기생일벌을 유혹하는 물질을 뿌려 이곳에 먹이가 있음을 알린다. 그러면 기생일벌이 다가와 양배추나방의 알에 자신의 알을 낳음. 흑겨자 입장에서 보면 기생일벌을 시켜 향후 자신을 공격할 애벌레가 태어나지 못하게 미리 죽이는 청부살해를 한 셈이다.
- 향기물질은 공격수단이기도 함
동물은 식물의 가장 큰 적이지만, 식물 사이에도 경쟁이 치열함. 식물은 생존을 위해 잎줄기에서 나름대로 다른 식물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분비하는데 이를 타감작용이라고 함. 상쾌한 향기 적에 흔히 실내에서 많이 키우는 허브라 제라늄 같은 풀들도 타감작용을 함. 평소에 가만히 두면 아무런 향이 나지 않지만 강한 바람이 불거나 인위적으로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별안감 강한 냄새를 풍겨낸다. 감자싹에 들어 있는 솔라닌의 독성이나 마늘의 항균성 물질인 알리신 역시 모두 제 몸을 보호하는 물질. 어느 식물이든 자기방어 물질을 내지 않는 것이 없다. 사실 항생물질까지도 생성.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쓰는 것이다.
- 후각 수용체는 무려 400종, 가장 많은 유전자가 동원되는 기능이다.
코에서 후각을 담당하는 곳은 뇌에서 가장 가까운 부분으로, 코로 들어온 공기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이용하는 구조임. 코 상단의 후점막부분은 황갈색을 띠고 있어 다른 부분과 구별되는데, 작은 동전정도 크기로 향기를 맡는 후각세포가 천만개 정도 밀집되어 있다. 후각세포에는 많은 섬모가 나와 있고, 이섬모의 막에 향기를 감지하는 후각수용체가 천개정도 있다. 후각 수용체의 종류는 무려 400가지나 된다. 시각 수용체가 3종, 촉각수용체가 4종, 미각수용체가 30종인 것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이것도 원래 800종에서 줄어든 것임.
인간의 유전자에는 800여가지의 후각유전자가 있으며, 그중에 실제로 기능하는 것은 400종 정도. 50%가 화석화된 것이다. 여우원숭이, 신대륙원숭이의 후각수용체가 18% 화석화되고, 콜럼버스원숭이와 구대륙 원숭이가 29%,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가 33% 화석화된 것에 비하면 인간은 화석화된 비율이 높다.
하지만 인간의 후각이 동물보다 못하고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활용능력. 인간은 고도로 발달한 뇌가 있다. 지네의 다리가 아무리 많아도 잘 달리지 못한다. 숫자를 줄이고 기능을 특화시키는 것이 진화의 방책이다. 눈과 같이 복잡한 기관도 50-100만년이면 만들어진다. 반대로 동굴에 갇혀 시각이 필요없어지면불과 천년 이내에 완전히 퇴화한다. 필요한 기능을 만드는 것도 진화이고, 불필요한 기능을 없애서 비용의 낭비를 줄이는 것도 진화다.
- 치즈와 홍어의 향
성인이 우유를 먹게 된 것은 오천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갓난아이를 제외하고 생우유를 먹으면 소화되지 않은 유당이 대장으로 넘어가고, 대장에서 유당을 원료로 온갖 잡균이 이상증식하여 가스와 유해물질이 만들어져 속이 부글거리고 복통과 설사라는 징벌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생우유를 전혀 먹지못하고 자연발효로 유당이 분해된 발효유, 시간이 지나 표면에 떠오른 지방을 모은 것, 카세인과 지방이 응집된 치즈 같은 형태의 제품만 먹을 수 있었다. 치즈는 단백지과 지방을 응고시키고 나머지를 제거하는 식으로 유당을 없애므로 유당불내증과 무관하게 먹을 수 있고, 수분을 제거하여 보관성도 좋았다. 치즈를 보관하다가 자연스레 발효가 일어나면 단백질의 분해율이 높아져 유리 글루탐산이 생우유보다 수백배나 증가하기도 함.
현대 서양인은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를 갖고 있으므로 굳이 치즈를 만들어먹을 필요가 없다. 치즈보다 그냥 우유를 먹는 것이 원료의 낭비도 없고, 가성비도 좋다. 그럼에도 치즈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이미 치즈의 풍미에 중독되었기 때문. 치즈의 풍미는 유당, 단백질, 지방이 유산균이나 기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만들어진다.
- 마라에는 다른 재료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자극이 있다. 바로 촉각. 쓰촨 요리에서 특별한 매운맛의 주역은 쓰촨 산초인데 우리의 산초와는 다른 종류. 여기에는 3%정도의 알파 산쇼올이 있는데, 이것은 캡사이신의 매운맛돠는 다른 얼얼한 맛을 제공. 초피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도 입술이나 혀, 입천장 등 여러 부위가 저리고 얼얼한 거을 느낄 수 있는데, 산쇼올이 4가지 촉각 수용체 중에 가벼운 진동을 감각하는 수용체를 활성화시키기 때문. 온도 수용체가 실수로 캡사이신이라는 화학분자에 반응하는 것처럼, 촉각을 담당하는 수용체가 실수로 산쇼올이라는 화합물에 반응하여 마치 피부가 떨리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2013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연구팀은 산쇼올 성분을 입술에 발랐을 때 초당 50회 진동하는 것과 비슷한 자극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동일한 자극을 지루해하고 좀 더 강한 자극을 원하지만, 단일한 자극이 너무 강한 것에는 거부감이 있다. 자극이 복합적일수록 합창이나 오케스트라처럼 풍부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마라에는 미각과 후각뿐 아니라 온각과 촉각도 있다. 그러니 항상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인간을 사로잡을 수 있다.
- 향기는 코로 맡을 때와 먹을 때 마저 다르다
커피는 향을 맡을 때는 매력적인데 마시면 향이 실망스러울 때가 있고, 치즈는 향은 고약한데 오히려 먹을 때는 풍미가 매력적인 경우가 있다. 생선 비린내는 그냥 코로 맡을 대는 괜찮은데 먹으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들숨(정비각) 즉, 코로 숨을 들이키면서 맡는 향기와 날숨(후비각) 즉, 은식을 먹을 때 목 뒤로 휘발하면서 코로 느껴지는 향기가 다르기 때문. 보통 동물은 들숨을 통해 향을 탐색하는 기능이 발달해 있고, 사람은 날숨의 경로를 통해 음식의 품질을 판단하는 능력이 발달해 있음. 인간의 후각은 날숨이 핵심이다. 향은 들숨때보다 날숨일 때 강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 신선한 생선은 향이 별로 없다. 그런데 생선을 상온에 보관하면 금방 비린내가 나기 시작. 비린내는 주로 트리메틸아민 때문인데, 과거에 생선에 비린내를 줄이는 방법으로 레몬즙을 뿌리는 것이 많이 추천된 것은 TMA가 알칼리성 물질이라 산성이 되면 용해도가 증가하고 휘발성이 감소하므로 비린내가 훨씬 덜 느겨지기 때문. 코로 향을 맡을 때는 별로 비린내가 안 나던 생선이 먹을 때는 비린내가 강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입에서 온도가 올라가 휘발성이 증가하거나, 침에 의해 산이 중화되어 pH가 올라가 TMA의 휘발성이 증가하기 때문.
초장을 찍어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초장에는 많은 식초가 들어 있고, 모든 향을 덮어버리는 고추장도 듬뿍 들어 있다. 더구나 들숨은 향만 작용하지만 날숨은 미각과 함께 작동함. 적절한 단맛과 신맛 등의 맛 성분은 향을 더 강하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맛과 향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 우리는 좋은 향과 나쁜 향이 따로 있고, 식물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향을 만들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스트레스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고추의 매운맛은 50%가 유전적 요소이며, 나머지는 환경적 요소에 의해 결정됨. 동일 품종이라도 지면에 가깝게 열리는 고추가 더 맵고, 수분공급 부족 등 고추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매워짐. 월동을 한 노지 채소가 맛과 향이 진하고,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채소 역시 향이 진하다. 좋은 와인도 척박한 토양에서 힘들게 자란 포도로 만든다. 결국 부족함과 스트레스가 식물의 향 생산을 부추기는 것.
영양과 날씨 등 조건이 좋으면 1차 대사산물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합성이 왕성하지만, 2차대사산물은 상대적으로 적음. 곤충에 대한 방어를 위해, 냉해에 견디기 위해 분자량이 적은 물질을 많이 축적함. 물에 분자량이 적은 물질이 많을수록 빙점강하게 일어나 쉽게 얼지 않기 때문. 이들 저분자 물질은 맛과 향의 원천이기도 하다.''그렇다고 무작정 저온이 유리한 것은 아님. 식물의 대사는 효소에 달려 있는데 온도가 높아질수록 효소는 활발히 작동해 많은 대사산물이 만들어짐. 결국 낮에는 온도가 높아 1차 대사산물이 많이 만들어지고, 밤에는 온도가 낮아 2차 대사산물이 많이 만들어진다. 고도가 높아 일교차가 큰 것이 식물에게는 스트레스겠지만, 인간의 입맛에는 좋은 산물을 만드는 것. 고산지대의 커피향이 진한 이유도 그런 이유다. 향이 좋은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잘 견디어냈다는 훈장인 셈이다.
- 희한하게도 황화합물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향이기도 하다. 가장 단순한 분자인 황화수소의 냄새를 흔히 썩은 달걀 냄새로 묘사하는데, 실제로 잘 희석하여 맡아보면 삶은 달걀 냄새와 유사함. 달걀은 매우 복잡한 성분으로 되어 있어서 달걀 특유의 맛은 복잡한 성분의 상호작용이라 예상할 수 있는데 고작 극미량의 황화수소 한가지로 달걀과 똑같은 냄새가 나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
최근까지 우리 민족은 참기름을 좋아해서 어떤 음식이든 참기름만 넣으면 고소하고 맛있어진다고 생각했다. 이 참기름의 핵심적 향기가 바로 황화합물. 그래서 참기름에 생소한 서양 사람은 참기름 냄새를 약간 스컹키하다고 싫어하기도 한다. 요즘 서양송로버섯인 트뤼프가 매우 고급재료로 인기를 끄는데, 그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가 참기름을 대하듯이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트뤼프의 특징적 향도 황화합물이다.
- 향신료 중에서 잎을 주로 사용하는 것을 허브라 하고, 꽃, 뿌리, 씨앗, 열매, 껍질 등을 주로 사용하는 것을 스파이스라고 함. 허브는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쓰기도 하지만 신선한 것을 그대로 쓰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스파이스는 날것 그대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통째로 말린 상태(홀)나 분말(파우더) 등으로 사용. 홀은 조리를 시작하는 과정에 넣어 향이 충분히 녹아나오게 할 때 사용하고, 분말은 향의 추출이 빠르므로 조리 마무리 과정에 첨가해 향의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용.
향신료 중에는 정향, 계피, 아니스, 타임처럼 특정 물질이 유난히 많아 그것을 주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인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향기물질이 조합되어 풍미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 누룩은 일종의 미생물 덩어리. 원료는 주로 밀이고 그밖에 보리, 옥수수, 콩, 팥, 귀리 등을 섞어 만들기도 함. 지역 풍토와 기후에 따라 형상, 크기, 품질 등이 각기 다른데 누룩의 지름이 너무 작거나 두께가 얇으면 수분이 쉽게 발산되어 숙성이 제대로 안되고, 반대로 너무 두꺼우면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거나 통기가 어려워 미생물이 잘 생육하지 않아 역가(발효력)이 낮고, 향미도 좋지 않게 됨. 결국 누룩의 독특한 형태에는 주위환경에 따라 미생물이 잘 생육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찾으려는 노력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탁주와 소주 양조에는 밀을 거칠게 빻아서 만든 조곡을, 약주 양조에는 밀을 곱게 빻아 만든 분곡 또는 밀기울이 포함되지 않은 백곡을 사용. 이러한 누룩이 일본의 코지와 다른 점은 곡류를 조분한뒤 살균하지 않은 생전분을 그대로 자연발효 상태에서 제조하므로 곰팡이, 효모, 세균류 등 다양한 미생물이 존재하고, 그로인해 곰팡이에 의한 전분의 당화력과 효모에 의한 알콜 발효능력을 동시에 지녀 누룩 단독으로 전통주를 제조할 수 있다는 것.
술을 빚으려면 먼저 곡물에 함유된 전분을 당으로 분해해야 하는데 누룩에는 당화효소가 듬뿍 들어 있어 술밥을 당화한다. 그렇게 누룩은 꼬들꼬들한 밥을 흐물흐물하게 죽처럼 만들고 마침내 액체상태로까지 변화시킨다. 요즘이야 당 분해효소가 많이 개발되었고, 기술도 꾸준히 발전해 곡물을 당화하기가 쉽지만, 예전에는 정말 쉽지 않은 기술이었다. 누룩은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일으킬 수 있는 일종의 미생물 군집체여서 예로부터 주모아 술꾼들이 애지중지한 신비의 물건이었다. 술이 익으면 액체와 고체로 나뉘게 되는데 여기서 액체를 분리하기 위해 일종의 체에 해당하는 용수를 박는다. 이 용수에는 맑은 술이 고이는데 이것이 약주다. 하지만 특권층이나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양반을 비롯한 모든 백성이 막걸리를 주로 마심.
- 위스키에 물을 약간 떨어뜨리면 향이 좋아지는 이유는? 향기 성분은 에탄올에 잘 녹음. 그런데 에탄올을 물에 희석하면 향의 용해성이 점점 떨어진다. 위스키의 고농도 에탄올에는 많은 향기성분이 잡혀 있는데, 거기에 소량을 물을 떨어쓰리면 겨우 녹아 있던 향기성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휘발. 코로 느낄 수 있는 향이 더 많아진다. 사실 술의 주인공은 에탄올이고 풍미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도 에탄올이다. 향기성분들은 각각 에탄올과 결합하는 정도가 달라서 향을 그냥 맹물에 넣은 것과 에탄올에 넣은 것은 느낌이 다르고 향기물질에 따라 역치가 물이나 공기에서와는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 음료, 과자,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에 많이 사용되는 산미료가 구연산이라면, 요리에는 식초가 많이 들어감. 식초는 초산이 4-20%(주로 4-6%) 들어 있는 제품으로 식초의 역사는 술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함. 효모에 의해 포도당이 분해되면 알콜이 되는데, 알콜이 한번 더 발효되면 식초가 된다. 술이 만들어지면 식초가 될 가능성이 늘 존재. 서양에서는 식초는 포도주를 만들다 우연히 얻은 부산물이기도 해서 프랑스어 vin(와인)과 aigre(시다)를 합성해 vinegar라 불렀다. 그래서 식초는 술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바빌로니아인들은 기원전 5천년에 이미 식초를 제조해 조미료와 식품의 보존성을 높이는 목적으로 사용.
식초는 거의 전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조미료로 사용하며 요리에 신맛과 생동감을 줄 뿐 아니라 보존성을 높이는 역할을 함. 식초가 포함된 식품은 부패균 증식이 억제되어 피클처럼 식초에 절이면 오랫동안 상하지 않게 보관가능. 초밥처럼 음식에 식초를 넣어도 좀더 오랫동안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초산은 식품에서 사용하는 유기산 중 가장 작은 분자라 휘발성이 있고, 작고 극성이 있어서 물에 잘 녹지만 초산의 함량이 매우 높으면 서로 결합해 고체가 되고, 물에 적은 양이 녹아 있어도 휘발성이 있어서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있다. 그래서 오래 익히는 고기에 처음부터 식초를 쓰면 산미는 휘발되고 감칠맛만 남게 된다. 발효로 만든 식초는 주성분이 초산이기는 하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유기산과 아미노산, 당, 알콜, 에스터 등이 들어 있다. 식초의 종ㄹ에 따라 이런 성분의 함유량이 달라 각기 다른 풍미를 가진다.
- 발효 중에서도 우유와 콩의 발효는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어서 술이나 젖산 발효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름. 보통 발효는 탄수화물을 이용해 알콜이나 젖산 초산 등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장류는 탄수화물이나 콩의 단백질이 주 원료다. 단백질의 발효는 쉽지 않다. 분해의 과정도 어렵고, 단백질에서 유래한 향은 탄수화물과 달리 향기가 강하고 호불호도 갈리기 때문. 그래서 일본술은 쌀의 도정률이 높은 것을 고급으로 취급한다. 쌀의 겉면에 있는 단백질과 지방을 완전히 제거해야 향이 깨끗하기 때문. 사람들을 발효 하면 무조건 좋은 성분과 향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단백질을 발효한 향은 조금만 잘못되어도 부패한 것으로 느낄 만큼 거칠어서 다루기 까다로움.
단백질은 향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발효인지 아닌지의 구분조차 어렵다. 발효는 띄우기에 적합한 것과 삭히기 또는 숙성하기에 적합한 것이 있다. 먼저, 발효는 미생물을 이용해 사람에게 유용한 산물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모균을 이용한 알콜 발효와 젖산균을 이용한 젖산발효가 대표적.
- 단백질을 분해하는 것은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발효과정에서 만들어진 향도 워낙 강력해서 호불호가 심하게 나뉘는 편. 발효의 향은 순수한 탄수화물이 가장 깔끔하다. 단백질과 지방은 부패취와 유사한 향이 많이 만들어짐. 향기는 별로지만 워낙 감칠맛이 매력적이라 적응하는 것이다. 세게 5대 악취식품으로 알려진 것도 전부 단백질 분해식품이다. 1위가 스웨덴 청어 통조림인 스르스트뢰밍, 2위는 우리나라의 홍어, 3위는 뉴질랜드 에피큐어치즈, 4위는 키비악, 5위가 생선에 소금을 쳐서 삭힌 일본 쿠사야다. 그리고 취두부또한 단백질 발효식품이다. 심지어 된장마저 악취로 느끼는 나라가 많다. 단지 이들은 감칠맛이 풍부해 분화를 통해 악취를 극복한 것이다.
우리는 무작정 발효하면 좋을 것이라 기대하고, 그래서 발효라는 말을 오남용한다. 하지만 미생물의 관여가 적으면 발효라 말하기조차 애매하다. 젓갈이 그렇다. 젓갈에는 소금이 20-30% 들어간다. 이런 조건에서는 극단적 호염균을 제외하고는 미생물이 자라지 못함. 단백질의 분해는 미생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장 등에 있던 단백질 분해효소의 자가소화와 세월에 의한 것이다. 그러니 젓갈은 발효보다 삭힌다는 표현이 적합. 미생물에 의한 발효는 보통 1주일, 길어도 한달이면 끝난다. 그러니 시간이 한달 이상 걸려 만들어진 제품은 다른 기작이 추가된 것이다. 가자미식해, 오징어식해 같은 것도 미생물이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발효라 보기 힘들고, 식혜도 미생물이 아니라 엿기름 효소를 이용하므로 발효라고 보기 힘들다. 과일의 후숙을 발효라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숙성 또한 발효가 아니다. 포도주나 위스키를 참나무통에 넣어 후숙시키는 것은 미생물과 관계없어서 발효라 하지 않는다. 누룩과 메주, 청국장, 비지를띄우는 것은 발효에 해당하지만, 이를 소금물에 침지해 오랜 기간 통으로부터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과정도 발효라 말하기 애매하다. 사실 간장 속 메주를 걸러내고 액만 끓여 오래 저장하는 것은 숙성 또는 삭힘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매실청은 당절임이고, 흙마늘은 생마늘을 70도 이상의 온도에서 갈변시켜 만든 것이다. 이런 온도에서는 미생물이 자랄 수 없어서 발효와는 관계없다.
- 간장은 '음식의 간을 맞추는 데 쓰는 짠맛이 나는 흑갈색의 액체. 메주를 소금물에 30-40일 담가 우려낸 뒤 그 국물을 떠내어 쏱에 붓고 달여서 만든다'라고 설명. 하지만 단순히 짯맛을 위해서라면 소금만 넣어도 충분한 것을 간장에 대해서도 그냥 짠맛이라고만 기술한 것은 간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식품공전에서는 간장을 한식간장(메주를 주원료로 해 식염수 등을 섞어 발효, 숙성시킨 후, 그 여액을 가공한 것), 양조간장(대두, 탈지대두, 또는 곡류 등에 누룩균을 배양해 식염수 등을 섞어 발효, 숙성시킨 후 그 여액을 가공한 것), 산분해간장(단백질을 함유한 원료를 산으로 가수분해한 후 그 여액을 가공한 것), 효소분해간장 (단백질을 함유한 원료를 효소로 가수분해한 후 그 여액을 가공한 것) 그리고 이들을 혼합해 만든 혼합간장으로 구분한다.
- 콩은 다른 어떤 식물보다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다. 그리고 간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항아리 속 소금물에서 콩의 단백질이 서서히 분해되는 과정이다. 단백질은 수백, 수천개의 아미노산 분자들이 한줄로 이어지고 그것이 실타래처럼 뭉쳐져 있는 상태. 그것들이 항아리 속 소금물에 녹아나와 차츰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다가 마침내 단백질을 구성하는 최소단위인 아미노산까지 쪼개지는 것이다. 그중에는 완전히 쪼개지는 것도 있고, 덜 쪼개지는 것도 있는데, 덜 쪼개져서 아미노산이 두 개 이상 붙어있으면 그것을 펩타이드라 부른다.
메주를 소금물에 넣고 항아리에서 몇 달 숙성시키면 콩 속의 단백질 분자들이 쪼개져 수많은 아미노산과 펩타이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간장을 '소금물에 아미노산과 펩타이드가 많이 들어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고작 단백질을 쪼갰을 뿐인 간장이 한 집안의 음식맛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우리가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혀에 맛을 감지하는 수많은 미각 수용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수용체도 사실 작은 단백질이고, 분자의 특정 부위에 아주 작은 분자가 결합해 작동함. 개별 아미노산으로 분해된 상태가 딱 이 미각수용체로 감각하기 좋은 크기이고, 펩타이드 중에서 아미노산이 서나개 정도만 결합한 정도의 저분자 펩타이드도 감각함.
음식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아미노산은 단백질 형태로 결합한 상태라 맛으로감각하지 못하고 극히 일부 아미노산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만 감각한다. 우리는 콩을 먹어도 별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단백질을 분해해 간장으로 만들면 유리아미노산, 저분자 펩타이드의 물질이 폭발적으로 늘고 향기물질 등이 많이 만들어져 그토록 강렬한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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