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잉 대출은 과잉 생산을 초래하여 대출의 질을 악화시킨다. 결코 모호하지 않다. 너무나 많고 많은 새 주택이나 사무실 빌딩 혹은 다른 어떤 것'이 생겨났다면 위기가 뒤따른다. 방대한 과잉 건축과 과잉 역량은 마찬가지로 방대한 양의 과잉 대출을 통 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과잉 건축과 과잉 역량은 금융 위기의 핵심에 있다. 금융 위기는 거의 항상 몇 년간의 짧은 시기에 발생한다. 한 해에 특정 동네에 하나의 새로운 고층 콘도미니엄이 지어졌다면 문제가 되 지 않지만 그것이 10개라면 짧은 기간에 그 초과분을 소화할 세입자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과잉 대출은 과잉 역량을 초래하여 처음에는 건전했던 대출이 부실화될 수 있다. 이 책에서 검토한 거의 모든 금융 위기는 그에 앞서서 GDP 대비 비율로 민간 부채의 비약적인 증가가 선행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1960년대 후반의 미국, 1990년대의 영국, 1970년 대의 프랑스, 1980년대의 독일과 같이 원만한 민간 대출의 증가의 시기는 금융 위기를 촉발하지 않았다. 특히 주요 선진국의 정부 (혹은 공공) 부채는 지난 위기 이후까지 금융 위기의 큰 요인이 아니었다. 위기가 발생하면 수습은 시간과 새로운 자본을 통해서만, 즉 자연스런 성장이 과잉 시설을 흡수할 시간과 타격을 입은 대출 기관과 회사를 회생시킬 새로운 자금을 통해서만 수습될 수 있다.
- 위기는 확실하기보다는 불가피하다. 경제학자들이 파괴적인 요소를 기술하기 위하여 널리 사용하는 문구인 '외부 충격’은 종종 나타난다. 하지만 과잉 생산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시점에서 위기를 촉발하 는 데 외부 충격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과잉 대출과 과잉 생산만으 로 위기는 일어날 수 있다. 어느 시점에서 비극은 시작되도록 되어 있다. 시장의 참가자들은 대출 중 너무 많은 금액이 상환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점차 인식한다. 대출이 줄어 든다. 건설이나 다른 기업 활 동이 둔해진다. 대출 기관은 곧 위기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격을 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가치 평가를 높게 하여 부동산 대출을 계속하는 것이지만 대출을 계속하면 더 나쁜 부채를 만들어낸다. 그러 나 대출이 줄어들면 가치가 하락하여 문제 대출을 노출시킨다. 대출 붐이 가져오는 좋은 시절은 너무 좋고 반전이 가져올 나쁜 시기는 너무 나 빠서,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뉴스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 대출의 빠른 증가는 금융 위기의 최선봉이다. 우리들이 완전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1945년 이후의 금융 위기를 검토해 본 결과 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이 5년에 걸쳐서 15~20% 이상 증가하고 GDP 대비 전체 민간 부채 비율이 150%에 이르거나 초과하면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과거의 검토와 미래의 판단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지표이다. 더 중요한 사안은 과잉 시설이나 과잉 생산이 얼마나 있는가와 해당 국가의 대출 기관에 대한 정책적 통 제 능력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이 임계치를 훨씬 초과했지만 정부가 위 기와 관련된 모든 구성 요소(대출 기관, 차입자, 규제 당국)를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대적으 로 완전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전후의 시기에 47개국의 데이터베이 스에 이 거친 공식을 적용해보면 이 간단한 공식이 그 시대의 약 80% 의 '재난'을 예측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재난은 금융 위기 혹은 GDP의 2% 감소 또는 둘 다를 의미한다. 부채의 빠른 증가는 형성되고 있는 과 잉 생산 역량에 대한 측정 가능한 지표이다. 심각한 금융 위기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에 앞서서 신용붐이 일어났다. 드문 경우지만 민간 부채가 앞서서 빠르게 증가하지 않았을 때에도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특히 1800년대의 사례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듯이 부채가 아주 빠 르게 증가하면 GDP 대비 민간 부채의 비율이 150% 미만이라도 생산 설비의 과잉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부채 비율이 낮으면 민간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더라도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 면 전체 부채의 비율이 낮다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처럼 그 사회에 과잉 생산 역량이 초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 문이다. 다시 말해 부채의 급속한 증가가 위기를 초래할 것인가의 여부는 대출 붐 이전에 존재하는 사회의 생산 역량(그것이 주택이나 사무실 공 간이든 다른 범주이든)과 관련이 있다. 민간 부채의 수준이 GDP 150% 이 상인 경우는 기존의 생산 역량이 충분하다는 것과 대출 붐이 일어나 생 산 역량이 추가되면 쉽게 과잉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스티브 킨 Steve Keen 이 보여준 것처럼 민간 부채가 전반적으로 높을 때 새로운 대출이 감소하면 경제의 총수요를 감소시킨다. 민간 부채가 낮을 때는 그렇지 않다.
- 민스키의 견해에 따르면 대출 기관은 먼저 '헤지(hedge) 대출에서, 즉 원금과 이자를 현금 흐름으로부터 상환할 수 있는 대출에서 출발한 다. 그 다음에는 현금 흐름으로는 원금이 아니라 이자만 갚을 수 있는 '투기적’ 대출로 이동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금 흐름으로는 이자와 원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부채를 갚기 위해서는 자산이나 기업체를 팔 아야 하는 '폰지(Ponzi)’ 대출로 이동한다. 경제의 한 부문에서 대출의 경향이 폰지 범주에 가까워지면 위기의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 시스템 이 안정적인 상태에서 취약한 상태로 이동하고 위기를 촉발시키는 급 작스러운 붕괴가 일어나는 순간은 종종 민스키 순간Minsky Moment 이라 불 린다.  나는 민스키의 생각에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겠다. 대출 기관이 이 같은 투기적인 폰지 유형의 대출을 진행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각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들이 행복감에 빠져서 차입자의 미래 현금 흐름을 너무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있는 경우나 대출을 실행한 후 경쟁 여건이 불리하게 변하는 경우에도 그들은 진심으로 헤지론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을 수도 있다.
- 미국의 스카이라인 구조는 대공황이 드리운 검은 그림자를 상징 적으로 보여준다.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 엠파이 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RCA 빌딩, 시카고의 머천다이 즈 마트(Merchandise Mart), 리글리 빌딩(Wrigley Building), 트리뷴 타워 (Tribune Building), 필라델피아의 PSFS 빌딩(PSFS Building), 로스앤젤레스의 시티 홀(City Hall), 달라스의 코턴 익스체인지 빌딩(Cotton Exchange Building), 디트로이트의 피셔 빌딩(Fischer Building), 휴스턴의 걸프 빌딩 (Gulf Building), 이 건물들은 1920년대에 이루어진 건축적 위업이자 경제 붕괴 이전에 일어난 부동산 분출의 산물이다. 많은 건물들이 부동산의 실제적인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추진되었던 투기적 프로젝트의 유산이다. 이 건물들은 대출이 여전히 가능했던 1920년대 말에 건설되기 시작했고 경제 붕괴 이후 대출 기관들이 공사의 완공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돈을 댔거나 그렇지 않으면 대출이 이미 부실화된 상황에서 완공되었다. 어떤 것도 투자자들이 처음에 가졌던 생각에 비춰볼 때 사업적으로 성공적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그 빌딩들은 완공 이후 1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에 일부 혹은 거의 전부가 비어 있었다. 대출 기관들도 희열에 도취되어 있었다. 부동산에 대한 엄격한 수요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대출이 이루어졌다. 사실 그랬기 때문에 건설될 수 있었다. 건설 붐이 일어나면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서 고용이 늘어난다. 하지만 너무 많은 건설이 실제적인 수요보다는 자금 조달 능력에 기반해 있었기 때문에 유효 수요가 뒷받침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고용되었다. 플로리다에서는 사기로 얼룩진 악명 높은 부동 산 열풍이 불었다가 1926년의 허리케인 때 처참한 종말을 맞았으며 그와 비슷한 일들이 미국의 많은 주요 도시, 특히 뉴욕과 시카고에서 일어 났다. 
- 대출과 다른 부채의 축소(강제적이든 아니든)는 이 시기에 가장 파괴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지출을 붕괴시켰 다. 지출과 투자를 급격히 위축시킴으로써 건전한 수천 개의 기업에게 도 타격을 가했고 결국 GDP가 큰 손상을 입었다. 예를 들어 은행이 건전한 소매점에게도 대출을 조기 상환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재고 대출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매출은 직접적인 타격에 더해서 추가적으로 절반가량 더 줄었다. 재고 대출이 적을수록 재고를 줄일 수 밖에 없고 이는 매출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건전한 소매상이라 하더라 도 재고 대출을 완전히 상환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대개 문을 닫아야 했 다. 이로 인해 수천 개의 주택과 기타 자산이 어쩔 수 없이 매각되었다. 그래서 가정들은 겁을 집어먹고 지출 행동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로 말미암아 부채 부담이 없는 사람들까지 두려움을 느꼈고 많은 사람들 이 현금을 비축했다. 이 설명이 바로 어빙 피셔 Irving Fisher가 제시한 부채 디플레이션의 이론이다. 
- 역설적이게도 정부가 1980년대 초 시행했던 저축대부조합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특히 그 업계가 곤 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대출 권한을 부여한 것은 결국 1980년 대 중반의 무분별하고 잘못된 대출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1980년대 후 반과 1990년대 초반에 8백 개의 주택대부조합이 파산했고 거의 5천 개 의 주택대부조합이 부실해지거나 자본 부족의 상태에 빠졌으며 결국 1,600억 달러의 구제 비용이 들었다.  규제 완화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해서 규제의 조정은 저축대부조합 위기뿐만 아니라 여러 위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1824년에 주식회사의 설립을 허용한 영국의 법률은 1825년 위기를 일으켰다. 어느 나라에서든 대출과 관련된 법률 및 규정의 변경은 항상 일어나고 있으며 기업 및 대출 공동체는 항상 더 다양하고 확장된 유형의 대출을 수행하기 위하여 '규제 완화'의 시도를 한다. 성장은 기업의 필수 요건이며 대출은 그 수단이다.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는 입법이 반드시 위기를 운명처럼 만드는 것은 아니며 많은 위기는 그것 없이도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산업계는 대체로 금지를 우회하여 자신의 길을 혁신할 수 있다. 문제는 규제 완화 가 위험한 신용을 용이하게 하는가의 여부와 그 정도이다.
- 위기 이후에 대출과 관련한 법률이나 규정을 개정해야 하는 경우 가 자주 있지만 위기 이후의 많은 입법은 대체로 사실상 이미 뒤늦은 사후약방문이다. 월드컴 Worldcom 및 엔론 Enron 사태 이후에 등장한 2002년의 사베인스 옥슬리법 Sarbanes-Oxley Act 과 대불황 이후 등장한 2010년 도 드-프랭크법 Dodd Frank Act 이 그러한 사례이다. 그 입법들은 직전에 일어났던 위기를 막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며 다음에 일어날 위기의 양상을 예견하지는 못한다. 이 두 법은 도움이 될 만한 조항만큼이나 부담스럽고 불필요했을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들이 통과되면 업계는 신속하게 그 중 많은 것을 뒤엎거나 피해가려고 하며 그렇게 해서 종 종 성공한다. 이 줄다리기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어 왔으며 항상 있을 것이다.
- 1991년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무용 건물, 아파트, 호텔, 주택, 콘도미니엄, 아니면 대지이든, 부동산 가격 은 1991년 초부터 다음해 3월까지 평균 15.5% 하락했다. 이 추세는 1993년까지 계속되었는데 가격은 1993년까지 추가적으로 18% 하락했다.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종종 대출 급증이 불러온 사태의 본질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가격은 약 300% 올랐다. 그 같은 가격 상승은 호황 이전의 가치로의 복귀도 그만큼 극적일 것이라는 의미했다. 물론 문제는 은행이 부동산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담보로 사용했 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치가 하락하는 순간부터 대출은 더 이상 완전 히 담보되지 않았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수록 은행의 부실 채권은 쌓여갔다. 가격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부동산 가치를 계속 높 이 평가하며 대출을 계속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위기의 함정이다. 대출이 지속되는 동안 부동산 가치는 뒷받침되지만 부동산 대출이 느슨해 지면 가격은 하락하고 대출은 손상을 입는다.  이 지점에서 (아마도 1990년대 초), 일본의 금융 위기는 불가피했다. 대출과 채무증서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340조 엔 이상 늘어났다. 당시의 달러로 계산하면 대략 2.4조 달러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90조 엔 이상이 부실 대출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은행 산업의 자본과 지준금은 단지 35조 엔에 불과했다. 엄청난 수의 빌딩과 주택이 텅 비었고 대출에 대한 심판의 날은 다가왔다. 정부도 재앙을 막을 수는 없었고 단지 나쁜 뉴스가 전해지는 속도와 최종적인 피해 규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이었다.
- 일본의 은행 산업과 정부는 1930년대의 미국보다 더 오랫동안 그리고 더 철저히 문제의 인식을 거부하는 태도를 취했다. 일본은 자산 가치가 다시 반등하고 경제 활력이 되살아날 것으로 정말 믿고 싶어했다. 이러한 태도와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 때문에 산업 부문의 자금 조달은 지장을 받지 않았고 정부는 또한 예금 보험을 전략적으로 부각 시켰기 때문에 어떤 '예금 인출 사태'도 없었다. 자산 가격의 붕괴가 1990년과 1991년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1998년까지 은행 산업에 개입하여 자본을 충당하지 않았고 2000년대 중반에 가서 야 이 과정을 완료했다. 거의 15년이 걸렸다.  이렇게 현실 인식을 거부하는 태도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 다. 자산 가격 하락의 속도와 규모가 인식 능력을 훨씬 넘어섰다는 것이 다. 혹은 그것을 파악할 수 있었더라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금융 위기를 불러오는 악성대출의 규모는 거의 언제나 막대해서 손쉽게 흡수하기가 힘들다. 만약 일본(중앙)은행이나 규제 당국의 누군가가 은행 산업의 향후 8년간 손실이 65조 엔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면 자산 가치 하락에 대한 정확한 계산의 결과라고 해도 정신 나간 이야기로 묵살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땅값이 반등하지 않거나 순조로운 상승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1년 붕괴 이전까지는 부동산 가치의 하락은 없었으며 많은 땅을 소수가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판매 가격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가치는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 었다.  일본인들 스스로가 기록적인 월등한 경제적 성공을 계속 이어 나갈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고 그런 요구를 받고 있는 분위기에서 전반적인 사회적 압력은 그들이 계속 성장을 추구하도록 박차를 가했다. 어떤 은행도 대출과 수익 하락의 첫 사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은행들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나 다른 불투명한 관행을 통해서 대 출 손실의 인정을 지연하는 방법을 배웠다.
- 1990년대에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홍콩,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많은 아시아의 소국들은 급속한 GDP 성장과 함께 각자의 방식대로 경제적 기적을 경험했지만 그 나라들의 통화와 증권 시장이 1997년 7월을 시작으로 무너지면서 경제의 급격한 단절을 겪었다.  이 위기는 종종 외환 위기 혹은 심지어 국가 부채 위기로 특징지어 지지만 아시아 위기는 거의 모든 금융 위기와 마찬가지로 우선 무분별 한 민간 부채의 위기이다. 1997년 위기가 시작될 즈음에 한국의 GDP 대비 민간 부채의 비율은 5년 만에 28%나 증가했고 GDP 대비 민간 부채의 전체 비율은 164%에 달했다. 정부 부채는 단지 GDP의 12%에 불과했다. 한국의 통화인 원(Won)은 몇 년 동안 큰 변동 없이 거의 같은 범위 내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대출이 걷잡을 수 없이 수년에 걸쳐 일어난 후 투자자, 예금자, 거래상들은 차입 비율이 과도하 게 높은 한국의 기업 차입자들이 부채를 제대로 상환하지 못해서 그들 에게 대출해준 은행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파편적인 여러 증거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외국 투자자들과 대출 기관들은 자신들의 자금을 빼내서 해외로 옮겼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한국의 통화는 폭락 하고 금융 파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일은 이미 수년간에 걸쳐 무분 별한 대출이 이루어진 한참 후의 일이었다. 은행들이 대출을 너무 많이 해주었고 기업 차입자들의 부채 부담 이 과다하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었다.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민간 부채는 1992년부터 1997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에서는 부동산 부채보다 훨씬 규모가 컸던 기업 부채가 주범이었다. 일본 산 업과 연관된 기업들이 이 대출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기 때문에 일본의 성장 둔화에 따른 위험에도 노출되었다. 
- 일본이 그렇게 오랫동안 관용을 보이다가 은행들을 구제했다는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면 파산했을 수 있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영업을 함으로써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은 항상 가장 높은 가치를 사회적 통합에 부여하며 이것은 90년대를 지탱해온 바로 그 요소이다. 거의 사회적 단절이 없었다. 위기의 정점기에 실업률은 일본에게는 예외적으로 높은 수치였지만 다른 주요 위기를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낮았다.  일본이 침체에 빠지자 정부의 세수는 줄었고 지출은 증가했으며 그 시기 이래로 일본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36%까지 치솟았 다. 이 수치는 미국의 2배가 넘는다. 일본의 대규모 정부 적자는 어떤 의 미에서 역사상 가장 큰 케인스주의적 실험을 의미한다. 수요 진작을 위한 정부 지출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GDP 성장이 반응을 했지만 정부 지출 증가의 규모를 고려하면 희망했던 수 준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일부 저명한 일본인 경제학자들은 최근에 일본의 은행 산업 구제 방식이 2008년 미국의 방식에 비해서 성공이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보다 압축적인 시간 일정에 따라 문제를 처리했지만 더 큰 GDP 위축과 높은 실업을 경험했다.ㅜ일본의 방식이 이미 정해진 것이었는지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계 획한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 방식은 결과적으로 단절과 실업을 완화했지만 일본 경제가 매우 높은 수준의 민간 부채로 고심 하게 만들었다.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겠지만 더 나은 방법은 처음부터 1980년대 후반의 무분별한 대출을 억제하거나 완화하는 방법이었다.
- 2008년 위기를 사후에 분석하는 과정에서 '신용 평점', 특히 FICO 점수로 알려진 산업 표준의 용도에 대해서 분석이 많이 이루어졌다. 일 반적으로 FICO 점수가 670 이상인 주택 담보 대출 차입자들은 '우량 (prime)' 차입자로 간주되었고 그보다 낮은 점수의 차입자들은 '저신용(subprime)'으로 분류되었다. 많은 대출 기관들은 FICO 점수를 차입자위험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로 해석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것은 결코 그 렇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실제적인 위험은 수많은 요인에 따라서 변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FICO 점수가 700이면서 착수금을 내지 않은 차입자와 FICO 점수가 700이면서 30%의 착수금을 낸 사람은 위험의 정 도가 다르지만 대부분의 대출 기관들은 그 차이에 주목하지 않았거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높은 착수금이 요구되고 총부채 상환 비 율(debt-to-income ratio: DIR)이 낮다면 대출 기관은 지급의 원천이 두 개 이기 때문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첫 번째는 차입자의 소득으로 매달 지불을 하는 것이 충분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집의 매각 대금이 대출금을 감당하고 남을 수 있다. FICO 점수는 이 차입자가 과거에 신뢰할 만 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착수금이 업소 압류와 매각을 실행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택의 매각은 실제로 손실을 낼 수 있으며 직업이나 소득에 대한 증명이 없다면 차입자의 소득으로 변제할 수 있는지를 확 신할 수 없다. 더욱 문제가 복잡한 것은 신용 조사 기관의 서류에 기록 된 것이 드문, 이른바 '금융 정보가 부족한(thin files)’ 젊은 신규 차입자는 출발할 때 상당히 높은 점수를 할당 받았다. 그렇지만 그 점수는 실 제적인 신용 활동을 하게 되면 빠르게 변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 량'으로 평가를 받은 상당수 대출이 정당하게 평가한다면 우량에 미치 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신용 평점에 의존함으로써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은 근본적인 실수를 범했고 이 실수는 최종적으로 수십 억 달러의 손실을 낳았다.
-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2008년의 글로벌 대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예측 실수의 사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미연준의 의장인 앨런 그 린스펀과 전 미국 재무장관 티모시 가이트너 Timothy Geithner 를 포함한 정 책 입안자들과 경제학자들은 위기를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고 서둘러서 주장했다. 일부 사람들은 대재앙을 예측하기 너무 힘들다. 는 의미에서 2008년을 검은 백조에 비유했다. 벤 버냉키가 이 무지몽매함의 전형이다. 2004년 2월, 그는 '대완화(The Great Moderation)'라는 연설을 했다. 그 연설은 열정적으로 수용되었고 그 뒤 자주 언급되었다. 그는 그 연설에서 “지난 20년 동안 경제적 풍경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거시 경제적 변동성이 실질적으로 감소한 것이며 내 입장에 서는 통화 정책을 개선한 것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아마도 대완화 의 중요한 요인이 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까 |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던 시점에 주택 대출의 열풍은 거세게 불고 있었다. 그가 인용한 지난 20년간의 대완화는 결코 온화하지 않았다. 여 기에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고공 행진을 하던 인터넷 주 식의 첫 번째 붕괴뿐만 아니라 저축대부조합 위기, 정크 본드 위기 및 1980년대의 많은 위기들이 포함된다. 버냉키의 망각은 그 후 3년간 계속되었다. 그는 집값이 떨어지고 대출 산업이 무너지기 직전인 2005년 7월에 “주택 가격은 전국적으로 하락한 적이 없다”고 말 했다. 그의 연설은 대공황기에 있었던 주택 가격의 급락을 아주 편리 하게 무시해버렸다. 3개월 후인 2005년 10월 20일, 그는 주택 부문에서 '투기적 활동'이 늘고 있음을 인정했지만 "전국적 차원의 가격 상승은 대체로 강한 경제 기초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1 얼마 후 2006년 2월 15일에 그는 “주택 시장은 약간 냉각되고 있다. 우리의 기대는 활 동 감소 또는 활동둔화가 완만해져서 주택 가격이 아마도 계속 오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5월 28일에 또 다른 연설이 있었다. 그는 “그러나 이 상황에서 비우량 주택 시장의 문제가 전체 경제 및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마도 수습될 것 같다”고 말했다. (sy 2008년 1월 10일은 우리가 이후에 경제 침체가 이미 시작된 때로 파악하고 있던 시 점이다. 그때 버냉키는 “연준은 현재 경기 침체를 예상하지 않고 있다" 고 읊조렸다. 어쨌든 2008년 위기를 예측하고 전망하거나 방지할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있으려면 일반적인 모델에 포함 되지 않은 데이터인 민간 부채를 다른 곳에서 찾아봤어야 했다. 실제로 스티브 킨 Steve Keen, 윈 고들리 Wynne Godley, 앤 페티포 Ann Pettifor 등과 같은 이단적 경제학자들의 작은 집단은 정확히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분석과 경고는 무시되었다.
- 정책 입안자와 규제 당국은 부동산, 에너지, 학생 대출을 포함하 여 대출 영역의 신용 확장을 개별적으로 추적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 분석에 기초하여 우려의 징후를 나타내는 임계치를 설정해 야 한다. 이것은 중앙 당국이 모든 대출 활동의 기록들, 다시 말해서 대 출에서 파생된 금융 수단에 대한 전체 및 개별 영역별 정보를 계속적으 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영역별 정보 와 파생 상품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기록하는 총 대출 정보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 등장한 대출 형태가 있다. 규제 당국의 최우선 임무의 하나는 대출 및 파생 상품의 정보를 포괄적이고 완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를 재검토하면서 불건전한 대출 관행이 개입되지 않은 금융 위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불건전한 대출 관행은 중요하고 분명했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이 경솔했으며 결코 사소하거나 분간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08년 미국 위기를 초래했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의 주택 담보 대출 정책은 필수 계약금을 약간 낮추거나 차입자의 소득 증명을 조 금 완화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 대신에 필수 계약금과 수십억 달러 대출 에 대한 소득 증명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 1920년대와 1980년대에 부동 산 개발업자들이 자신들의 부동산 개발 계획에 대출을 해주기 위해서 저축 기관을 매입하는 것은 최악의 이해 충돌이었다. 그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이 위험을 감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출 기관의 신용 정책의 세세한 항목이나 증권화와 담보의 정확한 구조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항시 변동해서 그것들을 억제하는 법규와 규정 의 효력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체적으로 그리고 영역별로 대출 총계를 측정하는 것이다. 대출 증가가 GDP에 비해서 예외적인 곳에서는 거의 확실히 대출 기준이 완화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에는 규제 당국이 필요에 따라 개입해야 한다. 
- 일부 독자들은 높은 민간 부채 비율을 가진 나라는 어떻게 그 비율을 줄일 수 있는지(기술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어떻게 부채 감축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궁금할 수도 있다. 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는 이 론적으로 간단히 절제를 하면 부채가 GDP보다 빠르게 증가하지 않도 록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그 비율은 개선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장기적으로 보면 그러하다. 그 대신에 한 나라의 민간 부채 감축은 항상 세 가지 수단 중 하나 를 통해서 일어난다. 첫째, 공공 부채의 증가로써 상쇄하는 것. 이 방법 은 그 자체의 문제를 낳는다. 둘째, 매우 높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이 것은 매우 고통스런 방법이다. 셋째, 대규모 수출 흑자를 내는 것. 이것 은 무역의 반등 없이는 유지하기 힘들다. 이 세 요인의 어느 것도 없는 조건에서 민간 부채를 줄이는 것은 자산 가치의 하락을 가져오고(왜냐하면 부채 증가가 자산 가치를 증가시킨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결국 GDP를 축 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부채는 채무 조정이나 탕감이라는 포괄적인 전략을 통해서 감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은 매우 논쟁적이며 정치적으로 공정성과 재분배 문제를 동반한다. 그래서 이 방법은 널리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2009년에는 대출 기관이 주택 담보 대출의 잠식 부분을 탕감해주는 포괄적인 조치를 실행할 수 있었다. 이 조치는 대출 기관이 미래의 매각 이득에 참여하는 것을 대가로 차입자를 지원하고 그와 동시에 회계 및 규제 혜택을 통해서 대출 기관의 피해를 줄여주는 것 이다. 만약 이 조치가 실행되었다면 경기 회복의 속도나 정치적 환경면에서 크고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 상업은행은 신용 화폐의 창조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교과서는 예금이 대출을 낳는다고 상정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출 이 예금을 일으키고 화폐를 창조한다. 그 반대가 아니다. 현실의 신용 화폐의 창조 과정에서 상업 은행은 금리, 경제 조건, 다른 투자 대상 등 을 고려하여 특정 고객에게 대출할지의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은행 이 고객에게 신용을 주기로 결정하면 현금의 형태로 대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예금 계좌에 금액을 기록한다. 그 금액은 곧 수표, 계좌 이체, 현금 카드 등을 통해 지불 행위에 이용된다. 이처럼 신용 창조와 함께 예금과 화폐가 창조된다. 현실에서 은행가들이 지불 준비금의 상태를 확인하고 대출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토 빈James Tobin 1978-2002)은 “은행장의 펜에 의해서 창조되는 만년필 화폐”라고 불렀다. 그는 은행장이 대출을 승인하고 차입자의 요구불 예금 계좌에 입력하면 화폐가 창조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화폐는 창조되지만 은행의 대차대조표나 본원 통화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업 은행이 대출할 때 반드시 새로운 저축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리고 상업 은행은 지급 준비금을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릴 수 있다. 앞서 언급 했듯이 은행은 지급 준비금의 양을 확인하고 대출하지 않는다. 은행도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 기업이기 때문에 이윤 전망이 높으면 먼저 대출 을 하고 이후 지급 준비금을 맞춘다. 중앙은행은 상업 은행의 최종 대부자이기 때문에 이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정확히 인용했듯이 이 과정을 가장 잘 해명한 학자는 하이만 민스키 Hyman Minsky (1919~1996) 이다. 민스키에 따르면 '경제를 피할 수 없는 위기로 몰아넣는 메커니즘은 민간 부문(투자자, 은행, 기업)의 걷잡을 수 없는 투기와 부채 누적이다.
- 저자는 채무 면제를 통한 민간 부채의 청산이 고대 문명(바빌론, 이집트, 이스라엘 등)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 문명에서 평민들의 부채가 지속 가능하지 않는 수준으로 늘어났는데, 이 상황은 통치자의 입장에서 용인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채무에 시달 리는 평민들이 바로 세금을 내고 병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었다. 그래서 새로운 왕이나 정복자는 인민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부채를 탕감하는 정책을 자주 선택했고 이스라엘에서는 그 정책은 희년 (jubiliee)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저자의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이뤄진 일종의 '희년'이 독일의 경제 기적의 토대가 되었다. 저자는 이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선진 경제권의 경 제적 성과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에 충분할 정도의 민간 부채 탕감의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현재 논의되 는 부채 경감의 여러 방안들을 검토한다. 우선 파산법(bankruptcy law)을 차입자에게 보다 유리하게 개정하는 것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법이 파산에 관대하다면 대출 기관들은 대출에 보다 신중할 것이고 그 결과로 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이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다른 부채 경감의 방 으로서 금융 위기 시에 대출 기관과 차입자의 사정을 감안하는 법규 제정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2008년 위기 때와 같이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을 때 정부와 규제 당국은 대출 기관들이 차입자의 대출 원금을  보 가치 수준으로 낮추도록 하고 차입자는 그 대출을 장기간(예를 들어 30년)에 걸쳐 갚을 뿐만 아니라, 만일 이후에 차입자가 집의 매각을 통해 서 이익을 얻게 되면 그 일부를 대출 기관과 나누도록 하는 것이다. 만 약 이 같은 계획이 2008년 위기 때에 입법화되었다면 수백만의 차입자 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며 미국의 회복 속도는 훨씬 나았을 것 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을 경우에는 차입자들이 상환 기간 을 10년으로 늘려주고 그 대신에 사회 봉사 활동을 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최근 제안하고 있는 '헬리콥터 머니'도 하나의 방안으로 본다. 그는 개인에게 직접 주어지는 헬리콥터 머니가 지출 의 증가와 민간 부채 감축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정부나 중앙은행이 민간 부채를 인수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같은 방법은 정부 부채를 늘리거나 중앙은행의 자산 손실을 야기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는 최종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방안으로서 정부에 의한 국가 화폐(Sovereign Money) 혹은 공동 화폐(Common Money)의 발행을 제안한다. 그는 책 전체에 걸쳐서 정부 부채는 민간 부채에 비해서 큰 문 제가 아니라는 관점을 견지한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 부채의 감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면 정부 부채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 부채를 경감시킬 방안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그 방안으로서 '부채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화폐를 창조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사실 이 방안은 매우 급진적인 것으로서 영국에서 중앙은행이 확립된 1800년대 초반 이전에 정부가 직접 화폐를 발행하던 국가 화폐 발행 체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영국에서 중앙은행 체제가 확립되고 다른 나라들이 이 체제를 도입하고 난 이후에 모든 정부는 세수 이상의 지출 이 필요할 경우 국채를 발행하여 재원을 마련했다. 그리고 대공황 이후 대다수 국가가 금 본위제에서 벗어난 이후 정부가 발행한 국채가 중앙 은행이 본원 통화를 공급할 때 매입하는 자산의 유일한 원천이 되었다. 저자의 제안대로 정부가 공동 화폐를 발행하면 정부는 더 이상 정부 부채를 질 필요가 없다. 정부가 세수 이상의 화폐가 필요할 경우에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직접 발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현재에도 미국과 영국에서는 재무부가 전체 통화량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주화를 발행한다. 정부가 주화를 발행하면 중앙은행이 자신이 발행한 은행권으로 정부로부터 주화를 매수해서 통화 정책을 실행하면서 경제 내로 공급한다. 저자는 (미국과 영국이) 주화를 발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공동 화폐를 직접 발행하여 정부의 재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즉 정부가 민간 부채를 인수해서 민간의 부채를 줄이고 그로 인해 늘어난 정부 부채를 공동 화폐로써 청산하자는 것이다. 저자의 제안은 아주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만 그의 방안은 200년의 금융 위기 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한 이 책의 자연스런 결론이다. 그는 최근 논문의 결말 부문에서 자신이 발전시킨 화폐와 부채에 대한 이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오늘날 주요국 경제에서 모든 화폐는 부채에 의해서 창조된다. 2) 경제 성장은 새로운 화폐의 창조를 필요로 한다. 3) 따라서 모든 경제 성장은 높은 수준의 부채를 불러온다. 4) 부채는 이자가 붙기 때문에 항상 GDP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 5) 따라서 현재 경제 체제에서는 민간 부채의 탕감 방안을 성공적으로 도입하지 않는다면 금융 위기이든 장기 침체이든 경제적 재앙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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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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