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오디세이

경제 2024. 3. 6. 07:25

- 돈의 가치를 지키는 데 있어서 이 세상에는 그리스가 아닌 로마의 후예가 훨씬 많았다. 화폐경제가 시작된 이래로 무수한 사람들이 돈을 위조하거나 함량을 속이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는데, 이처럼 돈의 물리 적 가치를 낮추는 조작을 '디베이스먼트debasement'라고 한다.
오늘날까지 알려진 대표적인 디베이스먼트 기술은 클리핑 clipping 과 스웨팅sweating이다. 클리핑은 주화의 주변을 살살 깎아내는 방법 이고, 스웨팅은 주화를 가죽 부대에 넣고 마구 비벼대어 금화와 은화 가루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클리핑 여부를 눈으로 확인하 기 위해서 주화 테두리를 톱니 모양으로 만들었다. 스웨팅을 막기 위 해 이탈리아에서는 금전거래가 끝나면 금화를 곧장 주머니에 넣고 밀 봉한 다음, 주머니까지 통째로 주고받았다. 이탈리아어로 품질보증을 의미하는 '피오리노 디 수겔로ñorino di suggello'는 원래 '밀봉된 금화' 라는 뜻이다.
- 오스트리아학파를 대표하는 카를 멩거 Carl Menger는 화폐이론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화폐의 기원>에서 "화폐는 거래 편의를 위해 개인들이 고안해낸 것" 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부 분의 교과서에서 유일한 정설처럼 전수되 고 있다. 화폐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일종의 진화론적 사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유시장을 옹호하고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오스트리아학파 의 대가들이 한마디로 말해서 상위 0.1 퍼 센트에 속할 정도의 부자였다는 점이다
- 멩거의 경우 유명한 변호사와 대부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부르주아였다.
오스트리아학파의 한 사람인 미제스도 마찬가지다. 나치를 피해 미 국으로 이주하기 전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손꼽히게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수제자인 하이에크 역시 남부럽지 않게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자기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부호 가문의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과는 육촌관계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가의 중요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오스트리 아학파의 철학은 그들의 출신 성분에서 유래된 자연스러운 결론이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해체된 오스트 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최상위 0.1퍼센트로 살다 보면 '국가보다는 개 인, 정부보다는 시장'이라는 생각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극도의 무정부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철학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한 축을 이루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사상은 결국, 남들이 누리지 못했던 당대 최고의 교육을 통해 터득한 지식으로 자신들의 우월적 존재 기반을 고상하게 방어하는 논 리에 불과할 것이다.
- 중국 사람들이 비단을 팔고 왜 금이 아닌 은을 받았는지는 여러 학 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유럽보다 중국에서 은의 상대가 치가 더 높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유럽에서는 금과 은의 교환비 율이 1대 12~15 정도였지만, 중국에서는 1대 10이라는 관념적인 생 각이 지배했다. 중국이 은의 상대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래서 유럽 상인들은 중국 물건을 수입할 때 금 대신 은을 지급하고, 유럽 안에서는 중국 수입품을 금화로 거래했다. 환율 차이를 이용해서 이익을 남긴 것이다.
- 반짝거리지 않더라도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든지 돈으로 쓰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법정화폐를 발행한 칭기 즈 칸은 그 사실을 알았지만, 종이돈을 혐오한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과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그것을 몰랐다(10장 참조).
앤드루 잭슨보다도 50년 뒤에 태어난 카를 마르크스는 미국 대통 령들의 오류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는 돈에 관해 설명하면서 "왕 이 왕인 이유를 왕에서 찾기보다는 백성과 신하의 눈에 왕으로 보이 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비유했다. 한 사회에서 돈이 존재하는 근 거를 왕과 마찬가지로 대상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회구성 원 간의 관계(네트워크)에서 파악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 나라(경 제권)에서 돈이 존재할 수 있는 궁극적인 기반은 사회구성원 간의 관계를 지켜주는 국가의 주권이다(돈이 지닌 이런 측면을 강조한 것이 화폐국정설인데, 이에 대해서는 2장을 참조하라).
돈에 관하여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결론에 이르게 되면 돈을 다루 는 대금업이나 은행업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대금업자 나 은행가들이 비난받는 것은 순전히 오해의 산물이다. 시인 장 콕도 Jean Cocteau는 시인의 가장 큰 비극이 오해 때문에 칭송받는 것이라 고 했지만, 은행가의 가장 큰 비극은 오해 때문에 비난받는 것이다.
- 은행업의 원조는 비밀리에 운영되던 대금업이다. 처음에는 유대인들 이 독점했지만, 사업의 이윤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르네 상스 시대가 열리기 직전부터는 각국의 일반 시민들도 대금업에 뛰어 들었다. 길거리에서 테이블을 깔고 호객하던 메디치 가문이 그 예다(7 장 참조).
메디치 가문의 사업이 그 이전 유대인들이 담당했던 대금업과 다 른 것은 국제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처음에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사업은 무역과 유통업이었다. 방대한 사업망을 통해 무역을 주력 사 업으로 유지하면서 부수적인 사업으로서 은밀하고 교묘하게 여수신 업무를 실시했다.
은밀한 것은 재량예금의 수신이고, 교묘한 것은 외화표시 건식어음의 할인이었다. 재량예금의 창구는 오직 통치자, 귀족, 성직자 등 지 배계급에만 열려 있었다. 외화표시 건식어음은 어음을 할인받는 차입 자에게 받아내야 할 이자를 환율로 전가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그럼 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이자 없는 그림자금융을 당당하게 운영할 수 있 었다.
초기의 은행가들은 건식어음을 할인한 뒤 만기가 되면 해외지점이 나 해외 동업자를 통해 외국 화폐로 원금을 돌려받았다. 독립채산제 로 움직이는 본점과 지점은 일정 절차에 따라 나중에 어음 실물을 맞 춰보면서 서로의 채권과 채무를 정산했다. 이처럼 근대 은행업은 처 음부터 국제금융에서 출발했으며, 그 핵심은 본점과 지점 간 어음의 청산과 결제 즉 지급결제 업무(환업무)였다. 다시 말해 근대 은행업의 뿌리는 국제금융과 지급결제 업무에 있었다."
- 중앙은행이 없었던 시절에는 동업자끼리 서로 예금을 해 두고 그 돈(상대방에게 맞겨 놓은 금화)으로 결제했다. 지금도 국제적으로는 중 앙은행이 없기 때문에 해외송금 업무에서는 동업자은행끼리 코레스 (correspondent) 계약을 맺고 서로 지급을 대행하는 편의를 봐주는데, 이럴 때는 미리 예금을 맡겨놓거나 신용한도(credit line)를 정해둔다. 한편, 국내에서 동업자들끼리 서로 예금을 주고받는 것도 귀찮아지 자 은행의 집합장소인 어음교환소(clearing house)에 각자 지급준비금 을 맡겨 두었다. 그것이 나중에 중앙은행으로 옮겨가 지급준비제도로 진화했다. 오늘날 은행간 채무관계는 중앙은행에 맡겨놓은 지급준비금을 통해 정산된다. 은행들이 지급준비금을 이용하여 고객들을 위해 자금을 주고받는 일을 지급결제업무라고 한다. 과거에는 환(換)업무라 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지급결제 업무는 미리 맡겨놓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급결제 수단의 하나인 수표(check)를 인출증(draft)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한편 중앙은행에 맡겨놓은 돈이 없는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금고, 신협 등은 지급결제 업무 면에서 일반 개인과 차이가 없다. 이들 제2금융권 금융기관들은 은행의 고객에 불과하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중앙은행에 예치한 정부예금을 근거로 국고 수표를 발행하고 전 국 각지로 재정 집행 자금을 뿌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정부의 재정자 금방출 활동은 개인의 송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한나라의 지급결제 시스템에서 정점은 정부가 아니라 중앙은 행이다. 중앙은행이 없었던 시절에는 어음교환소가 그 자리에 있었지 만, 지금은 중앙은행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근대 은행시스템에서 지 급결제 업무, 지급준비금, 그리고 중앙은행은 삼위일체라는 사실이다.
- 19세기 말 일본은 유럽의 금융 시스템 속에 숨어있는 이런 사실 을 발견했다. 송나라 때부터 있었던 중국의 금융업자 전장이나 일 본의 금융업자 료가에는 단독 플레이어들이었다. 이에 비해 유럽 의 은행(bank)들은 매일 한자리에 모여 어음이나 수표를 집단적으로 결제(차액결제)했다. 이런 특징을 보고 일본인들은 'bank'라는 단어를 '은행'이라고 번역했다.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만든 '국가 은행법(National Bank Act)'을 읽고 1872년 메이지 정부가 '은행 조례'라는 법을 만들 때 탄생한 단어다.
은행이란 처음에 '은화 취급업자 일행 (association of silversmith)'이 라는 뜻이었다. 당시 일본은 은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은 행은 결국 '돈을 다루는 기관의 모임'이라는 집합명사다. 이 말 뒤에는 개별 기관보다는 집단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는 사물이 아닌 사실의 총합, 즉 세계는 사물 간의 관계로 이루어졌다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생각과 똑같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의 인식은 19세기 말 일본의 메이지 정부 수 준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급결제 업무에 관해서 은행 과 비은행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업협동 조합법, 신용협동조합법, 산림조합법, 상호저축은행법, 새마을금고법 등 1970년대 제정된 여러 법률에는 지급결제 업무가 해당 기관의 고 유 업무인 것처럼 언급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중앙은행에 지급준비 금을 맡기지 않아서 지급결제 업무 자체가 불가능한데도 그렇게 법률 이 만들어져 있다. 일종의 입법 오류이며, 지급결제 업무에 대한 무지 의 반증이다.
- 2008년 소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을 만들 때 증권사들까지 지급결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2020년부터는 카카오나 토스 등 IT 업체가 은행업 허가를 받지 않고 '종합지급결제사 업을 할 수 있도록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급결제는 중앙은행과 지급준비금이 전제되는 서비스라는 것을 전 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예로, 한마디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중국의 알리페이나 위쳇 등은 은행업 허가를 받고 지급결제 서비스를 제 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통법이나 전금법이 추구하는 것처럼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들이 지급결제제도에 참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1907년 미국의 금융공황이 그 예다. 은행과 신탁회사들이 대등한 자격으로 뒤섞여 지급결제 업무를 수행하다가 신탁회사들이 파산하여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였다. 사람들이 그토록 미워했던 J. P. 모건이 나서서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해서 가까스로 수습될 수 있었다(11장 참조).
지급준비금도 없이 지급결제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고 1913년 세운 것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다. 과거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1970년대 미국의 저축은행들이 규제 완 화를 앞세우며 지급결제제도 참가를 요구했을 때 미 의회는 이를 수 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1980년 통화관리법을 통해서 저축은행에도 은행과 똑같이 지급준비의무를 부여했다.
어찌 되었든 지급결제 업무의 필요충분조건은 중앙은행과 거기에 맡겨둔 지급준비금이다. 금융의 역사나 생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 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우리나라 공무원은 모른다. 부끄러운 일이다.
- 소비임치계약이란 물건을 맡은 사람이 일단 소비하고 나중에 동종동량으로 갚는 계약을 말한다. 창고업 같은 통상적인 임치계약에서는 물건을 맡은 사람이 소비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소비임치는 소비가 허용된다.
'소비임치'라는 속성을 강조하면서 예금을 특수한 금융상품으로 보는 것은 역사의 산물이다. 대금업이 금지되던 시절, 메디치를 포 함한 개인 은행들이 재량예금이라는 말을 고안해 냈다(7장 참조). 정해 진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재량적으로 준다는 점을 표시하기 위해 '재량'이라는 말을 붙였고, 은행은 단순히 돈을 보관하는 것이라 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예치(라틴어로 depositum)'라는 단어를 고른것이다. 다만 예치된 물건은 은행이 소비할 수 있어야 하므로 '소비임치계약'이라는 속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했다.
그런데 1515년 교황이 연 5퍼센트 이하의 이자 수취를 허용한 데 이어서 1545년 영국이 그 상한을 10퍼센트로 인상하면서 기독교 세 계에서 이자 수취가 합법화되었다. 그러면서 재량예금이라는 부자연 스러운 이름이 사라지고 고정금리를 지급하는 '예금'이라는 말로 대 체되었다. 예금이 소비임치계약임을 강조할 이유도 사라졌다.
- 1811년 영국의 판례를 시작으로 관습법을 따르는 나라에서는 예 금거래를 통해 고객이 맡긴 돈의 주인은 은행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 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예금은 소비임치계약'이라는 점을 유독 강조한 다. 이자 수취가 금지되던 시절 대금업자들의 선전술이 남긴 유산임 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금과 채권(은행채)의 차이를 유난스레 강조한다.
그렇다면 예금은 무엇인가? 금본위제도 시대에는 예금의 개념이 분명했다. 고객이 상업은행에,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겨둔 금화 가 예금이었다. 화폐(금화)와 예금이라는 개념이 중앙은행보다 선행 했다.
그러나 불태환제도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앙은행이 있어야 화폐가 발행되므로 중앙은행이 화폐를 선행한다. 중앙은행은 지급준비율과 함께 지급준비의무의 적용대상(예금)을 정한다. 예금이 무엇인지는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들이 취급하는 수많은 금융상품 중에서 어디까지를 예금으로 보고 지급준비의무를 적용하느냐를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그 판단을 중앙은행에 맡긴다. 지급결 제 업무는 통화정책 운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각국 중앙은 행들은 예금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설정하고 낮은 수준의 지급준비율 을 적용한다. 예외를 적게 만들어야 빠져나갈 구멍이 줄어들기 때문 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정기예금과 채권(은행)을 구별하지 않고 동 일하게 지급준비의무를 부과한다.
-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이 예금의 범위를 정하는 것을 허 락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예금의 범위를 넓히면 상업은행들의 지급 준비의무 부담이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극히 통화주의적 발상 이다. 통화주의적 관점에서는 지급준비제도를 규제 차원에서만 본다. 그래서 '지급준비세(reserve tax)'라는 말이 생겼다.
상업은행들은 지급준비금이 있으므로 지급결제 업무를 수행한다. 평소 중앙은행과 예금거래를 하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대출도 받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들이 스스로 상 업은행으로 전환한 뒤 지급준비의무를 흔쾌히 부담한 이유는 중앙은 행과의 예금거래가 투자은행(증권사)가 누릴 수 없는 특혜이자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급준비의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 지급준비의무 적용대상을 넓히기 위 해 한국은행법 개정 방안이 논의될 때 정부는 물론 은행 노조까지 나 서서 반대했다.
금융위원회는 지급준비의무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를 남발한다. 외 국이라면 예금에 해당하여 지급준비의무가 적용되는 공탁금, 주식청 약증거금, 신탁계정차, 콜머니, 환매조건부채권매매 등을 희한한 이 름으로 분류하여 지급준비의무를 배제한다. 결국 한국은행의 통화정 책이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애써 외면한다. 은행업의 기본인 예금에 대한 인식이 이러하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 원회가 과연 은행업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 도 공무원보다 은행업을 잘 안다고 하기 어렵다.
- 네덜란드 경제학자 부이터Buiter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이제 중앙은행들이 최종대부자를 넘어서 '최종 시장조성자(last resort of market maker)'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행만 살릴 것이 아니라 금융시 장 전체를 살리라는 주문이다. 정부도 감당할 수 없는 숙제를 중앙은 행에 맡기면서 은행들에만 특혜를 베풀지 말고 온 국민에게 혜택을 확대하라고 주문한다. 과연 옳은 말일까?
중앙은행이 지켜야 할 도덕률이 위기 때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도 논란이 되기 충분하다. 이제 상당수 선진국 중앙은행들 이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한다. 그러다 보니 금융자산의 가격이 폭락하고 있는데도 은행들은 기업들을 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 히 앉아 중앙은행에 거액의 지급준비금을 묵혀 두면서 이자만 받는 다. 21세기 '3-6-3 룰'이라고나 할까?
- 그 결과 주요국에서는 돈이 잘 돌지 않는 가운데 초과유동성만 넘 쳐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실물경제는 엉망인데도 은행의 영업이익 은 엄청나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배당을 억제하고 은행원의 급여와 보너스 수준까지 통제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런 모습에서 시민들은 분노하지만 은행들은 태연하다. 그리고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서 공공연히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 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렇게 비양심적인 은행들 이 위기에 처했을 때 세제 혜택과 발권력을 동원해서 살려둔 것은 정 부와 중앙은행의 잘못일까?
- 경제학이 세속 철학인 이유
이렇게 케인스는 떠났지만, 케인스가 흔들어 놓은 경제학의 정체성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경제학 은 규범과학인가, 실증과학인가? 경제학은 법학, 수학, 철학과 같은 선험적·연역적 학문인가, 의학, 생물학과 같은 경험적·귀납적 학문인 가? 경제 제도와 원칙을 정해두고 그에 따라 정책을 운용해야 하는가, 달라진 현실에 맞추어 제도와 규범을 그때그때 바꿔야 하는가? 경제 학은 객관적 실체를 다루는 학문인가, 주관적 가치를 다루는 학문인가? 경제 체제의 위기 관리는 수리모형이 동반되는 과학인가, 직관이 동원되는 예술인가?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문의 정체성을 넘어 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정체성 문제로 이어진다. 다른 학자들에 비해서 경제학자들은 도대체 심지가 없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할 때 환율 안정의 중요성을 입 모아 칭송하던 경제학자들은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금태환 중단을 선언하자 "그것도 옳다"면서 일제히 변동환율제도의 장점과 가능성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온 갖 계량 분석을 통해 환율의 안정성은 포기하더라도 자유로운 자본 이동은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을 수없이 내놓았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브라질식의 자본 통제나 토빈세Tobin's tax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속출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모습은 더욱 황당하다. 후진국들이 경제 위기를 맞았을 때는 절약과 긴축을 강조하던 IMF는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선진국들의 재정 확대와 금리 인하를 바람직하 다고 두둔했다.
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서 후진국들이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절약과 긴축을 강조하던 학자(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요즈음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충고한다. 얼마 전까지 세계 경제 가 구조적 장기침체를 맞았다고 비관론을 설파하던 학자(로렌스 서머 스)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돌변하여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하기 바쁘다. 이것이 미국식 주류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현주소다. 케 인스의 말대로 “사실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는 말로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울 정도로 경박해 보인다.
이렇게 엉성하고 천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경제학과 경제학자 들을 향해 더 가혹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경제학은 도대체 원칙과 영 혼이 존재하는 학문인가, 시류에 따라 지배자의 논리만 대변하는 시들의 궤변인가? 엄격한 법률가 존 애덤스가 살아 있다면,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학문의 법정에 설 것인가, 거부할 것인 가? "저는 사실이 달라지면, 생각을 바꿉니다. 선생님은 어떠십니까?"라는 케인스의 발 빠른 사상 전향은 학문의 법정에서 통할 수 있을까?
젊었을 때는 자유무역과 자유방임을 주장하다가 늙어서는 관세청장 에 올라 세금을 걷었던 '도덕철학 교수' 애덤 스미스의 이율배반성(경 제학에서는 이럴 때 '동태적 비일관성'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에둘러 말한다)은 진리의 법정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 것인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는 정부의 개입이 강조되는 케인스 시대로 다시 접어들었다. 하지만 2010년 유럽의 재정 위기와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같은 일을 고려하면, 정통 케인스주의가 통하 기도 어려워 보인다. 한마디로 케인스가 한바탕 체질을 바꿔놓은 제학은 지금 좌표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오죽하면 정치인들이 현대 화폐이론(MMT)을,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탈중앙화 금융(DeFi)을 시끄 럽게 떠드는데, 경제학자들은 이렇다 할 설명과 반론을 내놓지 못하 겠는가!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자 미국 가난한 유럽  (3) 2024.05.01
경제학자가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1) 2024.04.10
더 플로  (0) 2024.02.19
20년차 신부장의 경제지표 이야기  (3) 2024.02.04
경제전쟁의 흑역사  (1) 2024.02.04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