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전쟁

경영 2023. 9. 7. 13:56

- 실제로 중국에는 산업계와 소비자들을 위한 전반적 체계가 이미 마 련되어 있다. 리튬과 기타 핵심 자원들을 채굴하고, 화학물질로 가공하 며, 부품으로 만들고, 자국 내에서 생산된 배터리에 설치하는 모든 단계 가 중국 국경선을 넘지 않고 이루어진다. 이렇게 완성된 배터리들은 아 마 외국인은 들어본 적도 없을 여러 전기자동차 브랜드에 공급된다. 중 국의 배터리 산업을 지켜보며 가장 감탄하게 되는 사실은 정부가 대부 분의 생산공정을 면밀하게 감시해 EU의 중앙 집중식 시장에서도 경험 하기 어려운 수준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다양한 고객층에 맞춘 다종의 전기자동차 중 하나를 골라 구매하면 도시 밖에서라도 쉽게 충전소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한 해에만 매일 새로운 전기자동차 충전소 1000개가 설치되었다('충전기'가 아니라 '충전소'다. '12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차종과 사용 강도에 따라 5년에서 8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13 중국에서는 새 배터리 에 돈을 낭비하는 대신 기존 배터리를 재생하는 새로운 사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나라의 법은 배터리의 수명이 다하면 반드시 재활용해 야 한다고 규정한다. 중국은 이미 자국 내에서 발생한 것들뿐 아니라, 수입한 폐배터리들을 가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규모의 재활용 시설 을 보유하고 있다.
- 중국 자동차 산업은 중국식 자본주의의 전형이라 할 만한 경로를 따 라 발전해 왔다. 먼저 공산당이 거시경제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특 정 산업 분야를 발전시켜야 할 전략적 필요성을 인식한다. 지식 이전이 필요하다면 강제성과 인센티브를 섞은 법률을 마련한다. 노하우를 확 보하게 되면 보조금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시장의 주요 참 가자 중 너무 많은 수가 국가 소유거나, 경영자들의 정치적 관계, 또는 정부의 자금 지원으로 공산당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특정 기 업을 국가가 장려하는 산업에 참여시키는 결정은 단순히 경제적 계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 세계 어디에서든 거대 기업들은 내부 수익률뿐 아니라 기회비용과 기회이익까지 따져서 새 프로젝트를 평가한다. 하지만 아메리칸드림과 달리 중국몽中國)은 시진핑이 지적했듯이 공동의 것이고, 국유기업의 경영자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자국의 꿈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 정부의 비전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며 국가경제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 경제 발전에 대한 이런 하향식 접근법은 자연스레 과잉 설비와 시장의 거품으로 이어지고 종종 상품 품질 저하를 부르기도 한다. 중국의 전기 자동차와 배터리, 리튬 산업도 이런 문제들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신에너지 혁명
전기자전거가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격한 중국 정부는 일찌감 치 전기자동차 산업의 발전에 베팅하려 혈안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는 많았다. 이 나라에서 전기자동차 산업이 발전한다면 도시의 오염을 줄 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이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영역은 채굴과 화학 처리에 서 시작되겠지만, 리튬 이온 배터리나 자율주행 같은 신기술을 개발하 는 것도 포함할 터였다.
신에너지 혁명의 시작은 '863 계획'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3월 3일 중국의 물리학자 네 명이 덩샤오핑에게 편지를 보냈다. 왕다헝 과 왕간창, 양자, 천원은 원자력과 인공위성 활용을 포함하는 민군겸용 기술의 연구에서 명성을 쌓은 과학자들이었다. 덩샤오핑은 중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현대 중국의 건축가로 불린다. 서구에는 아마 중국의 경제특구 실험으로 가장 잘 알려졌을 것이다. 그 는 특별히 지정한 연안 지역에 시장경제와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임으로 써 중국에서 사실상 자본주의 실험을 벌였다. 선전을 비롯한 여러 도시 의 경제특구가 성공하면서 국가 경제 개혁의 길이 열렸다.
물리학자들은 편지에서 중국이 더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 으로 독립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 분야에서 첨단 기술의 발전을 이끌 국가기술연구발전계획國家高技術硏究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덩 샤오핑은 이 계획에 만족한 나머지 이틀 만에 승인한 다음, 공산당 동료 들에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지체 없이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알렸다.  많은 역사서가 이 계획이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이 제안했고, 이후 '스타워즈 계획'으로 불린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의 영향을 받았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서구 중심적인 관점으로, 863 계획과 전략방위구상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전략방 위구상은 특히 소련이 시도할 수 있는 핵 공격에서 미국을 보호하는 미 사일 방어 체계를 개발하는 계획이었다. 전략방위구상이 다양한 첨단 기술, 가령 레이저 무기처럼 환상적인 기술의 발전을 자극하고, 자금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내 첨단 기술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명확한 목적과 군사적 활용 방안은 따로 있었다.
- 바로 이것이 863 계획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863계획은 중국은 아직 발전 중인 나라고 따라서 과학적 노력을 분산할 수 없다고 인정하며 시 작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외부 세계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자금을 투입하고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소수의 핵심 분야가 존재한다고 선언 했다. 중국이 적당한 때에 아직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기 술 영역에 진입한다면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이었다. 이 최초의 계획에서 핵심 분야로 제시한 일곱 개 산업 중 신소 재와 에너지는 배터리 개발과 직접 관련이 있었다.
- 물론 중국 기업들도 배터리 산업에 진입하고자 했으나, 노하우와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비용이 문제였다. 일본처 럼 자동화된 생산라인을 마련하려면 1억 달러 이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안후이성 출신의 한 이상주의자는 상황을 다르게 보았다. 화 학과 재료공학을 전공했던 왕푸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배터리 산업에 진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신의 꿈을 키워라 build your dreams'라 는 영어 문장에서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딴 다음 중국어 발음으로 부른 '비야디'를 사명으로 정했다. 처음에는 일본산 배터리를 구매한 뒤 학계 에 있는 동료들과 분해하며 모방했다고 한다. 또한 배터리 기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의 특허를 찾아보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 서는 시내 중심가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가게마저 불법 복제된 영화와 음악, 책을 취급했다. 지적재산권법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팀원 들과 함께 상업용 배터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낸 왕푸는 자체 생산라인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는 값비싼 일본산 로봇을 인간으로 대 체했다. 왕찬푸가 사업을 시작했던 시기 중국은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의 인건비가 모두 저렴했다. 사실 일본에서도 생산라인의 일부 작업은 사람이 마무리해야 했다.
배터리 생산라인에서의 노동은 지루하고 건강에 해로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직률도 높았다. 하지만 일본산 배터리의 소매 단가가 8달러 이던 시절 왕푸의 회사에서 생산한 배터리의 단가는 3달러였고 그만 큼 잘 팔렸다.3 투입되는 자본의 측면에서나 운영비의 측면에서나 자동화된 생산라인보다 인간의 저렴한 노동력이 더 효율적이었다. 오늘 날의 독자들은 비야디의 시작을 접하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인간적이 지 못한 노동관행을 개탄하며 산업 혁명기의 영국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자수성가한 비야디의 창업자는 오늘날 중국의 우상이자 신에너지 혁명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 리고 비야디는 워런 버핏이 대주주 중 한 명인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 업으로 성장했다.
- 일본산 배터리를 분해해 모방하고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것만으로는 비야디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끊임없이 변신하며 막대한 수요에 편 승하는 능력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자그마한 주택에서 휴대전화용 배 터리를 생산하며 초라하게 시작한 이 회사는 중국 3대 자동차 생산업 체 중 하나로 성장했다. 서구에서도 비야디의 성공에 주목했다. 2010년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 Bloomberg Business Week》는 연구개발에 수십억 달 러를 쓰는 비야디를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8위로 꼽았다. 몇십 년간 같은 업계에서 군림해온 포드, 폭스바겐보다 높은 순위였다.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하는 인접 영역, 또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 방향을 과감히 트는 능력은 중국 기업가들의 특징이다. 서구의 경영대학원에서는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전문화와 핵심 역량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다. 중국식 접근법은 더 실용적이다. 모든 것을 아예 바닥 부터 새로 배워야 하고 초기 생산품의 품질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수 요가 있는 시장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배터리 물질 생산 업체 중 하나인 녕 파삼삼이 있다. 2006년만 해도 이 회사의 매출 중 93퍼센트가 의 류 판매에서 나왔다. 녕파삼삼이 처음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자본을 축적한 분야는 남성복, 특히 신사복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녕파삼삼 은 매출의 75퍼센트를 배터리 물질에서 만들어냈다!
- 간단히 설명하면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양극재 는 LFP, 니켈· 망가니즈·코발트 Nickel Manganese Cobalt, NMC, 니켈·코발트·알 루미늄 Nickel Cobalt Aluminium, NCA, 리튬 코발트 산화물 Lithium Cobalt Oxide, LCO' 이다. 전기자동차와 다목적 에너지 저장 시설을 위한 대형 배터리 시장 에서는 여전히 NMC 양극재와 LFP 양극재가 점유율 싸움을 벌이고 있 다.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언급하겠지만, 두 양극재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지난 2~3년간 적어도 전기자동차 분야에서는 대체로 성능이 뛰어난 NMC 양극재가 승리를 거두는 듯했다. 하지만 특히 비야디가 관 련 연구를 주도한 결과 LFP 양극재 또한 꾸준히 개선되었다. 이 회사가 LFP 양극재에 감상적인 애착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저렴하고 안전한 대안이어서 힘을 실을 뿐이다. LFP 양극재에는 비싸고 가격 변동성이 큰 코발트가 들어가지 않는다. 이는 코발트 채굴의 부정적인 영향 을 알고 있는 고객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가격에 민감한 신흥 시장의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이점이 된다.
비야디는 F3DM의 후속작이자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조에서 이름 을 딴 '친'으로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첫 번째 성공을 거뒀다. 2016년 친 의 판매량은 5만 대를 넘어섰다. 14 처음 출시된 후 2년간은 중국에서 가 장 잘 팔리는 전기자동차였다. 이 모델도 LFP 양극재를 사용했는데, 에 너지 밀도가 더 높은 새로운 버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친조차 사실 배터리만으로는 70킬로미터밖에 가지 못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였다. 온전히 전기로만 구동되는 '친 EV300'은 하이브리 드 모델이 출시되고 3년이 지난 2016년 3월에야 공개되었다. 이 모델은 300킬로미터의 주행거리를 자랑했는데, 보조금이 붙지 않은 원래 가격 이 3만6600달러부터 시작했다. 보조금이 적용되면 가격은 절반 정도 인 1만7000달러까지 떨어졌다. 친 EV300의 사례는 전기자동차 산업 을 순조롭게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중국 정부가 얼마나 많은 재정을 투 입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지원금을 제공한 나라 는 독일인데, 2020년에야 관련 계획이 발표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 후의 부양책이기도 했던 이 계획은 전기자동차 구매 시 최대 9000유로를 지원한다고 내세웠는데, 중국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었다.
- 중국은 배터리 산업의 호황을 밀어붙이기 위해 리튬이 필요했다. 리 튬은 어떠한 종류의 양극재든, 즉 LFP 양극재든 NMC 양극재든 NCA 양극재든 LCO 양극재든 반드시 들어가는 유일한 금속이다. 다른 금 속들은 양극재의 종류에 따라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니켈은 NCA 양극재와 NMC 양극재에는 들어가지만, LCO 양극재와 LFP 양극재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코발트도 LCO 양극재, NMC 양극재, NCA 양극재에는 쓰이지만, LFP 양극재에는 쓰이지 않 는다. 하지만 리튬은 모든 양극재에 들어가고, 심지어 음극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사실 1950년대에는 중국의 산업이 그리 발전하지 않았던 탓에 리튬 처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산업에 사용되는 광물의 수요가 많지 않았 다. 리튬과 다른 희소금속들은 단지 소련에서 빌린 돈을 갚는 수단이었 다. 중국은 이들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커커투오하이 광산을 노천광 산으로 바꿨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1956년에는 전해의 두 배에 달하 는 1만6600톤의 리튬을 소련에 수출할 수 있었다.30 또한 커커투오하이 광산에서는 베릴륨보다 리튬을 중점적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1950년부 터 1962년까지 이 광산에서 소련으로 운송된 리튬은 10만 톤에 달했는 데, 베릴륨은 3만4000톤에 그쳤다.
당시 커커투오하이 광산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리튬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리튬은 주로 유리와 도자기 생산에 쓰였다. 유리 생산에 투입된 리튬 중 70퍼센트는 급격히 발전한 텔레비전과 전자 산업에서 소비되었다. 같은 기간 소련에서는 텔레비전 을 향한 열기가 점차 사그라졌다. 물론 소련의 모든 가정에 텔레비전이 놓이기까지 커커투오하이 광산의 리튬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58년 에는 신장의 우루무치에 중국 최초의 리튬 가공 시설인 115공장 이 문을 열었다. 이 공장은 중국에서 채굴한 스포듀민을 산화리튬 lithium oxide"이나 리튬염 lithium salt "처럼 부가가치가 더 높은 제품으로 가공했다. 첨단 기술뿐 아니라 핵무기 관련 기술에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었 다. 리튬은 신장 지역 내 고속도로와 창고 시설 개발에도 불을 지폈다. 1960년대 초 신장의 석유를 내륙으로 옮기기 위해 건설된 란저우신 장철도는 미래에 각종 금속을 운반할 길이 될 운명이었다. 지방 지역의 산업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던 대약진운동은 국유기업인 중국비철 금속공업中國有色金에 특히 신장 지부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1960년 이 되자 신장 지부가 고용한 인력만 초창기의 여섯 배인 2만 4000명까지 늘어났다. 
- 소련에서 흘러오던 차관은 1960년대 초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소 련과 중국은 이데올로기적 이유와 실용적 이유 모두에서 멀어지고 있 었다. 시작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 것이었는데, 마오쩌둥은 블라디미르 레닌과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에서 벗어나려 는 소련의 움직임을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그사이 소련이 인도와 밀접 한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의 권내 지배력이 약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 로 미국이 공산주의자들에게서 타이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핵무기 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협박한 제1차 타이완해협 위기가 벌어졌다. 이런 이유들로 중국은 1955년부터 핵무기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다.
- 중국 최초의 핵 시설은 신장에서 시작되는 철도의 종착지인 란저우 와 희토류 매장량이 많다고 알려진 바오터우에 건설되었다. 리튬은 중국의 핵무장 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리튬의 동위원소 인리 튬-6은 수소폭탄의 핵심 재료다. 이 동위원소는 중성자와 반응해 핵무 기에서 가장 중요한 열핵 재료인 트리튬tritium, 즉 삼중수소가 된다. 트리튬이 중수소인 듀테륨 deuterium과 결합하면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열핵폭발을 일으킨다.
핵무기 경쟁에서 리튬이 중요해지자 커커투오하이 광산의 채굴 할 당량도 바뀌었다. 1963년부터 공식적으로 이 광산은 소련의 차관을 상 환하는 데 사용되던 베릴륨 대신 중국 핵무장 계획의 핵심인 리튬 채굴 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북한이 2016년 함흥 근처에 지은 시 설에서 과잉 생산된 리튬-6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려 한다는 정보를 바 탕으로 핵무기 개발 상황을 가늠하기도 했다.33
중국의 핵무장 계획에 신장의 자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되고 석유 생산지로서의 중요성까지 더해지면서 1960년대 내내 이 지역에 보안시설과 병력이 증가했다. 광산 도시가 확장되면서 지역 내 한족 인구도 증가했다. 높아진 경제 수준과 인구 구성의 변화 모두 위구르족과 중국인 사이의 긴장감을 높이는 촉매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만 배터리 산업의 호황이 시작되기 전까지 적어도 리튬에 한해서는 크게 특별한 것 없는 세월이 이어졌다. 그때까지 리튬은 유리, 도자기, 알루미늄, 에 어컨 산업에서 쓰일 뿐이었다.
신장 외에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리튬 매장량이 많은 두 지역에서 채굴이 시작되었다. 바다와 가깝지만 육지로 둘러싸여 있고 빈곤한 장시성 그리고 티베트와의 경계에 자리한 쓰촨성이었다. 국유 광산과 가공시설이 들어섰고, 오늘날 시장을 주도하는 리튬 생산 업체 두 곳이 탄생했다. 바로 간펑리튬讀鋒鉀과 톈치리튬天齊鋥業이다. 
- 시장, 특히 성장하는 시장은 공백을 용납하지 않는다. 수요가 아주 많은 신산업에는 승자독식의 사고방식이 만연하다. 미국 기업들이 공 유하는 비전을 처음 제시한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 이야 기에서도 이러한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록 펠러가 젊었던 19세기 후반에 석유산업은 막 개발이 시작된 참이었다. 당시 석유를 주로 활용했던 곳은 궁극적으로 이 산업의 성장을 불러온 분야(내연기관차)가 아니었다. 그때는 석유를 대개 등유의 형태로, 오염 은 덜하고 더 밝은 조명의 연료로 썼다. 비슷하게 1994년에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리튬의 7퍼센트만이 배터리 생산에 소비되었고, 도자기와 유 리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양이 투입되었다. 19 록펠러는 수직적 통합을 통해 재빨리 초기 석유 산업을 독점했고, 스탠더드오일이 생산부터 운 송까지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도록 가치 사슬 전반에서 투자와 인수를 감행했다. 이렇게 비용을 낮춘 스탠더드오일은 경쟁사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석유를 판매할 수 있었다.
간펑리튬뿐 아니라 다음 장에서 이야기할 톈치리튬을 비롯한 중국 리튬 업계의 주요 기업들이 구사하는 전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업 정 보를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인 링크드인 LinkedIn에 게시된 간펑리튬의 소 개글은 다음과 같다. “우리 회사는 상류의 리튬 채굴부터 중류의 리튬 화합물 생산, 하류의 리튬 기반 배터리 제조와 재활용까지 가치 사슬의 주요 단계를 따라 운영되는 수직적으로 통합된 사업 모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20 리량빈의 말을 빌리면, 간펑리튬의 접근 방식은 항상 단계 별 전략을 따르면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 지방 소도시의 가족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비결 이다.
- 오늘날 비정제 리튬의 최대 생산국인 오스트레일리아를 보면, 리튬 산업에 뛰어든 후 몇 년간은 자국 내 가공 시설이 충분치 않아 광석 형 태의 상품을 중국으로 수출했다. 일반적으로 경암 퇴적층이나 염 호퇴적층에서 이뤄지는 채굴 작업은 그 자체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전체 가공 과정에서는 가장 쉬운 단계다. 더 어려운 단계가 남아 있고, 가치 사슬의 위로 올라갈수록 화학적으로 더 까다로운 작업 이 진행된다. 물론 단계가 진행될수록 가격은 높아진다. 실제로 가공시 설이 건설되자 오스트레일리아의 리튬 생산 업체들은 바로 중국으로의 광석 수출을 중단했다. 대신 리튬을 농축한 형태인 정광으로 가공해 판 매했다. 이러한 정광은 대개 산화리튬을 6퍼센트 정도 포함한다.  여 전히 농도가 그리 높지 않지만, 적어도 광석의 두 배에 달하므로 비용 면에서 완전히 합리적이다.
- 이런 배경을 알게 되면 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리튬을 더 가공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리튬 생산 업체들도 이 방향 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 같지만 힘겨운 여정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함정 이 숨어 있다. 채굴 공정을 개선하는 것보다 산화리튬을 6퍼센트 포함 한 리튬정광을 순도 99.5퍼센트 이상의 배터리 등급 리튬 화합물로 변 환하는 설비를 건설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고 해도, 이런 화학 처리 단계로 나아가려면 엄청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최종 생산품의 리튬 함유량을 높이는 동시에 배터리의 핵심 요소인 양극재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마그네슘, 포타슘potassium, 소듐sodium"의 불순물 수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전기자동차 생산 업체들이 간절히 원하는 수준 의 배터리 등급 리튬 화합물을 얻거나,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산 업 폐기물을 얻는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질이 떨어지는 리튬 화합물이 라도 일단 가공해 낼 설비만 있다면, 유리나 도자기 생산업체에 판매하거나, 자체 시설과 엔지니어, 노하우가 있어서 배터리 등급으로 가공할 수 있는 중국 협력사에 넘길 수도 있다.
간펑리튬은 첫 단계의 가공을 마친 리튬을 사들여 전기자동차 배터 리 생산 업체에 판매할 수 있도록 추가 가공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리 튬에 대한 접근성'이 시간적 의미까지 포함하는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이 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고품질 리튬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 는지, 아니면 (전기자동차 판매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향후 5년에 서 10년간 채굴될 리튬 중 자신들이 확보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 다고 생각하는지다. 좋은 시절을 만난 기업이 최대한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에는 경쟁이 더욱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는 신생 분야들이 흔히 그렇듯 이 업계에서도 일찍 일어 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 간펑리튬은 이 책을 쓰는 현재 스포듀민과 리튬을 함유한 염수 및 점토 등 세계적으로 일곱 곳에 분포한 리튬 자원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 다. 오늘날 대부분의 리튬은 스포듀민에서 생산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은 달랐다. 원래 스포듀민은 유리나 도자기 생산에 주로 활용되었다.  유리 산업에서는 유리의 강도를 높이거나 끓는점을 낮춰 에너 지를 절약하고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게 한다. 도자기 산업에서는 대표 적으로 인덕션의 검은색 표면을 이루는 유리와 세라믹의 복합 재료를 만드는 데 쓰인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수요가 증가하면서 스포듀 민 채굴을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고, 가공 산업이라는 새로운 영 역이 대규모로 생겨났다. 스포듀민 가공시설은 대부분 중국에 있다. 몇 몇 시설은 다른 산업에서 경험을 쌓은 사업가들이 수익을 창출할 새로 운 기회를 찾아 건설한 것이다. 이 시설 중 다수가 무질서하게 확산하는 전기자동차산업을 상대한다는 구상을 품고 만들어졌지만, 전기자전거 나 덜 알려진 브랜드의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저품질 리튬을 판매하는 데 그쳤다. 고품질 리튬의 생산은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운 도전으로 판명되었다.

- 사실 유럽 기업들보다 먼저 유럽에 자리 잡고 전기자동차 산업이 태 동한 초기부터 이익을 낸 것은 한국인들이었다. 2015년 LG화학은 유 럽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하고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law 근처의 부 지를 노렸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와 가깝다는 점, 독일과 비교해 생산 비용이 낮다는 점, LG가 오래전부터 폴란드에 진출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랍지 않은 선택이었다. LG는 폴란드가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급격히 변화하던 광란의 시대에 논란의 기업 아트-비Art-B"와거 래하며 이 나라에 등장했다. 당시 20대에 불과했던 아트-비의 창업자 들은 현대자동차와 컨테이너선 두 척 분량인 차량 5만 대를 수입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회의 중 신용카드 한 장으로 대금을 결제해 한국 재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LG화학의 배터리 공장은 2018년부터 가동되었고,  유럽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전기자동차 배터리 생산 업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는 2021년 가동을 시작했다. LG화학의 주요 경쟁자 인 삼성SDI도 헝가리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해 2018년 가동을 시작했 지만, EU의 반독점 규제 기관이 이곳에 1억 800만 유로를 지원하려는 헝가리 정부의 계획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EU는 유럽 내 단일 시장의 경쟁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회원 국 정부가 제공하는 재정 지원을 불법으로 정의하고 있어, 헝가리의 계 획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EU는 일반적으로 보조금을 허용하지 않고, 회원국 정부는 EU 집행위원회의 승인이 있을 때만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즉 EU는 한편으로는 배터리 산업을 키우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에 선두권 생산 업체를 유치하고 (일자리와 조세수입 증 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관련 노하우를 익히며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구 체적인 우대책을 제안한 회원국을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 리튬이 조만간 칠레의 가장 중요한 금속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시장 가격 변동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구리가 칠레의 연간 수출액의 약 50퍼센트를 차지한다. 52 2018년 칠레의 리튬 수출액은 총 9억4900만 달러로,53 전체 수출액의 약 1.25퍼센트에 그쳤다. 하지만 언론에서 집중 조명하고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금속은 단연코 리튬이다. 현재 시장가격을 적용하면 칠레에 있는 리튬 900만 톤의 가치는 약 5260억 달러에 달한다. 2018년 칠레의 총수출액은 약 755억 달러였다. ' 같은 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수출액은 2945억 달러였고, 약 80퍼센트가 석 유에서 나왔다.
숫자가 너무 커지면 비교 대상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 리튬 생산 업체인 웰스미네랄스Wealth Minerals의 CEO 팀 맥커천Tim McCutcheon이 "칠 레는 본질적으로 '리튬의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했을 때 모든 투자자 가흥분했을 것이다.57 숫자는 종종 잘 만든 캐치프레이즈가 주는 흥분 을 빼앗아가지만, 보통 객관적 경제 상황을 더 잘 전달한다. 칠레 땅에 있는 리튬을 모두 파내 판매한다 해도 사우디아라비아가 3년간 수출한 석유의 가치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칠레가 리튬의 사우디아라비아일 지는 모르지만, 이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수는 없다. 비슷하게 리 튬이 칠레를 더 부유한 국가로 만들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리 틈만으로 이 나라가 부유해질 수는 없다.
- 국제적으로 칠레는 리튬 추출에 높은 비교 우위를 지니고 있다. 현재 수익을 보나 잠재적 미래 수익을 보나 리튬 추출은 칠레에서 가장 매력 적인 투자 기회이므로, 여기에 투자하면 잃을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배터리 공급망에서 칠레의 비교 우위가 얼 마나 확장되고 있는지, 또는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다. 현지에서 리튬 을 가공하는 산업도 이 나라에 비교우위를 선사할까. 아니면 가공은 아 시아 국가들에 맡겨두어야 할까. 그리고 배터리 부품은 누가 만들어야 할까.
가치 사슬의 높은 곳을 향한 칠레의 도전에 부정적인 이들은 배터리 등급으로 리튬을 가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강조하며, 칠레는 추 출에만 능하다고 설명한다. 이 나라는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염수 에서 고품질 리튬을 추출하는 특별한 노하우를 축적했다. 칠레의 리튬생산 업체들은 말 그대로 자원만 가지고 맨땅에서 시작했다. 기술자들은 염수에 함유된 리튬과 불순물의 양을 파악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했 다. 특히 추출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염을 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려면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가해 '잠든' 상태 로 염수에 가라앉아 있는 리튬 성분을 '깨워' 분리한다. 이때 투입하는 에너지와 반응물질의 양은 추출하려는 리튬의 양에 따라 대략 지수적으로 증가한다. 즉 에너지 집약적 과정이지만 적절한 환경에서는 무 척 친환경적이다. 아타카마염원처럼 가물고 화창한 지역에서는 리튬을 회수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70퍼센트 정도가 태양에서 나온다. 조 건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환경에 우호적이지 않은 수준까 지 떨어질 수 있다. 기온이 떨어지면 몇몇 과정에서 황산염 불순물을 분리하기가 더 쉬워지므로 기온의 변동 폭도 중요하다.100 리카도의 비교우위 이론에 따르면, 칠레만의 독특한 환경과 리튬의 좋은 품질은 추출 에 집중할 확실한 근거가 된다.
게다가 천혜의 환경을 갖춘 아타카마염원에서조차 염수에서 추출 하는 리튬의 비율은 약 60퍼센트밖에 되지 않아 개선할 여지가 많다.  배터리 공장을 짓는 대신 거기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업계 내부자 중에도 배터리 등급 리튬 화합물을 얻는 게 얼마나 복잡 한 일인지 과소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염수에서 탄산리튬 100킬로그램 을 얻으려면 약 1만5000킬로그램의 염수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최종 생산품 100킬로그램에 정화하지 않은 염수를 한 숟가락이라도 섞으면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 103 그렇게 적은 양으로도 판매 할 수 없는 제품이 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사고실험은 배터리 산업이 얼마나 엄격한 품질을 요구하는지 알려준다.
일반적인 배터리 등급 리튬 화합물의 순도는 99.5퍼센트지만, 업계 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순도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0.5퍼센트 의 잔여 물질 중 불순물의 수준을 미세 조정하는 기술에 배터리의 품질 이 달려 있다.  0.5퍼센트를 백만분율로 계산하면 5000피피엠 parts per million, ppm에 해당한다. 최종 소비자인 양극재 생산 업체는 배송된 리튬의 칼슘과 황산염의 농도가 각각 100피피엠과 200피피엠 이상이면, 또는 철이 5피피엠 이상이면 제품을 인도받지 않을 것이다.  5 피 피엠은 극도로 적은 양이다. 1리터의 물에 찻숟가락 하나만큼의 액체 를 섞고 다시 1000배로 희석한 것과 같다.
- 맞춤형 리튬 화합물의 생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극도로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크게 보면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리튬을 함유 한 염수를 여러 개의 연못에서 태양열로 증발시켜 농축한다. 증발 과정 에서 중간생성물인 염화리튬이 생기는데, 염화리튬에 소다회를 섞 으면 탄산리튬을 얻을 수 있다. 보통은 여기서 공정이 끝난다. 수산화리 튬을 얻고 싶다면 탄산리튬에 석회를 더해야 한다. 문제는 반응물질인 소다회와 석회를 염원에서 외떨어져 있는 가공 시설까지 운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데다가, 둘 다 상당한 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리튬 삼각지대 밖에서 반응물질을 수입하고 대금은 달러로 지급해야 하는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다.
- 다행히도 분쟁 광물을 둘러싼 쟁점이 점점 알려지고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재정적 위험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중요한 평판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애플이나 BMW 같은 기 업은 무형의 브랜드 가치가 회사 전체의 가치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 한다.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 인터브랜드 Interbrand는 BMW의 브랜드 가 치를 410억 달러로 평가했다. 이 자동차 생산 업체는 콩고산코발트와 거리를 두는 대신, 10 오스트레일리아와 모로코의 광산에서 코발트를 직 접 확보하려 한다. 안전한 동시에 영리한 전략으로, 이제 BMW는 "우리 는 콩고에서 벌어지는 아동노동이나 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까.
2019년 모로코에서 생산된 코발트는 전 세계 생산량의 1.5퍼센트에 불과하고 매장량은 콩고의 0.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 아에는 코발트가 훨씬 많아서 매장량이 콩고의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 로 추정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생산량은 모로코보다 두 배 많은 정도 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니켈과 구리 채굴의 부산물로 코발트를 생 산한다. 기술적·경제적·시간적 관점에서 볼 때 향후 10년간 오스트레 일리아가 주요 코발트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 따라서 BMW가 콩고산 코발트를 멀리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다른 기업들이 '일제히' 이러한 전략을 따를 수는 없다. 콩고 밖에는 그렇게 많은 코발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종의 사고실험으로 콩고를 대체할 나라가 존재한다고 해보자. 그렇더라도 콩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발트 가격이 GDP 성장률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나라다. IMF에 따르면 2017년 코발트 가격 이 급등하자 콩고의 GDP 성장률도 3.7퍼센트에서 5.8퍼센트로 뛰어올 랐다. 콩고의 총수출액에서 광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보통 80퍼센트에 달한다. 우리가 인구수에 비해 정부 예산이 극단적으로 적은 국가에 관 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은행의 자료를 바 탕으로 추산해 보면 콩고 정부의 예산으로는 매일 국민 한 명에게 겨우 2달러를 제공할 수 있다. 12 이런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기업 들이 윤리적인 이유를 대며 더는 콩고의 코발트를 사지 않는 것이 정말 좋은 생각일까.
콩고의 부패한 관료들이 코발트로 얻은 수입의 커다란 덩어리를 먹 어치우고 있을 게 분명하더라도, 기반시설이나 보건, 교육, 안보와 관 련된 기본 요구들은 (덩어리의 나머지로 형성된) 정부 예산을 통해서만 포괄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공급될 수 있다.
- 개발도상국만 환경을 오염시키는 석탄발전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첨단 기술의 요람인 일본은 배터리, 반도체, 로봇 공학, 특수 화합물, 첨단 소재에서 탁월한 성취를 자랑하는 나라지만, 여전히 이산 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약 3분의 1이 석탄 발전에서 나온다.  일본과 '검은 황금'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 1970년대까지 이 나라의 주요 에너지원은 석유였다. 그런데 OPEC이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한 국가들을 상대로 발효한 석유 금수조치의 대상이 된 후로 석탄이 핵심 에너지원이 되었다. 원자력발 전을 함께 활용했으나, 후쿠시마 참사로 그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 또 한 지형이 험해 태양전지판을 설치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해안 근처의 해저가 너무 깊어 해상풍력발전도 어려운 탓에 재생에너지 활용이 더 디다. 일본의 에너지원 구조가 조만간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실제 로 2025년까지 22개의 화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 자동차 엔진을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원흉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실 수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아도 사람들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하지만 함께 배기관을 빠져나오는 미세먼지나 이산화질소는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미세먼지는 코와 폐의 자연 방어 막을 쉽사리 통과한다. 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세계적 현상이고, 이 문 제를 해결하려면 온실가스의 배출 총량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개 인 건강의 차원에서는 당신 주위에 전기자동차가 많은지, 많지 않은지 가 실제로 무척 중요하다. 이산화질소는 하루 이상 공기 중에 머무르지 않지만, 멀리 이동하지도 않는다. 가장 작은 입자도 처음 배출된 곳에서 겨우 몇 미터밖에 퍼지지 않는다. 이러한 미세먼지는 휘발유나 디젤로 덮인 금속들을 혈액으로 운반해 암을 유발하고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 화시킨다.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 농도가 기준치보다 훨씬 높은 지역 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폐활량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전기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이 온난화를 멈추는 데 도움이 될지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해도 당신과 당신의 아이가 숨 쉬는 공기의 질을 높여줄 것은 분명하다.

-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여러 유형의 배터리에 들어가는 금속은 리 튬과 코발트뿐이 아니다. 흑연은 음극재를 만들 때 필요하며 니켈은 NCM 양극재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가 생산하는 전기자동차의 배터리에는 리튬보다 흑연과 니켈이 더 많이 들어가므로, '리튬 이온 배터리'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흑연과 니켈 시장은 배터리 생산을 위한 수요보다는 특 히 철강 생산을 위한 수요가 주도한다. 니켈은 강철의 강도와 인성靭性," 부식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준다. 흑연은 강의 보호제로 쓰이며 또한 용광로를 싸는 막으로도 활용된다. 배터리에 사용되는 니켈은 전 체 수요의 약 3퍼센트로 250만 톤 정도다. 45 따라서 흑연과 니켈을 채굴 하는 대부분의 기업에 배터리 산업은 새롭고 흥미로운 수요처지만, 더 큰 그림에서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흑연이나 니켈을 생산한다고 해서 배터리 산업에 자사의 제품을 무조건 공급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 를 복잡하게 만든다. 배터리에 필요한 것은 니켈 자체가 아니라 그가 공품 중 아주 최근까지도 틈새시장용 제품으로만 알려졌던 황산니켈 nickel sulfate이기 때문이다.
순위를 따져보자는 건 아니지만 흑연과 니켈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리튬이나 코발트산업을 넘어서는 듯하다. 연필심과 거의 같은 물질인 흑연은 탄소의 한 형태인데, 탄소와 관련된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지저분하다. 이론적으로 흑연에 엄청난 압력과 열을 가하면 만들 수 있다는 다이아몬드만 예외다. 흑연은 채굴로 얻기도 하고 인공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두 가지 방법으로 생산한 흑연 모두 배터리에 사용할 수 있지만, 채굴된 흑연이 훨씬 저렴해서 음극 활물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대개 이쪽을 선택한다.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든 흑연은 일 반적으로 두께가 얇은 조각 모양인데, 음극재에 사용하려면 형태를 다듬고 정제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그렇듯이 이후의 화학 처리 단계에 비하면 채굴 작업은 편하다고 할 수 있다.

- 일본의 재활용 산업은 2005년 전자기기 폐기물 10만톤을 처리했는 데, 오늘날에는 30만 톤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정부는 환경보호의 차 원을 넘어 수익성 있는 경제 분야로 성장하도록 이 산업을 지원하고 있 다. 오래된 회로 기판에서 금이나 은을 수확하거나 폐가전제품에서 구 리를 찾아내는 사업은 이미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다.
올림픽은 언제나 개최국의 힘을 보여주는 무대로 활용된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환경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한 첨단 기술보 유국의 이미지를 강화하려 했다. 이에 도요타는 전고체 배터리'로 움직 이는 전기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기술은 배터리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지만, 리튬이 더 많이 들어간다. 또한 지금까지 일본에서 보지 못한 규모의 자율주행차 들을 동원해 방문객들을 실어 나르려고도 했다. 한편 선수들에게 주어 지는 메달은 재활용된 금과 은, 구리로만 만들었다.
- 2019년 애플은 자사의 재활용 프로그램을 확장한다고 발표했다.17 이 회사는 아이폰 6만을 대상으로 한 선구적인 해체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한 후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폐기된 아이폰 6가 온전한 형태로 해 체라인에 놓이면 29대의 로봇이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움직이며 21단 계를 거쳐 분해한다. '데이지Daisy'라 불리는 이 해체라인은 이제 15종 의 아이폰을 시간당 200개씩 분해한다.
하지만 애플이 만든 데이지는 자사 제품만 속속들이 알고 재활용한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배터리가 들어가는 제품의 생산 업체에 재 활용 의무를 지운 중국 법이 합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배터리에 표준 화된 일련번호를 붙이는 것도 무척 유용하다. 미래의 로봇들이 자신들 의 불완전한 '시각에만 의존하는 대신 일련번호를 해독해 관련 정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배터리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면, 우리가 오랫동안 전기자동차 배터 리의 가격을 (배터리 수준에서) 킬로와트시당 100달러 이하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리튬을 이용한 일부 양 극재(가령 LFP)에서는 이런 목표가 달성되었으나, 35 니켈을 이용한 양 극재의 경우 가장 뛰어난 성능을 내는 배터리의 가격이 킬로와트시당 150달러 근처에 머물러 있다. 킬로와트시당 100달러라는 목표는 무척 중요하다. 이러한 가격대를 유지해야만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 오늘날 리튬 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전해질은 액체인데, 유기용제 와 리튬염, 각 요소의 바람직한 특성을 강화하는 첨가물로 구성된다. 이 화합물은 인화성이 대단히 강하지만, 이상적인 전해질에 요구되는 특성을 고루 만족하기에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온전도도ionic conductivity가 높고 전자는 전달하지 않으며, 양극재와 음극재에 반응하 지 않고 높은 전압을 잘 견디며, 가격이 저렴하고 안전하다. 사실 안전 성은 오늘날 사용되는 각종 전해질의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아킬레스 의 발뒤꿈치처럼 배터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따라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려는 동기는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리튬 기반의 음극재에서 피어나는 덴드라이트의 성장을 억제하고, 배터리의 안전성을 전반적으로 향상하기 위해서다. 고체 전해질로는 리튬 이온에 대해 높은 전도도를 보이는 세라믹 화합물이 가장 많이 거 론된다.
놀랍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도 덴드라이트의 성장을 막는 데는 실패 했다. 리튬처럼 부드러운 금속이 유리만큼 단단한 세라믹 화합물을 파 괴한다고 하면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겠지만,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 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방울은 바위를 뚫는다' 는 격언을 알고 있지 않나. 덴드라이트가 바로 그런 일을 해낸다. 부드 럽긴 하지만 엄청난 압력을 가해서 고체 전해질인 세라믹 화합물을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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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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