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학자 조지프 테인터를 비롯한 역사학자들은 로마가 노예 에너지에 의존하면서 약탈경제를 구축하게 되었다고 지적. "전쟁에서 진 사람들이 경제의 기반이 되고 나아가 노동력을 제공했다. 이것은 높은 경제적 수익을 내는 전략이었다." 로마제국에 에너지와 현금이 더 많이 필요해지자 예멘 시골 지역 농부들을 차출해 군인이 되도록 유도한 후 다른 나라를 로마에 복속시키라는 임무를 내렸따. 이런 농부들이 버리고 간 토지는 시골지주가 냉큼 집어삼켰고, 그렇게 확장된 사유지에 에너지원을 공급하기 위해 노예를 사들였다. 승리를 거둔 군대는 수만명의 노예를 데리고 로마로 돌아왔다. 드베이어와 들레아쥬, 에머리가 지적했듯이, "모든 군사적 모험은 도시 귀족의 재산을 불렸고, 민간경제에서는 노예 노동력의 절실함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여기저기서 더 많은 노예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결국 더 많은 전쟁이 벌어졌다."
- 프랑스의 귀족이자 사회평론가 토크빌은 1831년 미국을 방문했다가 노예제도가 사람들의 습관과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았다. 제조업을 하는 북부는 석탄과 자유민의 노동에 의존한 반면 남부는 노예의 에너지에서 부를 얻었다. 담배와 면화경작은 부단한 근력이 필요했다. 박식한 토크빌은 미국 남북전쟁 이전의 30년간 노예제도는 남부지역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는 걸 이해했다. 토크빌은 노예나 하인없이 자란 대다수 북부인은 "참을성 많고 생각이 깊고 인내심이 있으며 신중하고 불굴의 의지를 지닌"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급자족이 가능하며 진취적이라고 설명. 그에 반해 노예들은 남부인 대부분에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즉각적으로"공급해 주었다. 따라서 미국 남부사람들은 화려하고 장엄한 것을 선호하고, 평판을 중시했다. 또 여흥과 오락을 즐기고 무엇보다도 빈둥거리기를 좋아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할 이유가 없엇다. 북부인들이 부와 안위를 추구하는 일을 "마음의 즐거움이나 쾌락보다" 더 우위에 놓을 때, 남부인은 400만명 가까운 노예들이 제공하는 에너지를 통해 얻은 부를 군사게임, 여흥, 오락에 썼다. "남부인은 충동적으로 행동하곤 했다. 그래서 더 화통하고 더 솔직하며 더 재기발랄했다." 미국 북부인이 중산층의 장단점을 두루 갖추었다면, 남부인은 귀족계층의 편견과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노예제도는 백인들의 진취적 기상을 약화시켜버린 것이다.
- 인간노예제도의 질서를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를 소유해야만 했다. 비록 화석연료가 광범위한 자유와 지금껏 본 적 없는 유토피아을 약속했지만, 결국 우리에게 준 것은 영 딴판의 것들이었다. 끊임없이 연료를 소비하는 기계 노동자 무리는 복잡한 형태의 관리를 필요로 했고, 강력한 힘을 지닌 탄소중개인이라는 저돌적인 계층을 만들어냄. 우리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간 노예의 에너지대신 화석연료를 동력으로 삼는 노예를 부리게 되었다.
- 석유는 미국 자본주의의 말쑥한 얼굴을 달라지게 함. 검소한 침례교도로서 숫자를 다루는 재주가 비상한 회계담당자였던 존 록펠러는 석유를 이용해 미국 경제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킴. 그때부터 사업은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크게 한몫 잡는 일이 되었다. 석유로 인해 발생한 잉여자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험많고 박식한 록펠러는 골치아픈 석유시추사업 대신 등유를 정제해 운송 및 유통하는 일에 투자. 그리하여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으로 손꼽히는 스탠다드 오일을 세웠다. 록펠러는 단기간에 석유의 가장 훌륭한 속성, 즉 권력을 집중시키고 자본을 창출해내는 능력을 입증.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면서 록펠러는 몇가지 주요한 사업관행을 만들어감. 먼저 통계부서를 만들어 비용과 가격을 기록해서 지속적으로 관찰.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동안 돈과 숫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이사회는 매일 모였다. 또 표준규격에 맞춘 등유상품을 생산해냄으로써 죄없는 소비자가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리고 최대한 노출하기 않는다는 개인적 신념으로 업계에 비밀주의라는 관례를 전파. 록펠러는 서면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은 채 모든 경쟁자를 철저히 파멸시키는 데 전념.
- 록펠러가 독과점을 이루기 위해 동원했던 방법은 스파이, 뇌물, 왕따, 협박, 사보타지, 세금공제 등이었다. 유조선과 배럴 통을 비롯해 여러 사업부문에 들어가는 비용을 통제함으로써 구조적으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만듬. 독립 정유사업체가 합병을 거부하면 스탠다드 오일은 시장에서 등유가격을 떨어뜨려서 그 업체가 저가로 고통받게 함. 석유계의 거물 록펠러는 사우스 임프루먼트 컴퍼니 설립에 도움을 주었다. 이 회사는 은밀하게 철도기업과 리베이트 거래를 해서 다른 경쟁자들이 스탠다드 오일보다 2배 높은 등유 운송비용을 지불하게 했다. 스탠다드 오일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줘서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거나 방해하는 경쟁자를 손보게 만들었다. 1880년에 이르자 스탠다드 오일은 정유사업의 90%를 점유했고, 등유는 미국에서 네번째로 큰 규모의 수출품목이 되었으며, 심지어 중국에도 수출.
- 텍사스 역사학자 로저 올리엔과 다이애나 데이비즈 올리언은 세기말에 스탠다드 오일에 대한 거센 반발이 일어난 데에는 미국의 이상적인 남성상이 사라진다는 공포감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 제퍼슨이나 페인, 프랭클린 같은 연방제 공화국 설립자들이 마음속에 그렸던 나라는 태양과 근력, 노예로 운영되는 농경국가였고, 그 나라의 국민들은 독립심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야 했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지나친 부를 멀리하고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가치있게 생각하며 자급자족을 옹호하는 나라를 이상적으로 생각. 하지만 화석연료가 찬양하는 가치는 이와 달랐다. 석유와 석탄으로 움직이는 기계 노예는 규모를 키우고 집중시켜서 많이 일할수록 더 많은 이득을 냈다. 특히 석유는 벼락부자와 무위도식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석유산업의 발달로 인해 1860년 전체 인구의 88%에 달하던 자영업자수는 1910년 3분의 1로 감소. 경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이런 변화는 남성성에 있어 재앙이었다.
- 석유와 그 무생물 조력자는 1차대전과 마찬가지로 2차대전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 미국인들은 자국의 석유매장량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맹신했지만 석유수입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은 합성액체연료를 연구하고 미국에서 수입한 원유를 비축해두었다. 팽창주의를 표방하던 이 두나라는 석유부족이 자국의 정치, 경제적 야망을 제한하게 되리라는 것을 인식. 그래서 외국의 에너지를 입수하는 독특한 군사전략에 희망을 걸었다. 독일의 잠수함 U보트는 대서양에서 유저선을 침몰시켰고, 일본은 미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금수조치를 취하자 진주만 공습을 감행. 세계대전을 벌이는 동안 일본은 수백만명의 한국, 중국인 노동자를 강제징용했고, 나치는 동유럽과 소련에서 수백만명을 강제노동에 동원. 미국은 자국의 석유소비를 군사장비에 집중시켰다. 석유자원이 거의 없던 독일은 석탄액화 공장에 크게 의존. 사실 나치의 주요 군사전략인 전격전은 저렴한 석유를 공급받지 못한데서 시작. 노르웨이와 프랑스, 폴란드를 속전속결로 점령하면서 독일은 더 많은 석유를 확보. 하지만 이 전략은 러시아 대평원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해서 러시아 최대 석유생산지역 두곳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은 실패. 석탄으로 만든 저급 합성액체연료를 쓰는 독이르이 비행기는 고옥탄 연료를 사용하는 연합군의 비행기에 비해 기동성과 속도면에서 뒤떨어졌음. 결국 전쟁의 주도권 다툼은 얼마나 많은 전투용 기계노예를 동원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됨. 많은 양의 에너지를 잡아먹는 투기적 잠수함 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음. 양측은 잠수함대를 이용해서 서로의 석유공급을 차단하려 했다.
- 엔지니어겸 건축가이자 미래학자인 벅민스터 풀러는 40년대 초반에 에너지 노예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 미국과 영국 군대에서 모으는 에너지 통계자료를 취합해 살펴본 풀러는 놀라운 결론을 내렸다. 1810년, 미국인구는 100만가구와 100만 노예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1940년에 이르러 석탄과 석유를 태워 만들어내는 기계 에너지는 미국 시민 1인당 약 39명의 에너지 노예를 배당해 주었다.
- 1969년 풀러는 석유지질학자 프랑수아 드 샤데네데스에게 자연에서 석유 1갤런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달라고 요청. 혁신가인 풀러는 이 지질학자에게 광합성 비용 및 수백만년 동안 열과 압력으로 천천히 변형시켜서 원유를 만드는 비용까지 모두 계산하도록 요구. 드 사데네데스는 석유 1갤런 당 100만불 이상의 돈이 들 것이라 추산. 당시 풀러는 미국에 있는 일반적인 자동차 소유자가 매년 300갤런의 석유를 소모한다는 데 주목. 다시 말하면, 미국인 1명이 3억불 가치의 천연자본을 태우고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풀러는 이를 우주적 규모의 범죄라고 칭했다. 현재의 수입게 맞추어야지 저축을 고갈시켜서는 안된다는 걸 모두가 잘 알면서도 노예소유주들은 원래 양심의 가책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로부터 약 30년 후 생태학자 제프리 듀크스가 비슷한 연구를 함. 그는 운송수단에 사용되는 석유 1갤런을 대기 위해서는 선사시대에 땅에 묻힌 식물성 물질 98톤을 굴착하거나 퍼올려야 한다고 추정. 지금 몰고다니는 차량이나 SUV차를 32킬로 굴리기 위해 연료통에 40에이커 규모의 밀줄기며 뿌리까지 모두 넣고 다녀야 한다면 어떨까. 듀크스의 질문이다. 그는 97년에 미국에서 소모한 석탄과 석유의 양을 모두 더해본 뒤 탄소 97조 파운드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림. 이는 한해동안 전세계에서 경작하는 모든 식물의 400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다시 말해 미국 자동차 소유주가 부리는 에너지 노예들이 매일 태워없애는 화석연료만 계산해도 한해동안 지구상의 모든 땅과 바다에서 나는 식물의 양에 해당한다는 이야기.
- 인간노예 시스템과 휘발유를 기반으로 하는 노예 시스템의 공통점은 희귀해지면 무례하지 않게 사용한다는 점. 값사고 풍부한 물자는 업신여기면서 소비한다. 인간노예든 탄소기반 노예든 상관없이 모든 에너지 시스템은 편안한 생활과 편의를 위해 잉여에너지를 장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삶을 안락하게 하는 것을 끊임없이 공급받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사회는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그러다 노예 또는 석유가 지나치게 비싸졌을 때 이 피라미드는 허물어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값싼 석유노예가 희귀해지는 경험을 거의 못했다. 그래서 매일 석유를 함부로 낭비. 하지만 모든 지배적인 에너지 시스템은 관성적으로 성장해서 인지부조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선하고 매우 영리한 사람들조차 충격적인 행동을 합리화하는 상황이 빚어진다. 노예제도가 브라질을 생각없는 곳으로 만들었듯이,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기계들은 미국의 의사결정능력을 정지시키고 혁신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했다.
- 모든 에너지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의 의존적 성향과 예상치 못한 역학관계를 만들어낸다. 노예의 목에 쇠사슬을 씌우면 그 쇠사슬의 다른 끝이 우리의 목을 조인다.
- 단일한 곡물을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해서는 물을 끌어들이는 기술과 더불어 헌신적인 인간의 노력이 필요했다. 수많은 노예가 상당한 규모의 군대와 권위주의적 국가가 필요해따. 이런 활동을 통해 얻은 보상은 대체적으로 1%의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그런 식으로 농업혁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크게 변화시켰다. 미국 작가 리처드 메닝의 설명에 따르면 농업은 식량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부의 축적과 관련된 일이기도 했다. 이 새로운 에너지 혁명은 성역할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특히 쟁기를 사용해서 밀, 보리, 호밀 등을 수전농경으로 재배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육중한 근육과 폭발적 힘을 요구하는 도구는 남성의 체격에 유리. 쟁기로 땅을 개간하는 농업지역에서 남자들이 밭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가정을 돌보았다. 반면 순수한 에너지로 생각할 때 훨씬 더 우수한 접근방식이라 할 밭 경작지역에서의 성역할은 많이 달랐다. 괭이와 호미로 땅을 일구는 이 지역에서 여성들은 들에 나가 작물을 키우는 일을 훨씬 가치있게 생각했다. 눈여겨볼 사실은 그 지역의 후손들이 오늘날에도 수전농경을 하던 지역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양성평등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 정치나 노동계, 기업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의 비율도 훨씬 더 높다. 쟁기의 사용으로 인해 모계사회는 부계사회르 바뀌어 감.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전능한 모계 여신의 치세가 끝나고 수메르와 바빌론에서 우세했던 남신과 사제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 중국은 8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독특한 농업에너지 제국을 구축하고, 자연적 에너지 흐름을 이용해 1억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먹여살림. 태양에너지를 신중하게 통제해서 북쪽에는 수수와 밀을 집중적으로 기르고 남쪽에는 쌀을 기르는 방식. 인공적으로 땅을 물에 잠기게 하고 다모작을 하는 벼농사의 혁식은 평균적인 농가에서 산출하는 곡물의 양을 3배로 늘림. 세심하게 관리한 1평방마일(약 2.6제곱킬로미터) 면적의 농지에서 생산한 곡식은 225명의 농부를 먹여살렸다.
- 프랑스 에너지 역사학자 장 클라우드 드베르와 장폴 드레아주, 다이넬 에머리는 다음과 같이 언급. "중국이 장기적인 에너지 부족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에너지구조의 성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월등히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유례없이 역동적인 에너지 구조였다." 지속성 있는 태양에너지 기반 농업 덕분에 중국의 농부들은 자급자족하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의 성공은 세심하고 주의 깊은 다수의 경작자가 존재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식물생육을 위한 면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은 짐을 끄는 초식동물의 사용도 제한했다. 작물에서 얻은 식품열량이 작물을 경작하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한, 이 시스템은 번창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세기 1억명이던 중국의 인구가 18세기 5억명으로 늘어나면서 중국은 잇단 에너지쇼크를 경험. 그로 인해 경작지 및 열을 발생시키는 원자재인 목재가 고갈됨. 태양에너지를 식량으로 변환시키는 데 필요한 사람수가 늘자 작물에 의해 공급되는 잉여에너지는 당연히 감소. 정치불안과 불확실성이 만연하면서 중국은 유럽인들이 화석연료를 정복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암흑시대에 빠져들었다. 20세기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오래된 농업시스템에 기계로 작동하는 양수기와 과학적 농업방식, 특수한 품종을 도입하는 등 일대 개혁을 시도. 그러나 이런 개혁은 토양을 침식하고 산림을 심하게 훼손했으며 사막이 확대되는 데 일조. 오랜 세월동안 잘 보존되었던 중국 에너지 시스템의 기본구조는 70년대 이르러 농업이 산업화하고 도시화하면서 붕괴하기 시작. 그런 다음 화석 연료와 화학비료, 댐이 등장하면서 4억명의 농부는 터전을 잃고 쫓겨나게됨
- 현대 곡물은 이전에 경작된 품종보다 더 많은 탄수화물을 함유함. 이처럼 지나치게 많은 탄수화물은 비료가 질소 순환주기에 영향을 미쳤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신체의 인슐린 생산에 영향을 미침. 마른 사람들은 이런 탄수화물을 흡수해서 지방을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식량이 부족할 때 에너지를 생산. 하지만 뚱뚱한 사람들은 저장된 지방을 가져다 쓸 수 없음.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인슐린 분비가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 뚱뚱한 사람들이 뚱뚱한 이유는 과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뚱뚱하기 때문에 과식하는 것이다. 저탄수화물식인 전통적 식습관을 되찾으면 체중이 줄 뿐만 아니라 당뇨병과 같은 건강문제가 없어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 나무에서 과실을 딴 뒤 가장 신속하고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그 과실을 입에 집어넣는 것이다. 철도여행에 돈을 낭비하지 않는 이가 최고의 경제학자이다. 너무나 효율적이어서 조직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가 절대적 효율성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사람은 이상적인 단순화의 극치라고 볼 수 있지만, 단순화야말로 사과나무처럼 믿을 만한 방법이다. (G.K 체스터턴)
- 과거에는 경제사상이 에너지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세계 쵳초로 경제사상을 가르친 정식 교육기관은 중농주의자의 소유였다. 18세기 프랑스의 토지균분론자들과 철학자들은 토지를 모든 부의 원천으로 여겼음. 루이 15세의 주치의였던 프랑수에 케네는 태양에너지를 집약하는 농업이 이루어져야 경제가 지속될 수 있다고 믿었다. 케네는 프랑스 사회에서 잉여작물이 경제성장을 만들어낸다고 명쾌하게 지적하면서, 농부에게 부과하는 세금과 관세감면을 공개적으로 지지. 중농주의자들 역시 강수량, 재배, 부패, 계절의 변화 등 자연법칙과 물리법칙에 관한 지식이 경제학의 기초라고 생각. 케네는 농부 한명이 몇마리의 말과 소를 써야 하고 얼마만큼의 먹이를 먹여야하는지를 계산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다시 말해 에너지 입력이 부의 창출에 기여하는 바를 정리했던 것이다. 케네와 중농주의자들은 자연의 한계를 분명히 인지한 사회가 잘 먹고 잘 사는 경향이 있다는 데 주목. 그렇게 하지 못한 사회는 굶주렸다. 케네에게 모든 경제적 노력의 목적은 가능한 최소한의 경비를 지출해서 최대한의 만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종자의 경제학자들이 등장. 1776년 애덤스미스는 세계최초로 무생물 노예 소유주와 제조업자들을 위한 초대형 경제 베스트셀러인 국부론을 출간. 석탄 붐이 한창이던 당시, 스미스의 책은 경제적 진보가 사리사욕 추구와 분업, 자유무역이라는 세가지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 경제풍조를 정확하게 관찰하는 능력이 있던 스미스는 땅에서 얻은 원생산물 수출보다 제조업을 더 우위에 놓으면서, 공산품이야말로 새로운 부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대의 스미스 추종자들과 다르게 스미스 자신은 이데올로기 신봉자가 아니었다. 그는 생산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이해했고, 자연의 생식력이 부의 창출에 기여한다는 사실도 인정. 하지만 석탄의 열로 벼려서 만든 새로운 기계가 석탄의 열기를 동력으로 삼아 우리 문명이 태양계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든 방식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앗다. 그저 그 결과를 찬양하기에 급급.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위대한 사건은 돈을 벌어준다. 하지만 중농주의자들은 이 의견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페이르 사뮤엘 뒤퐁 느무르는 스미스의 추종자였다. 장 밥티스트에게 이런 글을 전했다. "그대는 경제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혀서 오직 부에 관한 학문으로만 바라보고 있소. 경제란, 자연법칙을 다루는 과학을 문명사회에 적용시킨 것이어야 하오" 스미스 이후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자들이 정계에 급속히 퍼짐. 과장되게 글을 쓰는 불행한 전통의 시조라 할 경제학자 리카도는 나라마다 가장 잘하는 일에 자본과 노동력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 리카르도는 대영제국의 번영과 새로운 유행이 된 산업화를 전제로 벤담, 밀 등 추종자들과 더불어 자본의 실용적 창출을 중시. 노동자 계급에게 좀더 많은 자본이 가야한다고 주장한 걸로 유명한 마르크스 등의 경제학자들은 노동을 중시. 하지만 애초 이같은 논쟁을 촉발시킨 에너지 흐름의 급속한 증가는 전통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거의 100년 동안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은 무생물 탄화수소 노예가 만들어낸 잉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싸움을 벌였다. 마치 상속유산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두고 다투는 형제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 40여년전 니콜라스 조지스쿠-로젠은 석탄과 석유의 형태로 물려받은 에너지를 이용해 얻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비용으로 사용되는 날이 오리라고 예견. "전쟁도구는 물론이고 자동차나 컨테이너 하나를 사용할 때마다 미래세대를 위한 쟁기날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미래를 살아갈 인구의 수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세상은 결국 태양에너지 흐름에 의존하는 형태로 회귀하고 길고긴 경기침체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측. 그리고 이런 곤경에 처하지 않기 위해 실천해야 할 여러가지를 제안.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인구를 서서히 감소시키는 것도 그 제안에 포함됨. 그는 기계대신 사람과 동물을 쓰는 유기농 농업을 통해 식량을 생산해야 한다고 믿었다. 또 낭비가 심한 에너지 사용습관과 낭비벽이 있는 기계장치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 내구성이 강하고 수선이 가능한,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일로 여가시간을 보낼게 아니라, 주변환경을 더 아름답게 하고 마음을 더 너그럽게 하고 머리를 더 신중하게 다듬는데 써야한다고...하지만 이 루마니아 사람은 이런 것들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인류는 어쩔수 없이 생긴대로 살다가 사라질 운명인지도 모른다. 에너지 위기는 인류의 현명함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간의 운명은 오랫동안 특별한 사건없이 식물인간처럼 존재하는 것보다는, 짧지만 강렬하고 흥미로우며 낭비벽이 심한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적 야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아메바류의 생물이라야 후손엑 햇빛 가득 담은 흙을 물려줄 수 있는 건 아닐까.
- CCS기술은 전형적인 거대과학적 사고방식. 그렇지 않아도 고에너지 사회인 마당에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 이른바 독립과학자들은 이를 두고 졸렬한 열역학 모조품이자 나쁜 공학이라 여김. 바츨하프 스밀은 배기가스를 줄이면 간단할 것을 왜 관리하려 하냐고 묻는다. "탄소격리 문제는 난제해결을 위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유용한 옵션이라고 무책임하게 묘사한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로테크 대안은 생각보다 많다. 스밀에 의하면 이런 대안에는 도심 자동차 사용금지와 연료가격 인상, 탄소세 부과, 공공 교통수단, 재생가능한 에너지 프로젝트, 열대우림 지역 보호 등이 있다. 더 적은 에너지와 비용, 그리고 적은 수의 과학자로도 배기가스를 크게 줄이는 방법들이다. 그러나 고대 로마에서 노예제도를 지지했듯이 거대과학은 에너지와 독점력을 강화시켜주는 도구를 옹호함. 미국의 비즈니스 분석가 그레고리 언러는 CCS기술을 또 다른 탄소잠금효과라 불렀다. 이것은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과학기술-사회제도 복합체에게 통상적인 일이다. CCS 기술은 현상유지를 강화하고 이론상으로 화석연료의 시대를 몇백년까지 연장시킬 것이다. 재생가능한 에너지 프로젝트와 달리 CCS기술은 다국적 석유기업이 과학기술과 노하우, 자본에 투자한 것들을 보존해 준다. 매립방법은 배기가스를 줄이지만 그와 동시에 이산화탄소 배출기간을 연장시킨다. 그리고 CCS기술은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 없이는 진행될 수 없기에 정부재원을 고갈시킨다. 그래서 내구성과 비용효과가 더 좋은 정책이 입안되는 걸 지연시키고, 자원을 유용해서 로테크 해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 현재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으로 세입의 30% 이상을 충당하는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30여개에 달함. 이런 국가에서 수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고위층드은 18세기 노예와 플랜테이션 농장 소유주보다 더 부유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로마의 노예보다 못한 음식을 먹고 지냄. 석유가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보여준 몇몇 국가에서도 석유 자산은 사회제도와 기본원칙을 잠식해 나갔다. 석유는 하나의 주인만을 섬긴다. 18세기 런던의 귀부인은 차에 설탕 한스푼을 첨가하는 것만으로도 유혈이 낭자하는 끔찍한 노예무역과 연관을 맺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휘발유를 구매하는 행위는 모든 자동차 운전자를 석유왕국과 오염된 상수도, 정치적 부채와 연계되게 만든다. 가공할 석유의 논리는 결국 다음과 같이 귀결된다고 테리 린 칼은 말했다. "한마디로 국민을 대변하는 유능한 주정부를 세운는 것보다 송유관을 놓는 편이 더 빠르고 쉽다는 것이다."
- 20세기 전반동안 에너지 전문가 대부분은 잉여물의 문제를 화제로 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1950년대 저술활동을 했던 사회학자 프레드 코트렐은 미국의 풍부한 잉여 때문에 국가가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코트렐에 따르면 고에너지의 열매를 따먹은 사회는 팽창하는 반면, 저에너지 토끼를 쫓는 사회는 퇴조한다. 길을 따라 걷다가 야생 블랙베리를 따먹은 사람은 자신이 소비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되돌려 받았다. 반면 80에이커의 들판에서 산토끼를 뒤쫓던 사람은 자신이 포집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열량을 태운다. 코트렐의 주장에 따르면 햇빛에 의존하는 저에너지 사회는 득실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산출 에너지보다 투입에너지가 더 많아져 에너지 적자가 생기고, 에너지의 빚을 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문화붕괴를 맞이하기 때문. 하지만 석유에 중독된 사회에서는 이런 사실을 발견하기가 무척 어려움. 석유가 너무 많은 잉여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너지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
- 1만년전 수렵채집인들은 석유로 환산했을 때 연간 1.5배럴에 달하는 에너지를 식물과 동무에서 수집. 기원전 100년경 중국의 농부들은 나무와 석탄을 활용해 1인당 연간 최대 석유 3배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확보. 하지만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이런 수치는 크게 바뀌기 시작. 1880년이 되었을 때 석탄과 증기 노예가 만들어주는 에너지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보통 사람이 연평균 석유 15배럴의 에너지를 사용하기에 이름.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 유럽인 한명이 연간 먹어치우는 에너지는 석유 26배럴이 되었다. 미국인들의 석유 식탐은 이보다 심했다. 소비 에너지의 40%를 석유에서 얻고 2%는 천연가스와 석탄에서 얻는 미국에서는, 한 사람이 신석기 시대 사냥꾼보다 매년 50배렬이나 많은 석유를 태워버리고 있다.
- 개인의 에너지 소비량이 연 7배럴 수준을 넘어서면 이후 에너지 소비량이 더 늘어난다고 해도 행복감이 별로 늘지 않음. 오히려 17배럴을 넘어선 다음부터는 보답으로 얻는 행복감이 급감. 스밀의 말을 빌리면 지금 북미 사람들이 낭비하는 에너지의 3분의 1만 있어도 낮은 유아사망률이나 건강한 식단, 높은 기대수명, 좋은 집을 얻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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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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