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하는 마음

인문 2022. 7. 30. 09:10

- 값비싼 신호는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창안한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 이는 사람들의 사치품 소비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개념이다. 누군가가 몸에 오렌지 잎을 문지르고 있다면 몸의 악 취를 없애기 위해 그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비싼 향수 를 뿌린다면 “나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사교 활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이렇게 비싼 향료로 품위를 높이고 있잖아요!"라 고 알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입하는 평범한 일상용품은 우리의 정체 성과 의도와 욕망과 열정을 드러내는 효과가 거의 없는 반면, 우리가 비싼 돈을 들여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곧바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우리는 사치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나를 어필하는 셈이다.
값비싼 신호란 큰돈을 들인 사치품처럼 많은 자원과 희생 이 투입된 행동이나 특성을 뜻한다. 과시적 소비 개념을 생물학 적·심리학적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값비싼 신호 는 동물과 인간에게 모두 적용 가능한 개념으로, 특히 유전자의 우수성과 성격적 강점을 드러내 짝을 유혹하는 데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 공포 메시지는 우리가 전기 철조망을 만지지 않고, 사자와 곰으로부터 도망치고, 도박적인 투자를 하지 않게 해준다. 그렇 다고 해도 공포는 행동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정서이고 목표로부터 도망가는 행동을 촉진하는 정서라는 사실을 잊어서 는 안 된다. 지구의 생태계와 기후의 미래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 면 우리는 얼어붙게 되고, 심지어는 관련 이슈로부터 도망치려 는 모습을 보인다.
더군다나 이미 우리의 기후는 망가져 버렸고 생태계는 파괴 됐으며 아무리 노력해봤자 아마겟돈을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공포감뿐만 아니라 무망감이 팽배하게 한다. 이런 메시지들은 환경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북돋기는커 녕 망해가는 세상에 적응해서 내 한 몸의 이익이나 챙기고 보자는 행동을 촉진한다.
-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대부분 사람에게 붕괴론자나 극단적 환경주의자의 주장은 한 가지 의미를 가질 뿐이다. 사랑하는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공포 메시지에 기초를 둔 결과 스스로 패배주의에 빠지고, 그럼으로써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나 환경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보다 더 맹렬히 친환경 행동의 가치를 부정하게 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심리학의 공포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 TMT)은 기대 수명과 재생산 타이밍의 관계를 또 다른 방향에서 조명해준다. 공포관리이론은 인간 심리 활동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 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루는 일이라고 보는 연구 흐름에 서 탄생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압도적인 공포이며 사람을 불 안에 떨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고 이런 사실을 모 든 사람이 알고 있기에 우리는 모두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은 채 일상을 살아간다. 행복하고 재미있는 일을 통해 죽음을 잊기도 하고 일과 취미에 몰입하느라 죽음을 생각할 틈을 갖지 못하기도 한다. 종교적 믿음에 의지하거나 자신의 사회적 업적에 자부 심을 가지며 생의 한계를 초월하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 를 자극하는 환경에서는 그런 공포가 우리 마음에 강한 영향을 미치곤 한다. 이를테면 묘지에 가거나 다른 사람의 죽음을 접할 때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강하게 느낀다. 그럴 때 우리는 공포를 통제하기 위해 심리적 활동을 한다.
죽음의 공포를 억누르기 위한 심리적 활동의 대표적인 예로 는 애국심, 종교, 또래 집단, 지역 공동체 등의 이념, 집단, 제도 에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무덤은 일반적으로 공 포심을 안겨주는 공간이므로 밤에 혼자 다니기 꺼려질 수 있지 만 국립묘지를 참배하거나 가족무덤에 성묘할 때면 공포보다 숙 연한 마음이 앞서게 된다. 이는 국가 제도와 가족 제도 등의 사 회적 장치가 우리에게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의미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이 바로 아이를 갖는 것이다. 대규모의 전쟁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베이비붐 현상은 국민이 갸륵하게도 국가의 인력 손실분을 충당하고자 자발적으로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은 죽음을 목격함으로써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자신의 기대 수명이 짧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쟁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연재해나 테러 등 우리에게 죽음의 공포를 상기시키고 자신의 기대 수명이 짧다고 지각하게 하는 상황 뒤에는 크고 작은 베이비붐이 뒤따른다.
재생산 타이밍과 기대 수명, '죽음에 대한 공포'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면, 먹고살기 어렵고 온갖 위협에 노출된 사람들이 어린 나이부터 아이를 갖기 시작해 많은 수의 아이를 낳게 되는 현상이 이해가 갈 것이다.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보통의 제품(즉 일회용 쓰레기가 발생하거나 많은 자원이 소모된 제품)이 아니라 친환경 라벨이 붙은 제품을 선택하는 행위를 친환경 소비라고 부른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우리가 친환경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때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된 보통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보다 소비가 더 늘 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친환경 포장이 된 식품을 구입하면 일회용 포장이 된 식품을 살 때보다 더 많은 식품을 사 게 된다.
친환경 행동의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모럴 라이선싱 (moral licensing)'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자신에게 도덕적 자격증을 부여해 더 방만한 소비를 정당화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난 마음껏 소비해도 돼. 왜? 친환경 제품을 선택했으니까'라는 생각이다. 나는 이와 같은 현상을 사람들의 도덕적 합리화 경향으로 치부하기보다 오히려 기술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보 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럴 라이선싱이라는 말보다 테크놀로지컬 라이선싱(technological icensing)이라는 표현을 선호 한다. 우리는 친환경 기술이 쓰인 제품과 서비스를 신뢰하기에 이런 제품과 서비스 앞에서 마음이 풀어질 수 있다. “이건 환경을 위하는 제품이니 마음껏 써도 괜찮아”라는 오판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너도나도 친환경 기술을 앞세우거나 그리 친환경적이지 않은 제품과 서비스조차 친환경으로 세 탁(그린 워싱)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된 제품에 비해 친환경 라벨을 붙인 제품의 판매가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 최근 들어 급증한 블루 카본(Blue Carbon) 생태계에 대한 관심 또한 이런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다. 블루 카본이란 해양 생태 계, 특히 맹그로브 숲과 해조류의 탄소 저장 능력을 강조하는 개 념이다. 육상의 녹색 식물들이 형성하는 그린 카본(Green Carbon) 생태계와 대비를 이룬다는 측면에서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블루 카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블루 카본을 그린 카본과 비교해 강조하는 것은 블루 카본 의 탄소 저장 능력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다. 맹그로브는 열대 의 얕은 바다에서 소금물 밑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 들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전 세계 100개국 이상의 연안에서 총 15만 제곱킬로미터 규모의 숲을 이루고 있다. 이 15만 제곱킬로 미터의 맹그로브 숲이 5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아마존 열대 우림에 비견될 정도로 많은 탄소를 흡수해 저장한다.
- 공포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공포 정치에 쓰이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공포를 통해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 자체가 정의롭지 못하다. 공포 정치가 당연히 척결해야 할 정치 행태라면 공포 메시지 또한 그럴 것이다.
공포 메시지에 겁먹고 기죽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나서서 다른 사람들을 겁주고 기죽이는 일도 삼가자. 그 대신 나 와 타인의 마음속에서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고 미래를 위 해 행동할 희망을 발견하자. 그리고 열렬히 행동하자.
- 죄책감 메시지를 잘 써먹는 사람들로 환경운동가들을 빼놓 을 수 없다. 공포 메시지와 달리 죄책감 메시지는 기후변화 문제 에 집중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멸종 위기종 보호와 생물 다양성 보존, 해양 환경 보존 등 다양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두루 활용하고 있다. 해양 환경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 거북이의 목을 조 르는지 이야기하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먹어 치우는지 보여주려 한다. 멸종 위기종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먹는 과자를 만들기 위해 수마트라의 오랑우탄 서식지가 모조리 팜유 농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에게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사 람의 행동을 변화시킬 만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죄책감에 호소 하는 마케팅과 사회운동은 정말로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친 환경 행동을 끌어낼 수 있을까? | 죄책감 메시지에 의존하는 수많은 커뮤니케이터들의 희망 과는 달리 죄책감에 호소하는 전략 역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경우가 많다. 죄책감 메시지가 의도한 행동 변화가 나타나는 대신 사람들이 변명을 일삼고 서로 손가락질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죄책감 메시지가 효과를 보이는 경우는 우리의 효능감과 결합됐을 때뿐이다.
- 죄책감은 자아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감정이고, 반대로 수치심은 행동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자아에 대한 감정이다. 죄책감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수치심도 죄책감과 마찬가지로 잘못한 일 때문에 일어날 수 있으나 그 흐름이 죄책감과는 완전히 다르다. 죄책감은 효능감과 관련 된 감정인 반면에 수치심은 바꾸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 는 자신의 부정적인 내적 특성에 대한 부끄러움이 표출된 감정 이다. 죄책감 메시지는 우리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거나 우리 가 어떤 일에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1인당 탄소 배출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이야기, 우리나라의 삼림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 등이다.
이런 사안에 대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그 행동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확신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무력감과 패배주의를 느끼게 된다. 이는 곧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또는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라는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서예를 아무리 연습해도 글씨가 아름다워지지 않는 사람, 아 무리 애써도 식재료의 맛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답시고 잘못한 점을 지적하면 지적받은 사람은 문제를 고쳐나가려 하기보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라는 수치 심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면, 즉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내가 한 어떤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면 이 행동을 수정하려는 적 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수치심을 느끼면, 그러니까 내가 한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못난 나 자신이 문제라 고 생각하면 행동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변명을 하 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두 정서의 이런 차이를 가리켜 죄책감은 문제 초점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이고, 수치심은 정서 초점 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정서라고 정의한다. 죄책감은 변화와 행동을 초래하고 수치심은 변명이나 체면 차리기, 회피, 하향 비 교를 통한 정서 조절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죄책감 메시지가 성과를 거두려면 우리 스스로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져야 하며, 변화를 확신하고 우리의 기여가 의미를 갖는다고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 메시지에 노출됐 을 때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을 느껴 변명을 일삼는다.
-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죄책감 메시지를 접했을 때 우리는 어떤 식의 변명을 하게 될까? 사람이 수치심을 느꼈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심리 현상은 체면 차리기와 하향 비교다. 스스로 바꿀 자신이 없는 부분을 지적받아 자아가 손상되면(“넌 어떻게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차를 두 대나 굴리니?"),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는 일을 부각해 체면을 차리려 한다("나 사실 재활용 잘하 는 사람이야!"). 그리고 자기보다 더 못난 이들을 손가락질하며 “저 기 세 대 굴리는 사람더러 잘하라고 해. 왜 나보고 그래!”라며 하 향 비교를 통해 손상된 자아를 추스르려 한다.
- 체면 차리기와 하향 비교는 적극적인 행동 변화를 낳는 심 리적 전략이 아니라 조언을 뿌리치고 설득에 저항하며 요지부동 으로 자아를 수호하는 전략이다. 친환경 행동을 계발하는 데 도 움이 되는 행동 양식은 한 가지를 하면 두 가지를 더 하고, 항상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 사람을 쫓아가는 것이지 뒤 처진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깔보는 것이 아니다.
각종 환경문제와 관련해 수치심을 느낄 때, 우리는 너무나도 다양한 측면에서 어떻게든 하향 비교 대상을 찾아낼 수 있다. 오늘날의 환경문제는 대부분 엄청난 규모의 인간 활동 때문에 발 생한 것들이다. 고개만 돌리면 세상 어디서든 나보다 뭔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고, 그들의 부족한 측면을 손가락 질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보호할 수 있다.
- 하향 비교를 일삼다 보면 효능감이 크게 손상된다는 것도 문제다. 바로 '무임승차자 효과'다. 공동의 목표에 별다른 관심과 노력을 보이지 않다가 결실만 빨아먹으려는 이들을 무임승차자 라고 부른다. 우리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놀고먹고 있는 무임승차자를 발견하면 우리는 목표에 매진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저치는 저렇게 거저먹고 있는데 누구 좋으라고 나만 애쓰나' 싶어 자괴감이 몰려온다. 이처럼 무임승차자의 존재 때문에 다른 이들의 동기 수준이 저하되는 현상을 무임승차자 효과라고 부른다.
- 지구를 뜨겁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인간의 에너지 사용이다.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면 에너지가 온난화 문제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에너지 요인이란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쓰는 일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직접 연소하는 난방, 취사, 교통 분야를 포괄한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화석연료를 사용해 차를 타고 전 기를 만들고 난방을 하고 고기를 굽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점에 유의한다면 사실 다른 복잡한 요인들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관련 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특히나 에너지 요인은 선택을 통해 극복하기가 힘들다. 세상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는 에너지가 투입되기 때문이다. 선택을 통해 친환경 행동을 하려고 하면 방대하고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남들이 친환경 제품이라고 말하는 제품이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비닐봉지와 에코백의 예를 한번 보자. 쇼핑백의 '생애 주기연구'라는 분야가 있다. 일회용 비닐봉지를 기준으로 각종 쇼핑 백을 몇 번이나 사용해야 환경에 이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분석하는 연구다. 영국과 덴마크 등지의 환경부에서 관련 보고 서를 몇 차례 출판한 적이 있다. 연구마다 수치가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가장 최근에 출판된 덴마크 환경부 리포트를 참고해 보자.
그에 따르면 재활용 폴리프로필렌 백은 45회 이상 사용해야 매번 일회용 비닐봉지를 썼을 때보다 환경에 좋은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사흘에 한 번씩 장 볼 때 사용한다고 치면 넉 달 만 에 본전을 뽑을 수 있을 만큼 환경 효율이 높다. 종이백은 43회 이상 사용해야 매번 일회용 봉지를 쓴 것보다 환경에 이롭다. 면에코백은 7,100회 이상 사용해야 한다. 하루 한 번 정도 쓴다고 치면 20년 가까이 써야 '친환경'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쯤 되면 에코백은 친환경 물품이 아니라 패션이라고 인정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가닉 면 에코백은 2만 회 이상 사용해야 한다. 오가닉이니까 환경에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오히려 최악의 효율을 보인다. 생산 효율을 증가시키는 문명의 이기 없이 생산한 면을 사용하다 보니 그만큼 환경 효율이 나쁠 수밖에. 오늘날의 지구는 100억의 원시인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과거에 영국에서 출판된 보고서까지 종합해보면, 가장 쉽게 가장 높은 환경 효용을 얻을 수 있는 쇼핑백 사용 습관은 일회용 비닐봉지가 찢어질 때까지 쓰고 또 쓰는 일이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50회 이상 사용해야 최소한의 환경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 일주일에 다섯 번씩 석 달가량 사용 하면 된다. 아예 1~2년을 쭉 사용하면 금상첨화다.
'에코' 백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친환경 간판이 달리고 얼핏 환경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품이 사실은 환경에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간단한 친환경 행동을 하려는데 이처럼 복잡한 속사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선뜻 행동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정확한 사실을 모르 는 채 선택을 하려다 보면 실수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무엇 보다도 아끼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 달걀 껍데기, 생선 가시, 돼지 뼈, 양파 껍질, 파 뿌리를 재활용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는 것 역시 반환경적인 행동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한다는 것은 물기를 빼고 건조시켜 건식 사료로 사용하거나, 가열 멸균해서 습식 사료로 사용하거나, 발효해서 퇴비로 활용하는 것이다. 껍질과 가시와 뼈와 뿌리는 사료로 쓸 수 없고 발효시킬 수도 없다. 이처럼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과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섞어서 버리는 '혼합배출' 행태는 쓰레기 처리 비용을 높이고 추가적 인 에너지 소비를 발생시킨다.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은 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기술이 허락하는 선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를 간과하고 내가 소망하는 대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재활용 률을 낮추고 오염을 발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실수를 하게 되는 이유는 결 코 이기심이나 무관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 에 '이것도 재활용했으면 좋겠는데', '이건 퇴비로 쓰면 좋지 않 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스러운 순 환의 연쇄를 촉발하고 싶기 때문에 일반 쓰레기통에 달걀 껍데 기를 버리면서 아까운 마음에 망설이곤 한다.
- 우리의 행동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세계관 (worldview)'의 문제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인간이 이룬 문명과 공동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생태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무 엇보다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자연을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핵심적인 부분은 변화의 가능성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다. 인간의 본능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 인간은 끝없이 에너지 소비를 늘려야만 하는 존재라는 생각, 문명과 자연은 충돌하는 것이며 인류가 생존하는 한 지구 환경의 파괴는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은 우리를 마비시킨다. 사람은 원래 숲을 훼손하고 동물을 사냥하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존재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향해 단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
세상에는 이와 같은 마비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그렇고, 그 반대편에 있 는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이 그렇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유에서 똑같은 세계관을 전파하려 한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우리가 과거를 답습하게 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환경 따위 생각지 않 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과거를 그리워한다. 이들이 향수를 품고 있는 광기의 성장주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저물었는데도 말이다.
- 반대로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은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미명하에 공포 메시지를 남발한 나머지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포 메시지에 자신을 가두었다. 이들은 다수의 사람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데, 바로 2030년부터 지구가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재앙에 빠져드는 세계다. 자신들이 바꿔보려고 시도해봤지만 철 저히 실패했다고 말하면서 인간은 바뀔 수 없는 존재라고, 인간 은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지구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성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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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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