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롬은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불안과 절망에서 구원해줄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참된 사랑은 자기 주위의 몇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그치지 않고 사해동포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프롬은 세계 평화와 인본주의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이었던 프롬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프롬은 이스라엘 건국에 반대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그 땅에서 살아왔는데 유대인들이 과거에 자신들 땅이었다는 이유로 그 땅을 뺏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프론은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과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프롬은 이스라엘 건국 후에는 이스라엘 정부에 토지를 빼앗긴 아랍인들에게 토지를 되찾아주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등과 함께 중동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더 나아가 프롬은 세계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프롬은 핵무기 폐지나 군축 등을 비롯한 문제와 관련하여 유력한 정치가들이나 기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더 나아가 프롬은 76세의 나이에도 당시 베트남전에 반대했던 인본주의적인 상원의원 유진 매카시 Eugene McCarthy의 대통령 당선을 위한 선거유세에도 참여했다. 그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연설을 했다. 과로로 건강이 상하면서 유세는 중단 했지만, 그 후에도 프롬은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프롬은 심각한 심장질환에 시달리면서 도 평화라는 대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강연이든 집필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 프롬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에게 집착만 할 뿐, 사실은 자신의 발전과 성장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프롬을 독자적인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았 던 것이다. 나중에 프롬은 참된 사랑이 갖추어야 할 요건 중 하나를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고 보는데, 프롬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자신의 경험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프롬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인간들의 비합리적인 성향과 행동에 대해서 자주 의문에 사로잡혔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된 원인 중의 하나를 부모에게서 찾고 있다.
침울한 분위기가 지배했던 가정환경에서 자랐기에 프 롬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종종 소외감을 느끼고 우울해하 곤 했다. 프롬의 삶이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이 부모와 가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로런스 프리드먼은 프롬을 가리켜 자신을 치유하는 최고의 '의사'였다고 표현했다.
- 1차 세계대전은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보면서 이성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서구의 계몽주의적 신념이 파산하게 된 사건이었다. 프롬은 이 후 인간의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인 성향과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프롬은 형제애가 넘 치는 사회와 세계평화를 향한 강렬한 열정에 불타는 진지 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아울러 모든 종류의 이데올로기와 공적인 선언 따위에 대해서 극도로 회의적이 되었으며,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프로이트에게 어린아이란 아버지나 어머니와 자려는 열망으로 부모를 어떻게 유혹할 것인가라는 생각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탐욕스러운 존재였다. 즉 근친상간적인 환상이 어린아이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것 이다. 프로이트의 원칙은 근본적으로 죄인’은 어린아이이지 부모가 아니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이러한 어린아이상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에게 갖는 상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상은 부모의 권위를 방어하려는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부모들의 주요 관심은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며, 부모들의 사랑은 가학적인 성격을 띤다. 최선을 다하라. 그리 고 네가 나의 통제를 거역하지 않는 만큼만 나는 너를 사랑 한다. 이것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혹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이는 소유물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회에서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 고, 더 나아가 통상적으로 고상한 이유로 상처를 준다. 이렇게 아이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면서 예민하고 똑똑한 아이가 자신을 바보라고 느끼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 자유에 대한 열망을 억제하기 위해 온갖 일이 행해진다. 프롬은 신경증은 어린아이와 아버지 사이의 성적인 경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 아래에서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행사하는 권위적인 억압과 이에 대한 어린아이의 반발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어린아 이는 부모의 권위적인 억압에 대해서 반발하지만, 이러한 반발이 실패로 끝나면서 어린아이가 받는 상처야말로 모 든 신경증의 근원이 된다. 이러한 상처와 함께 어린아이의 자발성과 주체성 그리고 창조성은 약화되거나 마비되며,  어린아이는 커서도 자기 자신이 아니라 신이나 재물·명 성·강박적인 의례나 사회적 여론 또는 유행과 같은 익명의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 '왜 나는 현재의 나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통속적인 정신분석학은 현재의 내가 된 것은 어린 시절에 그런 내가 되도록 조건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이렇게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인간이 독립 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릴 때는 어머니나 아 버지에게 의존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정신분석가에게 의 존하거나 권위적인 정치가 등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프롬은 네 살 혹은 다섯 살의 아이도 자기 나름대로 주체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 따라서 '현재의 내가 이런 것은 내 어머니가 나를 잘못길렀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부모나 외부의 영향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은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왜 내가 현재의 내가 되었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이며, '어떻게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 프롬은 마르크스주의자나 정신분석학자로서는 극히 드 물게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상가다. 프롬은 중세의 가톨릭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t와 유대교 신비주의인 하시디즘의 경전 그리고 범신론자인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를 자주 읽었으며 하시디즘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 혹자는 프롬을 무신론적인 신비주의자라고도 부른다. 프롬에게 영성은 기독교나 이슬람에서 말하는 인격신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존재하는 가장 근원적인 신선으로서 인간뿐 아니라 만물에 대한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영성은 자아 안에 있으면서도 자아 를 넘어서 있는 것이었고, 자아로 하여금 우주적인 합일을 열망하게 하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모성애와 부성애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분석하면서 신에 대한 사랑도 분석하고 있다. 이때 프롬이 염두에 두고 있는 신은 결국 우리 내면의 영성이자 신성이며, 모든 것과의 분열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충만하고 지혜롭게 깨어 있는 정신을 가리킨다.
그러나 프롬은 현대인들이 진정한 의미의 신을 경험하 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프 롬은 오늘날에는 신에 대한 사랑이 붕괴되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만 신에게 기도를 할 뿐이고, 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물질적 부를 쌓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에만 몰두한다.
- 프롬과 가까운 사람들이 프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꼽은 것은 넘치는 에너지였다. 그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집필했으며 일했다. 그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매일 30분씩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네 시간 동안 글을 쓴 후 한 시간 동안 명상했다.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오후 에는 환자들을 상담했다. 프롬의 놀라운 활력은 그가 그다지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놀라운 일이다. 프롬은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핵으로 고생했다. 그 후 1950년대 중반까지는 건강했지만, 50년대 말부터는 만성적인 대장질환, 후두염, 기관지염, 잦은 감기와 독감, 만성피로, 심장질환 등을 앓았다. 이렇게 갖가지 병에 시달리면서도 프롬은 세계평화를 위한 활동이나 강연, 집필을 전혀 차질 없이 진행했다. 심지어 20일 동안 20여 개의 강의를 한 적도 있었다.
- 교회는 한편으로 '인간은 죄인'이라고 가르치면서도 다 른 한편으로는 신이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사랑한다고 가 르쳤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신의 용서를 받고 은총을 받 을 수 있는지, 사후에 천국에서 어떻게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신을 두려운 존재로 생각 하기보다는 사랑이 충만한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자신들이 신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느꼈다. 아울러 사람들은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고 자신을 최고의 피조물이라고 생 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꼈다. 파스칼은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지만, 중세인들은 그러한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중세사회는 이렇게 구성원들에게 안정감을 주었지만 사실은 개인을 속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롬은 이러한 속박은 근대의 권위주의적인 속박이나 압박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다고 본다. 중세사회는 개인에게서 자유를 빼앗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아직 '개인' 이라는 관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어떤 신분이나 가문 혹은 조합의 일원으로 생각했을 뿐이지 독립적인 개인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양반 가문의 일원으로 생각했거나 어떤 집안의 노비로 생각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 사람들은 심지어 같은 도시에 살더라도 신분이 다를 경 우에는 서로를 낯설게 여겼다. 귀족들은 같은 민족인 평민 들보다도 오히려 다른 민족인 귀족들과 동질감을 느꼈으 며 자신들이야말로 고귀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천한 인간으로 간 주했으며, 낮은 신분의 사람들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다.
중세 말기로 오면서 사회구조와 인간의 성격구조가 변 한다. 귀족은 아니지만 상당한 재산을 가진 새로운 계급, 즉 부르주아가 출현하게 되었고 농노 대신에 노동자들이 나타났다. 농노는 영주에 철저하게 예속되어 거주지조차 바꿀 수 없었던 반면에, 노동자들은 거주지를 마음대로 바 꿀 수 있었으며 자신의 노동력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팔 수도 있었다. 이와 함께 개인주의가 대두되었으며, 취 미, 유행, 예술, 철학 및 신학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크게 강화되었다. 개인들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개인의 창의성이 중요시되었으며, 사람들은 신 분·혈연·지연에 따른 결속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독립적인 개인으로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도 신의 섭리를 따르는 것으로 보지 않고, 과학이나 기술을 통해서 탐구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나 그 아름다움을 향유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예를 들 어 중세사회에서 벼락은 신의 노여움이 표현된 것으로 여 겨졌지만, 근대에서는 단순한 전기현상으로 간주되면서 피뢰침을 통해 그 해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 흔히 르네상스시대는 중세의 질곡에서 벗어나 사람들 이 인간과 육체의 존엄을 깨닫고 자유와 개성을 구가하게 된 시대로 평가된다. 더 나아가 이 시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와 같은 천재들을 낳은 위대한 시대로 간주된다. 그러나 프롬은 르네상스시대에 대한 이러한 통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우선 프 롬은 보통 이야기되는 것처럼 르네상스시대의 상층계급이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누렸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실로 르네상스의 상층계급은 활발한 경제활동과 풍족한 부를 통하여 자신을 자유롭고 개성을 갖춘 존재로 생각하 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도 중세의 사회구조가 마련해주었던 안정감과 소속감을 상실하면서 자유로워졌지만 고독하고 불안해졌다.
이러한 고독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쾌락에 탐닉했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력과 부와 명예를 추구했 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이 이용하고 조종해야 할 '수단'으로 간주했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 들의 삶을 파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중세의 안정된 사 회구조가 파괴되면서 사람들은 도처에서 적의가 번득이는 세계에 자신이 홀로 내던져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고독감과 불안이야말로 르네상스시대의 인간들이 권력과 부와 명예를 그토록 갈구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과 부를 증대시키고 명예를 드높임으로써 고독감과 불안을 잠재우려고 했다. 이에 반해 권력과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은 중세인들에게는 그렇게까지 강렬하지 않았다.
- 칼뱅주의가 근면한 노동을 찬양했던 것처럼 니체는 근면한 노동 역시 삶에서 느끼는 불쾌감과 불안에서 도피하는 금욕주의적 방법의 하나라고 본다. 기계적인 근면한 노동에 엄격한 규칙성, 꼼꼼하면서도 생각 없는 복종, 철저 하게 짜인 시간과 같은 것이 수반될 때, 그것은 삶에서 느끼는 불쾌감과 불안을 완화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 노동이 신성시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이러한 방법이 특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정보다도 일, 자신의 행복보다도 일의 성취를 중시하는 일 중독증에 빠져 있다.
니체는 이러한 일 중독증도 사실은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택하는 주요한 방법 중의 하나로 본다. 니체는 이러한 금욕주의야말로 유럽인의 정신건강에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니체는 광범하게 퍼져 있는 금욕주의의 영향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멀리 떨어진 별에서 읽는다면, 지구에서의 우리의 삶을 나타내는 머리글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도록 이끌 것이다. 즉 지구는 분명히 금욕주의적 별이다. 자신에 대 해, 지구에 대해, 모든 생명에 대한 심한 메스꺼움으로 가득 차 있고,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즐기면서 - 아마도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즐거움일 것이다 자신에게 가능한 한 많은 고통을 주는 피조물들, 즉 불만에 가득 차 있고 오만하며 끔찍한 피조물들의 은둔처일 것이라고.
-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 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는 법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성숙할 수 있는지 알면서 스스로 행복하고 성숙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성숙하게 할 수 있다. 사랑이 다른 사람의 행복과 성장에 대한 관심이라면, 그러한 사랑은 자 신의 행복과 성장에 대한 사랑과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양자는 서로를 요구한다.
-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고유성과 존엄성 그리고 고귀함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한 사실은 그 사람을 아무리 객관적으로, 즉 과학적으로 고찰해도 드러나지 않으며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신의 숭고함이 신에 대한 어떠한 이론적 탐구를 통해서도 드러나지 않고 신과 합일되는 신비체험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프롬은 신을 파악하려는 신학의 논리적 귀결이 신비주의인 것처럼, 인간을 파악하려는 심리학의 궁극적 귀결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 이에 반해 자기 자신을 소유로서가 아니라 존재로서 체험 하는 사람은 상처받고 부서지기 쉽다. 이는 그가 자신의 정 체성을 자신이 소유하는 어떤 것이나 자신이 신봉하는 어떤 도그마에서 찾지 않고 참된 존재에서, 즉 참된 삶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는 능동적인 감각을 잃어버리는 순간마다, 또는 마음이 집중되지 않을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는 지속적인 각성性과 능동성에 의해서만 이러한 위험을 넘어설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그는 소유물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이룩하고 있는 인간과 비교해볼 때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다. 그러나 자아의 성장은 언제나 이렇게 깨지기 쉬운 기초 위에서만 비로소 이루어진다.
- 프롬은 사랑과 책임감과 관심을 통해서 외부와 친밀하게 결합하려는 태도를 초월transcendence'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초월은 소유에 집착하는 자신의 폐쇄적인 자아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자유는 이러한 초월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이는 우리가 불안과 무력감 그리고 이기심과 의존심 등에 의해 좌우되지 않을 경우에만 모든 강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책임감과 관심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 구현 해야 할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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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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