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교양 교양인 3)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03-09-1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또한 거론되는 지구화 담론과 현상을 묘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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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완전하고도 진정한 지구적이 될 것이며, 일부는 지역성, 즉 지구적인 것이 살아가는 게임의 규칙이 강요되는 세상에서 전혀 쾌적하지도 않고 참을만하지도 않은 곤혹스러운 상태에 처하게 될 것임. 지구화된 세상에서 지역적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박탈과 하락의 징조. 지역화된 존재의 불편함이란 사람들의 삶이 도달할 수 이쓴ㄴ 공적 공간의 범위를 지역화된 곳에 제한해 버리는 상황에서, 해당 지역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의미생성과 의미결정 능력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들고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해석행위와 주어진 감각에 의존하도록 만들어버린다는 데 있음.
- 역사상 금세기의 마지막 25년은 공간으로부터 독립전쟁으로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런 경고없이 갑자기 이동할 수 있는 권력은 자유롭게 착취하지만 착취의 결과는 무시해버릴 수 있는 권력이다. 결과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은 가장 은밀하고 소중한 전리품이다.
- 투자자들이 획득한 이동성은 새로운 것이며, 실제로 급진적인 무조건성이란 측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며, 의무로부터 권력이 단절되는 것을 의미. 이 의무란 피고용자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노약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생존조건의 자체적 재생산에 대한 것이기도 함. 요컨대 그들의 자유란 공동체의 영속과 일상생활에 기여할 의무로부터의 자유인 것. 권력의 영토적 본질과 삶 전체의 영속하는 영토적 본질 사이에 새로운 비대칭성이 출현하고 있음. 그것은 이제 닻을 올린 권력으로, 아무런 경고 없이 갑자기 이동할 수 있는 그 권력은 자유롭게 착취하지만 착취의 결과는 무시해버릴 수 있는 권력임. 결과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은 가장 은밀하고 소중한 전리품임. 새로운 이동성은 지역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자본을 탄생시킴. 투자의 효율성을 계산할 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할 비용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없어짐.
- 과거의 이른바 밀접하게 엮인 공동체들은 소규모 공동체 내부의 즉각적인 의사소통(그 규모는 두뇌의 질, 즉 인간의 시각과 청각 그리고 기억용량 같은 자연적 한계에 의해 결정됨)과 지역들 간의 시간의 크기와 정보교환에 필요한 비용 사이의 격차에 의해 존재했고 또 생존해 왔음. 반면에 오늘날 공동체가 쉽게 파괴되고 생존기간이 짧은 것은 근본적으로 그러한 차이가 더불어 소멸되거나 축소된 결과임. 공동체 내무의 의사소통과 공동체 사이의 의사소통이 모두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공동체 내부의 의사소통은 공동체 사이의 의사소통보다 그다지 큰 이점을 가질 수 없게 됨.
- 기술적인 시간/공간 거리의 무효화는 인간조건을 균질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양극화하는 경향이 있음. 그것은 특정한 인간들을 영토적 제약에서 해방시키며 특정한 공동체 생성의 의미를 외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한편, 영토를 박탈당하는 다른 특정한 인간들은 계속해서 제약을 받게 되어 공동체 생성 의미와 정체성 부여능력을 상실하게 됨.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물리적 장애로부터 유례없는 자유를 나타내며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거리로부터의 이동과 행동능력을 상징함.
- 파놉티콘적 권력의 도입은 다수가 소수를 관찰하는 상황에서 소수가 다수를 관찰하는 상황으로의 근본적인 변형을 표현함. 권력의 행사에서 감시가 구경거리를 대체함. 전근대 시기에 권력은 평민들이 경외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화려함, 부, 황홀함을 감탄하면서 보게 함으로써 민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데 사용되곤 했음. 근대 권력은 신민들의 시선을 끌기 보다는 신민들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음지에 머물러 있는 것을 선호
- 파놉티콘에서는 선택된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민들을 관찰 (파놉티콘 이전에는 보통의 지역민들이 그들 가운데서 선택된 지역민들을 관찰했음.) 시놉티콘에서는 지역민들은 지구를 관찰. 후자의 권위는 원거리성에 의해 확보됨. 이때 지구는 문자그대로 지역 세계의 바깥이며, 지역 세계 위를 선회하는 것은 한떼 그리스도교 세계 위를 선회하던 천사의 그것보다 훨씬 가시적인 것으로서 일상적인 것일수도 있고 돌출적인 것일수도 있음. 그것은 가시권내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비접근적인, 우뚝 솟아 있고 우주적인 것으로서, 무한하게 우월하여 추종하거너 추종을 꿈꾸는 열중한 자들에 대한 빛나는 사례들로 존재. 그것은 존경받는 동시에 갈망됨. 즉 지배하는 대신에 충성심을 획득함. 지역들은 지구위에서 서로 격리되고 분리된 채 천상의 정규적인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지구를 만나고 있음. 만남의 메아리는 모든 지역적 소리들을 억누르지만, 지역적 소리들은 감옥에 가로막혀 지구적으롤 반향하게 되며, 그러한 반향을 통해 폭로되고 재강화됨
- 초국적인 성격의 세력을 주조하는 것은 익명적이고 따라서 정체를 파악하기 힘듬. 그것들은 통일된 체계 또는 질서를 형성하지 않음.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행위자들에 의해 조작된 체계들의 응집임. 문제가 되는 세력의 의도적 조화나 통일체는 존재하지 않음. 시장은 경쟁하는 세력들의 상호적인 협상행위라기 보다는 조작된 요구, 인위적으로 창조된 욕구, 빠른 이윤획등을 위한 욕망의 밀고 당김임.
- 소비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소비자들에게는 절대 휴식이 허용되면 안됨. 그들은 새로운 유혹에 노출된 채 늘 깨어 있고 또 늘 경계상태에 있어야 하며, 그리하여 결코 자극이 시들어가지 않는 상태(그리고 영속적인 의심의 상태, 항상적인 불평의 사태)로 남아 있어야 함. 그들에게 명령하고 주목을 돌리게 하는 미끼는 불만을 벗어날 것을 약속해주는 한편, 계속해서 의심을 확인시켜주는 것임
- 보편적 경쟁의 패턴과 보편적 숭배의 개인적 주인공으로서 치장되는 부유한 자들은 한때 자수성가한 사람들이었음. 그들의 삶은 엄격하고 완고한 노동윤리 및 자애로운 분별력으로 전형화되었음.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렇지 못함. 숭배의 대상은 이제 부 자체임.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무엇을 했느냐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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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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