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탄생

인문 2021. 1. 6. 06:58

- 친구, 자네는 실제 맛과 느낀 맛' 사이에 충돌이 없다고 생각하나? 인생은 모두 둘 사이의 충돌일세.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들이 있다. 설탕이나 소금, 지방이 혀에 닿아 녹을 때 느끼는 맛이 그것이다. 이런 것은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싫어할 수도 없다. 이 세 가지 맛에 생리적으로 더 민감한 사람들이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것은 맛이라고 할 수 없다. 향신료인 고수는 비누 맛과 비슷하지만, 일부는 후각을 담당하는 감각이 유전적으로 변화해서 그렇게 느낀다고 주장한다. 한편 전체 인구 중에서 돼지고기 요리나 소시지를 구우면서 '웅취'를 맡는 사람은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웅취는 오줌 냄새, 혹 은 돼지 냄새라고 알려진 불쾌한 향취로 안드로스테론androsteron에서 나온다. 안드로스레톤은 스테로이드 기반의 사향으로, 야생 수퇘지 는 짝짓기를 할 때 암컷을 유혹하려고 이 냄새를 풍긴다. 사람은 유 전적으로 웅취를 맡지만 훈련도 가능하다.
-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음식을 먹은 양이나 즐긴 시간과는 상관이 없다. 지속 시간 경시duration ncegler' 라고 부르는 현상 인데, 로진은 “식사할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약간 먹은 것으로 충 분히 기억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필라델피아 에서 만났을 때는 내게 “좋아하는 음식 크기를 두 배로 늘린다고 해 도 좋아하는 정도에는 별로 효과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적게 먹기’ 운동이 좋은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로진의 연구에 따르면 식사에 대한 인간의 기억에 있어서 마지막이나 '정점'은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가장 마지막 혹은 가장 강력했던 경험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효과가 음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로진은 '시작' 의 효과가 전반적으로 과소평가되어 있다면서, 음식에 대한 다이내믹한 취향'을 연구한 결과 마지막보다 처음 몇 숟가락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 즐거움이 훨씬 더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에 음식을 먹었을 때의 즐거움을 충분히 기억해냈을 때는 이미 눈앞에 접시가 너무 많이 놓인 뒤다.
- 냄새는 맛보는 행위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잊기 쉽지만 직접 경험할 때마다 놀라는 사실이다. 커피는 맛보다 냄새가 좋은 기이한 음식 중 하나다. 커피에서 냄새가 사라진다면 기본적으로 커피를 좋 아할 이유도 사라진다.
- 미뢰가 박혀 있는 내 혓바닥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그보다는 약간 비공식적인 감칠맛(어쩌면 지방이 내는 맛인지도 모른다) 등 기본적인 맛을 충실하게 골라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섬세한 구분(망고 맛과 파파야 맛, 양고기와 돼지고기 맛)은 음식을 삼킬 때 콧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향기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가 딸기, 코카콜라, 스시라차 소스로 알고 있는 맛은 실은 향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꿀맛'이 아니라 '콧구멍 속 으로 들어오는 꿀 냄새'가 정확한 표현이다. 꿀맛은 비인두(비도로 직 접 이어진 인두부)로 유입되는 한 줄기의 꿀 냄새로 결정된다. 심지어 레 몬처럼 향이 강한 식품도 혓바닥에서는 신맛과 쓴맛, 단맛의 조합으로 느껴질 뿐이다. 냄새 속에 들어 있는 테르펜 성분이 콧속 점막의 수용 기관을 자극해서 레몬 향을 진짜 레몬 맛처럼 느끼게 만든다.
- 폴 로진은 대상을 어떻게 감지하느냐에 따라서 대상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고 한다. 커피 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냄새는 좋아할지 모른다. 반대로 접시 위의 림버거(소금물에 여러 번 세척하며 숙성시켜 톡 쏘는냄새가 나는 치즈)는 냄새 때문에 불쾌하다. 하지만 일단 입에 들어가면 불쾌한 냄새가 유쾌한 맛으로 멋들어지게 바뀐다. 인간 뇌는 음식이 입안에 들어오면 위험한 물질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전반적인 인식을 달리하는 듯하다. 펠챗은 코감기에 걸린 사람에게 노란 색깔을 더한 소고기 수프를 주면 닭고기 수프를 먹고 있다고 착각한다고 설명했다. 후각을 제외하면 수많은 채널이 나오는 케이블 텔레비전을 똑같은 방송이 나오는 네트워크 단 몇 개로 줄여버린 것과 같다.
-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커피 향에 대해 알지 못한 다. 다른 경우라면 쓴 음료는 나쁘다고 인식한다. 쓴맛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독성을 지녔다는 신호니까요. 굳이 배우고 싶지 않더라도 알고 싶기는 하죠.” 하지만 인간은 닭다리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상태로 태어 난다. 맛을 골라내는 인간의 시스템은 다리와 날개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닭이면 된다. 하지만 음식을 대하기 전에 문화가 알아서 취사선택하며 취향의 경계를 바꿔준다. “프랑스인은 말과 개구리를 먹어요. 영국인은 둘 중 어느 것도 먹지 않죠.” 제러드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의 말이다. 프랑스인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거치면서 말을 음식으로 좋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향과 달리 맛은 전 세계적인 문화들 사이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지닌다. 존 프레스콧John Prescott 이 저서 《맛은 중요하다. Taste Maters》에 쓴 것처럼 “단맛은 물에 자당이 포 함된 것이며, 전체 중량에서 10~12퍼센트를 차지해야 이상적이다 (잘 익은 과일의 단맛이 대부분 이런 비율이다). 이는 일본 사람에게나 대만 사람에게나 호주 사람에게나 모두 똑같다.”
-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눈으로 드러나는 선호도)은 어쩔 수 없이 남과 다른 부분을 실용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우연한 일이 아니다. 증명해야 할 때는 다른 이들의 취향을 거절하는 순수하게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라고 주장했다. 취향이 중요하게 생각될 때는 불협화음이 더 커진다. 책, 그중에 서도 특히 소설이 큰 상을 받으면 아마존이 운영하는 독자들의 평가 사이트인 굿리즈에서는 오히려 평점이 낮아진다. 발래즈 코박스(Bilars Kovas와 아만다 샤키Amand Sharkey는 이를 분석하고 인기의 모순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좋은 책을 선택하지 못한다거나 독자들이 책의 장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잠시 수상 후보로 지명된 책은 실제 상을 탄 책보다 평가가 더 낮았다.
-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물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보았을 때, 실용적인 물건이라면 부정적인 평가의 원인을 물질적인 면에서 찾고 쾌락을 위한 물건이라면 그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었다. 부르디외는 “취향은 종류를 구분하고 그 이유를 구분한다” 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사람은 취향이 구분되는 이유를 또 구분한다. 혹자는 옐프에서 식당을 평가하고, 아마존에서 책과 채소 탈수기를 평가하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평가하는 일이 모두 다르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 튀이만의 실험은 흠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는 것보 다 훨씬 심각한 '탑다운rop down'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대상 자체를 인식하는 '바텀업bottom up 보다는 기대하고 원하는 것을 본다. 신경과학자 에릭 캔들Eric Kandel이 말한 것처럼 “우 리는 두 개의 세상(탑다운과 바텀업)에 살고 있다. 인간의 지속적인 시 각적 경험은 이들 두 가지의 대화” 인지도 모른다. 튀이만의 그림처럼 바텀업 자극이 충분히 크고 생생하며 어떤 위협을 가했다면 사람들에게 주목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탑다운 지각의 방식이라야 눈길을 끌기 쉽다. 가까운 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회에 직접 찾아가 머릿속에 그와 그의 작품을 새길 가능성이 더 크다.
- 노스이스턴 대학교에서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는 IASLInterdisciplinary Attective science laboratory 연구소를 이끄는 리사 펠드먼 배렛Lisa Feldman Barrett 은 오랫동안 뇌가 바텀업 기관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경조직은 외부 자극(예를 들어 튀이만의 무작위적인 그림)에 의해 깨어날 때까지 뇌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 그러면 뇌는 자극을 인식하고 어쩌면 개인적인 관련성을 평가한 다음(전에 본 적이 있는 것인가?) 적절한 감정적 혹은 그와 관련된 반응을 보인다(난 어떻게 생각하지?),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인간의 뇌는 빈 배와 같아서 수동적으로 채워지기를 기다린다고 냉혹하게 평가했다.
- 철학자 대니얼 대넷Daniel Dennett은 “맥주가 처음 맛보았을 때의 맛 그대로였다면 평생 맥주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평 가했다. 맥주가 맛없게 느껴지는 이유는 알코올이 인체에 충격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처음에는 맛이 느껴지지 않거나 유쾌 하지 않다. 새로운 음악이나 예술도 비슷하다. 음악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 은 〈뉴요커〉 프로필에 나인 인치 네일스 앨범에서 '프리티 헤이트 머신Pretty Hate Machine’을 처음 들었을 때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 았다고 회고해놓았다. 하지만 곧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되었다고 했다. 루빈은 갑자기 새로운 것에 노출되면 “그것을 흡수하거나 소화할기준이 없다.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 사람들은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사물을 카테고리로 나눈다. 개개인의 카테고리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전문가는 카테고리에 따라 심사하고, 다시 카테고리에 따라 평가된다. 더 많이 알수록 카테고리도 늘어난다. 카테고리를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 전문 심사위원이 보통 사람과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세상을 보고 조직하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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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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