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의 설계자들

etc 2021. 5. 2. 11:02

- 직감 디자인의 구조
1. 가설 : 자발적으로 OO할까?'라는 가설을 세운다. 단, 플레이어는 가설이 옳은지 그른지 확인할 수 없다. 
2. 시행 : 자발적으로 'OO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시험 삼아 행동에 옮긴다. 
3. 환희 : 그 과정에서 OO하는 것이 맞았어!'라고 환희한다. 여기서 비로소 플레이어는 자신의 가설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 우리의 뇌는 늘 OO해볼까?'라는 식으로 다음 행동에 대한 가설을 만들고 싶어 한다. 실제로 이 개념은 이미 학문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심리학이나 인지과학에서 사용되는 어포던스 affordance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어포던스는 본래 환경이 동물에게 부여하는 의미로 정의 되지만, 왠지 어렵게 느껴지므로 과감히 풀어서 설명해보겠다. 어포던스는 당신이 무언가를 봤을 때 자연스럽게 OO해볼까?'라고 생각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물론,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를 보고 'OO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인간이 그것을 인식해야 한다. 개가 이 물건을 본다 한들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어포던스와 세트인 개념으로 '시그니파이어signifier가 있다. 어포던스를 전달하기 위한 특화된 정보 를 가리키는 개념인 시그니파이어는 슈퍼 마리오의 경우에 마 리오의 모습과 위치, 산과 풀 등에 해당한다. 정확하게는 화면 의 거의 모든 것이 시그니파이어라고 할 수 있다. 어포던스와 시그니파이어, 이 2가지 개념을 적용해보면 앞에서 아이들이 슈퍼 마리오가 재미없어 보인다고 말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 '사람들은 왜 게임을 하는가?'
뭔가 철학적으로도 울림이 있는 이 질문에 이 책이 내놓은 답은 다음과 같다.
'게임 자체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플레이어 스스로가 직감 하는 체험 그 자체가 재밌으니까.”
우리의 뇌는 언제나 이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뇌가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게임이 '직감적 이해'라는 체험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며 이는 플레이어에게 다가선 체험 디자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체험의 근간이 바로 '직감 디자인'이다.
- 우리 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예상하려 하고, 예상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이 세계의 움직임을 학습한다. 그래서 예상이 적중한 뇌는 '미래에 다가올 죽음의 위험도 틀림없 이 예상할 수 있어, 목숨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흥분 물질을 만들어내며 기뻐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예상이 들어맞으면 뇌는 '이제 충분히 미래를 예상할 수 있으니 더 이상 학습할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때가 바로 예상이 빗나가는 체험'이 등장할 차례다. 예상을 벗어난 체 험을 한 뇌는 미래를 조금도 모르겠어. 죽음의 위험도 피할 수 없을지 몰라!'라는 위기감을 안고 이 세계를 학습하려는 기능을 다시 활성화한다.
피로와 싫증으로 약해진 뇌의 학습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뇌의 예상을 벗어나는 체험을 의도적으로 가미하는 것이다. 장시간의 체험을 디자인할 때 아주 중요한 테크닉이다. 
- 놀람 디자인의 구조
1. 오해: 틀린 가설을 세운다. 단, 플레이어는 가설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 
2. 시행: 시험 삼아 행동으로 옮긴다. 단, 플레이어는 가설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
3. 경악: 놀란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처음으로 가설, 시행이 오류였음을 깨닫는다.
- 오해하고, 시행하고, 예상 밖의 결말에 놀라게 된다. 이러 한 일련의 체험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놀라움을 주는 것이 바로 놀람 디자인'이다. 직감 디자인의 연속으로 피로와 싫증이 쌓인 플레이어에게 적용함으로써 피로와 싫증을 떨쳐내고 보다 장시 간의 체험을 가져다주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 디자인을 설계하려면 세밀하게 정성을 들여 계획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순서는 이렇다 (미리 말하지만 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 1. 피로와 싫증이 나타나는 타이밍 파악하기
드퀘에서 '8개의 커맨드 학습을 완료했을 때처럼 피로와 싫증이 정점에 달하는 타이밍에 주목한다.
2. 사전에 오해로 이끄는 세계관 구축하기
'이 게임은 진지하다'는 오해를 사기 위해 차분히 시간을 들 여 잘못된 세계관을 학습시키고 오해하게 한다.
3. 확신을 배신하는 연출 디자인하기
이 게임은 ○○이야', '터부시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라는 2가지 확신을 동시에 배신하는 연출을 한다.
- 놀람 디자인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이나 외면하고 싶 은 것을 그리면서 플레이어에게 무언가를 걸게 하고, 기원하게 하며 플레이어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만든다. 이러한 체험 디자 인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놀라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직감 디자 인의 연속으로 인한 피로와 싫증을 불식시키고 플레이어를 다 음 체험으로 이끈다. 이것이 바로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체험을 디자인하는 기본 전략이다.
놀람 디자인은 플레이어가 체험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게끔 하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부지런해서 피로를 모르는 플레이어만 있다면 놀람 디자인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중적인 체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놀람 디자인이 필요하다.
- 이야기 내용이란 '주인공이 A에 가서 B가 일어나고 C가 되는 일련의 사건을 가리킨다. 간단히 말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 이야기 내용이다. 이야기 내용은 어디까지나 사건 그 자체를 말한다. 이때 그 사건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수단이 있어야 비로소 이야기 내용은 전달된다. 문자, 영상, 음성과 같은 표현 형식도 중요하고 단어 선택과 전달 순서도 이야기의 재미를 좌 우한다. 이야기를 전달할 수단, 이것이 바로 이야기 언설이다. '이야기는 또한 일련의 사건의 표상representation of a sequence of events' 이라는 정의도 자주 이용하는데, 여기서 '일련의 사건이 이야기 내용, 표상'이 이야기 언설에 대응된다.
정리해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즉 이야기 내용과 이야기 언설을 합친 것이 내러티브가 되는 것이다. 내러티브라는 말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 나 내러티브는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 영상과는 별도로 음성만으로 상황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그 사람을...
내레이터narrator'라고 부른다. 내레이터는 내러티브 하는 사람, 즉 이야기를 설명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의미하는 단어라도 스토리에는 '스토리어 storyer'라는 단어가 없다. 전달한다는 의미의 tell'을 붙여서 '스 토리텔러storyteller'라고 해야 이야기해주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된다. 왜일까?
스토리와 내러티브, 둘 다 이야기' 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여기에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즉 이야기 내용에 중점을 두는 반면 내러티브는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즉 이야기 언설을 포함하는 뉘앙스가 있다.
- 애초에 게임 디자이너는 이야기만으로 플레이어에게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게임 속에서M전개되는 가공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체험을 디자인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 디자이너가 정말로 그리고자 하는 것은 게임 속에서 펼쳐지는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 성장해나가는 플레이어의 이야기다.
- 가공의 이야기: 가공의 세계에서 가공의 캐릭터가 겪는 이야기.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체험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이 지니 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이야기: 게임이라는 체험을 통해 플레이어 자신이 겪는 이야기. 현실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를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성장시켜야 한다.
- '게임보이(1989, 닌텐도)용으로 출시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 은 '포켓몬스터(1996, 닌텐도)'에 등장하는 151마리의 포켓몬을 모조리 기억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하고 한숨을 내쉬던 부모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포켓몬을 기억 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게임은 도입부에서 3마 리의 포켓몬 중 한 마리를 고르게 하고, 백지로 된 포켓몬 도감 까지 건넨다. 전체상과 빈자리를 모두 인식시키고 한 마리씩 포 켓몬 잡는 체험을 반복하니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는 것이다. 플 레이어가 빈자리를 의식하게 만들고 수집, 반복을 통해 이끌어 감으로써 플레이어를 성장시키는 구조가 인상적이다.
- 반복하면 무엇이든 능숙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쳤다느니 질렸다느니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우리는 반복을 멈춰버린다. 만약 피로도, 싫증도 모르고 반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직일 것이 반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에서 그런 것을 발견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행운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반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행복감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한 좋고 나쁨을 평가해주는 것을 게임 업계에서는 '피드백'이라고 부른다. 피드백이 있어야만 플레 이어는 스스로의 선택과 재량의 의미를 파악한다. 동시에 난 잘 했어' 혹은 내가 망쳤어' 라며 플레이어 자신이 주어가 되어 체 험을 실감할 수도 있다. 플레이어가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고, 재량도 없으며, 어떤 행동을 해도 돌아오는 리액션이 똑같은 게임은 재미있을 리가 없다. 게임은 언제든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른 리액션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다.
- 플레이어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고 싶다면 주인공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면 된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에게 강렬한 문제를 일으켜 철저히 불행하게 만들고 괴롭히는 '잔혹한 디자인의 목적이다.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체험 디자인 에는 반드시 필요한 스킬이다.
자, 이제 겨우 공감 조건 하나를 클리어했다. 주인공의 불 행으로 플레이어가 주인공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동행자도 등장하지 않은 상태다. 진정한 공감으 로의 길은 멀기만 하다. 다음 조건은 플레이어와 주인공이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으로, 이것이 공감 체험의 시금석이자 운명의 갈림길이다.
- 맞서려면 플레이어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이 지론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최후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 디자인을 통과 해왔다. 번롱을 통해 성장하고 스스로의 의지를 갖게 되어 스스로가 그린 이야기를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체험이었다. 특히 성장이라는 체험에서는 수집과 반복, 선택과 재량, 번의와 공감과 같은 거친 체험을 열심히 헤쳐 나왔다. 다시 말해, 몹시 힘든 여행이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수십 시간, 바람의 여행 자는 수 시간을 들인 이 긴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런데 마지막에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며 게임은 끝이 난다. 긴 시간을 소비한 의의가 전혀 없는, 한낱 헛수고였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어 보이는 결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예를 들어 여행은 어떤가. 돈과 시간을 할애하여 여행을 즐기고 나면 마지막에는 시작점인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결 국 집으로 돌아오니까 여행에는 의의가 없어. 모두 헛수고야'라 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여행은 여행이라는 체험 자체가 본질이다. 물론 집으로 돌아오면 여행은 끝이 나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여행이라는 체험을 통해 당신은 성장하고, 여행을 가기 전과 다녀온 후의 당신은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의의다. 게 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이라는 체험 자체가 본질이며, 체험을 통해 플레이어가 바뀌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 플레이어의 마음을 움직이는 체험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지금 까지 논의한 체험 디자인 방법을 한 페이지로 밀도 있게 응축하여 복습해보기로 하자.
1. 직감 디자인: 가설→시행 환희 
2. 놀람 디자인: 오해 → 시행 경악 
3. 이야기 디자인: 번롱 →성장→의지
직감 디자인은 체험 디자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체험이 다. 틀에 박힌 체험을 자발적 체험으로 바꿔 플레이어 스스로가 직감적으로 행동하도록 돕고, 나아가서는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체험을 디자인하기 위한 수법이다. 사람들의 뇌와 마음의 공통된 성질과 기억을 이용하여 단순하고 쉽게 체험을 디자인함 으로써, 모든 플레이어가 가설을 시행하고 가설이 옳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 환희를 느끼게끔 한다.
그러나 직감 체험에는 문제가 있다. 연속된 직감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피로와 싫증을 초래하여 체험 자체를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되는 체험을 디자인하기 위해 함께 필요한 것이 놀람 디자인이다. 놀람 디자인은 전제에 대한 확신과 일상에 대한 확신을 이용하여 플레이어의 예상을 뒤집음으로써 놀라움을 준다.
이 2가지 체험 디자인을 조합하여 직감적이고 질리지 않는 장시간의 체험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체험에 의의가 없 다면 플레이어의 마음은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 디자인이다. 상황을 이해하려는 플레이어를 번롱하고 성장하게 만들어 스스로 의지를 갖기까지 이야기를 통해 체험에 의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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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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