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보커터

사회 2021. 5. 30. 20:04

-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표현은 대중적 인기로성패가 결정되는 연예인과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부고란만 아니면 무조건 언론에 나오는 것이 좋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전 인류를 네트워킹' 하면서 이제는 일반인에게도 무플보다 악플이 나은 시대가 되었다.
-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다수가 먹고살기 위해 돈을 좇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주목과 관심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이를 얻기 위한 행보가 곧 경제활동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른바 조회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 조회수 장사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주목경제다. 주목경제라는 개념을 고안한 미국의 저술가 마이클 골드하버M. H. Goldhaber의 문제의식은 다음의 명제에서 출발한다. 정보시대에서 디지털 재화라 일컬어지는 정보에는 희소성이 없다. 무한히 취할 수 있는 것에는 값이 매겨질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가치한 정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주목이다. 주목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경제학의 문제라면, 오늘날 주목과 관심의 주고받음은 엄연한 경제행위다.
- 트롤Troll의 기원은 북유럽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주로 동굴이나 언덕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요정과 같은 존재로, 인간에게 장난과 행패를 일삼는 악동으로 묘사된다. 영미권에서는 난데없이 나타나 훼방을 놓거나, 악의를 갖고서 불특정 다수 혹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이를 가리켜 트롤, 그러한 행위를 트롤링' 이라고 일컫는다.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트롤링의 방식과 수단, 대상의 범위도 진 화와 확장을 거듭했다. 웹상에서 트롤링은 하나의 유희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온라인 게임에서 혼자 태업을 한다거나, 연예인 팬 카페에서 해당 연예인의 과거사나 루머 등을 끊임없이 언급하거나 성형 전 사진을 올리는 식으로 분위기를 흐리는 일, 커뮤니티에서 특정인을 도발해 분쟁을 부르거나 게시판 성격과 무관한 정치적 이슈를 던져서 감정싸움을 일으키기, 누가 봐도 엉 뚱한 기행을 저지른 뒤 이를 공개해서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 일부러기분 나쁜 어투를 골라 빈정거림으로써 보는 사람을 자극하기 등 갖가지 방식으로 분위기를 망치며 이목을 끄는 것이 모두 인터넷 시대 의 트롤링이다. 이런 행위를 맥락에 따라 '낚시' '분탕질 어그로'로 불러온 한국에서도 점차 트롤링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트롤링의 동기는 당연히 관심이다. 몇 마디의 말로 소란을 일으키고 일말의 영향력을 만끽하는 행동은 관심을 갈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트롤은 '관종'(관심종자)이라는 말과 호환 가능하다. 
- “선 넘기’, 즉 위반의 문화정치는 본래 좌파의 전략이다. 사드 후작과 프리드리히 니체, 미셸 푸코는 정상-비정상 혹은 합리성 비합리성의 경계를 긋는 지식과 도덕에는 권력이 작용한다는 것을 일찍부 터 알았다. 나아가 이들은 통념과 금기에 대한 전복과 위반을 저항의 미덕으로 축복한 바 있다.
보수주의는 전통적 가치, 즉 상식과 통념을 수호하며 현 상태의 유지와 재생산을 도모한다. 반면 진보주의는 그 안티테제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것에 의문을 표하며 사회의 제 부문에 변혁을 시도한다. 특히 1960년대 전 세계를 변화와 저항의 열망으로 뒤흔든 68운동 이후, 좌파 진영이 문화적으로 보수주의와 다를 바 없이 경직되었다는 반성이 일었다. 금기도 덕·권위 위계·구획·경계 등에 순응하지 않는 태도에 저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이는 곧 진보의 가치로 칭송되었다. 아모스 이가 한때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를 자처한 것도 이와 연결지어 생각 해볼 수 있다. 아모스 이가 《쿠란》과 성관계하는 모양새를 취할 당시 서구 자유주의 미디어는 그를 연성 독재국가 싱가포르의 경직된 문화에 저항하는 소년 운동가로 포장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월경越境과 전복과 위반의 가치는 점차 대중 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긴장을 잃어버린 선 넘기의 미학은 탈정치화했고, 이후 문화산업에서 유행한 혼성 모방Pastishe(풍자나 비판의식이 결여된 패러디)의 소재로 전락했다. 전복과 위반의 미학이 대중화 하면서 가능케 했던, 세계적으로 가장 크게 조명된 사회운동의 사례로 2011년 월가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 Ows을 꼽을 수 있다. 
- 본인의 의견과 일치하는 콘텐츠에는 '좋아요'를 누른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콘텐츠에는 싫어요'를 누른다. 이런 행위는 소셜 플랫폼 에서 해당 이용자에게 노출되는 게시물의 성향을 결정하는 알고리 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자연히 이용자의 선호에 부합하는 게시 물이 메인화면에 노출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용자끼리 상호작 용이 빈번해지면서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만들어진다. 필터 버블 이란 '그들만의 리그'를 세상의 전부로 인식하는 착시 현상을 말한 다. 이는 확증편향의 현대적 현상이다. 게다가 소셜미디어와 일상의 유착이 갈수록 끈끈해지는 흐름에서 개인의 세계관을 소셜미디어에 동기화하려는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콘텐츠만을 '팔로우' 하고 '구독'하는 사람들은 해당 콘텐츠의 화자가 피력하는 의견과 주장에 자신의 생각을 포갠다. 내 성향과 맞는 것만 눈에 띄기에 내가 보는 것이 곧 나의 성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끼리끼리 한데 모인 필터 버블 안에서 가뜩이나 닮은 성향을 상호 증폭시키는 현상, 이른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반향실 효과)가 나타난다.
- 대중의 입맛에 최적화된 카드뉴스 등은 더욱더 대중영합적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복잡하고 논쟁적인 시사 문제는 거르게 된다. 그 대신 과 감하게 혹은 과격하게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일도양단하는 콘텐 츠에 이목이 집중된다. 대중이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사안을 단순명 료하게 정리하고, 한두 가지 원인을 근본적인 것으로 과대포장하는 설명이 조회수를 독점한다.
대다수 '정치 유튜브 방송이 이러한 경향을 따른다. 정치 유튜버 들은 대체로 항상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시사를 단순화하는 것을 넘어서 문제의 원인을 의인화해 그들에 대한 공격을 선동한다. 문제의 원인이 어떤 추상적인 구조에 있는 게 아니라 몇몇 인물이나 특정 집단에 있다는 진단은, 그들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간편한 처방으로 이어진다. 공식은 명쾌할수록 대중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그에 맞춰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상연하는 분노와 격동 하는 감정은 스펀지에 잉크가 스미듯 시청자에게 손쉽게 전이된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댓글은 이를 더 증폭시킨다. 시청자는 그렇게 전이된 감정을 스스로 발아한 감정으로 착각한다. 유튜브를 통해 감정이 학습되는 것이다. 
'학습된 감정'은 언론이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만들어내는 어뷰징abusing 기사에 유용한 소재가 된다. 저마다의 어젠다와 정파성을 가진 언론들은 논쟁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네티즌이 그들의 에코 체임버 안에서 증폭시킨 감정적 표현을 인용하며 이에 대하여 누리 꾼들은 ○○이라고 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라는 식의 기사를 수십 건씩 내보낸다. 또한 정치 유튜버들이 내뱉는 혐오와 분노의 표현은 그에 대한 찬반-호오와 무관하게 이목을 집중시킨다. 따라서 이들의 발언을 제목에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클릭이 보 장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언론사들은 그러한 어뷰징 기사를 양산함 으로써 추가 논증과 취재의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채, 저마다의 의도대로 여론을 왜곡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사이버 렉카는 정치·사회·경제·스포츠·엔터테인먼트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거칠고 자극적일 뿐 새로운 정보가 없는 대부분의 사이버 렉카물은 앞서 살펴봤던 뉴스레터 카드뉴스만큼의 가치도 없다. 그런데 개중에서 정치 이슈를 다루며, 요약정리보다는 정치적 스탠스가 반영된 해설에 주력하는 방송이 있다. 흔히 말하는 '정치 유튜브'다.
뉴스레터 등의 디지털 큐레이션은 교양의 외주화가 낳은 현상이다. 정치 유튜브는 교양의 외주화가 더 퇴행한 것이다. 이들은 사이버 렉카의 특징을 공유한 채 교양의 외주화 및 감정의 외주화의 기능을 겸비한다. 물론 지상파 방송이나 주류 언론에서는 발견하기 힘 든 소수의견을 소개하고, 거대 미디어의 어젠다에 반하는 저항적 정치 독해를 보여주는 정치 유튜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중에게 주목받기 어렵다. 쉽고 재밌게 풀어주는 영상들 이 널려 있는데 그런 영상을 보며 머리 아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사안을 쉽고 재밌게 풀어주기만 한다면 문제 삼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 유튜브는 사안을 단순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작자가 가진 정파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그들의 입장을 유일하게 옳은 시각이자 해법이라고 암시하거나 노골적으로 강요한다.
- 프로보커터가 상연하는 도발 행위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가장 흔하면서 쉽고 효과적인 도발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인물을 타깃으로, 그의 기분이 최대한 나빠지도록 모욕적 언사를 던지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싸움꾼형 프로보커터다. 비유하자면 정치색이 더해진 트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로서는 상대가 발끈하는 반응을 보일수록 감사한 일이다. 특히 그 타깃에 대한 여론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양분되어 있다면 금상첨화다. 한 번의 도발로 그 반대 진영의 열화 같은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을 만듦으로써 우리 편'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공격 대상과 그 내용은 프로보커터 본인의 정치적 신념과는 무관하다. 짐작컨대, 처음부터 정치적 반대자를 공격하기보다는 여론의 형세를 살피다가 그에 영합하는 손쉬운 먹잇감을 찾아 적으로 만든 다음, 자신의 대외적 이념이나 정치 스탠스를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프로보커터가 타깃에게 퍼붓는 모욕이 원색적 욕설에 그쳐서는대중의 이목을 끌기 어렵다. 그런 유의 도발은 인터넷 기사나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달리는 악플과 다를 것이 없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다시 말해 프로보커터에게 요구되는 퍼포먼스 능력이란 연예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기발하거나 재미있다는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이 구사하는 도발은 조롱조의 깐죽대는 어투와 제스처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그와 비슷한 성향의 구독자나 시청자에게만 어필하며, 반대 진영을 설득시키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프로보커터의 도발 행위를 재미있게 받아들인 사람은 함께 키득거릴 사람을 찾아 이를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한다. 그렇게 도발에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형성되는 유대감은 덤이다.
- 도발 행위의 또 다른 유형으로는 음모론을 무기로 한 선동이 있다. 음모론은 다시 전통적(?) 음모론과 '도발을 위한 도발'로써의 음모론으로 나뉜다. 전통적 음모론자는 최대 다수를 설득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찾아낸 사료와 통계와 데이터를 짜 맞춘다. 이를 밑그림으로 그럴싸한 정황을 완성한 뒤 나름의 수사와 논리로 포장해 선동한다. 때마침 화제가 되는 이슈나 이벤트가 있을 땐 닥치는 대로 가져 다가 주장하는 바의 '근거'로 욱여넣는다는 점에서 사이버 렉카의 성격도 띤다. 이런 유형의 프로보커터에게서는 나름대로의 장인 정신과 헌신마저 엿보인다. 제대로 된 음모론은 음모론처럼 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싸움꾼과 음모론자 각각의 가장 악질적 요소, 그리고 가장 나쁜 의미의 관종이 결합한 삼위일체' 유형이 있다. 이 범주의 프로보카터가 주목받는 방법은 그야말로 최대치의 극악무도한 '개소리'를 최대한 많은 사람 앞에서 배설하는 것이다. 싸움꾼처럼 특정인을 겨냥할 필요도 없고, '나만 아는 어떤 흑막의 진실을 알려주는 양 포장하고 연기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선을 넘나드는 마구잡이식 막말과 망언의 향연을 펼칠 뿐이다. 그렇게 해서 구설에 오르기만 하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다. 이런 유의 배설은 분노를 유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터무니없음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경멸과 분노의 대상과 비웃음거리를 오가는 이런 유형의 프로보커터는 '우스꽝스러운 음모론'과 비슷하게 주류 매체에서 진지하게 소개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더라도 이들의 개소리'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서브컬처 공간에서 알음알음 공유되면서 입맛에 맞는 '에코 체임버의 연료로 쓰일 수 있다.
- 프로보커터는 사회 문제의 원인을 몇몇 개인 혹은 집단으로 의인화한다. 진중권은 부동산 문제, 공정 논란, 불황 등 우리가 직면한 온갖 문제들을 현 정부·여당의 무능력과 비위에 귀속시킨다. 이들만 사라지면 모든 게 해결되기라도 하는 양, 사회 각계각층에서 터져 나 오는 모든 불만을 현 정부를 향한 원한과 증오로 끌어가기 위해 갖 은 노력을 기울인다. 동조하지 않는 이에게는 돌대가리'라는 폭언도 주저하지 않는다. 진중권은 과거 민족해방 계열의 운동권에 대해 사회의 모든 모순을 미국 제국주의에 환원한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이명박·박근혜 집권기에 정권만 타도하면 민주주의가 회복되리라고 선전하는 민주당 인사들에게 일침을 날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때의 진중권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단순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오늘의 자신을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까?
진중권은 이제 음모론까지 만지작거린다. 그래도 진중권표' 음모론이라면 어딘가 정교하고 근사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섣부른 편견이다. 그는 2020년 당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을 겨냥해 일개 장관이 저렇게 폭주하지 못한다. 어디에선가 오더가 떨어진 것이다'라는 주장을 그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어디 에도 근거는 없었다. 진중권이 구사한 배후설'은 음모론자의 클리셰다. 모든 일의 흑막 뒤에 대통령 문재인이 있다는 암시를 던진 것이다. 정작 이런 주장을 하기 불과 일주일 전, 진중권은 “문재인 대통령은 허수아비”라며 586 청와대 실세들이 국정을 농단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아무리 봐도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같지는 않 지만, 굳이 독해하자면 어찌됐건 결국 대통령이 문제이며, 모든 사태 의 책임은 586으로 표상되는 정부 인사들에게 있음을 설파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 아내가 바람났다고 믿는 남편에게는 반드시 바람난 아내가 필요하다.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슬라보이 지제크에 따르면, 아내가 정말로 외간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남편의 질투 혹은 망상은 병리적인 것이다. 지제 크는 비슷한 경우로 이런 예도 든다. 나치가 유럽의 유대인에 관해 주장했던 것들이 설령 전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반유대주 의는 여전히 병리적 증상이다. 유대인 혐오가 있어야만 이데올로기 로서 나치즘이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람난 아내를 두었다고 믿는 남자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밖에서 놀아나는 헤픈 아내를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무능력하고 비루한 삶을 지 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문빠와 대깨문이 정치적 밈으로 기능하는 까닭은 해당 표현을 꺼내는 것만으로 '그들'과 '우리'의 분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즉 문빠와 대깨문은 문재인 정부와 그 지지자들을 '그들'로 배제함으로써, 그 말을 사용하는 '우리'를 반문 반민주당 세력으로 결집하는 기표 다. 정부·여당을 이로정연하게 옹호하거나 야권에 불리한 논거를 차 근차근 제시하는 이를 상대할 때조차 '네, 다음 대깨문' 한마디면 충분한 것이다. 이 마법의 센텐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을 이성을 상실한 맹목적 충성분자로, 그의 모든 언설을 무가치한 기도문으로 기각할 수 있다.
- 그러나 이러한 밈의 기능이 효율적이긴 하겠지만 별다른 효과가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대깨문은 본래 문재인 지 지층이 유행시킨 말이다. 반대파에게 전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 들 다수는 자랑스럽게 대깨문을 자처한다. 즉 아무런 타격감이 없다.
무엇보다 문빠나 대깨문이라는 밈에는 투쟁의 요소'가 없다. 단 지 반문 성향 유권자들끼리의 세력화를 도모하는 밈이기 때문에 특정한 정치적 견해가 없는 부동층에게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에 견줘 밈이 '우리'로 호명하는 대상이 너무 추상적이다. 반문이라는 것 말고는 '우리'를 특징짓는 조건이 없기에 결집은 느슨하게만 이루어지며 따라서 쉽게 분산된다. 이러한 한계는 앞에 서 소개한 '커크서버티브'나 '부머' 밈과 비교하면 한결 명확하다. 커 크서버티브는 엘리트-비엘리트 간 투쟁과 반反PC 의제를 표상한다. '부머 밈에서는 세대 갈등의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그에 반해 '대깨 문은 그것을 멸칭으로 사용하는 자의 우월감을 드러내고 고양할 뿐, 특별한 어젠다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바로 김어준이 상대 진영에서 일으키는 도발을 또 다른 도발로 제압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김어준은 자신이 이 역할에 그 누구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수년에 걸쳐 증명해왔다. 따라서 문재인과 민주당 정부로서는 김어준과 최대한으로 거리를 두면서도 상대 진영과의 진흙탕 싸움은 그에게 아웃소싱하려고 들 것이다. 진중권-보수언론 관계와 유사하게, 영향력과 하청을 주고받는 상부상조가 유지되는 한 김어준은 여전히 쓸모가 있는 인물인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정치 이슈가 터질 때마다 김어준의 해석과 논 평에 귀를 기울인다. 기본적으로 기성 언론을 불신하기에 우선 그가 개진하는 '우리 편'에 유리한 정파적 해설로나마 불안감을 해소하려 드는 것이다. 한편 보수언론은 그들대로 김어준이 음모론을 꺼내 들 때마다 그의 말을 인용한다. 이는 물론 진중권이나 서민을 인용하는 것과는 반대 의도로 '친문 논객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 '정부 여당 지지자들이 이렇게 비합리적이다'라는 메시지를 퍼뜨리 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김어준에게는 도움만 될 뿐이다.
- 앞서 소개한 프로보커터들처럼 사회적 문제를 의인화 단순화하는 것은 진보 정치의 본질을 부정하는 일이다. 강준만 교수가 지적하듯 대개 보수는 '이익 지향적', 진보는 가치 지향적'이다. 진보가 지향하는 가치와 그 실현 방안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한두 가지 메시지로 진영을 결집하는 것이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 충돌하 는 여러 가치와 요구들을 잠시 묻어두고 공공의 적과 맞서는 전선 아래 최대 다수를 결집해내는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전략이 필요하 다.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는 특정 사건을 계기로 이런 결집이 이뤄진 극히 예외적 케이스다. 물론 현재 국민의힘으로 표상되는 수구 세력에 대한 반감을 등에 업고 그들을 도발하는 동시에, 한두 가지 매력 적인 진보적 의제로 지지자를 결집해내는 이가 있다면 그를 좌파 프로보커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의 역할은 김어준이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능숙한 퍼포먼스를 펼칠 역량 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우파 코인' '반페미 코인' 등을 노리는 프로보커터가 속출하고 있다. 담론의 중심은 인터넷으로 옮겨간 지 오래 다. 동시에 데이터 시대의 주목경제, '선 넘기'의 문화, 사유의 외주화 에 가속이 붙음에 따라 우파 프로보커터는 계속 급증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우파 유튜버와 극우주의의 문제는 침소봉대 하거나 과도하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 유권자들이이 극우와는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 보수언론이 조은산이나 삼호어묵을 띄운 것은 그들에게 대단한 필력이나 혜안 이 있어서가 아니다. 진중권 저널리즘 이후 그들의 새로운 '입'을 찾 으려다가 별 소득이 없자 일개 장삼이사에게까지 보수 결집의 기표 를 위탁하는 것이다.
물론 조은산과 삼호어묵은 프로보커터가 아니다. 이들이 개진한 논평과 발언은 도발이나 트롤링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이들의 사례 가 드러내는 것은, 언론은 늘 그들에게 입을 빌려줄 새로운 스피커를 찾고 있으며, 검증이나 반박이 불가능한 어그로성 게시물들을 언제 든 인용 보도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서민 등의 언 제든 인용 저널리즘은 시작일 뿐이며, 좌은산 우삼호'라는 인위적 유행어는 그들을 잇는 신선한 '어그로꾼'을 모색하던 중에 발생한 시행착오에 지나지 않는다.
- 보수 진영의 새로운 '입'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전방위적이다. 진 중권 저널리즘을 시작으로, 내로라할 진보 학자들의 발언들이 정부· 여당 공격의 차도로 활용된다. 최장집 홍세화 강준만 등 진보 진영 의 명사들을 보수언론이 적극 인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 진영 내 스피커 부재의 대표적 징후다. 따라서 진보 성향의 학자와 연구자·비평가들은 사회문제를 다룬 논문이나 비평에서 또는 소셜미디어에 개인 의견을 피력할 때조차 논리와 수사법에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 다. 그들의 말이 언론의 입맛에 따라 편집되고 전유되어 주장의 진 의, 논의의 맥락을 상실한 채 보도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보수 진영의 '대변인이 되어 '쓸모 있는 바보'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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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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