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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번영

경제 2014. 11. 6. 22:07

 


악의 번영

저자
다니엘 코엔 지음
출판사
글항아리 | 2010-12-16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프랑스 아마존 종합 베스트 3위 "2009년 가장 많이 팔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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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살펴보면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후 500년까지 서양은 매우 가난했음. 고대의 그리스 로마 사회는 엄격하게 기술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결코 뛰어난 창조사회는 아니었음. 그 사회는 수차를 만들었지만 진정으로 수력에너지를 사용하지는 못함. 또한 유리제조법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태양광선을 이용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안경을 만들지는 못했음. 신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 사이에 나타난 농업이나 금속, 도자기, 직물의 제조와 같은 기술적 도약과 비교해보면 그리스 로마의 기술발전 속도는 매우 느렸음. 농업부문에서 그리스 로마 사회가 벌인 관개사업의 규모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루어진 관개사업의 수준에 이르지 못함. 제조업 부문에서도 고대와 중세의 유럽은 중국이 달성했던 발전에 크게 뒤처졌음. 뛰어난 로마의 실용주의는 사회적인 것이었지 기술적인 것이 아니었음. 즉 그것은 행정, 정치, 법률, 군사조직에 관한 것이었음. 위대한 기술자와 건축가, 그리고 다리, 도록, 수도교를 만든 탁월한 건설자, 숙련된 무기사용자들은 기계의 사용과 개선의 특혜를 누려야 할 곳이 농촌이나 작업장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음.

- 노동을 사회적, 지적으로 정교화하지 못한채 노예제에 끈질기게 의존함으로써 생산의 공간은 회복시킬 수 없는 주변으로 밀려나고 말았음. 그로 인해 로마 문명은 마차 사멸한 궤도와 같은 것이 되어버렸음. (스키아보네, 몰락 운명)

- 어떤 이론도 12~18세기에 유럽이 겪었던 급진적 변화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함. 그러나 로마제국의 멸망과 그 이후 이 주인없는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유럽의 신생 강대국들 사이에 빚어진 대립관계가 유럽의 정치, 경제, 그리고 도덕의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함.

- 1689년 권리장전에 명기된 13개 조항은 대헌장에서이미 제시된 의회의 재정권을 천명한 것이었는데, 국왕은 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올리거나 군대를 징발할 수 없다는 것이었음. 왕국의 재정을 의회의 감독아래 두게 된 것은 왕국에게도 좋은 일이었음. 그렇게 함으로서 은행가들은 안심할 수 있었고, 국가는 낮은 이자를 내며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음. 1688년 이전에 평균 9%였던 이자율은 1750년에는 3%로 낮아짐. 영국의 경제적 성공은 더 나은 제도들, 즉 개인소유권의 보장과 과도한 세금으로부터의 보호덕분인데, 의회가 이에 대한 훌륭한 감시꾼의 역할을 함. 이런 설명은 상당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의 비판을 받음. 실제로 민간 이자율은 영국혁명 이후 낮아진 것이 아니라 높아졌고, 오랫동안 유럽 이웃나라들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음. 그런데 바로 상업적 거래에 적용되는 이 민간 이자율이 투자와 자본축적을 위한 자금조달에서 실제로 중요한 이자율임. 그래서 1688년 영국혁명이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했다는 것은 현실과는 맞지 않는 주장임.

- 르네상스는 인구가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식량부족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15세기 중엽에 해당. 적은 인구 덕분에 사람들은 비옥한 토지를 집중적으로 경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유럽에서 농업생산성의 증대를 가져왔음. 또한 이런 과정은 일부 사람들에게 도시로 이주해 상업에 종사할 자유를 제공했음. 그러나 동일한 원인이 동일한 결과를 낳는 일이 다시 발생. 17세기 중엽에 유럽 인구가 14세기 초의 수준을 회복하면서 농업에서의 제약이 다시 나타남. 14세기 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기근, 페스트, 전쟁이라는 세가지 재앙이 다시 유럽을 괴롭혔음. 30년 전쟁 동안 이질, 티푸스, 천연두, 페스트가 창궐했으며, 기근이 정기적으로 프랑스를 덮쳤음.
- 18세기 유럽인들의 삶은 그보다 수천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보다 좋지 않았음. 물론 수많은 대중에게 기생해서 살았던 몇몇 부자들의 삶은 매우 풍요로웠음. 이 모든 것들을 요약하는 핵심적 역설은 다음과 같음. 즉 맬서스의 세계에서 불평등은 대단히 좋은 것이다.
- 맬서스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의 또 다른 핵심적 역설은 노동이 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 한 사회가 더욱 열심히 일할수록 노동에 대한 시간당 수입은 오히려 줄어듬. 수렵,채집인들은 영국의 1차산업 노동자보다 적게 일하면서도 같은 정도의 수입을 얻었음. 19세기 초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10시간, 일년에 300일 이상 일했지만 최종 수입은 수렵,채집인들과 동일.
- 가난하지만 성장하는 국가에서 사는 것이 이미 부유하지만 정체된 국가에서 사는 것보다 나음. 프랑스인들이 영광의 30년을 광적으로 환영했던 것도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언제나 새롭게 채워야 할 흰종이와 같음. 어떤 순간에 경제적 성장이 매우 빠르더라도 성장이 느려지면 그 사회는 다시 좌절감에 빠질 것임.
-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사회는 물질적 개선을 통해 사회적 고통을 잠재울 수 있음. 그러나 이런 모델의 가장 큰 약점은 부패한 사회체제를 유지시키는 자금줄이 마르게 될 때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점. 또한 풍요로움이 일시적으로 흔들리고 흐름이 끊기게 될 때 찾아오는 정통성 상실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임.
- 중국은 14세기에 이미 영국이 400년 후에야 경험하게 되는 것과 같은 매우 유사한 산업혁명을 겪었음. 생산성이 높은 베트남 쌀 재배와 같은 농업혁명 덕분에 중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도시화 됨. 직물업과 철강업도 발전. 중국은 당시 산업혁명이라는 문턱에 서 있었던 셈. 또한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공기압력의 원리를 알고 있었음. 따라서 순전히 기술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증기기관을 만들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었음. 그런데 중국인들은 왜 이것을 발명하지 못했을까? 포머란츠는 지리적 차이가 유럽과 중국의 운명을 갈라 놓았다고 보았음. 중국의 북부와 북서부에는 거대한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음. 중국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석탄을 코크스로 전환할 줄 알았음. 즉 유럽이 야금을 위해 1700년에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석탄을 중국은 이미 1000년 경에 생산하고 있었음. 그러나 14세기 초에 몽고가 침입하면서 석탄생산활동은 혼란에 빠지게 됨. 1420년 이후에는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지만 중국에서 인구와 경제의 중심지는 남부로 향함. 석탄의 채굴은 북부에서 다시 시작되었지만 이것은 더 이상 사회혁신을 선도하는 부문이 되지 못함. 남부의 잠재적 석탄 사용자들과 북부의 생산자들은 전격적으로 만나지 못함. 랜디스는 문화적 차원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함. 그에 따르면 중국은 점차 정치 및 철학의 차원에서 정체주의에 빠졌고 이러한 분위기는 대외교역을 금지시킨 명대에 최고조에 달했음. 몽고의 침입으로 인한 혼란기가 끝나자 명 왕조는 내적 안정성의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외부 세계로의 탐험은 부차적인 것이 됨. 정화가 아프리카로부터 기린과 얼룩말을 들여왔지만 황제는 이러한 탐험이 비용만 많이 들고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 이러한 정책은 교역과 산업을 위축시켰고 부패와 족벌주의를 조장했음. 유럽에서는 강대국간의경쟁이 혁신을 자극했던 데 반해 중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음. 내적 안정성에 집착했던 중국은 유럽보다 먼저 시작했던 역동적 혁신을 그만 두었던 것.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지 수십년 전에 중국은 안정을 선택했고 안으로 침잠했음. 반면 유럽은 그 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
- 중국의 경우 이주 노동자가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대체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함. 중국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어머니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소위 후커우 정책을 따라야만 함. 이 후커우라는 견고한 규율은 공공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함. 아이들은 부모의 공식적 후커우 내에서만 공립학교와 보건체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음.
- 후커우 제도는 이주 노동자들을 자신의 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취급을 받도록 만드는 거의 불법에 가까운 수단임. 이 제도는 중국인에 대해 이중 구조를 만들어냈음. 후커우는 경제적 관점에서 볼때 비정상적인 것이며 정치적 영역에서 볼 때 수치스러운 것임. 경제저 관점에서 이 체제는 매우 비효율적. 무엇보다 이주 노동자들의 직업경력이 단절됨. 가정을 꾸리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 중국에 큰 손해임. 그들의 자녀는 도시에서의 삶을 다시 배워야 하고 매우 힘들게 사회에 편입됨. 또한 농민들의 도시 중산층으로의 상승도 단절됨. 그러나 정치적 관점에서 이 체제의 이점이 08년 위기때 나타남. 경기침체의 첫번째 희생자는 침체와 함께 바로 자산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던 노동자들이었음. 이들은 노동권의 보장을 받지 못한채 가장 먼저 해고를 당해야 했던 임시 노동자계급이었음. 이처럼 후커우 제도는 매우 비정상적이고 잔인하며 장기적으로 보면 성장에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것임. 하지만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는 기간에 위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부터 먼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효율적 제도이기도 함.
- 세계로의 개방을 미루었던 인도는 확실히 경제발전에서 뒤처졌지만 이러한 지체는 오히려 오늘날 성장의 기반이 되고 있음. 즉 개방의 새로운 시기에 인도는 원시적 상태로 그대로 축적되어 있었던 잠재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이것은 현재 인도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음. 정보 산업이나 제약산업의 경우 인도 정부가 세계 시장과의 단절속에서 발전시키려 했던 원래의 정책은 실패했지만, 바로 이 실패의 기반 위에서 최근의 성공이 가능할 수 있었음. 개방 전에 인도 정부는 제약 산업 종사자들이나 엔지니어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창조하라고 요구했음. 그것은 당시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러한 정책을 통해 인도는 개방에 맞설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을 갖게 됨.
- 영란은행에서 금융위기를 책임지고 있는 앤드류 홀데인은 흥미롭게도 시장 금융을 대규모 전력망에 비유. 전력망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력의 수요와 공급간에 부분적으로 불균형이 발생하더라도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음. 전력망 일부에 과다수요가 발생하면 다른 부분이 그 수요를 충족시킬 전력을 공급하기 때문. 전력망 자체가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수행. 그러나 일부분의 불균형이 어떤 결정적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그 반대의 현상이 발생.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매우 사소한 문제가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의 전기를 끊어버려 전체를 어둠속에 빠뜨림. 홀데인은 금융위기를 전염병에 비유하기도 했음. 그에 따르면 생물학이나 유행병 연구분야에서의 중요한 결론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음. 체제의 복잡성이 다양성의 감소를 동반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떤 위기가 발생하면 그 결과는 매우 치명적임.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그동안 전체적으로 어종의 40퍼센트가 사라졌음.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종의 구성이 균질적인 곳에서는 이 수치가 60퍼센트에 달했고, 종의 구성이 다양한 곳에서는 10%정도에 머물렀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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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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