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드러나지 않는 가상의 데이터 논리가 현실 세계 에 거꾸로 미치는 관계망을 피지털 phygital 이라고 부르자. 원래 피지털은 온·오프라인 소비 경험 차이를 줄이려는 소 위 블렌딩 마케팅 용어로 쓰이고 있었다. 이 용어를 비물질 의 '디지털digital' 세계와 물질의 '피지컬physical' 세계가 부 딪쳐 생성되는 새로운 교접 영역으로 일반화해보자. 즉, '피지털'은 물질계와 디지털계 사이에 관계 밀도가 높아진 것 에 착안한 용어라고 보면 좋겠다. 그 둘 사이에 끼인’ 무수 한 상호 관계 흐름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혼종hybrid의 접경지를 일종의 '피지털게界'라고 부를 수 있다.
- 빅데이터 문화가 그저 표준화된 문화산업 질서에 더해 현대 인의 창의적 표현과 자유의 영역을 신장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데이터 기술 원리로 인해서 대중 표현과 제 작의 자유를 거스르는 퇴행의 경향도 커진다. 한쪽에서 대중 의 빅데이터 문화 생산이 늘면서 시민 창의력을 확대하기도 하지만, 한쪽에서는 기업 데이터로 곧바로 흡수되어 플랫폼 운영자의 부를 확대하는 닷컴 산업 질서를 만들어낸다.
첫째, 유튜브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등에서 이용자들 각자 자발적으로 데이터와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 업로드하 면서 우리가 '재미'와 '놀이'를 즐기는 듯 보이지만, 이 자발적 문화 '활동'과 결과물은 거의 모두 플랫폼 장치 안으로 흡수되면서 문화나 정보 '노동'으로 포획되고 귀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즉, 우리 스스로 생산한 데이터 활동에 대한 적정한 보상이 이루어지거나 개별 소유로 남기보다는 주요 플랫폼 업자들의 데이터 분석을 위해 혹은 데이터의 사유화 속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거친다. 가령, 꿀벌과 양봉업자의 비유는 이에 꽤 잘 들어맞는 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은 꿀벌처럼 즐겁게 화수분을 행하면서 부단히 꿀을 모아 꿀통(개인 계정과 스토리라 인)에 담지만, 곧 그 수확물이 양봉업자(플랫폼 사업자)에 의해 포획capture되는 아이러니한 현실 말이다.
둘째, 플랫폼 알고리즘 분석과 취향 예측에 최적화된 문화 소비 주체가 되는 '알고리즘 주체algorithmic subject' 의 탄생은 개별 주체들이 세분화된 문화 선호를 꾀하지만, 정 반대로 심히 우려할 만한 계기도 갖고 있다. 가령, 맞춤형 콘 텐츠를 서비스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은 이용자 취향을 세분화하고 최적화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세분화 한 문화 취향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우리 취향을 한곳에 가두면서 점점 납작하게 만들고 정해진 경로 안에서만 가둘 확률도 높인다.플랫폼 알고리즘 기계는 이용자 활동을 분석해 그들을 유형화하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예측해 추천하면서, 각자가 좋아하는 것의 경계 밖 이질적이고 낯설고 타자화된 문화들에 대한 관찰 자체를 각자의 시야에서 아예 처음부터 자동 배제할 공산이 커졌다. 다시 말해, 빅데이터 기술 문화는 이미 존재하는 문화적 선호와 편견을 더 단단히 만드는 반면, 새롭고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대중의 접촉면을 현저 히 낮춘다는 점에서 대단히 문화 보수적이다.
셋째, 일반 시민과 누리꾼의 빅데이터 활동과 생산은 문화 생산과 정보 유통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전통 의 문화산업 노동시장 지형에서 보자면 일반 시민이 비공식 적으로 문화 노동의 최전선에 배치되는 효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온라인 크리에이터, 큐레이터,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 수많은 신종 노동자 그룹이 주류 미디어 문화산업에 흡수되거나 그 주변에서 광범위하게 문화산업의 외곽 '예비부대’ 처럼 기능하는 형국이다. 물론 이들 중 아주 극소수만이 경쟁 속에서 주류 시장에 진입하는 반면, 대부분은 플랫폼들에 매달린 채 매일매일 무급의 데이터 생산 문화 노동자들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대중의 데이터 활동에서 얻은 닷컴기업들의 수익에 대한 어떠한 적절한 보상책 혹은 사회적 증여가 부재한다.
넷째, 빅데이터 기술 문화는 가짜뉴스의 범람, 즉 진실과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혼돈의 시대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우리는 빅데이터에 의한 대중 여론 조작이 범람하고 '팩트 체크fact check'가 일상인 불투명한 현실을 앞으로 감내 하며 살아가야 한다. 데이터의 조작과 왜곡은 자연히 진실 값을 뒤흔든다. 가짜는 진실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진실에 위해危害를 가한다. 가짜가 범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 중은 그로부터 진실에 대한 판단을 대부분 유보하고, 데이 터 현실에서 진실을 찾거나 시간을 요하는 진실 찾기 행위 를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커질 것이다. 데이터 풍요가 사회 의 새로운 딜레마인 이유다.
- 한 기획사에는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크리에이터가 등록되어 있고, 이들은 보통 내부 연습생 과 정을 거친 후 하루에 보통 10여 시간 방송을 진행하는 전문 크리에이터로 길러진다. 이 신생 크리에이터 양성소들은 기 존 연예기획사의 조직문화와 유사한 문화 노동의 위계 시스 템을 갖추면서 전문직 업종으로 분화하고 있다. 기획사의 배경 없이 인터넷 방송을 행하는 대다수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그 누구도 강제 하지 않는 무보수 노동을 벌이며, 더 많은 '구독' 신청을 받기 위해 수없는 노력을 감내해야 한다. 물질적 보상을 얻지 못하면 대개 관심, 관계, 주목, 인기, 명성 등 정서적 보상과 보답에 자위하는 데 머문다. 물론 간혹 선택된 크리에이터가 만든 콘텐츠 가치와 스타성은 광고와 연동된 클릭과 별풍선 등으로 보상받지만, 그와 같은 금전적 보상이나 명성을 얻어 '스타'의 반열에 오 르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유튜브 유명인의 지 위는 연예기획사에 매인 그 수많은 이름 모를 연습생이 겪는 경쟁과 비애에 견줄 만큼 자기 자신을 혹사해야만 뭇 아마추 어 크리에이터보다 먼저 자신의 기회를 부여잡을 수 있다. 신흥 문화산업 시장은 한 여성 웹툰 작가의 말대로 압정’ 모양과 같은 계층 구조와 닮아간다. 전통적으로 피라미드 계층 구조라고 해서 중산층으로 상징되는 중간이 폭넓게 존재하는 사회구조와 달리, 거꾸로 뒤집어진 압정 구조는 그 중간 허리가 사라진 채 꽤 성공한 아주 소수의 상층 고 소득 유튜버만이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모양새다.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막힌 채 하층 밑바닥에 서 저 멀리 성공의 압정 끝을 욕망하며 하염없이 데이터 활동과 노동을 수행한다. 아마추어 혁신의 대중문화 본산이라할 만한 유튜브 시장은 이렇듯 혹독한 플랫폼 계층 질서를 통해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신흥 전장戰場으로 바뀌고 있다.
- 제이넵 투페키Zeynep Tufekci 같은 기술사회학자가 경고했던 바처럼, 유튜브의 알고리즘 편견은 본질적으로 이용자들을 오랜 시간 플랫폼에 붙들어두려는 과잉 욕망으로 유발된다. 투페키는 유튜브가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극단' 의 자극적인 맞춤형 콘텐츠나 '가짜뉴스'를 자주 노출한 다고 주장한다. 전 유튜브 추천 시스템 담당자였다가 해고 된 기욤 샤슬로Guillaume Chaslot가 영국 『가디언』 등 언론에 폭로한 내용에서도 투페키의 주장을 확증한 적이 있다. 유튜브에서 극우 성향 정치 콘텐츠들이 늘 성황이다. 인기 채널은 조회수 200만이 넘고, 보통 유명인은 수십만명의 구독자 수를 자랑한다. 그에 비해 진보 색채의 크리에 이터들의 활동이나 구독률은 저조하다. 실제 취향의 알고리 즘 편견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유튜브 '인기 영상' 코너의 추천에도 '가짜', '혐오’, '막말', 'B급 정서의 콘텐츠들이 자주 보인다. 그런데 극우의 유튜브 팽창 현상은 추천 알고리즘이 극단의 정서를 선호하는 후광 효과 탓일까? 당장 극우의 유튜브 성공을 알고리즘 탓으로 돌리기에는 관련 사회변수도 많고 입증도 어렵다. 안타까운 사실은 구글과 유튜브 등 플랫폼 자본이 운 용하는 알고리즘 추천 방식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른다는 데 있다. 이는 우리에게 '암흑상자(블랙박스)' 같다. 우리 모두 자발적으로 문화 노동을 하고 거기에 콘텐츠를 공급하려는 열정에 비해 이 알고리즘 기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무감하다. 게다가 이 글로벌 플랫폼이 기술설계에 대한 본원적 문제 제기나 설명 청구조차 쉽지 않은 치외법권 영역에 있 는 점도 문제다. 유튜브 플랫폼이 한국 사회에서 취약한 데 이터 활동과 노동을 흡수하고 절연絶緣된 각자의 취향에 가두는 블랙홀이 되었다면, 하루속히 이 거대한 문화 권력에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제하는 일이 우선이다.
- 공유경제는 우리 이웃과 친구 와 함께하던 식사, 잠자리, 카풀, 자투리 일손 돕기, 여름 농 촌활동 등 상호부조의 거의 모든 호혜적 가치를 시장 논리 로 흡수하고 있다. 시장과 화폐의 교환 없이도 잘 유지될 수 있었던 일상 문화나 상생의 덕목들을 거의 남김없이 플랫폼 에 예속시키는 일종의 '식신食神 경제에 가까워져간다. 향 후 커뮤니티 공유의 미덕이 오로지 공유경제를 통해서만 이야기되는 우울한 미래를 경계해야 한다.
- 신기술 대세론에서 보면 인간 노동은 어차피 '제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 자동화'라는 당위적 기술 명제 앞에 놓인 처치 곤란한 자원이다. 이런 논리 아래에서는 전통 적 직업의 소멸이나 대량 해고나 기술 실업은 감내해야 할 사회적 진통이자 순리다. 신기술 대세론에는 성장과 발전을 위해 산노동의 일부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고, 이를 잘 넘겨 야 새로운 첨단 경제 단계로 도약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생 존할 수 있다는 경쟁 위기의 수사학이 작동한다. 현재 플랫폼 경제 방향이 대세라는 주장은 과거에도 큼지막한 기술혁신을 통해 전통 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 저항에 우리 사회가 의연하게 대처했다는 그릇된 유사 경험들 에 기반한다. 기본적으로 이는 신기술을 중립적이고 사회에 좋은 상수값으로 두고, 성장과 발전주의적 미래를 계속해 욕망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신기술 대세론에서는 과연 우리에게 적정하고 사회적 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술의 적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에 대한 근본 물음을 빠뜨리고 있다. 회복력’과 ‘탈성장' 등 인류 공동선을 향한 과학기술의 재조정이 화두가 되는 오늘 날에, 약탈적인 플랫폼의 논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대안의 경로를 아예 찾지 않는 숙명론의 자세는 노예와 같은 무력감처럼 비춰진다.
- 실리콘밸리식 탈노동의 낙관적 미래 전망은 경제학 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1883~1946)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1930년경 케인스는 인류의 기술혁신으 로 인해 그로부터 꼭 100년 후인 2030년이 되면 큰 체제 전 환 없이도 주당 15시간만 일하면서 전 세계 노동자들이 나 름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예언했다. 케인스에 이어 미래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도 1990년대 중반 그만의 용어로 비슷한 '노동의 종말'을 예측했다. 또한 리프킨은 기술의 고도화와 자동화로 야기될 수밖에 없는 기술 실업’의 도래를 언급했다. 그는 사회적 급여'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오늘의 기본소득 논의와 유사하게 미래 탈노동 시대를 준비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케인스나 리프킨의 지적대로라면 누구보다 앞서 꿈꾸 던 자동화의 신세계가 곧 도래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주변 을 둘러보자. '화려한 공산주의'라는 말은 합리적 이성을 가 진 이라면 어느 누구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상향적 단어 처럼 들린다. 동시대 자본주의는 경기회복과 상관없이 저고용과 불완전고용 상태를 일부러 유지하면서,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임시직 노동자들에게 첨단 자동화 기계의 뒷일 처리나 보조역을 맡기는 불안한 노동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예컨대 실리콘밸리의 자동화 옹호론자들과 달리 미국 시카고대학 에런 베나나프Aatron Benanav는 자동화가 직접적 으로 탈노동을 가져오기보다는, 만성적인 세계 경기침체와 고용지수 악화가 오늘날 탈노동 효과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다. 고용 소멸과 불안의 직접적 원인이 자동화 기술이 아 니라 오히려 전 세계 국가들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있다는 베나나프의 시각은 꽤 현실적이다. 기술혁신이 가져오는 노 동의 종말론과 다르게 그보다는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회로 집약되는 자본주의 경기침체의 물적 조건이 장기 실업 문제 의 근본 원인이라는 해석이다.
- 미국 언론정보학자 메리 그레이Mary L. Gray의 말처럼, 안정적 고용이 해체되면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동화 장치가 아직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는 일의 틈새에서 기계 보조나 비서 역할자인 '고스트 워크(유령 노동)'를 주로 하는 노동인구로 대거 재편될 운명에 처해 있다.23 결국 자동화 논의는 숙명적으로 다가올 '노동 종말의 상상 시나리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질적으로 나빠지고 위태로운 기술 예속형 '유령 노동'의 부상을 어떻게 현실주의적으로 대면할지 를 따져 묻는 실천적 입장이 되어야 한다.
- 이탈리아 커먼즈 이론가인 마시모 데 안젤리스Massimo de Angelis는 우리의 온라인 활동과 탄소 배출의 밀접한 유기 적 성격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가령 누군가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 검색을 한다고 치면 5~10그램이 인터넷 브라우징을 하면 초당 20밀리그램의 탄소 배출을 초래한다. 단 몇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인터넷 검색에 소모되는 전력량은 보통 주전자 물을 끓이는 데 투여되는 에 너지와 맞먹는다. 한때 서구인들의 관심을 크게 받았던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 같은 가상현실 게임은 누군가 하나 의 아바타를 유지하려면 매년 1,752 킬로와트시kWh 전력량을 소모한다. 이는 약 1.7톤의 탄소 배출량에 해당하고, SUV자동차에 견줘볼 때 서울과 부산을 거의 5번 왕복 주행한 양과 같다.
- 미국 IT 연구·자문 업체 가트너의 조사에 따르면, 휴 대전화와 컴퓨터 등 첨단산업이 만들어내는 지구온난화 효과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방출의 적어도 2퍼센트에 이른다. 이것도 10여 년 전 통계치임을 감안해야 한다. 가장 최근인공지능 나우연구소AI Now Institute 자료에 따르면, 이들 닷컴기업의 지구 온실가스 효과가 2020년 거의 2배인 4퍼 센트 수준에 이르고, 다른 개선이 없다면 2040년에는 14퍼 센트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쉽게 비유하면, 현재 닷컴기업들의 화석 원료 소모 수준은 매년 전 세계 항공기들이 운행 중 방사하는 대기가스 배출량에 맞먹는다. 무엇보다 닷컴업계가 유지하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와 첨단 통신 인프라 장비의 냉각장치 가동을 위한 에너지 소모는 이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닷컴기업 탄소 배출량의 70퍼센트 정도가 이들 거대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고 있고, 이것의 지구 온실가스 효과 영향력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 문제는 코로나19와 같은 미생물 전염 바이러스의 전 파 주기나 양상이 더 잦아지고 영향이 갈수록 파국적이라 는 데 있다. 현재진행형의 코로나19를 비롯해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등만을 보더라도 불과 십 수 년 사이 우리는 바이러스 감염병의 쓰나미를 제대로 맛보고 있다. 전 지구적 감염병 위기는 자본주의의 무차별한 자연 개발, 생명과 환경 파괴, 공장식 가축 농장의 비윤리적사육 방식, 야생동물 식용 거래 등에 기인한 바 크다. 직접적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많은 전문가는 코로나19를 인간의 생태 교란과 동물 서식지 파괴로 인간과 동물 사이 접촉면이 늘어 생긴 '인수공통감염병'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즉, 자연 파괴로 인해 야생동물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바이러스 스스로 인간과의 밀집 환경 속에 적응해 자가 변이를 일으키고 인간을 새롭게 숙주로 삼고있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 미국 전 노동부 장관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가 코로나19로 새롭게 분화된 노동계급 질서를 언급한 것처럼, 비대면의 '원격근무 가능한 노동자The Remotes'라는 선택받은 엘리트 지위에 있지 않다면 우리 대부분은 비대면 소비 시장을 위해 감염에 노출된 '필수 현장 노동자The Essentials가 되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아니면 '해고나 휴직 중의 노동자The Unpaid 이거나 감염병 대처가 거의 불가능한 이주노동자와 난민 등 '잊힌 자The Forgotten’ 가운데 하나의 신분을 선택해야 한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파산한 수많은 자영업자와 해고된 노동자는 이 하위 세 계급으로 대거 편입 되고 있다. 당장 단기 노동 수요가 큰 유령 노동자 대열에 대 부분 합류할 공산이 크다. 아마존의 임시직 고용 상황은 이를 말해준다. 많은 기업은 노동 가치를 헐값으로 매길 수 있 어 자동화 대체 기회비용을 신중히 따질 것이다. 자동화 대 체 효과보다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감염 재난 시기 노동시장으로 인해 언제든 가능하면 산노동을 동원할 것이고, 비대면 접객이 필수가 된 소비시장에서는 선별적으로 자동화 기계의 대체 효과를 보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자 동화의 속도는 노동 대체 효과와 비대면 감염사회의 조건에 따라 차별적 · 선택적으로 스며들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 많은 사람이 우려했던 산노동과 자동화 로봇 사이 대립이나 대체 전망과 달리 이제는 좀더 유 령 노동과 자동화 로봇의 보완적 결합을 꾀하며 노동비용을 줄이고 노동 강도를 극대화하려는 기업 현실을 주목할 필요 가 있다. 기업들은 값싼 노동 인력을 활용하면서도 대면 접 촉을 우회하는 자동화 로봇의 소비시장 도입을 도모하는, 이른바 산노동과 자동화 기계의 절충주의적 노동시장을 구성할 확률이 높아졌다.
- 탈진실, 초현실, 필터 버블의 3중 효과는 모든 역사적 · 진보적·사회적인 가치의 자명한 질서를 불완전하고 비결정적인 지위로 만들어버린다. 우리가 알고 지내던 명징한 듯 보이 는 실재가 저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상징 권력은 특정의 가치와 담론을 앞에 내세워 자명한 질서 로 억지 강요하기보다는 혼돈 속 여럿 가짜를 기술적 알고리즘으로 자동 생성하거나 댓글 알바부대를 고용해 만든 가짜더미 속에 진실의 가치를 뒤섞는 데 골몰한다. 이와 같은 거짓과 허구는 진실처럼 군림하지만, 실제 어떠한 소통도 행하지 못하면서 계속해 우리가 시도하려는 현실의 비판적 인식을 방해한다. 탈진실의 가짜뉴스 시대에는 어찌 보면 가짜 정보와 노이즈를 대거 발산하는 쪽에 승산이 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 대한 흑색선전이 법리적으로 '근거 없다'는 법적 판단에도 비상식적으로 비방과 악플이 계속해 진행되는 것은 이와 같은 연유에서다. 결국 데이터 과잉과 가짜 정보의 질서 는 특정의 사안에 대한 진실이 저 멀리 사라지고 수많은 다 른 가짜 해석을 대중들에게 노출시키면서, 어떤 사안에 대 해 우리 스스로 사색하고 인지하는 것을 불안정하고 어렵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을 지닌다.
- 커먼즈라는 말의 어원은 '함께com- 의무를 진다.munis' 는 뜻이 합쳐 이룬 말로, 풀어보면 공동의 의무를 지닌 구성원들이 유지하는 유무형 공동 자원의 자율생산 조직체라 볼 수 있다. 즉, 커먼즈는 그 어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단 순히 원시의 물리적 장소 혹은 텅 빈 데이터 공간이라기보 다는 이미 그곳에 특정의 사회관계가 존재하고 그것의 이용 을 조직하는 구성원 공동체의 '권리' 개념이 굳게 터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커먼즈 운영에는 한 사람 이상이 참 여해 협력과 유대를 맺고 공동 자산이나 유무형 자원을 함 께 일구기 위해 내규內規를 만들고 지속가능한 가치를 끌어내려고 한다. 무엇보다 오늘날 커먼즈 운동은 기업私有과 정부公有에 의존하던 자원 관리나 경영 방식을 벗어나 시민 자치의 협동적 자원 관리共有 방식을 선호한다. 물론 여기서 '공유(커 머닝)'는 오늘날 공유경제의 '공유(셰어링)’, 즉 플랫폼 자원의 기능적 중개와 효율 논리와 다르다. 이는 특정 자원을 매개한 구성원들 사이 공동 이익을 도모하는 새로운 호혜적 관계의 생성에 방점이 있다. 다시 말해 ‘커머닝commoning'은 자본주의적 자원 수탈과 승자독식 논리를 지양하고, 시민들 이 유무형 자원들을 그들의 직접적 통제 아래 두고 이를 공 동 관리하며 다른 삶의 가치를 확산하는 과정에 해당한다.따져보면, 커먼즈는 이미 인류 역사와 함께했다. 가령, 숲, 토지, 수로, 어장 등의 자원을 관리하는 전통 마을이나 부족 공동체 문화가 그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본주의 시 장 바깥에서 주류 사회의 흐름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 하면서 외딴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는 약점을 지녔다. 그렇 지만 전통 커먼즈는 고유의 환경 자원에 기초해 지구 생태 규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오늘날 커먼즈 운동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만 전 지구적으로 더불어 같이하는 공생과 호혜성의 가치를 외부로 확장하는 능력과 상호 결속력 이 뛰어나다. 많은 부분 인터넷과 플랫폼 혁신 덕분이다.문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플랫폼 도입을 심각한 성 찰 없이 이를 '혁신'이니 '공유'니 하며 포장해오면서 실상 조직 설계 원리로서 ‘커먼즈'의 실질적 내용을 망각해온 데 있다. 그래서일까, 플랫폼 기술은 현실에서 온전히 사회 포용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인간 노동을 속박하는 불완전 한 기계장치로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 기능주의적으로 설계된 자본주의 플랫 폼에는 커먼즈적 상생과 호혜의 가치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 다. 플랫폼 기술설계에 자본 욕망이 우위에 서고 도구적 합 리성이 압도하면서, 다른 대안의 설계 가능성이 일시적으로 닫히고 막히게 되었다. 하지만 플랫폼은 언제든 우리의 필 요에 의해 또 다른 경로 설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