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에 박힌 위로의 말은 불안을 덜기 위한 해결책이 아니다. 마음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 역시 잘못된 처방일 수 있다. 두려워해야 할 때 두려워하는 것은 분별있는 행동이다
- 프랭클린 루즈벨트, 몽테뉴, 베이컨, 소로와 같은 지성인들은 표현방식만 조금 다를 뿐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밖에 없다." 두려움과 불안을 막을 도리는 없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 앞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불리해진다. 직접 대면하고 가늠해보지 않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면 우리는 제자리에 얼어붙어 꼼짝도 못하거나 뒤도 못 보고 줄달음치게 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나 당신 내면의 도움을 받아 두려움과 불안에 정면으로 대응하면 이를 스스로 감당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과 마주보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 두려움은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감정으로서 생존을 위해 우리 몸에 내재됨.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이 비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 두려움으 존재를 인정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가장 적절한 대처가 가능해짐. 두려움을 오해하거나 과장하는 순간에도 좌절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 대신 두려움에 모든 것이 휩쓸리려 하는 순가 위협의 실체를 다시금 살펴보고 도움을 얻는 방법을 터득하면 된다.
- 소설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은 "가장 믿을만하고 쓸모 있는 용기는 닥쳐오는 위협을 올바로 판단하는 순간에 솟구친다"고 말했다. 두려움이야 말로 이를 가능하게 한다. 두려움은 마치 메시지 전달자처럼 우리에게 지시를 보낸다. 신중하게 움직여라. 미친듯이 달려라. 멈춰라. 혹은 계속 가라. 새로운 도전을 하라. 적절한 두려움은 이처럼 자연스러우며 지극히 무해하다
-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해서가 아님. 손도 까딱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까봐 두려운 것.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그러나 정말 그런 순간이 닥친다 해도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 패배감에 젖어 완전히 포기할수도 있지만, 그 대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해낼 수 있다.' 이어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간혹 선택권을 떠올릴 틈도 없이 패배감에 빠져들지도 모르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시도할 수 있다. 결국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잘할수도, 못할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사실을 아는 시점부터 자신감은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 걱정할 때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결과를 몇번이고 반복하며 떠올린다. 하나의 시나리오를 떠올린 훙 또다른 시나리오를 떠올리는 것. 혹시 내가 전화를 받는 사이에 아이가 굴러 떨어지면 어쩌지... 아니 내가 다른 아기를 씻기는 동안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몰라...행여나 고독사 했는데 아무도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어쩌지...폭탄테러에 휘말려 죽게 되면...혹시...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지칠수 밖에 없다. 그러다 정작 걱정했던 일이 닥치는 순간에는 이를 감당할 여력조차 없게 된다
- 부모들이 자식에 물려준 두려움과 불안은 제대로 수선되지 않은 바지와 같다. 모르는 척 입기에는 딱히 편안하지 않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두려움들을 가늠해보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라. 이런 분류작업은 자녀의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해방감을 준다
- 문제행동을 당장 몰아낼 필요는 없다. 공포증이든 집착이든 우울증이든 오히려 이를 통해 자신의 성격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한동안은 잘 살 수 있다.
- 세월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답을 주기도 한다
- 인간은 완벽에서 조금 부족한 존재이다. 완벽주의는 이런 인간존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이 두려움 속을 똑바로 가로지를 때 당신은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 꼭 깔끔하고 완벽한 동그라미가 될 필요는없다. 우린 저마다 조금 찌그러졌거나 구부러졌으며,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인간 존재로서의 두려움은 가장 먼저 잠재울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또 다른 두려움과 좀더 쉽게 마주할 수도 있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잠시 접어두자. 자기 자신을 꾸미거나 감추거나 과장할 필요도 없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날 때 충만한 기쁨이 생겨난다
- 두려움과 불안은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는 순간에 생겨남.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현재부터 차례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깨어 있는 동안 혼잣말처럼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지금 바로 여기에 머무르자.' 두려워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만일 이런 일이 닥쳐온다면 한번에 하나씩 오기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도하자. 침착하게 호흡에 집중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지금', 내쉬며 '여기'라고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앞날을 예측하려 애쓰지 말자. 지금, 여기에 살며 얻는 매일의 선물을 즐겨보자. 당신이 바라는 한 이 선물은 계속해서 당신손에 주어질 것이다.
- 사실에 접촉하는 순간 평정심과 객관성, 생생함이 솟아나지만, 공상으로 빠져드는 순간 끝내 부안과 우려에 종착한다.
- 앞만 보고 날아가는 화살처럼 움직이지 않으려면 용기가 필요. 속도를 늦추고 잠시 쉬어가는 동안, 누군가는 당신이 예전같지 않다거나 나태해졌다고, 혹은 아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시선이 두려워 용기를 내기가 어려울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 마음의 건강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반응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말고 일단 그 자리에 앉아보라(틱낫한) 시간제한을 두지 말고, 구태여 뭔가를 얻으려 애쓰지 말고, 자리에 앉아 마음을 고요하게 잠재우는 시간을 가져라. 꾸준히, 규칙적으로 이런 시간을 갖다 보면 영혼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조용한 공간에서 내면에 가라앉아 있던 삶의 가치를 찾고 이를 실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당신이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뚜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 분노를 줄이고 마음속 불안을 달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 인간이 살면서 마주치는 가장 커다란 난관은 우리가 빌린 인생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것이다. 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분노와 불안에 똑바로 대면하고 존중하라. 이로부터 도망치려 하지말고, 소중한 하루의 순간순간이 망가지도록 내버려두지모 말라. 고통스러운 상실과 변화를 슬퍼하고, 무언가를 잃을 수 있따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여보자. 누구나 겪는 난관은 웃어넘겨라. 그리고 지금 주어진 것을 즐겨라.
- 해변에 갔다가 한 꼬마가 열심히 모래성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어찌나 흠뻑 빠져 있는지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 아이에게 파도에 모래성이 곧 휩쓸려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즐겁게, 온 힘을 다해 그 순간에 집중할 뿐이다. 꼬마는 몰입하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떠올리고 난후,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 슬픔, 후회 등 어떤 감정이 생기는지 살펴보자. 이런 감정이 행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친한 친구에게 하듯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완벽하지 못한 날 용서한다' 우리는 후회와 죄책감이 자기 자신을 공격하려는 순간마다 이를 저지하며 어김없이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이런 습관을 당신의 삶에 적용하고, 잘못된 일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자책하는 것은 멈추자. 원인을 추측하고 증거를 모으는 일에는 끝이 없고, 때로는 다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 도망치지 말고 두려움과 불안을 맞이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행동이다. 미처 긴장을 풀지 못해 말을 더듬거리며 두려움을 향해 인사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런 대치상태에서 몸이 떨려온다면 할머니가 손수 떠주신 옷이나 부드러운 담요를 어깨에 두르자. 믿음직한 친구와 함께 있어도 좋다.
- 어쩌면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서 두려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안녕, 너였구나. 차 한잔 마실래? 난 네가 누구인지, 왜 내 주변을 맴도는지 알고 싶어' 그 다음에는 귀 기울여보자. 상냥하고 편견없는 태도로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듣듯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향해 직접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당신의 삶의 지배하거나 하루를 망쳐던 두려움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침내 당신을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다.
- 그 어떤 커플이라도 하나가 될수는 없다는 사실. 완벽한 일치감을 주는 관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승려 로버트 에이트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이를 깨닫는다면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그 누구도 이런 현실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불 밖으로 나와 졸음을 떨치고 하루종일 깨어있을지 말지는 오직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바깥에서 구원자를 찾는 일을 멈추는 순간부터 당신 자신에게 의지하며, 내면의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정할 수 있다. 이런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당신 자신에게만 있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행동을 시작하면 자신감도 커질 것. 두려움은 과거로 밀쳐버리고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깊은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 감정은 가두행진을 따라가는 악단과 같다. 감정은 당신의 삶이라는 가두행진을 따라 흘러간다. 구슬픈 곡조를 연주하는 악단에게 흥겨운 곡을 강요하지 말고 행복한 연주를 하는 악단에게 더 오래 있어달라고 애걸하지 말라. 악단 공연을 취소하거나 지연시키거나 재촉하지 말라. 그저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연주를 하도록 내버려두자.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공연을 감상하는 것이다. 빠짐없이, 온전하게.
- 행동은 감정이라는 꼬리를 흔들며 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행동을 활용하여 감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행동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감정을 지속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행동하며 감정을 알아차리는 과정은 내적 성숙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 두려움은 우리가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 가리키는 표정역할을 한다. 만약 변화를 결정하고 행동한다 해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머리속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면 된다. 나의 진정한 가치는 내 노력의 결과와 관계없이 존재한다. 당신이 모든 것을 늘 증명할 필요는 없다.
- 힘든 시기가 닥칠 때 평화를 얻기 위한 조건을 달라지지 않음. 바로 용기이다. 삶은 당신이 엄두도 못내는 그것을 엄정하게 요구한다. 용기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심장 혹은 마음을 뜻하는 coeur로부터 생겨남. 말하자면 용기야말로 심장처럼 우리 생존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것이다.
- 항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바꾸거나 회피할수는 없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를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안의 용기를 빼앗고 내 앞을 가로막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일상에서 사소한 즐거움을 발견하고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삶의 기쁨과 의미가 조금씩 조금씩 되돌아올 것이다.
- 구태여 무겁고 칙칙한 돌덩이를 질질 끌고 다닐 필요는 없다. 때때로 삶은 비극이며,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기 때문.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해도 얼마 되지 않아 잊어버리고 돌덩이 하나를 더 껴안을지 모른다. 괜찮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과감하게 돌덩이를 던지고, 또 버리는 연습을 해야한다. 가볍고 경쾌하게 인생여정을 떠나기 위한 습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 우리는 왜 가치있는 존재일까. 그냥 단순히 생각하자. 우리는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가치있는 존재다. 우리 고유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마음이 좀더 느긋해지고 시간을 투자해서 자기방식대로 세상에 공헌할 방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자기의 가치를 뼛속깊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배려하는 단순한 행동은 곧 세상을 향해 친절과 열정을 베푸는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 유연하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유연성의 핵심은 현재 상황을 주어진 그대로 바라보고 이에 어떻게 반응하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계획에 따라 행동한느 것이 아니니 두려울 법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연해지기를 두려워한다. 누구나 계획이라는 단단한 기반위에서 움직이길 원하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하고, 미리 계획을 세워 목표를 추구. 하루, 일주일, 한달, 인생전체를 계획대로 생기길 바란다. 다만 문제가 있다. 제아무리 완전무결하게 계획을 짜놓는다 해도 늘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 철저히 계획을 지키겠노라 단단히 마음먹어도 삶은 융통성 없는 우리를 기어코 무장해제시킨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느닷없이 우리에게 닥치는 사고나 병, 실직, 자연재해, 범죄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 계획을 제멋대로 바꾼다. 실제로 위중한 병을 치료하는데 집중하거나 재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무너진 집을 보수하고 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려 애쓰다보면, 전에는 중요하다고 여겼던 계획이 얼마든지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 가야 하는데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거나, 아이를 봐주기로 한 보모가 갑자기 연락두절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급히 처리할 일이 있는데 컴퓨터가 고장나버리는 경우는 또 어떤가. 상황이 항상 내가 원하는대로 통제되지 않으며 새로운 조건이나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계획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달라진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유연해지겠다고 마음억어야 한다. 지우개와 연필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배운 나 자신을 축하해주자. 해야할 일을 끝까지 완수해냈다고 축하하는 것이다. 상황은 매 순간마다 변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 수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활력이나 열정이 넘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용은 그저 수용일 뿐이다. 여전히 주어진 상황에 불만스러울수도 있고, 이런 상황으로 이끈 운명을 원망할수도 있다. 하지만 수용을 끌어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절망에서 벗어난다. 그것이 스스로 절망에서 빠져나올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
- 춤을 추는데 발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고로 왼쪽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착용한 후에도 무용을 그만두지 않은 수드하 찬드라)
- 이 세상에서 손쉬운 일을 오직 죽음 뿐이다. 그렇다 마음편히 숨쉬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겨라.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삶을 끌어안아라.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두려움을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을 끌어안으며, 다음번에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버려라.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매 순간을 꽉 끌어안아주라. 얼핏 눈물이 고이고 마음 한구석에 아직 절망이 웅크려 있어도 안아주라. 매일매일 이 단순한 감사의 표현을 잊지 말자 조용히 읊조려도 좋고, 크게 소리 내어도 좋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안이라는 자극  (0) 2017.11.24
보이지 않는 남자  (0) 2017.11.21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0) 2017.11.18
미움받을 용기  (0) 2017.11.15
행복의 기원  (0) 2017.11.04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