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라는 철학자들의 주장에 익숙. 그래서 모든 일상의 노력은 삶의 최종이유인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함. 매우 비과학적인 인간중심적 사고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 세상의 많은 책이 행복해지기를 위해 의미를 찾아라, 가진 것에 만족해라, 긍정적 생각을 해라, 같은 조언을 함. 즉 생각을 바꾸라는 것. 맞는 말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허한 말장난 같기도 하다.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라고 조언한다. 이런식의 행복지침서를 읽고 행복해지기란 거의 불가능.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기 어려울까? 행복은 사람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 이것이 뜻대로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전체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생존에 절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상의 경험들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도 아니다. 최근 많은 학자가 의식적 사고의 중요성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생각하는 모습을 인간의 대표적 특성으로 꼽는다. 왜 우리는 이성의 능력을 이토록 숭배할까?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 중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부분만 볼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이 보이는 부분이 실제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기 때문.
- 우리는 의식적인 부분이 자기 행동의 원인이라고 믿음. 사실 일상의 수많은 선택과 행동은 의식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루어짐. 예를 들어 레몬향을 맡으면 사람이 갑자기 청결에 신경을 쓰게 됨. 세척제에 주로 레몬향이 첨가되어 있기 때문. 무의식에서 이 둘(레몬향과 청결)은 연결된다. 두 사건이 연합되는 경우, 하나(레몬향)가 활성화되면 거기에 연결된 고리(청소)도 함께 활성화된다. 이 과정이 본인도 모르게 자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레몬차를 마시던 엄마가 갑자기 걸레를 찾는다고 하자. 왜그러냐고 딸이 물으면 엄마는 의식수준에 떠오르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댄다
- 사회심리학자 팀 윌슨은 우리는 자신에게도 이방인같은 존재라고 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모르는게 자기 자신임. 멍청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많은 선택과 결정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 의식은 아주 한정된 용량의 값비싼 자원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오해를 하면 인간을 그저 생각하는 단백질 덩어리로 착각하며 살게 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문제도 생각이라는 아주 좁은 테두리 안에서 논하게 되고, 결국 행복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다
- 성비 불균형 때문에 남녀의 기질차이가 발생. 예를 들어 여자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엄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지향적 전략을 택하는 것이 유리. 그러나 수컷은 다르다. 어차피 최고가 못되면 짝짓기에서 낙오된다. 매사에 모 아니면 도와 같은 극단적 전략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작은 것에도 승부욕이 강함. 작은 골프공을 김부장보다 몇미터 더 날리려고, 연습장에 출근하며 쇠막대를 수천번 흔드는게 남자다. 승부욕 있는 수컷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드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다. 풀 한포기에서 국가수상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예외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 뇌는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일종의 생존기계다. 사자는 피하고, 믿을 만한 녀석과는 고기를 나누어 먹고 등의 깨알 같은 생존팁들이 담겨 있다. USB로 주지 않고, 유전적 정보로 저장해 우리 뇌에 심어 놓았다. DNA코드로 작성돼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적인 머리로는 완전히 해독되지도 않는다. 사실 우리가 이해를 하든 못하든 중요하지 않다.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몸이 손가락을 5개 만들도록, 체온이 떨어지면 몸을 떨도록,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정신을 쏟도록 자동 실행된다. 뇌는 생존경쟁에서 직면하게 되는 과제들이 무엇이고, 이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느 수백만년간의 생존기록서이다. 물론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세상과는 더이상 맞지 않는 습성도 있음. 식량문제가 해결됐지만, 아직도 우리몸은 지방이나 달콤한 음식에 정신을 못차람. 과거 우리에게 긴요했던 생존장치가 이제 약보다 병이 된 것은 우리 뇌가 문명의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
- 근친관계를 막는 첫단계는 우선 상대와의 혈연관계 여부를 파악하는 것. 인간은 어떤 단서를 통해 이런 판단을 내릴까? 학자들에 의하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단서는 유아기때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이 형제이기 때문. 물론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형제라는 단순한 공식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님. 예를 들어 이스라엘 키부츠 집단에서는 형제가 아닌 남녀가 어릴 때부터 함께 생활.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중 성인이 되어 서로 결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키부츠 출신의 남녀 아이는 서로 형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하지만 이들의 뇌에는 너희는 어릴때 너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어...수상해라는 경계이 신호가 켜진다. 그래서 성인기에 이르면 서로에 대한 성적 매력이 억제됨. 머리로는 혈연관계가 아님을 알지만 사랑의 화학호르몬은 좀처럼 생겨나지 않는다
- 미국 66개 도시 소비 형태를 분석해 보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사는 곳일수록 남자들의 과소비가 심함. 짝짓기 경쟁이 심할수록 무리한 지출을 해서라도 이성을 유혹하겠다는 의미. 그래서 남자가 넘치는 도시일수록 남자들의 카드빚과 부채율이 높다. 돌 대신 돈을 무기로 들었을 뿐, 구석기 시대의 수컷과 뭐가 다른가. 하지만 이런 동물적인 모습은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함. 도대체 어떤 여자가 자신이 가임기때 아버지와 접촉을 피한다고 생각하며, 어떤 남자가 다른 수컷들이 나타나면 자기가 무리하게 카드를 긁는다는 것을 의식하며 사는가? 그래서 완벽히 속는다. 자신은 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세련되고 고결하고 기품있는 존재라고 믿으며 사는 것이다. 인간은 이 자화자찬의 몽상에 수천년간 빠져 있었다.
- 행복이 최고의 선이라는 기초위에 현재의 행복연구는 세워졌다. 이 관점에서 보면 모든 행위는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일상의 일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 혹은 수단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한 철학자가 가졌던 개인적 견해일 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 칼텍의 물리학자 캐롤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물리적 법칙과 화학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인간은 수천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시계보다 복잡한 존재지만, 이 복잡성 자체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 위트 자체가 생존필수품은 아니다. 그러나 위트는 그 사람이 가진 마음의 수준을 나타낸다. 위트는 창의성의 표현이며, 높은 창의성을 가진 사람은 멋진 꼬리를 소유한 인간 공작새가 되는 셈. 창의성이나 별다른 재주가 없는 수컷에게 남는 옵션은 하나다. 다이아 같은 값비싼 돌을 선물하는 것이다.
- 행복의 본질은 개에게 서핑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서핑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점. 서핑과 생존, 차원이 다른 두 목표지만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이 필요하다. 개 주인이 사용한 수단은 새우깡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하돌고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은 기막한 설계를 했따.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쾌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얼어붙은 손을 녹일 때, '아 좋아. 행복해'라는 느낌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만 또다시 사냥을나다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 왜 동물은 쾌와 불쾌의 잣대로 경험을 나누는 것일까? 생존과 밀접한 결정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함. 쾌와 불쾌의 신호는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기회를 포착하도록 응원함. 뱀, 절벽, 사기꾼, 썩은 음식, 치명적 위협들이다. 이때 우리의 뇌는 두려움이나 역겨움같은 불쾌의 감정을 유발시켜 위험하니 피하라는 메시지를 전달. 감정은 그 어떤 매체보다 즉각적이고 강력하며 효율적이기 때문. 그러나 단지 위험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생존 불가. 비옥하지만 가보지 않은 낯선 땅, 매력적인 이성, 절벽에 붙어 있는 꿀이 가득한 벌집, 지금 당장 손에 쥐지 못한다고 실신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자원을 확보해야 함. 번호표를 쥐고 기다린다고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두렵지만 길을 나서야 하고, 고단하지만 열번을 찍어봐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의욕과 에너지를 요구. 따라서 그 노력에 상응하는 강력한 보상이 필요. 쾌감을 유발하는 정서들이 바로 이런 역할은 한다. 희열, 성취감, 뿌듯함, 자신감, 이런 치명적 매력을 가진 경험을 한번 맛보게 되면 또다시 경험하고 싶어짐. 그것을 유발시킨 모든 사건, 물체, 장소, 사람을 또 찾아나선다. 올스와 밀너 실험의 쥐들처럼, 스스로 인식하든 못하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장기적 생존확률은 높아진다.
- 오랜 진화과정중 어떤 큰 변화가 호모사피엔스의 뇌 발달에 기여했을까?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주요사건들과 유골의 크기 변화를 비교해보면 된다.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는 함께 생활하던 집단의 크기가 팽창할 때와 맞물림. 약 10여명의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정글을 나와 초원생활을 하며 집단의 크기는 약 150명 정도로 커졌다.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했고, 이들이 마음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하게 됨. 이처럼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다는 것이 던바교수의 '사회적 뇌 가설'의 핵심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스럽게 만드는 뇌, 한마디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뇌가 발달했다는 것. 인간이 인공위성을 띄우고 힉스 입자를 발견했지만, 이런 위업들은 사실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위해 똑똑해진 뇌에서나온 부산물. 그래서 비사회적 과제들은 그토록 낯설다.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골프는 뇌가 디자인된 원래 목적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 원인은 달라도 기능은 같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니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다.
- 마치 두통을 없애주듯, 진통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고통도 덜어준다. 놀랍지만 가능하다. 고통의 역할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다. 뇌의 입장에선 그 위협이 신체적인지 사회적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뇌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종류의 고통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다.
-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 핀란드의 인테리어 소품 등을 디자인했던 알바알토의 얼굴을 화폐에 새긴 나라다. 일상의 작은 경험의 가치를 아는 나라의 상징적 모습이다. 행복한 사회의 특성중 하나다.
- 돈은 마음막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줌. 그래서 초콜릿 같은 시시한 것에 마음두지 않게 하고, 이런 자극을 음미하는 능력을 감소시킴. 심지어 사람이라는 자극에도 관심을 덜 갖게 함. 돈을 생각할수록 카페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덜 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사양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초콜릿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자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행복은 복권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꼴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음.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짐
- 외모 상위권과 하위권 사람들의 행복값을 비교하면, 외모와 행복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음. 즉, 내가 다른 사람의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과는 관련이 없음. 하지만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주관적 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다. 외모뿐 아니라 다른 삶의 조건(건강, 돈 등)과 행복과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 영어로 becoming과 being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는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 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
-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아픔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의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그래서 항상 오버를 한다. 이것을 가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저것을 놓치면 너무도 불행해질 거라고.
- 적응이란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 행복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보면 야속한 일이다. 수년동안 몸과 약간의 영혼까지 팔아서 얻은 승진이 주는 즐거움도 불과 며칠이다. 그래서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는 표현이 오래전부터 학계에서 쓰여왔다. 적응 때문에, 그 무엇을 얻어도 행복은 결국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제자리 걸음을 한다는 뜻이다.
-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인 이유다. 그리고 수십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함.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되어버리기 때문
- 행복한 한방에 해결되는 것이 아님.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 행복의 기쁨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외햐엉이 높은 사람의 특성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사람을 찾고, 그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 외에도 외향성이 높을 수록 자극을 추구하고, 자기확신이 높고, 처벌을 피하는 것보다 보상이나 즐거움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둠. 외향적인 사람들이 타인을 찾는 본질적 이유가 자극추구임. 사실 사람만큼 자극적인 자극도 없다. 구체적인 이유야 무엇인든 외향성은 한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이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그들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데 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첫경험 시기도 빠르고 경험상대도 많다.
- 왜 사람에게 행복이 그토록 중요할까? 뇌의 행복전구가 켜지는 것은 개가 서핑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 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도록 하기 위해 뇌는 설계되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타인과 교류할 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그건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때다. 역으로 의무감이나 수단으로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가장 피곤한 일이 될 수 있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역시 사람때문이다.
-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다. 소득수준이 높은 북미나 유럽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도, 사실은 상당부분 돈 때문이 아니라 유복한 국가에서 피어나는 개인주의적 문화 덕분. 그래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국가소득과 행복과의 관계가 거의 소멸된다. 즉,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역으로 이 접착제가 부족한 사회는 경제적 발전을 이룩해도 거기에 상응하는 행복감이 뒤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음.
- 개인주의 문화의 어떤 점이 개인의 행복 성취를 유리하게 만들까? 역으로 집단주의 문화의 부족한 점은 무얼까? 우선 심리적 자유감이다. 자유감이란 사실 대단한 것은 아님. 그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보편적으로 지지해주는 문화가 있고, 이렇게 살기 위해 세상과 문을 닫고 기인이 돼야 하는 문화가 있다. 행복이라는 씨앗은 개인의 자유감이 높은 토양에서 쉽게 싹을 틔운다.
- 우리나라의 집단주의적 문화에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 장점은 일단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 무서운 응집력과 추진력을 발휘한다는 점. 축구응원, 금모으기 같은 것이 그 사례다. 한국의 기적적 경제발전도 이 덕분이다. 위기와 어려움에 대처하기 적합한 구조다. 하지만 만성적 긴장과 피로가 수반된다.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일상의 많은 것들이 옆으로 자유롭게 흩어져 있는 모양이 아니라 서열에 의해 위아래로 세워져 있는 식이다. 팀장과 부하직원, 선배와 후배,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런 수직적 문화에서는 구성원 각자에게 주어진 뚜렷한 역할이 있다. 자신의 칸 안에서 그 역할만 감당하면 된다. 가족으로서, 혹은 팀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주변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움. 그래서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이렇듯 타인중심적 생각은 행복 성취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음
- 파스타를 먹기 전에, 록키 산맥의 장관 앞에서 우리가 꼭 치르는 의식이 있다. 바로 사진찍기. 이렇게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영혼의 내용물보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얼굴형과 콧대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나라는 존재에 미치는 타인의 존재감이 너무 큰 것이다. 이렇드 과도한 타인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행복의 중요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자아의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 한국인들은 자칫하면 타인에게 삶의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세상을 나의 눈으로 보기보다 남의 눈을 통해 보려고 한다. 이때부터 행복의 걸림돌을 여기저기 만나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 우선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대단한 스트레스다. 인간의 뇌는 철저히 사회적인 뇌다. 생존과 직결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뇌의 최우선적 임무중 하나.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관심과 주의가 자동으로 집중되고, 집중하는 만큼 피로와 불안도 쉽게 온다.
-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타인이 모든 판단기준이 되면 내 행복마저도 왠지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 될 것은 느낌이 든다. 행복의 본질이 뒤바뀌는 것이다. 스스로 경험하는 것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왜곡된다. 이 과정에서 행복의 또하나의 적이 탄생. 과도한 물질주의적 가치, 저 사람 '행복할 만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우선 남들이 볼 수 있는 구체적 증거들이 필요. 내용보다 외형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 철옹성 같던 매슬로우의 이론도 최근 위아래가 뒤바뀌고 있다. 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자가 되려하고, 가장 빠른 직구를 던지려 할까? 즉, 왜 자아성취를 하려할까? 그동안 심리학자들은 온갖 도덕적, 철학적 이유를 더한 장황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적 해것은 모든 것을 간명하게 만들었다. 금각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피카소, 칭기즈칸 뿐만 아니라 자아성취의 교과서적 인물인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사실은 대단한 여성편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금강산을 찾아가는 이유를 본인도 모른다. 그래서 본인뿐만 아니라 심리학자들까지도 지나치게 긴 설명을 늘어놓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