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는 기술

예술 2022. 4. 16. 19:19

- 집중형은 단순하게 한 점으로 좁힌 표현입니다. 한눈에 주인공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분산형은 막연한 인상이라든지 전체적인 분위기 같은 것을 전하기에 좋습니다. 또한 분산형은 화면 어디를 보더라도 흥미롭도록 화려하게 꾸미기에도 좋습니다. 전체적인 인상을 파악하면서 두루 살피다 보면 세부에서 발견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같은 풍경화라고 해도 어딘가 한 점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집중형이 좋고, 풍경 전체의 인상을 전하고 싶다면 분산형이 좋은 선택입니다. 집중형과 분산형은 시대의 유행을 반영합니다. 단순한 표현을 원하는 시대가 있으면, 반대로 장식성을 선호하는 시대도 있습니다.
-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0-1895년
두 명의 주인공을 엮는 포인트는 중앙에 있습니다. 서로 내밀고 있는 카드를 잡은 손이 “매듭”이 되어 그림의 테마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서로 포즈나 주먹의 형태가 닮아 있으며, 카드의 명암과 두 사람의 명암은 상반되어 있다. 는 것을 아셨을까요. 오른쪽의 남성은 빛이 닿아 밝은 편인데 그가 가지고 있는 카드는 검은 색에 가깝습니다. 왼쪽의 남성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입니다만, 카드는 새하얗습니다. 이 둘 사이에 여러 요소들이 대비를 이룹니다. 재킷과 바지의 색이 서로 다릅니다. 모자의 가장자리가 이루는 곡선이 위를 향해 있거나 아래를 향해 있습니다. 파이프를 물고 있습니다/물고 있지 않습니다. 오른쪽의 남성이 좀더 몸집이 크게 느껴지지만, 카드를 쥔 손은 약간 아래에 위치합니다. 배경에도 대비가 있습니다. 오른쪽 남성의 뒤에는 세로선이, 왼쪽 남성의 뒤에는 가로선이 눈에 띕니다. 이처럼 여러 요소들이 두 개의 봉우리처럼 마주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든 카드가 이를 연결시킵니다.
- 화면 속의 네 모서리는 설령 아무것도 그리 지 않아도 눈길을 끕니다. 화가는 모서리의 인력(引力)에 맞서야 합니다. 물론 화면의 중심이 지닌 인력이 가장 강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는 모서리가 주의를 끕니다. 앞에 있는 물건이 사각형인지 삼각형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시선은 중심에서 벗어나 모서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쪽으로 빨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그대로 화면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우리 모두는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하지만, 화면의 이 같은 인력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화가의 입장에서는 관객이 그림을 구석구석까지 보기를 바랍니다. 그러자면 화면의 모서리로 끌려가는 시선을 한복판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모서리의 인력을 누그러뜨려야 합니다.
이 때문에 모서리를 회피하는 묘사가 나옵니다. 저는 이것을 “모서리의 수문장”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방향을 지시하면서 모서리를 누그러뜨리는 묘사가 있다면, 회전형 구도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 밀레(1814-1875)의 그림 이삭줍기는 등장인물 들이 아무도 관람객을 바라보지 않고, 두드러지는 요소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을 끕니다. 정돈이 잘 된 그림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시선의 경로에 있습니다. 이 그림이 마음을 끄는 이유는 지평선의 한 점을 중심으로 하여 전체 선이 우산 형태로 펼 쳐지는 구심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부터 보더라도 그 한 점에 이끌려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있으며, 마치 한지붕 아래에 있는 것 같은 잘 마무리된 기분이 듭니다. 이 점을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선이 모이는 한 점은 아무것도 아닌 건초더미이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고, 인물의 포즈는 배경의 1점 투시도법과는 어긋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왼편의 두 인물이 뻗은 팔도, 오른편 인물의 상반신도 소실점을 향합니다. 이 각도에는 필연성이 있었던 셈입니다.
이삭줍기에는 집중선형과 같은 알기 쉬움도, 십자형과 같은 단호함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점에서 크래커의 내용물이 분출되듯이 화면 전체로 시선이 펼쳐지는 구성입니다. 한 지점에 매달려 있는 듯 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리딩 라인은 화면 속의 중요한 요소에 적극적으로 시선을 유도하기보다는 화면을 전체적으로 정돈하는 구실을 합니다.
- 왜 사선을 사용하면 움직임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사선을 보면 수직을 향해 일어나려고 하거나 수평을 향해 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선이 오른편 위쪽을 향하는지 오른편 아래쪽을 향하는지에 따라서, 미묘하게 느낌이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는 오른쪽 위로 향하는 사선이 활발한 느낌을 주고, 반대로 오른쪽 아래를 향하면 불 안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은 오른쪽 아 래를 향한 사선을 구조선으로 삼아 비극적인 미래를 암시합니다.
- 모나리자는 어떨까요?
왼쪽 눈이 중심선 위에 정확히 놓여 있고, 어깨는 화면을 위아래로 양분한 선에 걸쳐져 있습니다. 두 개의 대각선이 만들어내는 삼각형(X)의 상부에 머리, 하부에 손이 정돈되어 있어서 안정된 느낌을 줍니다. 이처럼 상반신을 담은 초상화에서는 눈이 중심선이나 대각선 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살펴본 부분에서 알 수 있는 점은 화면의 십자선과 대각선이, 명화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선의 경로나 균형을 볼 때에 중심과 모서리와 가장자리를 무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초점과 구조선을 결정하는 데에 반드시 의식하게 됩니다. 물론, 꼭 선에 맞춰 배치하는 단순한 방식은 아닙니다. 십자선과 대각선이 화면 속에서 발휘하는 힘을 화가가 어떻게 활용하는지, 혹은 그에 맞서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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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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