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23.10.21 나를 안아주는 그림 나를 치유하는 미술 1
  2. 2023.10.13 방구석 오페라
  3. 2023.09.20 디자인 이렇게 하면 되나요? 1
  4. 2023.05.05 패션 색을 입다
  5. 2022.10.02 방구석 뮤지컬
  6. 2022.06.12 숭고
  7. 2022.04.16 그림을 보는 기술
  8. 2021.08.12 디자인 레시피
  9. 2021.06.13 과학자의 미술관
  10. 2021.05.06 다빈치 인생수업

이 책은 한국인 최초로 미술치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소율 교수가 지은 책이다. 김소율 교수는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미술치료 전공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며,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명화를 통한 치유미술 강연으로 많은 사람에게 그림의 치유하는 힘을 알리고 있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그림을 여러가지 심리적 요소들과 함께 설명해 주고 있다. 단순하게 그림에 대해 해설하고 독자들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그림과 글을 함께 눈에 담아가면서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들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이 내 삶의 어떤 부분에 맞닿아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 책은 자존심, 애착, 욕망과 같은 23가지 심리학적 테마에 연관지을 수 있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 및 화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자칫하면 흩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씌여졌다.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한 영국 화가 루이스 웨인이 있다. 그의 삶은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여섯살에 구순구개염을 앓아 열 살까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며, 스무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실질적인 가장역할을 했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누나들까지 웨인에게 의지했고, 다섯명의 여자형제들 모두 결혼하지 않았기에 웨인이 모두 책임져야 했다. 웨인은 미술교사가 아닌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고, 프리랜서 화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웨인은 사람그림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주로 동물을 주로 그렸고 동물을 의인화해서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초기에는 다양한 그림을 그렸지만, 반려 고양이 피터를 만나면서 고양이 위주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실 1800년대에는 고양이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고양이는 요물이며 기분 나쁘고, 사람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양이 그림을 그렸고 그의 작품들은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웨인에게는 조현병 유전자가 있어서, 스트레스 상황에서 점차 환각과 망상 증세를 겪는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고양이를 그렸는데, 조현병 발병 이후부터는 점차 추상적 형태를 끤다. 색채는 화려해지고 고양이를 의인화하는 형식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인생의 불행을 찾으려 노력하면 인생은 잿빛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충만하게 볼지 고민하면 충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삶은 다양한 사건의 연속으로 이뤄져 있고 또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웨인은 죽기 전까지 고양이를 그렸고, 판매와 상관없이 집중하고 몰입했으며, 자연과 고양이에게서 위로받았다. 요즘 안 좋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면, 불운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낙담하기보다 좋아하는 활동에 몰입하고 즐기려 했던 웨인의 태도를 삶에 적용해 보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림과 그림이야기 속을 거닐면서, 결국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는지...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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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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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오페라

예술 2023. 10. 13. 20:56

영화, 연극, 오페라, 뮤지컬, 무용, 콘서트 등으로 공연예술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장 접하기 쉬운 공연예술은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평면 스크린을 통해 접하는 예술이다보니, 현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오페라는 연기와 같은 노래를 눈앞에서 들으면서 감상을 하기 
때문에, 실제 공연장에 가서 무대를 관람하면 그 감동이 쉽게 사그러지지 않는다.

이 책은 문화컨텐츠 전문작가인 이서희 작가가 지은 책이다. 이책의 저자의 저서로는 수만 명의 독자들이 사랑해주신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과 〈200가지 고민에 대한 마법의 명언〉, <방구석 뮤지컬> 등이 있다. 특히 전작 방구석 뮤지컬에서는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후 뮤지컬 관람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 사회에 지쳐 있는 독자들에게 ‘알고 보면 더 흥미진진한’ 뮤지컬의 세계를 인문학적 감성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번 방구석 오페라에서도 과거 홀로 떠난 호주 여행에서 처음으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을 접한 이후 이끌리듯 오페라 관람을 찾아나서게 된 이후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오페라를 소개하고 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감동적인 순간 이후로 저자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오페라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명작 오페라의 기원부터 수많은 오페라 아리아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오페라와의 운명적 인연끝에 저자가 받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변장까지 한 피델리오부터 젊음을 얻으려 잔혹한 대가를 치르게 된 파우스트까지, 저자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을 둘러싼 숙명적 서사의 오페라 25편을 알기 쉽게 한권의 책으로 담았다. 

각각의 오페라 마다 먼저 대략적인 오페라의 줄거리를 소개한다. 이후 오페라의 주요 음악의 가사를 소개한 뒤, 오페라에 대한 대략적인 해설을 싣고 있다. 맨 마지막에는 QR코드를 통해 오페라의 대표곡을 들어볼 수도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사랑을 마주하게 된다. 그 사랑속에서 견줄 수 없는 행복을 맛보기도 하고, 때로는 쓰라린 아픔을 맛보기도 한다. 이 책에서 소개된 오페라 속의 인물들도 우리와 같은사랑에 기뻐하기도 좌절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온 사랑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겪게될 사랑을 기대해 보기 바란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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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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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너무 의미가 넓고 추상적이기에 우선 어원부터 알아보세 요. 영어 단어 'design'은 '계획을 기호로 나타낸다'라는 뜻의 라틴어 'designare(데시그나레)'와 '그림'을 뜻하는 프랑스어 'dessin (데생)'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종종 '디자인이란 설계다'라거나 '디자인이란 문제 해 결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결국 둘 다 맞는 말인 셈이 죠.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디자인이란 어떤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한 계획을 생각하고, 그것을 다양한 형태로 표 현하며 실현하는 것'이라고 풀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디자인이 멋지 다!'라는 말은 조금 어색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디자인을 말할 때는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의미도 포함한다는 점 을 잊지 마세요.
- 콘셉트란 스케치, 그림, 텍스트 설명으로 나타내는 대 상 디자인의 핵심 아이디어를 말합니다. 이 디자인을 통 해 해결해야 할 문제, 목적에 부합하는 외적인 스타일, 디 자인 타깃, 클라이언트가 바라는 점 모두 콘셉트에 해당 합니다. 콘셉트는 디자인의 '축'입니다. 팽이가 빙글빙글 계속 돌면서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축이 팽이를 제대로 지탱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디자인 또한 축이 없으면 중심을 잃고 제 기능을 못하게 됩니다.
- 콘셉트는 누가 만들까?
콘셉트는 디자이너가 단독으로 정할 수 없습니다. 오히 려 힌트나 해답은 디자인을 발주하는 클라이언트가 가지 고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언제', '어디서' 디자인을 전할 것인지 클라이언트에게 상 세히 확인해야 합니다. 클라이언트가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부분이나 문제점이 있으면 몇 번이고 되물으며 해 답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디렉터나 카피라이터, 촬영기사 등 협업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갈 수 있도록 큰 방향을 잡아야 합 니다. 이것이 바로 콘셉트입니다.
- 디자인 작업 전엔 러프 스케치부터
디자인 의뢰를 받고 나서 클라이언트의 의향을 확실하 게 확인하여 타깃과 콘셉트를 정했다고 쳐 보세요. 그렇 다고 이 시점에 바로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면 안 돼요. 그 전에 러프 스케치(rough sketch)부터 그려야 합니다. 대 략적인 밑그림을 그려서 앞서 키워드로 표현했던 목적을 시각화하는 일이죠.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간단 히 그래픽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포토샵으로 촬영 이미 지도 간단히 합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러프 스케치 단 계에서는 이미지를 너무 세세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러프 스케치를 너무 구체적으로 정해 버리면, 그 이상의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게 되어 디자인의 폭을 좁히 게 될 수도 있거든요. 머릿속에 둥실둥실 이미지가 떠올 라 있는 상태일 때는 그저 구성 요소를 늘어놓거나 레이 아웃을 검증하는 일에 무게를 두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러프 스케치는 손으로 그리는 편 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손으로 그리면서 시행착오를 거치 는 편이 빠르기도 하고, 복사해서 나열해 놓고 보면 비교 를 통해 개선점을 찾기 쉬워요. 결코 제가 옛날 아날로그 취향이기 때문만은 아니랍니다.
- 핫스팟을 활용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디자인의 핫스팟(hot spot) 이란 이른바 보는 이의 시선 이 머무는 장소를 말합니다.
보는 이의 시선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움직이다가 멈추 기를 반복합니다. 이 움직임을 의식해 핫스팟을 만들어 서 한눈에 정보를 알아보기 쉬운 지면을 구성할 수 있습 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그저 단순히 시선을 사로잡는 데 그 치면 안 됩니다. 지면 전체의 아름다움도 살리면서 동시 에 시선을 붙잡아야만 합니다.
- 무채색의 특기 분야
무채색은 전체적으로 고급스럽고 어른스러우며 차분 한 인상을 부여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 인상을 주 려고 한다면 매우 효과적이지만, 반대로 활발하고 활동적 인 인상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무채색이 만능이기 때문에 빠지기 쉬운 함정이므로, 디자이너라면 주의하세요. 무채색이 부여하는 이미지는 '고급스러움', '차분함', '딱딱함', '조용함', '차가움', '무음' 등이 있습니다. 미술관과 같은 곳에는 제격이기에 미술관 인테리어의 배색은 무 채색 톤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한편 백화점, 행사 장소 등에서는 유채색을 다수 사용합니다. 가령 백화점이나 행 사장소에서 흑백이나 회색으로 배색한다면, 고객은 어쩐 지 답답하고 자극이 부족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즉, 사람은 자신이 본 색의 인상에 따라 기분도 달라지 는 법입니다. 디자이너는 유채색과 무채색을 제대로 이해 한후에 이를 구별해 사용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 다른 부분보다 눈에 띄게 강조하고 싶을 때 배색은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무채색보다 유채색 쪽이 훨씬 눈에 잘 들어옵니다.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에게서 "여기도 눈 에 띄게 하고 싶어요! 이곳도요!”라며 너무 많은 곳을 강 조해 달라고 주문받기도 합니다. 해 달라는 대로 들어주 다 보면 지면이 유채색으로 가득 차 버리는 일도 많습니 다. 이렇게 되면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게 되어 버리죠.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전체적인 균형을 보며 배 색해야 합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에게 우선순위에 따라 강조할 필요가 있음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헐레이션(halation)이란 채도가 높은 색끼리 조합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형형색색으로 꾸민 지면을 보다 보면 눈이 시큰거리고 아플 때가 있죠. 그것이야말로 헐 레이션입니다. 헐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채도가 높은 색을 붙여서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채도가 높은 색을 같이 사용하려면, 흰색 테두리를 넣는 등의 방법으로 분리(separation)해서 보기 편하게 만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 선 두께를 얇게 지정할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0.2pt보다 얇은 선은 화면에는 보이더라도 실제 인쇄물에서는 출력되지 않는다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선의 두께가 가늘고 잉크의 양이 적으면 적을수록 인쇄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화면상에서 선이 멀쩡하게 보이더라도 출력되면 아예 보이지 않거나 희미한 점선으 로 보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선 두께는 반드시 적어도 0.25pt 이상, 가능하면 0.3pt 이상으로 설정하세요.
- 한글 폰트는 가상 몸체(imaginary body)라는 정사각형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에 비해 로마자 폰트는 어센더라인(ascenderline), 캡라인(capline), 민라인 (meanline, X-라인), 베이스라인(baseline), 디센더라인 (descenderline)의 5가지 선에 따라 구성됩니다.
그리고 한글 폰트는 가상 몸체의 중앙을 기준으로 줄을 맞추고, 로마자 폰트는 베이스라인에 줄을 맞춥니다. 즉 한글과 로마자는 애초에 폰트가 만들어진 메커니즘이 다릅니다.
- 한글과 로마자를 함께 디자인할 때 가장 곤란한 부분을 꼽자면, 한글과 로마자는 각각의 폰트별로 라인을 맞추더 라도 실제로 둘을 조합해 보면 조화되지 않는 듯한 인상 을 줄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같은 pt의 크기라도 한글 폰트 쪽이 로마자 폰트 보다 커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 경우에는 로마자 폰트를 조금 크게 키우면 글자 크기가 균일해 보입니다.
특히 타이틀 등 눈에 띄는 부분일수록 불균형이 돋보이므로 신경 써서 조정해야 합니다. 나아가 서체를 선정하고 문자의 굵기도 맞춥시다. 디자이너는 이런 조정을 매번 해야 합니다.
- 서체에 따라 지면의 인상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을 하는 목적에 따라 최적의 서체를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글 서체의 대표적인 형태로는 명조체 와 고딕체가 있습니다. 명조체는 손으로 쓴 한자 붓글 씨인 해서(書)를 한글에 맞게 형식화한 서체입니다. 즉 한 획씩 붓을 떼며 쓴 문자 디자인이라는 말이 됩니다. 획의 각 끝부분에 돌기(세리프)라 불리는 작은 장식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모음 'ᅵ'의 세로획 위쪽 끝에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돌기’입니다.
명조체는 가로획보다 세로획이 굵기 때문에 비교적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또한 크기가 작더라도 가독성이 뛰어나므로 신문 등 많은 문자 정보를 읽기 쉽게 전해야 하는 디자인에 사용됩니다.
반대로 고딕체에는 돌기가 없습니다. 가로획과 세로획의 선 굵기가 거의 같은 디자인입니다. 불필요한 장식이 없기에 단번에 봤을 때 무엇이 적혀 있는지 이해하기 쉬우며, 시인성이 뛰어납니다. 공공시설의 간판 등 내용을 바로 전해야 하는 곳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디자인이 주는 인상을 말하자면, 명조체는 '어른스럽 다/세련됐다/고급스럽다/지적이다', 고딕체는 '젊다/친근 하다/눈에 띈다/힘 있다' 등의 느낌을 줍니다.
- 문자는 작을수록 멋지다?
신입 디자이너는 '문자는 작게 줄이면 멋져 보인다'라 고 생각하기 쉽지만, 맹신하면 안 돼요. 그 마음은 잘 압니 다. 문자를 작게 줄이면 전체가 깔끔하고 아름다워 보이 니까요.
하지만 디자이너는 '읽기 쉬우면서도 멋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디자인은 어디까지나 본연의 목적을 다하는 것이 최우선이므로, 절대로 근거 없이 글자 크기를 조정하면 안 됩니다. '작은 문자가 옳다'라고 무작정 믿고 있다면 당 장 맹신에서 벗어나세요. 이렇게 조금 강하게 말했지만, 디자인 요소 중에는 가끔 작더라도 어떻게든 읽을 수 있 기만 하면 그뿐인 경우도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를 위해 몇 pt까지 가독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디자인의 최 소 글자크기를 알아두면 편리합니다.
- 인쇄물에 적합한 최소 글자 크기
인쇄물에서는 가독성을 생각하면 6pt가 추천하는 최 소 크기입니다. 다만 인쇄물은 눈을 가까이 대고 볼 수 있 으니, 4.5pt 정도까지 크기를 줄여도 어떻게든 읽어 낼 수는 있습니다. 다만 4.5pt 크기의 글자를 실제로 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굵은 폰트는 크기를 줄일수록 글자가뭉쳐 보이므로 그다지 추천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글자 색의 농도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인쇄물 은 기본적으로 망점이라는 그물 상태의 세밀한 점이 지면 에 찍혀 색의 농도를 표현합니다. 망점이 가까이 모여 있 으면 진한 색으로 나타나고, 망점이 흩어질수록 옅은 색 으로 나타나죠. 그래서 글자가 너무 작으면 글자 모양이 망가지고 점선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글자를 많이 줄여야 하는 경우 가능하면 색의 CMYK 값을 K: 100% (≒검은색)으로 설정하세요. 먹 농도가 50%보다 낮으면 글자 모양이 망가질 가능성이 커지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 폰트의 2가지 종류
이미지 파일에 JPG, PNG, PSD 등의 파일 형식이 있는 것처럼 폰트에도 몇 가지의 파일 형식이 있습니다. 우선 크게 나누어 비트맵 폰트와 아웃라인 폰트 2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비트맵폰트
작은 도트(점)로 폰트를 만들었습니다. 확대하면 도트가 보이기 때문에 글자를 크게 보여 줄 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웃라인 폰트
수식으로 정의하여 폰트를 만들었습니다. 베지에 곡선, 스플라인 곡선 등 여러 점을 순서대로 통과하도록 곡선을 만들어 폰트를 나타냅니다. 아웃라인 폰트는 점이 아니라 곡선으로 만들어졌기에 확대해도 문자의 품질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확대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가 크기에 현재 폰트는 거의 아웃라인 폰트를 사용합니다.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폰트는 아웃라인 폰트라고 기억해 두세요.
- 디자인에 사용 가능한 2가지 폰트
아웃라인 폰트 중에서도 몇 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주 요 형식으로는 TrueType 폰트(TTF 파일), OpenType 폰 트(OTF 파일)가 있습니다. 이 2가지 폰트 형식은 macl 나 Windows 등 OS가 서로 다른 경우에도 이용할 수 있 습니다. 물론 어도비의 응용 프로그램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무척이나 범용성이 높은 폰트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알아 두어야 할 2가지 형식의 차이점은 TrueType 폰트보다 규격이 새로운 OpenType 폰트 쪽이 문자 세트가 많다는 점입니다. 또한 TrueType 폰트에는 대응하지 않는 인쇄소도 있습니다. 1장의 인쇄물이라면 아웃라인 처리를 하면 문제되지 않지만, 여러 페이지의 인쇄물 여러 장소에 TrueType 폰트를 사용할 때는 주의하는 편이 좋습니다. 앞으로 디자인을 해 나간다면 OpenType 폰트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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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색을 입다

예술 2023. 5. 5. 10:45

컬러는 오랜 시간에 걸처 유행을 이끌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노란색이 여성을 위한 색인 반면, 검은 색은 애도를 뜻했다. 바다달팽이의 분비선에서 염료를 추출하는 티리안 보라색은 그 희소성과 높은 가격으로 황제와 왕족만 소유할 수 있었다. 기원전 1000년 경 제작된 기독교 미술품에서 흰색은 순수함을, 빨간색은 그리스도의 피를, 파란색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기독교의 컬러로 확립되었다. 검은색은 16세기 유럽의 종교적 영향으로 경건함을 상징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 이르자 세련됨과 반항을 상징하게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궁인들과 귀족들은 화려한 레몬색, 복숭아색, 콘플라워 색상의 의복을 선택했다. 제인 오스틴의 배경이 되는 영국의 섭정시대에는 신고전주의 패션의 단순함과 평등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속이 비치는 얇고 하얀 모슬린 천 드레스가 각광을 받기도 했다.

각종 색이 지닌 이미지와 지위는 수 세기에 걸쳐 바뀌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인의 6가지 기본색상인 검정, 흰색, 빨강, 초록, 파랑, 노랑은 죽음, 삶, 다산 또는 승리와 같은 강력한 개념을 나타낸다.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는 하늘을 청동색으로, 바다를 포도주색으로, 양을 보라색으로 혼란스럽게 묘사했다. 19세기 그의 작품 연구자들은 이러한 색 표현에 당황한 나머지 그리스인들이 색맹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책은 총 열 가지 색상 뒤에 숨겨진 상징성과 고대 이집트에서 중세, 르네상스와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지난 세기의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의상과 의복에서 컬러가 지닌 중요성을 탐구한다. 디자인에 색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색이 디자인을 창조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심리와 사회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색이다. 책을 읽고, 책속에 담겨진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진들을 보면서 색이 주는 영감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고대부터 보라색은 가장 힘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색이었다. 황실 보라색, 왕실 보라색으로 명명된 옷들은 부와 권력을 상징했으며 황제, 왕족, 교회의 수장만이 입을 수 있었다. 로마 네로황제는 보라색 예복을 너무나 아끼고 소중히 여긴 나머지 보라색 옷을 입은 시민을 추방하거나 죽이기도 했다. 보라의 진귀함은 그 희귀성 때문이다. 보라의 염료는 페니키아 고대 문명에서 유래했으며, 뿔고동으로 불리는 달팽이의 하부 기관지 선에서만 추출되엇다. 광택이 도는 풍부한 색감의 보라염료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믿기 힘들 정도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복잡하며, 매우 비밀스럽다. 그러기에 비쌀 수 밖에 없었다. 

블루베리와 블랙베리, 가지의 껍질 등 자연에서는 쉽게 보라색을 볼 수 있다. 가시광선 스펙트럼에서 가장 짧은 파장을 지닌 바이올렛은 우리가 가장 마지막으로 보는 파장이다. 따라서 보라는 영적인 감각을 부여하는 저 높은 영역의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아르누보 운동, 라파엘 전파 예술가 이념 및 히피 하위문화 등 대안적 이념과 복장을 받아들인 여러 문화운동에서도 보라가 사용되었다.

남성적 매력으로 이어지는 파랑은 드넓은 하늘과 망망대해처럼 광대하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그러기에 이해와 포용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보인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신선하고 맑음을 선물하는 유일한 색이다.
파란색은 슬픈 감정과 연관성이 있지만, 하늘과 바다 사이의 공간을 나타낸다. 충성스럽고 진실하며 차분하게 여겨지는 색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파란색을 자주 언급하는 지도 모른다.

빨강과 노랑이 섞인 주황색은 주체적 아름다움보다 어울림을 좋아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주황을 정확하게 알고 나면 영 까다롭고 예민한 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주황은 다른 색과의 조화로움보다 주체적이고자 하는 색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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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뮤지컬

예술 2022. 10. 2. 11:26

영화, 연극, 오페라, 뮤지컬, 무용, 콘서트 등으로 공연예술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장 접하기 쉬운 공연예술은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평면 스크린을 통해 접하는 예술이다보니, 현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뮤지컬은 노래와 춤과 연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무대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실제 공연장에 가서 무대를 관람하면 그 감동이 쉽게 사그러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뮤지컬이 등장한 시기는 6.25 전쟁 이후 미국 대중문화가 유입된 이후라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중적으로 뮤지컬을 즐기게 된 시기는 90년대 이후다. 90년대부터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을 해외 캐스팅 그대로 초빙해와 공연하는 경우도 많아졌으며, 거꾸로 한국어로 번안해 한국인 배우들이 주축이 되어 상연하기도 했다. 

이책의 저자의 저서로는 수만 명의 독자들이 사랑해주신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과 〈200가지 고민에 대한 마법의 명언〉 등이 있다. 저자가 이번 '방구석 뮤지컬'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살아가며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려움을 맞닥뜨리고는 하지만 뮤지컬 속의 인물들은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고민하고, 사랑하고, 도전한다.

가까우면서도 낯선 장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저자는, 보면 볼수록 흥미롭게 다가오는 뮤지컬의 “회전문”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 사회에 지쳐 있는 독자들에게 ‘알고 보면 더 흥미진진한’ 뮤지컬의 세계를 인문학적 감성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고전을 재창작한 뮤지컬부터 한 번쯤 제목은 들어보았을지도 모르는 국내 창작 뮤지컬까지, 저자는 5가지의 주제로 30편의 작품을 큐레이션하여 뮤지컬이 낯선 관객을 위한 가이드를 만들었다. 뮤지컬 별로 뮤지컬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함께 중요한 넘버의 뮤지컬 대사를 제시한다. 마지막엔 뮤지컬 전체 넘버를 제시하고, 중요 넘버에 대한 QR코드를 통해 실제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시대와 운명이 배반하더라도 늘 해쳐나아가는 뮤지컬 속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다양한 인생에 대한 통찰과 감동을 줄 것이다. 또한 뮤지컬이 품고 있는 배경과 서사부터 아름다운 가사 등, 어느 순간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뮤지컬을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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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

예술 2022. 6. 12. 19:09

이 책은 여류조각가 조숙의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다. 작가가 어린시절에 그림을 접하게 되는 과정부터, 입시준비도 없이 대학에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 그 이후 조각가로 활동하면서 작품활동을 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풀어놓고 있다.
1955년 출생한 조숙의 작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조각가이다. 특히 맨발 가르켈 수도회 영성센터의 '청동문'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말 못할 사연과 고민이 있게 마련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우리 모두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것 처럼 보여도 깊은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예술은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갈등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화해의 길을 모색하며 경작되는 것이라는 진리를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예술가라고 하면, 평상시에는 멍하니 지내거나, 빈둥빈둥 거리다가 갑자기 어떤 영감이 떠올라 작품활동에 매진하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린다. 글을 쓰는 작가들에 대해서도 술과 담배에 찌들어서 지내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몇날 며칠을 잠도 안 자면서 글을 쓰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영감은 천천히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며, 그 조금씩 천천히라는 것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각고의 노력끝에 간신히 얻어지는 것이다.

조숙의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인물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나 흙이라는 재료로 생명력을 표현하고 불어넣는다. 특히 카톨릭 신자로서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의 서간을 읽으면서 작품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병인박해 당시 순교자들은 모욕과 경멸을 당하면서도 그 시련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는 겸손함을 보였다. 조숙의 작가는 이런 순교자들의 영적인 가치를 살리는 의미에서 순교자들을 기리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조숙의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리고 조숙의 작가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던 외국작가의 작품을 통해 숭고한 인간의 영혼이 창조주를 찬미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작가의 작품들이 사진으로 담겨 있어서, 에세이를 더욱 충만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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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기술

예술 2022. 4. 16. 19:19

- 집중형은 단순하게 한 점으로 좁힌 표현입니다. 한눈에 주인공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분산형은 막연한 인상이라든지 전체적인 분위기 같은 것을 전하기에 좋습니다. 또한 분산형은 화면 어디를 보더라도 흥미롭도록 화려하게 꾸미기에도 좋습니다. 전체적인 인상을 파악하면서 두루 살피다 보면 세부에서 발견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같은 풍경화라고 해도 어딘가 한 점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집중형이 좋고, 풍경 전체의 인상을 전하고 싶다면 분산형이 좋은 선택입니다. 집중형과 분산형은 시대의 유행을 반영합니다. 단순한 표현을 원하는 시대가 있으면, 반대로 장식성을 선호하는 시대도 있습니다.
-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0-1895년
두 명의 주인공을 엮는 포인트는 중앙에 있습니다. 서로 내밀고 있는 카드를 잡은 손이 “매듭”이 되어 그림의 테마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서로 포즈나 주먹의 형태가 닮아 있으며, 카드의 명암과 두 사람의 명암은 상반되어 있다. 는 것을 아셨을까요. 오른쪽의 남성은 빛이 닿아 밝은 편인데 그가 가지고 있는 카드는 검은 색에 가깝습니다. 왼쪽의 남성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입니다만, 카드는 새하얗습니다. 이 둘 사이에 여러 요소들이 대비를 이룹니다. 재킷과 바지의 색이 서로 다릅니다. 모자의 가장자리가 이루는 곡선이 위를 향해 있거나 아래를 향해 있습니다. 파이프를 물고 있습니다/물고 있지 않습니다. 오른쪽의 남성이 좀더 몸집이 크게 느껴지지만, 카드를 쥔 손은 약간 아래에 위치합니다. 배경에도 대비가 있습니다. 오른쪽 남성의 뒤에는 세로선이, 왼쪽 남성의 뒤에는 가로선이 눈에 띕니다. 이처럼 여러 요소들이 두 개의 봉우리처럼 마주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든 카드가 이를 연결시킵니다.
- 화면 속의 네 모서리는 설령 아무것도 그리 지 않아도 눈길을 끕니다. 화가는 모서리의 인력(引力)에 맞서야 합니다. 물론 화면의 중심이 지닌 인력이 가장 강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는 모서리가 주의를 끕니다. 앞에 있는 물건이 사각형인지 삼각형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시선은 중심에서 벗어나 모서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쪽으로 빨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그대로 화면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우리 모두는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하지만, 화면의 이 같은 인력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화가의 입장에서는 관객이 그림을 구석구석까지 보기를 바랍니다. 그러자면 화면의 모서리로 끌려가는 시선을 한복판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모서리의 인력을 누그러뜨려야 합니다.
이 때문에 모서리를 회피하는 묘사가 나옵니다. 저는 이것을 “모서리의 수문장”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방향을 지시하면서 모서리를 누그러뜨리는 묘사가 있다면, 회전형 구도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 밀레(1814-1875)의 그림 이삭줍기는 등장인물 들이 아무도 관람객을 바라보지 않고, 두드러지는 요소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을 끕니다. 정돈이 잘 된 그림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시선의 경로에 있습니다. 이 그림이 마음을 끄는 이유는 지평선의 한 점을 중심으로 하여 전체 선이 우산 형태로 펼 쳐지는 구심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부터 보더라도 그 한 점에 이끌려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있으며, 마치 한지붕 아래에 있는 것 같은 잘 마무리된 기분이 듭니다. 이 점을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선이 모이는 한 점은 아무것도 아닌 건초더미이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고, 인물의 포즈는 배경의 1점 투시도법과는 어긋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왼편의 두 인물이 뻗은 팔도, 오른편 인물의 상반신도 소실점을 향합니다. 이 각도에는 필연성이 있었던 셈입니다.
이삭줍기에는 집중선형과 같은 알기 쉬움도, 십자형과 같은 단호함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점에서 크래커의 내용물이 분출되듯이 화면 전체로 시선이 펼쳐지는 구성입니다. 한 지점에 매달려 있는 듯 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리딩 라인은 화면 속의 중요한 요소에 적극적으로 시선을 유도하기보다는 화면을 전체적으로 정돈하는 구실을 합니다.
- 왜 사선을 사용하면 움직임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사선을 보면 수직을 향해 일어나려고 하거나 수평을 향해 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선이 오른편 위쪽을 향하는지 오른편 아래쪽을 향하는지에 따라서, 미묘하게 느낌이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는 오른쪽 위로 향하는 사선이 활발한 느낌을 주고, 반대로 오른쪽 아래를 향하면 불 안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은 오른쪽 아 래를 향한 사선을 구조선으로 삼아 비극적인 미래를 암시합니다.
- 모나리자는 어떨까요?
왼쪽 눈이 중심선 위에 정확히 놓여 있고, 어깨는 화면을 위아래로 양분한 선에 걸쳐져 있습니다. 두 개의 대각선이 만들어내는 삼각형(X)의 상부에 머리, 하부에 손이 정돈되어 있어서 안정된 느낌을 줍니다. 이처럼 상반신을 담은 초상화에서는 눈이 중심선이나 대각선 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살펴본 부분에서 알 수 있는 점은 화면의 십자선과 대각선이, 명화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선의 경로나 균형을 볼 때에 중심과 모서리와 가장자리를 무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초점과 구조선을 결정하는 데에 반드시 의식하게 됩니다. 물론, 꼭 선에 맞춰 배치하는 단순한 방식은 아닙니다. 십자선과 대각선이 화면 속에서 발휘하는 힘을 화가가 어떻게 활용하는지, 혹은 그에 맞서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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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레시피

예술 2021. 8. 12. 20:31

* 실제 책의 표지 디자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네 명의 디자이너가 지은 책으로 책 디자인을 위한 실무적 지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실제 책 표지 디자인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참고서처럼 옆에 두고 읽어볼 만한 책이다. 아래는 디자인을 떠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가져야할 자세 혹은 지식에 대해 본문중 일부를 발췌했다. 

- 당신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교차하는 곳에 당신의 천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 흰색 배경에 검정색 글만으로 조건이 같습니다. 같은 조건임에도 어떤 디자인은 웃음 소리가, 또 다른 디자인은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하며, 어떤 건 클래식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언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타이포그래피 그 자체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 표지에 적용하는 타이포그래피는 그저 예쁘다가 아닌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영화의 예고편처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서를 편집 디자인 하는 것은 디자이너지만, 소비하는 것은 독자입니다. 폰트의 가독성과 판독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폰트가 사람들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모든 생각과 느낌 등은 활자를 소비하는 사람의 경험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표지 디자인의 타이포그래피 방향을 정함에 있어 우리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폰트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배경과 폰트 디자이너의 의도 또한 살펴보면 분명 디자인에 도움을 줍니다. 타이포그래피를 적용할 도서의 객관적인 정보와 도서의 타겟층 등을 고려해야하는 것은 기본이며 가장 중요한 검토대상입니다.
- 콘셉트는 책의 주제, 책의 핵심 메시지를 말합니다. 즉, 표지 디자인을 통해 드러내려고 하는 주된 생각입니다.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는 “디자인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미지의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메시지다.” 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다 보면 정작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놓쳐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에 앞서 콘셉트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 시장 조사 방법을 몰라서 또는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간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흐름을 모르면 시장도 당신의 디자인을 외면할 것입니다. 여기서 시장은 의뢰인도 포함되지만, 더 나아가 책을 접하게 될 독자를 말합니다. 티보 칼맨(Tibor Kalman)은
“디자이너의 진정한 타깃은 클라이언트가 아닌 클라이언트의 클라이언트다.”라고 했습니다.
앞서 콘셉트를 정했다면 시장조사를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시장조사를 위한 장소로 방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는 도서관이 좋아 보이지만 도서관에서는 소비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표지 디자인을 하고 있는 우리의 시장은 도서관이 아닌 서점입니다. 
- 그래픽디자이너 폴 랜드가 말한 “단순하게 유지하라. 정직하라. 그리고 최선을 다하라.”에서 '단순함은 폴 랜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이었습니다. 폴 랜드의 단순함(Simplicity)은 그저 단순함이 아닌, 문제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해결하는 형태를 찾아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단순함'이었습니다. 색상을 선택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색을 어떻게 선택해야 문제를 해결해 이해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사고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순하며 명확한 차이를 만들어 내면서 다른 요소와 연속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색채를 다루는 감각과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 DTP(DeskTop Publishing)가 일반화되기 전, 출간된 책이나 잡지, 브로슈어 등을 식자와 사진을 조합하여 칼이나 풀 등 도구를 사용하여 출력될 종이에 붙여 전체적인 구도를 살펴보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얼기설기 조합해 만든 책을 목업이라고 불렀으며, 요즘에 불리는 목업이란 '실물 모형'을 가르키는 말로 디자인 계통에서는 실제 제품과 비슷한 가상의 그래픽 이미지를 뜻합니다. 자신의 디자인을 실제 제품에 미리 적용하여 평가하거나 고객에게 전달할 때 사용됩니다.
- 디테일의 차이가 디자인의 완성도를 결정합니다. 디자인하다가 막히는 순간이 오면 내가 포인트로 잡기로 한 부분을 남겨두고 부수적인 요소들을 모두 빼고 다시 생각하기 바랍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세련미의 극치는 단순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디자인하다가 막히는 느낌이 들 때는 핵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제일 처음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 팀 브라운은 “디자인의 심장은 타인과의 공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어떠한 디자인도 의미 없는 작업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뢰인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디자인이 의뢰인의 요구 때문에 산으로 가고 있다면, 서지정보에서 디자이너의 이름을 빼달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디자이너 자신과 의뢰인 모두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의뢰인을 설득하기 위해선 당신의 디자인에 아주 작은 점 하나까지도, 무의미한 행동은 없어야 합니다. '그냥'이라는 말로는 의뢰인을 설득할 수도, 신뢰를 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의뢰인의 요구와 디자이너의 디자인 사이에서 정도를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적절함'이라 는 단어를 이해하게 되고,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시점이 올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아직도 “무리한 수정 어디까지 수용하나요?”라는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셨다면, “내 마음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內).”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이 수용할 수 있는 기준을 잡고 나만의 룰을 따라 보시길 바랍니다.
-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어떤 것도 임의로 혹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디자인 과정에서의 배려와 정확성은 구매자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디터 람스)
- 표지 디자인에서 사진을 이용한다면 사진의 구도에 대해 조금만 알아두어도 도움이 됩니다. 사진 구도의 기본은 가로와 세로입니다. 사람의 눈은 상하로 움직일 때 보다 좌우로 움직일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처럼 가로 구도는 사람의 시선과 닮았기 때문에 안정감을 줍니다. 그래서 가로 구도는 풍경 사진에 자주 사용됩니다.
세로 구도는 사진에 깊이와 거리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폭이 좁기때문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진의 구도에서 균형은 매우 중요합니다. 프레임 속 피사체들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을 때 편안함을 줍니다. 프레임 속의 수평선과 수직선은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히 역동적이거나 일부러 불안정한 분위기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면 수평·수직을 맞춰 찍어야 합니다.
- 사진을 찍을 때 쓰는 프레임(Frame)은 '피사체를 담는 공간'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정 프레임을 이용해 보도하는 것을 프레이밍(Framing)이라 하는데,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의 틀 속에 어떤 화면을 담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같은 풍경을 찍더라도 프레이밍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진을 이용한 표지 디자인을 할 때도 프레이밍을 잘해야 합니다. 이미 찍혀진 사진을 이용해야 하므로 한계가 있지만 주어진 사진이 눈앞에 놓인 풍경이나 피사체라 생각하고, 그 사진을 책 표지라는 프레임의 사진기로 다시 찍는다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같은 사진을 이용해 어디를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따라 다양한 느낌의 표지 디자인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진을 이용할 때에는 보정 작업이 필요합니다. 높은 퀄리티의 사진이라 하더라도 포토샵을 이용한 보정 작업은 필수 입니다. 예를 들어 사진을 찍을 때 수평·수직을 맞춰 찍으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포토샵을 이용해 균형을 맞추는 보정 작업을 해야 합니다. 렌즈에 뭐가 묻어 사진에 이물질이 있다면 이 또한 보정으로 지워주어야 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보정뿐 아니라 포토샵을 이용하면 사진에 상상력을 더할 수 있습니다.
- 마이클 베이르트는 “모든 게 다 디자인은 아니지만 디자인은 모든 것에 관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디자이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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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과학자의 미술관

예술 2021. 6. 13. 08:50

- 렘브란트가 많이 사용한 색 중에 선홍색의 버밀리온은 황화 수은(HgS)으로 황을 포함하는 대표적인 색이다. 그림이 검게 변하는 '흑변 현상'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57년경에 그려졌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 의 〈만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종〉은 황혼을 표현한 그림이 라 좀 어둡기는 하겠지만 그림이 막 그려졌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탁하고 칙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경)이건 〈만종>이건, 산업혁명으로 도시 공해가 심해지면서 대기 중의 황산화물(SOx)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그림의 색채가 검어지고 그림의 주제가 퇴색하면서 야경이라 는 이상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오래된 그림이라 중후한 매력을 풍긴다며 그냥 넘겨야 할지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 1965년경 사회학자 길필란5.C. Gilfillan은 “로마제국은 납 중독으로 멸망했다”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로마인들은 납의 지나친 애용가들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담는 그릇은 물론, 물을 연결하는 배수관과 화장품, 염료 등에 이르기까지 납 성분을 활용했다. 무엇보다 끔 찍한 일은 로마인들이 납설탕'이라는 감미료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로마인들이 즐겨 마셨던 와인은 천연효소를 사용하여 주조하였기 때문에 신맛이 강했다. 그들은 신맛을 없애기 위해 납으로 만든 주전자에 포도즙을 넣고 끓여 사파(sapa)라고 하는 단맛이 나는 초산납(납설탕)을 만들 어 와인에 섞어 마셨다. 당시 사파는 와인뿐 아니라 다른 식품에도 감미료 로 사용되었다. 심각한 납중독을 일이키는 사파는 뇌 손상, 불임, 뼈 훼손, 신장 장애 등을 야기하면서 로마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납이 미백 화장품의 주요 성분으로 사용되면서 동서고금을 막론 하고 수많은 여성들을 괴롭혔다.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VI, BC69-BC30는 황화안 티몬을 주원료로 하는 '콜(khol)'이라고 하는 검은 가루로 그 특유의 눈 화장을 했다. 그녀는 콜로 인해 안질에 시달렸다. 수많은 초상화의 모델이 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Elizabeth1, 1533~1603 은 '베니스분'이라는, 납 성 분을 함유한 백분으로 천연두 자국과 거친 피부를 가렸다. 다소 창백하게 표현된 그녀의 얼굴에서 베니스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납이 든 화장품은 동양의 여성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최근 일본 산업의 과대학이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막부시대 무사 계급의 후손들의 골 격에서 다량의 납 성분이 발견되었다는 흥미로운 자료가 눈에 띈다. 실제 로 무로마치부터 에도시대의 풍속화 우키요에 속 여성들은 납 성분 화장 품을 바른, 유난히 하얀 얼굴로 묘사된다. 당시 일본 무사들의 아내들이 사용했던 화장품은 후대에 치명적인 납 중독을 일으키면서, 불임과 함께 기형아, 장애아, 저능아 출산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 화장품으로 인한 납 부작용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쌀가루로 만든 백분에 접착력이 뛰어난 납가루를 혼합하여 '박가분(家)' 이라 불리는 화장품이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물론 박가분을 사용한 여성들의 얼굴이 온전할 리 없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심각한 피부질환에 시달렸으며 일부 여성은 납중독 증상이 심해지면서 정신장애까지 앓기도 했다.
- 연금술이 실패한 과학이 아니라면 원래 무엇이었다는 말인가? 연금술 사들은 온 우주와 만물을 변화시키고 운행하는 어떤 원동력이 있는데 그 것이 보편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어 만물을 창조하고 모든 물질의 근원이 되며 생명의 토대가 된다고 믿었다. 말하자 면 연금술은 기술이나 과학을 넘어서 철학이고 신학이었다. 그 보편 정신 이 바로 '신의 정신' 이며 이것을 구체화, 형상화한 것이 '현자의 돌'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연금술사들의 진정한 목표는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 라 신의 정신을 파악하여 만물 창조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현자의 돌'은 모든 불순하고 불완전한 금속을 정화하고 정신을 온전케하여 종국에는 육체의 만병도 치료할 수 있는 불사의 영약이었다. 그들은 ‘신의 정신'을 병에 담길 원했다. 연금술의 상징이 된 펠리컨은 바로 이 병을 나타내며 실제 이들이 만들어 쓴 유리병의 모양은 펠리컨을 닮았다. 펠리컨이란 새는 자기 심장을 쪼아서 나오는 피를 죽은 새끼에게 먹여서 살리는 영험 있는 새로 믿어졌는데 연금술사는 펠리컨처럼 생긴 유리병으로 비밀스러운 반응을 시도하는 펠리컨과 같은 생명의 수호자였다.
- 선과 색이 만나 회화가 탄생하지만 미술관에 걸린 명화들처럼 둘의 관계는 그리 조화롭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선과 색의 싸움은 회화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가장 오래된 싸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선과 색의 논쟁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니 수학과 화학이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요소는 선이고 색은 단지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선우위론자들의 얘기부터 들어 보자. 회화는 소묘(드로잉) 없이 어떠한 형상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반면, 색채는 빛에 의해 변해 버리는 우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상스시대 미술가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완벽한 균형과 조화는 선을 통해서 이뤄졌다. 선이 없다면 당연히 원근법과 대칭법, 이상적 인체 비례 등도 고안할 수 없으며, 이는 수학적 사고와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에 맞선 색우위론자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술의 궁극적 목적이 자연의 모방이라면, 회화의 목적은 색 없이 달성될 수 없다. 소묘는 채색 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선이 이성이라면 색은 감성인데, 감성이 결여된 이성만으로는 예술이 성립할 수 없다. 색의 본질과 변화는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회화의 주재료인 물감이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과 색의 논쟁을 통해 회화에 수학과 화학 원리가 담겨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 유기물질을 태우면 탄소만 남고 그것이 검은색을 띤다. 이런 변화를 탄 화(炭化)라고 한다. 색 이름에서도 무엇을 태워서 만든 검정인지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오래전부터 써 온 검정으로 아이보리 블랙(ivory black)이 유명하다. 이것은 아이보리, 즉 상아를 태워서 만든 검정이다. 물론 요즘은 상아로 만들지는 않는다. 색 이름이 아이보리 블랙이라 해도 지금 제품은 일반 소뼈나 기타 동물의 뼈 를 사용하여 만든다. 그래서 본 블랙(bone black)이라 부르기도 한다.
- 나무를 태워서 만들 수도 있는데 어떤 종류의 나무를 태워서 만드는가 에 따라 다른 검정이 만들어지고 이름도 달라진다. 원료 나무의 종류에 따라서 색상이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화가들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택한다. 푸른 끼가 도는 검정도 있고, 붉은 끼가 도는 검정도 있으며, 노란 끼가 보이는 검정도 있다. 바인 블랙(wine black)은 포도나무 가지를 태워 만들고, 피치 블랙(peach black)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태워 만든다.
동양화에서 많이 쓰는 송연묵(松煙墨)은 소나무를 태워 만든 것이다. 동 양화의 유연묵(油煙墨)은 기름을 태운 것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식물성 기 름을 태워 만든 것을 베지터블 블랙(vegetable black)이라고 한다.
- 한편, 우리가 연필로 사용하는 흑연(黑鉛)은 잘못된 이름이다. 검은 납이 란 의미로 서양의 'lead black'을 그대로 차용한 것인데, 납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흑연은 그래파이트(graphite)가 맞으며, 탄소만으로 이루어진 판 상 결정이다. 글을 쓰다'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그라페인(Graphein)에서 유래했다.
이밖에 유일한 무기물 검정인 마르스 블랙(mars black)은 산화철이 주성분이어서 아이언 블랙(iron black)이라고도 부른다. 약간 갈색이 돌아 따뜻 한 느낌이 난다. 최근에는 유기화학의 발달로 실험실에서 합성한 유기물 검정도 있다. 아닐린 블랙(aniline black)이 그것인데, 색이 매우 진하고 검정 외에 어떤 색도 띠지 않는 정말 '깜깜한 블랙'이다. 색이 아름다워서 다이아몬드 블랙(diamond black)이라 부르기도 한다.
- 풍경화가들은 대개 야외에서 본 풍경을 화실로 들어와서 그렸다. 그런데 컨스터블은 야외에서 채색까지 병행하는 '오일(유화) 스케치'로 자연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자 했고, 이를 바탕으로 화실에서 채색을 마무리했 다. 컨스터블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훗날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야외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컨스터블은 자연에서 관찰한 초록색 나뭇잎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같 은 나무에 달린 잎들이지만 색이 모두 다르고 어느 하루도 서로 같은 날 이 없이 시시각각 변한다.” 나뭇잎을 눈으로 보고 그 형색을 머리에 담아 화실로 들어와 캔버스 앞에 앉으면 같은 초록색 나뭇잎이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로 빛에 따라 변하는 나뭇잎은 매번 다양한 초록색을 연출함을 컨스터블은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표현하는 초록색은 훨씬 생동감 넘치며 자연과 닮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실재(實在)하는 풍경을 강조했던 컨스터블은 가까운 대상은 갈 색 톤으로, 먼 배경은 푸른색 톤으로 채색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다 양한 초록색으로 숲을 재현했다.
- 작은 금속 입자로 인해 유리 색깔이 바뀌는 기술은 무려 4세기경 고대 로마 시대 작품 '리쿠르고스의 컵(Lycurgus Cup)'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컵에 는 리쿠르고스라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왕을 조각해 덧붙여 놨다. 디오니소스(그리스 신화 속 포도주와 풍요의 신)가 자신을 박해하는 리쿠르고스를 포도 주를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든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리쿠르고스 컵은 평소에는 녹색에 가까운 색으로 보이지만(왼쪽), 컵 안 에 빛을 쪼이면 붉은색 혹은 마젠타 빛깔로 변한다(오른쪽). 컵의 비밀은 오 랜 시간 봉인되어 있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미세한 나노입자를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이 개발되면서 풀렸다.
컵 안에 특별한 조명이 따로 없을 때, 컵은 외부의 산란된 빛을 통해 우 리 눈에 보인다. 대게 푸른색-녹색 계열의 빛이 산란효율이 높으므로 컵 은 녹색 계통으로 보인다. 그러나 컵 안에 조명이 있으면, 조명 빛은 컵을 투과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즉 빛은 컵 속의 금속 나노입자와 상호작용 하면서 투과한다. 이때 금속입자의 크기가 점점 작아짐에 따라 전체 부피 대비 표면적 비율이 증가하게 된다. 금속 나노입자의 경우 부피 대비 표 면적 비율이 매우 높다.
이때 나노입자 표면에는 금속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유전자(진공 또는 물 질 내부를 자유로이 운동하는 전자)가 높은 밀도로 분포하게 된다. 표면에 구름처 럼 존재하는 자유전자들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진동한다. 이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혹은 파장)의 빛을 만나면 자유전자들은 그 빛을 강하게 흡수 하고 약간 긴 파장의 빛을 다시 방출하게 된다. 이를 표면 플라즈몬 공명이라 한다. 수십 나노미터 크기를 가진 금 나노입자는 고유 파장대가 560나노미터 (노란빛)이다. 금 나노입자가 빛을 만나면 먼저 표면 플라즈몬 공명이 일어나고, 공명 파장보다 약간 긴 파장의 붉은색 빛을 방출한다. 그래서 컵 안에 빛을 비추면 컵이 붉은색으로 보이 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인지하 지는 못했지만, 금과 은을 모래 알갱이보다 수백 배 작게 즉 나노입자 크기로 연마하는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리쿠르고스 컵 제조 기법은 12세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 발전한 스테인드글라스 기술의 근간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스테인드글라 스는 다채로운 색을 내기 위해 구리, 철, 망간과 같은 여러 가지 금속화합 물을 이용했으며, 제작 과정 중간에 금이나 니켈 같은 금속을 첨가했다.
표면 플라즈몬 공명 효과에 의한 빛의 산란은 금속 나노입자 크기나 모 양에 따라 다르게 일어난다. 입자 크기나 모양이 다르면, 공명하는 빛의 고유 진동수(주파수) 혹은 파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빛이 산란되어 보이는 색도 달라진다.
- 산타페 하늘이 유독 물감을 풀어놓은 듯 맑고 파란 이유는 '빛의 산란 때문이다. 공기는 산소, 질소, 수증기, 먼지 등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 다. 태양빛이 대기를 통과하면 공기 중의 알갱이들과 부딪혀 사방으로 흩 어진다. 이런 현상을 빛의 산란이라고 한다. 산소와 질소같이 크기가 작 은 기체 분자들은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을 더 잘 산란한다.
노을도 빛이 산란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낮에는 해가 머리 위에 있어 태양빛의 이동 거리가 비교적 짧다. 해 질 무렵에는 태양빛이 지구에 도 달하는 거리가 낮보다 훨씬 길어진다. 파장이 짧은 파란빛은 쉽게 산란 되지만 멀리 못 가는 특징이 있다. 반면 파장이 긴 붉은빛은 산란은 덜 되지만 잘 회절(回折, 파동이 장애물 뒤쪽으로 돌아들어 가는 현상)’ 되어 먼 거리까지 도달한다. 해 질 무렵 파장이 짧은 보라색, 파란색 빛은 우리 눈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산란해 사라지고, 파장이 긴 빨간색 빛이 대기층에 많이 남아 우리 눈 속에 들어온다. 그래서 해 질 녘 하늘은 붉게 보인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19세기 영국 물리학자 레일리 John William Struit Rayleigh, 1842-1919가 처음으로 설명했다. 빛의 파장보다 훨씬 더 작은 입자에 의한 산란은 그의 이름을 따서 '레일리 산란(Raylegn scattering)' 이라고 부른다.
레일리 산란과 반대로 빛의 파장과 크기가 비슷한 입자에 의한 빛의 산 란 현상은 '미 산란(Mie scattering)'이라고 한다. 미 산란은 독일 물리학자 구스 타브 미Gustay Mie, 1868~1957가 제시했다. 기체 분자보다 상대적으로 크고 균일하지 않은 물방울(구름)이나 먼지, 연기, 얼음의 경우 미 산란을 일으킨다.
구름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는 미 산란으로 설명할 수 있다. 구름은 다양한 크기의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다. 크기가 다른 물방울들은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산란한다. 큰 물방울은 파장이 긴 빨간색 빛을, 작은 물방울 은 파장이 짧은 보라색이나 파란색 빛을 산란한다.
그 결과 모든 빛을 산란해 구름이 하얗게 보인다(모든 색의 빛을 합하면 흰색이 된다). 안개가 꼈을 때,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하늘이 뿌옇게 보이는 것 도 미 산란으로 설명할 수 있다. 
- 특히 뉴멕시코 지역은 사막 기후여서, 평균 습도가 10~40%로 매우 건조하다. 건조한 날씨에는 수증기나 공기 중에 물방울이 상대적으로 적어 물방울이나 수증기에 의한 미 산란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맑고 건조한 날은 낮 동안 하늘이 더욱 깊고 파랗게, 저녁에는 노을이 훨씬 붉고 선명하게 보인다.
뉴멕시코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샌디 아산(Sandia Mountain)'이다. 샌디아는 스페인어로 '수박' 이라는 뜻이다. 저녁노을에 반사되어 붉게 보이는 산이 어찌나 선명하게 빨갛던지, 수박을 반으로 갈라놓은 것 같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1909년 <수련> 연작을 계획하면서 모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연꽃이 흐드러진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안식의 공간을 선사하고 싶다.”
모네는 진정 태양을 그리고 싶어 했던 화가였다. 그는 수면이라는 캔버스 위로 빛이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의 작품이 있어 우리는 화폭에 담긴 불멸의 순간 속에서 안식을 찾는다.
- 옵아트는 '빛을 이용한 망막의 미술(Retinal art)', '지각적 추상(Perceptual abstraction)'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상 미술은 관람자의 눈에서 출발해 회 로와도 같이 복잡한 연산과 재구성 과정을 거친 후에 뇌에서 인지되는 것 이다. 그래서 미술은 일종의 '시각'과 '지각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회화 또는 미술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이 사진처럼 사실적이거나 때로 과장되어 있더라도 최소한 어떤 형상이 있지만, 옵아트는 형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옵아트는 형상을 표현하기보다는 시각적인 효과'에 집중한다.
- 1935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슈뢰딩거 Erwin Schrodingers, 1887~1961는 코펜하겐 해석을 부정하고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여주기 위해 슈뢰딩거의 고 양이(schrodinger's Cat)'라는 사고 실험을 고안했다. 상자 속에 반감기가 한 시간인 방사성 물질과 청산가리가 든 병, 고양이가 들어 있다. 방사성 물 질이 붕괴하면 연결된 방사능 검출 계수기가 작동하면서 망치가 청산가 리가 들어 있는 병을 깨고, 고양이는 청산가리를 흡입해 죽게 될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50% 확률로 붕괴되도록 세팅되어 있다.
한 시간 뒤 고양이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어 떤 물질의 상태는 그 상태를 관측하면 변한다. 즉 고양이는 상자를 열어 관찰하기 전까지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으며, 상자를 열어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살았거나 죽은 상태 가운데 한 상태로 확정된다.
슈뢰딩거는 이것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고양이는 우리가 상자를 여는 행위(관찰)와 상관없이 살아 있거나 죽어 있으며, 단지 상자 밖에 있는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를 뿐이라고 했다. 원자나 전자처럼 작은 미시세계가 아닌 거시세계, 즉 우리의 현실에 불확정성 원리와 코펜하겐 해석을 적용한다면 얼마나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슈뢰딩거는 이 사고 실험을 통해 역설하고자 했다.
- 르네상스시대까지 회화의 방식이나 주제 의식은 큰 틀에서 상당히 비 슷했다. 그러다 빛을 직접 묘사하고, 회화 기법에 빛을 반영한 인상주의 를 시작으로 새로운 미술 사조가 하나둘 등장했다. 하나의 사조가 일정 시간 부흥하다가 다시 반대 사조가 나타나고, 다시 이 사조를 부정하는 정반합(正反合) 과정을 반복하며 진화해 미술계는 오늘날과 같은 다양함에 이르게 되었다.
놀랍게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미술계 상황은 빛의 정체와 특성 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하고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이론이 끊임없이 등장해 증명과 반박을 거듭하며 이루어낸 현대물리학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분야, 미술과 물리학이 '빛'이라는 공통의 화두를 놓고 고민하고 논쟁하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턴의 풍 파를 겪으며 발전해 왔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에 관한 과학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탄생한 신인상주의도 있었으니, 예술과 과학이 오래전부터 서로 공생 관계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회화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공통된 대명제를 놓고 철학적인 고민을 거듭하며 성장해 왔다. 그 고민의 궤가 물리학과 상당히 닮아 있다.
- 빛은 화가의 가난 때문에 또는 실전처럼 반복된 연습 때문에 세상에 영 원히 나오지 못했을 뻔했던 그림을 보여 줬다. 고흐는 평생 동생 테오에 게 경제적 지원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리지 않고 그림만 그렸 다. 제대로 된 물감을 살 수 없어 싼 안료를 사용했다. 덕분에 고흐 그림은 색이 날아가거나 점차 변색되고 있다. 태양처럼 영원히 이글거릴 것 같던 해바라기도 차츰 시들고 있다 (19쪽 참조). 〈카페에서, 르 탱부랭의 아고스 티나 세가토리>를 엑스선으로 촬영한 그림은 화가가 가난과 힘겹게 싸웠 던 시간을 오롯이 보여 준다.
- 몬드리안은 수직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부분을 적절하게 배치하면 감상자가 편안함과 역동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빨강, 검정, 파 랑, 노랑, 회색의 구성>은 무질서한 요소를 배제한, 수학적이고 건축적인 균형을 미술로 이뤄 내고자 한 몬드리안의 이론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언뜻 보면 대부분 비슷해 보이는 몬드리안의 작품들은 색과 선, 면 등 이 하나하나 치밀하게 계산되어 완성되었다.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자. 흰 바탕에 검정색 선을 경계로 3원색을 칠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흰 바탕과 검정색 선은 정확하게 나누어진 부분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로 색을 채워 넣은 것이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창작 기본 원리에서 밝혔듯이, 화면 안에 있는 모 든 직사각형들이 대칭이 되는 것을 피했다. 그리고, 그림 속 검정 수직선 과 수평선은 서로 교차하며 사각형의 격자 구조를 이룬다. 이 격자 구조에 사용된 황금비율 1.618은 몬드리안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 몬드리안은 가장 단순한 요소인 직선과 원색으로 그림을 완성하고자 했다. 그는 우주의 객관적인 법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명료하고 절도 있는 회화를 그리길 열망했다. 몬드리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형태들 속에 감춰진 불변하는 실재(實在)를 예술로 밝혀내려고 노력했다.
몬드리안은 몇 개 되지 않는 형태와 색채를 결합하여 그것들이 잘 어울 려 보일 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나갔다. 몬드리안의 작품세계를 알게 되면, 단순한 선과 면 분할 및 채색만으로 완성되는 작품일수록 깊은 사고와 성찰이 요구됨을 깨닫게 된다.
몬드리안은 직선과 반듯한 면 그리고 몇 가지 컬러로만 이루어진 대단히 금욕적인(!) 작품들처럼 수도자에 비유되는 검소한 삶을 살았다. 세계 적인 예술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일부러 재산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삶 의 본질을 궁구(窮究)하는 데 몰두했다. 이러한 몬드리안의 삶의 철학은 그 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평소 그가 되뇌었던 금언(金言)은 이를 방증한다. “미술이란 자연과 인간을 점차적으로 소거(去) 해 나가는 것이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물상을 조각할 때나 그림을 그릴 때, 작품 속의 사람이 몸무게를 한쪽 다리에 신고 다른 쪽 다리는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자세를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세를 하면 몸무게가 이동함 에 따라 둔부 · 어깨 · 머리는 신체 내부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듯 이 기울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몸의 무게 중심을 한쪽 다리에 두면 몸은 S자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이 곡선을 가리켜 인간의 신체를 가장 아름답 게 표현한다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라고 부른다.
미술사에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화가들이 콘트라포스토를 그렸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는다면 독일의 화가 뒤러Albrecht Drer, 1471~1528가 1504년에 제작한 아담과 이브>가 아닐까 싶다.
- 뒤러는 이 작품에서 키의 반은 다리 길이가 되고, 상반신의 반에는 젖꼭지, 하반신의 반에는 무릎이 오도록 하였다. 또 키는 머리 길이의 8배가 되고, 키 전체를 3:5로 나누는 위치에 사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배꼽 을 그렸다. 이것은 뒤러가 그림 속의 두 주인공을 황금비인 1:1.6을 만족 하는 8등신이 되도록 그린 것이다. 또 아담과 이브의 몸무게 중심이 한쪽 다리에 있게 함으로써 전체 몸이 S자 곡선을 이루도록 그렸다.
아담 옆의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명판이 달려 있는데, 알브레히트 뒤러 가 1504년에 완성했다' 라고 서명되어 있다. 뒤러는 이전 시대 화가들과 달리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겼는데, 그만큼 그는 화가로서 자의식이 강 했다. 뒤러의 서명이 전범이 되어 후대 화가들도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겼다.
- '그런데 사과를 비롯한 거의 모든 과일은 왜 둥근 모양일까?' 자연은 항상 뛰어난 수학자이다. 자연이라는 수학자는 과일이 과육에 품고 있는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할지를 알 고 있었다. 어떤 물체의 수분 손실은 그 물체의 겉넓이에 비례한다. 즉, 물 체를 덮고 있는 표피가 넓으면 넓을수록 증발로 인해 더 많은 수분을 빼 앗긴다. 따라서 모든 과일은 번식을 위하여 과육의 부피를 최대로 하며 겉넓이를 가장 작게 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 답이 바로 지금과 같은 둥 근 공 모양의 과일이다. 이 문제를 우리는 '디도의 문제(Dido's Problem)'라고 한다. 
- 디도 이야기는 지금부터 약 2800년 전 고대 그리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니키아의 폭군 피그말리온의 여동생 디도는 오빠의 폭정을 피해 자신의 추종 자와 몇몇 원로원 의원을 데리고 북아프리카의 해안에 도착한다. 디도는 그곳 원주민의 통치자였던 얍(Yarb)에게 자신이 가져온 황금을 줄 테니 땅을 팔라고 요청한다. 얍은 땅을 팔 생각이 없었지만 디도의 설득에 넘어가 황소 한 마리의 가죽으로 최대한 둘러쌀 수 있는 만큼만 팔겠다고 한다. 디도는 언덕을 둘러쌀 수 있도록 가늘게 쇠가죽을 잘라 영역을 정하였고, 이 언덕은 가죽이라는 뜻의 '비르사(Byrsa)'라고 불리게 되었다. 디도는 비르사에 요새를 만들고 백성들을 잘 다스려 조그마한 지역을 도시로 번성시켰다. 나중에 이 도시는 '카르타고'라고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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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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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인생수업

예술 2021. 5. 6. 22:16

- 목차
1장 공부는 못해도, 잘생겼다 불운 극복법 
2장 장점을 극대화하다 직업 선택법 
3장 나를 키워줄 도시를 찾다 청춘의 여행법 
4장 스승을 능가하는 비법을 찾다 청출어람의 학습법 
5장 인생에서 때로는 측면 돌파 나와 맞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6장 창조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비주류로 주류의 스타가 된 비법 
7장 마무리 짓지 않아도 괜찮다 야심 관리법 
8장 깔끔히 포기해야 새 길이 열린다 인생의 두번째 기회를 만드는 법 
9장 무시와 좌절을 우아하게 넘어서다 분노 사용법 
10장 자기다움으로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다 자아 유지법 
11장 미켈란젤로와 세기의 대결을 벌이다 경쟁자 관리법 
12장 마음을 과학으로 표현하다 모나리자의 미소법 
13장 시대에 맞은 고유한 성이 있다. 창조의 비법 
14장 평생 노력했던 그 사람 실패 사용법 
15장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레오나르도를 존경하는 진짜 이유 융합형 인재의 시대 

- 15~16세기의 르네상스와 21세기는 모두 '융합의 시대다. 레오나르도는 과학에서 쌓은 지식으로 그림을 발전시켰고, 해부학적 관점으로 건축을 바라본 융합의 창조자였다. 그는 신을 의심하지는 않았으나 남들처럼 무조건적으로 믿지도 않았으며, 자연과 세계를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었다. 시대와 불화하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그는 신과 같은 재능을 갖고 태어난 천재가 아니라, 왕성한 호기심을 끈질기게 해결한 노력형 재인이었다.
- 세르 피에로는 세속의 욕망이 강한 사람으로, 피렌체에서 일을 하기 위해 빈치의 집을 자주 비웠다. 아버지 없이 자란 레오나르도에게 단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떤 종류의 권 위는 복종하려는 욕구가 굉장히 강한데, 권위가 위협받는 현실은 곧 세계가 붕괴하는 것과 같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주 어릴 때 부터 권위가 없는 상태에 적응해야 했던 레오나르도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권위를 포기하는 법을 일찍 깨우쳤다. 그로 인해 대담한 과학적 탐구로 상징되는 지식 추구와 남들의 비난에도 꿋꿋이 제 길을 가는 독립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설명한다. 모든 아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레오나르도는 그랬다.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면 젊은이들은 신앙도 잃는다는 프로이트 의 말을 받아들이면,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교황 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광은 그만큼 사라진 아버지의 권위를 되찾 고 싶다는 열망으로도 이해된다.
이렇듯 아버지로 상징되는 일체의 권위와 권력을 레오나르도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공백은 과학적 탐구 정신으로 채워졌다. 불운이 반드시 불행으로 귀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생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생아로 태 어났기에 그는 수학과 라틴어, 그리스어 읽기, 쓰기 등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대학에도 가지 못했으며, 주류 사회에 편입될 가능 성도 희박했다. 훗날 스스로를 일컬어 “학문이 없는 자Uomo Senza Lettere"라고 했지만, 지식에 대한 강한 욕구로 노년에는 라틴어를 독학으로 깨우쳐 고전을 읽을 정도였다. 그러니 저 말은 자조나 한탄이 아니라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글을 읽고 쓰기만 하 는 자들과 달리, 그는 스스로 “경험의 신봉자Disciepolo Della Speriena"로 당당했기 때문이다. 
시련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출생의 불운이 성공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맹자의 말도 레오나르도의 삶의 모퉁이마다 잘 들어맞는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는, 먼저 그의 마 음을 괴롭게 하고, 뼈와 힘줄을 힘들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게 한다. 마음을 격동시켜 성질을 참게 함으로써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레오나르도는 타고난 장점인 외모를 발전시켜 얻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덕분에 화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우리의 감각에서 생겨난다. 젊은 시절에 얻는 것은 노년의 비참함을 이겨내게 해준다. 그리고 지혜를 노년의 양식으로 삼기를 바란다면, 저장해둔 양식이 늙어서 부족하지 않도록 젊은 시절에 노력하라.
- 같은 시대를 살더라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은 달 라진다. 레오나르도가 15세기 후반에 태어났다는 사실보다. 피렌 체에서 10대 후반부터 15여 년을 보냈다는 점이 그의 예술세계에 서는 더 중요하다. 그가 밀라노나 로마에서 성장했다면 상당히 다른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도시도 사람처럼 개성이랄까 고유한 유전자 DNA가 있어서, 나를 키워줄 수 있는 특징과 분위기를 품은 도시에서 한 시절을 보내는 것은 상당히 가치 있다. 
- 새로움을 추구하려면 먼저 과거의 것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에 뿌리내리지 못한 새로움은 치기어린 시도에 그칠 뿐이다. 고대 로마의 판테온을 공부한 브루넬레스키처럼, 레오나르도는 이전 시대의 회화를 자신의 시대에 맞게 재창조해냈다. 모든 혁신은 현실에 발을 디뎌야 쓰임새가 생긴다.
- "레오나르도는 옷을 든 천사를 그렸다. 그때 그는 아직 매우 어렸지만 베로키오가 맡았던 다른 인물보다 훨씬 빼어나게 그렸던 것이다. 베로키오는 어린 제자가 자신보다 색채 처리와 묘사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고 결국 베로키오가 붓을 꺾는 원인이 되었다.”
- 과장을 양념으로 자주 사용한 바사리의 말을 그대로 믿긴 어렵겠으나, 이후 베로키오가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 이유를 바사리는 자기보다 뛰어난 도제를 향한 스승의 질투 탓으로 돌렸는데,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단 베로키오는 그리 옹졸한 성격이 아니었고, 그림이 개인의 예술작품보다 문화 상품으로 인정받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공방운영자 베로 키오에게 솜씨 좋은 제자는 탁월한 직원으로 기뻐할 일이었다. 따라서 베로키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차츰 그림은 레오나르도와 다른 도제들에게 맡기고, 베로키오 자신은 그보다 수익성이 좋은 조각과 세공에 집중했을 가능성이 크다. 흐르는 물에 담근 예수의 발을 통해, 당대 최고의 데생 전문가로 인식되던 베로키오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위의 바사리의 말은 실력 좋은 선생에게 잘 배운 제자 레오나르도의 빛나는 재능을 돋보이게 만들고 싶었던 마음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이런 평가는 레오나르도가 베로키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점차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예술가로 발전해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역사적인 기록 도 이를 뒷받침한다. 
1472년 스무 살의 레오나르도는 수련생활을 끝내고 보티첼리 와 함께 콤파냐 디 산루카에 가입하여 '피렌체의 장인 레오나르 도Maestro Leonardo Fiorentino 로서 독립 화가가 되었다. 당시 관례대로 베로키오와의 협력 관계는 계속 유지됐다. 
- 유럽에서 미술은 오랫동안 정해놓은 방식대로 그려야만 했다. 몇몇의 선구자적인 화가들이 그에 반기를 들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렸는데, 조토 디 본도네 Giotto di Bondone, c.1267~1337가 대표적이다. 조토는 중세에 르네상스의 씨앗을 심은 화가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종교화에 인간적인 표정을 불어넣었다. 조토는 세상의 생각보다 자신의 눈을 믿었고, 그림에 인간의 감정을 담아냈다. 그의 눈은 손을 통해 그림으로 구현됐다. 조토의 혁신적인 눈과 손을 가지려 노력한 레오나르도는 피렌체 과학의 위대한 선구자들 의 가르침을 흡수했고, 조토가 도착한 지점을 지나서 르네상스에 걸맞는 종교화를 구현했으니, 조토가 꾸었던 꿈은 레오나르도에 의해 마침내 이루어졌다.
- ‘문명 이야기 신앙의 시대’를 쓴 역사가 윌 듀랜트에 따르면, 교회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공포심 을 꼽았다. 천국과 지옥으로 극명하게 나뉜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과 논리적인 반박은 매우 위험했지만, 레오나르도는 한 번 시작된 의문과 호기심을 멈추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는 사람 들의 죄를 없애준다며 교회가 팔았던 면죄부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비판했다.
"갖가지 다양한 물건이 공식적으로, 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린다. 그 물건들은 그만한 가치도 없고 또 어떤 힘도 갖고 있지 않으며, 주께서 그 물건들을 팔라고 허락하신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인간의 정의로 이를 막을 수 없단 말인가.”
-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자연을 탐구하면서 이단의 정신이 생겨나서 가톨릭과 불화하게 됐고, 기독교인보다는 철학자의 길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은 레오나르도 사후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레오나르도가 생전에 스스로 '이단의 정신'을 운운했다면 제 명대로 살기 어려웠을 텐데, 그저 자신의 노트에 기록만 했으니, 교회는 레오나르도의 불경한 생각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과학자였으나 사상가는 아니어서 자신의 의심과 발견으로 세상을 바꾸거나 기존 진리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없었다. 내가 궁금하고 의심이 들어 탐구해서 해결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 창조성은 변방에서 비롯된다. 내가 세상의 중심' 혹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한다면 창조성은 발휘되지 못한다. 시대의 중심과 사회의 주류는 현상 유지에 에너지를 쏟아붓기 때문에, 주류의 힘이 미치지 않는 비주류의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들이 만들어지기 쉽다. 왼손잡이 사생아이자 동성애자, 채식주의 자 등 사회의 비주류였던 레오나르도는 종교에 대해서도 새로운 생각을 가졌고, 그것을 새로운 관점과 기법으로 르네상스의 종교 화를 그렸다. 바로 이것이 치열한 피렌체 예술시장에서 젊은 레오나르도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비법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이 빛이라면, 그림자는 미완성작이 많다는 것이다.
- "좋은 화가가 그려야 할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인간, 그리고 그 영혼의 의도이다. 앞의 것을 그리기는 쉽지만, 뒤의 것은 어렵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레오나르도는 이미 성취한 것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화가가 아니었다. 만족을 몰랐고, 건축과 해부학 같은 분야를 파고들어 얻은 새로운 발견들을 그림에 완벽하게 녹여내고 싶었다. 욕심은 실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창작 과정에는 장애물로도 작용한다. 생산성에는 커다란 결점이나, 완성작에는 장점이다. 압도적인 장점 하나는 자잘한 단점을 덮는다. 그는 적은 수의 작품을 완성했으 나, 스프링처럼 많이 움츠렸다가 튀어오르듯 완성작들은 아주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니 미완성작이 많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30여 점이나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 그림은 생각의 표현물이다. 문제는 누구의 생각을 표현하느냐 다. 레오나르도의 시대는 교회(교황과 성직자)와 왕(귀족) 같은 주문자의 생각을 담아내야 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제 생각을 담으려 했다. 이것은 표현기법의 문제를 넘어, 화가를 그림의 주체로 믿 었다는 뜻이다. 그림의 제작비용과 실력에 대한 대가로 거래를 하 나, 내 창작물은 내 생각대로 완성하겠다'는 태도다. 따라서 레오나르도는 주문자의 요구를 자신의 욕구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네와 반 고흐가 활동하던 19세기 후반에서야 조금씩 받아들여진 이러한 생각을, 레오나르도는 무려 400년 앞서서 실행했다. 따라서 그의 미완성 작품은 예술가로서의 독립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피렌체 예술시장의 큰손인 성직자들은 중도 포기를 일삼고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레오나르도에게 점점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시대와 맞지 않는 예술관도 문제였다. 레오나르도는 주문자 화가의 관계보다 후원자 - 예술가의 관계를 원했으나, 피렌체의 상인 자본가들은 그림과 조각 부분에서 세속적인 욕구를 매끄럽게 풀어내는 브라만테,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를 더 선호했다. 
나이와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도시는 달라진다. 피렌체는 레오나르도를 장인으로 키워냈으나, 그가 실력을 꽃피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희망 없는 곳에서는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레오나르도는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로 했다. 그렇다고 막연한 희망을 꿈꾸며 무턱대고 떠날 수는 없었다. 우선 '피렌체 출신의 장인'이 후광효과를 누릴 수 있는 곳, 예술 후원자가 많은 군주국가, 그림과 조각 등에 대한 수요가 많은 곳일수록 승부를 걸어볼 만했다.
그림에 흥미를 잃고 불안과 걱정의 나날을 보낼 때, 희망의 비둘기가 날아들었다. 밀라노 군주가 로렌초 메디치에게 실력 좋은 화 가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밀라노는 레오나르도가 원한 조건을 대체로 만족시키는 곳이었다. 그는 밀라노 왕의 후원을 받으며 쾌적한 환경에서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바람이 곧 이뤄지리라는 기대로 부풀어올랐다.
여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스승 베로키오가 밀라노 궁정 과 일한 적 있었고, 당시 「수태고지」와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 등을 그리면서 레오나르도의 실력도 꽤 인정받았던 터였다. 하지 만 로렌초가 선택한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이루 말할 수 없 는 실망은 곧 로렌초가 레오나르도를 음악가로 보내기로 결정하 면서 희망으로 되살아났고, 서른 즈음의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떠난다. 이것이 여행에 그칠지, 이주가 될지는 전적으로 밀라노의 지배자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 1452~1508에게 달렸다.
- 인생에서 늘 같은 것만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의 시기마다 원하는 것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10대부터 20대까지 레오나르도가 원한 것과 30~40대에 원하던 것은 분명히 달랐다. 나이, 도시, 주변 사람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아울러 살펴보면, 그 변화는 확연하다. 10대와 20대에는 자신의 자유로운 기질이 너그러이 받아들여지며, 새로운 학문과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가들이 즐비한 피렌체에서 과거와 현재의 생각들을 스폰지처럼 수용했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과 배경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밀라노로 옮겨와 30대를 맞았다. 그것은 실로 탁월한 결정이었다. 그 덕분에 루도비코를 위시한 새로운 주문자들과 만났고, 새로운 협력자(와 제자)들과 아틀리에를 열고, 새로운 학문에도 빠져들었다. 그렇게 그림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의 결실이 그림으로 흘러들었고, 피렌체의 세련됨에 밀라노 궁정의 화려함을 더한 우 아한 스타일이 구축되면서, 레오나르도의 이름이 이탈리아 전역 으로 퍼지게 된다. 밀라노로 가지 않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공 이었다. 사는 장소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레오나르도의 출생 DNA는 밀라노의 환경 DNA와 만나면서 활짝 피어났다. 영광의 뒤편에서는 궁정 대신들의 무시가 여전했으나, 레오나르도는 아주 우아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그들에게 복수한다. 비트루비우스 인간에 그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레오나르도는 궁정인들을 “권위에 의존하는 것으로 토론을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단지 지성이 아닌 그의 암기력을 사용하고 있을 뿐” 이라며 고전을 외워 반복만 해댄다며 진정한 배움을 모르는 나팔수이자 다른 사람들의 노동 덕분에 외모를 치장하고 잘난 체하며 거들먹거리는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자연에서 직접 길어올린 자신의 지식이 더 우월함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밀라노에서 새로운 기회로 부풀었던 가슴은 분노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고대 서적을 읽기 위해 뒤늦은 나이에 라틴어 동사 변화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지식을 사랑했고, 그것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괴로움과 쓰라림을 대가로 치렀다. 그런 레오나르도를 봤는지, 1497년경에 라틴어 학자 빔보 추기경은 라틴어 '아마레amare를 사랑하다, 괴롭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사랑은 곧 괴로움이었으니, 지식을 사랑한 레오나르도는 괴로움도 컸다. 애석하 게도 라틴어는 금세 늘지 않았지만, 그는 뜻밖의 성과를 얻었다. 결정적 계기는 고대 로마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 가 쓴 건축이론서인 『건축 10서 De architectura libri decem』다. 그림 없이 글로만 쓰인 터라 레오나르도는 주변의 도움을 얻어가며 겨우 읽어낼 수 있었는데, 피렌체에서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를 알게되었을 때만큼이나 강한 몰입으로 비트루비우스의 생각을 흡수 했다.
"균형잡힌 인체의 부분들과 관련된 원리를 정확히 따르지 않는다. 면 그 어떤 신전도 조화와 비례가 없으므로 제대로 세워질 수 없다.”
비트루비우스는 원형과 사각형의 조합이 완전한 모양을 만들어내며, 심지어 그것이 인체의 완전성과도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인체와 건축은 관련이 깊다는 비트루비우스의 의견에 동의한 레오나르도는 건축가를 '건물의 의사醫師'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건축 디자인과 인체해부학의 밀접한 연결성을 이해했고, 해부학 스케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분노로 촉발된 공부가 레오나르도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건축, 인체해부, 생리학 같은 분야의 지식들을 서로 연결하게 만들었다.
"세계의 모든 것이 일련의 보편 법칙, 원리, 관계, 힘 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서로 묶여 있다는, 거의 두려울 만큼의 우주적인 장대함으로 깨달았을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세계에 관한 경험적 연구를 충분히 부지런히 해나간다면, 사물의 내부 원인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이런 관점에서 회화는 세상에 대한 모사가 아니었고, 자연 피조물의 성질과 아름다움, 세계의 조화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 었다. 사람의 몸은 기어와 도르래 등 다양한 부품들로 구성된 일종의 기계이고, 기계는 조화와 균형을 갖춘 유기적인 몸과 같으며, 같은 원리로 건축은 해부학이요, 해부학은 지리학, 지리학은 수학, 수학은 기하학, 기하학은 음악, 음악은 일종의 물리학이라는 결론 에 도달했다. 이 모든 것의 열쇠는 수數, 소리, 무게, 시간, 공간, 존 재하는 모든 힘에서 파악되는 비례라고 믿었다.
생각은 이렇게 했으나,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다른 사람들 에게 전달하자니 막막했다. 레오나르도는 이해력은 좋았으나 자신이 이해한 것을 상대에게 풀어 설명하거나, 관찰한 것을 요약하는 데는 서툴렀다. 결국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깨달음을 그림으로 표 현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린 배경이다.
- 자기 능력의 80퍼센트만으로 잘해낼 수 있는 일을 하면, 여유롭게 일 을 마무리할 수 있다. 자기 능력의 100퍼센트가 필요한 일은 다소 힘겹고 작은 돌발 변수에도 숨이 찬다. 능력의 120 퍼센트를 발휘해야 하는 일은 주변에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레오나르도는 능력을 약간, 때때로 과도하게 상회하는 일에 과감하게 자신을 던지곤 했다. 그렇게 해서 성취하지 못한 일들도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시키고 발전시켜나갔다. 우리도 공을 멀리 차야 할 때가 있다. 공을 찬 후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려야 한다. 잠 재된 실력이 발현될 때 우리는 그만큼 성장한다.
- ‘최후의 만찬’에서 세속과 성스러움이 공존하는 예수의 얼굴은 추기경의 측근인 조반니 공작, 손은 파르마의 알렉산드로를 모델로 삼았다. 이러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는데, 모두가 그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중도 포기의 악명이 높은데다 어떤 날에는 그림 앞에서 하루종일 지그시 바라 보기만 했고, 다른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와서는 붓질 한 번 하고 다시 떠나는 경우도 많았으니, 그를 감독하는 산타마 리아텔레그라치에의 수도원장의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이에 그는 루도비코에게 레오나르도를 힐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재치 넘치는 반박문이 기록으로 남아 전해진다.
“전하(루도비코), 작품에서 유다의 머리만 완성되지 않았음을 알고계실 것입니다. 유다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소문난 악한이기에 그의 사악함에 걸맞는 얼굴이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찾느라 거의 1년 동안 흉포한 자들이 득실거리는 보르게토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가 생각하는 그런 악한의 얼굴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악한의 얼굴을 찾기만 하면 바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저의 연구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면 전하께 저를 모함한 자가 바로 유다에 합당할 터인즉 그자의 얼굴을 대신 그려놓겠습니다.”
-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가 생전에 가장 극찬을 받은 작품 이었으나, 경동 기마상을 만들 기회는 끝내 얻지 못했다. 오히려 프랑스 군대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을 피해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 떠나야 했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를 떠나 만토바로 향했다. 당대의 예술 후 원자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화를 스케치했지만, 말이 유명한 만토바에서는 주로 말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그렸다. 이후 레오 나르도는 만토바를 떠나 베네치아로 가 군사 관련 일을 하다가 1500년 4월경에 18년 만에 다시 피렌체에 정착한다. 이를 제2차 피렌체 시기로 본다.
- 미국의 과학사가 조지 사턴은 돈과 권력과 편리보다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면서 레오나르도를 반란자라 불렀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는 분명 대단한 기술과 실력을 가졌으면서 도 부귀영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돈이 안 되는 일에 집중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림 한 점에 수년을 매달리고, 해부학과 수학을 연구하고, 언제나 적당히 실용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했다. 이런 고집이랄까 세계관 때문에 그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만 했 다. 그래도 자기답지 않은 것으로 사랑받느니, 차라리 자기다움으로 미 움받겠다던 소설가 헤밍웨이의 말처럼, 레오나르도는 꿋꿋이 자기다움 을 유지했다. 레오나르도의 위대함의 비결은 많은 대가를 치르고 지켜 낸 자기다움이었다.
- 레오나르도에게 그림은 과학이었고, 미켈란젤로에게 조각은 창조였다. 과학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겠다는 태도가 전제되므로 레오나르도는 물질을 정신보다 중요하게 여긴 현실주의자였고, 돌과 회화를 통해 신의 고귀한 정신을 표현한 미 켈란젤로는 정신만이 가치 있다고 믿었던 이상주의자였다. 아름 다움은 사물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재현하면 드러난다고 생각했 던 레오나르도는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구하여 추한 인물들도 거침없이 그렸다. 성 제롬의 모습을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세속의 노인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이유다. 해부학은 그에게 인간이 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인 반면에, 미켈란젤로에게는 단지 인체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레오나르도에게 미켈란젤로는 예술을 이상의 수단으로 삼는 보 수파였고, 미켈란젤로에게 레오나르도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망치는 진보파였다. 둘의 갈등은 서로의 일거리를 뺏으려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극명하게 달랐던 그림과 조각을 향한 관점에서 비롯됐다.
- 레오나르도는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이해했고, 미켈란젤로는 신의 사랑이 구현된 세상에 감탄했다. 따라서 미켈란젤로의 몸은 르네상스에 속했으나 의식은 중세에 고정되어 있었다면, 레오나르도는 저 멀리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근대를 향해 걸었다. 과거의 인간과 미래의 인간이 현재에 만나 부딪힌 셈이 다. 미켈란젤로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반면에, 레오나르도는 시대의 상징이 되었던 이유기도 하다.
-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를 만드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레오나르도는 얼굴을 윤곽선 없이 비대칭으로 그렸다. 즉, 모나리자의 왼쪽 입가가 오른쪽보다 올라가 있고, 왼쪽 눈 주변의 음영이 반대 쪽보다 깊다. 그래서 왼쪽 얼굴을 가리면 심각해보이고, 오른쪽을 가리면 미소가 강해진다. 현대의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 뇌가 좌뇌보다 감정처리에 더 많이 관여하므로 감정은 우뇌가 관장하는 왼쪽 얼굴에서 도드라진다. 따라서 지금 상태의 얼굴로는 화가 앞에서 긴장한 조콘다 부인이 억지로 미소를 짓거나, 미소로 자신의 속내를 감추려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눈도 좌우가 미세하게 다른 곳을 보고 눈꼬리의 높이도 다르다. 레오나르도는 인간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눈과 입의 양쪽 끝을 각각 다르게 묘사하여 관람자가 혼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인간이 어떤 감정일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것이 어떻게 보이 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한 레오나르도는 그것들 사이의 연관관계 를 정확히 파악했고,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 혼란을 가중시킨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나리자를 보면서도 조콘다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으며, 그림 속 조콘다 부인이 우리를 보고 있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레오나르도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모나리자를 신비롭게 만들었는데, 이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얻은 성취다.
- 「최후의 만찬」에서 시도한 프레스코와 유화의 접목은 실패했고, 거기서 얻은 교훈으로 다시 도전한 「앙기아리전투에서도 레오나르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불완전했겠지만, 전작보다는 오랫동안 그림이 유지됐을 것이다. 실패를 새로운 시도의 교훈으 로 받아들이며 지속했고, 그 결과 벽화에는 유화의 장점을 구사하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벽을 버리고 나무판에 여러 번 덧칠하고 자연의 빛이 그에 스며들도록 내버려뒀 다가 또 덧칠하는 과정에서 스푸마토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 스푸마토가 절묘하게 발휘된 모나리자」 「성모자와 성 안나」 「세 례자 요한」은 「최후의 만찬」과 「앙기아리전투 등의 실패에서 피워낸 꽃인 셈이다. 
- 「앙기아리전투를 중단하고 피렌체를 떠나면서 시작된 제2의 밀라노 시기 동안 레오나르도는 그림보다 해부학과 궁정의 연회에 사용되는 장식물 제작, 건축가로서 관개시설에 관련된 작업 등을 주로 맡았다. 특히 책에서 영향을 받았던 이전의 오류(남자의 성기 와 뇌가 연결되어 정액이 뇌에서 생긴다는 중세의 정보)들을 직접 해 부해 바로잡으면서, 인체해부도의 완성도를 높였다. 자궁 속의 태아도 이즈음에 그렸다. 실제 임산부의 몸이 아닌 소를 해부한 탓 에 4~5개월의 태아가 사실과 달리 서 있다. 인체의 피부, 골격 구조나 근육 등은 자세히 알 수 있었지만, 인체의 장기에 대한 부분은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체에 정통해진 레오나르도는 인물을 아주 색다른 관점에서 표현했는데,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 레오나르도 창조력의 비밀 "남성성의 원리와 여성성을 통합해야 온전한 전체가 될 수 있다. (.........) 스탠퍼드대학이 실시한 연구에서 심리학자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적 기능은 남성성과 여성성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발휘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토런스 박사는 성역할이 고정되면, 창의성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창의성을 발휘하 려면 여성의 특성인 감수성과 남성의 특성인 자율성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남성성과 여성성 가운데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높은 지적 수준 에 도달하기 어려우며, 성 역할이 고정되면 창의성이 발휘되지 못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레오나르도의 창조성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남성성과 여성성의 균형이고, 그것이 그가 살았던 르네상스가 요구하는 두 성의 비율과도 맞았다. 즉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여성적인 문화와 중세의 남성적인 문화를 자기만의 방식과 비율로 재창조해냈고, 시간이 흐르면서 후대 사람들은 르네상스의 시대적 특징과 레오나르도의 대표작인 모나리자」와 「세례자 요한」이 이에 정확히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따라서 레오나르도를 가장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보는 이유는, 그가 다양한 분야 에 업적을 남겨서가 아니라, 그가 그 시대의 정신에 부합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를 이룬 창작자였고, 거기에서 그의 왕성한 창조력이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점이 프랑스 왕의 마음을 건드렸고, 노년의 예술가를 프랑스로 모셔간 이유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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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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