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과학

심리 2020. 10. 27. 08:27

- 기억을 물리적 존재로 보는 견해는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진 식을 말하자면 자전적 기억은 우리가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재 순간에 현재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는 정신적 구성물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인지적 수준(사고, 감정, 믿음, 지각의 수준)과 신경적 수준(뇌의 활성화)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인지적, 신경적으로 볼 때 바이어트는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있을 때마다 매번 새롭게 기억을 구성한다. 이것은 기억이 고정적이고 나눌 수 없는 실체라는,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가보라는 인 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 책에서 내가 살펴보고자 하는 견해는 기억 이 습관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요구가 있을 때마다 매번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살짝 다른 방식으로 부분들로부터 뭔가를 구성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런 구성적 성격 때문에 기억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자전적 기억의 밑바탕이 되는 정보는 정확하게 저장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현재 순간의 요구에 맞게 통합되어야 하며, 매 단계마다 실수와 왜곡이 끼어들 수 있다. 최종 결과물이 아무리 생생하고 그럴듯 해 보인다 해도 생생함이 정확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과거에 대한 일 관된 이야기는 때로는 사실과의 일치를 포기하고서만 얻어질 때도 있 다.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은 못 믿을 것이 되기 쉽다. 기억에 대해 다 르게 생각하려면 우리의 자아의 핵심에 아주 가까이 있는 어떤 '진실' 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가 카메라와 같은 식으로 경험을 저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안다. 우리의 기억은 다르게 작동한다. 경험에서 핵심적인 요소들을 추출해서 그것들을 저장한다. 그런 다음 경험을 재구성한다. 경험을 그대로 저장했다가 인출하는 것이 아니다. 가끔 재구성 과정에서 우리는 감정과 믿음을 더하고, 심지어는 경험하고 나서 얻은 지식을 더하기도 한다.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얻은 감정이나 지식을 사건에 속하는 것으로 귀속시키므로 과거의 기억은 편향될 수 밖에 없다.
- 길 잃기를 문화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최 근작 『길 잃기 안내서A Field Guide to Getting Lost」에서 솔닛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기 좋아하는 인간의 성향을 찬양한다. 길 잃기는 우리가 자발적 통제를 행사할 수 있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낯선 환경의 생소함에 스스로를 맡기고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길(지형적 길과 심리적 길)을 즐길 수 있다. 혹은 우발적으로 불행하게, 심지어는 위험하게 길을 잃기도 한다. 길 잃기의 경계를 탈 수도 있다. 처음 가보는 유명 도시에서 딱히 정해둔 계획 없이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하지만 가다 보면 유명 한 명소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필요하면 지도를 꺼내 도움을 받을 수 도 있으니 완전한 길 잃기는 아니다. 솔닛에게 잃는다는 것은 두 가지 다른 의미가 있다. “사물을 잃는 것은 익숙한 것이 물러나는 것이고, 길을 잃는 것은 낯선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추구한 것이든 아니든 길 잃기는 어떻게 보면 기억의 성 패에 관한 것이다. 길을 찾으려면 자신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자신 이 최근에 (혹은 그렇게 최근은 아니더라도) 어디에 있었는지를 주목하고, 이런 정보를 부호화하고 인출해야 한다. 주위 환경에 대한 정신적 지도를 작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계속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솔닛은 길을 잃는 사람들은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곤경을 알아차렸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날씨를, 걸어온 길을, 도중에 만 나는 지형지물을 살피는 기술이 있다. 뒤를 돌아보면 나중에 돌아갈 때의 길이 지금 가는 길과 달라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기술이 있 다. ... 길을 잃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언어, 즉 지구 자체의 언어를 읽지 못하는 문맹이거나 멈춰 서서 읽어보지 않는 사람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의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우리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려는 화자(마르셀 본인) 의 노력을 따라간다. 책 서두에서 마르셀의 기억은 성공하지 못했다. 프랑스 콩브레 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단편적 기억으로만 떠오를 뿐이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어머니가 차를 마련해주자 그는 프티트 마들렌 과자를 라임차에 적셔 맛본다. 효과는 즉각적이고 신비로웠다.
따뜻한 차와 파삭거리는 빵가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갑자기 온몸에 소스라치는 전율이 일었고,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현상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감미로운 쾌감이 내 감각을 휩쓸고 지나갔는데 도무지 어디에서 연유한 건지 알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삶의 우여곡절은 내게 무덤덤하게, 삶의 재앙은 무해하게, 인생의 짧음은 착각으로 여겨졌다. 이 새로운 감각은 사랑이 그러하듯 나를 소중한 본질로 채우는 효과를 발휘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이어지는 대목은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기억하기의 예로 꼽힌다. 마들렌을 맛보고 난 마르셀의 불가항력적인 감정적 반응은 당연히 그 의 과거 탐구의 종착점이 아니다. 그는 이로 인해 촉발된 재구성 과정을 이후 몇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는데, 그의 과거의 단편들은 서서히 어렵사리 하나로 맞춰지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 마르셀은 이런 기억하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3000페이지가 넘는 소설 쓰기에 매달린 것이다.
- “마음은 스스로를 넘어 서는 문제에 처할 때마다 불확실함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그러면 탐색 하는 자, 마음은 캄캄한 곳에서 탐색을 계속 해야 한다. ... 아직 존재 하지 않는 것, 오로지 마음만이 실현할 수 있는 것, 오로지 마음만이 밝은 빛 속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과 마주한다.” 워낙 자주 인용된 (하지만 제대로 검토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이 구절에서 프루스트는 자신이 기억의 재구성적 성격을 완전히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전적 기 억은 가용한 재료들을 바탕으로 구축되는 것이 틀림없고, 강력한 감각적 인상은 그런 건축물의 한 요소에 불과하다.
- 이런 과정이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마르셀에게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그가 희망을 접으려고 할 때 자신을 그토록 몰아붙였던 맛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 이면 차에 적셔 주던 마들렌 과자의 맛임이 생각났다. 그런 연결고리 가 만들어지자마자 나머지 맥락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그가 노력해 야 했던 부분은 마들렌의 맛을 레오니 아주머니의 기억과 연관시키는 처음의 작업이었다. 이미지가 인출되자 다른 이미지들과 의미들이 곧 바로 자리를 잡았다. 프루스트는 냄새와 맛에는 묻혀 있던 기억을 들추어내는 특별한 힘이 있지만, 다른 기억들의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와 같은 기억의 집요함을 프루스트가 정리한 대목은 그 자체로 무척 인상적이다. “그러나 오래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사람들이 죽고 사물들이 부서지고 흩어지고 난 뒤에도, 보다 연약하지만 보다 지속적인 맛과 냄새만은... 나머지 모든 것이 폐허로 남은 가운데... 오래도록 침착하게 남아, 작고 거의 만질 수도 없는 정수가 담긴 방울로 회상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굳건하게 떠받친다.”
- 냄새와 맛에 이런 특별한 힘이 있다는 프루스트의 말은 사실일까? 이런 감각들에 특이한 신경학적 속성들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다섯 감각의 대부분은 감각 기관이 받은 정보가 시상(뇌간 바로 위쪽에 있고 해 마로 둘러싸인 뇌 부위)이라고 하는 중간 기착지를 거쳐 뇌의 기억 체계로 전달된다. 냄새의 경우에는 코 안쪽 위에 있는 후각 수용체가 신호를 짧은 경로를 통해 후각피질로, 이어 곧장 해마로 보내고 시상은 우회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기억에서 냄새의 특별한 힘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점이다. 후각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면 미각은 그 뒤를 따라간다. 우리는 사실 기본적인 맛의 아주 좁은 범위만 감지할 뿐이 며, 우리가 경험하는 맛의 복잡성은 대개 후각 체계의 작용으로 인한 것이다. 프루스트가 마들렌 과자의 기억을 특별하게 소환하는 맛을 경 험했을 때, 그는 맛을 보는 것만큼이나 냄새도 맡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해부학은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뇌로 이어지는 경로가 다른 감각들에 비해 더 짧고 직접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억에서 특별한 힘을 갖는 것이라고 단정하면 오해로 이어지기 쉽다. 시각 체계의 경우 망막에 있는 광수용 세포에서 시각피질로 이어지는 경로가 길고 구불구불하지만, 자전적 기억에서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인 하는 사람은 없다. 사실 프루스트도 후각보다는 시각에 한층 의지하 여 서술한 작가다. 와인 감정에 처음 참가해보면 알겠지만 향을 표현 할 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프루스트 같은 작가가 기억 의 문제를 다루는 책을 시각적 인상들로 채우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냄새가 기억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다고 결론 내리려면 후각적 기억이 다른 기억보다 더 굳건하게 뿌리 내리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냄새가 유발하는 기억이 먼 과거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영국에서 있었던 한 연구는 자전적 기억이 언어적 단서로 유도되었을 때 열한 살에서 스물다섯 살 사이에 집중적으로 분포함을 보여 주었다. 회상 절정이라고 알려진 현상에 잘 들어맞는 결과다. 이와 대조적으로 냄새를 단서로 제시하자 회상이 집중되는 시기가 여섯 살에 서 열 살 사이(실비아의 담뱃재 냄새 기억과 같은 시기)로 앞당겨졌다. 냄새가 유발하는 기억은 회상이 몰리는 시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보인다.
- 서로 다른 감각들은 제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기억과 상호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냄새 기억이나 음악 기억에 특별한 점이 있느냐가 아니라 모든 감각 자극이 어떻게 자전적 기억의 인출로 이어지느냐는 것이다. 후각적 기억은 독특한 신경 경로 가 있어서(그래서 애초의 반응이 훨씬 감정적이다), 그리고 언어로 다루기 가 어려워서 통합하기가 유독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아무튼 뇌가 다른 채널로 들어오는 감각적 정보들을 잘 통합해서 생생하고 다차원적 인 자전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냄새가 그림과 함께 짝지어지면 이후에 그림을 볼 때 냄새를 담당하는 피질 부위가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뇌는 내측 측두엽 체계와 다섯 가지 감각에서 받는 정보를 처리하는 각각의 피질 부위 사이의 매끈한 협업을 통해 감각적 연상을 기억한다. 향기와 노래로 인한 기억의 이런 예들은 기억의 다매체적 특징을 강조하면서, 자전적 기억의 형성이 우리가 감각적으로 감정적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기억은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 (세스 노터봄, 작가)
- 기억은 오로지 자신의 주인에게만 봉사한다. 오로지 기억하는 사람의 목적을 위해서만 작동한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요구에 따라 이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허구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볼 수 있다.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정직하게 대면하고자 한다면 기억의 매력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 해마는 정보 조각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기억하고 이를 한데 묶어 일화적 기억으로 만드는 일의 주역이기도 하다. 기억을 인출할 때 이런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의식에 포착되기만 해도 해마는 연관관계 패턴을 복원하여 기억의 다른 특징들을 생각나게 할 수 있다. 해마는 기억 자체를 저장하지는 않는 것 같고(일화적 기억을 이루는 기본 재료들은 피질 곳곳의 여러 장소에 분포되어 있다) 이런 요소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저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연관관계에 특별히 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자 료를 접할 때마다 해마가 유독 활발하게 돌아간다는 것이 뇌 영상 스 캔으로 확인되었다. 캐나다 과학자들의 뇌 영상 연구 결과는 좌반구 해마의 한 부분이 의 미적으로 새로운 문장에 반응했음을 보여주었다(구문적으로 새로운 문장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관념들 사이의 관계를 바꾼, 즉 문장의 의미를 바꾼 정보는 특별히 뇌의 이 부위를 활성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정보는 참가자들이 더 정확하게 기억한 것이기도 했는데, 해마가 기억 형성에서 맡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 다. 새로운 정보가 기억되려면 기억을 만드는 일에 관여하는 내측 측 두엽에서 폭포처럼 풍성한 활동들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뇌의 이 부위를 작동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새로운 의미적 정보밖에 없다는 사실은 기억이 표층적 형식이 아니라 의미에 기댄다는 뜻이다.
- 어떤 정보가 부호화될 때는 기억의 대상과 당시 그 주위에 있는 단서 사이에 연관관계가 만들어진다. 맥락이 기억을 촉발하는 강력한 단서인 이유다. 우리는 기억이 일어날 때와 같은 맥락에 있을 때 사건과 정보를 떠올려보라는 요청에 그것들을 더 잘 기억해낸다. 한 실험에서 심해 잠수부들에게 물 아래에서 본 단어 목록들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그들은 뭍에서보다 그것들을 본 7미터 해저와 똑같은 환경에 있을 때 단어들을 더 잘 기억해냈다. 범죄 수사에서는 목격자의 기억을 돕 기 위해 범죄 현장에 다시 데려가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기억하기 는 넓게 보면 부호화의 환경과 인출의 환경이 우연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부호화의 순간에 주위에 있는 단서들이 기억되는 재료와 함께 저장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런 단서들을 접하면 기억이 다시 활짝 펴서 의식에 불려갈 수 있다.
- 기억은 점차 조직화되면서 더욱 믿을 만하게 된다. 기억의 흔적이 확고하게 각인될수록 다른 기억과 더 구별되게 되고, 자아와 관계되는 정보와 통합될 가능성도 커진다. 기억을 독보적이고 지속적으로 자신 의 경험의 일부로 만드는 특징들이 더욱 더 두드러진다. 다른 정보 출 처와 잘 통합된 이런 양질의 기억은 그만큼 불러오기도 쉽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실제로 일어난 일과 분리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기 억은 단편들과 통합되지 못한 감정의 세계에서 벗어날수록 그만큼 왜곡에 취약해진다. 기억은 조직화되면 될수록 그만큼 미끈거리게 된다.
- 우리는 기억할 때 그저 사건을 정신적 DVD로 기록했다가 회상하는 순간에 그대로 돌려보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현재 순간에 만들어지는 구성물이다. 사건 자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앞서 보았듯이 자전적 기억에는 내측 측두엽 회로(해마와 인접해 있는 피질 부위를 포함하여)와 전전두피질의 통제 체계간의 면밀한 협업이 동반된다. 감각적 기억의 단편들이 뇌의 감각피질 에서 들추어지고 사건에 대한 보다 추상적인 지식의 표상과 뒤섞인다. 그런 다음 현재의 요구에 따라 재결합된다. 이런 적극적인 재구성 과정을 거치므로 기억이 왜곡에 그토록 취약한 것이다.
-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행복한 사랑은 하나의 이야기, 무너지는 사랑은 둘 이상의 경합하고 상충하는 이야기이고, 무너진 사랑은 발치에 놓인 깨진 거울 같은 것이다. 각각의 조각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비춘다. 좋았다는 이야기, 끔찍했다는 이야기,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이야기, 저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이야기도 있다.” 적어도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에 는 합의가 유지되어야 한다. 한 친구는 남편과 이혼하고 나서 기억과 관련되는 온갖 종류의 불일치가 갑자기 수면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함 께 지내는 동안에는 세부사항에 대한 이런 이견이 공공의 이익을 위 해 희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 실험의 조건이 정확하게 설정되기만 하면 사람들에게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기억을 주입하 는 일은 의외로 쉽다. 그리고 이런 회상은 대단히 생생한 경우가 많음 을 워릭 대학 킴벌리 웨이드의 연구가 보여주었다. 웨이드는 실험에 참 가하는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협조를 얻어 어린 시절 사진을 손에 넣 었고, 열기구 탑승과 같은 사건이 학생에게 일어난 적이 없음을 확인 했다. 그런 다음 참가자의 어린 시절 얼굴을 비행 중인 열기구 상자와 같은 결코 경험해보지 않은 맥락 속에 집어넣는 조작을 가했다. 학생 들에게 이런 이미지를 보여주고 2주가 지나자 절반가량이 어린 시절에 열기구를 탔던 것을 때로는 상당히 상세하게 '기억'했으며 사진이 진짜 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는 놀랐다. 기억의 영역에서는 생생함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보증하지 않는다.
- 커라더스의 분석에 의하면 기억술memorin 은 현대적 개념의 인지 cognition'에 더 가깝다. 의미적 기억과 일화적 기억, 사고와 추리, 감정과 상상을 포괄하는 말이다. 구성적이고 조합적인 작업으로 옛것을 끝없이 되새김질하기보다는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이는 여러 다른 종류의 정보를 결합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복사기로서의 기억이 아니라 컴퓨터로서의 기억이다. 이런 특징 덕분에 기억술은 수도승의 명상이라는 과업에, “신에 대한 생각을 만드는 기술에 적합한 것이 된다. 명상은 영적 완전함에 대해 창조적으로 유연하게 생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12세기 주석가 성 빅토르의 휴 고의 말에 따르면 명상은 “열린 공간을 활보하는 기쁨을 누리며 ...주제들을 이렇게도 연결해보고 저렇게도 연결해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수도승은 성경의 가르침을 포괄적으로 기억해서 어느 대목에도 자 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중세의 기억술은 초인적인 학습 솜씨 를 자랑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신성함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원 재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철저하게 현대적인 개념의 기억이다. 앞서 보았듯이 기억하기는 사건의 고정된 표상을 마음속에 불러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재조합하는 것에 가깝다. 중세 시대에 사고의 기술은 이미지 만들기에, 사람의 사고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여 기억을 돕는 장치에 크게 의지했다. 생갈의 설계도나 실제 혹은 가상 의 건축을 묘사한 성경의 기록 같은 회화술은 수도승들에게 자 신의 지식을 조직하는 유용한 뼈대, 간편한 청사진이 되었다. 사상가는 그런 설계도를 내면화하고 거기에 자신의 이미지들을 이식했다. 이런 이미지들 각각이 별개의 단위, (현대의 인지과학 용어로 말하자면) 지 식의 '덩어리chunk를 나타내게 된다. 커라더스는 말한다. “중세의 기억 술은 보편적인 생각하는 기계였다. .... 경험(책으로 접하는 경험을 포함하여)이라는 곡물을 빻아 정신적인 가루로 만들어 몸에 좋은 빵을 만들도록 하는 제분소이자 지혜롭고 노련한 모든 석공이 새로운 물건을 만 들기 위해 제작법과 사용법을 배웠던 윈치(밧줄을 사용하여 무거운 물건 을 올리거나 내리는 장치 옮긴이)이기도 했다.” 기억술이 가진 흥미롭게도 현대적인 느낌은 다른 특징들에서도 드러난다. 기억의 이미지는 감정적 힘, 마음에 달라붙어 생각에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으로 인해 선별된 것이다. 회상과 낯익음을 담당하는 신경 체계가 변연계의 감정의 망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관심이 있 는 현대의 인지 신경과학자들은 기억을 본질적으로 감정이 덧대어진 것으로 보는 이런 견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기억을 구성적이고 조 합적인 것으로 여기는 중세의 견해는 정보가 모든 세부사항에서 충실 하게 복제되는 것보다 연산의 효율성이 좋은 구성적 기억을 높게 치는 현대의 정보처리 분석과 맞아떨어진다. 기억술은 또한 기억하는 사람 이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결합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알려준다. 신에 대한 기억을 하고자 할 때 사상가는 자신의 지식과 성경에서 묘사한 것을 접한 경험을 혼합한다. 그래서 예루살렘인은 항상 자신에게 익숙한 풍경과 건축의 일부를 포함하는 것으로 상상했고, 어떤 수도승의 영적 완전함에 대한 견해도 다른 수도승의 그것과 같지 않았다. 따라서 중세의 기억술은 기억에서 상상력이 행하는 역할을 바라보 는 새로운 (실은 낡은) 방법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기억하기가 현실에 없는 다른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능력에 달렸다는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글쓰기의 주제가 되었고, 인지 신경과학의 흥미로운 새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은 애초에 왜 우리에게 고맙게도 기 억이라는 것이 주어졌는지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 요컨대 우리의 기억은 세부사항은 건너뛰고 우리가 저장하려고 하는 정보의 실제적이고 유용한 의미에 집중하면서 맡은바 임무를 대체로 잘 수행한다.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은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는다. 기억이 현재 태도에 조종되는 편향bias이나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던 사 건을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피암시성Suggestibility 같은 기억의 오류들은 사건을 재구성할 때 여러 다른 출처의 정보들을 취합하는 조합적 체 계가 작동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대니얼 샥터와 도나 로즈 애디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와 같은 실수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것을 기억하 는 능력을 받쳐주는 적응적이고 구성적인 과정들이 건강하게 잘 돌아감"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기억의 허점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기억의 오류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표시로 볼 수도 있 다. 정보를 저장하는 체계는 어떤 것이든 실수를 하게 마련이지만, 있 는 그대로 기억하는 푸네스의 체계에 비하면 우리가 가진 재구성적인 기억 체계의 실수는 그럭저럭 용인할 만하며 진화적 틈새에 단연코 더 잘 적응한 것이다. 기억의 잘못들은 우리의 기억 체계가 어떻게 작 동하는지 밝혀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진화했는지에 대한 단서도 제 공한다. 과거를 불러오는 능력은 기억 체계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겨 난 운 좋은 부산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가 하나의 종으로서 지금 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 는 능력일 수도 있다.
- 기억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인지 심리학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개념 은 아니다. 일화적 기억이 궁극적으로 진화하게 된 이유가 단기적 목 표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라고 여기는 오랜 전통이 존재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중요한 목표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그것을 확실히 달성하기 위해 기억하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1970년대 말에 스웨덴의 뇌 생리학 자 다비드 잉바르는 뇌가 기대되는 사건과 관련되는 미래의 시나리오를 모의실험하고 그 표상들을 저장하여 나중에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는 하나가 있다. 기억에 수반되는 인지 체계와 신경 체계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로 가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뇌 영상 연구가 이에 대한 확실한 경험적 증거를 제공한다. fMRI 스캐너에 누운 실험 참가자에게 미래의 사건을 상상하도록 하면 과거를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체계와 똑같은 부위에서 활동이 목격된다. 특히 미래를 상상하면 핵심적인 기억 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확고하게 입증된 부위인 내측측두엽(해마를 포함하여)과 내측전전두피질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 내가 크레몬 포인트의 수영장에 갔었다고 기억하는 것은 너무도 열심히 그것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기억과 환상 가운데 어느 것인지 판 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자 나는 기억 쪽을 택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기억한 것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뭔가에 대한 기억이 있었으니까. 상상 하는 행위가 있었고 기억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둘이 합쳐지자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고 나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종류의 가짜 기억은 실험심리학자들이 제법 철저하게 연구하 고 있다. 어떤 사건을 상상하도록 하면 차후에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되기 쉽다는 것을 여러 연구들이 보여주었다. 이렇게 상상이 기 억으로 바뀌는 현상을 상상 팽창 imagination inflation' 이라고 한다.
- 출처 감찰 체계는 기억의 허점을 이해하는 유용한 모델이 된다. 장면 구성 모델과 마찬가지로 진짜 기억과 가짜 기억이 동일한 기본 과정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일어난다고 여기며, 우리가 이 둘을 어떻게 헷갈리는지에 대해 심리적 세부사항을 제공한다. 이것은 가짜 기억이 상상력의 부추김을 통해, 잘못되고 부적절한 정보를 통해, 혹은 우리의 현실 판단을 조작하는 술수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심어질 수 있다는 포괄적 증거가 된다. 출처 감찰 오류의 총체적 효과는 스스 로 만들어낸 정신적 사건을 진짜 기억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판단을 내리는 데 가동하는 정보는 완벽하지 않으며, 여기에 관여하는 과정들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정신적 경험의 출처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까다로운 여러 이유가 있다. 확실히 구별되지 않을 때가 많은 정보들을 미묘하게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서 가장 까다로운 요인은 감정이다. 존슨과 동료들의 실험 연구는 감정이 현실 판단을 내리는 기초로 자주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나는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봐. 왜냐하면 확실하게 느껴지거든”). 그러나 감정은 출처를 감찰하고 판단하는 일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사건에 가동된 감정에 집중할 때, 정확한 현실 판단을 내리게 해줄 수 있는 지각적, 인지적 정보에는 그만큼 신경을 덜 쓰기 마련이다.
- 특이하게도 트라우마를 겪은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과 비슷한 면이 있다. 어린아이는 기억의 풍광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법을 배 워야 하는데, 그것은 전쟁이나 학대, 재난의 공포를 겪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어린아이의 기억은 단편적이어서 정신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아이도 일관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트라우마를 겪은 마음도 그렇다. 차이점이라면 성인은 트라우마 사건을 겪기 전에 시간을 통해 확장되는 자아의 감각을 이미 마련해놓은 상태라는 점이다. 성인 트라우마 환자에게 이것은 문제를 가중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트라우마 기억을 억누르는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점차 약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참전 용사들이 수십 년이 지난 뒤에 자신들이 겪었던 공포를 떠올리도록 여건이 마련되면 너무도 생생한 체험을 하는 것이다. PTSD 치료는 일관성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통합이 일어나지 못하면, 예를 들어 트라우마의 주제가 금기시되는 것이어서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면, 그 기억은 의식의 전면에 고통스럽게 계속 남아 언제라도 튀어나올 수 있다. 치료의 목적은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레이첼 예후다가 주목하듯이 기억의 빈틈이 끔찍한 기억 자체만큼이나 해로울 수 있다. 치료의 과정은 이런 빈틈들을 채우고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아 기억을 자꾸 피하려 하지 않고 떳떳이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망각은 해결책이 아니다.” 예후다의 말이다. “비록 그 경험이 그 사람에게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기억도 사람들의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그들의 존재의 핵심을 이룬다.”
- 2009년 가디언과 가진 인터뷰에서 소설가 페넬로피 라이블리는 나이가 들수록 원할 때면 과거로 돌아가게 해주는 기억의 능력을 더 의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비록 자신의 젊은 시절과 수십 년의 간극이 있지만 눈을 감고 마음대로 그 시절을 소환할 수 있다. 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기억이 선형적이라는 것은 전혀 가당치 않아요. 머릿속에는 액자들의 집합이 있습니다.” 늙어가는 마음에는 모든 시기가 공존하며, 달력은 좋은 안내자가 아니다. 라이블리의 소설 의 한 여주인공의 말처럼 “내 머릿속에는 연대순으로 기록한 일지 따 위는 없다.” 성년기 초기로 계속 돌아가는 기억의 성향은 그저 사라진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회상 절정은 자전적 기억의 작동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지과학자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이론들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는 젊은 시절이 가장 잘 기 억되는 것이 바로 그때가 삶에서 중대한 일들이 일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대한 일들은 자신에게 더 크게 부각되며 부각되는 일들은 더 잘 기억되기 마련이다. 할머니의 경우에 격변이라고 할 만한 일들은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어났고, 그래서 그녀의 삶의 이야기가 이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건 견해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회상 절정의 많은 사건들이 처음으로 경 험한 일들임을 보여준 연구들이 있다. 회상 효과에 대한 또 하나의 가능한 설명은 그저 어린 나이일 때 뇌가 정보를 부호화하는 일을 더 잘해서 더 많은 세부사항들이 각인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전적 기억의 기본 체계는 아동기 중기에 가장 강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따르면 회상 절정은 상당히 더 이른 시기에 나타나야 한다. 세 번째 설명은 회상 절정의 특별한 시기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개성 있는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마사가 증언한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들은 그녀의 자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할머니의 삶에 흔적을 남겼고 1980 년대와 1990년대의 사건들은 그렇지 못했다.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사건들이 성년기 초기에 일어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람의 생애에 대한 문화적 통념에 이런 정보가 틀림없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도르트 번첸과 덴마크의 동료들은 최근에 열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아이들에게 앞으로 전개될 자신의 삶을 상상하면서 내러티브를 만들어보도록 했다. 이런 미래의 삶의 이야기들을 살펴 보니 대부분이 성년기 초기에 몰려 있었고 결혼이나 자신의 집을 얻 는 것 같은 통과의례적인 일들이었다. 성년기 초기는 그들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므로 아이들이 부호화의 우월성 때문에 성년기 초기의 사건들을 선호했을 리는 없다. 대조군을 위해 연구자들은 아이들에게 간단한 단어를 단서로 주고 미래의 사건들을 상상해보도록 했다. 이 경우에는 생애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문화적 통념에 따 라 사건들이 구축되지 않았고, 성년기 초기에 몰리는 일도 나타나지 않았다.
- 노년의 기억에 대한 또 하나의 클리셰는 갈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회상 효과의 작동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삶의 중대한 일들은 더 과거에 벌어진 일이 되고 현재는 부각되는 사건들이 상대적으로 뜸하게 보일 테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자신이 한 일들을 떠올려볼 때 그다지 생각나는 것이 없다면 이번 달과 차별화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우어 드라이스마는 이런 생각을 일찌감치 표명한 사람으로 19세기 프랑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장-마리 귀요를 든다. 귀요는 이렇게 말했다. “청춘의 인상은 생생하고 신선하고 수적으로도 많아서 그 시절은 수천 가지 방법으로 구별되며, 젊은이가 지난해를 돌아보면 장면 장면이 공간에 길게 쭉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면 흘러가는 순간들을 구별할 것이 줄어든다. 윌리엄 제임스의 애절한 표현을 인용하자면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지날 때마다 돌아보면 기억에서 알맹이 없는 단위들로 반듯하게 펴지며, 매년 세월은 갈수록 공허하게 내려앉는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현재의 주관적 경험은 기억을 만들고 불러오는 속도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신경과학자이자 작가 데이비드 이글먼은 시간 인식과 기억의 관계를 연구하여 어렸을 때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가는 것은 더 성년이 되었을 때보다 새로운 정보를 더 많이 마주치고 그래서 새로운 기억을 더 빠른 속도로 부호화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추정할 때 행동들이 더 빼곡하게 들어찬 것으로 보이므로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갔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년에는 뇌가 처리하는 새로운 경험이 많지 않아서(우리가 행하는 많은 행동들이 익숙한 패턴에 지배되는 것도 부분적인 이유다) 시간이 보다 빨리 흐르는 것으로 여 겨진다. 조슈아 포어의 표현대로 “단조로움은 시간을 무너뜨리고, 새로움은 시간을 펼친다.” 그렇다면 노인들에게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 들에 더 많이 주목하도록 함으로써 시간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확실히 입증된 바가 없지만, 이 따금씩 걸음을 멈추고 장미꽃 냄새를 맡는 것으로도 세월의 돌진을 늦추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시간의 속도를 체감하는 데 다른 요인들이 관여할 수도 있다. 젊을 때는 똑같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다 는 지적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초 신진대사 과정이 느려졌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 몸은 온갖 종류의 생물학적 리듬의 통제를 받으므로 이런 리듬이 시간 판단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나이든 사람 들이 시간 인식에 허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이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눈을 감고 일 분이 경과한 뒤에 눈을 뜨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나중에 눈을 뜬다. 젊은 성인들은 훨씬 더 정확하고, 어린 아이들은 반대 방향으로 실수를 저질러 성급하게 시간이 다 흘렀다고 말한다.
-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기억에는 “자신만의 특별한 부류의 진실이 있다고 했다. “기억은 선택하고 생략하고 변경하고 과장하고 축소하고 미화하고 헐뜯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만의 현실을 창조해요. 사건들에 대해 잡다하지만 대체로 일관된 해석을 내리죠. 그리고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억보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더 신뢰하는 일은 없어요.” 이렇듯 기억은 속임수일 수 있지만 대체로 보면 이로운 속임수다. 주인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봉사한다.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리가 더 많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이유때문에라도 나는 우리의 기억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과학 의 영역을 훌쩍 벗어나는 것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이것이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면 흥분된다. 우리의 기억이 다량의 진짜 사 실들과 건전한 양의 완전한 허구를 통합하여 만드는 구성물이라면, 우 리와 기억과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달라질까? 초창기 기억의 진정성 에 집착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아의 감각에 근본적인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최초의 기억을 서술하는 것을 보면 창조신화의 기능을 할 때가 많다. 버지니아 울 프에게 세인트 아이브스의 아기 방 침대에 누워 있었던 기억은 자신이 의식하는 존재가 된 순간을 나타냈다.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삶이 그 위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토대가 있다면, 채우고 채우고 또 채우는 그릇이라면, 나의 그릇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기억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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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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