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전쟁

경제 2021. 7. 24. 19:46

- 디플레 위험을 무시하기 어려운 세 가지 이유
첫째, 한국은 GDP 갭이 마이너스인 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둘째,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물가하락이 지속되며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 
셋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물가가 실제보다 높게 측정되고 있는 점 등이 바로 그 이유이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의 이슈를 감안할 때, 한국이 디플레의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미중 무역분쟁으로 미국이 2018년 중국 제품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한 이후 1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중국의 대미 수출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 일은 '시차'나 '위안화 약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체 중국 기업들은 어떻게 관세부과에 따른 비용 증가를 흡 수할 수 있었을까? 여러 후보를 제외하고 남은 답은 하나뿐이다. 바로 중국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여 수출제품의 가격 상승을 억제한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기업들은 같은 설비와 노동력을 활용해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 는 데 성공한 것이다.
- 미국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잃어버린 일자리는 대략 98만~ 200만 개로 추정된다. 미국의 일자리 수는 1억 4,800만 개이므로,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6~1.3%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근로 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업주가 “저임금 근로자들이 있는 중국으로 공장 을 이전하겠다”라고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임금협상 등에서 우위를 잃 게 될 것이기에, 임금 상승의 압력을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된다.
덧붙이자면, 모든 국제무역이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유럽 등 선진국과의 교역에서는 일자리가 급격히 사라지는 충격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 예를 들어 고급 자동차 분야에서는 독일이 우위를 가지고 있더라도,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미국이 우위를 가지고 있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고 파이를 키우는 면이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등 신흥국과의 교역에서는 일자리 문제가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중국이나 인도 등의 신흥국 소비자들은 아직 구매력이 적은 데다가 시장 개방성도 낮아서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으로부터의 수 입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흥국과의 교역이 증가하면 경제 전체의 인플레 압력이 낮아져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개선되는 대 신, 일자리 측면에서는 '순유출'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는 선진국의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이래저래 미국의 실질임금 상승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이다.
- 미국의 금리, 물가 하락에 고령화가 미치는 영향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이 발간한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첫 번째 경로는 잠재성장률의 하락이다. 고령층이 늘어나면 경제 전체의 성장 탄력이 떨어지며, 이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한다고 해도 생산성이 낮은 편이기에 경제 전체적으로는 성장 탄력을 떨어뜨 리는 면이 있다.
고령화가 금리를 떨어뜨리는 두 번째 경로는 경제활동인구가 미 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데 있다. 60세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하지 못하고 계속 일자리를 찾는 모습을 본 젊은 세대들이 장차 자신들도 노후 빈곤에 시달릴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저축을 더 늘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저축률은 2005~08년을 바닥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따라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지연 및 고령화 경향은 미국 실질임금의 상승을 억제하고 물가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판단된다.
- 1990년대 후반부터 돈을 풀었는데도 왜 물가가 오르지 않았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 번째 요인은 생산성 혁신이다. 정보통신 제품의 가격이 계속 하 락하는 가운데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이 어려워지자, 통화공급이 늘어났 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이 억제되었다. 
또 다른 요인은 '신용경색' 현상이다. 신용경색이란 간단하게 말 해 금융기관들이 은행 파산이나 금융위기 등의 큰 신용 이벤트를 겪은 후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경기침체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은행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기업이나 개인에게 대출하기보다 중앙은행에 다시 맡겨두려고 든다. 이런 경우 중앙은행이 아무리 정책금리를 인하하고 통화공급을 늘려도 실물경제에는 돈이 풀리지 않게 된다.
- 미국은 1990년대부터 시중에 돈을 풀어 과잉 유동성이 생겨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인플레는 화폐적 현상이다”, 즉 시중에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나면 인플레가 생긴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은 적어도 1990년대 이후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이를 보면 화폐수량설은 이제 박물관으로 들어가야 할 신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 국제유가 폭락, 왜 미국 회사채 시장이 패닉에 빠졌을까?
미국 기업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은행보다는 회사채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특히 셰일오일 기업을 비롯한 신생 분야의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은행의 대출심사 를 피해 적극적으로 회사채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또한 글로벌 투자자들도 셰일오일 기업이 발행한 정크본드에 적 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미국 연준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제 로금리 정책을 펴자, 고금리 채권에 대한 수요가 부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셰일오일 기업의 경쟁력이 나날이 개선되는 것을 긍정적으 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좋았던 시절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국제유가의 급락 으로 셰일오일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타나는 가운데, 정크본드의 가산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 산금리란 정크본드가 비슷한 만기의 국채에 비해 이자를 얼마나 더 많 이 부담하는지 측정한 것이다. 1년 전만 해도 미국 BB등급 회사채의 가산금리는 2%를 밑돌았지만, 2020년 3월 13일에는 무려 5%의 벽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미국 에너지 및 금융회사의 주가가 폭락하고 말았다. 미국의 다우지수는 2020년 2월 12일 고점 이후 3월 17일까지 8314포인트, 약 28%가 급락했는데, 그중에서 금융업종은 32.4%, 에너지 기업은 38.4%나 폭락했다.
물론 주가 폭락 그 자체만으로 기업이 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회 사채 가산금리의 급등 속에서 이루어진 금융 · 에너지 주식의 폭락 사 태는 상당 기간 원유가격이 저가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시 장 참가자들의 예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필자는 1~2년 안에는 유가 급등이 유발하는 '인플레의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 결국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 전반의 디플레 압력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 디플레의 '징후'가 나타날 때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때 단호한 대응이란 어떤 정책을 의미할까?
미국 연준의 보고서가 지적했듯, 정책금리를 적극적으로 인하해 서 디플레 기대심리가 형성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경 제 주체들이 '돈이 많이 풀리니 앞으로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만일 정책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 로 내렸는데도, 디플레 기대심리가 수그러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이 재정정책이다.
- 시장금리가 낮으면 적극적 적자재정도 괜찮다?
최근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랑샤는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시장금리가 명목 경제성장률보다 낮을 때에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으며, 또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 재정적자가 증가했는데도 시장금리가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황, 혹은 디플레의 압력이 우세한 시기에는 재정지출을 아무리 늘려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즉, 경기가 악화될 때에는 미국 국채 등 이른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므로, 재정적자를 아무리 내도 금리는 떨어진다.
재정지출의 확대가 시장금리를 급등시키는 것은 '경기부양'의 효과 가 나타났을 때에야 출현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때 정부는 재정지출을 줄이는 등 재정 건전화에 나서면 된다. 반면, 시장금리가 급등하고 인플레 압력이 높은 시기에는 재정적자가 시장금리의 상승을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불황에는 공격적인 재정확장 정책을 써야 하고, 반대로 호 황에는 재정긴축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방향일 것이다. 실 제로 미국의 연구를 살펴보아도, 물가가 낮고 저금리 환경일 때 재정 정책의 효과가 높아진다고 한다.
재정정책 전략은 매우 매력적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플레 및 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때도 재정확장 정책을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1980년대의 남미 국가들이었다.
-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는데도 재정지출을 계속 늘리고, 중앙은행 이 아예 정부가 발행하는 적자 국채를 인수해버리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면, 1980년대 중반의 볼리비아처럼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ation, 이하 '하이퍼인플레)의 위험이 닥칠 수 있다. 참고로 하이퍼인플레란 매월 물가가 50% 이상 상승하는 일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 항상 '금리 하락 = PER 상승' 의 관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최근처럼 정책당국이 급박한 경제충격에 대응하기 금리를 적극적으로 내린 시기에는 PER가 상승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락하곤 한다. 예를 들 어 이 책을 쓰는 순간(2020년 3월 말) 미국 주식시장의 PER는 16배까지 하락했는데, 이것은 2019년 말에 비해 거의 3/4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질까? 그 이유는 바로 가산금리 상승' 때문이다. 회사채 가산금리가 급 격히 상승하면서 기업들이 돈을 제때 빌리기 어려워지고 이자 지급 비 용마저 급등하는데, 주가가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산금리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정반대로 바뀐다. 정책금리 인하의 효과에 기업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까지 겹치니, PER 는 본격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아직까지 이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지만, 회사채 가산금리가 떨어지는 순간에는 저금리 위력을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 일본 부동산시장은 왜 다른 길을 걸었을까?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일본 경제의 성장속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 해 빠르고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던 것이 지목된다. 다른 한편으로 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행이 강력한 저금리 정책을 펼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플라자 합의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 해 일본과 독일이 자국 통화의 강세를 용인한 조치를 말한다. 이 합의 의 영향으로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1985년 242엔에서 1988년 12 월 124엔까지 떨어졌다. 불과 3년 정도에 엔화 환율이 반토막이 나버 린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엔화 환율이 급락하고 엔화 강세가 이어지자, 세계시장에서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일본은 극심한 수출 부진을 겪게 되고 물가도 하락했다. 이에 일본은행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정 책금리를 1985년 5.0%에서 2.5%까지 무려 2.5%포인트 인하했다. 그 리고 이처럼 강력한 저금리 정책 덕분에 '엔고 불황'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금리가 급락하자 대신 주택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예 를 들어 일본 왕궁이 위치한 지요다구 오테마치에 있는 상업용 건물의 3.3m2당 가격은 8,250만 엔에 이르렀고, 도쿄 핵심지역에 있는 아파트 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1984년 6.9배에서 1988년에는 15.6배로 단 4년 만에 2배 이상 부풀어 올랐다.
주택시장 거품이 엄청나게 커지자, 버블 붕괴를 우려한 일본은행 은 1989년부터 금리인상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책금리를 2.5%에서 1990년 6.0%까지 불과 1년여 만에 무려 3.5%포인트를 인상했다. 그 러자 부동산시장은 일거에 얼어붙었고, 여기에 중동 걸프전의 충격까 지 가세하면서 일본 경제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특히 일본 정책당국이 1990년대 초반 대대적인 공공주택 건설에 나선 것이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 1세기 전에 살았던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은 천연자원의 유무로 설명할 수 없는 지리적인 산업의 집적현상을 발견했다. 마셜 시대에 가장 유명한 예는 영국의 대표적인 중공업도시 셰필드의 도검류 제조업자의 집중, 그리고 노스햄프턴의 면제품 기업들의 집중이었다. 현대에는 실리콘밸리에 집중된 반도체 산업, 뉴욕에 집중된 투자은행산업, 할리우드에 집중된 오락산업 등이 그 예이다. 앨프리드 마셜은 기업들의 집적이 개별기업으로 격리되어 있는 경우보다 더 효율적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전문화된 공급자를 지원하기 위한 집적 능력, 둘째는 대규모 노동시장, 셋째는 산업의 지리적 집중으로 인한 지식 창출 및 확산 효과 등이다. 지금까지도 이 지적은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첨단산업 기업들의 이러한 집적현상은 부동산시장, 그중에서도 특정 지역의 부동산가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 장단기금리가 역전될 때, 왜 불황이 출현하는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경제활동참가자들의 기대 변화에 있다. 먼저 소비자들의 지출을 결정짓는 요인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소비자들의 현재 지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현재 소득이겠지 만, 미래 소득에 대한 전망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가 지 금은 경기가 나쁘지만, 앞으로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수가 낙관적인 전망을 공유한다면, 현재의 소비지출은 늘어나고 저축률이 둔화되며 시장의 장기금리는 상승할 것이다. 결국 장기금리는 향후 먼 미래의 경제성장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하며, 반대로 단기금리는 지금 당장의 경기여건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장단기금리가 역전된다는 것은 현재보다 미래의 소비가 둔화될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해석도 흥미롭지만, 장단기금리 역전이 불황을 유발하는 면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은행의 수익은 대출과 예금의 만기 차이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평균적으로 은행의 대출은 만기가 긴 반면 예금은 만기가 짧은 경향이 있다. 결국 은행은 만기가 짧은 부채(=예금)를 이용해 만기가 긴 대출을 운용함으로써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은행들은 예금금리(단기금리)에 비해 대출금리(장기금리)가 더 크게 상승할 때 수익을 더 많이 올리게 된다. 그런데 단기금리가 오히려 장기금리에 비해 더 빠르게 상승하면, 예금을 유치하는 데 더 많은 이자를 주어야 하니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 특히 장단기금리 차가 역전되어 단기금리가 오히려 장기금리에 비해 높으면 은행들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은행들은 이런 환경변화에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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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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