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빅뱅

경제 2021. 7. 24. 19:44

- 케네스 포메란츠 미국 시카고대학 역사학 교수는 그의 책 『대분기 The Great Divergence 에서 19세기 초까지 별 볼일 없던 영국이 당대 최고의 선진국이었던 중국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석탄 덕택이 었고, 이 새로운 에너지를 바탕으로 식민지를 개척해 대영제국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산업혁명이 더 일찍 중국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왜 중국이 아닌 영국의 탄광에서 증기기관이 탄생한 것일까. 그것은 영국 탄광의 약점 때문이었다. 중국의 탄광은 건조해서 캐내기가 비교적 쉬었던 반면, 영국의 탄광은 땅에 습기가 많아 물이 금방 차버려 석탄을 캐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물을 퍼낼 힘 좋은 펌프가 필요했고 그 펌프를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증기기관이 발명된 것이다. 중국은 광활한 영토에 석탄이 많이 매장되어 있었지만 쉽게 생산된 지역은 주로 서북부라서 경제의 중심지인 동부까지 나르기 어려웠다. 게다가 중국에 는 목재가 풍부해서 굳이 멀리서 어렵게 석탄을 실어올 필요가 크지 않았다.
반면, 영국에서는 지나친 벌목으로 나무가 부족해지고 인구가 급증해 16세기 중엽부터는 심각한 에너지난에 직면해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무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욕구가 강했고 이것이 적극적인 석탄 개발로 이어졌다. 대체에너지에 대한 필요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영국과 중국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 사실 산업혁명'이란 말은 영국 경제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1884년에 쓴 『영국 산업혁명 강의』에 처음 나온다. 1760년대부터 1830 년대에 걸쳐 진행된 산업혁명 시절엔 산업혁명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차 수를 바꾸어 연이어 나오는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 도 있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차수가 좀 다르다. 석탄이 1차 산업혁명을, 석유가 2차 산업혁명을 만들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인 3차 산업혁명 은 전기가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에너지의 변 화가 직접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엄밀히 말하 자면 우리는 아직 2차 산업혁명 단계에 있다. 전기가 3차 산업혁명의 동 력이었다고는 하지만 전기는 여전히 1, 2차 산업혁명 시대의 연료인 석탄과 석유를 주로 사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21 세기는 고체인 석탄과 액체인 석유에 이어 기체인 천연가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기라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가 등장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의 괄목할 만한 진보를 이루었기에 3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도 타당하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4차 산업 혁명도 지금은 모호하지만 혁명이란 말에 걸맞은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에너지원이 산업에서의 혁명을 만들어왔지만 4 차 산업혁명에서는 기술에서의 혁명이 에너지의 혁신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1차 산업혁명 인데, 이제는 기계가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으니 또 다른 혁명이라는 말도 맞다.
- 아이러니컬하게도 화석연료인 석유는 지구환경 보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석유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동물의 뼈와 털, 가죽으로 안경테와 옷, 가방 등을 만들어야 한다. 더 많은 동물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야 한다. 책상과 의자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나무가 잘려나가고 광물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산들이 파헤쳐질 것이다. 지구환경 파괴의 주 범으로 몰린 석유의 역설이다. 세계적 에너지 전문가이자 미래학자인 토니 세바 스탠퍼드대 교수의 강연은 항상 두 장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1900년에 찍은 뉴욕 5번가 사진은 거리에 마차가 가득 차 있고 자동차는 딱 한 대밖에 없다. 1913년에 찍은 사진엔 같은 거리가 자동차로 뒤덮여 있고 마차는 한 대뿐이다. 그는 불과 13년 만에 그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고 그 변화는 자동차라는 '파괴적disruptive' 기술이 만들어냈다고 설명하며 지금도 이런 파괴는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 사진을 보면서 드는 엉뚱한 생각은 만약 자동차가 발명되지 않았으면 그 많은 말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배설물이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하 는 것이었다. 말 한 마리가 20kg가 넘는 대변과 4리터 이상의 소변을 배 설한다는데 수천 마리의 말들이 대변과 소변을 한꺼번에 쏟아내면 길거 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4분의 1을 말들 이 먹어치웠다고 한다. 자동차가 아니었다면, 아니 석유가 아니었다면 지구는 진작 거덜났을 수도 있다. 이 또한 석유의 역설이다.
- 천연가스가 발전연료로서 석탄을, 그리고 수송연료와 석유화학 원료로서 석유를 대체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천연 가스의 가격이 현격히 떨어졌기에 가능했다. 유가 폭락에도 불구하고 석 유는 아직도 상대적으로 비싸 전기를 만드는 데 많이 투입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경쟁력이 향상된 천연가스는 더 많은 물량이 전기 생산에 쓰 이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전기 생산의 20%를 천연가스가 담당하고 있는 데 이 비중은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다. 또한 천연가스가 연소하면서 배 출하는 오염물질은 석탄의 절반 정도, 석유의 3분의 2에 지나지 않는다. 셰일층에서 천연가스가 쏟아져 나오고 이것이 석유를 대체하니 석유는 갈 데가 없고 유가는 폭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2014 년 이후 유가 하락의 본질이다. 그래서 저유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고체연료인 석탄의 시대 100년이 지나고 액체연료인 석유의 100년 시대를 지나 기체연료인 천연가스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미국의 셰일 붐이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산업과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놀라운 것은 셰일 에너지의 개발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과 연결 되어 그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 석유 수요는 경기에 따라 움직이는 일정한 패턴을 띠고 있다. 따라서 유가의 단기 변동은 공급자들에 달려 있으므로 공급자간 역학관계를 이 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은 시장의 주공급자이고 미국을 위시한 비OPEC 산유국들은 생산자뿐만 아니라 주요 소비자의 역할도 함께 한다. 비OPEC 산유국들은 자신들이 생 산한 원유를 먼저 사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OPEC에서 수입한다. 공급자 가 수요자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OPEC은 잔여 공급자residual supplier' 또는 '시장 균형자market balancer'로 불린다. 즉, OPEC의 공급량은 재고가 반영된 세계 수요에서 비OPEC 산유국들의 공급을 뺀 잔여물량이다. 따 라서 비OPEC 국가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물량 이외에 추가로 필요한 수 요보다 OPEC 국가들이 더 많이 생산하면 가격이 떨어지고 더 적게 생산 하면 가격이 상승한다. 비OPEC 산유국들의 추가수요도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이에 대응하는 OPEC의 공급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그래서 OPEC의 수장인 사우디가 내놓는 공시가격을 보면 단기적 유가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
유가의 흐름을 가장 심플하게 보는 방법이 바로 OPEC의 실제 생산과 잔여 공급자로서 OPEC에게 요구되는 물량, 즉 '콜 온 오펙call on OPEC'의 차이를 보는 것이다. 2014년 하반기 유가 하락과 2016년의 반등 등 유가의 주요 흐름이 이 차이에 따라 움직였다. 물론 '콜 온 오펙'이란 말은 다분히 미국 중심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고 공정한 경제적 개념이 아니다. 가령 자동차 생산에 비유하면, 미국 정부가 GM과 포드로 국내수요를 채 우고 나머지 부분을 현대차나 도요타가 채우도록 한다면 공정한 시장경 쟁이 아니다. 그래서 이 용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어려운 유가의 흐름을 예측하는 중요한 도구로서의 역할은 아직 유효하다.
- 간단하게 말하면, 2014년 유가 폭락은 지난 100년간 석유시장을 주무 르던 미국과 사우디가 새로운 진입자인 개도산유국과 러시아의 힘을 빼 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벌인 저유가 전쟁의 결과이다. 사우디가 미국의 셰일오일 업자들을 도산시키기 위해 유가를 낮추었다는 항간의 주장은 지엽적 분석이다. 미국과 사우디의 정치적 이해타산이 고려되지 않았으 며 미국 셰일혁명의 폭발력을 과소평가한 주장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기구들조차 유가 예측에 실패한 것이다. 유가가 폭락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많은 전문가들이 120달러니 150달러니 하면서 유가상승에 배팅했다. 유가 폭락이 시작된 후에도 셰일업자의 생산비용 마지노선이 최소 70달러이니 그 밑으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이 유가가 30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것 을 보기까지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유가 하락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제유가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고 있는데 크게 보면 15년을 주 기로 사이클이 바뀌고 있다. 석유가 세상에 나온 후부터 1970대 초반까지는 저유가 기간이었다. 배럴당 3달러를 넘지 않았다. 1차 변동은 1973 년과 1978년 두 차례의 중동발 오일쇼크로 발생했다. 유가가 폭등하여 1979년 12월 40달러까지 올라갔다. 30달러 이상의 고유가는 1986년까지 이어졌다. | 2차 변동은 유가 하락이다. 유가 상승이 유전개발을 자극하여 북해에 서 대규모 유전이 개발되는 등 생산이 크게 증가하여 그 후 15년간 20달 러 이하의 저유가 시기가 진행되었다. 1999년에는 10달러 선까지 떨어지 기도 했다. 유가가 떨어져 수입이 감소한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늘려 손실을 보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3차 변동은 다시 상승이었다. 중국을 위시한 브릭스의 경제가 팽창하고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호전되어 석유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유가가 배럴당 138달러까지 치고 올라갔다. 2014년 하반기부터 유가 폭락은 4차 변동이다. 4차 변동기의 유가 하락은 과거의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번 유가 폭락의 가장 큰 이유는 공급량의 증가이며, 그 진원지는 미국이다. 셰일층에서 생산되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생산이 2000년대 후반 들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 시장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고 그것이 쌓였다가 한꺼 번에 터지면서 2014년 하반기 유가 폭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의 원유 생산이 2012년 하루 평균 615만 배럴에서 2014년 말에는 900만 배럴까 지 치솟아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의 950만 배럴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2014년 세계 원유생산은 하루 평균 7,500만 배럴 정도였는데 세계 생산증가량과 미국의 생산 증가분이 거의 일치했다. 미국 셰일생산으로 인한 하루 200만 배럴 정도의 초과 생산분이 가격 폭락을 이끈 것이다. 국내에 서 원유와 천연가스의 생산이 급증하자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던 미 국의 원유 도입은 급격하게 줄 수밖에 없었고 미국시장이 받아주지 못한 잉여물량이 아시아와 유럽 등 다른 지역으로 쏟아지자 국제유가는 속절없이 폭락하게 된 것이다. 2015년에는 초과공급이 170만 배럴로 줄었고 2016년에는 100만 배럴로 줄었다. 유가도 2016년 초 저점을 찍은 후 반등했다.
-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에너지 지정학을 바꾸고 있다. 석유를 개발한 미국은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그 석유를 바탕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었다. 1970년대 석유 생산의 중심이 중동으로 넘어가자 에너지 지정학도 바뀌었다. 오일쇼크를 경험한 미국은 대외정책의 최우 선을 석유와 수송로 확보에 두었고,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도 가속 화되었다. 오랫동안 에너지 지정학은 소비국들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다툼이었다.
2000년대 중반 미국의 셰일혁명은 전혀 다른 에너지 지정학을 열었다.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이 급증하자 에너지의 흐름이 바뀌었고, 생산자들은 팔기 전쟁에 돌입했다. 에너지 독립을 쟁취한 미국은 중동에서 발을 빼며 '아시아 피봇'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강자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연결하는 '일대일로'로 맞서고 있다. 유럽이 미국의 에너지에 다가서자 팔로를 잃은 러시아는 '신동방정책'으로 아시아 국가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마음이 급한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사주는 대신 정치적 지지를 확보했다. 중국이 뭐라고 하는 러시아는 중국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에 냉전체제 를 강화시켰고 이에 대한 미국의 선택은 일본이었다. 후쿠시마 사고 여 파로 에너지난에 처한 일본에 천연가스를 공급해주고 안전한 수송을 빌미로 집단적 자위권도 허용했다. 석유의 시대가 저물고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친환경 에너지인 천 연가스와 신재생으로 옮겨가자 그동안 에너지에서 소외되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후진국들에게도 석유 사용의 기회가 주어졌다. 에너지 사용의 불평등이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화석연료에서 자유로워진 선진국들은 후진국들의 자원쟁탈에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어졌고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로워질 수 있다.
- 사우디와 이란은 OPEC의 최대 라이벌로 산유국의 중추자리를 두고 끊임없이 다투어왔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란과 사우디의 산유량은 거의 비슷했다. 1970년의 경우 사우디와 이란의 산유량은 하루 385만 배럴로 똑같았다. 그러나 이후로 두 나라는 상반된 길을 걸었다. 이란은 감산을 해서라도 유가를 올려 산유국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강경 파의 입장을 대변한 반면, 사우디는 가격보다 물량에 중점을 두면서 산 유량을 끌어올리는 전략으로 바꾼 것이다.
사우디가 정책을 바꾼 계기는 1976년 미국과 사우디의 '빅딜'이었다. 오일쇼크 이후 막후에서 접촉을 해오던 두 나라는 1976년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가 사우디를 방문해 모종의 합의를 이루었는데, 핵심 내용은 사우디는 미국에게 안정적인 원유 공급을 약속하고 원유 거래를 미국 달러로 결제한다는 것이다. 또한 원유 판매를 통해 취득한 달러는 미국 국채에 재투자하겠다고 합의했다. 이때부터 사우디는 미국의 가장 큰 국채 보유 국이 되었다. 원유를 달러로 결제하게 되니 그 전까지 달러를 투매하던 나라들은 다시 달러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미국은 달러패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달러 투매와 유가 급등으로 추락하던 미국을 살린 결정적 인 합의였다.
이 엄청난 합의를 해준 대가로 사우디가 얻은 것은 세계 최강 미국의 군사적 도움으로 사우디 왕정을 보호하고 숙적 이란의 힘을 빼는 것이 었다. 그리고 아람코의 지분을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아 숙원사업이던 국 유화를 이루었다. 이 합의 이후 이란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받아 원유수출에 큰 제약을 받았고, 이란을 묶어둔 사우디는 증산을 계속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였다. 사우디는 산유량을 1970년 하루 385만 배럴에서 1980년 이후 1,000만 배럴 수준까지 끌어올리면서 100만 배럴로 쪼그 라든 이란과의 격차를 900만 배럴로 벌리기도 했다. 2015년 핵 타결 이후 이란이 산유량을 늘려 제재 전 수준인 400만 배럴 직전까지 올렸지만 여 전히 600만 배럴 이상의 차이가 있어 사우디를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 해진 상태이다. 하지만 이란은 많은 매장량을 바탕으로 생산설비를 늘려 산유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란의 매장량은 1,580억 배럴로 사우디 2,670억 배럴의 59%이지만 생산량이 40%에 못 미치고 있다. 그만큼 이란의 생산 여력이 있다는 의미로 사우디에겐 위협이 아닐 수 없다.
- 2014년 유가 폭락에도 사우디가 산유량을 늘려 유가 하락전쟁을 벌인 이면에는 좀 더 비싼 비용으로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이란과 아사드 정권을 도와주는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석유시장의 오랜 라이벌인 이 두 나라의 에너지 기반을 약화시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 또한 무시 못할 전리품이다. 이렇게 중동에서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 은 생각보다 깊고 질기다. 같은 종교끼리 왜 그러냐 싶겠지만 역사적으 로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종교나 종파 간 분쟁이 더 참혹한 결과를 가 져온 점을 보면 1400년을 이어온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쉽게 풀어질 문제는 아니다.
- 미국의 외교정책은 오랫동안 자본가들이 관여했고 실제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는 미 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외정책 싱크탱크로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해 오고 있어 '진짜 국무부'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유엔 창설도 주도했고 일본에 대한 핵공격, 미국의 핵전략, 베트남 전쟁 개입, 중국과의 화해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가장 권위 있는 외교잡지인 《포린 어페어 Foreign Affairs》도 발간하고 있다. 1921년 창립 된 CFR은 실제로 미국의 자본가들에 의해 움직인다. 창립 당시에도 석유 왕 존 록펠러, 금융왕 JP 모건 등 최고의 기업인들이 주도했으며 그들의 후예들이 지금도 장악하고 있다. 특히 록펠러의 가문은 지속적인 영향력 을 행사하고 있는데 많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록펠러 가문의 대외전략을 자문했던 키신저의 후예들도 관여하고 있다. 현재 CFR 회장직은 미국의 거대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Carlyle Group 창립자가 맡고 있다.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이 산업과 금융, 농업 등 거대기업의 이익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의 재산과 자본을 보호하고 해외에서 사업을 확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미국 외교의 핵심 목표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확산이라는 가치는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외교의 논리는 넓은 지역에 미국식 자본주의 질서가 퍼지면 평화와 번영이 온다는 것이다. 맥도널드가 진출한 나라끼리는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 속에도 햄버거와 콜라와 주유소의 기름조차도 미국 자본의 이익이 숨어있는 것이다. 미국 기업의 이익이 곧 미국의 국익이다. 해외시장에서 이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위한 길인 것이다. 최고 자본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이러한 논리의 반영이다. 자본가를 위한 외교정책은트럼프 시대에 더 노골화될 것이다.
-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메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건설은 미국 셰일혁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셰일가스 생산이 시작되고 2010년 즈음부터 미국 각지의 셰일유전에서 원유와 천연가스가 쏟아져 나왔다. 미국이 그토록 원하던 에너지 독립이 현실로 다가왔다. 더 이상 중동 원유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중동에서 수입하던 원유를 크게 줄였다. 따라서 중동 원유 확보라는 목적에 맞게 짜여 진 미국의 대외정책도 바뀌었다. 중동에 엄청난 돈을 쏟아 넣을 이유도, 군사적으로 개입할 이유도 없어졌다. 대신 떠오르는 새로운 적대세력 중 국이 미국 대외정책의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2011년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 이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는 것을 너무 나 잘 알고 있었다. 중국의 대응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이다. 2011년 이후 중국과 러시아가 급속히 가까워진 것은 이 때문 이다. 한때 적대세력이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할 수 있는 것은 에너 지라는 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셰일혁명으로 인한 유가 폭락으로 경제 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러시아가 '신동방정책'이라는 기치 아래 중국이라 는 거대시장을 얻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에너지를 팔아야 하는 러 시아와 에너지를 사야 하는 중국이 아시아로 돌아온 미국에 공동대응이 라는 목표로 급속히 가까워진 것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두 번째 방안이 바로 일대일로 전략이다. 막강한 해군력을 동원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에 맞서 해상과 육지의 루트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및 유럽과 연결을 꾀하는 것이다. '일대一帶 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과거 당나라 의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의 부활을 의미하고, 일로一路”는 명나라 때 정 화鄭和의 대선단이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이었던 해상 실크로드의 부활을 꾀한 것이다. 과거 세상의 중심이었던 당나라(육상)와 명나라(해상)의 실크로드 영광을 재현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시진핑 주석의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다.
- 에너지는 러시아에게 중요한 정치적 무기다. 특히 적대적인 서유럽 국가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에너지만큼 긴요한 무기도 없었다.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 밸브를 잠그기만 하면 유럽 국가들은 꼼짝없이 에너지 대란에 빠졌다. 국경을 나누는 CIS 국가들이 친서방 움직임을 보이면 여지없 이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거나 가격을 올려 꼼짝 못하게 했다. 2006년 1월, 러시아는 갑자기 우크라이나로 연결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밸브를 닫았다. 단 사흘 동안 공급을 중단한 것이지만 우크라이 나와 이웃 유럽 국가들을 에너지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발전소 와 난방 시스템은 멈추고 주민들은 속절없이 한겨울 추위에 떨어야 했 다. 표면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가스요금 인상 거부와 저장가스 도용이 공급중단의 이유였지만 실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의사를 밝힌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치적 보복 조치였다. 러시아는 같은 달 우크라이나 의 남서쪽 접경국인 몰도바의 친 서방 정책을 이유로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 정확히 3년 후인 2009년 1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공급을 2주간 중단했다. 가스가격 협상 결렬이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의 조지아 공격으로 국제여론이 악화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가 EU와 NATO 가입을 추진한 것에 대한 정치보복이었다. 유럽은 다시 추위에 떨어야 했다. 2006년 11월과 2007년 1월에는 친서방 정책에 대한 보복을 이유로 조지아와 벨로로스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가격을 일방적으로 인상했다. 난방이 필요한 겨울이어서 이들 나라의 타격이 컸다.
- 러시아의 '21세기 차르'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한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스트롱 맨'이다. 3연임을 금지하는 헌법 때문에 총리로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대통령에 오른 그는 2024년까지 장기집권을 현실 화시키고 있다. 오스만제국 시절의 부흥을 꿈꾸는 '21세기 술탄' 에르도 안 대통령은 한술 더 뜬다. 2003년 의원내각제의 최고 자리인 총리에 올 라 집권한 그는 총리의 4선을 금하는 헌법 때문에 할 수 없이 상징적 지위 인 대통령으로 있다가 아예 대통령제로 헌법을 뜯어고쳐 2014년 당선되었다. 5년 임기에 중임할 수 있어 2024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 만약 에르도안 대통령이 2024년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조기 대선을 결정한다면 의 회의 동의를 거쳐 다시 출마할 수 있다. 이 경우 임기는 2029년까지 연장 된다. 푸틴과 에르도안의 목표는 선명하다. 러시아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영화를 되살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는 최대 수입원인 에너지 의 안정적 판매를, 터키는 최고 난제인 에너지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 그 것을 위해 영원한 앙숙 차르와 술탄이 손을 잡은 것이다.
- 역사는 작용과 반작용의 연속이다. 에너지 지정학에서도 그렇다. 발단은 셰일혁명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천연가스와 원유가 쏟아져 나오자 미국은 최대 과제이던 에너지 독립을 이루게 되었고, 원유 확보를 위해 1970년대 이후 중동에 집중되었던 대외관계의 축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셰일자원이 대량 생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즈음인 2011년 미국은 '아시아 피봇'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중시정책을 내세웠다. 중동대신 새 롭게 떠오른 위협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 전략을 들고 나왔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아시아 피봇'에 맞서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여 지정학적 도전을 뚫겠다는 방안이다.
미국에 맞서기 위한 중국의 또 다른 선택은 러시아다. 우크라이나 사 태 이후 셰일혁명으로 힘을 받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에 당면한 러시 아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제재로 유럽 에너지 시장을 잃을 체 지에 놓인 러시아는 자국판 아시아 피봇인 동방정책을 들고 나왔다. 절 대로 같은 이익을 추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던 중국과 러시아는 에너지라는 아이템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열어 나가며 동북아의 신냉전구도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초유의 에너지 위 기에 직면한 일본은 미국산 천연가스 도입을 통해 집단적 안보와 미국과 의 동맹을 강화시키고 있다. 셰일혁명의 지정학적 여파가 한반도 주변 상황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각이 대체적이었다. 몽골 고원에서 생산된 전기를 어떻게 산 넘고 물 건너 한 국까지 보내겠냐는 것이었다. 엄청난 길이의 전선과 송전탑 문제는 고사 하고 1,000km가 넘는 먼 곳으로 전기를 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또한 국가별 계통사정과 주파수가 달라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전기는 우리나라에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바로 '송전혁명'을 이룬 초고압 직류송전HVDC 시스템이다. 미국의 GE(제너럴일렉트릭)가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HVDC는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교류전력을 전력용 반도체를 이용해 초고압직류로 변환시켜서 송전한 뒤 교류로 재변환시켜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이다. 대용량 전기를 2,000km가 넘는 장거리로 수송하는 것이 가능하며 송전탑도 대폭 줄일 수 있다. 또한 전력을 인위적으로 제 어할 수 있고 전압·주파수가 다른 두 교류 계통을 연계시킬 수도 있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이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육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제주도로 보내는 데 HVDC가 사용되고 있다. 제주도는 오랫동안 전기로부터 고립된 섬이었다. 원전도 없고 천연가스 공급도 최근에야 시작되어 전기는 소량의 신재생을 제외하고 전부 비싼 석유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해저 HVDC가 깔리면서 육지의 싸고 품질 좋은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 진도에서 제주까지 113km 길이의 케이블을 로봇이 해저지형에 맞게 땅속 깊이 매설했다. 해저 케이 블의 손상을 막기 위해 레이더 시스템을 이용해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야말로 첨단 ICT가 융합된 4차 산업혁명의 총아인 셈이다. 새로운 기 술들은 먼 섬 지역에도 고품질의 전기 공급을 가능케 하며 육지에서 멀리 설치된 해상 풍력발전에도 적용되고 있다. 송전탑이 없이도 수천 km 떨 어진 곳에 전기를 보내는 기술이 세상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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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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