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역습

역사 2021. 6. 20. 19:08

- 방향이 잘못됐을 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이 시대를 규정하는 '발전'은 병을 치료하기보다 는 악화시키고, 문명은 소용돌이처럼 점점 더 속도를 높이며 우리를 어지럽히는 것 같다. 혹시 발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일종의 진통제 아닐까? 찬찬히 생각해보기에는 현실이 너무 공포스럽기 때문에 '미래의 희망' 이라는 약이 필요한 게 아닌가 말이다. 
- 우리는 우리를 뿌리에서 뽑아낸 힘보다 더 우악스러운 힘에 의해 발전이라는 폭포로 내던져졌다. (칼융)
- 언어학자 대니얼 에버렛Daniel Everett은 20년 이상을 아마존 상류 지역의 수렵채집 부족인 피라항족과 살았다. 당시의 경험을 그린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Don't sleep, There Are Snakes》라는 회고 록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피라항족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웃는 다. 자신들의 불행에 대해서도 웃는다. 한 남자의 오두막이 폭풍우에 날아간 적이 있는데, 그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웃었 다. 그들은 물고기를 많이 잡아도 웃고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아 도 웃는다. 배가 불러도 웃고 배가 고파도 웃는다.” 14 피라항족의 웃 음은 그들이 사는 세계와의 편안한 조화를 시사한다. 근본적으로 그들을 낳은 세상과 그들이 사는 세상이 동일하기 때문에, 즉 그들의 몸과 마음이 예상하는 대로 굴러가는 세상에 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다. 에버렛이 관찰한 피라항족이 아마존  정글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사막에서 선인장이 느끼는 편안함과 똑같은 성질의 것이다. 그들의 삶이 쉽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만나는 어려움과 위험은 까마득하게 오랜 세대 동안 경험해왔기에 친 숙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과 나는 지난 세대에 어떤 인류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 중 에 진심으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세상에 익숙해질 기회가 없었으니 말이다.
- 약 1만 년 전 농업이 촉발한 급격한 변화에 직면할 때까지, 인간의 삶은 평등주의, 이동생활, 사소한 것도 공유하고 필요한 자원은 누구 나 이용할 수 있는 삶, 모든 것을 제공하는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 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지도자'의 특권이란 단지 그 지위에 있는 동안 다른 구성원들보다 의견이 더 중요시된다는 게 전부였다. '권력'은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았고 쟁취하거나 물려주거 나 팔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호모사피엔스 역사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수렵채집사회의 이러한 특징들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마빈 해리스는 평등하고 자유롭던 수렵사회에서 문명사회로의 강제적 인 전환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가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계급이 생겨나자 자연이 준 풍요로움을 누리던 보통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누군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그에 대한 대가로 세금이나 공물을 바치거나 과도한 노동을 해야 했다. ...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에는 지하감옥, 구치소, 교도소, 강제수용소와 함께 왕, 독재자, 고위 사제, 제왕, 총리, 대통령, 지사, 시장, 장군, 제독, 경찰서장, 판사, 변호사, 교도관이 등장했다. 계급제도에 따라 인간은 처음으로 절을 하고, 아첨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법을 배웠다. 여러 면에서 계급은 인류를 자유민에서 노예로 전락시킨 것이다.
- 희망에 매달릴수록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가는데도 '절대 포기하 지 말라'고 우리를 부추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발전에 대한 맹 목적인 믿음을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망상이 자라난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치더라도 개의치 않는 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헌신하고 집중하고 근면하면 무엇이든 이 룰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이 있는데, 그 망상에서 깨어나기만 하 면 무조건 비애국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이 책을 포함해서) 모든 책의 마지막 장은 영원한 행복이나 더 탄탄한 복근을 얻기 위한,더 짜릿한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한, 더 똑똑한 자식으로 기르기 위한, 또는 부자가 되기 위한 간단한 5단계 비법을 알려주는 희망으 로 끝나야 한다. 기후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우리가 '전환불가능 점'에 근접한다고 경고했을 뿐, 이미 그 시점을 지나버렸다고 선언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밤이 깊어졌는데도 우리는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다. “내게는 아직 절대 늦지 않았다는 말이 묘비 명에 쓰인 글귀보다도 절망적으로 들린다. 벼랑 끝으로 몸을 던지 기 전에 하는 마지막 거짓말 같기 때문이다.” 토바이어스 울프 Tobias Wolff가 한 말이다. 물론 우리는 모든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인류 가 교훈을 통해 번영한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떻 게 할 것인가? 희망과 발전 앞에 비굴하게 무릎 꿇는 것이 사실은 이미 위급한 상황에서 나날이 악화되는 현실을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 로널드 라이트는 132쪽짜리 얇은 책 《진보의 함정A Short History of Progress》에서 급소를 찌르듯 이렇게 말한다. “희망은 오래된 혼란 을 개선시키는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게 하지만, 그 해결책은 훨씬 더 위태로운 혼란을 만들어낸다.” (2004년에) 그는 계속해서 “희망은 가장 허풍스러운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을 뽑게 만든다. 또한 주식 거래인이나 복권 판매자들은 다들 알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신중하 고 확실한 검소함보다 거미줄처럼 가는 희망에 매달린다”라고 했다. 라이트는 발전을 향한 '종교적 믿음의 병폐를 지적한다. 눈에 보이 는 발전을 숭상하는 우리의 신념은 여러 분야로 가지를 뻗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굳어졌다. 하지만 발전은 태생적으로 합리성을 벗어 나 파국을 불러들이는 논리를 가졌다."
영원한 발전이라는 장밋빛 약속은 심리적 위안은 될지 몰라도 합리적 근거는 없다. 게다가 너무 늦기 전에 궤도를 수정할 능력까지 앗아간다. 연기 냄새 때문에 잠에서 깼을 때 우리를 가장 안심시키 는 말은 “걱정할 거 없어, 얼른 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직한 조언이 아니다. 심리학자 탈리 샤롯Tali Sharot은 발전에 대한 이 런 맹목적인 믿음을 낙관주의 편향optimism bias' 이라고 이름 붙였다. 당황스러운 증거는 드물게 일어나는 특이현상으로 치부하는  반면, 미래를 밝게 그리는 내용은 무엇이든 강조하는 경향이다. 
- 문명이 막아준다고 하는 대부분의 위험들은 사실 문명 자체가 만들어내고 키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항생제와 관상동맥우회술을 업 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우리 조상에게는 교통사고의 위험이 없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안전벨트와 에어백의 혜택을 내세우는 것과 같 다. 우리 집에 불을 지른 사람이 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왔다고 해서 고마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과로하고 병들고 불행해지고 모멸감과 두려움을 느낀다면, 도대체 발전의 장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발전의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지는 우리도 대략 안다.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파괴된 숲, 침식된 토양, 고갈된 어획량, 오염된 대수층, 일산화탄소가 가득한 대기, 암, 스트레스,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난민.... 그 외에 수없이 많은 것을 표로 정리할 수도 있다. 전에는 자식들 키우기 좋은 곳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는 이 혼돈의 세 상에서 자식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만을 바라는 지경이 되었다. 영속적 발전론은 우리의 가장 지혜로운 조상들이 더 잘 살기 위해 농업기술을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수렵채집생활에서 농업경제로 전환되 면서 건강과 장수, 안전, 여가, 훌륭한 예술을 누리게 됐다고 배웠고, 이런 시각에 동의하는 세력도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 임을 증명하기는 힘들다. 사실 농업경제로의 변천은 삶의 질에 전 반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이 악화되었고, 여가시간과 수명도 줄었다. 엄연히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 농사를 시작한 것은 영리한 발전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문명화는 유례없이 안정적이고 온화한 환경 덕분에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나온 결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닉 브룩스Nick Brooks는 문명화 를 파국적인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나온 우발적인 부산물'로 본다. 생존이 힘들어진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최후의 도피처'로서 '문명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18 우리 조상들은 안락한 삶을 위해 힘든 수렵채집생활을 버린 것이 아니다. 농업을 시작한 것도 더 나은 삶을 위한 과감한 도약이 아니라 세계 인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 도로 폭발하면서 오랜 세월 열심히 파내려간 구덩이 속으로 추락한 비극적인 사고다.
농업경제로의 변천에 대해 1999년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에 세이의 제목은 꺼림칙하게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The Worst Mistake in the History of the Human Race)다. 심지어 역사학자 유발 하 라리Yuval Noah Harari는 농업혁명을 '역사의 최대 사기라고까지 했 다. “농업혁명은 분명 식량의 총량을 증가시켰지만, 늘어난 식량이 식생활의 발전이나 여가시간의 증가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2015년에 나온 베스트셀러 《사피엔스Sapiens》에서 그가 한 말이다. 하라리는 그 잉여 식량이 그저 '인구폭발과 응석받이 엘리트'의 연료 역할을 했다는 것, 농부들은 더 고된 노동을 더 오래 하게 됐음에도 음식 의 질은 더 떨어졌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정착생활과 농경을 시작한 인류 앞에는 사회적 불평등, 집단들 간의 폭력, 유일신 종교를 권력 유지에 이용한 지배계급이 등장했다.
- 가톨릭 신자인 슈미트는 최초로 안정된 정착지에 사람들이 모인 것은 함께 예배를 드리려는 욕구 때문이었을 거라고 봤다. 그리고 괴베클리 테페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원을 짓고 유지하기 위해 서는 인부들을 먹이면서 공사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농업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신이 먼저 등장했고 그 후 나머지 조건들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처슨, 보이드, 베팅거 등 기후변화에 의해 농사가 시작되었 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괴베클리 테페가 농업을 촉발한 게 아니라 농업사회로 향할 문화적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보여줄 뿐이라고 믿는다.
어떤 경우든, 괴베클리 테페를 지은 사람들은 분명 감사할 일이 많 았을 것이다. 당시 세계는 인간에게 거의 이상적인 환경이었으니 말 이다. 지금은 사방으로 뻗어 있는 메마르고 황량한 구릉지가 1만 2,000년쯤 전에는 먹을 것으로 가득했다. 두 종류의 호밀과 외알밀 로 이루어진 초원이 언덕을 뒤덮었고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도 널리 흩어져 자랐다. 가젤이 뛰어다녔고 사람들은 힘을 합쳐 그것들을 사냥했다. 때로는 한 무리 전체를 잡아들이기도 했다. 유럽들소(오늘날 소의 조상)도 많았는데 한 마리 무게가 1톤 가까이 되기도 했다. 슈 미트는 그 지역이 '지상천국'에 가까웠으리라고 봤다. 괴베클리 테페 규모의 건축물을 짓는 인부들을 먹였다면 그 정도로 식량이 충분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 엘리프 바투먼Elif Batuman과의 인터뷰에서 슈미트는 그들이 자주 큰 잔치'를 벌였으리라고 추측했다. 그때마다 취기를 돋우는 맥주나 그보다 더 강렬한 효과가 있는 음식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 적어도 3만 5,000년 전부터 인류는 들소나 말 같은 동물을 그리거나 손자국을 동굴 벽에 남겼다. 하지만 괴베클리 테페를 지은 사람들은 황토나 숯으로 벽을 장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부 100명의 무 게와 맞먹는 거대한 인체 모양의 바윗돌을 깎고 정확한 자리에 배치 함으로써 바위벽을 직접 세웠다. 그런데 이 모든 풍요로운 환경은 구조적인 위험을 품고 있었다. 고 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에 의하면, 그 긴 여름'이 여러 세 대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정착촌에 사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 정 착생활은 먹을 것이 특히 풍부한 환경에서만 가능한데 말이다. 정착 사회가 자리를 잡음에 따라 수렵채집사회의 유동성과 상호의존성은 점차 약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물이 더 풍부한 장소로 이동하게나 그럭저럭 버틸 만한 장소로 이동하는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전까지는 항상 유지해왔던 이동생활 능력, 즉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사회적 융통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재난은 항상 세상 반대편에서 왔다.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빙상이 녹으면서 거대한 호수가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아가시호Lake Agassiz로 불리는 이 거대한 얼음물 호수는 현재의 캐나다 매니토바에서 미네소타까지 뒤덮으며 면적이 44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렀다. 다 합치면 지금의 오대호 전체보다 넓다. 1만 3,500년에서 1만 2,600년 쯤 전에 아가시호의 물은 래브라도해로 빠져나가며 지축을 흔들 만 한 변화를 초래했다. 차가운 빙하물이 갑작스럽게 유입되자, 열대지 방의 바닷물을 북대서양으로 끌어와 유럽을 따뜻하게 해주던 대서양 역전순환류가 차단된 것이다(지금은 북극의 빙상이 녹아 해양으로 유입 되면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 온 빙하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계속 이동하자 수천 년 동안 온화했던 유럽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들이닥쳤다. 후기 드라이어스기Younger Dryas의 눈이 북반구 고위도 지방을 덮으면서 그보다 훨씬 아래인 괴베클리 테페 주변도 기온이 섭씨 7도 정도가 떨어졌다. 기나긴 여름 날씨가 느닷없이 끝나고 천년 동안의 가뭄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고 절망적인 기후변화에 맞닥뜨린 인류는 겁에 질려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인구밀도가 이미 높아져서 대규모의 희생자 없이 수렵채집만으로 생존하는 것 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을을 이뤄 사는 것에 적응했고 자연이 베풀던 풍부한 공짜 식량은 고갈된 상황이라 굶주린 사람 들은 내륙에서 바다나 강 쪽으로 계속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리를 잡은 초기의 지배층은 요직과 권력을 차지했을 것이다. 
- 강가에 야생종자를 심는 방식이었든, 고랑을 파서 말라가는 견과류 나무에 물을 대는 방식이었든, 농업으로의 변화는 우리 조상들이 기억나지 않는 문을 통과하여 근대화로 휩쓸려가는 과정이었다. 그 리고 이런 변천은 위태롭고 절박한 시기에 영리한 사람들이 그저 식량을 더 얻기 위해 시도한 한 가지 방법이었을 뿐이다. 새벽 안개 낀 나파밸리에서 열기구 바구니를 붙잡으려 했던 브라이언 스티븐슨처럼 그들도 좋은 의도로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역사상 최초로 식량을 채취한 게 아니라 추수했던 날, 그들의 두 발은 열기구와 함께 공중에 떠올랐고 손을 놓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 "세상에는 우스운 일이 많다. 그중 하나는 백인들이 다른 야만인들보다 자신들이 덜 야만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 《마크 트웨인의 19세기 세계일주Following the Equator》)
영속적 발전론의 핵심 주장은 우리가 수렵채집인보다 더 발전했고 문화적이고 세련되고 선택받았고 진화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우 리는 문명화되었다, 우리의 우월함은 자명하다'다. 그런데 이들은 이 주장에 반하는 역사적 증거들은 외면한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자신이 '발견한 서인도제도에서 원주민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친절함, 관대함, 아름다운 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아주 소박하고 정직하고, 믿어지지 않겠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다른 사람에게 나눠줍니다. 달라고 말만 하면 안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들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더 깊은 것 같습니다.” 스페인 국왕과 왕비에 게 보낸 서한에 그가 쓴 말이다. 일기에서는 그들에 대한 찬사가 더 욱 두드러진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다. 우선 점잖고 살인이나 도둑질도 하지 않으며 악에 관해서는 전혀 모른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 다정한 얼굴 로 이야기하며... 그리고 항상 웃는다.” 이런 칭찬이 몇 페이지 이어 지다가 역사상 남아 있는 문서 중 가장 섬뜩한 반전이 일어난다. “그 들은 훌륭한 노예의 자질이 있다. 우리 관리자 쉰 명만 있으면 그들을 장악해서 무슨 일이든 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초기 국가에서는 그런 생활 방식이 용인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광산이나 군대, 공장으로 몰려갈 정도로 절박한 처지에 돌려야 했다. 패트릭 콜훈 Patrick Colguhoun 이라는 경찰치안 판사가 한 말에는 굳건한 문명화에는 빈곤이 필수적이라는 통념이 잘 드러나 있다. “가난은... 사회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빈 곤이 없으면 국가나 공동체가 문명 상태로 존재할 수가 없다. 그것 이 인간의 운명이며, 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없으면 노동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부유층이 재산도, 세련됨도, 안 락함도, 이익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이런 체제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은 “가위처럼 전통적인 생활 방식의 중심을 절단하며 나아갔다. 가위의 한쪽 날 은 스스로 먹을 것을 조달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방해했고, 다른 날 은 임금노동 체제 밖에서 대안적인 생존전략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옭아맸던 것이다.” 페럴먼의 설명이다. 1500년대 후반 에 영국에서 제정된 소위 튜더빈민법은 거리에서의 구걸 행위를 금지했다. 14세가 넘은 사람이 구걸하다 잡히면 태형을 당하고 불에 달군 인두로 왼쪽 귀에 표식을 남기는 처벌을 받았고 같은 죄로 3회 잡히면 처형되었다. | 이런 사례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의 스승이자 그 시대(1700년대 중반)의 선구적인 도덕철학자였던 프랜시스 허치슨 Francis Hutcheson은 이렇게 조언했다. “근면한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값싸게 공급한다면 그것은 태만을 부채질할 것 이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모든 필수품의 수요를 늘리는 것이다. ... 일시적인 노예생활을 하게 하더라도 태만은 처벌되어야 한다.”
오해하지 말라. 현대인들도 시장경제에 억지로 끌려가고 있다. 다 국적기업은 늘 가난한 나라의 땅을 수탈하여 (혹은 부패한 정치인들한테서 사들여) 현지인들이 그곳에서 작물을 키우거나 채집하지 못하도 록 몰아내고, 가장 운 좋은 사람들에게는 숲의 나무를 베어내거나 광물을 캐내거나 과일 따는 일을 시키고 노예임금을 준다. 그것도 공장에서 생산해낸 건강에도 안 좋은 식품을 그 기업 소유의 상점 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살 수 있는 회사 화폐로 지급한다. 그 런데도 시장경제의 침입으로 타격을 입은 그들은 '극심한 가난'에서 구제되었다는 이유로 축하를 받는다. 그전까지 그들은 땅이 있고, 가 축이 있고, 물고기가 있고, 사냥감도 있었기에 하루에 1달러도 안 되 는 돈으로 살 수 있었는데, 이제 시장경제에 끌려들어가 노예 같은 일꾼으로 산다. 이것이 발전이라는 것이다.
- 영속적 발전론자들이 찬양하는 '건국의 아버지들', '정복자', '문명인들은 멋모르는 역사가들이 사기꾼, 강간범, 약탈자들을 듣기 좋 게 포장한 것이다. 우리는 동상을 세우고 묘비를 만들어 그들이 이 룬 눈부신 업적을 우러러보지만, 사실 그 업적이란 건 대부분 하늘 을 찌르는 자만심과 비이성적인 탐욕에 사로잡힌 정신병자의 사악 한 행동에 불과하다. 알렉산더 게르첸Alexander Herzen 이 “역사는 미친놈들이 쓴 자서전”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로 떠받들어지는 자들은 대부분 광기에 사로잡힌 범죄자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을 바꿔놓았다고들 한다. 하 지만 좋은 쪽으로 바꿔놓았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 그들이 좋은 쪽으로 바꿔놓았다는 증거가 있는가? 야심 찬 얼간이들이 남겨놓은 유산은 그들의 비뚤어진 가치관과 야망을 반영한 문명이 라고 하는 게 정당한 평가 아닐까? 현재의 운명이 과거에 이미 정해 졌다고 믿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희 한한 사고방식이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은 단 하나도 후회하지 않아. 하나라도 다르게 행동했다면 그건 지금의 내가 아닐 테니까!”
- 도킨스가 한 말은 모두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는 분명하게 인간의 이기심이이 타고난 것이며 DNA에 새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도킨스는 인간을 “생존 기계, 즉 유전자라는 이기적 분자를 맹목적으로 보존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 전달체”로 본다. 그리고 이런 유전자들의 세계는 야만적인 경쟁, 무자비한 이용과 속임수'가 판치는 세계라고 주장한 다. 나아가 인간도 유전자를 닮는다고 말한다. “이 유전자의 이기적 성향은 보통 개인의 행동에서도 이기심을 발현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도킨스에게 고통에 눈감는 것은 자연선택의 불가피한 결과이지만, 다윈은 그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공감과 이타주의가 사회적 동물들에게 분명 진화적 혜택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노트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동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을 보면 인간은 부모로서의 본능, 부부로서의 본능, 사회적 본능이 있고, 이 본능은 그 대상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감정... 자기 자신 을 잊어버릴 정도로 적극적인 공감...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대를 돕고 보호하려는 성향으로 이루어졌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평등'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모든 구성원들이 똑같은 물건, 똑같 은 음식, 똑같은 특권이나 권위를 누린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생각하 는 평등한 사회란... 모든 구성원들이 음식이나 자원을 얻는 데 필요한 기술, 특권을 얻기 위한 방법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 다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에게 보장되는 자율성이다. ... 평등주의 는 단순히 위계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 는 데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고고학자 로버트 켈리)
- 수렵채집사회는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잘났다고 뻐기는 구성원들을 과감히 처리한다. 존경받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자기중심적으로 처신하다가는 그 지위를 잃는다. 한편, 인류학자들이 '분열 융합' 집 단으로 불렀듯이 수렵채집사회의 구성원들은 언제든 그 무리를 떠 날 수 있었다. 침팬지와 보노보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그런 관행이 수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시사한다. 식량 사정, 계 절의 변화, 집단 내의 갈등 같은 요인에 따라 집단들은 합쳐지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한다. 《인간사회의 기원The Origins of Human Society》 에서 인류학자 피터 보구키Peter Bogucki는 “홍적세의 무리들은 개인 들의 유연한 집합체였는데 그들의 병합은 혈연관계로 묶이기보다는 근거지가 가깝거나 처한 상황에 따라 가까워진 경우가 많았다.” 그런 '유연한 연합체에서는 내집단과 외집단의 정체성이 한 가지로 고정된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한다.
수렵채집 집단의 다양화를 촉진하는 요인은 침팬지나 보노보처럼 여성이 다른 부족과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다. 성숙한 나이에 이르자 마자 여성들은 보통 자신이 태어난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의 일원이 된다. 이는 수십 년 동안의 현장조사뿐 아니라 최근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 의해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 대니얼 리버먼은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발과 무릎 부상들은 사실 우리가 신고 달리 는 신발이 발을 약화시키고, 발목이 과도하게 안쪽으로 휘게 만들고, 무릎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1972년에 이 런 신발이 등장하기 전에는 다들 밑창이 아주 얇은 신발을 신고 달 렸지만 발이 튼튼했으며 무릎 부상도 훨씬 드물었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달리기를 했다. 인간의 몸을 봐도 장거 리를 달리는 데 굉장히 효율적인 구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는 타고난 신체구조를 무시하며 위험을 무릅쓴다. 리버먼이 말했듯이 “인간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
유산소 운동은 인류의 진화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건강을 지켜 주는 마법이 있다면 그것은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스쿨에 서 가르치는 방식으로 달리면 안 된다.
맥두걸은 나이키가 조작해낸 이런 결과를 '나이키 효과'라고 부른 다. 하지만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런 마케팅을 이용하는 기업이 나 이키만은 아니다. 나이키도 눈부신 수익을 거두기 위해 정석을 밟았 을 뿐이다. 값싸고 자연스러운 것을 버리고 더 안 좋은 것을 취하게 하는 게 나이키 효과라면 이와 비슷한 효과'는 우리 주위에 비일비 재하다. 방목형 대신 공장식 축산 효과', '의사의 토요일 골프모임을 위한 금요일의 무조건 제왕절개수술 효과', '불법재배로 키운 마리화나 대신 해롭고 중독성 있고 비싼 약 효과’, 또는 민망한 모유수유 대신 간편한 분유 효과'. 이 모든 것들이 나이키 효과와 뿌리가 같은 마케팅이다.
자연스럽고 건강에 좋고 공짜인 것을 문제만 일으키는 것들로 대 체하는 행태는 사실 농업과 문명화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그것은 상 업이라는 기어가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수법이다. 이미 1930년대부 터 미국의 기업 컨설턴트들은 대놓고 떠벌였다. 광고의 역할은 대 중이 항상 자신의 삶과 주변 환경을 불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만족 스러운 소비자는 불만족스러운 소비자에 비해 판매에 도움이 안 되 기 때문이다.”
- 바리 족 아기들을 연구한 스티븐 베커먼steven Beckerman에 의하면, 아버 지가 한 명인 아기는 15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64%인 반면, 아버지’ 가 여러 명인 아기는 80%였다. 분할 부성 관습이 있는 다른 사회에 서도 그 비율은 비슷했다.
공동소유가 기본 원칙이라 사적 재산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주의 사회에서는 부권을 중요시할 이유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핵가족은 문명화의 소산이다. 문명화 이후 수백 년 동안 미혼모는 버림받거나 모욕을 당했으며, 최악의 경우 살해까지 당했다. 수렵채집 시대의 상 호존중과 자율성을 특징으로 하던 남녀관계가 농업이 시작되면서 주인-노예 같은 관계로 변질된 것이다. 인간 존엄성이 이렇게 비극 적이고 지속적으로 몰락한 것은 새로 권력을 쥔 남자들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혈통을 확실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사회는 자연스럽게 자기복제를 한다. 신경 심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James Prescott은 부족들의 문화를 메타분 석하다가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유대감이라는 단 한 가지 기준만으 로 49개 부족문화가 평화적인지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폭력적인지 를 80%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나머지 20% 기준 은 젊은이들의 성적 표현에 대한 반응이었다. 성적인 표현을 용인하 는 사회는 평화로웠고 비난하는 사회는 폭력적이었다. 프레스콧은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간단히 말해 애정 어린 유대라는 이 두 가지 기준은... 전 세계에 분포된 이 49개 부족사회가 평화로운 사회일지 폭력적인 사회일지를 100%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어머니와 젖먹이의 접촉 부족이 성인기의 잦은 과음, 폭력적 행동, 자살률, 우울증, 기타 문제행동의 상당한 원인이라는 것이 통계로 증명됐다.
- 발달심리학자 피터 그레이Peter Gray는 어린이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수렵채집인들에 대한 글을 많이 발표한다. “수렵채집인들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성인을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욕구는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힘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그레이는 이러 한 개인의 자율성이 수렵채집사회의 생태적·경제적 환경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본다. “아이들은 특정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리 전체에 의존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 부모를 포함해서- 그 아 이들을 마음대로 지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부모한테서 야단을 맞은 아이들은 별다른 제지 없이 다른 오두막으로 간다. 그 오두막은 대부분 조부모 집이거나 부모의 형제들 집이다.”
-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으면 여자들이 사악해 보이지 .... (미국 락그룹 도어즈The Doors, 사람들은 이상해People Are Strange))
- 기독교라는 종교의 중심인물은 처녀 어머니에 의해 성관계 없이 잉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야기를 쓴 사람들이 성적으로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 기이하지만 천국도 섹스와 완전히 무관한 곳으로 표현된다. 기독교의 이상하게 반에로티시즘적인 성격을 마 크 트웨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인간은) 천국을 상상해 냈으면서도 인간의 가장 커다란 기쁨,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적인 희열은 완전히 박탈해버렸다. ... 섹스 말이다! 그것은 마치 타는 듯 한 사막에서 길을 잃고 죽어가는 사람 앞에 구원자가 나타나서, 무 엇이든 말만 하면 구해주겠지만 물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똑 같지 않은가!”
- 모든 10대가 무차별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건 아니다. 여러 사회에서 발견되는 증거들이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은 우리가 사춘 기라고 명명한 난해한 시기는 사실 현대 사회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인류학자 앨리스 슐레겔Alice Schlegel과 허버 트 배리Herbert Barry II가 산업화되지 않은 186개 사회의 10대 관련 보고서들을 검토해본 결과, 이들 중 절반 이상에 '사춘기'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10대들이 정신장애의 징후를 거의 보이지 않았고 젊은 남자들도 반사회적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사춘 기라는 단어가 있는 사회에서도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한 연 구에 따르면, 10대들의 분노와 연관된 문제들은 서구 사회의 영향력, 특히 학교교육과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시작된 직후에 생기기 시작했다. 
- 우리는 결핍이라는 개념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자란 탓에 (생존을 위해 평생 악전고투했을 것 같은) 우리 조상들이 고통 없이 뭔가를 얻으며 살았다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하지만, 인류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많은 수렵사회에서는 식량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거의 구분하지 않 는다. 집과 먹을 것을 구하는 활동이 고되고 피하고 싶은 사회에서 라면 그런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 내가 너보다 힘든 일을 더 많이 해야 해?' 이런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그 런 활동들이 한가한 시간에 즐겁게 하는 일(사냥, 산책, 물고기 잡기, 오 두막 수리하기, 아이들과 놀기)이라면, 이 논리는 힘을 잃는다. 사냥이 재 밌으면 그것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우받 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 번영은 행복에 이르는 열쇠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올로 베르메Paolo Verme는 '자유와 통제력'이 주관적인 삶의 질 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임을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행복과 가장 가까운 자유란 오로지 다음 달 빚을 갚기 위해 일주일에 닷새 를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나지 않을 자유, 하기 싫으면 면도와 넥타 이(또는 브래지어)를 거부할 자유,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존 경하는 척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1932년에 통찰력이 빛나 는 매력적인 에세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을 발표했다. 거기서 그는 “일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 는 굳이 노예제를 시행할 필요도 없다” 라고 했다. 2030년이 되면 자 동화로 인해 미국 내 모든 직업의 47%가 사라질 거라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가 정확하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일할 필요가 없고, 노 예제는 더더욱 필요가 없을 것이다. 거의 100년 전에 러셀은 이미 인간이 일하는 데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이 완전히 낭비라는 것을 간파했다. “아무 필요가 없는데도 과도한 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일하는 것은 오로지 어리석은 금욕주의 - 보통은 자신의 의지도 아닌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여가시간이 필요하 다는 주장이 부자들에게는 항상 충격’이라는 사실, 제1차 세계대전에 동원된 공장 노동이 그 후로도 계속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그의 에세이가 출판된 지 10년 후에는 또 다른 동원이 훨씬 더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산복합 체'라고 명명한 체제로 자리잡았다. 러셀의 에세이에서 가장 인상적 인 대목은 마지막 단락이다. 그가 상상한 인류의 미래가 태곳적 우리 조상들의 삶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과로와 신경과민과 소화불량이 아니라 삶의 기쁨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여가의 즐거움을 더할 뿐 피로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 평범한 남녀는 삶이 행복하기 때문에 더 친절해 지고 남을 덜 괴롭히고 덜 의심한다. 전쟁을 좋아하는 성향은 점차 사라 진다. 모두가 행복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이 벌어지 면 언제 끝날지 모를 가혹한 노동에 모든 사람들이 동원될 터이기 때문 이다. 모든 덕목 중에서도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선한 본성인데, 선한 본성은 힘겨운 투쟁으로 점철된 삶이 아니라 편안하고 안전한 삶에서 온다. .... 기계가 발명되기까지 우리는 힘겹게 일해왔다. 그런 환경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하지만 이제 어리석게 살 이유가 영원히 사라졌다.
- 사냥하는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1966년에 열린 인류학학회에서 마셜 살린스Marshall Sahlins는 학계 최초로 선사시대의 삶에 대한 스주의적 이론체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살린스는 내가 이 책에서 주장한 다 양한 관점들을 소개했다. 몇 년 후에 그는 《석기시대 경제학Stone Age Economics》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논제를 좀 더 명확하 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가장 원시적인 세계의 구성원들은 개인 소 유물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가난하지는 않다. 빈곤이란 소유물이 적 다는 뜻도 아니고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다. 빈곤이란 사회적 지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빈곤은 문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인류학자 뉴리트 버드-데이비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렵채집인들은 단지 가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부유하다'고 여긴다고 말한다. "서구인들의 행동을 결핍이라는 전제와 관련해서만 이해할 수 있듯, 수렵채집인들의 행동은 풍요로움이라는 전제와 연관 지을 때 이해할 수 있다. 과연 고결한 야만인이다.
- "욕심은 좋은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황당할 정도로 극심한 빈부격 차 사회에서 그 수혜자들의 수치심을 덜어주는 데 이용되었다. 하지 만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메시지는 인류의 가장 뿌리 깊은 가치관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비인간적인 경제체제를 옹호하면서 돈 버는 게임에 서 이기기만 하면 기쁨과 행복을 누릴 거라고 끊임없이 재방송을 한 다. 하지만 30만 년을 이어온 우리 조상들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기심은 문명을 이루는 데 핵심 역할을 할지 모르 지만, 진화한 인류의 본성에서 한참 벗어난 문명화가 과연 인간에게 맞는 것일까.
- 어쩌면 우리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이라는 유일한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삶의 모든 아름다움을 희생시키고 토템과 터부와 십자가와 제물, 교회탑, 이슬람사원, 종족, 군대, 깃발, 민족에 우리 자신을 가둔다는 것이다.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 만물은 전진하고 나아갈 뿐 사라지지 않는다. 멸망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죽는 것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행복한 것이다. (월트 휘트먼)
- 흔히 의사들과 의료 시설들도 환자에게 아무 이득이 없는 비싸고 고통스러운 처치를 하고, 정도를 벗어난 경제 보상을 받는다. 매년 총 의료비의 30% 정도가 사망하는 환자들의 5%에게 들어가며, 그중 3분의 1은 죽기 마지막 한 달 동안에 집중적으로 쓰인다. 말기 환자를 평화롭게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돼야 할 까? “삶의 어떤 단계에 이르면, 공격적인 치료는 승인받은 고문으로 볼 수 있다.” 보런의 결론이다.
외과의사로 의료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권의 책을 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에서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우리 의료인들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환자들 을 끊임없이 가혹하게 갈취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에는 무 지하다.” 가완디는 이렇게 무심한 잔인함은 죽음을 외면하려는 태도 때문이라고 본다. “환자와 노인을 대하는 방식에서 우리의 패착은 그들에게는 안전하거나 더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 의사들이 관행적인 처치들을 거부하는 이유는 의료계의 과장광고 뒤에 가려진 실상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폐소생술을 보자. 텔레비전에서 묘사되는 심폐소생술에 대한 최근 조사를 보면, 75%가 성공했고 그 환자들의 67%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왔 다. 하지만 실제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 중 한 달 이상 생존한 환자는 8%였고, 이들 중 일상생활에 가깝게 복귀한 환자는 3%에 불과했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가정의학과 임상조교수로 근무 하는 켄 머리Ken Murray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들려줬다. “심폐소생술만 하면 대부분 목숨을 구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사실 그 성적은 초라하다. 나는 심폐소생술을 받고 나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수백 명이나 봤지만, 병원을 걸어나간 사람은 심장질환이 전 혀 없던 건강한 남자 딱 한 명이었다. 환자가 병이 깊거나 노령이거 나 암 말기라면 심폐소생술로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아주 희박 한 반면 고통을 가중시킬 확률은 극대화된다.”
오래 사는 것이 당연히 더 좋다는, 순전히 양적인 기준을 받아들 인다 해도 삶의 막바지 치료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옳 지 않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치료보다는 통증 완화에 집중하는) 호스피 스에 입원한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와 비슷하게 오래 살거나 더 오래 산다. 2010년에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w England Jourmal of Medicine)에 발표된 한 논문에 의하면, 폐암 말기 환자들 중 일반 적인 암 치료를 받으며 완화 치료 상담도 받은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일찍 호스피스 돌봄을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상당히 호전된 삶의 질을 누렸다. 그리 고 초기에 완화 치료를 받은 환자들 중 소수는 공격적인 말기 치료 를 받았지만, 그들도 생존기간이 25%가 더 길었다. 전문가들의 결 론은 다음과 같다. “초기의 완화 치료는 삶의 질과 심리에 상당히 긍 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낸다. 초기에 완화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표준적인 치료를 받는 환자들과 비교해서 말기에 공격적인 치료를 선택 한 비율이 낮았지만 그들도 더 오래 살았다."
- 늘 죽음을 직면하며 사는 수렵채집인들은 궁극적으로 종말을 피 할 수 없음을 잘 안다.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에 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수렵채집사회에서 극도로 노쇠해지거나 병 이 말기에 이르렀을 때 삶을 끝내는 다섯 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어 떤 부족은 그런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둔다. 어떤 부족 은 거주지를 옮길 때 죽어가는 사람들을 두고 떠난다. 이누이트족, 크로우족, 아쿠트족 같은 부족들은 바다로 몸을 던지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방식으로 목숨을 끊도록 장려한다. 그보다 적극적인 방식 은 목을 조르거나 뒤통수를 치는 식으로 '자발적인 자살을 도와주 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노약자가 부족의 이동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공동체에 폐를 끼치면 희생자 모르게 또는 동의를 받지 않고 그렇게 죽이는 방식이 있다.
- "병 없이 사는 기간은 줄어들고 병을 앓으며 사는 기대수명이 늘어 났다. 기능 상실 면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난 것뿐이다.” 우리는 결국 수명을 연장시키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저 우리의 고통을 슬로모션으로 겪게 되었을 뿐이다.
-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던 환각제가 밀려난 것은 종교 지도자들의 악의적인 억압 때문이다. 식물성 약물로 누구나 자유롭게 신을 만난다면 신에 대한 그들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페인인들이 멕시코를 정복하던 시기에는 실로시빈 버섯 - 아즈텍인들은 이것을 '신의 육신'이라 불렀다 - 을 소지하는 것도 처형감이었다. 스페인인들이 섬기던 신은 사실 '질투하는 신'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원주민 치료사들은 종종 피부에 5-메톡시디 메틸트립타민과 부포테닌이라는 강력한 두 가지 성분이 있는 두꺼 비나 광대버섯을 이용했는데, 기독교가 전래된 후에는 그것들이 사용 금지됐다. 그 버섯과 두꺼비는 독성이 강했기 때문에 약물을 직접 복용하지 않고 점막을 통해 혈류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방식을 썼다. 초기 치료사들은 대다수가 여성이었는데,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이 마법의 약물을 주입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남근 형태의 지팡이를 약물에 담근 다음 그것을 질점막에 문지르거나 그 안쪽에 문지르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이런 관습을 근절하기 위해 여성 치료사들을 말 그대로 악마화했고, 오늘날까지도 '마녀'는 남근을 상징하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나온다.
- 실로시빈을 비롯한 향정신성 천연 화합물은 수천 년 동안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신비 체험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그런 신비 체험은 환자에게 살아 있는 시간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서 실존적 행복감은 높 이고 암으로 인한 충격은 완화시킵니다. 환자는 자신이 죽음의 과정 에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살아 있다는 것을 자 각하죠. 궁극적으로 환자들은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암 후반기에 가장 먼저 잃는 인간관계를 풍부하게 누려 죽음을 덜 두려워하고 삶을 더 많이 껴안게 됩니다.”
- 실존적 공포의 감소는 근대 의료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겠지만, 인류 역사에서는 분명히 입증된 현상이다. 향정신성 버섯을 다양한 의식에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는 적어도 5,7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의 주요 종교들이 생기기도 전이다. 역사학 자들은 그런 버섯들이 고대 힌두교 경전 《베다vedas》에서 언급한 소 마soma, 혹은 호메로스 Homeros가 《오디세이아The Odysseia》에서 '망 각의 묘약'이라고 한 망우초(忘憂草, nepenthe)일 거라고 추정한다. 
- 이 책의 주제는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지속적인 발전은 과거에 대 한 이해가 바탕이 된 발전이라는 것이다. 융은 "기억 꿈 사상》에서 "발전에 의한 개혁, 즉 새로운 방법과 과학기술에 의한 개혁은 물론 처음에는 대단해 보이지만 어딘가 수상쩍고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든 큰 희생을 치르게 된다”라고 했다. “새로운 개혁은 절대 인류 전 체의 만족과 행복을 증진시키지 않는다. 반면, 전통 방식에 의한 개혁은 대체로 희생이 적고 더 지속적이다. 더 단순하지만 더 많은 시행착오를 통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미래의 지침으로 삼는 것이 그리 기이한 일은 아니다. 우 리 선조들이 살아온 방식을 알아야 우리가 사는 인간동물원을 어떻 게 설계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미래의 최고 단계를 앞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괴베클리 테페가 쓰레기처럼 파묻힌 이후 인간의 역사를 형성했던 수많은 속박을 벗어던진 미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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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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