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숭배

사회 2014. 11. 5. 23:12

 


성장숭배

저자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출판사
바오출판사 | 2011-05-2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제성장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격비교

- 경제가 더 성장해도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은 일정 소득수준을 달성한 다음부터는 소득이 늘어도 행복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 경제성장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경제성장을 지탱해주고 있음.
- 사람들은 이제 물질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제품의 효용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이 만들어내는 상징적 의미를 소비하는 존재로 변했음. 여러가지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행위가 사람들이 자아를 창조하고 자의식을 확인하는 일이 되었음. 그에 따라 노동자를 포함한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정체성과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 정치적 성향이 생산과 고용보다는 소비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늘어나게 되었음.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은 노동을 착취해서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대체로 그냥 팔렸음. 이제 소비자본주의 시대는 자본이 노동을 착취할 뿐 아니라 광범위한 문화공간에 뿌려놓은 상징을 매개로 사람들의 자의식을 지배함으로써 상품을 사게끔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 예전에는 생산영역에서 결정되는 일률적 계금 정체성이 사람들의 자의식에 큰영향을 미쳤지만, 이제는 생산영역보다 소비영역에서의 행동이 사람들의 자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음.
- 최선의 인간성을 구현할 수 있는 상태는 가난한 사람도 없지만 동시에 더 부자가 되려는 사람도 없으며, 남보다 앞서 가려고 애쓰는 자들이 나를 쓰러뜨릴까봐 두려워할 이유도 전혀 없는 그런 상태임
-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수학과 경제이론 분야만을 공부했지, 철학이나 심리학,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함. 그들의 무지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공리주의라는 일개 철학적 입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악명이 높음. 때문에 그들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묘사하듯이 기업이 생산요소를 투입해 시장에 내보낼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용기속에 재화와 서비스를 처넣으면 행복이 생산되는 것으로 이해할 뿐임. 그들이 보기에 인간은 그저 상품을 행복으로 전환시키는 생산과정인 셈.
- 소득이 지난 10년간 늘어난 사람들은 소득이 전혀 늘어나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행복해하지 않았음. 행복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행위보다는 이미 우리 손에 있는 것을 원하는 행위아 관련된 문제임
- 일상의 제약에서 탈출할 수단을 내거는 복권이나 도박은 일종의 사회통제기능을 수행하는 강력한 장치임. 우연히 행운이 들어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게 되면 개인과 공동체의 현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동기를 상실하기 쉽기 때문.
- ADD라는 전염병은 아이들이라는 거울을 통해 가족구조의 변화와 곁에 없는 부모,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문화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음. 그 어느때 보다도 부유해진 경제가 뇌의 생화학에 투자할 자원은 있어도 그만한 자원을 교육에 쓰려는 여력은 없다는 것도 말해줌. 그리고 의료계를 좌지우지하는 제약회사들의 본모습과, 그 맞은 편에서 규범에서 일탈하는 아이들을 순간적으로 교정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구도 드러내주고 있음. 열풍과도 같은 ADD의 유행과 리탈린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지만, 사회는 이 증상의 고유한 병리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단지 문제 행동의 원인이 신경학적 질환이라고 믿고 싶어함.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몰고가면 누구의 책임인지 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난할 대상도 당연히 사라지고 맘. 부모나 교육시스템, 가족구조에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기대나 근로유형의 변화, 부의 추구에 있는 것도 아니게 됨. 사회와 정책의 문제로부터 저멀리에 있는 신경물질상의 문제가 되기 때문.
- 근대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자본주의는 일정한 형태의 합리성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림. 소비지상주의와 자본주의 논리는 화폐의 합리성과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음. 노먼 브라은의 지적대로 화폐는 추상적이며 인간성을 배제한 객관적이고 양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촉진함. 즉 근대과학의 사고방식임.
- 신자유주의자들이 전제하는 것은 사람들의 선호는 단지 주어진 것이며 사회의 통제나 당사자 이외의 사람들이 간섭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 쉽게 말해 무얼 소비할 것이며 부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는 저마다 결정되어 있는 선호에 따라 개인이 행동할 뿐이라는 이야기. 이 전제와 달리 개인의 선호가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면 소비자들의 행동은 그들 스스로의 선호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직과 제도의 선호를 반영하기 마련임
-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가 가진 더욱 중요한 결함은 소비자들은 이미 욕구가 결정된 상태로 시장에 참여하므로 접할 수 있는 재호와 서비스로부터 최적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유일한 문제라는 가정임. 욕구를 해소해주기만 하는 장치로 시장을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심하게 곡해하는 생각임. 왜냐하면 사람들이 욕구하는 행위 자체를 시장이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 사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러한 시장의 시도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임. 소비자들의 선호는 결코 시스템 외부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생성되며 또 강화됨. 따라서 소비자 주권은 환상에 불과.
-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는 조개껍질이나 남근주머니 장식, 깃털, 구슬, 보석 같은 물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지위와 권력을 의미했음. 현대 소비자 사회에서 지위를 나타내는 본질적 상징은 가장 추상적 형태, 즉 화폐 형태를 취함
- 화폐의 힘이 미치는 영역이 곧 나의 힘이다. 화폐가 취하는 속성이 곧 나의 속성이고, 내 힘의 본질이다. 다시 말해 화폐의 속성은 그 소유자의 속성이자 힘이다. 나는 저질이고 부정한 사람이며 악질인 데다 둔감하다. 그러나 화폐는 예우를 받는 것이어서 나 또한 예우를 받는다. 화폐는 지고의 선이기 때문에 그 소유자 역시 선한 존재다. 게다가 부정하게 살다보면 애로가 따르는 법인데, 화폐는 그 모든 불편을 덜어준다. 결국 나는 정직한 사람으로 행세할 수 있다. (칼 마르크스, 1884년 경제학 철학 초고)
- 겉모습만 본다면 쇼핑몰은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에 지나지 않음. 하지만 쇼핑몰에는 세심하게 설계된 강력한 심리학이 작용하고 있음. 재래시장이나 바자회, 혹은 교외 지역의 상가와는 달리 쇼핑몰은 오로지 돈을 쓰는 소비자로서의 행위만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음.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쇼핑몰은 바깥의 사나운 세상과 차단된 별개의 시공간처럼 소비자들을 빨아들임. 어느 쇼핑몰이든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무슨 명상의 경지에 들어선 듯 황홀경에 직면함.
- 현대의 아이들은 가게에서 산 물건이라야 열망하고 가지고 싶어 함. 반면 집에서 만든 음식이나, 의류, 장난감을 대할 때는 소비행위가 가져다주는 마력을 느끼지 못함. 왜냐하면 용돈을 저축해서 사는 물건이라든가, 부모가 희생한 돈을고 구입하는 물건이라야 엄청나게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배우기 때문. 그처럼 아이들은 돈을 대가로 얻는 물건을 통해서 구매력 행사가 주는 나만의 권력이라는 것의 묘미를 느끼게 됨.
- 존 스튜어트 밀은 인구밀도의 증가와 도시화가 가져온 심리적 충격을 일찍부터 눈여겨 보았음.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같은 종족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것은 좋을 일이 아님. 홀로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사라져버린 사회는 이상이라고 하기에는 척박하기 짝이 없음. 생각과 인격의 깊이를 조금이라도 다지려면 홀로 지내는 시간이 꽤 있다는 뜻의 고독은 아주 긴요한 것임." 너무 외루우면서도 홀로 지낼 시간을 별로 없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고통이라는 말이 나올 법함
- 제품과 브랜드는 인간의 삶에 절대로 진정한 의미를 줄 수 없음. 그래서 현대의 소비자들은 언제나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영구 불만족 상태로 빠져듬. 물론 바로 이 점이 현대 자본주의에서 소비자들이 처해 있는 본질적 상태임. 우선 제품을 개발하고 그 다음에 최적의 판매방안을 모색하는 예전의 기업 프로세스가 정반대로 뒤집어져서 오늘날에는 기업이 제품개발에 앞서 판촉 아이디어를 먼저 구상하는 현상이 결코 드문일이 아님. 그 다음 단계로 아이디어에 맞을 제품을 고안하는 작업에 들어감.
- 소비사회는 자기망상에 의해 지탱되는 과소비 사회임. 줄리엣 쇼어가 지적하듯, "미국 소비자들은 자신이 사회적 위상때문에 구매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 게다가 자신은 그렇지 않은데 남들이 사회적 위상에 신경쓰며 돈을 쓴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더욱 강함. 우리사회에는 자신의 구매습관이 남에게 내보이려는 사회적 의사표출이기도 하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아주 강하게 형성되어 있음.
- 세계화의 본질은 세계의 경제와 금융 네트워크가 촘촘해진다거나 기업들의 국제적 활동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님. 그 본질은 성장과 소비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쉴 새 없이 확산된다는 것. 세계화 과정은 이익추구를 통한 부의 축적에서 추진력을 얻는 한편, 그 이데올로기는 개인이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질적 양적 증대다 인간의 행복을 향상시켜준다는 신념을 자기 정당화의 핵심요소로 활용함. 이로 말미암아 경제성장률을 높여줄 것이라는 모든 활동과 정책들이 특권을 얻게 됨. 이처럼 단단한 신념체계에 더하여 소비행위를 기본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치켜세우는 문화행태가 합세함. 이 점이 바로 세계화에 반대하는 저항이 그토록 미약했던 이유임
- 신자유주의는 시장이란 그 본성상 유익한 것이며, 정부개입은 해롭다는 논리를 모든 사람에게 납득시킬 수는 없을 것임.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남긴 유산중의 하나는, 일단 시장이 열리고 나면 정부는 현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진다는 논리를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는 점. 달리 말하면, 신자유주의 정책을 좋아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정책이 실행되고 나면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 이와 똑같은 논리에 따라 세계화와 더불어 국제적 차원의 힘을 행사하는 경제력이 출현했고, 그 가공할 힘에 정부는 거세되고 국가의 힘 자체가 축소되었기 때문에 케케묵은 사회민주주의에 호소하는 시대는 이제 영원히 끝났다는 신념이 생겼음. 즉 사회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전통적인 가치는 여전히 예찬할만한 것이겠지만, 세계화의 물결이 바꿔놓은 새로운 세계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프로그램에 집착하는 것은 그저 유토피아를 꿈꾸는 가망 없는 생각이라는 것.
- 로버트 라이시는 정신노동자가 노동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며, 어느 곳에서나 자신의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고 또 그러한 일을 즐긴다고 보고 있음. 하지만 이동성을 자유로 오해해서는 곤란함. 코스모폴리탄으로도 불리는 이 세상사에 밝고 변화무쌍한 엘리트층도 다른 사람들처럼 소비의 상징물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뒤집어쓰고 살기는 마찬가지임. 오히려 공동체와 단절된 채 생활하는 경향이 심한 탓에 소비로 정체성을 대신하는 경향은 더 심함. 공동체와 유리될수록 그들의 정체성은 이리저리 떠다니기 쉽고, 그만큼 그들의 자의식은 마케팅의 식민지가 되기 쉬움. 코스모폴리탄들은 사실 문화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들에게 문화는 체험이 아닌 소비의 대상에 가까움.
- 코스모폴리탄들은 차별화된 문화를 즉흥적이고 또 지적인 취향 삼아 아주 활발하게 소비함. 반면 지역사회의 현지인들은 그들이 속한 생활방식에 머물며 만족함.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일종의 소비행태이며, 상층문화자본의 소비자들과 하층문화자본의 소비자들간의 지위차별을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는 소비 스타일임.
- 장시간 근무하는 문화의 저변에는 기업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고, 해고의 공포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먹혀들기도 함. 하지만 장시간 근무 문화를 형성하는 더 큰 요인은 순전히 자발적인 것임. 저숙련 직종에 속하는 상당수의 노동자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음. 사람들이 더 오래, 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본의 경제적 힘이 아니라 문화적 힘의 작용임. 사람들이 오래 일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당한 수준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소득이 필요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고, 또 소득과 일자리의 지위가 사회적 위상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달리 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높은 소득수준에 길들여진 것임. 세계화는 일종의 문화적 현상으로 이 습관을 확산시켰고 강화했음. 하지만 탈성장 사회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창조적 잠재력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그를 통해 우리의 개인의 정체감을 꽃피울 수 있게 된다면 과잉노동의 문화는 소멸할 것임.
- 높은 환경표준이나 비교적 높은 환경표준이 기업과 산업, 경제 차원의 경쟁력에 체계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는 증거는 전혀 없음. 오히려 환경규제를 앞장서서 채택한 나라들이 상당히 큰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증거도 많음. 예를 들면 70년대 독일이 엄청난 규모에 달하는 세계 공해통제장비 시장에서 최고의 시장점유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이유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엄격한 공해제한조치를 채택한 덕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 신자유주의는 특정한 가치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음. 도구적 가치이론은 인간은 그 자체로 독자적 가치가 있는 존재인 반면, 인간 이외의 세계는 인간의 행복에 보탬이 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임. 즉 자연의 세계는 도구로서의 가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정확히 말해 일종의 인간중심적 철학임. 인간에게는 고유한 내재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확신에서 출발하기 때문.
- 자본주의적 생산의 성격을 지배하는 도구주의적 철학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극단적으로 분리하는 사고방식과 자연을 개발자원의 목록으로 취급하는 태도임. 이러한 시각에서는 자원이 유한한 것이냐 혹은 무한한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님. 자원이 무한정하다고 한들, 그것은 만족에 이르는 길이 재화의 축적이라는 망상으로 우리자신을 기만하는 기간을 무한정 늘려주는 일이 될 뿐임. 이것이 아마도 환경경제학과 새롭게 등장하는 연구분야인 생태경제학의 핵심적 차이점임.
- 자본주의는 19세기 사회주의 사상의 출현을 자극했던 여러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대부분 자신의 해답을 내놓았음. 작업현장의 무지막지한 노동착취와 대규모 빈곤은 대부분 사라졌고, 사회정의를 확대하고 대의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요구도 실현되었음. 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한 결과 마케팅 첨병들의 조작, 강박적 물질만능주의, 환경악화, 고질적인 소외, 고독 등 더욱 뿌리깊은 사회불안 요인들이 유발됨. 한마디로 말하면 여성들이 평등을 좇다가 해방을 희생시킨 것처럼 사람들은 마케팅 지배 사회에서 만족을 추구하다가 풍요에 안주하고 말았음. 풍요로움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마음 둘 곳을 찾아 나설 자유가 아니라, 단지 소비할 자유를 얻게 된 것임.
- 일반적으로 시장의 세계는 경쟁심리와 위계질서, 도구적 합리성, 과시를 통한 위상제고, 외부 세계의 소유와 같은 남성 중심적 가치의 남성적 의식이 지배하는 곳임. 그에 비해 가정은 직관적 평가, 비경쟁적 관계 형성, 공감과 배려 같은 여성적 가치와 의식이 지배하는 곳임. 시장의 세계와 시장외부의 세계가 평형을 되찾게 되면 두 세계의 서로 다른 가치들과 의식형태들이 다시 배치될 것이고, 여성과 남성 각각에 내재하는 남성적 가치와 여성적 가치가 건강하게 표출될 것임.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많아지면 달라진다  (0) 2014.11.05
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  (0) 2014.11.05
성장의 한계  (0) 2014.10.30
지구쟁탈전  (0) 2014.10.30
명품 판타지  (0) 2014.10.29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