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쟁탈전

사회 2014. 10. 30. 21:47

 


지구 쟁탈전

저자
조후 지음
출판사
민들레 | 2011-07-1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역사는 판타지다오래전의 역사는 ‘옛날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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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 노예는 노동, 즉 경제생산을 담당. 주인과의 관계는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임. 동양의 노예는 가사를 전담. 즉 지배와 피지배 구조임. 여기에서도 동양은 정치로, 서양은 경제로 각각의 시스템을 운영
-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오리엔트에서 출발한 문명의 불은 페니키아에 의해 고린트로 전수되었고 이내 그리스로 옮겨감. 그리하여 서방과 동방의 첫번째 융화가 에게해에서 이루어졌으며, 마케도니아가 그 역할을 담당. 헬레니즘의 완성임. 헬레니즘 문명의 서쪽, 로마는 헬레니즘 문명을 받아 이후 서구의 갖가지 시스템의 원형을 만들면서 기독교를 이념의 바탕으로 하는 헤브라이즘을 완성함. 이로써 서구문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양대 축을 근간으로 중세로 진입. 서구의 고대역사를 가득 채운 전쟁의 원인은 경제였음.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소멸도, 페르시아의 지중해 진출도, 그리스의 확장도, 로마 제국건설도 그 기저에는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 깔려 있음. 역사의 시작이 그러했기에 로마 이후에도 서구의 모든 시스템은 경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변경되고 소멸됨. 현재의 자본주의는 그 바탕위에 성립된 것. 그러므로 서구의 역사를 시작 단계에서 정밀하게 들여다 보아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음.
- 유럽은 지리때문에 통합을 이루지 못함. 유럽에는 지리적 중심이란게 존재하지 않음. 프랑스 정도가 중심이 될 수 있는데 그러기엔 대륙 자체가 너무 좁음.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지중해가,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북해가 막아버림. 이렇게 가뜩이나 지리적 중심이 없는 유럽에서 그나마 중심인 프랑스는 사사건건 영국과 지겹게 싸우느라 한가하게 중심을 잡고 있을 틈이 없었음. 결국 유럽은 로마 이후에는 중심이 존재하지 않았음. 프랑스가 영국과 본격적으로 멱살잡이를 시작한 때는 11세기 경, 로마가 무너진지 6백년이나 지난 후부터임. 로마가 무너지고 산산조각 난 후 각자 힘을 길러 남의 땅을 넘볼 정도가 되기까지 6백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로 유럽의 힘 자체가 애초부터 형편없었다는 것. 로마가 대단히 엉성한 정치, 사회구조로 거대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유럽의 형편없는 힘의 총량 덕분이기도 함. 중국이라면 그 정도 힘으로는 제국을 일구기는 커녕 살아남기도 힘들었을 것임.
- 오늘날 우리가 좋지 않게 보는 이슬람 고유의 특성들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세계 경영전략에 따라 왜곡한 허상임. 이슬람은 오히려 로마에 이어 유럽 문명의 기틀을 제공했지만 서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슬람이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었고, 그 덕택에 경제적 성공을 거둬 세계 권력으로까지 영역을 넓힘.
- 십자군 전쟁은 성지탈환이 아니라 유럽 경제 도약의 토대확립이라는 다른 역사적 성과를 낳음
(1) 십자군 전쟁의 실패 책임을 지고 하늘의 권력이 세속의 권력에서 손을 뗌으로써 세속이 정신적 독립을 할 수 있었음
(2) 우물안 개구리였던 유럽이 선진문물을 접하게 되어 모든 면에서 눈을 뜨게 됨
(3) 안 그래도 경제 위주로 진행된 역사에서 이제는 노골적으로 경제가 역사를 주도
- 유럽의 르네상스는 로마가 무너진 후 수백년 간의 이합집산을 거쳐 영토국가로서의 개념을 수립한 유럽 각국 중 비교적 경제적 성공을 거둔 이탈리아 북부와 플랑드르 지역의 도시국가가 경제적 성공을 바탕으로 그 전까지의 사회구성 시스템이었던 지상의 권력과 종교의 권력을 해체하고 그들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새 질서로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간단하게 정리됨. 이보다는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그들이 그동안의 불공정 무역(유럽은 심각한 무역적자 지역이었음)을 통해 알고 있던 유럽 이외의 세계와 현격하게 벌어진 격차(정치, 사회, 문화, 경제 전반)를 좁히기 위해 벌인 그들의 온갖 노력(침략, 전쟁, 약탈, 사기)를 제대로 해석하는 일이 중요
- 서구인들은 그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대항해시대, 르네상스, 종교개혁의 세가지 사건의 유럽의 16세기를 뜨겁게 달구어 서구가 역사위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함.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로부터 약 3백여년이 지난후, 중국이 붕괴하면서 비로소 그들은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었음. 그러므로 그때까지 그 세가지 사건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볼때 그들만의 열기, 찻잣속의 태풍임. 대항해시대, 르네상스, 종교개혁은 서구의 부상이 아니라 가까스로 일어나기 위한 안간힘에 불과.
- 사실 여부를 떠나 누가 먼저 논쟁이나 논점의 인지구조를 짜느냐가 중요하지, 그 구조속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음. 프레임은 논쟁을 자신이 원하는 결론으로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임. 이처럼 역사를 볼 때는 역사용어를 그대로 따라가지 말고 누가, 왜, 어떤 방법과 기교로 역사 용어를 규정했는지 살펴보아야 함.
- 오늘날도 유럽연합 결성에 소극적인 나라가 영국임. 일본이 동아시아 질서와 구조에 소극적 자세를 취하는 것과 같은 맥락임. 처음에는 대륙에서의 소외, 그 다음에는 세계를 갈 수 있는 다른 루트 개척, 그리고 시선을 대륙이 아니라 바다쪽으로 돌리는 것은 양국의 공통점. 어떤 도움 없이 나 홀로 컸다는 자부심이 대륙과 일정한 선을 긋게 만드는 역사적 무의식이 됨. 이런 역사적 무의식과 일본의 우경화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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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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