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차가 없어서 걸어 다녀야 하는 사람이라면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질투심은 마차가 있으면서도 자기는 겨우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밖에 탈 수 없는 사람이 느끼는 질투심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버나드 맨더빌, 꿀벌의 일화, 1714)
- 영국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봉급이 인상되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은 별로 크지 않다고 함. 그보다 훨씬 더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회사 내에서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고,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직원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느낌이나 통장에 돈이 많다는 점이었다.
- 최근 행동연구가 프리데리케 랑에는 빈대학의 연구팀과 함께 개들도 질투심을 느낀다는 사실을 밝힘. 원숭이들 사이에도 질투가 있음. 이런 결과들을 보면 질투가 진화발전상 유리하고도 중요한 감정이라는 결론이 나옴. 실제로 질투가 진화의 중요 요소라는 확신을 갖는 학자들도 있다. 미국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보엠은 질투를 두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강력한 충동으로 봄. 모든 질투에 선행하는 비교는 뇌가 강자와 약자를 인식하도록 돕는다고 주장. 인간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면 개인적 발전을 위한 어떤 기준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펼치는 데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지도 모름. 이런 연구결과는 고무적이다. 질투가 자연스런 것이라면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느낄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질투심을 느낀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질투라는 감정을 대할 때 어려운 점은 서양의 전통에서는 질투에서 완전히 해방된 상태를 이상적으로 간주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투는 부끄러워해야 하고, 반드시 물리쳐야 하는 감정이라는 인식 속에서 자랐다. 질투심과 늘 붙어 다니는 공포, 슬품, 분노가 감정을 구성하는 하드웨어라는 점도 질투를 다루기 어렵게 함. 질투심을 완전히 제거하려면 우리의 일부를 부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물론, 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질투심이 없어야 한다는 당위와 본성 중 하나라는 사실을 두고 갈등함. 그런 딜레마 때문에 우리는 질투심을 인정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 문제는 '원하는 것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엄청나게 비싸거나 혹독하더라도 여전히 갖고 싶은가'이다. 얼마만큼의 대가를 허용하겠는가. 그들이 지금의 위치에 다다르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들어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는지를 안다면 어떻게 될까. 이처럼 우리는 질투심이 느껴질 때 질투를 일으키는 한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아야 한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아야 한다. 그 사람의 삶 속에 들어가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 질투심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특정한 생각을 함께 한다. 그 생각들은 우리가 학습한 내적가치의 평가유형, 전제들, 가치체계들에 기초해 있다. 우리가 특정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과 일어난 일의 해석은 항상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늘 사람이나 사건을 어떻게 평가할지 선택해야 함. 그렇다고 수십 년 전에 한 번 습득한 적이 있는 사고의 패턴을 늘 똑같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님. 인생의 특정 시점에 다다른다고 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태도나 사고 및 행동유형을 수정할 능력이 소실되지는 않음. 우리 뇌는 나이가 많이 들어도 변화를 꾀하고, 새로운 유형을 형성하는 능력을 갖고 있음. 동일한 패턴의 사고, 질투를 유발하는 요인과 관련해 과거 언젠가 학습된 평가유형 역시 바뀔 수 있음. 지금까지 어떻게 반응해 왔으며,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자각해 무엇이 더 유용한지 알아야 함. 그런 다음 사건을 평가하는 새로운 방식을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함. 이런 뇌의 능력을 신경 가소성이라 부름
- 질투심으로 인한 괴로움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세가지 선택지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잘 맞아떨어지게끔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 그마저도 아니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이 세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함. 만약, 어떤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 그 상황에 친숙해져야 함. 주어진 상황을 변화시킬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면 말이다. 변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최대의 것을 얻어내야 한다. 변화시킬 가능성이 보인다면 주어진 상황 전체나 일정부분을 어떻게 개선할지 정확히 분석해야함. 상황을 개선해 견디기 쉽도록 만들거나, 그마저 어렵다면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길을 찾아야 함.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 벗어나야함. 힘들고 받아들일 수 없으며, 견딜 수 없다고 판단되는 환경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연인과의 결별, 퇴직, 이사 등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 자주 질투를 느끼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갖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자신의 욕구에는 눈이 어둡다. 원하는 것을 쫓아 다니면 욕구가 만족되고 결핍이 사라져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라니 모순처럼 들린다. 질투심이 강한 사람은 언제 그만두어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이제 됐다고 말할 줄 모른다. 계속해서 '더' 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낸다. 보다 많은 행복과 만족감을 얻기 위해 '더' 나아가려고만 하지, 자족하는 상태를 알지 못한다. 원하면 원할수록 더 원하게 되는 악순환에 갇힌 사람은 행복해지려면 계속 더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자기 삶에서 기쁨을 느끼며 즐기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부를 축적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됐다고 할 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취를 즐기지 못한다.
- 자유를 향한 문은 오래전부터 열려 있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지 않았을 뿐이다. 괴로운 기억을 계속해서 불러들이고, 그 익숙한 세계상을 옳다고 믿으며 사는 사람은 에너지를 빼앗긴다. 과거의 괴루운 기억으로부터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에너지를 말이다.
- 용서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적대적 질투심과 증오심이 낳는 해로운 결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위해 복수와 앙갚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스탠퍼드대 연구에 의하면, 부당한 대우를 했던 사람을 용서하면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이익을 얻는다고 함. 혈압과 코르티솔 수치가 정상화되고, 만성적 질병은 증세가 경감되며, 면역체계가 강화된다. 용서란 개방적 자세를 통해 짐이 되는 과거와 이별하는 행위. 과거와 결부된 고통스런 감정을 돌이켜 이해하다 보면 내면적 거리를 취해 마음의 짐을 덜게 됨. 그렇게 되면 미래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용서하는 능력을 발전시켜 잘 활용하면 오래된 마음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용서하는 연습을 할수록 원한과 괴로움은 줄어듬. 과거와의 소모적 싸움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현재상황을 왜곡해 바라보게 했던 원인을 내려놓게 된다. 과거의 원한이 우리의 사고와 행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정말 도움되는 것이 무언지, 순간의 스트레스 해소에만 도움되는 것이 무언지 객관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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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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