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협 미식가

인문 2019. 7. 4. 12:46

-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을 아름답고,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삼시 세끼 맛있는 음식만 먹고, 좋아하는 음식만 먹어라. 시시한 식기로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의지를 품고 인생을 깊게 의미있게 살아라.
- 식재료의 본맛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요리사의 능력이며 즐거움의 씨앗이다. 옛 사람들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단순히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구약나무 알줄기로 곤약을 만들었다. 이토록 맛 좋고 값싸고 만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든 이는 도시 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상관없이 놀라울 정도의 창의성을 가진 요리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쓸데없이 설탕을 부어 재료의 본맛을 잃게 만들고서는 조금도 돌이켜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 양식은 설탕맛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면서 서양인이 하는 일이라면 무턱대고 받아들여 그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따라 하려는 풍습이 분별있는 사람들의 빈축을 산다. 일본인은 카레라이스, 스튜, 소스까지 전부 다 달게 만들어버린다. 설탕은 식재료의 뒤떨어진 맛을 감출 때 쓰는 것으로, 설탕을 사용하는 일은 재료의 질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다. 설탕과 화학조미료를 줏대없이 사용하는 습관은 마땅히 삼가야 한다.
- 중국에서 요리가 발달한 것은 식도락 때문이 아님. 아이러니하게도 식품부족이 요리발달을 불러왔음.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쏘가리를 굉장히 귀하게 여기는데, 일본에서는 그것을 아무도 맛 있다고 생각하지 않음. 왜냐면 일본은 식재료가 풍부해서 맛있는 생선이 널렸기 때문. 그런 점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바다가 가까우면 요리가 잘 발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닷마을은 식재료가 풍부해서 귀찮게 요리하지 않고 적당히 처리해서 먹어도 꽤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 또 일본에서는 요리 하나 하는데 참 많은 쓰레기를 남긴다. 생선 하나 발라도 머리 버리고, 꼬리 버리고, 내장도 버린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을 버린다. 이건 우선 조리법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요리법을 몰라도 될 만큼 식재료가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함
- 메밀국수를 먹을 때는 조금씩 후루룩 먹지 말고 한꺼번에 볼이 미어지게 넣어서 국수가 목구멍을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단숨에 먹어야 함. 국수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 그 감촉이 메밀국수 맛을 좌우함
-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요리의 근본이 식재료를 살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식재료는 제각기 독특한 본연의 맛을 갖고 있다. 이 맛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본연의 맛을 손상하면 안된다.
-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은 인위적으로나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맛이 아니다. 소금, 간장, 술, 미림, 설탕, 화학조미료, 가다랑어포, 다시마, 국물용 멸치 등은 맛을 내는 재료로서 모두 좋은 맛을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재료일 뿐 이것으로 맛을 내서 무언가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조미료는 위에 예로 든 것을 포함해 백가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산과 바다에서 나는 수백, 수천 종류의 음식은 그 하나하나가 다 특유의 맛을 갖고 있다. 더구나 인위적으로나 인공적으로 만든 것과는 비교도 안 될 특색을 갖고 있다. 이 특색있는 본연의 맛을 경시하고 함부로 인위적인 맛을 덧입혀서 맛을 뒤섞는 건 자연의 맛을 모독하는 일이다. 조미료도 소금이 어울리는 음식에는 소금만 쓰고, 술이 어울리는 음식에는 술만 쓰는 것이 좋다.
- 무 껍질을 사용해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쓰레기를 이용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껍질은 원래 버리는 물건이 아님. 무껍질을 쓰레기라 말하는 사람은 요리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 껍질이야말로 무가 가진 독특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영양도 있다. 껍질을 벗기는 경우는 손님맞이 요리로 겉모양에 신경을 써야 할 때나 무가 오래되어 껍질이 가치가 없어졌을 때뿐이다. 이것을 모르는 요리사는 일단 무를 잡으면 껍질부터 벗기고 본다. 가마쿠라에서 무를 요리할 때 나는 언제나 밭에서 갓 뽑아낸 무를 사용했다. 이런 신선한 무는 껍질을 벗기기 아깝다.
- 생선요리에는 다시마 맛국물을 쓰는 게 좋다. 가다랑어포 맛국물을 쓰면 생선맛이 중복되기 때문에 시원한 맛이 나지 않고 어떻게 해도 좋은 맛이 나지 않는다. 다시마 맛국물을 쓰는 법은 예로부터 교토에서 창안되었다. 교토는 천년수도였다. 홋카이도에서 생산된 다시마가 산으로 둘러싸인 머나먼 도시 교토까지 왔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다시마를 말려서 이동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다시마 맛국물이 발달. 다시마 맛국물을 내려면 일단 다시마를 물에 적시기만 해서 3분에서 5분간 그대로 물에 담가 놓아야 한다. 다시마 표며이 물렁물렁해지면 수돗물을 작은 소리만 똑, 똑 날 정도로 약하게 튼다. 그리고 나서 그 물로 다시마를 젓기며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져 달래듯 모래, 먼지 같은 것을 제거한다. 이렇게 손질한 다시마를 끓는 물 안에 스윽 담갔다가 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 다시마를 뜨거운 물에 잠깐 담갔다가 건져내는것이 어쩐지 아까워 긴 시간 우리면 다시마 속 단맛이 나와서 결코 좋은 맛국물을 낼 수 없다. 교토 주변에서는 우림용 다시마라고 해서 다시마를 끓는 물에 넣고 냄비 바닥에 담시 두었다가 꺼내는 방법을 쓴다. 이렇게 맛국물을 내면 아무리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도 불평하지 않고 만족함
- 채소는 수확하고 나서도 어느 정도 기간은 부자연스럽게 발육하기 때문에 손질을 잘해두어야 한다. 예컨대 파는 푸른 부분을 잘라내고 흰 뿌리 부분을 따로 보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푸른 부분이 자라 흰 뿌리의 양분이 없어진다. 또 무는 잎이 달린 채로 두면 잎이 자라나면서 무의 양분을 빼앗가가기 때문에 잎을 잘라내서 바로 겨된장에 넣어두는 게 좋다. 채소를 손질하는 데는 이처럼 소소하지만 중요한 비결이 있다. 그러나 갓 딴 채소를 바로 먹는 것보다 더 좋은 요리법은 없다.
- 대부분의 요리사가 식품 원료의 특성을 줄이고, 변형시키고, 색을 바구고, 맛은 제쳐두고,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대충 맛을 본다. 어떤 원재료로 만든 요리인지 먹는 사람이 쉽게 알지 못하게 만들고서는 득의양양해서 우쭐거린다. 이는 나쁜길로 가는 지름길로서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요리의 본질은 그 식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을 죽이지 않는 데 있다. 이것이 요리의 첫째 조건이다. 어패류, 채소, 건어물 모두 마찬가지다.
- 중국음식 중에 옌워라는 까다로운 요리가 있다. 바다제비 집으로 만드는 데 마치 일본의 우뭇가사리를 물에 담근 것 같은 맛으로 그리 특별하 맛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음식이 없으면 중국요리에 혼이 빠져나간 것과 같다. 바다제비 집의 맛이 가진 이 불가사의한 매력이 식재료의 종류를 달리 하면 상어 지느러미, 흰목이버섯 따위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모든 인류가 추구하는 궁극의 맛은 뭘까. 앞에 말한 복어, 고사리, 바다제비 집이 그렇듯, 그 어떤 것도 섞이지 않고 단일하게 딱 떨어지는 완결된 맛,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이 아닐까. 인간에게 그 맛을 느끼는 감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라는 듯 아주 옅지만 분명한 '맛' 말이다.
- 민물장어는 어느 시기가 가장 맛있을까. 아마 더위와 관계없는 1월의 한중일 것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한중에는 좋은 민물장어, 맛난 민물장어가 있음에도 한여름처럼 민물장어를 먹으려는 욕구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민물장어가 이때 맛있다는 건 아는데 인간의 생리가 민물장어를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 나른함이 밀려오는 한여름 더위 속에서는 민물장어를 먹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민물장어 맛이 겨울만 못한데도 말이다. 아마 더위에 찌들어 목마른 육체가 민물장어를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복날에는 민물장어를 먹어야 한다는 오래된 통설도 한몫 거든다. 소고기를 먹고 싶은 욕구는 추운 겨울에 커지지만, 민물장어나 참치 등은 여름철에 생리적으로 당기는 듯 하다.
- 원래 도교 사람은 다시마 맛을 잘 모름. 다시마 우린 맛 역시 모름. 도쿄에서는 다시마를 거의 쓰지 않으므로 시장에서도 잘 보이지 않음. 미한하지만 도쿄사람은 입맛이 아주 엉성하다. 차분한 맛, 심심한 맛, 담담한 맛을 알기에는 입맛이 너무 거칠다. 그래서 도쿄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은 세속적이다. 예컨대 느끼한 맛, 기름기 많은 맛, 촌스러운 맛, 즉석에서 만든 맛, 차분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만든 맛,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데는 증거가 있다. 도쿄 토박이는 지금도 여전히 튀김을 좋아함. 또 달콤한 소스를 사용한 뱀장어 양념구이를 좋아함. 이것도 중간이상의 큰 꼬치를 좋아한다. 또 큰 참치를 좋아한다. 그것도 기름기가 많은 토로를 좋아함. 이처럼 참치, 튀김, 민물장어 양념구이 같은 음식들은 원래 술안주지만 술과 조화가 좋지 않은 요리들이다. 그럼에도 도쿄 사람들은 이런 음식을 즐기면서 술을 마신다. 또 소고기 스키야키도 좋아함. 어느 것도 다 잽싸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들뿐이다. 여자도 아이도 어른도 다 이런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음식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일상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도쿄 사람들이다.
- 복어 간을 짓이겨 즙을 내고 간장을 섞은 것에도 복어 회를 찍어 먹으며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아마추어 음식이다. 복어 살코기 맛은 다른 재료나 음식, 소스로부터 기름기를 보완해야 할 맛이 아니다. 오히려 기름기가 적은 성질이 복어 살의 특별한 장점. 복어는 그 담백하고 약간 마비성이 있는 맛을 특징으로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식재료이므로 지방 그 자체인 간의 맛을 섞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 오히려 복어 자체의 맛이 훼손됨. 만약 이 방법을 대구에 적용해 대구 간을 짓이겨 즙을 내고 간장을 섞은 뒤 회에 찍어 먹는다면 그건 묘안이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할 일이다.
- 본래 어떤 어종이든 껍질과 살 사이 중간부분에 맛있는 층을 갖고 있음. 따라서 껍질을 벗겨내고 뼈를 발라내서는 그 생선이 가진 원래 맛이 반감됨. 종에 따라서는 그 맛이 완전히 없어지기도 함. 이는 본디 가다랑어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님. 도미의 아라니가 맛있는 이유도 사실 껍질과 뼈를 함께 끓였기 때문이다.
- 참치 달인들이 예상외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무즙이다. 고추냉이에 대해서는 색, 맵기, 달기, 찰기 등을 까다롭게 이야기하면서, 무즙에는 불만을 갖지 않는다. 그렇지만 참치와 튀김은 무즙의 좋고 나쁨에 따라 풍미에 꽤 큰 영향을 준다. 튀김 같은 경우, 밭에서 막 뽑은 무를 간 무즙이 있으면 기름이 좀 나쁜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 방금 뽑은 무가 매운맛이 적당하면, 참치 또한 고추냉이가 필요없을 정도. 무가 나쁘니까 고추냉이가 활약하게 된 건데, 원래 참치와 고추냉이는 그리 좋은 조합이 아님. 무즙만 좋으면 고추냉이는 없어도 된다. 물론 생선 초밥에는 고추냉이가 필요. 초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치 초밥에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매운 고추냉이를 곁들이는 걸 선호한다. 참치 살 중에서도 양갱 색깔의 붉은 살은 지방이 적으므로 고추냉이를 초밥에 곁들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방이 많은 참치뱃살(도로)는 고추냉이의 매운 맛이 지방으로 인해 날아기기 때문에 고추냉이를 넣어도 전혀 맵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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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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