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OECD는 소득 분포도 스펙트럼의 최하위에 놓인 사람들의 사회적 이동성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그 스펙트럼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특권을 축적하고 있는 동시에 자신들이 확보한 우위를 점차 효과적으로 자녀들에게 넘겨줄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동성정체>와 <부의 축적이라는 이중 역학이 작용한다는 것은 곧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 상향 이동할 가능성은 낮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 미끄러져 내려갈 가능성은 그보다 더욱 낮다는 뜻이다. 이는 상향적 사회적 이동은 어느 시대나 늘 제한되어 있긴 했지만 직업구조의 변화를 통해, 특히 교육의 확대를 통해 관리직과 전문직 종사자가 늘어나면서 계층 이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20세기 중반 전후post-war 시대와는 명확히 구분 되는 중대한 변화가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 하지만 사회적 이동이 힘들어지는 현상을 <고장난 사회 엘리베이터 broken social elevator)에 비유한 OECD의 묘사에는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20세기 중반의 사회가 갖고있었던 특성을 되찾기만 하면 지금의 문제도 손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이는 결국 고장난 엘리 베이터를 고치기만 하면 계층 이동도 활발해질 거라는 뜻 이다. OECD는 이런 식으로 고용에 기반한 소득 규모에 따른 이동성을 기준 삼아 사회적 이동 모델을 제시한다.
OECD가 제시한 모델은 우리가 이 책에서 의문을 제기한 고용 중심 모델과 관련이 있다. 이동성에만 집중하는 방 식이라는 한계점에 굳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직업을 중심으로 불평등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지금의 문제를 분석하려 들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물론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을 만들어 내기도 힘들다.
- 불로소득자의 역할은 사회적 삶 전반에 상당히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자산 소유가 생계를 위한 노동보다 더 돈이 될 때가 많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계급과 불평등을 이런 관점에서 새롭게 이 해해 보려는 노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동산 인플레이션 현상에 대해 수많은 비판이 쏟아지 고 있긴 하지만 계급, 불평등, 계층화에 대해 좀 더 체계 적으로 접근할 때는 일과 직업〉을 기반으로 하는 과거의 모델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어쩌면 이 문제에 대한 인지 부조화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연구자들을 비롯해 도시에 거주하 는 모든 사람은 부동산 가격 논리>가 시장 안에 있는 사 람과 시장 밖에 있는 사람 모두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엄 청난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 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또한 잘 알 고 있다. 그런데도 계급과 불평등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 하면 실상을 잘 이해하는 바로 그 사람들마저도 실제 현 실과는 거리가 먼 〈고용 중심〉 모델에 빠져든다. 이제 불평등을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고용 관계가 아니라 임금과 인플레이션보다 가치 상승 속도가 빠른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물론 고용은 대출 상 환 능력을 비롯한 자산 매입 역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에 여전히 중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용은 이제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일을 통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생필품 확보를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임금 그 자체만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모습에 걸맞은 삶의 방식을 갖추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자산 가치 상승은 개별적인 정책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여러 제도가 뒤엉켜서 만들어낸 현상이다. 여러 제도가 더해져 자산의 가치 상승을 유발한 탓에 자산 소유가 고용보다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 어쨌든 일부 밀레니얼 세대는 부동산 인플레이션 을 발판삼아 부모가 쌓아 올린 부를 통해 자산 인플레이션 역학이 작동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부의 대물림과 상속이 인생의 기회를 결정짓는 데 점점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을 거의 안정적이고 대체로 무사평온한 방식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주로 남성들 사이에서 부동산이 이동했던 이전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제 더이상 단순히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상속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산 경제의 투기적 논리 속에 투입되어야 할 자금을 전략적으로 적당한 시기에 양도 하는 방식이 점차 증 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불평등 논리는 금융화) 라는 초자본주의적 논리와 상속>이라는 봉건적 논리를 뒤섞어 사회 계급 구조 전체를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놓았 다. 결국 세대 문제에 현대 금융 제도의 투기적 논리가 더해지면서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삶의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 밀레니얼 세대는 1965년에서 1980년 사이에 태어난 직전 세대인 X세대에 비해 소득이 적다.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 단계적으로 사라지고, 공공 주택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인적 자원, 그 중에서도 특히 교육에 대한 투자가 더이상 예전 같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제도적 상황 속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과거라면 주택 소유를 보장해 주었던 부류의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조차 주택 가격은 끝없이 상승하고 임금은 정체된 탓에 밀레니얼 세대는 임금만으로는 주택 시장에 진입하기에 충분한 모기지 신용을 받을 수가 없 다. 민간 주택 임차료 역시 상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임차 시장에서조차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대도시 도심지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 결과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이런 현상은 자산 경제가 세대 간 분열을 초래했다는 주장에 상당한 신빙성을 부여 한다. 이처럼 세대 문제로 해석하는 관점은 문화 연구와 사회 연구에서 나타나는 21세기의 독특한 시대정신을 포착하려는 시도와 유사하다. 이런 문화적 진단에는 미래의 종말 혹은 취소를 선언하는 내용과 함께 희망 가득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더이상 현대 자본주의적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 이와 같은 평가는 현세대의 미래가 이전 세대에 의해 도난당했고 세대 간의 계약이 깨졌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미국에서의 학자금 대출에 관한 연구에서 이런 식의 연결고리가 특히 위력을 발휘한다. 그 연구들은 대개 학자금 대출로 인해 생겨난 현대적인 형태의 고용 계약서 와 고용의 취약화가 인적자본이라는 신자유주의 개념을 비웃는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밀레니얼 세대는 자산 구축 대열 에 합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에 생겨난 돌이킬 수 없는 부채와 매몰 투자sunk investments에 발목이 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니스트이자 『도난당한 10년 The Theft of a Decade」의 저자인 조셉 스턴버그는 미국 사례를 언급하며, 교육에 투자하고도 수익을 얻지 못하는 이 같은 현상을<인적 자본에 대한 형벌 human capital punishment>이라고 칭했다.
-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파는 것은 단순히 금전거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적 자본을 이용해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이라는 개념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교육은 이익을 창출하고 자본이득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계발하기 위해 미래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자기계발에 든 비용을 변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이 정체되고 있다는 것은 곧 인적 자본의 계발을 위해 짊어져야 하는 빚은 변함이 없는데도 인적자본이라는 자산 자체는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일종의 깡통 주택 underwater mortgage과 같은 현상, 즉 돈을 빌려 매입한 자산의 가치보다 큰 금액의 변제 불가능한 채무를 갚아야 하는 현상이 인적 자본 자산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자산 경제와 상품 경제를 나눌 수 있다는 주장에는 이처럼 우리 모두가 자산의 가치 상승 및 하락, 인플레이션 및 디플레이션의 논리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주택 소유를 통해서 잠재적이거나 실질적인 자본이득을 얻고 있는 가운데 상속 메커니즘을 통해 성인 자녀들에게 부를 양도할 준비가 되어 있 는 노령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사실 현대의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상속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큰 편이다. 젊은 성인들이 주택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돈을 주거나 빌려주려는 부모의 능력과 의지에 점차 의존하게 됨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구매를 위해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는 경우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역사적으로 상속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부가 이동하는 중요한 메커니즘 역할을 해왔으며, 특히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부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 되었다. 하지만 자산 보유가 인생의 기회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최상위 1%를 넘어서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산을 보유하는 자산 경제 사회에서는 상속과 증여의 중요성이 새롭게 커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부의 이전이 전반적인 사회 계층 화를 초래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증여를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자녀에게 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부의 대물림은 점차 사회경제 스펙트럼 전반에서 부를 기반으로 하는 불평등과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계급 지위를 재생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변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부모로부터 현금을 증여받아 부동산 매입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가, 혹은 기존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 또 다른 부동산을 매입할 의향이 있는 부모를 두었는가가 청년층의 부동산 시장 진입 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자산의 가치 상승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상속, 특히 주 거용 부동산 유증은 독특한 투기성을 띠게 되었다. 상속 은 더이상 누군가의 사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수동적 인 양도가 아니다. 이제 상속은 자산 경제 내에서 자녀의 위치를 결정짓는 일련의 전략적 결정이 되어버렸다. 생전증여는 본질적으로 자산 경제에서 활용해야 할 자산을 미리 상속하는 것으로, 자녀의 자산 소유의 기반이 된다. 자산을 물려받은 사람은 그저 일회성으로 일시불의 돈을 양 도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산의 소유를 통해 부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 이와 같은 부의 대물림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세대 간 계약, 즉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미래 세대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계약이 단순히 해체 상태에 놓여 있다기보다 는 오히려 자산 경제 내에서 더 잘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언뜻 자산 경제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면 세대 간 계약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부의 대물림, 즉 현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부가 전달되는 현상을 통해 세대 간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게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대 간 계약은 더이상 재분배를 위한 국가의 양도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하지 않고, 새로운 자극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재형성된 가족을 통해서 작동한다. 사회적 재정 지원이 줄어들고, 임금은 정체되고, 집값은 폭등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이제 가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하는 핵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산 경제는 그만의 독특한 논리를 갖고 있으며, 그 논리가 사회 구조를 특정한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이 장에서는 이런 변화에 전면적인 계급 구조 조정, 가계 역학 재설정, 인생의 경제적 재편성이 포함되어 있는 현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자산이 점차 계급 지위를 결정하게 되면서 자산의 가치 상승과 가치 하락의 역학 및 유동성 확보를 위한 투쟁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 자산 중심 생애가 등장하게 되었다.
- 대부분의 서방 국가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물가 상승률이 낮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인플레이션이 다른 곳에서는 신자유주의 자산 경제의 탄생에 핵심적인 기여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 우리는 자산 인플레이션을 인플레이션으로 여기기보다. 특정한 역사적 국면과 광범위한 환경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케인스 시대에서 신자유주의 시 대로의 변화를 가격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자산 인플 레이션 시대>로의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3장 에서 살펴봤듯이, 1970년대에는 가격 인플레이션이 임금 상승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 임금 상승률이 높아지자 고용주들이 제품의 가격을 높여 임금 상승에서 비롯된 비용 증가를 상쇄하려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금 상승은 가격 인플레이션의 원인이기도 했고,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자 노조가 더욱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금 상승은 가격 인플레이션의 결과였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당시에는 가격 인플레이션이 점차 자산의 가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책 부문 에서 나타난 신자유주의 움직임이 이런 역학을 뒤바꾸어 놓았다.
- 주택을 임차하던 사람이 주택을 구매하려면 계약금을 내야 하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밖에 없다. 최고 상위소득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오직 임금을 통해서만 매매 대금으로 쓸 자금을 모으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주택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많은 금액을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곧 부의 대물림이 중요한 역할을하게 되었으며, 이는 세대 문제가 계급 논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부의 대물림은 이제 더이상 엄청난 부를 물려주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을지라도 물려받은 부동산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부동산 시장에 어떻게 해서라도 진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부의 대물림이 필요해졌다. 계약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 들은 점점 자신들이 생성해낸 금융 흐름과 소득 흐름을 다른 사람의 자산 축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주택 소유주가 부동산을 소유하기 위해 빌린 대출금을 장기 임차인이 갚아나가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 마르크스는 특정한 종류의 착취, 특정한 불평등의 원천, 특정한 종류의 사회, 즉 임금 노동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상품을 특히 강조했다. 물론 현대 사회에도 이런 식의 착취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더이상 임금 노동 착취를 불 평등의 원동력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불평등의 생성 논리가 좀 더 위상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착취 와 악용을 통해서 불평등 생성 논리가 작용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시간의 영향을 받는 부동산 인플레 이션과 디플레이션에 따라 불평등 생성 논리가 작용하는 경우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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