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는 그대로는 장기간 보존 불가. 수확시기도 한정돼 있어 1년내내 수확할 수도 없음. 오랜 시간 감자를 주식으로 삼아온 인디오들은 감자를 장기간 보존할 방법을 고안해냄. 스페인 사람과 인디오의 혼혈인으로 페루 정복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가르실라소 데 라베가는 이 지역 사람들이 감자를 어떻게 보관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땅에 짚을 깔고 그 위에 감자를 놓는다. 이 지역의 밤은 거의 1년내내 몸이 얼어붙을 만큼 추워 감자가 금세 어는데 언 감자를 그냥 밖에 둔다. 이렇게 언 감자는 마치 요리를 한 것처럼 부드러워진다. 그것을 짚으로 싸서 조심스레 밟으면 감자속 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온다. 수분이 모두 빠지면 그것을 다시 햇볕에 바짝 말린다. 그러면 감자도 장기간 보존할 수 있다. 이것을 추뇨라고 한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냉동건조 보존법. 냉동건조라고 하면 근대적 느낌이 들고, 인스턴트 라면에 들어 있는 건조 야채 같은 것으리 떠오르지만, 일본에서도 옛날부터 한천,언두부, 동결 곤약 등을 이런 방법으로 만들었음. 이런 두부나 곤약은 냉동건조시키는 과정에 바람이 들면서 구멍이 생기므로 음식을 만들 때 국물이 잘 스며들어 생두부나 곤약과는 다른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음. 인트턴트 라면에 들어 있는 동결건조 감자는 그런대로 원래 맛에 가까운데, 이는 좋은 조건에서 단시간에 만들었기 때문이고, 두부와 언 두부가 다르듯이 추뇨는 가공전 감자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현지 케추아어 속담에 '추뇨 없는 수프는 사랑 없는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금도 추뇨는 안데스 고지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식. 먹는 방법도 졸이거나, 수프의 건더기로 넣는 것뿐만 아니라 쪄서 치즈를 뿌리고 돌절구에 찧어 가루로 만들어 고기요리를 할 때 넣는 등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다. 추뇨를 처음 먹어본 유럽인들 중에는 맛이나 씹는 느낌이 크로크같다고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리를 잘해서 그랬는지 맛있다는 사람도 있음. 어쨋든 스페인으로 돌아온 정복자들은 남미에서 접한 이 신기한 작물을 항해할 때 필요한 보존식품으로 여겨 약탈품과 함께 배에 실었다.
- 벨기에에서는 프라이드 포테이토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프리츠,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프리텐이라고 함. 모두 튀김이라는 의미로 메인요리에 곁들여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간식으로, 또는 주식대용으로 사랑받음. 프리츠를 국민음식이라고 단정하는데 저항을 느끼는 벨기에 사람이라도 푸짐한 홍합와인찜과 프리츠가 같이 나오는 요리라면 벨기에가 자부하는 요리라고 자신있게 말할 것이다. 벨기에에는 어느 동네든 반드시 프라이드 포테이토 전문점이 있고, 일반 가정에서는 시스템 키친에 프라이드 포테이토 튀김기가 포함되어 있음. 감자를 자르는 것 기계가 아닌 손으로 해야 한다는 등, 튀김온도를 처음에는 160도에서 10분, 두번째는 몇도에서 몇분이라는 둥, 벨기에 사람 나름의 철칙이 있다. 나아가 프라이드 포테이토에 곁들이는 소스도 마요네즈, 타르타르 소스, 머스터드 소스 등 여러가지 중에서 선택한다. 프라이드 포테이토는 홀랜드, 즉 지금의 네덜란드에서 탄생하여 원정지에서 이를 본 나폴레용이 프랑스로 가져갔고, 이윽고 미국에 전해졌다는 설이 있음. 하지만 현재는 벨기에세서 생선튀김 대용식으로 프라이드 포테이토가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 18세기말 무렵, 어느 여행자가 남긴 기록에는 가잉 얼어 물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자 생산을 튀기듯 감자를 썰어 튀겨먹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프렌치 프라이라고 하는 이유는 정확하지 않음. 프랑스를 경유해서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일수도 있고, 미국에서 프랑스어를 하는 벨기에계 이민자를 프랑스인으로 착각했을수도 있다.
- 18세기 아일랜드 농민은 1년 중 10개월을 감자와 우유로, 남은 2개월은 감자와 소금으로  살아갔다고 한다. 하루에 먹는 감자는 어른 한명당 10~14파운드로, 6킬로그램 정도. 이처럼 식량을 한가지 식품에만 의지하면, 만에 하나 그 식품이 손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당시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1845년 아일랜드 감자밭에 입고병이라는 전염병이 엄습. 그 뒤 수년간에 걸친 대기근은 기근에 익숙하다는 아일랜드 농민조차 절망적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개략적으로 100만명이 기근에 희생되었고, 100만명이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들이 간 속은 잉글랜드 외에 미국, 캐나다, 멀리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였다. 이 공전의 대기근에도 불구하고 본국인 영국 정부의 대책은 거의 없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일랜드는 예부터 영국의 속국으로 취급받아 자주 침략을 당해왔다. 특히 16세기 영국의 왕 헨리 8세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결별한 이래 영국 성공회는 아일랜드에 깊이 뿌리내린 카톨릭 교도를 거듭 탄압. 켈트족의 피를 이어받고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과 이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앵글로 색슨계 프로테스탄트 영국인의 대립적 구조는 수백년에 걸쳐 고착했던 것이다. 대기근에 대한 영국 정부의 차가운 대응은 두고두고 아일랜드인에게 깊은 원한을 샀고, 결과적으로 아일랜드가 독립하는 계기가 됨. 1922년 아일랜드가 일단 독립한 뒤에도 영국의 일부로 남겨진 북붜 얼스터에서 최근까지 테러행위를 계속해온 아일랜드공화국군은 대기근과 그뒤 계속된 민족의 비극을 배경으로 탄생한 무장혁명조직이다. 이런 북아일랜드 문제의 원인은 감자만을 단일경작했던 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대기근을 계기로 세계사의 흐름이 변한 사례가 있다. 현재 미국에선느 아일랜드계 주민의 총 인구의 20%를 차지하는데, 그들 대부분이 감자기근을 피해 건너온 이주민의 후손. 당시 아일랜드 이주민은 시끄럽고 거친 술주정뱅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했지만 이윽고 그 안에서도 성공한 사람이 나온다. 아일랜드에서 대규모로 탈출한 농민들 중에 패트릭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패트릭은 미국으로 향하는 배안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해 보스턴에 정착. 그는 비록 빈곤과 이민자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대신 그의 손자는 하버드대를 졸업하여 정재계에서 이름을 날림. 그래도 여전히 뒤에서는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지만,그의 차남 즉 패트릭으로부터 4대째가 되는 손자는 훗날 미합중국의 35대 대통령이 된다. 그가 바로 존 에프 케네디다. 케네디의 증조부는 감자기근때문에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농민이었다.
- 아마도 유럽에서 처음으로 토마토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인 나폴리에서는 밀가루 반죽을 제면기에 걸어 얇고 길게 뽑나낸 가느다란 파스타, 즉 스파게티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 지금 스파게티를 이탈리아 국민은식으로 일컫는데, 경질의 밀인 세몰리나를 원료로 만들어 씹는 맛이 있는 건조 파스타는 원래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남부 음식이었다. 그것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진데는 파스타와 토마토의 행복한 만남이 매우 큰 영향을 끼침. 파스타에 토마토 소스를 섞은 요리 나폴레티나가 언제부터 일반적이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17~18세기라고 추정하는데, 19세기 말 나폴리의 풍속을 그린 그림을 보면 마을 사람들이 거리에서 고개를 쳐들고 손을 국수를 집어 입안 가득히 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 무렵 스파게티는 포장마차에서 선채로 간편하게 먹는, 말하자면 다치구이소바와 같은 것이었다. 지금처럼 파스타가 코스요리의 첫 음식으로 자리잡은 것은 의외로 20세기 중반정도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파스타 이상으로 토마토와 관계가 깊은 음식이 바로 피자인데, 이것 역시 기원은 나폴리다. 이탈리아인이 잘 먹는 마르게리타 피자는 토마토 소스에 모차렐라가는 하얀 치즈를 올린 심플한 피자다. 갓 구운 피자 위에 생 바질 잎을 올리면 바로 이탈리아 국기의 3색과 같은 배색이 된다. 마르게리타 피자는 1889년 이탈리아 국왕의 왕비 마르게리타를 위해 나폴리 요리사가 고안해 낸 것. 마르게리타 국기의 3색을 배합한 소박한 서민요리를 매우 흡족해 하며 자신의 이름을 쓸수 있게 했다고 한다.
- 타바스코는 미국,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팔리고 있지만, 정작 지명을 따온 멕시코에서는 타바스코 소스병을 볼 수 없다. 고추를 이용한지 수천년에 달하는 역사를 가진 멕시코인들은 시장에 나와 있는 것만 해도 100종이 넘는다는 수많은 고추 중에서 요리나 기호에 따라 몇가지를 선택해서 매운 정도나 향이 어울리는 살사 소스를 그때그대 만들어 쓰기 대문. 타코스나 로스트 치킨에 반드시 곁들여 나오는 살사소스에는 다진 양파나 토마토, 라임즙, 코리앤더 잎이 들어가는데, 아무리 싸구려 식당의 소스라도 병에 들어 있는 고추소스와는 전혀 다른 신선한 맛을 지님
- 마야 사람들은 거의 1년 내내 건조시켜 저장한 옥수수를 삶아서 껍질을 벗긴 뒤에 으깨어 빚어 먹었다. 지금도 옥수수를 그대로 삶아 먹기보다는 가루를 내어 반죽한 것을 얇고 넓저갛게 구운 토르티야나, 반죽에 재료를 넣고 치마키처럼 옥수수 껍질이나 바나나 잎으로 싸서 찐 타말레스로 만들어 먹는다. 옥수수는 콜럼버스가 유럽에 전한 것. 옥수수는 한랭지에서도 잘 자라고,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도 강하며, 생육이 빠르다는 것 등 여러 이점이 있음. 그런데 유럽에서는 좀처럼 널리 재배되지 않안따. 옥수수 가루에는 밀가루처럼 글루텐이 없어 부드럽고 푹신한 빵을 만들 수 없기 때문. 또 낯선 곡물은 이교도들이 먹는 음식으로 그리스도교도에게는 적당하지 않다고 여긴것도 보급이 차단된 이유였음. 얼마전만 해도 유럽 사람에게 옥수수는 가축의 사료에 지나지 않았따. 그래도 이탈리아에서는 옥수수가 비교적 빨리 식용되었따. 단지 멕시코의 토르티야처럼 빵 모양으로 굽는 것이 아니고, 끓는 가루를 부어 걸쭉하게 될 때까지 저어 떡과 비슷한 폴렌타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먹음. 일본의 소바가키 같은 음식인데, 매시드 포테이토처럼 고기요리에 곁들이거나 조금씩 떼어 토마토 소스를 곁들여 먹고, 식어서 굳은 것을 다시 오븐에 넣어 굽기도 한다. 옥수수 폴렌타는 북이탈리아의 명물요리인데,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보리죽까지 거슬러 올라감. 코르시카 섬에서는 밤가루,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든 폴렌타로 먹는다. 루마니아의 마마릴기,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프릿카도 소바가키 모양의 옥수수 요리임. 아프리카에서도 옥수수를 뜨거운 물로 반죽한 우갈리를 주식으로 함. 우갈리도 그 요리의 기본은 수수와 같은 잡곡으로 만든 것. 지금은 밀가루나 남미가 원산인 카사바를 이용하는 지역도 있지만, 케냐에서는 맛 좋은 옥수수로 만든 우갈리가 사랑받음.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옥수수를 가리키는 영단어 콘은 원래 곡식 일반, 혹은 그 땅에서 재배하는 주요 곡식을 말함. 즉, 영국에서 콘은 밀이고, 스코틀랜드에서는 귀리가 된다. 나아가 독일에서 콘은 호밀이다.
- 캐서린 드 메디치가 즐겼다고 하는 아티초크를 최음제로 여겼다고 했는데, 양이 아주 적으면서 값비싸고, 신기한 물건에 대해 특별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본성임. 예부터 사과같은 과일이나 꿀, 그리고 동양에서 들여온 여러종류의 향신료, 타아가 트뤼프와 아스파라거스 같은 값비싼 채소까지 사치스런 음식에는 한결같은 에로틱한 이미지가 따라다님. 미약을 몸을 튼튼하게 지켜주는 약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이에 도움이 될 만한 음식은 꽤 있을 것임. 그러나 사람들이 화제로 삼은 것은 좀더 노골적인 최음효과였다. 예를 들면 트뤼프에 관해서는 19세기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도 정설을 확인하고자 여러 방면으로 조사한 끝에 다음과 같이 조심스런 결론을 내림 '트뤼프가 결코 뚜렷한 효과를 내는 최음제는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인들을 한층 순종적으로 만들고 남성들을 좀더 상냥하게 만든다' 숫돼지의 성 페로몬과 같은 종류의 화학물질을 포함한 트뤼프가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나, 이 정설은 고대에도 알려져 있었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검은색을 불길한 색으로 여겼지만,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다시 귀하게 대접한 모양이다. 18세기에 루이 15세의 정부 퐁파두르 부인이 왕을 위해 고안한 요리에 트뤼프가 자주 쓰인것도 왕의 정열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을까...
- 포테이토 칩은 기묘한 계기로 생겨났다. 19세기 중반, 뉴욕주 사라토가 스프링스에 있는 식당 문 레이크 로지의 요리사였던 조지 크럼은 어느날 한 손님의 불평에 심기가 불편해 있었다. 프렌치프라이가 너무 두꺼워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크럼은 감자를 평상시보다 더 얇게 썰어 튀겼지만, 그래도 손님은 만족하지 않음. 화가난 크럼은 화풀이로 감자를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포크로 찌를 수 없을만큼 바삭하게 튀겨 손님에게 내놓았다. 예상과는 반대로 그 손님은 매우 기뻐하며 접시를 비움. 크럼이 노릇하게 구운 얇은 프라이드 포테이토는 순식간에 큰 인기를 끌었고, 사라토가 칩이라는 이름으로 문 레이크 로지의 스페셜 메뉴가 됨. 그리고 20세기 전반에 감자껍질을 벗기는 기계가 등장하여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포테이토 칩은 전국으로 확산됨
- 포테이토 칩과 닮은 프랑스 폼수플레 역시 우연한 계기로 탄생. 1837년 파리와 생제르맹앙레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던 날, 철도회사는 손님을 레스토랑으로 초대. 그런데 기차가 늦게 도착해 요리사가 준비한 감자 프라이가 식어버림. 일행이 도착한 다음에 식은 감자를 다시 기름에 넣고 데우자 프라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 터키는 동서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한 덕에 다양한 문화요소를 받아들여 독특한 식문화를 형성. 터키 요리라고 하면 보통 양고기 꼬치구이 시시케밥이나,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터키인들이 경영하는 노점에서 볼 수 있는 도네르케밥이 유명한데, 꼬치구이처럼 단순한 음식만이 터키요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음. 궁중요리의 흐름을 이어받아 온갖 정성을 들인 요리나 수많은 종류의 과자는 프랑스 요리나 중국요리와 비교할만 하다. 간 고기를 채소에 채워 넣은 요리가 많은 것이 터키요리의 특징. 고기를 피망이나 토마토, 가지에 채워 넣거나, 양배추나 포도잎에 싼 것을 모두 돌마라고 하는데 그 종류가 매우 많음. 필라프라 주로 중동에서 동쪽으로 전해진 것에 비해, 돌마나 사르마라고 부르는, 속을 채운 요리는 아랍의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그리스나 발칸반도의 동유럽 여러나라에 전해졌다. 사실 롤 캐비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터키에 있다. 도한 간 고기를 가지속에 넣지 않고, 가지와 고기를 번갈아 몇층으로 겹겹이 쌓아 굽는 무사카는 그리스 요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것도 터키에서 발칸반도에 걸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요리. 마찬가지로 고기를 갈아서 경단처럼 빚어 구운 요리도 중동, 그리스, 동유럽에 많음.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는 남은 자투리로 고기를 다져서 동물의 장에 채워 넣는 요리가 보통이지만 독일의 영향이 강한 곳을 제외한 동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의외로 이런 음식을 볼 수 없음. 대신 미트볼 같은 요리는 각지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원래는 터키의 쾨프테라는 간 고기 요리의 총칭에서 유래. 원래 이슬람권인 터키에서는 대개 양고기를 사용하는데, 발칸의 여러나라에서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도 사용. 터키가 발상지인 음식은 그밖에도 많이 있는데 또 하나 의외의 음식이 있다. 바로 불라리아 명물인 요구르트. 이는 터키계 유목민이 만들었다고 전하는데 명칭도 터키어 요우르트에서 유래. 본고장인 터키에서는 샐러드나 수프 등 다양한 요리에 쓰는데, 그리스나 불가리아 등지로 이와 같은 요리가 전해짐. 요구르트는 중앙아시아와 인도 등 동방으로도 전파됨.
- 밀가루 루로 끈기를 내는 일본식 카레가 영국의 인도식 스튜를 응용한 것이라는 사실은 상식. 인도 사람들은 일본의 카레라이스를 먹어도 자기나라의 요리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인도에는 카레라는 요리가 없다. 16~17세기 인도의 서해안을 식민지로 한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이 현지에서 항상 사용하는 향신료를 많이 넎은 수프나 끓여 졸인 국물요리를 커리라고 기록한 것이 카레의 영어 어원임.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이 타밀어라든지, 말라바르어로 카레라고 하는 커리는 인도나 인도 식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국물요리나 졸인 요리를 총칭한다 해도 좋음. 들어가는 재료는 채소, 콩, 육류, 어패류 등으로 다양한데, 사용하는 향신료도 다양함. 매운 향신료를 의미하는 믹스 스파이스인 가람마살라가 유명한데, 인도의 남부에서는 가루로 된 것보다는 그때그때 갈아서 쓰는 경우가 많고, 가람마살라가 만능의 카레가루는 아니다. 이런 스파이시한 인도요리가 대영제국을 통해 유럽에 소개되고, 프랑스에서도 이국적 요리로 변형되었는데, 18세기에 영국의 크로스 앤 블랙웨사가 향신료를 조합한 카레가루를 상품화하면서 흔히 말하는 카레맛이 본격적으로 확산됨. 20세기 초,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에드워드 7세식이라는 요리에 카레맛이 나는 것은 당시 영국왕이 인도황제도 겸했기 때문. 일본의 카레라이스는 영국을 경유해 들어온 것이지만, 남아공 인도계 이민들이 직접 카레맛의 요리를 가져간 예도 있음. 중미의 카리브해 지역에서도 비교적 인도계 이민이 많은 나라에서는 카레맛이 널리 퍼졌다. 예부터 중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고추에 구대륙이 원산지인 향신료가 잘 어울린 것이 이른바 카레가루가 되어 돌아온 셈
- 현재 치즈왕국이라고 하면 단연 프랑스이고, 그 다음으로 스위스나 이탈리아를 들 수 있는데, 발상지는 서아시아임.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앙아시아, 몽골의 유목민이 치즈를 발명했다고도 하지만, 지금도 몽골에서 사랑받는 이 유제품은 가열한다든지 식초를 첨가한다든지 해서 우유를 응고시킨 음식으로, 효소로 우유를 응고시켜 발효, 숙성시키는 일반적 유럽치즈와는 제법이 다르다. 아라비아에는 유명한 치즈탄생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상인이 양의 위를 말려 만든 물통에 우유를 넣고 사막을 여행하다가, 막상 마시려고 보니 안에서 나온 건 우유가 아니라 투명한 물과 흰색 덩어리였는데, 그 덩어리를 먹어보니 의외로 매우 맛있었다는 이야기다. 양의 위에는 레닌이라는 효소가 들어 있어 이것이 우유를 응고시키는데, 투명한 물은 훼이이고, 흰색 덩어리는 치즈의 원료가 되는 커드이다. 치즈는 이미 기원전 4000년부터 3000년경에 만들어진 것 같다. 사막의 상인이 치지를 발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치즈 만들기의 원점은 정말로 동물의 위 속에서 우연히 일어난 화학변화였는지도 모른다
- 이누잇의 식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생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상식. 실제로 그들의 전통적 식생활은 사냥해 잡은 동물을 날로 먹는 비율이 매우 높음. 이것은 열을 가하면 귀중한 비타민C를 잃어버리게 되므로 채소나 과일을 먹기 어려운 환경에서 나온 습관. 사실 북극 탐험가들 대부분, 그리고 1948년 프랭클린 탐험대 129명이 전멸한 가장 큰 원인은 생고기를 먹지 않아 비타민C가 부족해져 생긴 괴혈병이 만연했기 때문. 생고기를 먹는 것은 야만스런 행위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 영어의 프루트는 즐거움을 뜻하는 fructus에서 나온 말로 달콤한 향과 맛을 즐기는 먹을거리라는 의미. 이렇게 페르시아 멜론은 로마로 건너가 페르시쿰으로 불림. 로마제국의 확대와 함께 지금의 프랑슬 전해져 페슈, 그 다음 영국으로 건너가 피치가 됐다. 일상 회화 중에서 피치는 멋지다, 훌륭하다, 멋있는 여자를 표현할 때 쓰는데, 이것이 원래는 페르시아였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미국사람들은 현재의 이란에 대해 무슨 일이 있어도 멋진 나라라고 말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 중국에서는 전한 무렵부터 서아시아로부터 실크로드를 경유하여 맷돌과 함께 제분법이 전해짐. 처음에는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는데, 후한 무렵에는 가늘고 긴 끈상태, 즉 면국수가 등장. 대략 2000년 전의 일이다. 호식이라고 한 밀가루 요리는 실크로드의 기점인 장안을 중심으로 당나라 시대에 발전하여 송나라 시대에는 중국 전역에 보급됨. 당초 서쪽으로부터 중국에 전해진 것은 가마에 구운 넓적한 발효빵과 같은 종류였을 것이다. 그것이 중국에서는 언젠가부터 찐빵 형태의 만두로 변화. 밀가루 생지를 가마에서 구운 빵 계통의 식품이 왜 중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빵의 분포는 굽는 가마, 영어로 말하면 오븐의 분포와 일치하는데, 중국인은 신석기 시대부터 증기로 찌는, 서양에는 없는 독특한 가열법을 발전시켜 왔다. 빵을 굽기 위해 가마를 설치하는 것보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찜통에서 빵 생지를 쪄서 만두로 만드는 방법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름. 나아가 이 조리법은 바오쯔나 국수 등 중국의 독자적 밀가루 요리로 대단히 많이 발전. 일본어로 면이라고 하면 당연히 가늘고 긴 것으로 생각하고, 밀가루로 만드는 우동이나 소면, 메밀국수가지 합쳐 면류라고 한다. 하지만 원래 면은 그 형태보다는 원재료가 밀가루인 것이 중요. 중국에서 면이라면 기본적으로 밀가루를 가리키고, 밀가루로 만든 식품은 모두 병이라고 총칭. 일본에서 말하는 가늘고 긴 면은 중국에서 보통 몐타오라고 함.
- 중국의 면 중에는 끓는 물에 밀가루 반죽을 칼로 잘라 던져 넣는 산시성 명물인 다오샤오몐과 같은 특이한 종류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늘고 긴 면은 일반적으로 가공법을 기준으로 하여 크게 세종류로 나뉨. 먼저 긴 막대기 모양의 반죽을 잡아 당긴 다음, 계속하여 둘로 접기를 반복하는 수타식. 한가닥을 두가닥으로, 두가닥을 네가닥으로 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수타면의 대표적인 것이 라멘이다. 납은 손으로 잡아당기는 것을 의미. 다른 설도 있지만 일본 라멘의 어원은 라멘으로 보고 있다. 한편 반죽을 얇게 펴서 칼로 가늘게 썰어 만드는 칼국수도 일본인에게는 수타식 우동 등으로 친숙함. 중국어로는 이 면을 치에몐이라고 하는데, 그 종류가 다양하다. 손으로 반복하여 접어 만드는 수타식 면과 칼로 가늘게 썬 칼국수가 중국에서 밀가루를 면으로 가공할 때 쓰는 일반적 방법인데, 스파게티는 양쪽 방식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 중국에서 가늘고 긴 면을 만드는 세번째 방법은 우무를 가공할 때 쓰는 방식과 같이 압출하는 방식. 압출식은 일본에서는 낯선 방식이지만, 녹두전분으로 만드는 당면이나 쌀가루로 만드는 비훈 등 압출식 면은 그 종류가 다양함. 한반도에서 냉면 등에 쓰는 아주 찰기가 강한 독특한 면도 메밀가루와 전분으로 만든 압출식 면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일대에서 보통의 밀가루가 아닌 다른 재료로 면을 만들 때 쓰는 방법인데, 이탈리아 마카로니나 스파게티는 원리를 본다면 압출식 면이다.
- 손님을 냉대한다는 의미로 식은 어깨고기라는 말이 있다. 중요한 손님에게 정성이 담긴 요리를 대접하는 것은 동서양, 시대를 불문하고 마찬가지다. 따뜻한 것은 따뜻할 때, 차가운 것은 차가울 때, 각각의 요리가 가장 맛있는 상태일때 대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 차가운 어깨고기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없는 요리를 상징. 반가운 손님이라도 너무 오래 머무르면 식은 어깨고기를 냄으로써 빨리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넌지시 비치는 것이다. 단, 현대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cold shpulder의 shoulder는 어깨고기가 아니라, 어깨를 쳐서 넘어뜨리다. 어깨를 돌린다 등에서 사용하는 어깨의 의미와 같은 느낌으로 푸대접이라는 뜻을 나타냄. 또한 하이픈이 들어간 cold-shoulder는 냉대하다는 동사가 되기도 함
- 구운지 오래된 빵은 딱딱해서 그대로 먹기 어려움. 이것을 어떻게든 먹기 쉽게 하기 위해 뜨거운 국물이나 와인 등의 액체를 부어 불렸는데, 이것을 속라틴어로 suppa라고 했다. 프랑스어의 수페, 영어의 수프, 독어의 주페, 이탈리아어의 주파, 스페인어의 소파의 어원이 suppa다. 잔다르크는 물을 탄 와인에 적신 빵을 좋아했다고 한다. 얼마 안가서 수프라는 말은 불린 빵보다 그 빵을 불리기 위한 국물을 가리키게 됨. 그런데 18세기 이후 프랑스의 부유층은 수프라는 말이 천박하다고 하여, 대신 포타주라는 말을 쓰기 시작. 이것은 항아리를 뜻하는 속라틴어 potus가 어원. 즉 프랑스어러 포라고 부르는 항아리, 혹은 그 끓인 내용물이 포타주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걸쭉한 수프를 포타주, 맑은 장국 같은 것을 콘소메라고 하는데, 이렇게 나누어 부르는 것은 영어의 용법에 따른 것이다. 본래 프랑스어의 포타주는 스튜처럼 졸인 국물부터 콘소메처럼 맑은 포타주까지를 포함한 국물의 총칭. 또한 고기나 채소의 정수만을 추출한 고급스런 콘소메는 완벽하게 하자는 의미의 동사 consommer의 파생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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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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