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공식

심리 2020. 12. 2. 20:55

- 스카우트 제도의 창시자 로버트 베이든 - 파월Robert Baden-Powell은 자신의 젊은 친구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거나 마음이 편치 않을 때 미소를 지으라고, 그러면 세상이 한결 더 친근하게 보일 거라고 조언 했다. 우리는 정말 얼굴 근육의 도움을 받아 행복의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폴 에크먼은 이 질문에 몰두해서 미소가 우리를 행복하 게 만든다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확인했다. 만일 감정이 육체의 상태 에 기인한다면, 우리는 반대로 육체에 자극을 주어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쾌활함에 이 르는 이 길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모든 미소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월급을 올려 달라고 부탁할 때 우리가 애써 짓는 친절한 표정은 불안을 숨기는 데는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도취감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좋은 느낌을 가장하는 것은 의식적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짜' 뒤센 미소는 단지 입 술 끝이 위로 당겨질 뿐 아니라 눈가 근육이 작은 주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움직임이 얼굴에서 동시에 일어날 때만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 이러한 움직임은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의 조정 능력을 벗어나서 일어나기 때문에 에크먼은 자신의 실험 대상자들에게 눈가 근육을 단련시키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 훈련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기쁨의 신호가 일방통행으로만 움직이지 않음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눈가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일수록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스스로도 잘 설명할 수 없었다. 에크먼은 여기서 만족 하지 않았다. 그는 추가로 실험 참가자들의 얼굴이 의식적으로 진짜 미소를 만들어 낼 때 그들의 뇌파가 어떻게 흐르는지 기록했다. 그 러자 뇌전도는 그가 완벽한 위트로 그들을 진짜 기분 좋게 만들었 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나타냈다. 미소는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나 '진짜 미소'만이 그렇다. 뇌는 그렇게 간단히 희롱당하는 상대는 아니다.
- 완전히 말라 버린 목구멍에 떨 어지는 한 모금의 물처럼 시원한 것이 또 있으랴. 자연은 '쾌락' 이라 는 느낌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쾌감과 불쾌감을 통한 이러한 조절 체계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유기체가 가장 탁월하게 작동할 수 있는 상태의 유지이다. 고통이 다른 감정들보다 강도 높게 작동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인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신호를 그 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몸을 위해 할 수 있는 모 든 일을 할 때까지, 때로는 그보다 더 오래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부정적인 느낌을 긍정적인 느낌보다 더 강 렬하게 체험한다. 그리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육체적 느낌은 더 쉽게 발생한다. 멜로드라마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 일은 쉽다. 그러나 웬만큼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면 피식 웃는 것조차 꽤나 어렵다. 인 간은 생물학적으로 부정적인 것에 끌리는 본질적 특성을 갖고 있다.
- 신경심리학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즐거운 사진과 슬픈 사진들을 보여 주었을 때, 참가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픈 사진에 더 강한 반응을 보인다. 격렬한 뇌파의 흐름이 이것을 말해 준다. 인간은 비극을 선호한다. 비극에 대한 이러한 반응 체계는 진화의 과정에서 그 업적을 인 정받았다. 공포라든가 슬픔 또는 분노를 통해 우리의 선조들은 덤불 속에서 조금이라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경우 아무리 탐스런 사냥감이 있더라도 다 버려두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 행복은 신이 선사하는 선물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이성을 가장 합당하게 사용하는 사람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결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긍정적인 육체적 느낌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고대 사상가들이 덕목'과 '인간 조건의 이 상적인 실현'을 이야기했다면, 이제 현대 과학은 “유기체의 이상적 인 상태”를 도달해야 할 목표로서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행복에 관한 고대 철학의 핵심 사상은 오늘날 신경생물학 관점에서 볼 때에도 그 유효성을 잃지 않고 있다. 좋은 감정은 운명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감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또 노력해야만 한다
- 종종 대뇌피질의 오른쪽과 왼쪽 부분은 서로 임무를 나누어 갖 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감정을 담당하는 반쪽과 이성을 담 당하는 반쪽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에선 앞 이마뇌의 오른쪽이, 즐거운 순간에는 앞이마뇌의 왼쪽이 더 활발하 게 작동한다. 행복한 상태와 두려운 상태의 뇌 사진을 비교해 볼 때 이러한 차이는 뇌의 바깥쪽 가장자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 은 마치 우리가 뇌의 반쪽은 행복을 위해, 다른 반쪽은 불행을 위해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뇌의 반쪽이 손상을 입게 되면 감정 세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뇌출혈로 인해 왼쪽 앞뇌가 손상된 환자들은 심각한 우울증 증상을 나타낸다. 분명 좋은 감정에 해당하는 구조들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오른쪽 앞뇌에 출혈이 있을 때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환자들은 계속 명랑한 행동을 보인다. 그와 함께 현실감각도 사라지지 않는다. 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리라.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세 상의 모습과 맞지 않는 모든 일들에 대해선 아예 눈을 감아 버린다. 그들은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조차 부정한다. 라마찬드란의 환자 중 한 사람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다즈 부인은 오른쪽 뇌에 출혈이 있은 후 몸 왼쪽 전체가 마비되었다. (뇌와 몸의 반쪽들은 서로 대각선으로 연결 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마비에 대해 전혀 알려고 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실제로 전혀 알지 못했다. 라마찬드란이 손바닥을 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물론이죠!”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다즈 부인은 건강한 오른쪽 손으로 허공을 치고 나서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지금 박수를 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과장되게 부풀려서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왼쪽 뇌를 진정시키고 그녀가 다시금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딛게 할 수 있는 힘이 그녀 뇌에는 없는 것이다.
- 쾌감과 고통은 영원한 적수이다. 앞이마뇌의 양편은 정신을 두고 끊임없는 투쟁을 벌인다. 왼쪽 반구는 두개골 아래 깊숙이 놓여 있 는 뇌 영역에 적당히 영향을 끼침으로써 좋은 감정에 힘을 실어 주 는 것으로 추측된다. 앞이마뇌에서 신경줄이 하나 나와 아미그달라 Amygdala 라고도 불리는 소뇌편도로 이어지고 있다. 간뇌에 놓여 있는 이 중심부는 실제로 편도(아몬드)처럼 생겼으며, 공포나 분노 또는 구 토를 유발할 수 있다. 왼쪽 앞이마뇌가 이 감정에 맞서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신경심리학자들은 왼쪽 앞 이마뇌가 소뇌편도에 일정한 힘을 전달해 그 작용을 지연시킨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그러한 신호들을 일종의 반응 체계로서 설치해 놓 았을 것이다. 일단 부정적인 육체적 느낌, 즉 경고 신호는 앞이마뇌에 도착하게 되고 그다음에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쁜 감정에 대한 일종의 자연 잠금장치를 가지고 있는 셈이 다. 더 나아가 우리는 약간의 훈련을 통해서 이 잠금 장치를 의도적 으로 작동시킬 수도 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신경심리학자 리처드 데이비드슨Richard Davidson은 이 연관 관계를 해명하고자 수년간 실험을 했다. 그와 그 의 동료들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육체적 느낌을 유발시키는 일련의 슬라이드를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그것은 매력적인 남녀의 누드 사진, 심장 수술을 받고 있는 사람들, 홍수를 피해 지붕으로 피 신하는 사람들이나 자동차 사고로 심하게 피를 흘리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학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들의 감정을 의식적으로 더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킬 것을 요청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데이비드슨은 슬라이드를 보여 준 직후 준비 한 굉음을 울렸다. 그들 중 슬라이드 그림이 준 자극 때문에 여전히 흥분해 있던 사람은 더 심하게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속눈썹을 움찔했 다. 이것은 어떤 특정 사실을 나타내는 반응이었다. 데이비드슨은 이 것을 기록했다. 동시에 실험 참가자의 머리에 붙여 둔 128개의 전극 =이 그의 앞이마뇌가 활동 중임을 나타냈다.
- 왼쪽 앞이마뇌가 강력하게 작동할수록 실험 참가자들은 평정을 잃지 않았다.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슬라이드를 본 직후 들려온 굉음이었기 때문에 놀라기는 했지만 이 모든 끔찍한 장면들이 결국은 슬라이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흥분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즉시 알아차렸다. 육체적 느낌은 차츰 사라졌 고, 데이비드슨이 다시 신호를 보냈을 때 그들은 거의 반응하지 않 았다. 그러나 앞이마뇌의 활동이 특히 오른쪽으로 기운 실험 참가자들 의 반응은 이와 달랐다. 그들은 참혹한 슬라이드를 보고 난 후 몇 초 간 지속적으로 그 이미지들의 잔상에 시달렸다. 그들의 속눈썹은 격렬하게 떨렸다.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몇몇 사람은 심지어 그 사진들 때문에 계속 심란해 하다가 급기야는 울음을 터뜨렸다. 육체적 느낌의 조절은 대부분 1초도 지나기 전에 결정된다. 공포나 슬픔이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 짧은 시간 안에 인식하지 못 하면 부정적인 느낌은 자기 고유의 동력을 발전시킨다. 한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눈사태처럼, 자신의 감정이 행사하는 힘에 굴복당한 당사자들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현실에 대한 명징한 시각을 되찾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 많은 사람들은 화를 참지 않고 폭발시키는 것이 화에서 해방되는 길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슬픔 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감정에 대한 표상은 19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이제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만큼이나 낡은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파악하는 관점은 뇌를 '나쁜 감정이 압력처럼 고여 있는 증기기관'으로 본다. 따라서 여기에 고여 있는 이 나쁜 감정은 위험한 과민 반응, 즉 말 그대로 “화가 난 나머지 폭발해 버리는 것 을 피하기 위해 방출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걱정하는 마음에 친구 들은 “실컷 울어 버려!” 라고 충고하지 않던가. 물론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분을 털어 놓는 것은 종종 좋은 결과를 낳는다. 고통은 나누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을 나누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느낌을 과도하게 분출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어떤 전문적인 심리학 자도 눈물이나 화 등 이른바 안전판이라고 불리는 감정을 분출시켰 을 때 그것이 우리를 나쁜 감정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증거를 찾 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화를 분출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화를 돋우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우울증에 잠기게 할 수 있다는 첫 연구 결과는 이미 40여 년 전에 나왔다. 머리는 증기기관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19세기의 기술이 그려 내는 이미지 들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발달된 체계이다.
- 데이비드슨은 왼쪽 뇌가 확실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불쾌한 일들을 잘 처리할 뿐 아니라 신체적인 질병도 더 잘 이겨 낼 수 있음을 밝혀냈다. 그들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죽이는 세포들을 혈액 속에 더 많이 갖고 있다. 데이비드슨은 사람들에게 감기 예방주사를 놓은 다음 그 반응을 실험하여 뇌의 기본 구조가 면역 체계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실험 참 가자들 중 왼쪽 뇌의 활동이 강한 사람일수록 예방주사에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데이비드슨은 이것을 2주가 지난 후 혈액 속에 있는 항 체의 숫자에서 읽어 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연관 관계는 아직 완전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추측컨대 감정의 효과적인 조절은 일종의 연쇄 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은 장기적으로 볼 때 면역 체계를 약화시킨다. 왼쪽 뇌의 활동이 강한 사람들의 경우 부정적인 감정이 한결 적게 나타나고, 나타나더라도 그다지 오래 지속되 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신체는 전체적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금 만 방출한다. 따라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앞이마뇌의 왼쪽 부분의 활동을 증가시킨다는 의미라고 데이비드슨 은 추측한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좀 더 행복하게 살 뿐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다.
-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아침 햇살을 충분히 즐겼기에 기 분이 좋아졌는가, 아니면 반대로 당신의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에 하늘 색깔이 강렬하게 느껴졌는가? 둘 다일 것이다. 뇌에서, 또 우리의 경험에서 원인과 결과가 서로 분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앞에 서 살펴보았듯이 우리 머릿속에 있는 대부분의 회로들은 서로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거의 모든 사건이 다시금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기제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우리는 뇌를 계속해서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즉 좋은 느낌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불행을 조절할 수 있고 행복을 배울 수 있다. 대부분의 훌륭한 관념 뒤에는 고대인들의 사상이 숨어 있듯이, 이러한 생각 뒤 에도 선조들의 생각이 숨어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기 조절을 통해 감정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시도를 아스케시스Askesis' 라 고 불렀다. 오늘날 우리는 아스케제Askese, 즉 금욕이라는 단어에서 금식의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회초리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고행자 등 본래의 자기를 소멸시키는 모습을 연상한다. 그러나 이것은 중세 시대에 이르러 전개된 양상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아스케시스는 연 습을 의미했다. 기원전 7세기에 살았던 페리안드로스는 “모든 것은 연습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최초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7인의 현자에 속했다.
- 배우는 뇌: 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뉴런은 작은 컴퓨터이다. 나뭇가지 모 양의 돌기들을 통해 뉴런은 다른 회색 신경세포들로부터 신경 자극을 접수한다. 뉴런은 자신의 내부에서 이 자극들을 계산한 다음, 그 결과를 출구인 축색돌기를 통해 다른 뉴런들에게로 계속 전달한다. 두 뉴런 사이의 접속을 맡고 있는 것이 시냅스이다. 신경 자극이 도착하면 여기 시냅스에서 '쾌락 분자' 도파민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이 분비된다. 시냅스 틈새의 맞은편에는 이 자료들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있다. 이 수용체들은 화학 신호를 접수해서 새로운 신경 자극을 발생시킨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때 뉴런들은 새롭게 형성된다. 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계산 과정들, 심지어 뉴런들의 형태도 바뀐다. 많은 곳에서 신호를 전 달하는 수상돌기들이 사라지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수상돌기들이 자라나기도 한다. 이렇듯 뉴런들은 정원에 있는 식물들처럼 계속해서 변화한다.
- 뉴런들의 시냅스 하나를 강화시키는 것에서 뇌 전체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는 길은 멀다. 그것은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 길이다. 변신은 뉴런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직 외부에서는 아무런 변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세포에서 일어나는 생체화학 적 반응들은 세포의 진행 과정을 변화시키고, 단백질 분자들은 세포 의 형태를 변화시키며, 세포벽에서는 관들이 열린다. 그리고 더 많은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두 개의 뉴런 사이에서 이 루어지는 정보 교환이 좀 더 쉬워진다. 습득 과정의 이 첫 단계는 단기 강화라고 불리는데, 이 단기 강화에서 세포들의 문이 열린다. 그다음 단계, 즉 장기 강화 단계에서는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한 새로운 출입구가 생겨난다. 이제 특별한 신호 단백질이 뉴런에 있는 유전자 물질에 영향을 끼치고 세포핵 안에 있는 유전자들을 작동시킨다. 이 유전자들은 뉴런의 형태가 변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 고, 새로운 연결망을 위한 토대로서 단백질이 생성되는 것을 관리한다. 그리고 뉴런의 지류들인 수상돌기에 옹이가 자라난다. 이 옹이들이 그에 상응하는 이웃 세포들의 돌기와 접속함으로써 새로운 시냅스가 생겨난다. 시간이 지나면 뉴런을 다른 뉴런들에 연결시켜 주는 이 수상돌기 나무에서 추가로 돌기들이 더 솟아오른다. 이 새로 생 겨난 회로들을 통해서 이제 한층 더 많은 신호들이 세포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한 장기 강화를 가동시키기 위해 신경세포들은 상당한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번째 단계는 그러한 수고가 가치 있는 일임이 보장될 때에만 시작된다. 기억 속에 서 연결되어야 할 자극들이 자주, 충분히, 함께 등장했을 때 비로소 머릿속에서 새로운 다리들이 놓인다. 반복된 연습을 통해서만 뇌에 무언가를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장기 강화는 두 가지 호르몬, 즉 세로토닌과 도파민에 의해서도 유발된다. 이 두 호르몬은 본질적으로 좋은 감정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니까 쾌락이나 향유 그리고 호감을 경험하게 만드는 물질들이 뇌가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뭔가를 새로 배우는 일이 행복의 체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외에도 뇌에 새로운 연결망이 솟아나는 데는 이른바 '신경성 장요소NGF' 라고 불리는 물질들이 필요하다. 이 물질들은 정확히 그 이름 그대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즉 뉴런에서 새로운 수상돌기들이 생겨나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신경성장요소는 신경세포들이 자라나 =는 데 필요한 신체 고유의 거름일 뿐 아니라 영생을 보장하는 묘약 이기도 하다. 즉 이 신경성장요소가 없으면 신경세포는 죽어 버린다. 우리의 기분과 뇌에 봉사하는 이 신경성장요소의 수치 사이에 특정한 연결망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몸이 얼마만큼의 신경성장요소를 생산해 내는가에 특별히 관여하는 것이 바로 세로토닌 호르몬이다. 우리가 상심해 있을 때 세로토닌 수치는 감소한다. 우울증일때 신경세포는 소멸해 버린다. 반대로 긍정적인 느낌은 뇌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킨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풍부하게 유통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연결망들이 좀 더 쉽게 생성되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과적으로 뇌를 젊게 유지시키는 청춘의 샘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의 뇌가 얼마나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는가'는 결코 태어남과 동시에 확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뇌의 수행 능력을 강화시킬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뇌세포도 적 당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 우리 가 계속 지원하지 않는 재능은 쪼그라든다. 그것은 뇌의 모든 수행 능력에 해당된다. 타자 치는 능력이 그러하듯,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능력이 그러하듯, 우리의 감각적 인지능력을 정밀하게 개발하는 일이 그러하듯, 우리는 행복을 향한 능력도 훈련할 수 있다.
- 좋은 감정도 우리가 그것에 몰두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알뜰살뜰히 즐기는 사람은 누구 보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뇌를 좋은 방향으로 각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양 철학의 관점이기도 하다. 동양 철학의 세계는 여러 면에서 뇌 연구의 인식과 유사한 면모를 지닌다. 예컨대 불교의 심 리학과 신경학은 무의식적인 육체적 느낌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정신은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이러한 통찰에서 불교의 심리학은 서양 철학이 오랫동안 부 인해 왔던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했는데, 즉 '마노드라바라 Manochravara'라고 불리는 정신의 문'을 통해 의식에 도달하는 무의식적인 영혼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신경심리학 역시 비슷한 관점을 표방한다. 즉 육체적 느낌은 유기체의 무의식적 상태이며, 이러한 육체적 느낌이 의식적으로 감지될 때 감정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불교의 심리학이나 뇌 연구의 관점에 따르면 정신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오늘날 뇌 연구는 특히 뇌의 조형 가능성을 바탕으 로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한결 더 발전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승려이자 인권 운동가인 틱낫한 Thich Nhat Hanh은 불교의 관점에 서 볼 때 자신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얼마나 강하게 정신을 형성하는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의 글은 이 장에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시적 언어로 옮겨 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전통적인 작가들은 의식을 밭으로 또는 농토로 묘사했다. 그 밭 에는 모든 종류의 씨앗들이 뿌려질 수 있다. 고통의 씨앗, 행복의 씨 앗, 그리고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화, 희망의 씨앗. 또 감정의 기억은 우리의 모든 씨앗으로 가득 차 있는 저장 창고로 묘사되었다. 씨앗 하나가 우리의 정신적인 의식 속에서 그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게 되 면 그것은 언제나 더 힘찬 상태로, 그 저장 창고로 돌아가게 될 것이 다. (....) 우리가 평화로운 것과 아름다운 것을 감지하는 모든 순간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평화의 씨앗과 아름다움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이다. (..) 그러면 그 시간에는 공포나 고통 같은 다른 씨앗들에 는 물이 뿌려지지 않게 된다.”
- 도파민은 곧 쾌락, 옥시토신은 곧 어머니의 사랑, 이런 식의 공식은 우선 호르몬이 단독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두고 보더라도 극히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특정 호르몬이 특정 느낌의 발생에 주도 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연주에 참 여한 하나의 목소리이다. 옥시토신 몇 방울이 젊은 암컷 쥐를 어미 쥐로 변모시킬 때 그것은 일종의 도미노 효과처럼 일어난다. 즉 옥시토신 몇 방울은 머릿속에서 일련의 다른 호르몬들을 가동시키고, 이것들은 또한 나름대로 쥐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뇌 속에 있는 화학 물질들 사이의 작동 방식만 엄청나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육체와 맺는 상호 관계도 그에 못지않게 복잡하다. 우리가 인지하는 느낌들은 화학 공식들만으로는 충분히 설명 되지 않는다. 호르몬만으로는 육체적 느낌을 생산할 수 없다. 호르 몬은 우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뇌 회로에 작용한다. 그러면 이 뇌 회 로들은 다시금 몸 안에서 반응들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무의식적인 어떤 육체적 느낌을 의식적인 감정으로 체험하려면 자연이 만들어 낸 모든 형상물 중에 가장 복잡한 대뇌피질이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화학 물질들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다채로운 내적 삶이 진공 상태에서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간과한다. 사유, 감정, 아니, 꿈조차도 공중누각이 아니라 확 실히 포착할 수 있는 기본 구조 위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이 기본 구조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화학 물질들이다. 인간의 내적 삶과 뇌 속 호르몬들의 관계는 한편의 예술 작품과 그 재료들의 관계와 비슷하 다.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벽화는 미켈란젤로가 사용한 물 감을 훨씬 넘어서는 무엇이다. 그러나 이 물감들이 없었다면 미켈란 젤로의 천상에 대한 미래상은 결코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 지로 우리 자신은 우리 뇌의 건축을 훨씬 넘어서는 존재다. 우리의 몸을 흐르는 그 모든 질료 이상의 존재다. 그렇지만 이러한 질료들 이 없다면 우리의 정신적인 삶은 불가능하다.
- 도파민 분자는 뇌에서 팔방미인처럼 활약한다. 이것은 우리의 정신이 깨어 있도록 조절하고 주의력을 관리한다. 또 호기심과 배우는 능력 판타지와 창조력, 그리고 섹스에의 욕망을 관장한다. 도파민은 말하자면 욕망의 물질이다. 또한 도파민은 단순히 흥분을 자극하는 것뿐 아니라 그러한 자극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필요한 체계들을 가동 시킨다. 우리는 도파민의 영향 아래 동기를 부여하고, 사태를 낙천적 으로 판단하며, 자신감에 차서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도파민은 결심 을 행동에 옮기도록 뇌를 움직인다. 예를 들어 근육들이 의지에 복 종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도파민은 우리 를 추동하는 물질이다. 도파민 덕분에 우리는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미리 기쁨에 떨 수 있다. 어떤 목표를 매혹적으로 그리고 실현 가능 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도파민은 뇌에 있는 그 어떤 호르몬보다도 우리가 기분에 도취되도록 하는 데 기여한다.
- 도파민이 우리 삶에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그것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첫째, 도파민은 특별히 흥미로운 상황에 주목하게 만든다. 즉 우리의 정신을 일깨운다. 둘째, 도파민은 좋은 경험을 기억하도록 신경세포들을 부추긴다. 즉 도파민은 습득 과정을 촉진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파민은 근육을 조절하여 신체가 의지에 복종할 수 있도록 만든다. 즉 도파민은 행동을 가능케 한다. 이렇게 볼 때 도파민이 결핍될 경우 사람들이 무기력해지고 극 단적인 경우에는 레너드처럼 거의 시체와도 같은 경직증에 빠지게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될 경우 결과는 치명적이다. 갈망은 강박증으로 치닫고, 목표 지향성은 권력에의 도취가 되며, 자신에 대한 신뢰는 과대망상으로, 풍부한 아 이디어는 광기로 변한다. 좋은 느낌들도 어두운 측면을 가지고 있는 데, 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그 어떤 호르몬보다도 분명하게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레너드의 비극은 당시 의사들이 새로운 의약 품이던 엘도파의 투입량을 올바르게 측정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말 하자면 그는 그의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도파민을 삼킨 것이다. 그러나 결국 엘도파는 모든 인간의 삶을 평생 동안 일상적으로 조절 하는 메커니즘을 가동시켰을 뿐이다. 괴기스러울 정도를 과장된 상 태에서 레너드의 운명은 도파민이 우리의 몸에서 가동되는 메커니 즘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
- 카사노바는 호기심에 내몰리는 인간의 극단적인 유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우리 모두에 내재해 있다. 변화 가 없는 곳에는 권태가 똬리를 튼다. 그리고 권태야 말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 중 하나이다. 독일 작가 에른스트 윙거도 “권태는 옅어진 고통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절망에 빠져 우리는 권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TV를 보거나 유행을 좇는다. 여기서도 우선시되는 것은 일이나 물건의 유 용성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가이다. 새 로움을 소화해 내는 것, 이는 뇌가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신경세포는 충전되길 기다리고 있다.
- 사탕 몇 개는 어떻게 실험 참가자들을 그렇게 능수능란하고 아 이디어가 풍부한 진단가로 변신시킬 수 있었을까? 예기치 않은 선물은 의사들의 뇌에서 도파민 수치가 쉽게 상승하게 만들고 도파민 은 다시 신경세포들이 정보 처리에 착수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호기심의 기저에 놓여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이다. 볼프람 슐츠의 원숭이 실험이 보여 주듯이, 도파민은 앞이마뇌에 저장되어 있 는 작업 기억 능력을 특별히 활성화시킨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자료 들과 씨름할 때 우리는 바로 이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도파민은 좀 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뇌의 중심부에 영향을 끼치는 데, 여기는 주의력의 조정을 통해 집중력을 강화시키는 곳이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기분 좋은 놀라움은 사고를 유연하게 만든다.
- 우리는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이 둘은 너무나 자주 얽혀 있다. 음식점에서 당신은 입맛에 맞지 않 는 음식은 결코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이 두 느낌을 혼동하는 일은 불행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권태로운 모임의 참석자나 줄담배를 피우는 흡연가의 예가 보여 주듯이 말이다. 최악의 경우 이러한 오류는 중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그 반 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즉 우리는 원하지 않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 다. 일곱 가지 음식이 차례로 나오는 정식 메뉴를 먹고 난 후 당신은 이미 포만감을 느끼지만 디저트는 여전히 맛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당신은 더 이상 디저트를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경우 좋은 느낌은 두 가지 방식으로 생겨난다. 무엇을 원 할 경우 또는 마음에 드는 무엇을 얻었을 경우,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다가올 일에 대한 기쁨과 향유, 뇌는 이 두 마음의 움직임을 각각의 방식으로 만들어 낸다. 하버드 대학의 신경학자 한스 브라이 터Hans Breiter는 심지어 그 두 느낌이 발생할 때 뇌의 서로 다른 영역 이 활동적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다가올 일에 대한 기쁨을 느 끼는 경우 전뇌前의 중심부가 활동적이 된다. 이 중심부는 머릿속 에 피사의 탑처럼 그렇게 비스듬히 걸려 있기 때문에 기울어진 핵' 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쾌락의 물질인 도파민의 영향을 받으며, 본질 적으로 우리가 좋은 경험을 기억하는 일에 기여한다. 반대로 우리가 향락을 누릴 때는 의식적인 감각적 인지를 책임지고 있는 대뇌 일부 가 활동적이 된다. 그리고 이때 봉사하는 호르몬은 도파민이 아니라 아편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신체 고유의 중독성 화학 물질인 오피오이드다.
따라서 모든 향락은 도취다. 어느 겨울 아침 뜨거운 샤워를 즐기든, 마사지나 훌륭한 음식 또는 섹스에서 기쁨을 느끼든, 이 모든 즐거운 느낌에는 동일한 기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뇌의 동일한 회로가 그것을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기쁨에는 동일한 화학 물 질, 즉 오피오이드가 관여한다. 따라서 그 근본에 있어 모든 향락은 동일하다. 말하자면 마사지가 주는 쾌적한 느낌을 어느 뜨거운 여름 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상쾌함과 구별 짓는 것은 뇌 속에 있는 기본 멜로디가 아니라, 음들을 창조해 내는 악기이다. 한 번은 피 부의 감각세포가 피부에 와 닿는 스침을 예민하게 포착해 내는가 하면, 또 다른 한 번은 혀와 입이 감각에 반응한다. 그러나 일단 감각적 자극이 뇌에 도달하기만 하면 두 경우 모두 동일한 향락의 느낌이 발생하게 된다. 향락이란 유기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받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갈증을 느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다. 배가 고프면 먹을 음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우리에게 필요 한 것은 위로의 말이다. 갈증이 날 때 마시는 첫 모금의 물이야말로 가장 맛있다. 엄청난 고생 끝에 산 위에 있는 오두막에 도달해서 먹는 식사는 그것이 지극히 평범한 음식에 지나지 않더라도 커다란 기쁨을 선사한다. 삶에 가장 필요한 무엇인가가 결핍되었을 경우 그것이 무엇이든 몸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굶주리게 되면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와 음식물 섭취 간에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러면 좋지 않은 느낌을 발생시키는 오피오이드인 다이노르핀이 방출된다. 우리가 굶주림을 쾌적하지 않게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그 에 맞서 뭔가 조처를 취하려는 충동이 일어난다. 즉 우리는 불안해 지고 자극에 민감해지며 결핍을 해소시킬 무언가를 찾기 위해 신경 을 곤두세워 주위를 살핀다. 자, 목표물을 발견한다. 구운 닭고기 한 조각이 있지 않은가! 뇌 는 즉각 베타 - 엔도르핀을 내보낸다. 그러면 베타 엔도르핀은 희 망하던 음식물이 가져다줄 쾌감에 미리부터 기쁨을 느끼게 해 주 고, 우리 눈앞에 있는 이것이 유기체에 유익할 것임을 알려 준다. 동시에 베타 - 엔도르핀은 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욕망의 분자인 도파민도 방출하게끔 만든다.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회로는 이렇듯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도파민의 영향으로 우리는 낙천적이 되고, 좀 더 정신을 차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된다. 향기로운 고기 냄새가 코 안으로 스며들고, 우리는 닭고기를 베어 문다. 맛이 좋다. 뇌는 더 많은 엔도르핀을 방출하고 유기체가 원하는 것이 드디어 섭취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곤 평정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제 기분 좋은 배부름만이 남았다. 우리는 긴장을 풀고 생각한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이다. 이렇게 향락은 우리의 몸이 물리적 평형 상태로 되돌아갈 때 그 동반자가 된다. 몸에 좋은 것이 실제로 기분도 좋게 만든다. 그러나 유기체가 따르는 이 쾌락주의적 원칙에는 어두운 이면도 있다. 즉 향락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향락은 사라져 버린다.
- 욕망하고 즐기는 것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자극은 또한 서로 적대적이다. 이 두 자극의 관계는 시소 놀이를 하는 두 아이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번에 한 아이가 높이 올라가면 그다음 번에는 상대방 아이가 높이 올라간다. 욕망하는 사람은 아직 완전히 즐기지 못한다. 그리고 즐기는 사람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 는 그 순간 사라지는 욕망을 목도해야 한다. 욕망에는 애써 추구하 는 동력이 내재하는 반면, 향락은 그것 자체로 충분하다. 맛있는 음식, 사랑, 단순히 태양을 즐기는 사람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즐기고 있는 이 순간 그는 일상이 가져다주는 사소한 투쟁거리에는 관심이 없다.
- 모든 중독과 욕망의 기저에는 동일한 메커니즘이 놓여 있으며, 약물들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에 따라 구별될 뿐이다. 니코틴은 문제의 뉴런들을 활성화시켜 직접적인 방식으로 도파민을 가동시키고, 반면에 알코올과 헤로인 그리고 모르핀은 우회로를 통 해 도파민 수치를 높인다. 즉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기대 체계를 저지하는 뉴런들의 활동을 약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코카인은 순식간에 다시 세포벽으로 사라지는 도파민이 좀 더 오랫동안 작용하도록 만들어 도파민 수치를 높인다. 코카인을 흡입하는 사람은 올리버 색 스의 환자였던 레너드가 엘도파의 작용 아래에서 겪은 것과 유사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즉 자신이 전능하다고 느낀다. 결국 문제는 도파민이 작동되는 방식이 아닌 도파민이 작동된다는 사실 자체이다. 왜냐하면 도파민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뇌는 약물을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그것을 욕망하게끔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니코틴 중독증이 있는 뇌는 담배를 보는 즉시 '불을 붙이시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알코올 중독에 걸린 뇌는 술병의 자극을 받게 되면 마시라는 지시를 하게 된다. 뇌파 검사가 보여 주듯이, 헤로인 중독자의 경우 바늘을 보기만 해도 뇌의 욕망 회로가 튀어 오르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니코틴과 알코올 그리고 코 카인은 마치 트로이의 목마처럼 쾌감의 책임을 지고 있는 뇌의 구조속에 살며시 침입해 들어온다. 약물이 뇌를 점령하게 된 것이다.
- 알코올은 불안을 가라앉히고 해소시킨다. 코카인은 잠시 동안 터보 충전기처럼 풍부한 아이디어와 위트가 떠오르게 한다. 따라서 친구들 사이에서 따분하다고 알려진 모든 사람에게 코카인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니코틴은 권태와 스트레스를 견뎌 낼 수 있는 힘과 자극을 주고 동시에 마음을 안정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담배는 어른들의 세계를 갈망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우정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새로운 관계의 촉매제로 작용한다.
- 원하는 것과 즐기는 것, 이 두 종류의 자극을 뇌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우리는 이 퇴행 현상을 이 해할 수 있다. 중독은 이 두 메커니즘을 왜곡시킨다. 약물 없는 삶이 밋밋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중독 물질이 향락에 대한 능력을 손상시 켰기 때문이다. 그 대신 강제적인 욕구가 생기는데, 이것은 약물이 '원함'을 조절하는 뇌의 체계에 몰래 침투해 프로그램을 바꿔 버렸 기 때문이다. 치유 과정을 통해 향락의 둔감함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기대 체계는 계속해서 파괴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종속적 상태가 그토록 완강하게 작용하고 또 언제든 다시 활성 화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욕구의 강력한 기제에 놓여 있다. 학자들 은 이 현상을 갈망이라고 부른다. 한 번 중독된 사람은 약물에 길들여진 그 습성을 평생 벗어나기 힘들다. 그것은 마치 모국어를 잊어버리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이다. 중독의 경험이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의 작동 방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전적 정보를 측정해서 단백질로 바꾸는 방식이 변화된다. 신경세포들은 뇌가 약물과 관련된 모든 것에 특히 더 예민해지도록 만드 는 물질들을 우선적으로 생산해 낸다. 뇌 속에는 이제 그러한 자극들이 약물에 대한 즉각적인 요구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뉴런들의 회로가 두꺼운 선처럼 놓이게 된다. 한 번 형성된 그러한 회로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신경생물학자들은 쥐 실험에서 개별 뇌세포 의 작동 방식을 관찰함으로써 오래전에 알코올 중독에 빠진 적이 있는 쥐들을 가려낼 수 있었다.
- 왜 여자아이로 태어나서 사내아이로 성장하는 것은 가능한데 그 반대는 가능하지 않은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성장하기 시작할 때 모든 인간은 여성적이다. 여성과 남성으로 발달해 나가는 몸과 뇌의 기본 설계도, 말하자면 이것이 여성의 설계도라는 말이다. 이것은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탄생했다는 기존의 기독교적 인 식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이다.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남성 Y염색 체가 사내아이로 성장해 나갈 신호를 준다. 이 Y염색체에는 대략 수 정 8주 후 태아의 생식선生殖腺으로 하여금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 테론을 만들어 내게 하는 유전자가 놓여 있다. 이 남성 호르몬이 보 내는 다양한 신호를 통해 몸과 뇌는 이 태아가 남자아이로 성장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대뇌의 구축에서 양성 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여성의 경우 오른쪽 대뇌와 왼쪽 대뇌는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개별적 인 뇌 중심부들은 남성의 경우보다 조금 덜 세분화되어 있는 것처 럼 보인다. 이 때문에 여성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남성보다 더 허 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고 사람들은 추측하지만 증명된 것은 없다. 그러나 약간 다른 이 뇌의 구조가 학습 능력에서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즉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언어 능력이 뛰어 나고, 암산을 쉽게 하며, 감각적 인지 속도가 빠르다. 게다가 손놀림도 더 정교하다. 그에 반해 남성은 수학적, 논리적 사유와 공간 인식에서 종종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차이는 지나치게 과장된 면이 있다. 심지 어 어떤 책은 '주차를 못하는 여자, 멀티가 안 되는 남자'라는 단순명 료한 문구의 제목으로 여성과 남성 사이의 모든 불일치를 설명하고자 한다.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는 생각은 굉장히 많은 남자들과 굉장히 많은 여자들을 관찰할 경우 평균적으로만 언급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통계학이란 특히 평균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전체적으로 보아 그다. 지 많지 않을 때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에 태양이 비 추는 시간은 1년에 평균 1,672시간이고 뮌헨은 1,645 시간이다. 그 렇다고 해서 베를린의 하루하루가 늘 뮌헨보다 더 화창한 날씨를 보 인다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지 않은가.
- 첫 시선의 교환에서부터 쾌락의 정점에 이를 때까지 남녀의 성적 욕구를 조절하는 기제들은 서로 상이하다. 남성은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의 영향 아래 있는데, 이 호르몬은 철부지 수컷 들쥐를 충실한 반려자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공격성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얼핏 보기에 이것은 모순 같지만 가부장으로서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보금자리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호해야 하는 수컷의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 쾌락의 절정에 양성 모두에게서 방출되는 옥시토신은 평화의 매개체이다. 많은 연구들이 보여 주듯이, 옥시토신은 서로간의 의존성을 촉진시키고 공격성에 대항하여 작용 한다. 그리고 오르가슴에 이를 때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오피오이드 역시 편안하고 여유 있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기분이 좋으면 싸울 이유도 적을 게 아닌가. 이처럼 섹스는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돕고 공격 취향과 파괴 적 분노를 가라앉힌다. 베트남 전쟁 당시 히피들은 전쟁이 아닌 사랑을 만들자고 촉구했다. 그들이 옳았다.
- 자신의 삶에서 우정을 지워 버리는 사람은 세상에서 태양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키케로)
- 인간은 빈둥거리는 삶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의 행위는 자연에 의해 보상받는다. 지나친 안락을 꾀할 경우 좋지 않은 감정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인간이 비교적 오랜 시간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도 아무런 값을 치르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인간을 다른 모든 존재와 구별 짓는 것은 인간이 그들보다 좀 더 현명하고 좀 더 능수능란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진화의 결과는 보존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우리가 행동하도록, 즉 세상을 단순 히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도전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부 추긴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도파민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일이 필요한 것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만 은 아니다. 한가로운 여유를 찬양한 고대의 부자들이나 철학자들도 목적과 행위가 없는 삶이 매우 쉽게 우울증과 연결됨을 잘 알고 있 었다. 그래서 그들은 글을 쓰거나 논쟁을 하는 일에, 또는 정치적 캠 페인을 펼치거나 세련된 축제를 조직하는 일에 몰두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 맛보는 자유 시간에 더 많은 행복을 느낀다. 일 때문에 완전히 지친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나 안락함을 떨치고 일어나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착수하기란 사람에 따라서 꽤나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빈둥거리는 것이야말로 지금 정말 필요한 일이라는 감언이설에 기꺼이 자신을 내맡긴다. 그러나 이것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행복을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자들은 이것을 측량하기까지 했다.
- 우리는 통상적으로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환경의 극히 일부분만 바라보곤 한다. 인도의 시인 타고 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놀라움을 표시한다.
“수년 동안 / 비싼 값을 치르면서 / 나는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높은 산과 / 대양을 보았다 /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한 것은 / 내 집 문 앞 잔디에 맺혀 있는 / 반짝이는 이슬방울이었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사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 속에서 평 소보다 한결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볼 수 있다. 주의 깊은 관찰자는 가장 일상적인 것 속에서 예기치 못한 자극을 발견한다.
- 익숙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것을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훈련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아니면 눈 여겨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뇌는 살아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자극들에서 자신을 보호한다. 도파민의 영 향 아래 있는 회로들이 이 일에 가담하고 있다. 이 회로들은 지각을 조절하고, 새로운 자극이 유기체에 어떤 이익을 약속할 때에만 흥미 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은 극복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는 것은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다.
- 독일의 일반적 사상은 고독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고상한 정신적 상태라는 치명적인 오류에 갇혀 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 드리히 Casparr David Friedrich가 묘사하는 바닷가의 외로운 수도사, 헤르만 헤세나 토마스 만이 그려 내는 비극적 주인공들, 이들은 모두 우 리로 하여금 “인간은 고독하게 홀로 있음으로써 자신의 가장 내밀한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임상 연구와 뇌 과학 연구가 증명하듯이,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고독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의미하며, 육체와 정신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고독은 사람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며, 스트레스 호르몬의 영향으로 생각과 느낌이 희미해지게 만든다. 면역력도 떨어지게 한다. 고립은 슬픔과 병을 가져온다. 서구가 아닌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고독 을 고통을 불러오는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로 제대로 이해하고 있 다. 예를 들어 인도 사람들은 동행자 없이 혼자 여행을 다니는 서구 인들을 놀라움에 차서 바라본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도 작가 비디아다르 네이폴Vidiachar S. Naipaul이 묘사하는 뭄바이 사람들은 협소한 환경에서 부를 이룩했지만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나와 자신들이 성장한 낡고 비좁은,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바라크로 되돌아간다. 주인공의 아내가 새로 주어진 비싼 공간의 적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우 울증에 걸린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종종 극단으로 치닫곤 하는 서구의 개인주의와 마주 보고 있다. 우울증을 연구하는 마틴 셀리그먼에 따르면 이러한 개인주의는 우울증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데 적어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 삶을 살아가는 용기는 실제 상황보다 우리가 그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더 좌지우지된다.
-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뇌는 위험이 상황을 알아차리는 데뿐 아니라 상상하는 데 있어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아주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일을 상상하고, 아마도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 때문에도 걱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일단 그러한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기분은 처지게 된다. 궁극적으로 말해, 상심은 인간이 자신의 환상과 지성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울증에 대응하는 극단적인 방식 중 하나는 대뇌피질의 힘을 일부 약화시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암울한 생각을 불러내는 뇌 부분들과 뇌의 나머지 부분 사이의 몇몇 연결 고리가 끊길 경우 기분은 즉각적으로 좋아진다. 대부분 짧은 마취 상태에서 진행되는 이른바 전기 충격 요법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된다. 그것은 위험하지 않은 전기의 흐름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 전기 흐름은 컴퓨터의 리셋 버튼과 비슷하게 작용한다. 전기 충격이 앞이마뇌의 단기 저장소에 입력된 기억들을 지워 버려 끊임없이 맴도는 불행한 생각의 고 리들을 단절시키는 것이다. 전기 충격 요법 같은 것을 통해 우리는 고질적인 우울증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의사들은 될 수 있는 한 그토록 격한 조치는 삼간 다. 그러나 그런 조치가 가장 심각한 형태의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암울한 느낌에 대해서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즉 그런 사실을 통해 우리는 사유와 환상의 세계가 얼마나 감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매우 자주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불행에 대한 우리의 표상능력이다. 유쾌하지 않은 기분은 머릿속에서 생긴다. 유대인들의 다음과 같 은 유머는 부정적인 심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부조 리한 생각을 구축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 준다. 구두쇠 모세가 예루 살렘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보를 쳤다. “일단 걱정부터 해 두도록, 자세한 것은 다음에.”
- 위협을 느낄 경우 우리는 평소보다 매사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데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이로써 우리는 조금이라도 위험이 감지되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특별한 자극 상 태는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통해 유발되어 혈관으로 전달되다가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게 되면 사라진다. 그러나 우울증의 상태에서 이러한 자극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 심은 지속적인 스트레스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모든 부주의한 언급 이나 사소한 일에도 그것이 마치 심각한 파국이나 되는 양 반응하게 된다. 또 이것은 다른 스트레스 호르몬들의 방출로 이어지고 그만큼 더 예민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악순환은 계속되고, 결국 심각한 우울증의 극단에 가서는 골방의 침대가 마지막 도피처가 되고 만다. 더 나쁜 것은 그러한 상심의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될 경우 뇌가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즉 우울증은 호르몬의 불균형 때문만이 아니라 뉴런들이 서로 잘못 연결된 채 고착됨으로써 생긴다. 이러한 손상이 어느 정도까지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우울증이 뉴런들의 과소한 성장 결과일 수 있다는 인식은 불행연구의 방향이 선회했음을 의미한다. 이제까지 학자들은 우울한 감정의 원인을 단지 특정 호르몬의 낮은 수치에서 찾았다. 그때 준거가 된 것은 치유 결과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의사들은 우울증 환자에게 약을 처방해 왔다. 이 약들은 세로토닌이나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처럼 화학적으로 도파민과 유사한 호르몬의 수치를 높여주는 것들이다.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더라도 이 약은 모든 환자들의 60퍼센트 이상에게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 약을 적합한 심리 치료 와 병행할 경우 치료 효과는 더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의 부족이 어느 정도 우울증의 발생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이것이 진실의 전부는 아님이 확인되었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뇌에서 의도적으로 세로토닌의 양을 조금 줄인다고 해서 우울증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우울증은 세로토닌 결 핍만으로 생기는 질병은 아닌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세로토닌의 양과 스트레스 체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뇌에서 많은 양의 세로토닌이 방출되면 그만큼 스트레스 호르몬 방출은 줄어든다. 우울증을 막는 약들은 이 두 종류의 호르몬을 조정하여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시킬 수 있다. 미국의 미시간 대학에 있는 후안 로페즈 Juan Lopez와 엘리자베스 영Elisabeth Young이 이러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의 경우 그러한 약은 아무런 영 향을 끼치지 않는다. 통증도 없고 열도 없을 경우 아스피린을 먹어 봐야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즉 그것은 불행에 맞서기 위한 약이지 행복을 위한 약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울증 치료제의 효과는 왜 그렇게 천천히 나타나는 것일까? 약이 혈액 속에 흘러들면 뇌 속에 있는 호르몬의 양은 서너시간만 지나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환자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려면 언제나 거의 2~4주를 기다려야 한다. 약이 효 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요구되는 어떤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약은 뇌를 우선 겨울잠에서 깨워야 한다. 그런 다음 좀 더 많은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방출되면 뇌세포들이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이 호르몬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이거나 세포 자체에 영 향을 끼치는 방식을 통해 뇌세포의 성장을 돕는다. 이제 뉴런들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하면 상심의 징후들도 사라지게 되고, 얼어붙었 던 뇌도 다시 깨어나 삶을 시작한다.
- 뇌가 너무 적게 움직이면 우리는 우울하다고 느낀다. 불행에 대한 평소의 반응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뒤로 물러서게 되면 뇌는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모든 자 극을 상실하고, 의욕 상실 및 감정과 지성의 마비는 점점 더 확산될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이것은 우울증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없다. 심각한 우울증의 경우 뇌는 종종 약물 치료를 통해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한층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일상적 상심의 경우 다음과 같은 이중 전략이 매우 유효하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태도를 통해 뇌를 부드럽게 다시 자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각과 감정을 잘 조절해서 불행한 기분이 자리 잡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그저 행복하기만을 원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가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보다 더 행복한 상태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몽테뉴)
- “난쟁이는 언제 기뻐하는가? 자기보다 더 큰 혹을 달고 있는 다른 난쟁이를 보았을 때.” (동유럽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속담)
-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질투했고,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질투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마도 헤라클레스를 질투했을 것이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를 말이다. (버트런드 러셀)
- 만족은 일종의 모자이크처럼 많은 행복한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바로 이 순간의 행복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을 떨치는 확실한 수단이다. 자기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선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인생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해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100미터 달리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 “내가 어디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지 아십니까? 작은 책상 하나를 밖으로 내왔죠. 그리곤 녹색 덤불들 사이에 은밀하게 앉아 있답니다. 오른쪽으로는 향기로운 노란색 관상용 까치밥나무들이 (....) 서 있고, 왼쪽으로는 쥐똥나무 덤불이 있지요. (...) 그리고 눈앞에는 커다랗고 진지한 은백양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그 하얀 잎들이 천천 히 지친 듯 바람결에 바스락거리고 있어요. (..)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행복한지, 벌써 성聖요한 축제의 분위기가 감도는군요. 저 넘치도록 충만한, 풍부하게 농익은 여름과 생의 느낌 말이에요.”
이 편지는 1917년 로자 룩셈부르크가 감옥에 있을 때 소피 리프크네히트 Sophie Liebknecht에게 보낸 것이다. 수감된 지 3년째였고, 전 쟁이 끝날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감옥에서의 지루함이나 그녀를 둘러싼 음모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도 그녀의 마음을 지배할 수는 없었다. 그녀 내면에는 더 강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나는 이 겨울의 어둠과 권태로움 그리 고 부자유의 검은 시트들로 층층이 몸을 감고 조용히 혼자 누워 있 습니다. 그때 나의 마음은 어떤 알 수 없는 낯선 내적 기쁨으로 쿵쿵 거립니다. 마치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꽃들이 피어나는 잔디밭을 걷 고 있듯이 말입니다. (...) 내가 언제나 아무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기쁨의 환희 안에서 사는 것, 이것은 얼마나 기이한지요.” 그녀는 같은 해에 쓴 다른 편지에서 스스로 이렇게 놀라워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어느 정도는 정확히 추측 하고 있었다. 좀 더 큰일을 위해 감옥에 갇혀 있다는 확신, 즉 자신이 겪는 고통은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갖가지 불안을 떨치는 그녀 의 능력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기쁨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놀랍도록 뛰어난 능력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강렬한 지각 덕분이다. 새들의 노랫소리나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에 대한 경탄이 바로 자신이 누리는 행복의 근원임을 그녀는 스스로 인식하고 다음 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비밀은 바로 삶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 우울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만 시선을 돌리며, 오로지 자신의 문제와만 씨름한다. 그리고 자신이 겪는 비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캐내고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그러나 외부 세계에 시선을 돌릴 수 있다면 근심과 불안은 대부분 사라진다. 다른 사람과 다른 문제들 에 몰두하게 되면 어두운 감정의 폐쇄고리는 깨어진다. 그렇게 일단 숨통이 트이게 되면 행복한 뇌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하고 있는 일, 우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에 완전히 빠 져들게 된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외부에서 아무런 계기가 주어지지 않아도 모든 기쁨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환희, 즉 '살아 있 음에 대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모든 주장이 새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그는 사람들이 일을 할 때 대체로 여가 시간보다 더 좋은 기분 상태를 유지한다고 주장했지만 오늘날의 연구는 그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 준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직업적인 일은 즐거움을 가장 적게 주는 일에 속한다. 이는 이미 언급한 대니 얼 길버트의 아이폰 앱 연구와 설문 조사에 서 드러났다. 칙센트미하이의 오류는 인터뷰한 사람들의 수가 적었 고 조사 방법이 미숙함으로 인해 생겨났지만 그렇다고 그가 발견한 사실의 중요성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즉 긴장하고 집중한 상태는 우리에게 좋은 감정을 줄 수 있다.
-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서 조금만 노력하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때 우리는 추동된다. 목적지를 향해 일정 부분 앞으로 나아갔을 때 고생한 보람이라는 작은 승리감을 맛본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그 다음 단계의 목표가 설정되고 그에 따라 의지가 발동된다. 이런 방식 을 통해 우리는 무엇인가를 달성하고 난 후에 맛보게 되는 허탈감 을 방지할 수 있다. 어떤 과제의 난이도가 딱 적당하면 욕망과 보상 사이의 쾌락 시소는 지속적으로 오르락내리락 움직일 것이다. 이 두 개의 감정은 도파민 그리고 오피오이드의 방출과 관련되어 있다. 그에 반해 행위가 너무 단순할 경우에는 도발과 흥분이 부족하고, 너무 힘들 경우에는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몰입'의 기분 좋은 상태가 지속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우 리는 종종 주의력을 강제해야 한다. 생각이 샛길로 빠질 때 최대한 빨리 본래의 과제로 되돌아가려는 노력은 마치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기만 하면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저절로 굴러가는 자전거처럼 집 중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돕는다. 이 지점 부터는 별다른 고생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으며 너무 손쉽게 도달 하는 목표보다는 어느 정도 힘겨운 과제에 자신을 밀어붙일 때 목표 달성의 기쁨을 더 크게 맛볼 수 있다.
- 모든 사람이 명상이나 참선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것을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 평정에 이르자마자 고 요한 기쁨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기쁨일 수 있다. 그러나 숙련된 명상가들은 단순한 긴장 이완 효과 이상의 것, 즉 초월적인 황홀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점점 더 깊숙이 침잠 해 들어가는 사람은 자아를 잊게 되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며, 심지어 전 우주와의 융합을 체험하기도 한다. 필라델피 아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의사 마이클 베임Michael Baine은 스트레스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30년 넘게 명상을 실천해 왔다. 그는 우주와 융합하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것은 내 안에 중심을 두고 있 으면서 무한한 공간으로 퍼져나갔다가 되돌아오는 에너지 같은 느 낌이었다. 정신은 긴장을 풀고 나는 강한 사랑과 (..) 투명함 그리 고 기쁨을 느꼈다. 세상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으며, 이 러한 느낌은 너무나 강렬해서 세상에 그 어떤 분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 장수의 조건은 절대적 부가 아니라 부의 바람직한 분배 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선진국에서도 나타난다. 스웨덴이나 일본의 소득 격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에 비례해서 이 두 나라의 국민은 서로 다른 복지 체계와 의료 체계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긴 수명을 누린다. 부의 분배가 공정하지 못한 나라의 경우 그만큼 수명도 줄어든다. 독일의 경우 경제적 부와 수명 모두에서 선진국의 평균치에 머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수입이 비교적 고른 나라의 국민이 삶에 가 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과 네덜란드 그리고 스위스의 경우 부자와 빈자의 격 차는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경우보다 낮다. 미국의 여러 주들을 비교해 보면 이러한 사실을 더욱 인상 깊게 느낄 수 있다. 미국은 전체적으로 뛰어난 의료 시설을 갖춘 나라이지만 평균 수명에 있어서는 주마다 격차를 보인다. 북서쪽에 있는 다코타주는 기대 수명이 일흔일곱 살인데 반해, 남쪽에 있는 루이 지애나주는 일흔세 살이다. 절대적 부도, 빈곤층의 비율도, 그리고 흡연도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는 충분한 요소가 되지 못한다. 암이 나 유전자로 인한 질병에 따른 사망률 역시 별다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 두 주에 사는 사람들의 수명이 다른 것은 바로 빈부의 격차 때문이다. 루이지애나의 빈부 격차는 다코타보다 거의 2배나 높다. 좀 더 심한 불평등을 보여 주는 나라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좀 더 일찍 사망한다는 사실은, 따라서 무엇보다도 그러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이 겪는 격한 대립 상황이 스트레스를 불러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너무나 오래된 진화의 유전적 결과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원시림에 사는 개코원숭이들을 관찰한 스트레스 연구가 로버트 새폴스키는 다음 과 같은 연구 결과를 전한다. 이들 원숭이 사회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하는 수컷들은 우두머리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는다. 세렝게티 원시림의 먹이 상태는 이곳에 있는 모든 동물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 양호한데도 지위가 낮은 수컷들의 건강 상태는 우두머리들에 비해 현저히 나쁘다. 지위가 낮을수록 혈 관에 더 많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흐르고, 그만큼 더 자주 병이 들고, 그만큼 더 일찍 죽는다. 사람의 경우에는 대단히 미세하게 그리고 거의 일상적 상태에서 작동하는 복종의 형태들조차 그것이 지속될 경우 심리적 만족도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 시민 의식과 사회적 균형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 이 세 가지가 바로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심리적 만족감을 이루는 마법의 삼각형이다. 한 사회 내에서 이 세 가지 요소가 더 많이 충족될수록 그 사회 구성원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올라간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는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보완하며 서로를 규정짓는다.
- 나는 지금까지 약 50년 동안 평화와 승리를 구가하며 제국을 통치해 왔다. 백성들은 나를 사랑하고 적들은 나를 두려워하며 맹국은 나를 존경한다. 부, 명예, 권력, 쾌락은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어서 지극히 행복하니, 지상에는 내가 누리지 못 할 그 어떤 축복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온전히 내 몫이라 할 수 있는 진정으로 행복했던 날을 꼽아 보았더니 겨우 14일이었다. 오, 그대들이여! 현세의 것에 그 어떤 확신도 갖지 말지어다! (압달라만 3세)
- 결국 좋은 감정이란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타자가 아닌 바로 유기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신호를 주기 위해 생긴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 같지만 인간 의 운명이 얼마나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를 고려한다면 의문점은 해결된다. 인간은 처음부터 공동체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타인의이익과 자신의 이익 사이의 대립은 흔히 피상적인 대립에 불과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에서 설명한 바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자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며, 대립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본능은 음식 섭취와 번 식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는 것처럼, 헌신과 유대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로 좋은 감정을 갖게 한다. 최근 신경심리학자들은 여러 상황에서 인간적인 협력이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과정을 관찰했다. 사람들이 경쟁할 때보다 협력할 때 보상 체계는 더 강하게 활성화된다. 실험 참가자들도 게임에서 공동으로 번 돈에 대해서는 같은 돈을 혼자서 벌었을 때보다 더 기 뻐했다. 이는 뇌 반응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의 심리가 진화 과정을 겪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공동의 일을 할 필요성에 얼마나 적응해왔는지를 보여 준다. 충분한 당분과 단백질 그리고 지방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듯이, 협력도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 소설 『모모』로 유명한 세계적인 동화 작가 미하일 엔데가 쓴 동 화 『짐 크노프 이야기』에는 투르투르 씨라는 겉보기 거인'이 등장한 다. 이 거인은 멀리 떨어져서 볼수록 몸집이 커 보이지만 가까이 다 가가면 평범한 체구이다. 한 사회에서 부유한 사람들의 행복과 가난 한 사람들의 불행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계좌에 있는 돈에 대해서는 마치 돈이 엄청난 효력을 지니기라도 한 것처럼 착각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는 이 점에 있어서 도 중요한 통찰을 안겨 준다. 그는 방대한 설문 조사를 통해 사람들이 대개 부유한 사람들의 행복감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불행도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그림 동화집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동화 중의 하나는 아주 유능 한 일꾼이었음이 분명한 주인공 한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7년 동안 열심히 일한 한스가 자신의 고향으로 떠나려 하자 한스의 주인은 그 동안 일한 품삯으로 “한스의 머리만큼 커다란 금덩이를 준다. 금덩 이를 어깨에 지고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가는 길에 한스는 말 탄 사람을 만난다. 말을 타고 가면 힘들게 걷지 않아도 되고 금덩이도 무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스는 금덩이를 말과 바꾼다. 말을 타고 가다 말에서 떨어지는 곤경을 당한 한스는 소를 몰고 지나가는 농부를 만나자 우유를 마시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을 소와 바꾼다. 그다음엔 소를 돼지와 바꾸고 이런 식으로 계속 하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바꾼 것이 칼 가는 돌이었고 이 돌마저 실수로 우물에 빠뜨린다. 그러자 한스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무거운 돌을 들지 않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 하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외친다.” 그러고는 더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한스는 정말 바보로 여길 수 있는 인물인가, 그는 현명한 인물일 수도 있다. 그를 7년 동안이나 고용했던 주인은 그를 아주 높이 평가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품삯으로 그렇게 엄청난 금덩이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한스의 이야기는 (물론 과장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돈과 행복의 연관 관계에 대 해 알고 있는 것을 선취한다. 한스는 소유가 행복에 별로 도움이 되 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자신의 소유물을 계 속해서 가치가 더 떨어지는 것과 바꾸며 기뻐하는 행동은 오늘날 우 리에게는 낯설고 기이하게 보이지만 중세 시대에는 흔한 모티브였 다. 이를테면 부유한 직물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아시시의 프란치스 코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화려한 옷을 돌려주고 누더기를 걸친다. 위대한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상부 성당)에 그린 프레스코화는 프란치스코를 황홀경에 빠진 복된 모습으로 묘사한다. 독일의 여러 교회 제단에 그려진 엘리자베트폰 튜링엔lisabeth von Thiringen 도 자신의 금실 수를 놓은 외투를 거 지에게 나누어 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러한 복된 기쁨은 단순히 이웃 사랑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황홀경에 빠지는 기쁨은 더 깊은 곳에서 유래한다. 바로 해방의 행복이다. 이러한 행복을 우 리의 한스도 누린 것이다.
- 사람들은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자기 집을 찾듯이 행복을 찾는다" 고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 Voltaire는 말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행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좋 고 행복한 감정이 뇌의 문제이고 외부의 환경이 심리적 만족감에 미 치는 영향도 매우 미미하다면(많은 연구서들은 외부 환경의 영향력을 10퍼센트 미만으로 잡고 있다) 볼테르가 말하는 저 모순을 해명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리라. 즉 우리는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바로 우리의 발부리에 걸려 비틀거린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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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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