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5'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5.25 돈만 좇다 보면 우울감과 불행감이 높아진다
  2. 2020.05.25 나이듦에 관하여

내재적 동기는 창의력을 자극하고, 외재적 동기는 창의력을 파괴한다.
외적 보상을 바라고 일을 하면
창의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우울감과 불행감이 높아진다.
- 테레사 애머빌

 

런던 대학 대니얼 케이블 교수는 말합니다.
“외적 보상이 아무리 많이 주어져도 그것만을 위해 지루하고
의미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병들게 만든다.”
그렇습니다. 외적보상만으로는 결코 행복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일의 의미를 찾고, 일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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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관하여

인문 2020. 5. 25. 08:14

- 죽는 날까지 스스로를 지키고 제 권리를 행사하며 자주권을 잃지 않는 노인만이 존경받을 수 있다. (키케로 Cicero)
- 흔히 혼자 엉뚱한 망상에 빠져 있거나 괜히 흥분해서 헛소리하는 사람을 두고 섬망 상태라고들 말한다. 그러 나 의학에서 섬망증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 엄연한 병명이다. 섬망증 치료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들지만 열에 아홉은 합병증이 뒤따르고 잘 낫지도 않는다. 게다가 고령의 섬망증 환자는 입원 기 간이 길어질수록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위축된다. 그러면 결 국 내 집이 아닌 요양원으로 보내지거나 그대로 병원에서 생을 마 감하기 일쑤다. 섬망증은 병환 중인 환자라면 나이 불문하고 누구 에게나 발병할 수 있지만 노인들에게 가장 흔하다. 노인인데 치매 가 있다면 더더욱 피해 갈 수 없다. 원인은 다양하다. 단순한 감기 증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알레르기나 불면증을 해결하려고 약국 에서 약을 사 먹고 나서부터 그럴 수도 있다. 때로는 크고 작은 감염, 수술, 골절, 특정 약, 환경 변화 등등이 섬망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상 모든 게 섬망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 치매라는 병은 예방도 완치도 불가능하다. 다만 흔한 치매 유 형에 한해 위험인자를 최대한 피함으로써 발병을 늦출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지침이라는 게 토씨 몇 개 빼곤 심장질환이나 뇌졸중, 몇몇 암 등에 안 걸리려면 지켜야 한다는 주의사항과 완전히 겹친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체중을 관리하고, 금연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가난하거나 교육 수준이 낮거나 생의 의지가 없는 사람일수록 이 주의사항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 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치매 유병률의 지역 차를 벌리는 여러 가 지 요인 중 하나다. 대대손손 빈곤하면서도 음식이나 명절 행사 같 은 전통이 뿌리 깊은 사회집단의 일원이라면 고집을 꺾기가 더더 욱 힘들어진다. 건강에 나쁜 시대착오적 풍속이기에 앞서 그들의 혼이 담긴 문화인 까닭이다. 순전히 개개인의 그릇된 선택과 방만 이 불러오는 병이 있는 한편, 환경적으로 위험인자에 더 많이 노출 된 탓에 특정 집단이 유독 잘 걸리는 병도 있다. 치매의 경우는 대 부분의 다른 질환들처럼 후자에 가깝다. 사회 불평등이 건강 악화를 부르고 불필요한 의료 자원 소모를 초래하는 것이다.
- 미국에서는 여전히 의학은 남자의 영역이요, 어린이는 여자의 영역이었다. 1800년대 후반에 미국에도 최초의 소아과 병원이 생 겼지만 여전히 소아과는 비인기 전공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까지는 말이다. 전쟁은 온 국민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소아 사망률을 낮추면 더 많은 군인을 양성할 수 있다는 깨달음 말 이다. 그 이후 소아과학은 역사상 많은 전례가 그랬듯 두 세력의 견인에 힘입어 오늘에 이르렀다. 하나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위인들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기에 적극 나섰던 소수 특권층이다. 한편, 의료계에 진출하는 여성이 점점 늘어나 남성 전문 인력의 수와 맞먹게 되면서는 여성의 건강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여성 질환에 관한 논문이 쏟아져 나왔고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수련의와 개업의가 급증했다. 연구비와 재정 지원이 늘어나 산부인 과 실력이 특출하기로 소문난 병원도 생겨났다. 나보다 1년 선배인 1991년 졸업생들은 하버드 의과 대학 역사 를 통틀어 남녀 성비가 1 대 1이 된 최초의 학번이 되었다. 이게 벌 써 거의 30년 전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냥 건강과 여성 건강을 구분해 얘기한다. 마치 둘이 완전히 별개의 주제이고 건강이라는 영역의 원래 주인은 오로지 남성인 양 말이다. 인종 역시 별반 나아진 건 없다. 지구촌 인구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것은 노란 피부나 까만 피부의 사람들이고 미국 안에서도 백 인이 아닌 사람이 훨씬 많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소수자 취급을 받는다. 21세기에 이르러 상급학교 학생들의 인종 구성이 전체 사회 의 모습과 엇비슷해지자, 보건 영역 내 인종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에 관한 연구와 사회운동에 수많은 후원자가 지갑을 열었다. 오늘날에는 미국 내 대부분의 의대가 다양성 센터를 운영하며 국립보건원 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은 산하에 소수집단의 건강과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는 국립연구조직을 두고 있다. 그런데, 절실했기에 그만큼 더 고맙고 유용한 이런 노력들이 모순적으로 더 이상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다. 소수집단임을 강조하 는 것은 본질을 바로 짚는 게 아니라 차별을 오히려 강화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캘리포니아 같은 지역에서조차 말이다. 그가 갖고 있지 않은 성질을가지고 사람을 정의하려 들 때 모든 문제가 생긴다.
- 혁신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인간의 기발한 상상력과 결합한 과학 기술은 인간 수명을 거의 두 배로 연장했지만 그만큼 사회가돌봐야 할 생존자의 수도 몇 갑절로 늘어났다. 옛날 같으면 불치의 유전병으로 혹은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으로 혹은 그냥 노환으로 일찌감치 세상을 떴을 이들이 오늘날에는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면 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 적정 수명이라는 게 참 어렵다. 너무 낮추면 무고하게 희생되는 생명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그렇다고 또 너무 높이면 온 사회가 단체로 끙끙 앓게 된다. 게다가 사람마다도 저마다 생각하는 적정선이 다르니 머리가 복잡하다. 물론 보통은 웬만하면 더 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긴 하지만, 이런 성향은 본능일 수도 있지만 학습된 것일 수도 있다. 현대 의학의 여명기에 항생제와 신식 수술 기법이 민중의 뇌리에 거의 기적으 로 각인되면서부터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의학이 행한 이적과 오 늘날의 의학이 노화 억제라는 신기술을 앞세워 가려는 길은 완전히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혹 하나 떼려다 다른 혹 여럿을 붙인 채 살아갈 게 불 보듯 뻔한데도 그 사달을 부추긴 장본인인 의료계는 그걸 깨닫지도, 해결하려 나서지도 않는다. 특히, 자칭 국민 건강 에 일조한다는 요즘 최고 인기 분야(즉, 안티에이징 옮긴이)가 실은 과
학적 근거도 희박하고 구태의연한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지향한다며 의료계의 모르쇠는 더욱 뻔뻔해진다.
-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체내에 들어온 약물을 처리하는 해독장기의 기능이 차차 쇠퇴해 간다. 그런 까닭에 고령환자는 약물 부작용에 특히 취약하다. 늙은 몸은, 젊은 몸이 멀쩡히 넘어가는 약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편, 평소에 복용하는 약이 네 가지를 넘는 고령 환자는 낙상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증가한다. 낙상은 이차적 질환, 신체장애, 나아가 사망까지 불러온다는 점에서 고령자에게 경계대상 1순위인 위험인자다.
- 오늘날 어르신들이 일반의약품 때문에 겪는 약물 부작용 사고의 빈도를 염두에 두고 의약품 사용설명서의 경고란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런 데서도 노인 집단이 차별을 받는구나 싶다. 사람들은노인이 아프면 다들 그럴 나이라서 그러려니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말했다. “환자의 병을 음식으로 낫게 할 수 있다면 약은 그냥 화학자의 시약병에 넣어 두라”고, 이 충고를 새겨들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현대인인 것 같다.
- 우리는 스스로 선한 마음과 실력을 겸비한 의사라 자부하고 그렇게 되 고자 노력하지만, 둘 다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의학 박사 밸퍼드 마운트 Balford Mount)
- 의료와 사회복지 사이의 경계를 결정하는 것은 생물학이 아니라 정치다. 유럽 국가들이 국고를 털어 노인들에게 돋보기안경, 보청기, 지팡이, 틀니를 지급하기 시작할 때 미국은 그런 것들은 의료기기가 아니라며 비용 전액을 당사자 혹은 가족에게 떠넘겼다. 그런 방관이 초래한 결과를 오늘날 우리는 매일 목격하고 있다. 최빈층이 공공의료보험이나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필요한 물품 하나 를 간신히 구할 때 부유층은 내키는 대로 지갑을 열어 백 개고 천 개고 사들인다. 양극단 사이의 평범한 국민들은 그저 자신의 불운 을 탓할 뿐이다. 이런 계층 간 격차의 근원은 바로 약물 투여나 수술이 필요한 상태만이 의학적 문제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몸을 쓰는 게 불편해 일상생활이 곤란하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데도 당장 약물 치료나 수술을 받을 정도가 아니라면 괜찮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안구 질환을 호전시킬지 장담할 수 없는 레이저 치 료에는 보험이 되지만, 시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매일 활동할 수 있도록 안경을 맞춰 쓰려면 내 생돈을 털어야 한다. 또, 달팽이관 이식수술은 정부 도움으로 받을 수 있지만 보청기를 맞추겠다고 하면 정부는 땡전 한 푼 보태 주지 않는다. 미국의 의료 제도는 폼나지만 비싼 시술만 의학이라고 하고 기능 보조에 더 중점을 둔 저렴한 기기들은 의학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탈탈 털린 절대다수 국민들의 쌈짓돈은 이익 창출이 최우선 목표인 제약기업들의 배로 들어가 정치 후원금 따위로 악용된다. 소위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습관처럼 내거는 복지 강화 공약이 전부 재선을 겨냥한 빈말인 데에는 다 근거가 있다.
- 내 주변에 폭력이 일상적이라고 해서 타인의 곤경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사람 마음에도 타키필락시스tachyphylaxis가 일어나는 탓이다. 타키필락시스란 어떤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반응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폭력은 냄새나 마약과 흡사하다. 향수 냄새는 처음에는 매우 향기롭지만 조금만 지나도 향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마약은 내성이 생기는 탓에 하면 할수록 점점 용량을 높여야 한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도 자꾸 보면 무뎌져 별일 아니라고 생각되기 시작한다. 혹자는 이것이 위험하거나 흉사가 유독 잦은 특수한 근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적응 기전이라고 주장한다.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의사들의 공감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느 의료 집단이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다. 의사들이 건 강한 적응이라 믿는 것이 실은 악질 문화변용일 수도 있다는 소리 다. 그런 문화에 완전히 동화된 의사는 환자를 더 이상 인격체로 보지 않고 기껏해야 업무의 연장선 혹은 걸림돌이나 골칫거리로만 인식한다. 한 직업군 안에서 적지 않은 구성원이 일 때문에 타자의 기본 인간성 침해에 무감각해진다면 그 직업 문화는 전체적으로병든 것이다.
- 의학에서 본인이 받을 치료를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있는 환자를 일컫는 용어는 두가지가 있음. 첫째는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법원이 인정한사람이라는 뜻의 법률용어 능력자competence로, 이 법적 신분은 지적 기능이 크게 손상됐다는 증거를 대지 않는 한 유효하다. 둘째는 유능자 capacity 인데, 선택의 기로에서 각 선택지가 불러올 결과를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용어의 특징은 그 기준이 상황에 따라 다소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최종 판 정을 의사가 내리는 탓에 부탁받고 자문하러 온 신경정신과 전문 의가 오히려 환자 주치의의 눈치를 보는 일이 흔하다. 그래도 일단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유능자로 선언되는 환자에게는 모든 결정권이 주어진다. 환자의 선택이 의료진이 권하는 것과 다르거나 심지어 모두가 뜯어말리는 것일지라도 본인이 원하면 상관없다.
- 청력이 떨어지는 노인에게는 귀가 밝은 노인에 비해 인지장애가 3년쯤 더 빨리 찾아온다는 것은 요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상식이다. 더불어 노인의 청력 저하 중증도가 경증, 중등증, 중증일 때 나중에 치매가 발병 할 확률은 각각 2배, 3배, 5배로 높아진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기에 청력 저하가 정말로 치매를 일으킨다고는 단언하지 못하지만, 일단 막힌 귀부터 뚫어 놓는다고 손해 볼 일은 아닐 터다. 그뿐만 아니라 노인의 청력 저하는 인간 기본권의 상실과도 직결된다. 일상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은 기본이요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가족 간 갈등 및 의료진과의 의사불통이 잦아진다. 그런 일들을 반복되면 우울증, 불안, 편집증이 생기기 십상이다. 이런 명백한 과학적 증거에도 미국 의료계와 정부는 노인의 청력 저하를 관리 대상으로 인정하는 데 여전히 소극적이고 보청기는 아직도 보험급여 목록에서 빠져 있는 것이 오늘의 현주소다.
- 나는 노년기를 잘 보내기 위한 필수품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써먹는 모범답안이 있다. 바로 우월한 유전자, 행운, 두꺼운 지갑, 착한 딸 하나다. 헤이스팅스 센터 생명윤리연구소가 '좋은 삶, 좋은 죽음'이라는 표제를 걸고 주최한 한 토론회 자리에서 노인 의학의 대가 조앤 린 역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의료 시스템 아래에서는 ......... 양로원에서 외 로운 말년을 보내지 않으려면 딸이 셋은 있어야 한다.”
린은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가장 큰 이유 하나를 딱 꼬집어 지 적했다. 즉, 50여 년 전에 병에 들면 보통은 며칠, 길어야 몇 주 안 에 무조건 죽음으로 이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의료 체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반면 세상은 변해도 너무 변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인은 평소 잘 관리되던 만성질환이 노년기 막판에 악화돼 2-4년 정도 심하게 앓다가 생을 마감한다. 이 마지막 투병 기간에 그들에게 의지가 될만한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 어느 나라든 노년층은 유별나면서 예산만 잡아먹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래서 오늘날 의료 제도는 죄다 청장년과 중년에게 훨씬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융통성 없는 의료 정책은 각 종 질환에 대해 오직 저희가 하는 것들만 치료로 인정하고 혜택을는 수많은 노인 환자들에게 다 그림의 떡이 된다. 그럼에도 그 결 과로 국민 건강의 질이 떨어질 때 비난의 화살은 늘 노인들을 향한다.
- 나이에 따라 사람에 따라 부위와 진행 속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모두 언젠가는 온몸 구석구석 노화의 증거가 없는 곳이 없게 된다. 그중에서 주름이나 새치는 초반부터 감지가 가능하다. 피부가 얇아지고 탄력을 잃어 가면서 주름이 하나 둘 늘어난 다. 또, 모근에 멜라노사이트라는 색소 세포가 부족해지면 머리가 점점 허옇게 센다. 한편 어떤 노화 현상은 꿈에도 모르고 지내다가 눈에 띄게 심해지고 나서야 알게 되기도 한다. 혈관벽이 두꺼워지 면서 딱딱하게 굳거나 뼈에서 무기질 성분이 빠져나가 구멍이 숭 숭 뚫리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경우, 기능 저하는 크기나 양이 줄어드는 형태로 나타난다. 뇌는 쪼그라들고, 근육량은 줄고, 척추뼈 사이 디스크 공간은 좁아지고, 눈가는 움푹 꺼지고, 콩팥도 작 아진다. 반대로 크기가 커지거나 양이 늘어나는 쇠퇴도 있다. 심장이 비대해지고, 귀가 커지고, 눈의 수정체가 두꺼워지는 것이 그런 예다.
- 건강한 사람은 모든 신체 장기가 필요 이상으로 뛰어난 성능을 장착한 상태로 태어난다. 생물학에서는 이것을 잉여redundancy 라고 하는데, 잉여는 모든 신체 장기에서 목격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눈, 귀, 폐, 콩팥, 난소 그리고 고환은 모두 잉여 장기다. 하나만으 로도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데도 굳이 한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짝이 없는 장기들은 또 나름의 방식으로 잉여성을 갖는다. 설정된 최대 출력은 훨씬 높지만 거기까지 달릴 일은 거의 없고 평 상시에 적당한 수준만 맞추는 식이다. 그런데 이 평상시의 적당한 수준'이 핵심이다. 본질적으로 노화란 스스로를 제어해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이 감퇴하는 것, 다시 말해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잃는 것이니 말이다. 잉여성은 우리를 방만하게 만든다. 넘어져 뼈가 부러졌는데 어릴 때였다면 며칠 만에 다 붙었을 것을 몇 주를 고생 해 봐야만 뼈가 많이 약해졌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심장도 마찬가 지다. 나이 먹을수록 심장이 두꺼워지고 뻣뻣해진 탓에 펌프 성능 이 예전만 못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거나 평지를 느긋하게 걸을 때 는 전혀 모른다. 그러다 계단을 올라야 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해서 심장이 좀 더 부지런히 일해 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제야 비로소 얼마나 나빠졌는지 실감한다.
- 의사들도 일단 요양원에 들어간 노인이 건강하게 살아서 퇴소하는 일은 드물다는 현실을 잘 안다. 큰 병원들은 저희가 보유한 고 급 의료 서비스와 의료 자원 동원 능력이 아까워서 의사들에게 진단명에 따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환자를 적당히 퇴원시키라는 무 언의 압력을 넣는다. 한편 병원 의사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노인 환자의 외래 추적 관리, 노인의학을 고려한 접근, 통원의 어려움, 자택에서 주의할 점 등의 측면에서 현실감이 별로 없다. 그런 까닭에 바로 집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환 자들에게는 웬만하면 요양원을 권한다. 문제는 의사들도 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의 결과가 2017년에 한 의학 잡지에 발표되었 다. 대형 병원에서 요양 시설로 전원院된 환자의 사례들을 살펴본 연구다. 논문에 따르면, 병원 의사들은 전문 간병시설을 일종의 '안 전망'으로 활용해 병상 회전율을 높이라는 압력을 늘 받는다고 한 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요구나 개인적 상황을 반영하고 요양 시설 적격성을 꼼꼼하게 따지는 장치는 미흡하거나 아예 부재한다. 내가 미리 주의를 주었음에도 니타가 자식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형편없는 시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은 이런 현실을 증명하는 수 많은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 19세기 말 유럽과 20세기 미국에서 연금 제도의 도입과 함께 은퇴의 개념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부양해 줄 자손이 없고 부자도 아닌, 즉 절대다수의 서민들은 평생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병이 라도 들거나 늙어 버리면 바로 빈민 혹은 노숙자로 전락하는 게 흔한 수순이었고 말이다. 한때는 이런 사람들이 그대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대 에는 정부가 이런 사람들을 모아 범죄자나 정신질환자와 함께 수 용소 혹은 구빈원에 격리시켰다. 정부는 나이가 적든 많든 일을 못 하는 것을 부족한 성품의 증거로 여겼다. 그래서인지 수용 시설은 찬바람 쌩쌩 부는 돼지우리만치 열악하기 짝이 없었고 배급되는 음식 역시 허기만 간신히 달래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거리의 부랑자들이 제 발로 시설을 찾을 리 만무했다. 한편 또 어떤 시대에는 생계유지 능력이 없는 노년층을 도와야 한다는 동정적 여론이 일어 종교 단체와 정부가 함께 나섰다. 사실 이런 흐름은 근현대사에 서만 목격되는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되풀이되는 패턴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고대 로마제국부터 게로코메이아gerocomeia라는 양로 시설이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터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잘 발달해 있었다. 게로코메이아는 사회적 약자를 격리해 소외시키는 시설이 아니었다. 황제가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마다 잊지 않고 친히 방문할 정도로 이곳의 입주민들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회계층이었다. 기독교 시대에는 수도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노인과 병약자 에게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하며 자선활동에 평생을 바친 기독교와 가톨릭의 수많은 성인이 오늘날에는 병원 이름으로 더 잘 기억되지만, 원래 수도원 부속 시설들에는 의학적 관리보다는 보호와 쉼터 제공의 목적이 더 강했다. 요양 병원 말고 일반 양로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런 국지적 구호 노력이 발단이 되어 비잔틴 황제들, 교회들, 자선가들에 의해 수많은 요양 시설이 각지에 우후죽순 생겨나게 되었다. 덕분에 이 시대의 모든 제국 시민은 늙거나 병들거나 크게 다쳐 몸을 못 쓰게 되어도 어디서나 도 움을 받을 수 있었다.
- 특히, 종교의 입김이 센 시대에는 나이가 들면 육신은 스스로 제 한 몸 못 가눌 정도로 약해질지라도 노인의 영혼은 더욱 특별한 힘을 갖는다는 믿음이 보편적이었다. 노인이 신에 가까운 존재로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교회가 힘을 잃으면서 노인은 숭상받는 존재에서 순식간에 사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새롭게 부상한 강한 정부는 통제 수단 혹은 일종의 형벌로 쓸모없는 노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켰고 대개는 쏠쏠한 성과를 거뒀다. 비슷한 처지의 사회약자들을 한곳에 모아 두니 공공자원을 효율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다. 비록 이 조치가 차별적인 집단 인간성 말살을 초래 했더라도 말이다. 정부는 이들을 교화시켜야만 사회질서가 유지되 고 시민 계급 전체가 안정을 찾는다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길거리 에 더럽고 굶주린 거지와 늙은이가 넘쳐나면 그것은 정부가 실패 했다는 증거였다.
-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혹은 어디까지 소망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 은 세상에 몇 안 된다. 사람들은 의사의 말이라면 다 객관적 진실이라 믿으며 의사의 권고를 무조건 따른다. 그러나 의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때때로 그릇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어리석은 판단을 내린다. 의사도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사상의 합작품인 까닭이다. 고식적 의료라는 말을 만든 캐나다 의사 밸퍼드 마운트 역시 여러 해 전에 비슷한 맥락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늘날의 의학은 칭찬받을 자격이 없다. 현대 의학이 할 줄 아는 건 아파도 찍 소리 한번 못 내는 환자들의 고통을 모른 체하는 것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말기 환자들에게 특히 공공연한 의학의 오만함은 폭로될 기회가 없다. ... 우리는 스스로 선한 마음과 실력을 겸비한 의사라 자부하고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지만, 둘 다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 그럼에도 환자들은 담당 의사가 모욕을 느끼거나 언짢게 여길까 봐 노심초사한다.」
- 20세기 들어 노화와 임종이 마치 반드시 의학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건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의학은 스스로를 죽음이라는 절대악에 대항하는 무기라 자처해 왔다. 그러나 사실 의학은 인간이 자연스러운 생의 단계를 보다 편안하게 넘기도록 돕는 사회적 수 단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려면 의사들은 어려운 대화를 원만하게 이끌고, 나쁜 소식을 잘 전하고, 환자가 생각하는 삶의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말년의 증상들을 적절히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의대에서 이런 내용을 정식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10 년대의 일이다. 그나마 임상 현장에서는 여전히 잘 활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업무들에 상대적으로 능숙한 노인의학 전문의나 고식적 의료 전문 의사에게 협진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지속되는 개혁 노력에도 의료인들의 생각은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예산은 정작 환자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은 투석, 화학요법, 외과 시술 등에만 집중 지원된다.
- ‘번아웃'이라는 말은 어떻게 유명해졌을까. 1970년대 초, 독일계 미국인 심리학자 헤르베르트 J. 프로이덴베르거 가 유독 의사들이 직장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을 목격하고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한 때 뜨거운 이상주의자였던 의사들이 매사에 부정적인 냉소주의자 로 변해 버리는 사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자세히 조사 해 보니, 의업에 환멸을 느낀 의사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기본적으로 직업윤리가 투철하고 성취욕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직업과 개인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감정의 동요가 심해지고, 어떤 일에도 집중이 안 되어 힘들어한다. 만성적 스트레스가 그들의 숨통을 꽉 쥐고 놓아주질 않아 몸 과 마음 모두 황폐해진 탓이다. 팽팽한 긴장 상태에 끊임없이 쏟아 지는 과중한 업무가 겹치면 자기비하, 가치관 왜곡, 행동 변화, 인 간관계 악화, 은둔, 그리고 내적 공허의 악순환만 반복된다.
- 동네 의원, 즉 1차 의료 기관의 활동이 활발할수록 전국적으로 각종 질환의 발병률, 사망률, 의료 비용은 낮아지고 환자들의 만족 도는 높아진다는 것은 거듭되는 연구로 익히 증명된 사실이다. 이 에 비해, 현재 미국 사회의 의료 제도는 최첨단 기기를 이용한 시 술 위주의 특정 진료과를 편애하는 까닭에 심각한 자원 낭비를 자 초하고 적지 않은 환자들을 다치게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1차 의료 기관들이 의료 체계의 기반을 탄탄하게 받치고 있는 국가일수록 온 국민이 더욱 건강하고 여유로운 것 을 알 수 있다. 동네 의원들이 여전히 찬밥 신세인 미국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 오늘날은 미국 의료계 역사상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이기도 하다. 첨단기술과 혁신이 화려하게 만개했지만 한편에서는 불평등과 의 료 노동자의 피로도가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신세 대 투사들이 사회연락망에 #blacklivesmatter라는 꼬리표를 퍼뜨 리는 동안 이에 질세라 기업식 의료 기관은 막대한 예산을 마케팅 에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21세기의 의학 기술로는 균 감염을 치료 하는 것부터 상한 관절과 장기를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것까지, 못 할 게 없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한 의학이 환자들에게 더 큰 도움 이 되는 것부터 순서대로 차례를 매기라는 간단한 숙제 하나 못하는 바람에 온 사회의 시간과 의료 자원이 줄줄 새고 있다.
- 시인 메리 루플 Mary Ruefle은 말했다.
늙는다는 것은 절대로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늙음이 선사하 는 절대자유가 얼마나 놀랍고 감동적인지 아는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개의치 말라. 투명인간이 되는 순간 - 이때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빨리 찾아온다 - 눈앞에는 무한한 자유의 세상이 펼쳐진다.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인물들은 다 사라진지 오래다.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셨다. 부모의 죽음은 가슴 아픈일이지만 해방의 결정적 계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60대 후반 내지 70대 초반쯤부터는 모든 면에서 젊은 세대들을 능가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 불안, 분노할 일은 거의 없고 즐거움, 행복, 만족감은 배가된다. 이 연구들에 다수의 유사 연구를 더해 종합적으로 내려진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평균 적으로 개개인의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연령 집단은 65~79세였 고 그다음이 80세 이상 그리고 18~20세 순이었다.
- 원래 인류에게는 제 집에서 숨을 거두는 게 당연한 운명이 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상황이 달라진다. 노화와 죽음 이 몹쓸 병처럼 취급되면서다. 1980년대에 이르면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고,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죽음을 병원에서 맞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 1990대에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미국에서 1974년에 최초로 문을 연 호스피스 전문 기관의 수는 2013년이 되어 5,800개로 늘어 났다. 오늘날에는 세 명 중 한 명꼴로 자택에서 최후를 준비한다고 한다.
- 로봇은 절대로 사람과 대등한 위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첫째, 모든 보호자가 환자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는 존재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의 효과를 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때 로는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예상을 빗나가 실패한다. 혹은 파렴치 한이 처음부터 방임과 학대를 작정했을 때도 있다.
둘째, 간병 로봇과 사람 간병인은 서로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 다. 우리가 꼭 양자택일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그 대신 둘 다 적 절히 활용하면 각각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모두 발전시킬 수 있다. 로봇은 사람을 대체하는 게 아닌, 보조하는 존재가 되 어야 한다.
셋째, 지금도 이미 수요 초과라 간병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 정이다. 물론, 로봇은 최후의 보루로 두고 더 많은 인재가 이쪽으 로 마음을 돌리도록 변화를 꾀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그러려면 임금을 올리고, 교육 프로그램 개발하고, 보상을 확대하고, 고된 직종이라는 인식을 개선하는 것 같은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급속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라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인 타개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 생활반경이 극도로 제한된 사람들, 그러니까 대표적인 예를 들 자면 우리 왕진 의료 서비스의 고객 같은 고령자들이 침통해하는 것은 삶의 무대가 작아져서가 아니라 그 결과로 자신이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공간을 흔히 생활공간 ite-space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생활공간이 지구상의 모든 대륙이지만 방금 말한 어르신들에게는 자기 집 혹은 방 한 칸에 그친다. 심하면 침대 한쪽인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소망 이라고 해야 가끔 바깥 공기 한번 쐬는 게 고작이다. 자유롭게 여 기저기 맘껏 돌아다니던 건강했던 시절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 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 가장 간절하게 갈구하는 것은 참여 기 회, 사람의 온기, 대화, 그리고 유대감이다.
- 노인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과연 무엇일까? 인생 제3막의 장점으로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 말고도 여럿을 꼽 을 수 있다. 정신적 내공이 쌓인다는 것, 일상의 기쁨, 자기만족, 세 간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만큼 커진 자유, 또렷 해진 삶의 우선순위 등등. 물론, 누구나 다 늘그막에 이런 무기를 얻는 것은 아니며 말년의 어떤 기쁨도 젊은 시절의 희열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소득 수준이 높은 영어권 국가 국민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연구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된 결론을 내놓는다. 고령 인구 급증에 따라 연령차별주의도 심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인을 깔보지 않는 사회에서 늙어 감에 대한 시민들의 만족도가 어느 수준일지는 오직 상상 속에서나 짐작할 뿐이다.
- 명심해야 할 점은, 고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노인이 되는 것 혹은 노인으로 사는 것의 개인적 감상만 좌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차가운 시선은 노인의 건강을 해치고, 활동 영역을 변 화시키며, 수명까지 단축한다. 평소 부지런히 관리하는 습관은 남 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이의 건강을 증진한다. 그런데 이런 활동 참여율이 가장 낮은 연령 집단이 바로 노인들이다. 나이, 인종, 성별, 학력, 본인이 생각하는 건강 수준, 신체 기능을 비슷하게 맞춘 구성원들을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늙어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일수록 운동, 올바른 식습관, 정확한 복약 같은 예방 차 원의 건강증진 조치를 더 적극적으로 실천한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연구의 결과도 비슷했다. 61세부터 99세까지 아우른 집단에서 늙어 감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자세가 불러온 신체 기능 개선 효과가 규칙적인 운동의 효과보다 컸다. 노화에 대한 가치관은 자기최면과도 같다. 노년기의 건강과 삶 의 질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각자 상상해 온 그대로의 모 습으로 실현된다. 생물학은 중요한 요소지만 마음가짐, 행동, 인간 관계, 사회, 문화 등 다른 굵직한 변수도 많다. 연령차별주의가 성 차별이나 인종차별보다 흔하고 노소 불문 모든 구성원이 유독 노인에게만 더러운 색안경을 끼고 비딱한 시선을 던지는 사회가 있 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사회통념이 엎어진 역사적 선례가 적지 않고 개개인의 가치 관도 철들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에 대한 편견 이 사라지면, 노년층의 문화와 노년기 삶의 풍경도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병원 안과 밖 모두에서 말이다.
- 일반적으로 늙은이 쉰내라는 표현에는 부정적인 편견이 반, 불 편한 진실이 반 숨어 있다. 깔끔한 노인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청 결한 보통 사람들의 냄새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이를 먹을수록 후각은 쇠퇴하는데 씻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노동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체 취는 노년기에 오히려 줄어든다고 한다. 성(性) 호르몬 감소 때문 이다. 그러니 샤워며 빨래며 예전만큼 자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게 당연하다. 노인의 시력과 후각은 막 세탁한 옷과 며칠 전에 반 옷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게 곧 감은 지 오래된 머리나 계속 돌 려 입는 옷가지에 배는 시큼한 냄새도 못 맡게 된다. 잘 안 씻는 노인의 체취는 땀에 더러운 10대나 청년의 그것과 다르다. 세포, 미생물, 오일 성분, 화학물질의 인체 내 분포는 호르 몬과 식습관의 영향을 받아 연령대별로 조금씩 달라진다. 따라서 특유의 체취가 나이에 따라 다른 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 럼에도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얘기를 들으면 유독 노인들만 격노하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도 그 입장이면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들은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걸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 그걸 꼭 알아야 할까? 노인 특유의 쉰내가 화제로 나오면 대개 사람들은 그게 전부 나이 탓인 양 얘기한다. 개개인의 생활 습관과 그 습관을 유도하는 배경인자가 아니라 말이다. 운동시설마다 샤워실이 없는 곳이 없 고 데오드란트, 발 냄새 미스트, 남성 전용 혹은 여성 전용 탈취 스 프레이 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되는 현실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 이다. 늙은이 쉰내에 이런 해결책을 궁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결정적인 묘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성인들은 하루 종일 움직이면서 배어나는 체취를 더 강한 향으로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고령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저 더 자주 씻기에 편한 환경이다.
- 환자를 위해 옳은 일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의사나 다른 가족 들과 의견 일치가 안 될 경우, 이런 긴장 상황은 한층 험악해진다. 반려동물의 일이든 사람 가족이 걸린 상황이든 쉬운 치료법이 존재하는 문제는 반드시 고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에 선 의사에게 당사자의 평온을 최우선으로 배려하자고 설득하는 것만큼 어렵고 마음 불편한 일은 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들 대부분은 환자의 종합적 상황을 보는 게 아니라 당장 급한 병명 하나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시각이 다른 것이다.
- 쿤에 따르면, 혁신은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서서히 일어나 는 게 아니라 진화적 환경 조건에 딱 부합하게 된 순간에 폭발적으 로 시작된다고 한다. 패러다임이란 한마디로 어떤 중요한 논제 - 가령 의료 체계 같은 - 를 두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견해를 규정하 는 인식체계라 정의할 수 있다. 이 패러다임은 소란, 불확실성, 불 안이 고조된 시기에 교체되거나 전복되기 쉽다. 위기의 시대에 기 존 체제의 결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때 민중은 현상을 바라보 는 시각을 이리저리 바꿔 가며 타개책을 모색한다. 그러다 충분한 절대다수의 구성원이 현現 패러다임은 틀렸으니 새 패러다임으로 바꾸자는 데 뜻을 모으는 순간, 혁명이 일어난다. 과학 기술이 모든 의학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20세기의 패러다. 임에 찬동하는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렇더라도 우리 모두 심 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너희 나라보다 덜하네, 어쩌네 하는 실랑이는 의미 없다. 이제는 확 달 라질 때다. 과학을 신봉하는 현대 의학의 패러다임은 개개인에게 도 사회에도 적지 않은 혜택을 안겨 주었다. 문제는 검증된 옛 방 식을 잘 선용하는 것보다는 새 전략과 새 지식을, 사회제도와 인적 자원을 활용한 예방 중심 정책보다는 최첨단 치료 시술을 지나치 게 편애했다는 것이다. 그런 패러다임이 수가제도, 임상 실제, 의학 교육, 학계까지 의료계 구석구석을 점령했으니 현대인이 감당 해야 할 대가는 막대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이 패러다임이 미국 사회에 불러온 손실의 규모는 어느 한 국가가 혼자 메울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현재 미국에서 병원비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기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인구의 수는 천문학적 수준이다. 전문의 분포는 사회적 수요 순위와 정반대로 가고 있고, 의료 보조 인력의 근무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모양새다. 설상가 상으로 비틀린 의료 체계가 초래한 의료 및 건강 불평등은 전염병처럼 번져 가고 있다.
- 의사라면 누구나 프랜시스 웰드 피보디Francis Weld Peabody의 에세이 의술이란 무엇인가 The Care of the Patient) 마지막 구절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거의 100년 전에 쓰인 글임에도 의사의 역할 을 규정하는 피보디의 목소리는 현대인을 겨냥한다고 여기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다.
아픈 환자는 질병 조건을 유도한 실험동물과 완전히 다르다. 환자 의 병은 인간 생의 정서적 측면에 (그리고 개인적으로 덧붙이면 사회 환경에도) 영향을 주는 동시에 역으로 받기도 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이 특징을 무시한 채 환자를 돌보겠다는 의사는 실험에 영향을 줄 만한 어떤 변수도 단속하지 않고 실험을 강행하는 비(非)과학적 연구자만큼이나 돌팔이라 불려 마땅하다. ....... 의사의 필수 자질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환자를 잘 돌보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를 염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 80대가 되면 걷는 게 힘들어진다. 90이 가까우면 셔츠만 갈아입어 도 바로 숨이 찬다. ......... 삶은 감자도 씹어 먹기에 딱딱하다고 느껴지거나 우편물이 안 오는 걸 보고 일요일임을 안다면 당신은 늙은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80대에는 낮잠을 하루에 두 번 정도 잔다. 90이 되면 횟수를 세다가 잊을 정 도로 온종일 꾸벅꾸벅 조는 게 일이다. 또, 80대에는 식사량이 확연히 줄어들지만 90에는 생각날 때만 먹는다.
누군가 집배원이 오는지 안 오는지로 요일을 짐작하고 24시간 중 대부분을 자는 데 쓴다면, 십중팔구 그의 일상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고 어느 누구와도 말 섞을 일 없는 고독한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말하자면 사망예정자 대기실에 머무는 셈이다. 지병을 가진 나이 든 현대인 대다수는 결국 사는 낙 하나 없이 병환과 신체 기능 노화에 끌려 다니는 시점에 이른다. 이것은 의학발전으로 인류가 각종 급성질환으로 병사하지 않고 장수하게 된 이후에 생긴 현상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런 시대는 처음이다. 그리고 유례없는 상황에는 유례없는 해결책이 필요한 법이다.
- 삶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으면 사람마다 대답이 다 다르다. 그런데 성찰 주제가 죽음으로 바뀔 경우, 각자 번호 매긴 가치의 순서가 대충 엇비슷해진다. 주목할 점은 백이면 백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죽는 것을 최상의 죽음으로 꼽는다는 것이다.
- 내게 생과 사를 직시하고 반추할 담대함이 있었다면, 우리 아이들을 다르게 키우고, ... 죽어가는 것도, 죽는 것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할 수 있엇을 텐데. (앨리자베스 퀴블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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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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